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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소설 푸른산악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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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강산
댓글 1건 조회 6,208회 작성일 20-04-30 1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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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차가 멀리 사라지고 김웅이 자기 방에 들어간 뒤에도 로병관은 그냥 한자리에 서있었다.

《에익, 너절한…》

그는 이 말을 몇번이고 뇌였다.

량볼로는 무엇때문인지 모를 눈물이 하염없이 흘러내렸다. 눈물만 아니라 흐느낌까지 터져나올것 같아 안깐힘을 써 참았다.

눈물은 무정때문이라고 생각해보려 했으나 그것은 아니였다. 단지 눈물의 방아쇠로 되였을뿐이였다.

그동안 참았거나 잊혀졌던 슬픔과 아픔이 죄다 모여드는듯싶었다.

가장 아픈것은 자기의 유일한 벗이 영영 떠나가버린듯 한 괴로움이다.

황영학의 모습속에서는 부모들의 시신을 감장했다는 황영숙의 얼굴이 비껴들었다.

황영학이 그를 외면하는것은 영숙이도 함께 돌아선다는것을 의미하는것이다.

《에익 너절한.》

그는 이 말을 곱씹을 때마다 자기자신만아니라 김웅이도 생각했다.

(어쩌면 인간이 이럴수 있는가. 나라는 인간은 도대체 어떤 사람이고-)

최현도 오늘 이렇게 자기를 보았고 영학이도 마찬가지였다. 똑바로 살기가 무척 어렵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정의 《비극》과는 또다른것이다.

무정은 외줄기로 걸었다면 그는 언제나 두갈래 길에서 망설였고 망설임끝에 얻어진 선택에는 동일량의 찬성과 반대가 뒤따랐다.

(황영학은 두번 다시 용서하지 않을것이다.)

영숙이 역시 오늘일까지 안다면 더는 자기를 보지조차 않을것이다.

《오빠를 배신한데 대해선 처음이니만큼 용서해주겠어요.》

조국에 돌아와 중성 세알을 달고 영숙이를 만났을 때 요란스러운 《승급》을 축하하고 난 영숙은 무의산에서 영학이와 갈라진 일을 놓고 《배신》이라는 딱지까지 붙였었다.

(그래, 과거와 오늘은 여전히 맞붙어 돌아가는구나.)

고향에서는 그와 황영학, 송우인을 놓고 《세 솥발》로 불렀고 도꾜의 류학생들은 《정삼각형》이라고 불렀다.

로병관과 황영학은 북청 무르뫼의 앞뒤집에서 살았다.

대대로 진사, 생원벼슬을 살았던 로병관이네는 할아버지가 향교교장노릇을 한것으로 하여 《향교집》이라 불리웠고 먼 옛날 관북 6관성을 쌓을 때 수자리로 왔던 조상이 무르뫼에 물러앉게 되면서부터 북청내기가 된 황영학이네는 구한국군 의장대로 뽑혀갔던 아버지가 《시일야방성대곡》과 함께 돌아온 뒤로부터 《군기집》으로 불리웠다. 로병관과 황영학이 태여났을 때는 두집 다 조석끼니를 걱정하지 않는 집이였으나 그들이 서당을 거쳐 중학교에까지 올라갔을 때는 학비는 물론 매일매일의 끼니를 걱정하게 되는 가난속에 들게 되였다. 그런대로 로병관이네는 대대로 물려온 패물들을 팔고 또 아버지가 서당훈장을 하는 덕에 꽤 살아갔지만 의장대해산때 받은 돈으로 하루갈이논과 밭을 사 부치던 황영학이네는 소작농으로 굴러떨어지고말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 집에서는 아들들의 공부만은 끝까지 시켜보려고 했다. 로병관이네는 가문대대의 《위업》을 잃지 않기 위해서였고 일본군대의 신식무장과 기술때문에 조선이 망했다고 생각한 황영학의 부친은 문명개화를 해야만 사람도 나라도 허리를 펼수 있다는데서 아들의 공부를 열심껏 뒤바라지를 했다.

