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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소설 푸른산악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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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강산
댓글 1건 조회 10,455회 작성일 20-05-08 0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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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

 

8월 18일 밤까지만 해도 로병관은 죽음에 대해서는 거의나 잊다싶이 했다.

그러나 8월 19일에는 그렇지 않았다.

8월 19일 낮 12시를 기해 전선사령부와 총참모부에 올려보낸 2군단 작전상보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밝혀져있다.

《…적은 무려 20여개의 지점에 대한 강행공격을 거듭하고있다. 그 강도와 심도는 군단전투력사이래 미증유의것이다.

…적항공대와 포병대의 화력도 전날의 1. 5배로 릉가하는바 포폭격의 우심성으로 하여 대부분 고지들과의 전화통신이 두절되였다. 련락병들이 계속 파견되고있지만 일련의 고지들… 965고지와는 11시 30분 현재까지 련계를 회복하지 못하고있다. …

적들의 행동에서 새롭게 주목되는 점은 다음과 같다.

3. 적항공대의 폭격이 말휘리쪽 후방에까지 확대되고있는바 주되는 목표물로는 반항공반땅크화력진지들이다. 적기들을 유인하기 위해 설치한 허위진지들은 전부 파괴되였다.

여기서 주목되는것은 도로에 대해서만은 대구경포탄이 아니라 소형폭탄과 기관총사격만을 해온다는것이다.

오늘 새벽 4시경부터 새롭게 시작된 직동령에 대한 적직사포의 사격도 파편지뢰탄이나 장갑포탄이 아닌 일반류탄이 쓰이고있다.

…》

이 상보가 전파로 날아간지 불과 몇분도 안되는 시각 52사 사단장 감시소에 있던 로병관은 군단지휘부로 즉시 도착하라는 전선사령관의 긴급호출을 받았다.

(무엇때문에?…)

버섯구름이 길길이 드리운 965고지를 일별하는 순간 그에게는 이런 의문과 함께 황영학을 다시 보지 못할수 있다는 생각이 무섭게 엄습해왔다. 아침부터 통신련계가 끊어진 그 고지에서는 적아의 총성만이 맹렬할뿐 개별적인 군인들은 물론 황영학의 생사여부에 대해서도 알수 없어 손톱여물만 썰던 로병관이였다. 감시소를 나서서 말에 오를 때도 이 생각만은 끈덕지게 떨어질줄 몰랐다. 짙은 포연속이라 길을 가려보기 어려웠다.

말이 사람보다 나았다. 고추같이 매운 연기에 찔끔찔끔 내배이는 눈물을 연신 닦으며 풀판과 길을 가늠할 때 말은 멈춤없이 그가 바라는 길을 찾아 승기좋게 달렸다.

사단지휘부로 들어가는 청송골안의 초입에서 한번 《실수》를 했으나 로병관이 미처 고삐를 채기도 전에 제 먼저 알아차리고 코소리까지 내며 힘차게 달렸다.

탁한 공기가 시원한 공기와 교체되는듯 한 그리고 뿌잇한 시야에서 흘러가던 산들이 뚜렷이 자태를 드러내는것을 보며 탄성이라도 터뜨리고싶었을 때 자기 몸이 불시에 건둥 뜨는것을 느꼈다. 박차가 없는것이 다행이였다. 땅에 부딪치기 바쁘게 용수철처럼 튕겨 일어난 그는 네다리를 맥없이 버둥이는 말을 보게 되였다. 마지막숨을 몰아쉬는 말의 검스레한 어깨박죽밑에서는 선홍색피가 분수처럼 내솟구치고있었다.

그는 자기가 서있는 곳이 직동령꼭대기에 들어서는 굽인돌이이며 그의 앞 열댓m 되는 길에 적의 직사포탄이 연방 날아와 터지는것을 알게 되였다. 강쇠를 깨뜨릴듯 한 여무진 작렬음과 함께 매캐한 화약내가 코를 찔렀다.

(몇걸음만 더 나갔어도…)

말을 다시 보게 되였다. 2∼3초면 가닿을 그곳에 가지 않기 위하여 말이 쓰러진것이 아닌가.

(영학이한테는 할 말을 다 했고… 영숙이한테는 회답이 남았댔지.)

죽음이 그의 곁을 스쳐간것이 이때가 처음이 아니건만 별스러웠다.

