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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소설 번영의 길 제33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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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강산
댓글 1건 조회 6,028회 작성일 20-03-29 1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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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한생을 살아가느라면 예상치 않았던 일에 많이 부닥치기마련이다. 그 예상치 않았던 일에는 행운도 있지만 뜻밖의 불행도 적지 않다. 하기에 사람들은 언제나 뜻밖에 들이닥치는 그 어떤 불행에도 맞설 준비를 가다듬어야 하고 그것을 뚫고나갈 각오도 다져야 한다. 그것이 바로 생활이고 인생인것이다.

옥산은 지금 오빠가 집에 들어오기를 이제나저제나 기다리면서 강선에서 벌어지고있는 사태를 되새겨볼수록 신철이나 리웅천이 겪고있는 불행이자 자기의 불행이나 다름없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이 불행을 타개하고 모든 일이 잘 되도록 자기가 나서서 끝까지 해명하리라 강심을 먹었다. 옥산은 그 첫걸음으로 이번의 강선사건에 깊숙이 개입된것이 분명한 오빠한테서 사태의 진상부터 똑똑히 알아야 하겠다고 결심했다.

옥산은 마당에서 오빠의 잔 기침소리가 들려오자 얼른 방문을 열었다.

《인제 오세요?》

그는 오빠의 가방을 받아들며 상냥하게 맞았다. 한윤호는 미심쩍은 눈길로 동생을 흘낏 쳐다보았다. 그것이 동생과 나눈 인사의 전부였다.

그들은 밭은 혈육이 없는 남매사이임에도 불구하고 서로가 자기맡은 일에 골몰하다보니 집에 들어와서도 별로 이야기를 나누는 일이 없었다. 한윤호가 퇴근하여 집에 돌아오면 옥산은 오빠가 온줄도 모르고 웃방책상에 마주앉아 정신없이 글을 쓰기가 보통이였다. 그러던 옥산이 전에없이 가방까지 받아들며 삽삽하게 구는데는 한윤호로서는 자못 의아스럽기도 하였다.

《식사를 하자요.》

동생이 이렇게 말하자 한윤호는 그 말을 확인이나 해보는것처럼 아래방을 내려다보았다. 아래방에는 흰 보자기를 씌워놓은 음식상이 놓여있었다.

그들은 간소하게 차린 저녁식사를 간단히 하고 서로 물러앉았다.

《출장갔던 일은 잘됐어요?》

옥산은 강선문제는 잠간 뒤로 미루고 흥남지구에 출장갔던 일부터 물었다.

《응.》

입이 무거운 한윤호는 긍정인지 부정인지 알지 못할 모호한 코맹맹이 소리를 내고는 주머니에서 담배곽을 꺼냈다. 옥산은 재빨리 웃방으로 올라가 재털이를 들고 내려왔다. 어떻게 하나 오빠가 웃방에 올라가는 시간을 늦추어야 했다. 오빠가 웃방에 올라가 사이문을 꾹 닫아버리면 철문을 열기보다 더 힘들다는것을 옥산은 잘 알고있었다. 그러니 오빠가 웃방으로 올라가기전에 사태의 진상을 알아내야 했다.

《흥남비료공장에도 들렸댔어요?》

옥산은 다시 물었다. 흥남비료공장을 취재해서 기사를 쓴적이 있는 그는 그 공장복구가 몹시 궁금하였던것이다.

《응.》

한윤호는 담배를 피워물며 역시 이번에도 모호한 대답만 하였다.

《복구가 잘돼가는가요? 듣자니 질안계통은 아직 설계도 되지 않았지만 류안계통복구는 잘돼간다더군요.》

《잘돼?》

한윤호는 의외로 날카롭게 반응하며 얄팍한 입술에 랭소를 지었다.

