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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소설 번영의 길 제35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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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강산
댓글 1건 조회 9,302회 작성일 20-03-31 1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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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일성동지의 부르심을 받은 최일만의 가슴은 세차게 울렁거리였다. 최일만은 그이의 접견을 받는 기회에 그이로부터 두가지 중요한 결론을 받기로 결심하였다.

그 하나는 분괴압연직장조업식을 당분간 뒤로 미루는것이였다. 방금 그는 강선제강소 지배인으로부터 분괴압연직장가열로가 시험도중 폭발되였다는 보고를 받았던것이다. 이것은 그동안 조사, 추적해온 리웅천이나 신철의 죄과가 백일하에 드러났다는것을 의미하였다.

다른 하나는 강선제강소 분괴압연직장의 중요설비라고 하는 축세기와 전기로확장공사에 필요한 대형변압기 그리고 황해제철소와 김책제철소 용광로복구에 필요한 대형송풍기 납입과 관련한 문제들이였다. 최일만은 국가계획위원회에 옮겨앉은 이후 마침내 그 설비들의 납입문제를 해결하였는데 그이께서 결론만 주신다면 쏘련측과 정식 계약을 맺아야 했다.

물론 이러한것들은 정준택으로서는 엄두도 내지 못할 문제들이였다. 그러나 손탁이 세고 수완이 있으며 쏘련국가계획위원회에 인맥관계를 가지고있는 최일만은 전후복구건설에서 관건적의의를 가지는 이 중요설비납입문제를 끝내 해결해내고야 말았다. 강선제강소의 이번 사고는 자기의 예견성있는 설비납입작전이 얼마나 정당했는가를 뚜렷이 증명해주고있었다.

최일만은 기세가 도도하여 그이의 집무실에 들어섰다.

《조금 기다려야 하겠습니다. 수령님께서 손님들과 담화를 하고계십니다.》

서기가 그이께서 계시는 방을 눈으로 가리키며 말하였다.

《기다립지. 그런데 서기동무는 되우 바쁜가 보군.》

최일만이 서기의 책상우에 널린 문서들을 내려다보며 기분이 들뜬김에 한마디 비쳤다.

젊은 서기는 의아해하는 눈길로 최일만을 치떠보았다. 나라의 중책을 지닌 간부답지 않게 무슨 그런 실없는 소리를 하는가고 질책하는 눈길이였다. 그러나 최일만은 서기의 그런 눈길쯤에는 전혀 개의치 않고 벽가에 주런이 놓인 개별의자에 털썩 앉았다. 그리고는 그이께서 계시는 방으로 들어가는 출입문을 바라보았다.

이제 저 출입문을 열고 들어가 김일성동지께 강선제강소 분괴압연직장 가열로폭발문제를 보고드리면 그이께서는 어떤 립장을 취하실것인가?

최일만은 며칠전에 강선제강소의 한낱 미미한 기술자에 지나지 않는 신철이라는 청년의 문제를 잘못 처리한것으로 하여 그이로부터 강한 추궁을 받았었다. 그런데 해당 일군들이 신철의 문제를 끝까지 추적한데 의하면 신철은 가정주위환경을 기만한 《불순분자》였다. 그는 가정주위환경을 써내면서 형제 하나가 전쟁시기에 행방불명되였다고 하였다. 그런데 조사해본데 의하면 형제가 한명도 아니고 두명이나 성진에서 배를 타고 월남도주했던것이다. 아마도 신철의 리력과 가정주위환경을 조사한 문건은 이미 그이의 책상우에 가있을것이다. 이제 신철이 설계했다는 가열로까지 폭발되였으니 신철은 더는 빠져나갈 구멍이 없게 되였다. 여태껏 신철이를 비호두둔한 리웅천이란자의 운명도 어떻게 되리라는것이 뻔하다.

(그런데 옥사나는? 그 앙큼한 암고양이같은 계집애는 그날 사나운 발톱으로 이 최일만의 면상을 금시 허벼주기나 할것처럼 노려보았지? 이제 고 계집애가 눈물을 똑똑 떨구며 나를 찾아오지 않나보지. 그렇게 되면 아주 흥미있겠는걸.…)

최일만은 빙그레 혼자 웃기까지 하였다. 그리고는 다시 그이의 집무실출입문을 바라보았다. 무슨 손님들이기에 그이의 바쁘신 시간을 이리도 지체시키는가 하고 그는 저으기 초조감에 휩싸여 생각하였다. 젊은 서기도 그를 자기 방에 너무 앉혀둔다고 생각이 되였던지 말없이 그이께서 계시는 방으로 들어갔다. 서기는 인차 돌아서 나왔다.