흘러가는 포연과 하늘을 보며 자기가 이 모든것과 영영 갈라질번 했다는 사실에 진저리를 쳤다.

(그래 나야말로 죄진, 빚진 사람이기때문이다. 사람에게서 첫째가는 비극은 죽음이라지만 그 죽음보다 더 무서운것은 그 인간이 보잘것 없는 존재였다는… 그것이다. 《그 사람은 있으나마나한, 유해한 존재였어.》 이것이 제일 무서운것이다. 제일 무서운… 내가 겁을 먹은것은 그때문이다.)

그는 이 아래골짜기에 기통수와 련락군관을 위한 통신용군마들이 있다는것을 상기하고 가파로운 벼랑길을 타고 내리다가 매봉 뒤계선까지 간다는 속사리사람들을 만나게 되였다. 함지며 보따리, 지게짐 같은것을 붙안고있는 스무나문명 잘 되는 사민들속에서 한 로인이 그의 발걸음을 멈춰세웠다.

《장령어른, 예 좀더 있다 떠나시우다. 우리 같은것들두 폭격이 즘즛해진 다음 떠나자구 해서 이러구있는데 전쟁을 맡은 큰 어른이 이런 살판속을 마구 다녀서야 되겠습니까.》

예순고개를 훨씬 넘었을상싶은 로인의 말에 로병관은 대번에 가슴이 뭉클해졌다.

《이 아버님은 손자 본 턱을 낸다고 우격다짐으로 따라나섰습니다.》

푸접좋게 생긴 하사관이 한마디 비추는 말에 로인은 입이 떡 벌어지게 웃었다.

《장령어른, 실인즉은 우리 아들녀석이… 저 어데 앞에 있습니다. 한데 며칠전에… 그애 처란 사람이 떡돌같은 아들을 낳았습지요. 우리 가문으로 말하면 7대루 외독자였는데 이거야말루 경사가 아니겠습니까. 그래서 제 아들녀석한테 싸우다 죽더라두 제 피줄이 생긴걸 알면 한결 힘이 될것 같애서… 알리려 떠난 참입니다. … 아 물론… 편지를 보내두 되겠지요. 이 군대동무들도 그렇게 말을 하지만 제가 전장까지 나가 여러 군대들한테 말하면 소식이 빨리 가닿을것이 아니겠습니까.》

로병관은 속이 쩡해들었다.

이 로인 역시 죽음에 대해 생각했다는, 그런데는 자기보다 아득히 높은 세계에서 생각하고있다는것으로 놀라왔다.

로인에게 아들의 부대와 이름을 알아보았다.

공교롭다고 하겠는지, 그 어떤 운명적인 얽힘에서 오는 인연이라고 봐야겠는지 부대라고 알려주는 우편함대호를 보니 황영학의 련대의 2대대였고 이름도 들은상싶었다.

(현인석?!)

로인과 헤여진 뒤에도 기억을 더듬었으나 떠오르지 않았다.

로병관이 군단지휘부에 도착한것은 5시 조금 지나서였다.

군단참모장은 우거지상으로 그를 맞았다. 전선정황때문인가 했는데 김웅의 불같은 채근때문이였다. 반시간간격으로 로병관을 찾는데 좀전에도 전화를 받다말고 끊어버렸다고 했다.

로병관은 김웅의 호출보다 전선정황이 더 급해 그것부터 물었다. 다행히도 전반적인 방어계선에서 아무런 변화도 없고 965고지와도 련계가 이루어졌다는것으로 안도의 숨을 내쉬게 되였다.

전선사령관이 무엇때문에 찾았는가 하는 물음에 군단참모장은 한숨부터 지었다.

《그건 사실 군단장동지가 결심할 문제인데…》

《그렇다면 군단장동지를 찾아야 할것 아닙니까.》

《찾긴 찾았습니다만… 군단장감시소로 갔다는걸 알고부터는 동무를 찾더군요.

우리들로서는 77사의 포들을 전선사령부에 넘기는가 마는가 하는 중대한 문제입니다.》

《아니, 77사 포들을 전선사령부에 넘긴다는건 무슨 소립니까?》

《무슨 제2방어계선인가를 꾸리기 위한것이랍니다.》

《제2방어선이라니… 거야 우리가 물러서는걸 전제로 한다는것이 아닙니까.》

《글쎄, 그렇다고 볼수밖에 없습니다. 하여간 전화부터 걸고보십시오.》

로병관은 그에게서 《나는 접수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니 전선사령부일군들끼리 해결하시오.》하는 속대사를 읽었다.