로병관과 황영학은 부모들의 피땀으로 바꿔진 돈과 공부가 끝난 후의 자갈치기와 나무팔이로 번 돈으로 중학교 문턱까지 올라갔으나 황영학은 아버지가 몸져 눕는통에 2년 중퇴로 호미를 잡지 않으면 안되였고 로병관만은 중학교과정을 마치게 되였다.

로병관은 졸업성적에서 1등 없는 2등자리였건만 합당한 직업을 구할수가 없었다. 늙은 아버지의 두가지 조건부때문이였다. 돈을 만지는 일과 왜놈들심부름을 하지 말라는것이였다.

그런데 오라는 곳과 두루 줄을 놓아 알아본 자리마다 돈이나 왜놈과 잇닿지 않은 곳이 없었다.

오래도록 집안농사일을 도우며 얻어낸 자리가 사립소학교의 교원이였다. 바로 그때 그들의 어릴적동무로서 일본에 가있던 송우인이 함께 공부하자는 편지를 보내여왔다. 하숙비는 자기가 물고 학비같은것은 신문팔이나 우유배달로 얼마든지 마련할수 있다는 내용의 편지였다.

그러지 않아도 적지 않은 청년들이 일본에 가 고학을 한다는것을 알고있던 로병관과 황영학이에게는 그 편지가 붙는 불에 키질로 되였다. 그런데 황영학은 앓고있는 아버지를 대신할 일손이 없는것으로 하여 선뜻 용단을 내리지 못하였다.

로병관도 이때문에 떠나는것을 미루지 않을수 없었다. 그로서는 황영학이를 제껴두고 떠나는것이 인정으로나 의리로나 마음에 걸리는것이였고 주먹패들이 날친다는 도꾜에 가서 지낸다고 할 때 영학이와 함께 있으면 열명맞잡이의 보호자를 갖는것으로 되기때문이였다. 아버지와 달리 키는 작으나 힘과 날파람에서 온 군적으로 소문난 황영학은 태권도까지 익혀두고있었던것이다.

황영학과 로병관의 《고민거리》를 제일 먼저 알게 된 당자가 황영숙이였다. 소학교 보습반을 마치고 우체국의 소제부로 일하던 영숙은 그 나이 처녀들로서는 감히 생각도 못할 비장한 결심을 가지고 집안농사일을 자기가 맡을테니 어서 떠나라고 부추김을 했다. 영학의 아버지도 그 사실을 알고 지체말고 떠나라고 했다.

《사내란게 집안일에 잡히면 큰일을 못한다. 집에 농사일은 네 에미도 있고 나도 있고 네 누이동생도 있으니 걱정 말고 공불 가거라. 어느땐가 조선이 독립될터이니 그때 가서 한몫 하려면 배워야 한다.》

의장대에서 《기착!》, 《좌향좌》, 《우향우!》의 교련법만 배운것 같은 토배기농사군물림의 옛 의장병이였건만 도회지에서 보고들은것이 있어서인지 궁냥도 깊고 뜻도 높았다.

이렇게 되여 로병관과 황영학은 현해탄을 건너 도꾜에 갔으나 그들이 지망하는 대학은 서로 달랐다. 로병관은 법치대학을, 황영학은 농림대학을 선택했다. 이미 와세다대학 영문학부에 적을 두고있던 송우인은 미래의 세계발전추세를 렬거하며 영문학부지망을 권고했으나 로병관과 황영학에게는 황당한 《권고》로 들리였다. 그들에게서 미국이나 영국과 관계된 일은 관념밖의 세계였고 한세기전부터 이 땅에 불어쳤던 《척양척왜》의 감정도 적잖게 작용했던것이다.

그렇다 하여 그들이 미국이나 영국을 다른 행성처럼 보는 편견에 사로잡혀있은것은 아니였다. 그들은 《례배당집》으로 불리우는 송우인네 일가의 행적을 통해 당시의 그 어느 사람들보다 미국에 대해서 잘 알고있었다.