《들어오시랍니다.》

서기가 집무실의 문을 열어주며 최일만에게 말했다. 자리에서 일어나 그이의 집무실로 들어서던 최일만은 집무실에 가득찬 화려한 빛갈에 눈이 부시여 발걸음을 주춤거렸다.

《어서 들어오오.》

김일성동지의 우렁우렁한 목소리가 방 저쪽에서 들려왔다. 최일만은 얼떠름해지는 정신을 가다듬고 문턱을 넘어섰다.

《어떻소? 이제는 우리 녀성들이 비단옷을 입게 되였소. 비단옷을!》

기쁨어린 그이의 목소리가 최일만을 진정시켜주었다. 최일만은 정신을 가다듬고 방안을 천천히 둘러보았다. 그제야 그는 크지 않은 방을 꽉 채은 화려한 빛발이 그이의 방에 있는 커다란 앞상우에 펼쳐진채로 놓인 울굿불굿한 비단천들에서 흘러나오고있다는것을 알아차렸다.

앞상 량쪽에는 그 비단천으로 지은듯한 화려한 비단옷을 입은 처녀들이 상기된 얼굴로 얌전하게 서있었다.

《선녀가 하강한것 같지 않소?》

그이께서 최일만에게 물으시였다.

《예, 정말 선녀같습니다.》

최일만이 비단옷을 입은 처녀들을 바라보며 감탄했다.

《이 동무들이 바로 전후 우리 나라에서 처음으로 비단을 짠 녕변견직공장의 처녀들이요. 그리고 이 공선호동무는 우리 나라의 드문 인재요. 비단천 생산기술자란말이요.》

그이께서 자신 가까이에 서있는 키가 자그마한 한 청년의 어깨를 두드려주며 말씀하시였다.

공선호는 그이의 치하를 받고 몸둘바를 몰라하였다.

최일만이 공선호뒤에 단정한 자세로 말없이 서있는 정준택을 본것이 바로 그때였다. 최일만은 모처럼 별러서 그이의 결론을 받으려는 목적이 정준택이 있음으로 하여 어쩐지 훼방을 받을것 같아 께름하였다. 그러나 정준택이 해결하지 못한 중요설비납입문제를 다름아닌 자기가 해결했다는데 다시 생각이 미치자 차라리 정준택당자가 옆에 있는것이 잘되였다고 생각했다. 사업에서 실패한 정준택이 있음으로 하여 자기의 가치가 그만큼 돋보일것은 뻔했다.

최일만은 정준택을 흘끔 치떠보았다. 정준택은 말이 없었으나 그 얼굴에는 미소가 떠돌고있었다.

《정준택동무, 지난 정초 눈보라 휘몰아치던 그날이 생각나오?》

그이께서 문득 정준택에게 물으시였다.

《예, 생각납니다.》

《바로 그날 공선호동무를 녕변에 데려다주었지. 그런데 6개월만에 이런 비단이 나왔소. 장하오, 장해. 우리 녀성들이 이 사실을 알면 공선호동무를 꽃수레에 태우자고 할거야.…》

그이께서는 공선호의 어깨를 껴안으신채 비단천이 놓인 앞상가까이로 다가가시였다. 그리고는 비단천을 손에 들고 아름다운 빛갈과 문양을 눈여겨보기도 하시고 한손으로 소중히 쓸어만져보기도 하시면서 이 천은 시집가는 녀성들이 첫날 이불감으로 썼으면 좋겠다고, 저 천으로는 첫날 색시들의 옷을 지었으면 좋겠다고 하시였다.

그이께서는 앞상우에 놓여있는 분홍색 진달래꽃문양을 놓은 비단천을 드시더니 천이름이 무엇인가고 물으시였다.

공선호가 송그스러워하면서 그 천은 이번에 새로 도안해서 짰기때문에 아직 이름이 없다고 대답을 올렸다.

《허허허, 이름이 없다… 그럼 내가 어디 이름을 지워볼가.…》

《예, 그렇게 해주십시오.》

공선호는 물론 비단옷을 입은 처녀들도 무척 좋아하였다.

