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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소설 번영의 길 제47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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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강산
댓글 0건 조회 2,417회 작성일 20-04-12 19: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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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체44(1955)년 11월15일 오후 2시.

김일성동지께서는 강선제강소정문을 지나 백양나무가 지척에 바라보이는 곳에서 차에서 내리시였다. 마중나온 일군들과 인사를 하신 그이께서는 허리에 두손을 얹고 주위를 둘러보시였다. 정전이 된지 한주일이 지나서 이곳에 오시였을 때 보았던 처참한 파괴상을 더는 찾아볼수 없었다.

《저 나무가 그때 우리가 둘러앉았던 그 백양나무가 아닙니까?》

그이께서 리웅천에게 물으시였다.

《예, 옳습니다.》

리웅천이 말씀을 올리자 그이께서는 깊은 감회에 잠겨 백양나무가 서있는 곳으로 가까이 다가가시였다. 8월의 불볕이 사정없이 내려쪼이고 땅에서는 지열이 확확 더운 연기를 뿜어올리던 그날 그이께 한점의 그늘도 변변히 드리지 못하였던 애어린 백양나무였다. 그러나 이 두해남짓한 사이에 어린 백양나무도 페허속에 든든히 뿌리박고 가지가 무성해지고 대도 한결 굵어진것만 같았다.

김일성동지께서는 정어린 눈길로 백양나무를 바라보며 줄기를 만져보기도 하시고 색은 누렇게 변했어도 마가을의 싸늘한 바람을 안고 가볍게 흐느적이는 이파리들의 설레임소리에 귀를 기울이기도 하시였다.

백양나무는 마치도 《제강소복구는 우리들이 하겠습니다.》라고 말하던 이곳 로동계급의 그날의 잊을수 없는 그 목소리를 다시 속삭여주는듯 싶었다. 전쟁에서 집도 혈붙이도 다 잃고 한지에 나앉다 싶이한 그 사람들, 잘 먹지도 입지도 못하는 그 사람들앞에서 또다시 허리띠를 졸라매고 간고한 행군길에 나서자고, 오늘을 위한 안락의 길이 아니라 래일을 위한 고난의 길에 나서자고 호소하실 때 터져올랐던 그 박수소리가 다시 귀전에 들려오는듯 싶었다.

《그럼 현장부터 돌아봅시다.》

그이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시고 제강직장으로 걸음을 옮기시였다.

수원들속에 섞인 최일만은 김일성동지의 오늘의 현지지도에서 리웅천이나 신철, 림형관의 문제가 어떻게 평가되는가에 따라 자기의 운명이 크게 영향을 받을수 있다는것을 느끼고있었다.

그런데 첫 조짐은 즐거운것이 되지 못하였다. 김일성동지를 마중하여나온 사람은 최일만이 기대한 차승룡이 아니라 리웅천이였던것이다. 차승룡은 아직도 병원에 입원해있다고 하는데 참새 굴레씌워 먹을 정도로 약아빠진 그가 아슬아슬한 이 대목에 목을 내대지 않고 사태가 어떻게 번져지는가 뒤에서 관망이나 하고있자는것이 분명하였다.

(고약한 놈!)

최일만은 지금 김일성동지의 뒤를 따라 제강직장으로 가면서 속으로 윽별렀다.

《전후 처음으로 여기에 왔을 때에는 길조차 없어서 쑥대와 잡초에 묻힌 철길을 따라 걸었는데 지금은 모든것이 변했습니다. 도로도 선로도 잘 정리했습니다.》

김일성동지께서 2호전기로와 3호전기로사이의 철계단앞에서 걸음을 멈추고 말씀하시였다. 높직이 자리잡은 제강직장에서는 전기로들의 동음이 웅웅거리고 철계단이 들들 울리였다. 리웅천과 다른 한 일군 그리고 주인홍이 그이께서 가파로운 계단을 쉽게 오르실수 있도록 부축하여드리려 하였다.

《허허, 이런 경사야 아직도 동무들보다 내가 낫겠지.》

그이께서 웃으며 말씀하시였다. 험한 산발을 오르내리며 항일전을 벌리시던 그때를 념두해두고 하신 말씀인것이다.