반세기전 고종황제의 어지에 따라 전국각지에서 이름있는 기와쟁이들을 뽑을 때 그들의 고향에서는 송우인의 할아버지가 뽑혀갔다. 그후 오래도록 소식이 없던 그의 할아버지가 다시 왔을 때는 고종황제로부터 정 10품의 벼슬을 받은데다가 촌사람들이 보지도 듣지도 못했던 수많은 물건짝을 하늘소 세마리에 가득 싣고 왔었다. 송우인의 할아버지는 전국에서 올라온 기와쟁이들과 토목들, 벼농사에 밝은 농군들 몇과 함께 기선을 타고 미국에 가 청기와를 구우며 벼농사도 하고 만국박람회의 《조선관》 건물을 짓는 일도 했다. 조선사람들이 지은 벼와 《조선관》건물도 이목을 끌었거니와 고려청자기의 풍도를 살린 청기와는 미국의 대통령부부에게까지 격찬을 불러일으켰고 이를 기회로 송우인의 할아버지는 청기와 굽는 기술의 비밀을 팔며 적잖은 돈을 번데다가 조국에 돌아와서도 나라의 위명을 떨쳤다는것으로 고종의 은사금까지 받았던것이다. 그런데 송우인의 할아버지는 와서 1년도 안되여 시름시름 앓다가 40나이에 비명으로 돌아갔다. 물론 이 일은 로병관이네가 태여나기 썩 전의 일이였다.

듣게 된 《옛말》들을 모으면 난봉기가 있는 송우인의 할아버지가 늘 벌거벗다싶이하고 사는 양국녀인들의 꾀임에 빠져들어 돌아치다가 몹쓸병을 만나 죽었다고도 하고 죽기전에 송우인의 아버지를 불러 미국에는 절대로 가지 말라는 유언을 남겼다고도 했다. 그런데 그가 돌아간지 몇해 안되여 미국선교사가 송우인의 집에 나타나더니 얼마후에는 번듯한 례배당이 서고 송우인의 아버지가 그 주인으로 틀고 앉았다.

그뒤 어느 해인가 집을 떠난 례배당주인은 우인이 중학교를 다니던 해에 다시 나타났다.

그는 할아버지가 가지 말라고 한 미국으로 건너가 숱한 학문도 연구하고 구국운동에도 참가했다고 하였다. 아닐세라 그는 돌아와서는 교인들과 가까운 사람들에게 왜놈들이 멀잖아 망할것이라고 했으며 언젠가는 미국이 조선을 독립시켜준다고 말하였다.

이로 하여 그는 감옥밥도 여러번 먹었지만 그때마다 별 탈없이 무사히 나왔다. 돌아가는 말에는 로마의 바티칸에 있는 교황이 일본총독에게 항의편지를 낸 덕이라고도 했다. 그러나저러나 송우인의 아버지는 이러한 사실들로 하여 로병관과 황영학이에게서 범상치 않는 인물로 보였고 따라서 우인에 대한 그들의 태도에도 그 영향이 미쳐졌다. 아버지를 닮아 례사동무들을 손아래로 보는 교기를 보이는 송우인도 이모저모로 손꼽히는 집안출신들인 로병관과 황영학에 대해서만은 같은지기로 대했으니 거기에는 로병관과 황영학이 학교성적에서 항상 수석자리를 차지한데도 원인이 있었다.

송우인의 하숙집에 짐을 풀어놓은 로병관과 황영학은 며칠동안 우인의 안내를 받아 도꾜거리도 구경하고 조선인류학생들과 이야기도 나누며 대학선정문제를 놓고 이모저모로 저울질하던중에 일단 결심하면 지레대로 떠도 움쩍하지 않던 황영학이 로병관의 법치대학으로 기울어졌다. 이미 그전부터 로병관이 얻어보는 사회주의책자들을 얼마간 뒤져봤던 황영학은 싸구려술잔을 놓고 기염들을 토하는 류학생들과의 접촉을 통해 갑자기 《정치》문제에 관심이 높아지게 되였던것이다.