그이께서는 연분홍 진달래꽃문양직을 자세히 보시며 생각에 잠기시였다.

《문양도 좋고 색갈도 화려한것이 녀성들의 저고리감으로는 그저 그만인데… 가만, 동무네 견직공장이 있는 녕변에는 유명한 약산동대가 있고 거기에는 진달래가 많지. 약산동대의 진달래, 듣기만 해도 얼마나 향취가 풍기오. 그러니 진달래꽃이 만발하는 약산동대의 이름을 따서 <약산단>이라고 하는것이 어떻소? <약산단>…》

《<약산단>! 정말 좋습니다.》

공선호와 처녀들이 손벽을 쳤다. 정준택도 그 이름이 좋겠다고 말씀드렸다.

《동무들이 다 찬성하면 이 비단천은 <약산단>이라고 합시다. 그런데 이 천의 이름은 무엇입니까?》

그이께서는 옆에 놓여있는 다른 비단천을 가리키며 물으시였다.

그이께서는 그 천도 이름이 없다는것을 아시자 이 천의 문양은 흐르는 강물처럼 은근한데 약산동대아래에 흐르는 구룡강의 이름을 따서 《구룡단》이라고 하는것이 어떤가고 하시였다.

모두들 좋다고 말씀드렸다.

최일만은 녕변의 약산동대나 구룡강에 대하여 아는것이 없었다. 하지만 그도 덩달아 좋다고 말씀드리지 않을수 없었다.

비단천이름을 다 지으신 김일성동지께서는 감격에 겨워하는 비단천 생산자들에게 우리 나라 명주실을 가지고 더 많은 비단천을 짜서 우리 녀성들을 해입히자고 뜨겁게 고무해주시였다. 그리고 정준택에게는 리승기선생의 비날론연구가 어떻게 되였는가고 문의하시고 앞으로 우리 인민들에게 질좋은 비날론옷감이 많이 차례지게 하여 입는 문제를 하루빨리 해결해야 하겠다고 말씀하시였다.

이윽고 처녀들이 방에서 나가자 공선호도 뒤따라나가려고 하였다.

《선호동문 좀 남소.》 그이께서 공선호를 다시 자리에 앉히시였다. 《내 선호동무에게 한가지 물을 일이 있는데? 동문 강선제강소에서 압연기사로 일하고있는 신철이라는 청년에 대하여 혹 아는것이 없나? 동무들은 쏘련에서 거의 같은 시기에 공부를 했는데…》

김일성동지께서 공선호에게 물으시였다. 최일만은 그이께서 신철을 비롯한 강선제강소의 일부 기술자들에 대한 조사자료를 이미 보시였다는것을 알아차렸다.

《신철동무에 대해서는 좀 알고있습니다. 졸업을 앞둔 마지막 1년동안 저는 신철동무와 같은 합숙에서 생활하였습니다.》

《마침 잘됐구만. 그 청년에 대하여 아는껏 말해보라구. 기탄없이…》

그이께서 최일만에게 얼핏 눈길을 주시였다가 공선호에게 다시 시선을 보내시였다.

공선호는 무엇부터 어떻게 말씀드렸으면 좋겠는지 갈피를 잡기 어려운듯 인차 입을 열지 못하였다. 하지만 그이께서는 공선호를 재촉하지 않으시였다. 신철이라는 청년에 대하여 아직 한번도 본 일은 없으나 문건상으로는 매우 깊이 료해하고있는 최일만이도 이 순간에는 공선호한테서 어떤 말이 나올가 몹시 기다려졌다.

공선호가 무슨 생각을 했는지 갑자기 벌쭉 웃었다. 그를 지켜보던 김일성동지께서도 미소를 지으시였다.

《말해보오. 무엇이나 다 좋소.…》

그이께서 청년의 용기를 북돋아주시였다.

《여기에서 말씀드리기는 좀 거북한데…》

공선호는 주저주저하였다. 그러자 그이께서 다시 호탕하게 웃으시였다.

《이런 졸장부라구야. 말을 꺼냈으면 다 하고 볼판이지.》

그이께서는 롱조로 허물없이 말씀하시였다. 공선호는 마침내 자기의 회상속에 떠오르는 그것을 남김없이 다 털어놓기로 결심한듯 자세를 고쳐앉더니 또한번 벌쭉 웃었다.

