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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소설 푸른산악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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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강산
댓글 1건 조회 8,565회 작성일 20-05-19 2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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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

 

《그래요. 저는 장군님이시란걸 알았어요. 하지만 제가 어떻게… 무슨 낯으로 장군님앞에 나설수 있겠어요. 무슨 면목으로…》

마정옥의 눈귀에는 또다시 구슬같은 눈물방울이 맺혀올랐다.

황영숙은 흘러가는 강물만 내처 보았다.

아, 어쩌면 그 말 잘하던 처녀가, 생의 환희와 기쁨만이 차 넘쳐있던 처녀가 이처럼 변할수 있단 말인가…

김정숙어머님의 손목을 잡고 콩콩 뛰며 《사모님, 총을 쏴보세요. 나한테도 배워주세요. 약속했지요? 그럼 손가락을 걸자요.》라고 할 때의 그 예쁘고 사랑스런 모습앞에서 어머님도 장군님도 《금강산의 선녀》, 《금강산의 꽃》이라고 하셨다.

적기가 사라진 파아란 하늘에는 얼레구름만 감돌고 《상위동지의 머리카락 하나 상치 않게》하겠다고 하며 따라온 군단경비중대 하사관의 풀피리소리도 끊겨졌다. 오래동안의 기다림에 지쳤는지 아니면 밤경비근무를 생각해서인지 잠든것 같다. 황영숙과 마정옥이 앉아있는 스무나문m아래의 가랑나무우에는 그 하사관이 걸어놓은 군모가 바람이 불 때마다 한드적거린다.

황영숙이 마정옥의 입을 열게 하기전까지는 간단치 않았다. 처음에는 영숙을 알아보지도 못했다. 알고났을 때는 《언니》하며 기뻐 어쩔바를 몰랐으나 이모와 아이문제로 들어가자 입에 빗장을 질렀다. 부득불 장군님께서 걱정하셨다는 최현 군단장의 말까지 비치지 않으면 안되였다.

황영숙이 장군님과 김정숙동지를 모시고 금강산에 갔을 때 마정옥은 갓 학교를 마치고 배치된 19살나이의 관리원견습생이였다. 같은 처녀도 시샘이 날 정도로 곱게 생긴 처녀라 총각들한테 꽤 성화를 받으리라 생각했다. 아닐세라 마정옥은 입직첫날부터 모든 총각들의 눈길속에 있게 되였다고 했다. 직원들속에서는 더 말할것 없고 각처에서 모여 온 휴양생들속에서도 총각들이라 자처하는 사람들은 내남없이 그의 주위를 돌아치며 성화를 먹인다는데 그것만으로 끝나는것이 아니라 떠나가서도 이른바 사랑의 고백의 편지질로 그를 《꼬드겨》댔다. 개중에는 소설에서 베껴낸듯싶은 달콤한 미사려구들로 꼬여대는 편지도 있었고 함께 살았으면 좋겠다는 식의 소박한 애원이 있는가 하면 자기의 청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죽고말겠다는 식의 공갈담긴 편지도 있었다.

마정옥에게는 그 모든것이 우습기도 하고 재미나기도 하였다. 그러나 그것이 전부였다. 편지도 한동안은 받아읽다가 얼마후부터는 수신인주소만을 보고는 봉투채로 소각하고말았다. 이러한데는 어머니의 신칙이 크게 작용했다. 딸을 금이야 옥이야 하는 어머니는 그가 학교문을 나서기 썩전부터 남자들의 《본성》에 대한 교육을 줄기차게 했으니 한창때의 남자들이란 죄다 꽃피는 나이의 처녀들한테는 범이나 늑대와 매한가지라는것과 자기 가문의 녀자들은 대대로 절색인것으로 하여 한다하는 도련님들과 선비님들의 시달림을 꽤나 받았으나 부모들이 정한 혼처에 따라 절개 곧은 부인들이 되였으니 너 역시 외간남자들과는 눈 한번 마주하지 말고 고스란히 일만 잘하라는 신칙이였다.

그런데 거기에 파구가 뚫릴줄이야.

그때는 미처 몰랐지만 희멀끔한 얼굴이 어머니 말그대로 찍어진 《바람쟁이》인 장천일이 그앞에 나타난것이 시작으로 되였다.

도에서 보내오는 휴양소물자를 부리우던중에 우연히 알게 되여 인사성명을 나눌 때까지만도 순진한 사람으로만 알았다.

남들처럼 정옥의 얼굴을 걸탐스레 보는것이 아니라 얼굴이 벌개져 땅바닥만 보며 《장천일이라고 하는데 일루 자주 댕깁니다.》하고는 다른 사람에게는 활기있게 말을 주고받으면서도 그한테는 숫진 웃음만을 지어보이는것으로 그 순진성을 더욱 믿게 되였다. 그후에도 몇번 만났으나 변함없었다.