그이께서는 평지에서나 다름없는 활달한 걸음으로 가파로운 철계단을 올라 휘영청 넓은 제강직장에 들어서시였다. 4기의 전기로가 복구되였는데 1기의 전기로는 보수중이고 나머지 전기로들은 모두 쇠물을 끓이고있었다. 그것은 참으로 장쾌한 모습이였다.

《몇t로들입니까?》

《30t로들입니다. 종전전기로의 2배나 됩니다.》

《대단합니다.》

김일성동지께서는 매우 만족해하시였다. 일행은 제강직장을 나와 주물직장을 거쳐 분괴압연직장 정문에 들어섰다. 녹아붙고 비틀어지고 무너져내린 앙상한 철골들만 드러나보이던 분괴압연직장이 이제는 생산직장으로서의 체모를 갖추고 드세차게 숨쉬고있다는것이 먼발치에서도 대번에 알리였다.

그이께서는 강편생산의 첫 공정에서 걸음을 멈추시였다.

《이것이 3단복식으로 현대화했다는 그 가열로가 아닙니까?》

《예, 그렇습니다.》

리웅천이 말씀드렸다.

김일성동지께서는 멀찍이 서서 가열로전모를 한눈에 바라보시였다. 그러신 다음에는 로를 한바퀴 돌아보시였다. 그이께서는 한동안 가열로벽에 난 자그마한 원형창구를 통하여 가열로내부를 들여다보시였다. 찌르는듯한 백광상태의 화염이 무섭게 회오리치고있었다. 그 화염속에 두줄로 놓인 강괴가 어렴풋이 보였다.

《3면에서 화염을 쏴주는군. 그러니 한면에서 쏴주던 때보다 생산성이 몇갑절 높을수밖에… 과연 최신식이요.》

김일성동지께서 혼자소리로 말씀하시였다. 리웅천은 가열로의 작용원리를 말씀드리려 했으나 그이께서는 3단복식가열로에 대하여 너무나도 잘 리해하시고 그 우점까지도 환히 꿰뚫어보고계시였다.

이때 최일만은 그이께 한가지 사실을 보고드릴 기회를 얻지 못하여 몹시 안달아하였다. 흥남비료공장사건의 장본인들인 림형관이나 신철, 리웅천이 정체가 모호한 인물들이라는것을 고발하여주는 중요한 증거물이 바로 1,400℃의 화염이 회오리치는 그속에 있었던것이다. 그것이 다름아닌 화염속으로 360t이나 되는 짐을 받으며 뻗어간 넉줄의 가느다란 랭각수관이였다. 1,400℃의 화염속에 랭각수관이 지나간다는것도 문제지만 그 랭각수관을 다름아닌 림형관이 용접했다는데 문제의 엄중성이 있었다. 만약 흥남비료공장에서와 같이 여기서도 림형관이 용접한 관에 바늘구멍만한 크기의 구멍이라도 뚫려진다면 그것은 상상하기조차 무서운 폭발이 일어난다는것을 의미하였다. 1,400℃로 이글거리는 가열로가 통채로 하늘로 날아나는 판이다. 흥남비료공장사고에서는 한사람의 중상자를 내고 생산에 막대한 지장을 주었지만 여기서는 그에 대비할수 없는 끔찍한 참사를 빚어낼수 있는것이다. 최일만이 가열로를 당장 세우고 사고요소를 검토해보자고 제기했던것은 결코 까닭없는 로파심이 아니였다.

최일만은 단호한 걸음으로 그이께 성큼성큼 다가갔다. 폭발은 어느순간에나 일어날수 있는것이다.

그런데 마침 김일성동지께서 가열공들에게 최일만이 우려하고있는 그 문제를 상정시키시였다. 최일만은 신경을 도사리고 가열공들의 말에 귀를 기울이였다.

《저희들도 그것을 걱정했습니다.》

가열공들이 자기들의 솔직한 심정을 그대로 말씀올리였다.

최일만은 그들이 마치 자기의 심정을 대변하여 말씀드리는것 같아 속이 얼마나 후련한지 몰랐다.

그이의 얼굴에 근심스러워하는 빛이 떠오르시였다. 리웅천은 아무런 변명도 못하고 얼굴이 벌개서 그이의 곁에 장승처럼 서있었다.