뭐가 뭔지 알수 없는 혼란속에서 송수화기를 들었다.

김웅은 예상외로 반갑게 나왔다. 언제 도착했는가, 어떻게 왔는가를 묻고는 호방스런 웃음까지 터뜨렸다.

《중국대륙을 뛰여다니던 솜씨가 여전하다 이거구만. 하여간 티끌하나 상하지 않고 왔다니 마음이 놓이오.》

《그런데 무슨 일로 찾으셨습니까?》

《동문 그래 참모장한테서 아무 말도 못 들었소?》 김웅의 말투가 달라졌다. 《동문 지난 밤에 어데 있었소?》

《52사 사단장감시소에.》

《965고지에는 안 갔댔소?》

《갔댔습니다.》

《잘하오, 잘해. 동문 언제 가야 그 가족주의를 버리겠소. 황영학때문에 갔댔지?》

《네. 그도 그렇지만 그 고지의 중요성때문에.》

《그 고지만 중요한가. 점점 한다는 소린… 그래, 우리가 동물 군단에 내려보낸것이 무슨 산구경이나 하라고 보낸줄 아오?》

《…》

《똑바로 듣소. 동무가 그 잘난 병사식용감성을 시위하고 동지애를 보이려는 사이에 어떤 정황이 조성된줄 아오?》

로병관은 참모장을 돌아보았다. 참모장은 미리 예견하여 준비한듯 싶은 한장의 종이를 전화통옆에 놓았다.

붉은색연필로 밑선을 친 글줄이 먼저 눈에 띄였다.

《적 항공대의 폭격이 말휘리쪽 후방에까지 확대…》, 《…도로에 대해서만은 소형폭탄과 기관총사격…》, 《직동령정점에 대한 직사포를》을 더듬는데 몇초동안의 침묵을 무언의 반발로 느꼈던지 분기를 참지 못해 하는 김웅의 목소리가 요란하게 울리였다.

《듣소, 먹소?》

《듣고있습니다.》

《동무도 지금 회양일대의 모든 곳에 줄폭탄이 쏟아지는것을 알겠지?》

《네.》

《도로에 대해서는 어떻게 하는가.》

《소형폭탄과 기관총사격만을 하고있습니다.》

로병관은 수치감에 얼굴을 붉혔다.

《그뿐인가. 직동령쪽에 대한 직사사격 역시 파편탄뿐이요. 그래 이 모든걸 놓고 뭔가 생각되는것이 없소?》

로병관은 그가 무엇을 말하려고 하는지를 알았다.

《저… 제 생각을 솔직히 말씀드린다면 아직 그런 위험상태까지는… 이르지 않았다고 봅니다.》

《배포는 좋소. 하지만 작전에는 그따위 배포나 감정만을 앞세워서는 안돼. 적은 최단시일내에 도로상으로의 땅크대의 진출과 함께 금강 회양분지에 대한 항공륙전대투입을 시도할것이요. 항공륙전대투하에 대해서는 이미 최고사령관동지께서도 예고해주신바 있지 않소.》

《녜.》

《그렇소. 적은 땅크대의 진출과 함께 항공륙전대투하로서 2군단을 뒤로부터 포위하려고 하는것이요. 물론 이것은 어디까지나 있을수 있는 만약경우지만 우리로서는 준비가 있어야 되오.》

로병관은 이 말에 대해서도 《녜.》하는 대답밖에 할수 없었다.

김웅이 말하는 그 만약 경우에 대한 준비에 대해서는 김일성동지의 친서에도 밝혀있는것이다. 그런데 그이께서 지적하신 만약경우란 1211고지와 그 린근고지들에 대한 공격작전에서 적들이 일정한 성과를 달성한 다음 있을수 있는것으로 되여있었다. 하여 그는 《녜.》하는 대답에 이어 자기 생각을 조심스레 비추었다.

《저로서도 준비는 있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렇지만 현재의 아군방어진을 조금도 허물지 못한 상태에서 말휘리까지 온다는것은 잘 리해되지 않습니다.》

《허허, 담보가 괜찮소.