일이 잘못된것은 원산에 있는 경제전문통신생으로 입학한것이 시발이라고 할수 있었다. 어찌된 일인지 그가 통신수업을 갈 때면 장천일의 차가 휴양소에 와있었고 또 통신수업을 마치고 옥정면에 있는 집으로 갈 때면 부탁이나 받은것처럼 교정앞에까지 와 대기하고있었다. 좋았다. 안변, 금강, 회양쪽 동무들이 《정옥이 신세를 톡톡히 지는구나.》 하며 차에 오를 때면 좀 부끄럽긴 했으나 차를 보면 십리밖의 아이들까지 모여들 정도로 차가 귀한 때라 어깨가 으쓱해지는것도 사실이였다.

더구나 자기앞에서는 말 한마디 변변히 못하는 천일이가 다른 동무들앞에서 영화변사 못지 않다는것과 중학교도 채 못 다녔다는 그가 《마샬안》이 어떻고 《트루맨》이 어찌어찌한다는 말까지 할 때면 눈이 휘둥그래지게 되였고 동무들이 들고다니는 소설을 얼핏 보고는 이건 볼만 한거고… 저건 반동작가의 시시껄렁한 련애소설이요 하며 문학선생님도 울고 갈 정도의 분석을 할 때면 《대단한 동무로구나.》하고 우러르게까지 되였다.

그런데 이 《존경심》이 그에 대한 류다른 감정을 낳게 하고 결국 자신을 《망치게》까지 할줄은 몰랐다.

장천일이만 나타나면 저마끔 《추파》를 던지며 아양을 떠는 동무들때문이기도 했다. 장천일의 앞에서는 자기도 훌륭하고 아름다운, 그러면서도 친절한 녀성이 되기 위해 노력했다.

그날은 억수로 비가 쏟아지는 날이였다. 먼 친척집 녀동무의 결혼식준비로 그의 차를 얻어쓰게 되였다. 다음날이 일요일 휴식인데도 장천일은 선뜻 응해나섰고 자기도 부조를 한다고 갓잡은 가재미 열두두름을 차에다 실었다. 안변까지 이르렀을 때 장천일은 그전에도 자주 그런것처럼 길을 질러간다고 하며 멀리 에도는 다리쪽이 아니라 실개천이 흐르는 강변쪽으로 차를 몰았다. 물은 그때까지 크게 불어나지 않아 차는 쉽게 내천을 건넜는데 모래톱에 오를 때 차가 고장났다.

그가 기관실뚜껑을 제끼고 이것저것 뜯어보는 사이에 갑자기 불어난 물이 차바퀴를 잠그고있었다. 그때에야 장천일은 고장퇴치를 했다고 하며 운전실에 들어와 앉았다. 비에 홀딱 젖은 몸이라 정옥에게서 멀찌감치 떨어져 앉는 《시늉》을 했다. 그때는 고마왔다. 한데 비는 멎지 않고 점점 불어나는 물은 멀리 골짜기에서부터 안고 내려왔을 돌과 나무들을 굴리며 노호한 맹수처럼 별의별 흉한 소리를 내였다. 짙어가는 어둠속에서 번개가 번쩍이고 천둥이 울었다. 하늘을 헤가르는 번개, 시제라도 차를 뒤집어엎을듯 한 물결, 정옥은 혼이 빠질 지경이였다. 그런 속에서 남자와 단둘이 있지 말라던 어머니의 분부를 생각하게 되였고 이 광란하는 물과 천둥은 그를 어긴데 대한 징벌처럼 생각되였다.

장천일이 그의 심정을 알아차린듯 했다.

《너무 무서워 마오. 일기예보에는 얼마간의 소낙비만 내린다고 했으니까 지금 골물이 터져 이 모양인데 비만 멎으면 물도 인차 찔겁니다.》

허나 비는 멎지 않았다.

장천일은 번개가 번쩍일 때마다 정옥을 보았다. 정옥으로서는 그가 자기를 걱정하는것으로만 알았다.

《난 겁쟁이가 아니예요.》

그리고는 그것을 증명하려는듯 차창에 머리를 대고 잠을 청하는 흉내를 내였다. 장천일이도 지쳤는지 운전대에 머리를 박고 잠을 청하는듯 했다.

《정옥동무.》

그가 다시 머리를 쳐들었을 때 정옥은 오뜰 놀래였다. 그의 숨소리가 이상스럽게 들렸던것이다.

한데 그는 부르기만 했을뿐 한동안 그냥 지켜보기만 하다가 떨리는 소리로 입을 열었다.

《나늘 용서해주오. 사실 차의 고장이란 내가 거짓말을 한것입니다.》

《뭐라구요?》

《사실 난… 동무와 이렇게 단둘이… 그냥 있고싶어서. 정옥동무!》

화끈한 숨결이 얼굴을 지짐과 함께 정옥은 와들와들 떠는 손이 손목을 꽉 틀어쥐는것을 느꼈다.