《왜요?》

《정준택이면 별수 있다든. 수판알이나 튀기던 사람이…》

옥산은 흥남비료공장복구에 대해서는 그이상 더 묻지 않기로 했다. 근래에 와서 오빠가 정준택을 몹시 미워한다는것을 감촉하고있었다. 그래서 정준택이 맡은 화학공업부문이야기를 가지고 오빠의 기분을 거슬리며 시간을 끌고싶지는 않았다. 그러지 않아도 그는 신철의 문제를 빨리 입에 올리고싶어 견딜수 없었다.

《강선제강소 분괴압연직장 복구공사가 중지된 사실을 알지요?》

한윤호는 대답대신 옥산의 까만 눈을 펀히 마주보았다.

옥산은 우리 나라에서 다섯손가락안에 꼽힌다는 유능한 가죽이김공을 찾아낸후 바킹감으로 쓸 가죽제품완성을 도와주느라고 밤낮없이 뛰여다녔고 하루가 멀다하게 한윤호한테 가죽가공에 필요한 시약들을 요구하였다.

한윤호는 대뜸 동생이 또 그러루한 요구를 들이댈것 같아 눈살부터 찌프렸다. 그러나 옥산의 표정에 지금까지 본 일이 없는 의미심장한 빛이 떠오르는것을 보고 그는 저도모르게 긴장해졌다.

《분괴압연직장 기사 신철동무가 잡혀간 사실을 알지요?》

옥산은 직방 들이댔다. 그는 이쯤만 말해도 오빠가 어지간히 놀랄줄 알았는데 놀라기는커녕 전에없이 입을 삐죽거렸다. 이런 사실들은 오빠가 신철의 문제에 대하여 이미부터 알고있었다는것을 의심할나위없이 증명해주고있었다.

《그 동무가 어데 갔어요?》

옥산은 흥분할 때 그렇게 하듯이 머리를 홱 제끼며 앞으로 흘러내린 머리칼을 왼쪽귀너머로 흘 넘기였다. 그리고는 머리를 흔들며 한손으로 굽이쳐 넘어간 머리칼을 간종그렸다.

《갈데로 갔지.》

《갈데란 어디나 말이예요.》

옥산의 목소리는 거칠게 울리였다. 그는 속에서 부글부글 피여오르는 격분을 참아낼수 없었다.

《네가 알바 아니다.》

오빠의 목소리는 오히려 잦아드는듯 차분하고 침착하였다. 그것이 옥산의 부아를 더 돋구었다.

《난 알아야겠어요.》

옥산이 소리쳤다.

《알겠다면 대주지. 법기관이다.》

《법기관? 뭐 신철동무가 누구와 작당해서 어느 나라의 비밀도면을 훔쳐 어디다 넘겼다고? 목숨을 걸고 전기로에서 폭탄을 해제한 사람을 간첩이라고?》

《목숨을 걸고 폭탄을 해제했다고? 녹쓴 파편덩이도 폭탄이냐? 하기야 폭탄이라면 폭탄이지.》 한윤호는 빈정거렸다. 《명심해 둬. 사람마다 위장술이 여러가지라는걸.…》

《위장술?》

옥산은 졸지에 말문이 막혀 커다란 입을 벌리고 오빠의 깨고소해하는 길죽한 얼굴을 쏘아보았다. 지금까지 남매는 한집안에서 살면서 10살도 넘는 나이차이때문인지 별로 다투어본 일이 없었고 밭은 친척하나 없는 조국에 나와서는 더구나 그런 일은 여태껏 한번도 없었다.

그러나 언제부터인지 신철의 이야기만 나오면 두 사람사이에 마찰이 일고 이따금 언쟁을 하게 되는것이 옥산이로서는 남모르는 커다란 고충거리였다.

옥산은 흥분으로 온 몸이 달아올랐으나 오빠와 다투어서는 안되겠다고 생각하고 가까스로 마음을 눅잦혔다. 다투는 방법으로는 아무것도 해결할수 없다는것을 총명한 그는 재빨리 의식했던것이다.