로동무, 그래 우리가 부산을 코앞에 두고 다시 돌아선것이 정말 돌아서고싶어서 돌아선것이요? 그런 식 결심과 희망만으로 모든 일이 된다면 우리가 무엇때문에 여기에 있겠소. 지금쯤은 저 다도해에서 어죽을 쒀먹던가 한나산 백록담에서 배놀이나 하지. 그런 랑만주의는 버리시오.》

로병관은 피가 거꾸로 솟는듯 했으나 할 말이 없었다.

《이제부터 내 말을 명심해 듣소. 군단참모장동무한테도 지시를 줬지만 동무가 직접 책임지고 집행해야 할 일감이요.

나는 회양읍을 중심으로 새로운 방어선을 만들려고 하오. 이를 위해 전선사령부직속 예비포들과 77사의 포들을 그 지대에 집중시켜 강력한 반항공 반땅크진을 구축한다 이것이요.

전반적인 방어진형성은 내가 직접 맡아하겠는데 동무로서 해야 할 임무는 77사의 포와 포병들을 그 계선에까지 이동시키는것이요. 욕심 같아서는 아직 입을 떼지 않은 포들은 전방에 나간것까지 다 끌어왔으면 좋겠지만 어디까지나 1선을 우선시해야 하니까 그건 빼놓고 그외의것은 전부 뒤로 옮기도록 해야겠소.

늦어도 래일 밤까지는 이 작전이 완료돼야 하오.》

《래일까지?…》

《물론 쉽지 않은 일이요. 하지만 이것 역시 전투가 아니겠소.》

《저… 군단장동지와 합의를 봐야 하지 않겠습니까?》

《물론이요. 하지만 그가 나타나기만을 기다리고있을순 없지 않소. 그러니 정식 나의 명령인것으로 알고 집행하시오.》

김웅은 2방어계선설정의 필요성과 방안을 놓고 또 한번 장황한 설명을 한 끝에 전화를 마쳤다.

로병관은 머리가 뻥해진속에 송수화기를 놓았다.

지난기간 김웅의 의사를 덮어놓고 따른데서 과오를 범했다는것을 다시 생각하지 않을수 없었다.

지금까지 계획된 작전방안에는 77사의 포는 물론 전선사령부직속 예비포들도 2군단에 집중시키게끔 되여있었다.

《군단장동지도 이 내용을 알고있습니까?》

로병관이 참모장에게 물었다.

《알고있습니다. 제가 전화로 알려드렸으니까요.》

《그래서?…》

《그저 알겠다고 하더군요.》

《알겠다고.》

그때 문이 벌컥 열리며 최현이 들어섰다.

《무슨 토론들이요?》

땀에 번들거리는 최현의 얼굴은 붉은 혈조로 물들어 10년은 더 젊게 보였다.

로병관의 시선이 그의 군복바지에 점점이 묻은 석비레흙과 풀오리에 닿는것을 느끼자 우선우선한 웃음을 지었다.

《폭탄에 줘맞을가봐 뛰다나니 이 모양이요.》

눈빛만은 날카로왔다.

로병관은 그가 말하는 《토론》이라는것이 바로 김웅의 지시와 관계된것이고 그가 이처럼 뛰여든것 역시 그에 대한 궁금증때문이라고 판단했다. 될수록 전달자의 태도를 보이려 애쓰며 입을 열었다.

《군단장동지, 방금전에 전선사령관의 지시를 받았습니다. 참모장동무도 이미 말씀드렸다고 하는데…》

《어떤건데? 하도 많은 보고를 들어놔서.》

최현은 미안쩍은 웃음을 지으며 바지섶의 풀오리를 떼기 시작하였다.

(부정이구나.)

로병관은 최현이 이미 그 문제에 대한 확고한 견해를 가졌고 어떻게 하면 그 지시를 철회하게 하려는가를 생각한다고 판단했다.

그렇지만 말하지 않을수 없었다.

최현은 그에 대해 처음 듣는다는 자세로 고개를 끄덕이기도 하고 생눈을 짓기도 하며 말허리를 꺾거나 되묻는 일은 없었다. 로병관에게는 그것이 오히려 더 바빴다. 그리고 자기 말이 객관적인 립장을 벗어나 김웅의 처사를 변론하는것처럼 되고있다는것으로 당황했다.

최현은 그의 말이 끝나자 이윽토록 눈을 내리깔고있다가 불쑥 물었다.

《그러니 동무 생각으로는 어떻게 하면 좋겠소?》

김웅에게는 비출수 없었던 생각을 말했다.