정옥은 비명을 질렀다. 그리고는 난생 처음 남의 뺨을, 더구나 지금까지 우러러만 보던 그의 뺨을 호되게 후려쳤다. 그리고 문을 열어제꼈다. 그가 무섭게만 보던 물속으로 뛰여들려는찰나 장천일이 드센 힘으로 그를 나꿔챘다. 문은 닫겼다.

《잘못했소, 정말… 미안하오. 다신 안 그러겠소.》

장천일은 겁에 질린 목소리로 연신 그 말을 되뇌이고는 긴 숨을 내뽑았다.

정옥은 그가 더이상 덤벼들지 않으리라는것을 알았다. 그런데 이상스럽게도 눈물이 나왔다. 그동안의 무서움과 속히우고 모욕당했다는 서러움과 분함이 뒤섞인 눈물일것이였다.

지긋지긋한 고문과 같은 시간이 흘렀다. 장천일이도 매한가진듯 싶었다. 자주 하늘을 쳐다보며 불어난 물을 우울하게 바라보았다.

아직도 방어상태에서 그의 움직임에 신경을 쓰던 정옥은 그가 갑자기 문을 열어제끼는것에 깜짝 놀랐다.

《저런.》

장천일은 혼겁하여 웃옷을 벗으려다 말고 그대로 격랑쳐 흐르는 물속에 첨벙 뛰여들었다. 정옥은 그때에야 상류쪽에서 희슥한 《사람》이 허우적이며 떠내려오는것을 보았다. 그런데 세찬 힘으로 내리쏠리는 물속에서 장천일이도 나무토막한가지였다. 풀썩 쓰러지는가싶더니 몇바퀴 군 다음에야 다시 일어섰다.

《아이, 조심해요.》

정옥은 방금까지의 그에 대한 사무치는 증오도 다 잊었다. 한데 장천일은 《아이, 조심해요.》하는 그의 목소리에 원기를 얻었는지 허리까지 치는 물을 거슬러 그 《사람》쪽으로 계속 나가려고 버둥거렸다. 그런데 빠른 물살이 그 《사람》을 장천일쪽으로 날라왔다. 장천일은 엎어지듯 하며 그 《사람》을 안다가 놓아버리고말았다. 그 순간 《매애애》 하는 울음소리가 울렸다. 사람이 아니라 염소였던것이다.

장천일은 물에 뛰여들었을 때보다 더 힘들게 차에 왔다. 운전실 문턱을 잡고는 가쁜 숨을 내쉬다가 간신히 기여올랐다.

《상하지 않았어요?》

《아니, 괜히 놀라게 해서 안됐소.》

이때 시퍼런 번개불빛이 운전칸을 환히 밝혔다.

찢어진 바지, 드러난 무르팍은 살이 갈라져있고 바지 아래단으로 피가 흘러내렸다.

《상했군요.》

《일없소.》

그후의 일은 어떻게 벌어졌는지 기억에 분명치 않다. 부끄러움 없이 속치마자락을 찢은것과 그것을 다리상처를 싸맬 때 그의 살이 얼음처럼 찬것과… 불시에 그와 자기 몸이 달아올랐고… 떨어졌을 때 날이 밝은것을 알았다.

해가 한바장 길이나 올랐을 때에야 물에서 벗어났다.

내내 말없이 있었다. 한바탕 괴이한 꿈을 꾸고 난것만 같았다.

대사집에 이르렀을 때 장천일이 먼저 입을 떼였다.

《래일 동무네 집에 우리 어머니를 보내겠습니다.》

정옥은 그때에야 자기가 무슨 일을 쳤고 또 그가 무엇때문에 어머니를 보내려 하는가를 알고 소스라쳤다.

《그런 생각은 하지도 마세요.》

남 못 보는 숲속에 들어가 오래동안 울었다. 자기가 저주로왔고 장천일이 원망스러웠다.

어머니가 그처럼 타매하던 《천한년》이 되였다는것이 더 가슴을 아프게 했다. 그가 그려보던 장미색꿈의 사랑도 깨여졌다고 생각했다. 그에게서의 사랑은 그런 놀음이 아니였고 결혼과 가정이라는것은 먼 미래의 일이였었다.

한데 정옥의 속은 아는듯 모르는듯 장천일은 다음날도 그 다음날도 연신 나타났고 그때마다 혹독한 대접을 당하면서도 《진심》이요 《리해》요 하는 내용의 편지까지 계속 보내다가 《더 이상 그러면 죽고말겠다.》는 회답을 보낸 후부터야 발길을 끊었다.

그런데 아이가 생길줄이야. 어머니가 먼저 알아차렸다.

아, 무슨 욕인들 없었는가. 목을 매 죽으라거니 양재물을 콱 처먹으라거니 하던 끝에 남자집에 가자고 했다. 하나 정옥은 죽어도 그와는 살지 않겠다고 했다. 어머니는 못된 쌍년을 둔 팔자를 놓고 울고불고 한 끝에 어떠한 수단으로도 불어가는 배를 감출수 없게 되자 이모네 집에 숨어가 살라고 쫓아보냈다.