하여 로병관은 황영학과 함께 법치대학에 입학원서를 제출하고 며칠동안 시험답안문고들을 본 뒤끝에 일본에서도 1고나 3고 출신들도 붙기 어렵다는 법치대학 입학시험에서 단연 웃자리를 기록하여 사각모를 얻어쓰게 되였다.

일본과 미국과의 대동아전쟁만 아니였다면 미국류학에 갔을것이라고 하는 우인은 무슨 돈이 그렇게 많은지 그들에게 하숙비만 아니라 의복으로부터 학용품일절까지 대주었고 조선독립문제를 의논하는 류학생들의 비밀모임때마다 그들을 데리고 다녔다.

단파라지오로 워싱톤과 모스크바방송까지 듣군 한다는 류학생들은 크게 두파로 갈라져있었으니 송우인을 축으로 한 류학생들은 대동아전쟁에서 미국의 승리를 점쳐보며 상해림시정부와 리승만의 《한일애국동맹》에 의한 조선정부창립설을 주장하였고 또 한파는 김일성장군빨찌산에 의한 조선독립설을 주장하는 《코민테른》파였다.

로병관과 황영학은 《촌바우》라 그들의 넓은 안목과 식견에 경탄을 표시하는 자세로만 있었으나 내심으로는 김일성장군빨찌산에 의한 독립설을 믿었고 또 그렇게 될것을 바라군 했다. 그렇게 된데는 사회주의책자들을 읽으면서 생겨난 공산주의에 대한 신봉도 있었지만 보다는 보천보전투사건을 전후하여 련속 떠돌던 김일성장군빨찌산에 대한 전설적인 무훈에 대한 탄복과 동경에서였다.

그런 중에 《학도병설》이 나돌기 시작하였다. 시세감각이 예민하고 대양과 대륙을 뛰여넘던 할아버지와 아버지의 피줄이 작용해서인지 《학도병징집설》을 남먼저 알아낸 송우인은 로병관과 황영학에게 일각도 지체하지 말고 일본을 떠나 중국관내의 상해로 떠나자고 하는것이였다. 너무도 엄청난 일이라 로병관과 황영학이 좀 생각해보자고 하며 며칠 지나는 사이 하루밤새에 류학생들 거의모두가 그물코에 걸린 신세가 되여 부산항에 부리워졌다가 서울까지 오게 되였다. 빠고다공원에서 열린 《학도병환송대회》에 참가하고 룡산훈련소의 학도병모집처에 갔을 때는 일본에서 떠나올 때의 절반 넘는 학생들이 나타나지 않았다. 알고 보니 돈줄이나 있고 총독부관리들과 안면이 있는 세력자들은 어느사이 자기 아들들을 학도병명단에서 다 빼버렸던것이다. 모든데서 날고뛰듯 하던 송우인마저 혀를 두를 지경이였다.

하지만 그는 팔짱을 끼고있지 않았다. 가방에 넣고 온 돈이 얼마인지는 모르겠지만 인솔책임자인 대위에게 붙어돌아가던 그는 신의주를 거쳐 베이징으로 가게 된 병관이네를 쏘만국경지대로 가게 된다는 2진에 포함시켜 고향땅부근에서 탈출할 조건을 마련하였다.

그러나 탈출은 성사될수 없었다. 《일본류학생탄원학도병》들에 대한 특혜로 고향집 부모들을 역전환송군중앞에 내세운 놈들은 물샐틈없는 감시진속에 부모들과의 상봉을 지켜보다가 웃음진 얼굴과 철거덕거리는 군도소리로 그들을 위협하며 다시 차에 오르게 했던것이다.

황영숙에 대한 로병관의 애정이 마파람의 불길처럼 타오른것이 바로 이때였다.

황영숙은 《환송군중》속에서 한떨기의 이채로운 꽃이였다. 군안의 유지들과 기생나부랭이들을 제외하고는 모두가 울음바다를 펼치고있는데 그만은 가랑가랑 고인 눈물속에서 밝은 웃음을 보이고있었다. 한겨울인데도 연분홍치마에 노란저고리를 깨끗이 차려입고 솜버선을 신은 그 모습은 로병관의 가슴에 지울수 없는 각인으로 새겨졌다. 영숙은 《환송》주최측에서 나눠준듯 한 종이꽃다발까지 열심히 흔들어보였다.