《오빠!》

옥산은 어리광부리듯 오빠앞에 바투 다가앉으며 사정하기 시작하였다.

《절 도와줘요. 신철동무문제는 반드시 공정하게 해결해야 해요. 이건 리웅천동지와도 관계되는 문제예요.》

《공정하게 해결할 사람은 너 아니라도 많다.》

오빠의 랭담한 태도는 조금도 달라지지 않았다. 아니, 오빠의 말과 표정에는 점점 독기가 서렸다.

《아니, 그렇지 않아요. 신철동무에 대하여 잘 아는 사람은 나밖에 없어요. 난 그동무를 나처럼, 아니 나자신보다 더 잘 알아요.》

《혹 너 그 사람을 사랑하는건 아니냐?》

한윤호의 표독스러운 눈길이 동생을 노려보고있었다.

《사랑한다면 어쩔테예요?》

옥산은 여느 사람이라면 몸서리를 칠 오빠의 송곳눈을 태연자약하게 받아들이며 대답했다.

사실 25살 미모의 처녀에게 지금까지 호감을 주는 남성이 전혀 없었다고 하면 거짓말일것이다. 그가 성장하고 대학까지 마친 그 나라에도 얼굴 잘 생기고 훌륭한 교육을 받았으며 불같은 열정을 지닌 좋은 청년들이 적지 않았다. 그러나 그들은 옥산이의 마음에 차지 않았다. 그들에게는 무엇인가가 부족하였다. 옥산은 신철을 깊이 알게 될수록 지금까지 그들이 자기의 마음에 차지 않은것이 무엇이였는가를 깨닫게 되였다. 그것은 티없이 순결한 조국에 대한 사랑이였다. 고향의 바다가에 널린 하나의 자그마한 조약돌을 손에 놓고 눈물을 짓는가 하면 서슴없이 목숨을 내대고 폭탄을 해제하던 청년이 이제 와서는 옥산에게 지워지지 않는 모습으로 머리속에 깊이 새겨졌다.

그런데도 오빠는 그것을 인정하려 하지 않았고 보려고도 하지 않았다.

《안된다!》

한윤호가 한손으로 밥상을 탕 치며 새된 소리를 질렀다.

《그건 오빠가 간섭할 일이 못되요.》

이번에는 반대로 옥산이의 목소리가 한결 누그러졌다.

《간섭하겠다. 간섭하겠단말이다.》

한윤호는 악에 받쳐 씩씩거렸다. 옥산은 자기가 신철이를 사랑한다고 내놓고 말하면 말할수록 오빠가 피동에 빠져 어찌할바를 모르고 안절부절못한다는것을 깨달았다. 이것이야말로 동생을 사랑하는 오빠의 약점이였다.

《오빠, 그러지 말고 이 동생을 도와주는셈치고 신철동무 문제를 해결해줘요.》

옥산은 오빠의 여린 감정에 호소하였다. 아니나다를가 오빠의 살기등등하던 눈길이 조금 풀어졌다.

《안된다. 그건 내 힘으로는 어찌할수 없는거야.》

《그럼 누구의 힘이면 되요?》

《대주어도 어쩌지 못해.》

한윤호는 또 고집을 부리기 시작하였다.

《하여튼 대주세요. 오빠, 누구예요?》

《모른다.》

오빠는 얄팍한 입술을 꼭 다물었다. 이쯤되면 오빠한테서 그 무엇도 기대하기 어렵다는것을 옥산은 잘 알고있었다. 그는 다시 약이 올라서 자리에서 발딱 일어났다.

《오빠가 대주지 않으면 모를줄 알아요? 그 사람은 최일만이지요? 그 사람이 뒤에서 꾸미는 놀음이지요?》

옥산은 마구 내쏘았다.

《얘 얘, 너 무슨 그런 소리를 하느냐?》

오빠의 얼굴이 순간에 백지장처럼 해쑥해졌다.