그런데 아이를 낳고보니 모든 생각이 180°로 달라졌다. 장천일과의 관계를 새롭게 따져보게 되였고 억수 퍼붓던 그날 밤부터의 모든것이 지어진 운명이라고 생각하였다. 장천일이를 그대로 닮은듯 한 아이의 모습을 새겨볼수록 그와의 관계가 단순한 《실수》라기보다 서로 좋아했던 감정의 폭발이였다고 생각되였다. 장천일이가 다시 나타나면 이 모든 생각과 느낌을 죄다 말하고 새 출발을 하리라는 결심과 그로부터 생겨나는 여러가지 공상과 꿈에 기쁜 웃음을 짓기도 했다. 허나 장천일은 나타나지 않았다. 그렇다 하여 먼저 찾아가 머리를 숙일 용기도 없었다.

그럴 때 전쟁이 터졌다. 정옥은 자기또래의 거의 모든 동무들이 군대에 나간다는것을 알게 되자 안절부절할수 없었다. 조국보위후원회에서 1급사격선수증을 탄 자기라고 볼 때 아이만을 붙안고있다는것이 죄스러웠다. 결국 그는 어머니의 타령으로 되는 《팔자》에 아이를 맡기기로 하고 군대에 나갈것을 결심하였다. 허나 이모때문에 갈수 없었다. 그가 집에 갔을 때부터 바오래기며 양재물같은것을 죄다 감춰놓고 걸음걸음 감시를 늦추지 않던 이모가 군사동원부에까지 따라와 훼방을 놓았던것이였다.

우울한 나날이 계속되는중에 전략적인 일시적후퇴소식이 들려오고 군당에서 빨찌산모집을 한다는것을 알게 된 그는 즉시적으로 입대청원을 했다. 이번에는 이모도 더 말리려 하지 않았다.

바로 그때 장천일이가 나타났다. 그는 어데서 어떻게 알았는지 아들을 보자고 왔다가 후퇴가 시작되니 함께 떠나자고 했다. 정옥은 때늦어 나타난 그가 얄미웠으나 속으로는 더없이 반갑고 기뻤다. 함께 떠나 함께 있고싶었다. 그러나 군당에서 입대승인까지 받은 형편에서 그 청을 물리칠수밖에 없었다. 후퇴가 끝난 다음 다시 만날것을 약속하고 헤여졌다. 그런데 그 약속이 무서운 후회와 아픔으로 될줄은 몰랐다.

재진공과 함께 고향에 돌아왔을 때 그는 장천일에 대한 끔찍한 소문을 듣게 되였던것이다.

(적을 도와주다니?!)

세상이 캄캄해지는듯싶었다. 독한 마음속에 아이마저 없어지면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이모네 집에 갔을 때 선뜻 안겨드는 아이의 맑디맑은 눈을 보자 생각이 달라졌다. 그동안 말라버린 젖까지 먹이고 또다시 군사동원부로 찾아갔다. 이번에는 사람들도 바뀌고 이모도 오지 않아 수나롭게 되였다. 빨찌산때의 공로로 받은 군공메달이 은을 냈다. 어디로 가겠는가라고 할 때 전선동부를 지키는 부대에 보내달라고 했다. 1차진공때 마산까지 갔다가 다리 한쪽을 잃어버린 군사동원부 일군은 무엇때문에 꼭 전선동부를 찾는가고 물었다. 정옥은 그때까지 남들에게는 거의나 비밀로 하고있던 장군님과 김정숙어머님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적들의 발길에 금강산이 어지럽혀져셔야 되는가 하는 그의 말에 그 일군은 못내 감심한 표정이 되여 2군단 대렬참모와 맞대면까지 시켰다. 이렇게 군복을 입게 된 그는 어머니와 이모에게 아들의 성을 자기의 성을 따 마가로 할것을 부탁하고 떠났다. 군사부일군에게서 그에 대해 상당히 깊이 료해를 한듯싶은 대렬참모는 그의 고향과 가까운 곳에서 고사총수로 되게 하였다.

처음으로 적비행기를 떨구었을 때 30리 떨어져있는 이모네 집을 찾아갔다. 없어지면 했던 아들을 진짜배기 제 아들로 훌륭히 키울 결심이 생겼던것이다.

(오직 나의, 나 하나의 아들이다!)

싸움도 더 잘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후날 홀어머니의 아들이라고 누가 숙본다 할 때 《우리 어머닌 영웅이야.》하는 말을 하게 하고싶었다. 그의 결심을 안 이모와 이모부는 지금까지 살던 집을 떠나 전쟁통에 수많이 생겨난 금강천 건너마을의 빈 집으로 자리를 옮겼다. 아들애의 걱정때문이 아니라 (이제는 마음으로도 충분했기때문에) 죽음을 표연히 대하는 정옥에게 아들이 호신부처럼 되리라 믿었기때문이였다.