《전선사령관동지가 요구하는 포들중에는 이포리-가전리방향에 배치하게 된 반땅크포도 포함되여있습니다. 제 생각엔 몇문의 곡사포들과 반땅크포들은 이미 그 곳에 내보낸것으로 하면 좋을것 같습니다.》

《그러니 속인다는겐가?》

《속인다기보다… 이미전에 그런 명령을 떨구지 않았습니까.》

최현은 물끄러미 그를 보다가 조용히 말했다.

《77사것이 없다 해서 못 막는다는 법이야 없지. 전방동무들이 못다 처리하면 나랑 동무랑 해서 수류탄으로 까면 되는게고.》

《전선사령관동무는 몇대정도의 땅크로 보는것이 아니라 미10군단과 괴뢰 1군단 전체 땅크들의 동시적인 강행돌격을 예견하고있습니다.》

《그러니 그 땅크란것들이 우리 머리우로 날아간다는건가. 훨훨 날개짓을 하면서?-》

《녜, 그밖에도 적들이 오늘과 같이 전면공격을 하면서 어느 한 지점에 대한 방어계선을 돌파해와도…》

《건 무슨 떡대가리 같은 소리요? 돌파?!… 누가 통과시킨대. 엉? 땅크도 마찬가지요. 내가 땅크를 놓고 뭔가 두려워한다면 그놈의것이 류동포로 되여 왔다갔다하며 965고지나 이쪽 983. 1고지의 정면과 측면을 직사로 때릴수 있다는 그것때문이요.》

최현은 미간을 찡그린채 일어섰다.

《그런 의미에선 2방어계선도 마찬가지요. 우리에겐 오직 1방어선만이 있을뿐이고 여기서 모든것을 끝장내야 하오.》

로병관은 가슴이 쑥 열리는듯 했다.

《그럼 77사의 포전체를 그냥 둔다는것이지요?!》

로병관의 활기찬 말에 최현은 실눈이 되여 그를 보았다.

《그에 대해선 동무가 대답을 줬겠지?》

《전… 반대의견을 제기하지 못했습니다.》

《그렇다면 어쩌구 저쩌구 할게 있소. 명령이고 또 우리쪽이 근심되여 하는 일이니 집행해야지.》

《전반이동은  래일까지 끝내야 한다고 합니다.》

《그건 믿어지지 않는데? 전선사령관동무야… 언제나 안전성을 첫째로 놓았는데… 참모장동무.》

그는 팩 하여 돌아섰다.

《이 즉시 전선사령관동무에게 포와 인원이동을 야간에만 하되 손실이 없을만 한 때를 봐서 하였으면 하는 내 의견을 제기해주오.》

《알았습니다.》

군단참모장은 차렷자세를 취해보이고는 로병관에게 시무죽이 웃어보였다. 마치 《보시오. 우리 아바이가 어떤가. 그렇게 하느라면 한주일은 걸릴것이고 그 동안이면 6군단이 오고… 또 우리가 적을 깨강정내겠는데 2방어선은 무슨 2방어선이요.》하고 쾌재를 올리는것처럼 느껴졌다. 이때 최현의 부관이 달려들어와 최고사령부에서 전화가 왔다고 했다.

《어데라고?》

《최고사령부라고 했습니다.》

《동무들도 오시오.》

최현은 성급히 걸어나갔다.

로병관은 장군님의 책임부관이거나 작전보좌일군의 전화일것이라고 판단했다.

최고사령관동지께서 걸어오시는 전화라면 부관은 응당 《어데라구?》 하는 두번째 물음에 누구라는 대답을 줬을것이다. 그리고 지금시간에는 그이께서 좀해 전화를 걸어오시지 않는다는것도 생각했다.

필요한 보고자료들을 꿍쳐쥔 참모장과 함게 최현의 방에 들어서니 그는 이미 전화를 받고있었다. 차렷자세를 취하고 선 최현의 얼굴빛을 보고 로병관은 자기의 판단이 빗나갔음을 알았다. 숨소리까지 죽이고 발끝걸음으로 들어서는 로병관을 띠여본 최현은 더 가까이 오라는듯 한 눈짓을 하고 청청한 목소리로 말했다.

《지금 로병관동무도 여기 와있습니다.》

《그렇소? 그 동무한테도 단단히 말해주오.》

증폭장치가 된 전화기에서는 호탕한 웃음소리가 들렸다.