《신철동무에게 한가지 별명이 있었습니다. <철의 삼각형>이란 별명입니다.》

《<철의 삼각형>, 허허… 별명치고는 철학이 있는것 같소.》

그이께서는 미소를 머금고 최일만을 바라보시였다. 시간이 바쁘지만 청년의 말을 다 들어보자는 뜻이였다.

《<철의 삼각형>이란 말에서 <철>은 신철동무의 이름이고 삼각형은 그가 언제나 대학, 도서관, 합숙 이 세 지점을 정점으로 하는 삼각형로정만 걸어다녔기때문에 붙은것입니다. 신철동무는 이 삼각형로정을 언제 한번 어긴 일이 없었습니다.》

《그렇소? 아주 흥미있소.》

그이께서 호기심을 나타내시자 공선호는 의미있는 미소를 지었다. 류학시절에 무슨 일화인가 떠오른 모양이였다.

《말해보라구.》

그이의 헌헌한 말씀에 청년은 힘을 얻은듯 이야기를 펼치기 시작하였다.

《한번은 쏘련청년들과 합숙에 있던 여러 나라 류학생들, 실습생들이 도시 교외에 있는 호수가에서 야유회를 조직한 일이 있었는데 그때 우리들은 신철동무도 거기에 끌어들이려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는 이때도 절대로 삼각형로정에서 벗어나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신철이, 인생에는 별의별 길이 다 있다는것을 알아야 해. 곧은 길로만 가는 직선길이 있는가 하면 둥글둥글하게 살아가는 둥근 길도 있지. 그런가 하면 빙빙 에도는 돌림길도 있고 삐죽삐죽 모가난 험한 길도 있지. 갈래도 많고 기복도 심한것이 이 세상 인생길이야. 그런데 동문 피다고라스정리에 미친 사람처럼 기하학적인 삼각형로정만 짜놓고 그 길에서 한걸음도 물러서려 하지 않으니 이 얼마나 답답한가.> 누구인가 신철동무에게 하는 말이였습니다. 신철동무는 그 말을 듣고 탓할대신에 길게 한숨을 내쉬였습니다.》

공선호는 잠시 입을 다물고 앞상에 놓인 비단천의 한쪽 끄트머리를 만지작거렸다. 공연한 말을 꺼내여 수령님의 바쁘신 시간을 축내지 않는가 몹시 걱정스레 생각하는것 같았다.

그이께서는 깊은 사색에 잠기시여 아무런 말씀도 하지 않으시였다. 방안에는 한동안 침묵이 흘렀다. 공선호는 자기가 입을 다물고있으면 그 침묵은 언제까지나 계속될것 같았다. 그만큼 자기의 말이 큰 무게를 가지고 이방에서 울리고있다는것을 그는 느꼈다.

《그날 신철동무는 우리에게 조용히 말했습니다. <조국에서는 지금도 피를 흘리고있는데 우리 어찌 빠다를 먹으면서 헛눈을 팔겠나. 나는 그렇게 살수 없어.>

저는 그날 야유회에 가서 놀면서도 어쩐지 신철동무의 그 말이 자꾸 되살아나서 안정할수가 없었습니다. 저는 제가 마시는 빨간 포도주가 어쩐지 신철이 말하던 조국이 흘리는 그 피처럼 생각되였습니다.

신철동무는 트렁크 3개를 가지고 귀국했는데 그 트렁크는 모두 책과 도면들로 꽉 찼습니다. 지어 그는 끼니도 번지면서 돈을 저축해서는 책을 샀습니다.…》

공선호는 그밖에도 많은 이야기를 하였으나 그것은 모두 먼저 한 이야기와 내용이 비슷하였다. 그가 일단 말을 멈추자 방안에는 또다시 침묵이 깃들었다. 공선호는 그이께서 자기가 한 말들을 한마디도 놓칠세라 커다란 관심을 가지고 주의깊이 들으시였다는것을 똑똑히 알았다. 그리고 자기가 한 말들이 그이께서 그 어떤 중요한 결심을 채택하시는데 큰 작용을 하리라는것도 어렴풋이나마 느낄수 있었다. 그는 수령님께 방해를 드리고싶지 않았다.

《수령님, 저는 돌아가겠습니다.》

공선호는 자리에서 일어서며 말씀드렸다.