진짜 그렇게 되였다. 정옥은 금강다리를 목표로 급강하하는 적기보다 고사총진지를, 바로 그를 노리고 달려드는듯 한 적기와 맞불질을 할 때 더 열을 올렸는데 그런 속에서도 아직껏 옷깃 하나 다치지 않았다.

그리고 이따금 아들을 보는것이, 아들이 조그마한 이로 젖꼭지를 아프게 깨물 때면 이상스러운 쾌감속에 얼어붙었던 가슴은 열리고 강시처럼 굳어진 마음의 상처도 아무는것 같은감을 체험하군 하였다.

오늘도 그는 또 한대의 적기를 쏴떨구었다. 지금까지 합하면 다섯대다. 비록 자기 혼자 쏜것은 아니라지만 이 역시 아들애한테는 후날의 긍지높은 자랑으로 될것이다.

이때문에 이모네 집으로 갔다. 그런데 한번 안겨든 아들애는 좀해 떨어지려 하지 않았다.

아들애도 아들애지만 이모는 《젊은 군대색시》의 밤길을 걱정하여 우격으로 따라왔다.

만약 그렇지 않았다면… 아, 얼마나 기쁨차 떳떳이 만나뵈웠겠는가.

그러나 이모의 잔등에 업힌 아들이, 아들로 하여 비껴드는 장천일의 음영으로 하여 그러질 못했다.

《무슨 면목으로…》

황영숙은 마정옥의 심정이 충분히 리해되였다그와 같은 처지에 있다면 자기 역시 장군님앞에 나설수 없을것이다. 장군님앞에서는 거짓말을 할수 없으니 아이에 대해서도 또 아이의 아버지에 대해서도 말씀드릴수밖에 없지 않을가. 그렇다면 장군님께서 어찌하실가. 실망이 크실것이다. 괴로움 역시 크시고…

황영숙은 오래동안의 침묵속에 망설이던, 마정옥의 가슴속상처를 더 짙게 할지 모를 물음을 입에 올렸다.

《동문 그 사람에 대해… 용서나 리해할 구석을 전혀 못 보았어요?》

《그건… 모르겠어요… 솔직한 말로 전 어느땐가는 그와 다시 이어질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적을 도와준것을 안 이상… 그를 어찌 남편으로 아니, 그보다 나의 아이에게 그런 아버지를 가지게 하는가 말이예요.》

《정옥이, 적을 날라준것은 동무도 말한것처럼 어쩔수 없는 부득이한 일로 봐야 하지 않아요. 과거의 그러루한 일들은 잊어버리라요.》

《언니… 제 하나가 그 일을 잊는다 해서… 그 죄행이 없어지나요?! 사람들도 조국도 그걸 잊지 않아요.》

황영숙은 무거운 마음으로 마정옥과 헤여졌다. 그에 대한 동정과 측은함으로 무거워드는 마음이였다.

(사랑? 사랑이란 도대체 무엇인가?)

로병관과 자기와의 관계를 생각해보기도 하였다.

(나도 그런 순간이 있어 《본능》에 질 때가 있을가?)

머리를 저었다. 자기는 물론 로병관도 절대 그러지 않을것이라는것으로 마음이 가벼워졌다.

(마정옥과 나에게는 공통분모가 있어. 이건 봉건적구속에서 벗어난 새로운 륜리적감정이라고도 봐야 돼. 녀성으로서의 자존의식, 이것은 중요한것이야.)

마정옥이 상대의 결함에 타협이 없는것처럼 자기 역시 로병관의 허점때문에 거리를 두게 된것이다.

 

어슬녘에 군단지휘부로 돌아온 황영숙은 직일군관으로부터 전방에 나갔던 최현이 이미 와있음을 알게 되였다. 흙다짐을 한 복도를 지나며 로병관의 방문을 곁눈질해보니 여전히 쇠가 채워져있었다.

최현은 방바닥에 통신선으로 된 《그물》을 펼쳐놓고 련결점들을 쓸어보고있었다.

영숙은 이 《그물》이 통신병들의 발명품으로서 쏘구역에 설치되게 될 통신선이라는것을 알고있었다. 이러한 통신선은 포탄이나 폭탄에 《그물》채로 날아나지 않는 한 통신을 원만히 보장할수 있을것이였다.

최현은 왜서인지 시무룩한 기색이였다.

지난밤만 해도 마정옥의 일을 알아보는것이 그 무슨 중대사인것처럼 관심을 보이던 그는 이야기가 마정옥의 《실수》건에 이르러서야 흥미를 보였다.

《그러니 마정옥이 장천일의 처란 말이냐?》

《처라기보다… 한데 장천일을 알고계십니까?》

《안다. 장천일에 대해서는 장군님께서도 말씀이 계셨다.》

최현은 뭔가 더 말할듯 하다가 뜻밖의 질문을 했다.

《건… 거구, 넌 로병관이를 어떻게 보니?…》

《어떻게 보다니요?》

영숙은 눈이 올롱해졌다.