최일만은 더욱 초조해졌다. 사고란 미리 경종을 울리고 일어나는것이야 아니지 않는가.

그러나 이번에도 그런 말씀을 드릴 기회를 찾지 못하였다. 그이를 둘러싼 가열공들이 활기에 넘쳐 한마디씩 그이께 자기들의 생각을 말씀드리고있었던것이다.

《저희들은 림형관아바이를 믿습니다. 자기자신을 믿는것처럼 믿습니다.》

《림형관아바이가 용접한것이라면 틀림이 없습니다.》

《가열로를 지금까지 운영해보았는데 아주 좋습니다.》

김일성동지께서는 가열공들의 말을 주의깊게 들으시였다.

(흥남사고에 대하여 알지 못하는 사람들이야 그렇게 말할수 있지.)

최일만은 속으로 이렇게 생각하면서 흥남사고에 대하여 잘 알고있는 리웅천을 다시 쳐다보았다.

리웅천의 얼굴은 여전히 밝지 못했다.

《림형관아바이자신이 용접했거나 그들이 만든 특수용접봉을 가지고 용접한 개소들에서는 지금까지 사고가 없었습니다.》

리웅천이 그이께 말씀올렸다.

김일성동지께서는 아무 말씀없이 가열로앞을 지나 압연공정으로 걸음을 옮기시였다.

집채같은 대형전동기가 웅웅거리며 위엄있게 돌아가고 육중한 압연기대가 아래우로 운동하면서 작열상태의 강괴를 아름드리 롤짬에 련속 밀어넣었다.

《그전에 여기에는 폭탄구뎅이밖에 없지 않았습니까?》

《바로 이 자리에 폭탄구뎅이가 있었습니다.》

한 압연공이 그이께 말씀올렸다.

《일을 많이 했습니다. 장합니다.》 그이께서는 이렇게 평가하시며 리웅천을 보며 물으시였다.

《이 근방에서 허리부러진 축세기를 본것 같은데 그것이 어데 있습니까?》

《밖에 있습니다.》

《가봅시다. 축세기문제를 가지고 숱한 론의들을 했는데…》

김일성동지께서는 축세기앞에서 오래도록 발걸음을 멈추고 작업과정을 주시하시였다.

《저렇게 굉장한 짐이 실리는 축세기를 용접해서 다시 쓰게 하자니 헐치 않았겠습니다. 수고 많았습니다.》

그이께서는 축세기작업장을 세세히 돌아보고 현장에 나오시였다.

최일만은 그이의 심정이 얼마나 복잡하고 무거우시리라는것을 가히 짐작할수 있었다. 축세기가 현재로서는 가동하고있으니 그동안 수고가 많았겠다고 로동자들을 평가하시는것은 충분히 리해할만 하였다. 그러나 결과가 문제인것이다. 축세기와 가열로의 그 관을 용접했다는 바로 그 사람이, 게다가 그자신이 만들어냈다고 하는 그 용접봉으로 용접하여 엄중한 폭발사고를 일으켰으니 그것을 무엇으로 설명하여야 하겠는가?

분괴압연직장의 조업식을 앞두고 일어났던 폭발사고는 그런대로 엄중하지 않아 무마해버릴수 있었다. 그러나 중상자까지 낸 흥남비료공장의 동질의 그 엄중한 폭발사고는 이제 더는 덮어버릴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분괴압연직장을 나서신 김일성동지께서는 다시한번 직장을 둘러보시였다.

최일만은 그이께서 강선제강소 분괴압연직장 설계와 설비들을 다시 검토할데 대한 자기의 제기를 생각하고계실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최일만은 자기의 심장이 여느때없이 불안스럽게 뛰는것을 느꼈다.

《그런데 림형관동무는 왜 보이지 않습니까?》

그이께서 리웅천에게 물으시였다.

최일만은 그이의 질문을 다소 뜻밖이라고 생각했으나 다시 고쳐 생각해보니 그 질문도 다 흥남사고와 관련이 있을것이라고 자기나름으로 확신했다.

《입원해있습니다.》

《어디에?》

《여기 가까운 병원입니다. 서문 건너편에 있습니다.》

김일성동지께서는 무엇인가 짐작이 되신다는듯 고개를 끄덕이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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