《돌아가겠단 말이지. 무슨 제기할것이라도 없겠나?》

그이께서 친근한 어조로 물으시였다.

《없습니다. 녕변에 돌아가서 더 많은 <약산단>, <구룡단>을 짜기 위해 노력하겠습니다.》

《그렇게 하라구.》

김일성동지께서는 공선호를 데리고 서기한테 가서 녕변동무들의 식사와 차편을 잘 조직해주라고 당부하신 다음에야 다시 방으로 돌아오시였다. 최일만은 그동안 제나름의 착잡한 생각에 휩싸여있었다. 그가 보건대 아무런 사전준비없이 생각나는대로 두서없이 말하는 젊은 방직기술자의 말은 모두 진실인것 같았다. 그렇다면 신철은 조국의 륭성번영을 위해 오직 학습에만 몰두한 애국자인가? 신철이 정녕 애국자라면 나라를 배반하고 남으로 도주한 형제들은 폭로규탄할대신 왜 감추고있었는가?

《신철기사의 문제를 어떻게 보고 어떻게 처리하는가 하는것은 원칙적이고도 중요한 문제입니다.》

문득 그이께서 하시는 말씀에 최일만은 자기 생각에서 깨여났다.

그는 수령님께서 문제를 어떻게 보고 판단하시는가에 모든 주의력을 깡그리 집중하였다.

《나는 신철기사의 신원과 가정환경을 조사한 자료들을 보았습니다. 신철기사의 형제들이 행방불명된것으로 알았는데 월남한것으로 판명된것은 월남하지 않은것보다는 못하지만 그러나 젊은기사의 가정환경이 명백히 다 밝혀진것은 다행스러운 일입니다. 그런데 일부 동무들이 신철기사의 형제들이 월남도주한 죄를 동생인 신철기사한테까지 넘겨씌우려고 하는데 나는 찬성할수 없습니다. 신철기사는 전쟁시기 전선에서 싸웠고 그후에는 류학을 하였습니다. 그러니 그에 대한 형제들의 영향은 거의나 없었고 그 자신도 형제들의 행방을 모를수 있었습니다. 이렇게 보면 신철기사를 가정환경기만자로 규정할 근거도 없습니다.》 그이께서는 잠시 말씀을 멈추었다가 다시 계속하시였다.《리웅천동무의 경력과 처남문제도 그렇습니다. 그 동무 처남이 남조선에서 한자리 한다는것도 먹고 살기 위해 무슨 일인가 하는것 같은데 그것을 큰 죄로 볼수는 없습니다.

이렇게 놓고 보면 결국 신철, 리웅천 본인들의 현행동향만 남게 되는데 그것을 어떻게 보는가 하는것이 기본입니다. 정준택동무는 그들에 대해 할 말이 없습니까?》

김일성동지께서 정준택을 유심히 보시였다.

《저는 리웅천동무를 광복직후부터, 신철동무는 복구건설이 시작되면서 부터 알게 되였습니다. 그들은 다같이 성실하고 정열적이고 난관을 자기의 힘으로 뚫고나가려는 의지가 강한 동무들입니다. 저는 그 두 동무를 서슴없이 보증합니다.》

정준택의 전례없는 결단적인 발언은 최일만에게 결정적으로 불리하였다. 정준택의 존재에 대하여 불안을 가진것이 리유없는 일이 아니였다는것이 명백해졌다. 그러자 최일만이 앙심을 품고 거꾸러뜨리기로 결심한 신철이나 리웅천이보다 오히려 정준택에게 증오가 몇배 더 가는것을 어찌할수 없었다.

《마지막으로 쏘련의 설계도면을 훔쳐내왔다는 문제인데 쏘련에 경제기술적문제로 들어갔던 사람이 필요한 설계도면을 가지고나온것을 훔쳤다고 볼수야 없지 않습니까.》

그이께서 이렇게 말씀하시자 정준택이 다시 앞에 나섰다.

《모스크바회담때 쏘련측에서는 필요한 기술도서들과 문건들, 설계도면들을 우리한테 제공해주기로 공식 약속하였습니다.》

《옳습니다. 그런 조항은 콤뮤니케에도 명기되여있을것입니다.》

신철과 리웅천에 대한 그이의 분석평가는 조금도 의심할나위없이 긍정적인 방향으로 흐르고있었다. 최일만은 그이께서 일단 한번 믿으신 일군이라면 설사 그 일군이 엄중한 과오를 범해도 끝까지 믿으신다는것을 다시금 느끼지 않을수 없었다.