한윤호는 최일만이 자기 사무실 웃층에 도사리고앉은 다음부터 말할수 없는 중압감을 느꼈고 그를 몹시 두려워했다. 하기에 그는 동생이 최일만에 대하여 아무렇게나 탕탕 내뱉는 말을 막으려고 한팔을 다급히 내젖기까지 하였다. 그러거나말거나 시위하듯이 앞가슴을 내밀고 그우에 두팔을 얹은 옥산은 통쾌한 눈길로 오빠를 내려다보고있었다.

《최일만, 그 사람은 음모군이예요. 음모군.》

옥산은 자신만만하게 주장했다.

《얘 얘, 너 무슨 큰 일을 칠 그런 소리를 탕탕…》

《난 다 알아요.》

《뭘 다 안다는거냐?》

한윤호는 동생의 말을 막으려고 사정하다싶이 풀이 죽은 목소리로 말했다.

《다 알지 않구요. 내 눈은 속이지 못해요.》

옥산은 장담했다.

《너 무슨 그런 얼토당토 않는…》

《흥, 얼토당토 않다구요? 전번 흥남에 내려갔을 때 바다가에서 그 사람과 찌모힌이 쑥덕공론을 하는걸 다 봤어요. 강선제강소의 누구인가 동향이 어쩌고 저쩌고 하면서…》

《얘얘, 누가 듣겠다.》

한윤호가 말이 더 번져질세라 애원했다.

《듣겠으면 들으라지요.》

《그 사람은 무서운 사람이다. 법기관의 요직에도 친구들을 가지고있어.》

《가지고있으면 가지고있으라지요. 난 조금도 무섭지 않아요.》

《됐다됐어. 그 얘긴 이젠 그만하자.》

《그만할수 없어요. 신철동무문제를 해결하겠어요 어쩌겠어요?》

옥산은 오빠를 궁지에 몰아넣고 련속 다그어댔다.

《내 말하지 않니. 내 힘은 약하다고…》

《좋아요. 그렇다면 내가 힘이 세다는 그 사람을 찾아가겠어요.》

옥산은 이 말을 할 때까지도 자기가 최일만을 찾아가리라고는 전혀 생각지 못했다. 그러나 오빠를 굴복시켜보려고 위협적으로 웃방으로 올라가 책상우의 손가방을 들고 문밖에 벗어놓은 신발까지 찾아신자 내가 최일만을 만나고싶으면 만나는것이지 만나지 못할 리유가 무엇이겠는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옥산은 본래 그런 면에서 담대한 처녀이기도 하였다. 하기에 한윤호가 마당에까지 따라나서며 동생을 붙잡으려고 했으나 이제는 벌써 옥산을 그 어떤 수단과 완력으로서는 제지시킬수 없었다. 물론 옥산이로서는 최일만에게 매달리는것이 전혀 내키는 일은 아니였지만 신철을 위해서는 현재 그 길밖에 없으므로 어쩔수가 없었다.

옥산은 국가계획위원회청사 3층에 있는 최일만의 방에 전기불이 환희 켜진것을 보고 내가 왜 저 사람을 만나볼 생각을 진작 하지 못했을가 하고 도리여 이상한 생각이 들 정도였다. 그는 최일만이 자기를 언제나 호의적으로 대하고있다는것을 알고있었다. 지어 나이와 직책, 체면에 어울리지 않게 자기를 정도이상으로 호의적으로 대해주어 옥산이가 되려 얼굴을 붉힐 때가 있군 하였다. 최일만은 이번에도 그런 정도이상의 호의를 가지고 옥산을 맞았다.