놈들은 그때문인지 영숙에게만은 례외적인 호의를 베풀어 차에 오르는것도 눈감아주었다.

《죽지 말고 꼭 살아 돌아오세요.》

로병관을 볼 때의 눈물어린 눈에는 애모쁜 기대와 믿음이 함뿍 실려있었다. 차가 떠날 때 영숙은 입을 두손으로 싸쥐였으나 용케도 울음을 터뜨리지 않았다.

불어치는 바람에 치마자락이 펄럭이며 얼어든 장딴지가 아프게 눈을 찔렀다. 어둘녘에 곽밥들이 올랐을 때 영숙이가 영학에게 넘긴 음식보꾸레미에서 한장의 편지가 나왔다. 《오빠들!》하고 첫 머리를 뗀 편지내용은 황영학에게는 물론 로병관에게도 너무나 놀라운것이였다.

《…헛된 죽음터에 가지 마세요. 조국은 머잖아 해방의 날을 맞게 됩니다. 오빠들이 그처럼 우러러 마지 않는 김일성장군님께서 조국해방을 약속하셨답니다.

저는 오빠들이 왜놈들 편이 되지 않으리라는것을 굳게 믿어요.》

로병관이네가 도꾜에서 《조선독립이요》, 《코민테른》이요 할 때 황영숙은 북청반일청년회 회원으로 김정숙동지까지 만나뵈웠다. 북청반일청년회는 김정숙동지께서 친히 조직지도하신 북청지구 조국광복회의 하부말단조직이였던것이다.

로병관이네의 탈출열기는 이 편지로 하여 더욱 불붙었다. 돈화나 룡정 어딘가에서 탈출하여 김일성장군빨찌산부대로 찾아가기로 했다. 자포자기한 상태에서 우울증에 걸려있던 송우인도 두말없이 찬동하였다.

그러나 이 계획은 실현시킬수 없었다. 삼엄한 감시때문이였다. 탈출은 쏘만국경이 아니라 북지전선에 간다고 하며 베이징행 기차에 오르게 되였을 때 실현되였다. 벌판과 벌판을 지나 어느 한 계곡의 산협을 지날 때 요란한 폭음과 함께 기관차가 전복되고 여러개의 차량들이 탈선되였다.

처음에는 차량의 걸개쇠까지 채우고 학도병들을 옴짝달싹 못하게 하던 호송병들은 방통벽에 성에가 끼자 불을 지필 나무를 해오라고 을러멨다. 두명의 호송병이 비껴든 총창아래 거의모두가 차에서 내려 하얗게 눈이 깔린 산비탈을 오르자 황영학이 로병관과 송우인을 눈짓하여 무리진 그들과 벗어나기 시작하였다. 그에 수상한 기미를 느낀 호송병이 꽥 소리를 치며 뒤쫓아왔다. 하지만 그들이 눈속에서 마른 삭정이를 열심히 들춰내자 호송병은 아사꾸를 부르며 술렁술렁 따라온다는것이 렬차와는 퍼그나 멀어졌다.

눈속에 파묻힌 커다란 나무통을 들던 황영학이 호송병에게 좀 도와달라는 말을 하는가싶었는데 꺽 하는 외마디비명과 함께 호송병이 나가 곤드라졌다. 재차 멱을 차는 황영학의 발길질이 있었을 때 놀랍게도 그때까지 멍하니 굳어져있던 송우인이 호송병의 주머니를 들춰 돈지갑과 중국녀인들한테서 빼앗은듯 한 금반지를 찾아냈다.

이렇게 탈주에 성공한 그들은 무의산계곡을 방황하던 끝에 관내의 팔로군과 련계를 맺은 사람과 알게 되였다. 여기서 로병관과 황영학의 길이 갈라졌다. 로병관과 송우인은 연안으로 갔고 황영학은 김일성장군빨찌산을 찾는다고 중국동북지방에로의 먼길을 떠났다.