최현은 이마살을 찌프렸다.

《넌 이제 검찰소장동무의 방에 가보거라.》

《?…》

《거긴엔 지금 검찰국동무가 나와있다. 로병관동무한테 무슨 제기되는것이 있다는데 가서 그와 담화를 하거라.》

《그럼 로병관동지한테 무슨 문제가?…》

《가서 네가 보고 느낀 그것을 사실대로, 주대있게 말하거라.》

황영숙은 가슴이 얼어들었다.

《군단장동지, 무슨 문젭니까?》

《너무 걱정말아. 붙잡아가겠다고 하는데 그렇겐 못할게다.》

최현은 로병관의 문제때문에 1211고지에서 떠나왔다. 로병관이며 포병부일군들과 함께 직사포설치지점을 결속지을데 대하여 말하고 차에 올랐다.

검찰국 부국장은 기다리던 로병관이 대신 최현이 나타난것으로 하여 몹시 당황해하였다. 성이 독같이 난 최현을 보자 자기의 딱한 처지부터 말하였다.

현행으로 적발된 문제가 아니지만 군사위원회 위원이며 사법상인 리승엽동지의 지시와 그가 준 자료를 근거로 검속하게 되였음을 말하며 전선사령관의 동의까지 받았다는것을 강조했다.

《전선사령관까지?… 그래 검속리유는 무스게요?》

《기본은 적들과의 내통건입니다. 리승엽동지가 보내온 문건에 의하면 우리측의 최근 작전기밀들이 대부분 로병관에 의해 적들에게 넘어갔다는것입니다.》

최현은 얼음물을 뒤집어쓴듯 했다.

《근거가 있소?》

《그건 이제 확인해보려고 합니다.》

《여보, 도대체 당신이 조선인민군 검찰일군이 맞소? 근거도 없이 리승엽의 정보가 어찌어찌하다 해 잡아가겠다는것이 말이 되오?》

《근거로 되는 자료들이 있습니다.》

《있다?!…》

《그렇습니다. 자료에 의하면 그의 친구된자가 지금 밴플리트의 보좌관으로 있다고 합니다. 로병관과 적들과의 관계는 바로 송우인이라고 하는 그 <한국>군 보좌관의 첩자와 선이 닿아있다는것으로 되여있습니다.

리승엽동지의 정보선에서 알아낸 자료에 의하면 이미 로병관은 해방직전부터 미국에 충실할것을 서약하고 해방직후에는 웨드마이어사령부로 가게 되였으나 바로 오늘같은 전쟁을 예견하여 우리 군대 내부에 깊숙이 잠입할 과업을 받았다고 합니다.

그 송우인이라는자와 로병관의 밀연관계에 대해서는 전선사령관동지도 사실임을 확인하면서 자기는 이미전부터 로병관에 대해 의문시했다고 합니다. 특히 대우산전투의 전반과정과 그중에도 세개군단산하투입작전비밀이 적들에게 새여나간것을 놓고 로병관을 더욱 의심하게 되였다고 합니다. 그 비밀을 작전조직전에 알고있은 사람은 자기와 박일우, 로병관 세사람뿐이였다고 합니다.》

최현은 굳어졌다.

《그뿐만아니라 평화시기의 로병관의 행동에서도 의심스러운 점이 한두가지가 아닙니다. 당시의 그의 인맥관계를 보면 부유집안의 녀성들과의 교제가 많았고 지어 씨아이씨계통의 녀자간첩과는 치정관계까지 있었다는 자료도 있습니다.》

최현은 오리무중속에 빠졌다.

《그러한 사실을 최고사령부에서도 알고있소?》

《보고되였을겁니다.》

최현은 고개를 떨구었다.

검찰국 부국장의 눈에 승리자연한 빛이 도는것을 느끼며 주먹으로 책상을 후려치고싶은 심정이였으나 감정과 기분으로 대처할 문제가 아니였다.

《난…》

그는 무겁게 입을 떼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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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산님의 댓글

강산 작성일

(위에서 계속)

《장군님께서 결론이 있을 때까지는 그의 검속을 허락하지 않겠소.》

《그러시면 안됩니다. 이건 어느 한사람의 운명문제라기보다 전반작전의 운명과 관련된 문제라고 봐야 합니다.》

《여하튼 난 동무네한테 그를 넘겨줄수 없소.》

《군단장동지, 그건 월권이고 위법행위입니다.》

《위법?… 허.》

최현이 매서운 눈길로 그를 쏴보았다.

《여보, 내 보기엔 그 사람은 간첩은커녕 그 꼬리잡이도 안할 사람이요. 나는 한달기간을 통해 그를 파악하고있소.》

《한달동안에 그 인간전체를 알수 있습니까?》

《한달이 아니라 한두시간이라도 다 알수 있지. 그리고 동무가 말하는 평화시기의 그 어찌어찌했다는 사실에 대해 정확한 판별을 할 사람, 거 동무네로 말하면 증인이라는 사람들도 있소.》

《그게 누굽니까?》

《한 사람은 부상당해 군의소에 있고 또 한사람은 최고사령부에 있다가 내려온 우리 군단 변신참모요.》

《저… 황영숙이라는 녀동무이지요?》

《그렇소. 두루 그런 사람들을 만난 다음… 다시 더 할 소리가 있으면 그때 또 만납시다.》

최현은 해쓱한 얼굴로 문밖을 나가는 영숙을 보며 이 모든 사실을 되돌이켜보았다.