《오, 옥사나. 무슨 바람이 불어 이밤에 여기까지 날아들었소?》

최일만은 뚱뚱한 몸을 운동선수처럼 가볍게 놀리며 출입문 있는데까지 마중와서는 옥산의 맨살이 드러난 팔목을 두손으로 감싸쥐고 쏘파에로 이끌었다. 옥산은 진득진득한 땀이 내밴 살진 그 손아귀에서 팔목을 뽑고싶었으나 최일만이 집게처럼 어찌나 꽉 조이는지 그렇게 할수 없었다. 옥산은 그의 무례한 행동이 매우 불괘하고 모욕적이였으나 꾹 참고 쏘파에 조용히 앉았다. 신철을 위해서라면, 그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는 일이라면 그 어떤 굴욕도 달게 감수하리라 이미 굳게 마음다진 그였다.

최일만은 옥산이 모두어 세운 무릎우에 윤기가 흐르는 자그마한 손가방을 올려놓고 가방끈을 접었다폈다하는것을 호기심을 가지고 내려다보았다. 처녀가 몹시 흥분하고있다는것이 알렸다.

《전 얼마전에 강선에 나갔댔습니다. 강선제강소에 말입니다.》

옥산은 이렇게 말꼭지를 떼고 잠시 숨을 돌리였다. 옥산의 옆에 앉은 최일만은 자못 호기심을 가지고 다음말이 이어지기를 기다리고있었다.

《저는 강선의 로동계급속에서 많은 감동적인 사실들을 직접 보았고 또 듣기도 했어요. 그곳 로동계급은 자기들이 전후복구건설의 돌파구를 열어야 한다고 하면서 그야말로 눈부신 위훈을 창조하고있었습니다. 온갖 곤난을 극복하면서 말이예요. 잘 먹지도 입지도 못하면서 조국의 미래를 위해 그 모든 어려움을 묵묵히 참고있었어요. 전 큰 감동을 받았습니다.》

옥산은 처음에는 말이 잘 되지 않아 더듬기까지 했으나 차차 용기가 나면서 말도 술술 잘 나갔다.

《역시 옥사나는 센지멘탈리스트야, 센지멘탈리스트.》

옥산의 말을 잠자코 듣고있던 최일만이 갑자기 감탄을 련발했다.

옥산은 벙벙해서 노상 빙글거리는 최일만의 너부죽한 얼굴을 빤히 지켜보았다.

《옥사나는 언제보나 센지멘탈이거든.》

최일만이 다시 탄복하자 옥산은 비로서 그의 감탄이 자기가 하는 말의 내용보다는 순수 자기의 웅변술에 있다는것을 알아차리고 실망했다. 최일만은 마치도 거리구경을 나갔던 철부지소녀가 어른들앞에서 어른들이 알고도 남는것을 신이 나서 자랑할 때 대견하게 들어주는 그런 식으로 벙글거리며 옥산의 말을 듣고는 연송 감탄했던것이다.

《전 용접봉조차 없어서 그것을 자체로 만들어내느라고 242번의 시험을 했다는 말을 듣고 깜짝 놀랐어요. 그리고 그 242번의 시험을 보장한 한 처녀의 손을 만져보고 전 울었어요.》

《울었다? 어째서?》

《분결 같던 처녀의 손이 어쩌면 그렇게 험하게 되였을가요. 전 저의 이 손이, 이 매끈한 손이 몹시 부끄러웠어요.》

《하하…》

최일만이 입을 쩍 벌리고 통쾌하게 웃어댔다.

옥산은 웃다못해 눈물까지 찔금 흘리는 최일만의 싱글거리는 얼굴을 약이 오른 눈길로 빤히 올려다보며 더는 이런 식으로 말을 해서는 안되겠다는것을 깨달았다. 그는 최일만이 자기의 말을 한갖 철부지소녀의 말로 들어넘기지 않도록 문제를 신랄하게 제기해야 하겠다고 생각했다.

《전 이번에 강선제강소 로동계급의 이 들끓는 열의에 찬물을 끼얹는 사람들이 있다는것을 알았어요.》

옥산은 심각한 표정을 짓고 여기까지 오면서 벼르고 벼르던 그 말을 꺼내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이번에도 그의 말은 최일만에게 아무런 감흥도 주지 못하였다. 상대는 여전히 싱글거리며 살진 널직한 어깨를 휘저으면서 춤추듯이 방구석으로 걸어갔다.