《모든 사물현상을 일면적으로 보고 평가하면 실수할수 있습니다. 특히 사람평가에서 그러합니다. 아무리 결함이 많은 사람에게도 우점이 있을수 있고 우점이 많은 사람에게도 결함이 있을수 있습니다. 우리 지도일군들은 이것을 항상 명심하고 사람들을 매장하는 방향으로 끌어내릴것이 아니라 살리는 방향으로 끌어올리기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그러자면 사람들에게서 우점을 찾아볼줄 알아야 합니다. 우점을 보려는 립장만 확고하면 누구에게서나 우점이 눈에 띄우기마련입니다.》

머리를 수그리고앉아서 그이의 말씀을 듣고있는 최일만은 그이께서 이미 보셨으리라고 짐작되는 그 강선자료에 언급된 최근의 사건사고들에 대하여 반드시 주의를 돌려달라고 말씀드리고싶었다. 그는 그 사건사고가 절대로 무시하거나 과소평가할 성질이 아니라는것, 거기에는 무서운 음모가 있다는데 대하여 상기시켜드리고싶었다.

최일만에게는 원래 자기와 뜻을 같이 하지 않는 사람들에 대해서는 무작정 의심하고 박해하는 악습이 있었다. 그는 강선사람들이 쏘련의 원조에 의거하지 않고 자체로 세계적인 첨단기술인 3단복식가열로를 도입한다는데 대하여 애초에 믿으려고도 하지 않았다. 그런데 문제의 3단복식가열로가 최종시험단계에서 폭발된것이다.

그이께서 이 엄청난 사고소식을 들으시면 과연 어떤 립장을 취하실것일가?

그 소식을 들을 때 당황망조해하는 정준택의 몰골을 눈앞에 그려보고는 어서 그 사고소식을 말씀드리고싶은 강렬한 욕망에 휩싸여 최일만은 가슴을 바질바질 졸이였다. 그는 얼굴을 들고 그이의 안색과 거동을 살피며 그 소식을 전해드릴 시각만 오기를 초조하게 기다렸다.

드디여 그 시각은 왔다. 그이께서 하시던 말씀을 멈추시고 최일만의 의견을 들어보시려는듯 긴장해서 앉아있는 그를 내려다보시였던것이다.

《저… 김일성동지.》 최일만은 흥분때문인지 초조감때문인지 목소리까지 떨리였다. 《한가지 불행한 소식을 보고드리지 않을수 없습니다.》

《불행한 소식? 무슨 소식입니까?》

《강선제강소 가열로가 최종시험단계에서 폭발되였습니다.》

정준택의 도수높은 안경알이 번쩍했다. 최일만은 그 안경알속에서 공포로 하여 굳어진 정준택의 눈을 본것만 같았다.

그는 수령님의 표정을 얼른 살폈다. 최일만은 그이께서 이 소식을 보고받으면 즉시 크게 놀라시거나 그렇지 않으면 하다못해 사고원인이라도 파고드실줄로 알았다. 그런데 그이께서는 놀라지도 않았고 사고원인은 파고들지도 않으시였다. 최일만은 자기가 너무도 흥분하여 그이께 잘못 보고드리지 않았는가 생각했다. 그러나 자기가 잘못 보고드리지 않았으며 그이께서도 그 보고를 정확히 받아들이시였다는것이 인차 밝혀졌다. 그이께서 강선제강소 분괴압연직장에, 다시말하여 사고현장에 직접 전화를 거시였던것이다.

《림형관동무입니까? 가열로에서 폭발사고가 있었다는데 혹시 상한 사람이라도 있지 않습니까?》

그이께서 물으시였다.

《상한 사람도 없고 사고도 큰것이 아닙니다. 가열로문짝 세개가 나떨어졌을뿐입니다.》

수화구진동판을 울리는 목소리가 최일만의 귀에까지 들려왔다.