(옳은가, 그른가.)

머리가 터져나갈듯 했다.

 

칼칼한 얼굴에 세모진 눈, 말투는 부드러웠다.

《이렇게 오라고 해서 안됐습니다.》

검찰국 부국장은 친절한 태도로 영숙에게 의자까지 권했다.

영숙은 새가슴처럼 뛰는 가슴을 진정시키려 애쓰며 《인정》과 《리해심》이란 꼬물만큼도 엿보이지 않는 부국장의 얼굴을 찬찬히 살피고 책상우에 눈길을 떨구었다. 인즙통과 백지, 그 앞에는 만년필이 놓여있었다.

《우린》

부국장은 이렇게 운을 떼였다.

영숙은 이 방안에 누군가 또 있는가 살폈으나 그밖에 없었다.

《동무가 일찍부터 혁명의 길에 들어섰고 경애하는 최고사령관동지의 각별한 신임을 받고있는 당원군관임을 잘 알고있습니다.

때문에 우린 동무에게 커다란 기대를 걸고있습니다.

이제부터의 담화는 혁명가적량심, 혁명가적원칙이 검증되는 계급투쟁과 같다는것을 명심해주오. 동문 로병관과 어릴적부터 알고있는 사이지요?》

《네, 한고향, 한마을에서 이웃하고 지냈습니다.》

《그리고 동문 그와… 실례합니다만 사랑하는 사이지요?》

《그런 사생활문제와 계급투쟁과 무슨 인연이 있습니까?》

《필요해서 묻는거요.》

칼칼한 얼굴이 쇠쪼각처럼 보였다.

그는 가방에서 얄팍한 문서철을 꺼내 몇장 번지다가 다시 온화한 목소리로 말을 떼였다.

《기분에 거슬릴수 있겠지만 감정을 앞세우지 말고 하나하나 심중히 생각하며 대답하시오. 먼저 동무에게 알려주려고 하는것은… 로병관은 우리 대내에 숨어든 계급적원쑤, 미제의 고용간첩이라는것입니다.》

이 말에 영숙이의 표정이 어떠했는지 부국장은 날렵한 동작으로 일어나 물병의 물을 고뿌에 찌워 가져왔다.

영숙은 눈앞이 캄캄한 속에서도 그가 권하는 물고뿌를 보았고 또 그것을 침착히 되밀어놓을수 있었다.

그리고 자신으로서도 놀랍게 되물었다.

《그가 언제 어떻게 고용간첩이 되였습니까?》

《그건 우리가 필요한 경우 알려줄수 있습니다. 지금은 동무가 알고있는 범위내에서 그자의 숨은 정체를 더 깊이 알아보려고 합니다.》

《부국장동지, 제가 알고있는 한에서 그는 언제 한번 우리의 계급적원쑤, 더구나 미제의 간첩이 된적이 없다는것입니다.》

《동무, 지금의 담화는 동무의 계급적립장과 태도까지를 결정짓는것이라는걸 잊지 마오.》

부국장은 차거운 눈길로 한동안 쏴보다가 다궃는 소리로 말했다.

《우린 동무가… 그와 가까운 관계로 있으면서도… 뭔가 망설이고있다는것까지 알고있소. 그걸 우리는 좋게 보오. 바로 그건 동무가 그에게서 퀴퀴한 냄새를 맡았다는, 그때문에 거리를 두고있다는것이 아니겠소.》

《전… 그한테서… 퀴퀴한 그 무엇도 느낀것이 없어요.》

《허, 이 동무가. 그래 동문 그 로병관이 너절한 처녀들의 치마폭속에 휘감겨 돌아간것까지 다 좋게 본다는것이요?》

《그것과 퀴퀴한것이 무슨 관련이 있습니까. 그리고 치마폭에 휘감겨 돌아갔다는것은 과장된 모독입니다. 처녀들이 그를 따른다 해서… 퀴퀴하다 뭐다 하면 이 세상 괜찮은 남자들은 모두 퀴퀴한 인간이라는 말이 아닙니까.》

《그럼 한가지 또 물읍시다. 동문 청산당한 자본가의 딸인 무용강습소 리 아무개라는 처녀와 그와의 불륜한 치정관계도 깨끗한것으로 봅니까?》

《치정관계는 없었어요. 그 녀자가 세번 로병관동지를 찾아왔다가 정문접수에서 두번 만났습니다. 그러나 그 두번째가 마지막으로 되였습니다.》

《동문 어떻게 되여 그것까지 다 아오?》

《전 로병관동지에게서 그 모든 사실을 구체적으로 들었습니다. 그에게 뭔가 잘못된 점이 있다면 찾아오는 녀성들에게 모질지 못한것이라고 할수 있지만 련정을 안고 찾아오는 사람을 무작정 쫓을수야 없지 않습니까.》

