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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소설 빛나는 아침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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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강산
댓글 0건 조회 2,511회 작성일 20-06-03 10: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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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안동권이와 헤여진 강병철은 려관에 돌아와 인차 자리에 누웠다. 하지만 잠들지 못하였다. 벌써 한시간이상 자리를 뒤채건만 정신은 더욱 또릿또릿해진다. 그는 이불을 머리우까지 뒤집어쓰고 벽을 향해 돌아누웠다. 그러나 눈앞에는 주름이 덮이고 하관이 빠른 안동권의 얼굴이 삼삼히 나타나보인다. 무릎에 놓였던 자그마한 손, 얇은 입술을 헤치고 조리있고 명확하게 의사표시를 하던 그 싸늘한 음성, 《조선의 강철을 만들어보는것이 소원이라고 할 때 나는 놀랍기도 하고 기쁘기도 해서…》 안동권의 말소리가 동굴안에서처럼 공명을 일으키며 귀를 울린다. 강병철은 이불을 훌쩍 제끼고 일어나앉아 머리맡에 놓았던 담배갑을 집어들었다. 한대 피우고나서 또 다시 누웠다. 무슨 차가 또 오기라도 한것인지 아래층 한쪽구석에 자리잡은 주인방에서는 왁짝 떠들어댄다. 그러거나말거나 옆에서는 시샘이 날만치 태평스럽게 코를 골고있다. 패기만만한 신창탄광 탄부 박창술이다. 며칠사이에 꽤 지친 모양이다.

어제 《서로 알고지냅시다.》하고 통성을 한후로 불과 한시간도 되나마나한 사이에 그를 리해할수가 있었다. 그럴만치 그는 투명하고 단순하였다. 체구는 주물에 부어 쭉 뽑아낸것 같이 미끈하고 탐탁하였으며 팔, 다리, 어깨, 가슴에 불끈불끈 힘살이 솟아오르고 여기저기에 푸른 상처자욱이 나있다. 징병 제1기에 걸려 목단강까지 끌려갔다가 해방되기 두달전에 탈주해서 산중을 헤매다가 8. 15와 함께 고향 신창탄광에 돌아왔다고 한다. 《만세!》, 《해방 만세!》를 부르는동안 어느새 열흘, 보름, 한달이 지나갔다. 탄광에 자치위원회가 조직되여 l 000여명 종업원과 그 가족을 먹여살릴 방도를 탐구했으나 아무 대책도 나서지 않았다. 평양이나 서울에 가면 무슨 수가 나질것이라고 하였다. 그래 대표를 3명 뽑아 길을 떠나보내려고 하는데 탄광골안에 놀라운 소식이 날아들었다. 김일성장군님께서 평양에 개선하셨다는것이다. 박창술은 한길이나 뛰였다 떨어지며 좋아하였다.

《이제는 살길이 나졌다. 장군님께서 정사를 펴시면 우리의 살길이 나진다.》

그때로부터 옹근 사흘동안 평양거리를 싸다니였다고 한다. 거리구경도 하고 푸른 군복을 입었다는 조선군대를 만나려는것이였다. 그들을 만나기만 하면 정확한 소식을 알수 있을것 같았다. 바로 그때문에 하루에 100리는 실히 걷게 된다는 거리행각이 매일 계속되여 지금 저렇게 묶어가도 모르게 자고있는것이다.

강병철은 자리에서 일어나 가방에서 수면제 2알을 꺼내 입에 넣었다. 그의 불면증은 벌써 오래전에 시작되였었다. 려순공대를 나온 이듬해 야하다제철소에 들어간 그해부터니까 대동아전쟁을 겪은 전기간을 합치면 어언 7~8년이 된다. 원래 과격한 성미였는데 《류언비어》요 《불경언사》요 하는것에 질려 노상 벙어리처럼 살아야 했었다. 그러다보니 속에서는 불이 일고 재가 앉았다. 누구만 못지 않게 불평이 있었고 누구만 못지 않게 사태를 주시하는 안목이 있었지만 그것을 그냥 묻어두어야만 했다. 지성인다운 예리한 관찰, 정연한 론리, 과학적 타산, 그런것은 오히려 그의 리성을 옴짝 못하게 묶어놓은 또 하나의 자아를 만드는데 이르렀던것이다. 지금 그가 잠 못드는것만 해도 그렇다. 많은 사람들이 해방의 기쁨에 들떠서 만세를 부르고 환호를 올리는 이 시대적분위기를 타고 평범하게 살아나가면 별일 없을것인데도 그는 몸소 자기앞에 장벽을 만들어놓고 그것을 기여넘어보려고 모대기고있다.