《사람이 상하지 않았다니 다행입니다.》

《사고는 다 수습했습니다. 축세기도 제 능력을 다 발휘하고 가열로도 잘 가동합니다. 수령님께서 보내주신 기술자, 전문가들이 큰 몫을 맡아제꼈습니다.》

《알만합니다. 조업식날자를 하루라도 앞당겨야 하겠습니다.》

《알았습니다. 그런데 수령님, 한가지 보고드릴것이 있습니다.》

《무엇입니까?》

《일남이가 오늘 퇴원했습니다. 수령님께서 보내주신 의료일군들의 노력이 컸습니다?》

《아 그렇습니까? 그것 참 기쁜 소식입니다.》

수령님께서는 수화기를 놓으시였다. 그런 다음에도 그이께서는 《일남이, 일남이》하면서 거의나 환희에 가까운 심정으로 거듭 외우시였다.

최일만은 갑자기 뒤통수를 얻어맞은 사람처럼 머리가 뗑하여 뭐가 뭔지 통 갈피를 잡을수 없었다.

《사고소식이란 언제나 과장되기마련입니다. 그렇기때문에 사고당사자들에게 사태를 알아봐야지 한다리라도 건너가면 그만큼 부정확하거나 과장된 정보를 받게 됩니다.》

김일성동지께서 부드러운 어조로 최일만에게 말씀하시였다. 그리고는 사고건에 대해서는 인차 다 잊어버리신듯 화제를 딴데로 돌리시였다.

《강선제강소 분괴압연직장을 우리의 힘, 우리의 지혜, 우리의 자금과 자재로 복구하였다는것은 커다란 의의를 가지고있습니다. 사실 강선제강소의 축세기며 3단복식으로 된 가열로공사를 우리의 힘으로 복구건설할수 있는가 없는가 하는 문제를 가지고 론의들이 많았습니다. 그렇지만 우리의 로동계급은 제힘으로 어려운 그 과업을 끝끝내 해내고야 말았습니다. 때문에 분괴압연직장을 복구했다는것은 단순히 어느 한 기업소의 한개 직장을 우리의 힘으로 복구했다는데만 그 의의가 있는것이 아니라 우리 당 경제건설의 기본로선도 모든 분야에서 생산을 전쟁전 수준으로 끌어올릴데 대한 3개년계획도 능히 우리의 힘으로 관철할수 있고 초과완수할수 있다는것을 내외에 엄숙히 선포하는것으로 된다는데 큰 의의가 있습니다. 이런 의미에서 이 땅에서 포화가 멎자 40일만에 처음으로 쇠물을 뽑았고 이제 며칠 안있어 압연강재까지 생산하기 시작할 강선제강소는 전후복구건설의 돌파구를 열어놓았다고 볼수

댓글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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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산님의 댓글

강산 작성일

(위에서 계속)

볼수 있습니다. 돌파구! 어떻습니까?》

그이께서 최일만에게 물으시였다. 와뜰 놀란 최일만이 얼른 《예.》 하고 대답을 올렸다.

《이번에 리웅천, 림형관, 신철을 비롯한 강선의 전체 로동계급들이 자랑찬 위훈을 세웠습니다. 바로 그렇기때문에 잘못 평가된 리웅천, 신철동무들의 문제도 시급히 바로잡아야 하겠습니다.》

그이의 집무실을 나와 청사현관의 대리석기둥에 몸을 기대고 선 최일만을 목단추 하나를 벗기고는 손수건으로 주름이 간 굵은 목덜미의 진땀을 씻어냈다. 앞서 나온 정준택은 보라는듯이 가슴을 쭉 펴고 승용차에 오르고있었다. 그때에야 비로소 그는 그이앞에서 정준택을 답새겨줄 강선제강소의 축세기며 대형변압기며 하는 중요설비납입문제는 애초에 상정조차 하지 못했다는것을 알았다. 하긴 축세기와 같은 설비들을 자체로 복구하여 조업을 선포하게 된 마당에서 그런 문제를 상정한다는것은 아무런 의의도 없었다.

 

1954년 9월 4일 정오가 조금 지나서부터였다. 강선제강소 분괴압연직장으로 꺾어들어가는 구내도로입구에 높이 세워진 솔문으로 가지각색 승용차들이 꼬리를 물고 지나갔다. 푸르싱싱한 솔가지로 엮은 솔문에는 《경축 분괴압연직장》이라는 글발이 나붙어있었다. 당과 정부의 책임간부들과 지방 당 및 정권기관, 사회단체책임일군들이 조업식에 참가하기 위해 왔고 우리 나라에 주재하고있는 여러 나라 대사관성원들이 손님으로 왔다.