옥산은 얼떠름해서 그의 거동을 살폈다. 그는 최일만이 방구석에 멎어서자 비로소 거기에 육중하게 생긴 로씨야식싸모와르가 놓여있는것을 보았다.

최일만은 싸모와르에서 차를 따랐다.

《자, 드오. 향기로운 뚜르끄메니아 차요.》

최일만이 차를 들고와 권했다. 하지만 옥산은 차를 들지 않았다. 어떻게 하면 상대의 이 철벽 같은 무관심의 장벽을 깨고 신철의 문제를 순조롭게 해결하겠는가 하는것만 골똘히 생각했다.

《커피를 들겠소?》

《싫어요.》

《그럼 쵸코렛트, 새아가들은 이런 단걸 좋아하지.》

《싫어요.》

《또 싫다? 하하… 요 고집퉁이.》

최일만이 뭉툭한 손가락으로 옥산의 코를 눌러주었다. 옥산이 화닥닥 놀라며 뒤로 움츠리자 최일만은 그것이 더 재미있다는듯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옥산은 최일만이 자기를 끝까지 경망하고 호들갑스러운 제딸 마라처럼 대하려 한다는것을 알자 더는 참을수 없었다.

《부위원장동지!》 옥산은 정색하고 최일만을 쳐다보았다. 《제가 오늘 부위원장동지를 찾아온것은 한 청년의 운명문제때문입니다.》

최일만은 비로서 정색한 빛을 띠우고 옥산을 바라보았다.

《그 청년은 강선제강소 분괴압연직장기사로 일하고있는 신철이라는…》

《뭐, 뭐 신철이?》

최일만은 불쑥 옥산의 말을 꺽으며 물었다.

《예, 신철이란 청년입니다.》

옥산은 최일만이 드디여 자기의 말을 귀담아듣기 시작했다는것을 알고 신철의 문제는 말할것 없고 리웅천의 문제까지 포함하여 최근 강선에서 벌어진 일들을 죄다 이야기 했다. 그리고는 그들이 참고한 외국도면이 극비도면이라는것은 전혀 사실과 맞지 않는다는것, 더구나 그것을 누구에게 넘겨주었다던가 복구건설장에서 있은 사고들을 모두 그들과 련결시키는것은 아주 부당하다는것을 력설했다.

《그들을 시급히 자기 일터로 보내주세요. 그렇게 할수 있지요? 이것은 매우 중요한 문제예요. 생사문제, 운명문제니까요.…》

최일만은 한동안 심사숙고하는듯 하더니 또다시 온몸을 흔들며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하하하. 옥사나는 틀림없는 센지멘탈리스트야!》

옥산은 지금까지 자기가 한 모든 말들과 요구들이 다 허사로 돌아갔다는것을 순간에 깨닫고 입술을 깨물었다.

《전 감상주의자가 아니예요. 제가 제기하는 문제는 모두 심각한 문제예요.》

옥산은 격분에 넘쳐 항의했다.

그러나 최일만은 조금도 자극을 받지 않고 여전히 옥산의 하소를 소일거리로 듣고있었다. 오히려 옥산이 성이 나서 항의하면 그것을 더 재미있어하는것 같았다.

《부위원장동지, 전 부위원장동지가 저의 말에 주위를 돌려주기를 정식 요청합니다. 제가 말하고저하는 신철이라는 청년은…》

옥산은 신철이가 불순이색분자라는것은 천만부당하다는것, 그 청년 같은 애국자는 드물다고 하면서 수풍호반에서 있은 일과 전기로에서 불발탄을 해제하던 이야기를 했다. 옥산의 정열적인 타는듯한 까만 두눈에서는 신철이라는 청년에 대한 동정이상의 그 무엇인가가 불타오르고있었다.