《알겠습니다. 어디에서 보고를 올렸는지 모르겠지만… 그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한번 기마운동을 한것입니다.》

로병관은 어제 있은 일때문이라는것을 알고 가슴 무둑해지는 가운데 재차 이어지는 말씀에 귀기울였다.

《말이 난김에 몇가지 더 합시다. 오늘 오후 전투상황도 여전하겠지요?》

《녜, 되우 갈갭니다만 끄떡없습니다. 좀 숨찬것은 그놈의 폭탄과 포탄벼락에 머리를 들수 없는겝니다. 몸뚱이들만 밀려올 땐 별 문제지만…》

《내가 전화를 걸게 된것도 그때문입니다. 전방의 고사화력기재들은 지금 거의나 은페상태에 있다지요?》

《네, 얼마 안되는것으로 불질을 했다간 순간에 박산날수 있기때문에.》

《그럴겁니다. 이제 오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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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산님의 댓글

강산 작성일

(위에서 계속)

《그럴겁니다. 이제 오늘 밤안으로 최사 예비고사포대대들이 그곳에 당도하게 될것입니다.》

《아니, 그건… 어떻게…》

《그에 대해선 생각하지 마시오. 그 고사포들이 가면 유리한 지형을 찾아 집중배치를 하고 답새기시오. 계속 가만있으면 놈들은 더 승세가 나 덤벼들겠지만 한번 되게 불질을 하면 달라질것입니다. 그리고 오늘부터 최고사령부 선두창고의 포무기, 탄약들을 동무네 군단까지 직송하기로 하였습니다. 그러니 화력이 즘즛해질 때를 기다리지만 말고 적극적인 반항공, 반포전투를 벌려 공중과 지상에서의 공격능력을 최대한 감소시켜야 하겠습니다. 그러니 아끼는 놀음은 말고 마음껏 퍼부어대시오.》

《장군님, 고맙습니다.》

《인사는 이르오. 지금 굴파기작업은 어떻게 됩니까?》

《합니다. 한데 전투가 붙은 다음부터는… 한손 놓고있습니다.》

《그러면 안됩니다. 전투는 전투대로 하면서 굴은 계속 파야 합니다. 턴넬처럼 말이요. 우리 말로 하면 갱도입니다. 갱도를 만들어야 합니다. 난 우리 전사들이 그런 갱도속에 다 들어가게 된다면… 그때엔 한결 마음을 놓을것 같습니다. 부탁입니다.》

《장군님, 명심하겠습니다.》

전화가 끝난 뒤에도 최현은 한참이나 서있다가 번쩍이는 눈길로 두사람을 보았다.

《다들 들었소?》

《77사의 포문제를 보고드리는것이 좋지 않았겠습니까.》

군단참모장의 말에 최현은 무슨 소린가 하는듯 그를 보다가 크게 웃었다.

《여보, 지금 그게 무슨 문제란 말이요. 무슨… 이제야말로 노들강변이란 말이요, 노들강변!》

최현은 목이 꽉 막혀 기침을 터뜨렸다.

로병관은 뜨거운것이 가슴가득 차올라 고개를 숙였다. 최고사령부 예비고사포대대들을 보내온다는 사실은 그에게 큰 충격이였다. 그 고사포들은 최고사령부보위용이였다. 그런데 그런 포가 오늘 밤안에 도착한다는것은 이미 5∼6일전부터 움직였다는것을 말한다. 불쑥 속사리골안에서 만났던 로인의 말이 떠올랐다.

《…싸우다 죽더라도 제 피줄이 생긴걸 알면 힘이 생길것 같아서…》

지금의 환경과는 전혀 동떨어진 말이건만 뭔가 하나로 이어지며 가슴을 치는것이 있었다. 장군님께서 전선과 전사들만 생각하신다면 로인 역시 자기의 생사문제가 아니라 아들과 싸움만을 생각하는것이다.

(그런데 나는…)

말의 주검앞에서도 애달픈 상념속에 잠겼던 개울가에서도 자기만을 생각했다. 자기가 어떻게 될것인가. 자기가 어떻게 평가될것인가. 김웅과의 전화시에도 최현앞에서의 발언때에도 자기를 놓고 이걸 재고 저걸 쟀다.

갱도라고 하셨지. 정대와 폭약을 구할 방도를 찾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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