이날 분괴압연직장 조업식에서는 김일성동지께서 보내주신 축하문이 열광적인 환호속에 전달되였다.

이날저녁 강선제강소에서는 분괴압연직장조업과 관련하여 간단한 연회를 차렸다. 최일만은 연회에서 몇사람밖에 안되는 쏘련손님들을 위해 류창한 로어로 축배사를 하였다.

리웅천은 그것이 말할수 없이 불쾌하여 도중에 나오고말았다.

최일만은 리웅천의 행동을 매우 건방지고 《반쏘》색채를 로골적으로 들어낸 불손한 행위로 보았다. 그러지 않아도 그는 분괴압연직장 복구과정에 리웅천이로 하여 여러가지로 골탕을 먹은것을 잊을수가 없었다.

(두고보자. 얼마나 견뎌배기나…)

최일만은 속으로 리웅천을 윽별렀다. 자기와 맞서는자에게는 아무런 좋은것도 기대할것이 없다는것을 사람들에게 단단히 보여주고싶었다.

신철과 옥산은 처음부터 그 연회에 참가하지 않았다. 오래간만에 만난 그들은 누구도 모르게 대동강기슭으로 나왔다.

《그전처럼 또 강물에 포위되면 어쩝니까?》

옥산이 자라모양의 바위에로 다가가며 걱정하였다.

《내가 또 징검다리를 놓지요. 그러나 그런 행운은 기대할수 없을것 같습니다. 지금은 썰물시간입니다.》

두 사람은 대동강의 용용한 흐름을 지켜보며 저마다 생각에 잠겼다.

《그런데 수령님께서 어떻게 우리들의 일을 죄다 아시였을가요? 신철동무가 나쁜 놈들의 모해를 받고있다는걸 말이예요.》

옥산이 생각에 잠긴채 말을 꺼냈다.

《그분과 우리 제강소사람들은 특별한 관계에 있습니다. 한집안식솔이라 할가, 그이께서는 자주 우리 제강소에 나오시고 우리 제강소사람들은 별로 큰 일이 아니라도 그이께 편지를 올리거나 직접 찾아가서 사정을 말씀드리고 가르침을 받군 한답니다. 우리 제강소에는 그이와 깊은 연고관계를 맺고있는 오랜 로동자들이 많지요.…》

《참 놀라운 일이예요.》

두사람은 또다시 생각에 잠겨 말이 없었다. 그러나 그들에게는 그것이 조금도 어색하거나 괴롭지 않았다.

사랑이란 어찌 보면 순간의 불꽃에 의해 타오를수도 있고 땅속의 용암처럼 오래동안 가슴속 깊은 곳에서 끓고있다가 마침내 표면으로 분출할수도 있다. 잊을수 없는 수풍호반에서 한점의 불꽃으로 타오른 신철이와 옥산의 류다른 사랑은 세해남짓한 세월이 지나간 지금에 와서는 어쩐지 땅속 깊은 곳으로 잦아들기만 하는것 같았다. 하지만 그만큼 그 사랑은 진지하였고 깊이와 무게가 있었다.

《우리 강선이 간고한 행군길에서 첫 돌파구를 열었으니 조국은 또다시 큰 걸음을 내디딜것입니다.》

신철은 가슴을 쭉 펴며 힘찬 목소리로 말하였다. 표정이 순박하고 지어 어리숙해보이기도 하던 신철이였으나 볼수록 그의 다부진 체구와 사색적인 얼굴에서는 헌헌한 장부의 기개가 빛발쳤다.

《이제 복구건설이 끝나면 사랑하는 나의 조국이 참혹한 재더미를 헤치고 어떻게 일떠섰는가, 그속에서 어떤 위훈들이 창조되였는가를 보여주는 장편실화를 쓰겠어요. 어때요?》

옥산은 열정적으로 자기의 리상을 털어놓았다.

신철의 사색적인 얼굴을 홀린듯이 쳐다보는 처녀의 까만 두눈동자에서는 환희의 불꽃이 타오르고있었다.

《좋습니다. 절대찬성입니다.》

비약하는 조국과 더불어 리상에 불타는 두 젊은이의 머리우에서는 아름다운 노을이 붉게 타고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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