최일만은 한윤호로부터 자기 동생이 박순일서기관을 만나려고도 하지 않는다고 하소연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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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산님의 댓글

강산 작성일

(위에서 계속)

하소연하던것을 상기하였다.

《옥사나는 신철이라는 그 청년과 어떤 관계요?》

최일만의 봉의눈을 흡뜨며 불쑥 물었다.

《아무런 특별한 관계도 아닙니다.》

《그런데 어째서 그 청년의 죄를 두둔하는가?》

《두둔이 아니라 우너칙을 가지고 말하는것입니다.》

《원칙?》

《예.》

옥산은 자기가 신철을 옹호하면 할수록 최일만이 도리여 그 청년을 절대로 용서치 않으리라 속으로 윽벼르고있는줄은 꿈에도 모르고 어리석기 그지없는 대답을 련발했다.

《범죄자를 두둔하면 공범자가 돼, 공범자.》

《그런 공범자는 열번이라도 되겠어요.》

《하하하. 옥사나는 정말 엉뚱하거든.》

최일만은 이기죽거리며 옥산이한테로 다가왔다. 그리고는 옥산이의 코등을 또 한번 눌러주려는듯이 통통한 손가락을 옥산이의 눈앞으로 뻗쳤다.

약이 오를대로 오른 옥산은 이제 다시한번 자기의 코등을 눌러주기라도 하면 당장 앙갚음으로 그 사람의 징글맞은 상판이라도 후려갈길 기세로 얼굴을 높이 쳐들고 상대방을 쏘아보았다.

《허허허. 발톱을 세운 꼬슈까(암고양이), 틀림없는 꼬슈까야.》

최일만은 옥산의 기세에 기가 죽었던지 더 가까이에 다가들지 못하고 돌아섰다.

그때 책상우의 전화가 요란하게 울리였다. 송수화기를 집어든 최일만은 범잡은 포수처럼 의기양양해졌다.

《그자들은 모두 반쏘분자들이야. 암 그렇구말구. 그래 그래, 잘 됐어. 절대찬성이야.…》

최일만은 연방 고개를 주억거리며 찬동을 표시했다.

옥산은 긴장했다. 전화에서 오가는 대화의 내용은 분명 리웅천이와 신철의 문제였던것이다.

이윽고 송수화기를 내려놓은 최일만은 능글거리며 한동안 옥산이를 지켜보았다.

《강선사람들 문제지요?》

옥산이 참지 못하고 물었다.

《그렇소.》

《해결되였습니까?》

옥산은 일이 다 틀어졌다는것을 알았지만 한가닥 희망을 가지고 다시 물었다.

《늦었소.》

최일만은 한마디 내뱉더니 싸모와르에로 다가가 차를 따랐다. 그리고는 거쉰 음성으로 인터나쇼날의 노래 한곡조를 뽑았다.

 

하느님도 임금도 영웅도 우리를 구제 못하리

 

《알만하오? 하느님도 임금도 영웅도 더는 구제 못할거요.》

최일만은 밉살스럽게 이기죽거렸다.

옥산은 쏘파의 팔걸이를 두손으로 눌러잡으며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섰다.

《당신들은, 당신들은 이제 비싼 대가를 치를거예요!》

옥산은 최일만을 쏘아보았다.

《뭐, 뭐?》

옥산의 도고한 태도에 격분한 최일만의 봉의눈에서 살기가 번뜩이였다.

옥산은 더는 최일만을 거들떠보지도 않고 방에서 나왔다. 마지막순간까지 간신히 자존심을 지탱한 옥산은 급기야 아래다리가 매시시해져서 한걸음을 옮겨놓기도 힘들었다.

(모두 끝장이구나!)

옥산은 눈앞이 캄캄해져 한손으로 계단손잡이를 잡으며 간신히 아래층으로 내려왔다. 최일만은 무서운 사람이며 법기관의 요직에도 친구들을 가지고있다고 하던 오빠의 말이 귀전에서 사라질줄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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