그가 이번에 38°선을 넘어 이북에 온것만 해도 그렇다. 안동권을 데려올데 대한 사람들의 청을 구태여 자기가 맡아나서지 않아도 무방한것이며 흥남에 있는 오천식의 어머니는 차츰 기회를 보아가다가 만날수도 있는것이다. 더더구나 흥남이나 성진의 공장들을 직접 찾아가보지 않아도 별일 없는것인데 어떻게 된일인지 자기로서도 감당키 어려운 그 어떤 힘에 끌리여 실로 형용키 어려운 간고한 로정을 걸었던것이다. 일제가 전패한 수라장, 삼천리강토의 삼천만동포는 마치 탕수가 소용도는데 떠오른 나무잎처럼 흘렀다. 그 탕수는 해방이 가져다준 기쁨이고 환희인 동시에 모든것의 청산으로 되지만 그밑에는 지금 묵묵히 침묵을 지키고있는 대난관이라는 괴물이 엎디여있다. 이제 탕수가 찌기만 하면 천천히 머리를 쳐들고 모든것을 압도해버릴 먹고 입는 문제, 그 무엇으로써도 대치할수 없는 경제, 특히 공업은 지금 완전히 령인것이다. 한 기술자의 눈에 비친 해방된 조국의 일단이 이럴진대 온 나라를 통털어 들어올려볼수 있다면 과연 그 운명의 무게가 얼마나 될것인가. 이것을 누가 해결하는가? 어떻게? 무슨 힘으로…

결국 안동권의 론리로 돌아온것이다. 뜨거운 입김을 내불면서 빈 하늘을 쳐다보던 안동권의 구슬픈 모습이 뚜렷이 떠올랐다.

(그런데…)하고 강병철은 자신에게 따지고들었다. (안동권이가 말한것처럼 몇가지 용무가운데 북조선의 공업형편을 알아본다는것이 부질없는 한갖 개인의 취미였단말인가? 량심이나 어떤 리념의 속삭임이 아니였단말인가?) 이에 대해서 그는 단호하게 부정해나섰다. 그러고보면 강병철은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가슴속깊이에 자리잡았던 속심이 안동권에 의해서 드러났던것이다. 그는 온몸에 소름이 오싹 끼치는것을 느끼였다.

밖에서 떠드는 소리에 눈을 떠보니 벌써 창문에 해가 들었다. 팔과 다리가 부서지는것 같고 머리가 휘휘 돌았다. 그는 가까스로 우물가에 나가 세수를 한 다음 수건을 적셔서 줄무늬가 간 여름 제낀옷을 손질하기 시작하였다. 아무데서나 입은채로 뭉개고 비비대고 해서 꼴이 말이 아니다. 더구나 원시범을 찾아가자면 이 몰골로 나설수는 없는것이다.

《선생님! 간밤엔 곤히 쉬시던데요.》

박창술이 수팜송이같은 머리를 다듬어올리며 말을 건다. 그때 강병철이 눈을 크게 뜨고 박창술의 허리중동을 가리키며 물었다.

《아니 여보, 신창친구, 그게 뭐요? 거기 매단것.》

《뭘말입니까?》

박창술은 어리둥절해서 허리를 살피다가 데룽데룽 드리운 쇠대를 황급히 괴춤에 찔러넣는다. 그런후에 《우리 탄광 금고열댑니다.》하고 뒤덜미를 긁적거리며 웃는다.

《하하하, 그런걸 난 무슨 호신용 권총이라도 찼는가 했드랬소.》

아닌게아니라 열대는 장뽐 한기장이나 될만치 큰것이였다.

일단 옷차림이 끝나자 그들은 밖으로 나갔다.

《그래 오늘두 푸른 군복을 입었다는 김일성장군님 군대를 찾아 보겠소?》

강병철의 물음에 《물론이지요.》하고 박창술은 확신성있게 대답하고나서 되물었다.

《선생님은 아무 강철이나 마음대로 만들수 있는 기술자가 옳지요?》

《그렇게 봐도 일은 없소. 한데 그건 왜?》

《왜라니요? 우리 탄광에서는 강철과 동발을 밀어넣는것만치 석탄이 나옵니다.》

《그건 옳소.》

《중공강이나 착암기도 만들수 있겠습니다.》

《그런 공구강은 성진고주파에서 만들었댔소. 그러나 기술만 있으면 아무 제강소나 제련소에서도 바쁜 구멍이야 메워낼수 있지.》

《야, 정말 우린 중공강이 있어야 살아갈수 있는데…》

《앞으로 만들수 있겠지. 자, 그럼 언제 다시 만나게 될가?》

《산 사람은 아무때고 만나게 된다고 하잖습니까. 그런데 어데로 가시렵니까?》

《경상골에 있는 친구네 집에 들렸다가 서울로 가겠소. 하지만 며칠은 더 그 려관 신세를 질것 같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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