《영숙동무, 그 리 아무개라는 녀자가 어떤년인지 아오? 씨아이씨간첩이였소. 그 녀자는 바로 로병관과 치정관계를 가지면서 서로의 임무를 수행한것이요.》

《그럴수 없습니다.》

《동문 그걸 뭘루 증명할수 있소?》

《그는 저에게 거짓말을 모릅니다. 저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에게도 매한가지입니다. 전 그가 깨끗하고 솔직한 인간이라는것으로… 믿습니다.》

《그 말에 책임질수 있소?》

《네.》

《한가지 더 묻기요. 동문 최고사령부에 있었으니만치 군대내의 일부 일군들이 최고사령관동지의 방침사상과 어긋나는 <기동전>을 계속 고창해왔다는걸 알고있겠지요?》

《알고있습니다.》

《그렇다면… 로병관동무가 바로 <기동전>바람의 앞장에 서있는데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오?》

《…》

《말하오.》

《저한텐… 그것이 가슴아픈 일입니다.》

《그렇지, 바로 그거요. 그가… 머리가 잘 돌고 또 동무말대로 깨끗하다면 그가 무엇때문에 최고사령관동지의 의도와 저촉되는 <기동전>을 계속 벌렸겠는가.》

영숙은 선뜻 대답을 못했다. 자기가 로병관을 경원시하게 된것 역시 이 부국장의 말대로 로병관이 처녀들의 추파에 외면하지 않았다는것과 바로 《기동전》바람에 흔들린것때문이였음을 생각지 않을수 없었다.

《이젠 편견없이 말합시다. 처음부터 다시 그에 대해 잘 생각해보고… 말하기 어려우면 이 종이에 쓰시오.》

검찰국 부국장은 인즙통옆에 놓인 종이장과 만년필을 그의 앞에 밀어놓았다.

영숙은 인즙통과 종이장을 엇갈아보며 이것이 이른바 법적성격을 띠게 될 문건이라는것을 알았다. 오만가지 생각이 고패쳤다.

장천일을 두고 하던 마정옥의 말도 생각했다.

《…사람은 다 완성되지 못한 이상 순간의 실수도 있을수 있지 않아요… 제 하나가… 그 일을 잊는다 해서… 그 죄행이 없어지나요?! 사람들도 조국도 그걸 잊지 않아요.…》

신통히도 지금의 자기 처지를 생각해 한 말같다.

그렇다면 로병관에 대해 나의 견해는 어떠한것인가. 만약 그가 부국장의 말대로 《원쑤》라면…

영숙은 입술을 꼭 깨문채 만년필을 집어들었다.

장군님께서 로병관에 대해 하시던 말씀을 상기해보며 정신을 도사렸다.…

그의 손에서 종이장을 받아 반페지 넘게 쓴 글을 두세번 훑어보고난 검찰국 부국장은 한동안 아연한 얼굴로 굳어져있다가 날카롭게 영숙을 쏘아보았다.

《동문 이렇게 쓴데 대한 책임과 후과를 생각해봤소?》

《그에 대해선… 생각하지도… 생각하고싶지도 않습니다.》

《동문… 그를 진심으로 사랑하는가?》

차디찬 물음이였다. 영숙은 최후의 의지력으로 그를 맞바로 보았다.

《필요하다면… 그를 사랑한다는 말도 쓰겠습니다.》

《이건 놀음놀이가 아니요.》

《알고있습니다.》

《그럼 이밑에 이름을 쓰고 지장을 찍소.》

영숙은 자기가 쓴 글을 다시 읽어보았다.



《기동전》으로 인한 로병관동지의 오유는 두번다시 회복할 길 없는 엄중한 실책이라고 봅니다.

그러나 경애하는 최고사령관 김일성장군님께서는 로병관동지의 실책을 너그럽게 용서해주셨습니다. 저는 이에 대해 그라는 인간전체에 대한 믿음과 사랑으로 받아들였습니다. …

저는 장군님의 믿음과 사랑을 받아안은 전사에게는 배신과 변절이 없다는것을 굳게 믿습니다.

이것은 저의 생각만이 아니라 그의 맹세이고 결심이기도 합니다.

뿐만아니라 저는 로병관동지와의 오랜 상종을 통해 그가 깨끗하고 고지식한 인간이라는것을 법과 군률앞에 엄숙히 보증합니다.

제가 알건데 깨끗하고 고지식한 인간은 절대로 원쑤의 편에 설수 없습니다.…

 

영숙은 입술을 꼭 사려문채 정자로 이름을 박아쓰고 부국장의 요구대로 엄지손가락에 인즙을 묻혀 종이에 찍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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