이런 결단을 내리기에 앞서 서로 다른 두 길을 놓고 장시간에 걸친 론의가 있었다. 로병관이 당초의 결심을 포기하고 연안을 택한것은 중국공산당 당원인 집주인의 말때문이였다.

그들이 찾고있는 조선인민혁명군은 국제당과 쓰딸린의 요청에 따라 쏘도전선의 열점지대인 쓰딸린그라드에 가서 반타격전의 골간부대로 활동하고있다는것이였다.

황영학은 그 말에 반신반의했지만 로병관은 믿었다. 여기에 송우인이 합세했다. 그들은 한결같이 입을 모아 황영학이를 돌려세우려고 했으나 괜한 수고였다. 영학은 만주벌판을 다 뒤져 못 찾으면 그들이 간 길을 따르겠다고 했다.

로병관은 이로 하여 고민이 컸다.

우정에 따르는가 《리성적인 판단》이 가르치는대로 움직이는가.

결국 《리성적인 판단》이 이겼다. 그로 하여 김웅이를 만났고 그의 교련과 뒤받침밑에 오늘에 이르렀다.

이 모든 선택과 움직임에는 사서오경을 뜬금으로 외우던 아버지의 설교도 적잖게 작용했다.

《사람은 벗을 잘 만나야 하느니라. 벗이라 할 때 동배도 있고 웃사람도 있다. 이 중에도 웃사람을 바로 찾아야 한다.》

지금까지는 사람을 바로 찾았다고 해야 할것이다. 만약 그가 동배로서의 벗이였던 송우인을 따랐다면 수치스런 반역자가 되였을것이였다.

송우인은 해방되는 해 봄에 중경으로 도망치면서 로병관에게도 그에 대한 의향을 비추었다.

로병관은 단연코 거절하며 그의 행동을 저지시키려 했지만 하루밤 자고보니 송우인은 먼지처럼 사라져버리고 말았다. 로병관은 한시절의 친구가 무서운 원쑤로 될줄은 몰랐다.

전략적인 일시적후퇴를 마치고 돌아왔을 때 로병관은 미처 후퇴를 못한 조부모님들이 모조리 적에게 학살된것을 알게 되였고 그 학살을 주관한 괴뢰군사단의 참모장이 송우인이였음을 알게 되였다.

올해 봄 황영학을 만나 송우인을 단죄하며 분통을 터뜨렸을 때 영학은 쓴웃음을 머금었다.

《그자는 자기 식 신념에 충실했을따름이야.》

《그한테 무슨 신념이 있단 말인가.》

《미국놈의 개가 되였을 때야 그에 따른 신념이 있었을것 아닌가. 자기 주인을 위해 짖기도 하고 물어뜯기도 하며 큰 고기점을 바라는 개로서의 신념일테지.

난 동무의 할아버지가 사람을 잘 가려보며 사귀여야 한다고 한 말만은 옳다고 봐.》

꽈르릉! 천지를 무너뜨릴듯 한 우뢰소리가 울렸다.

로병관은 입술을 피나게 깨물었다.

모멸찬 눈길로 쏴보던 최현의 눈길이 떠오르는가 하면 눈길조차 주지 않던 황영학의 차디찬 모습이 비껴왔던것이다.

《사령관동지가 부릅니다.》

김웅의 새 부관이 나타나는 바람에 생각이 끊어졌다.

김웅의 방에는 사령부의 부장급이상 지휘일군들이 거의 다 모여있었다.

《어데 가 있었소?》

김웅은 휘줄근하게 젖은 로병관의 몰골에 눈살을 찌프리며 옷걸이판에 걸어놓은 세면수건을 가리켜보였다. 로병관은 다른 때라면 모두가 보란듯이 전선사령관의 호의를 받아들였겠으나 바지주머니의 손수건을 꺼내여 얼굴의 비물을 대충 닦으며 자기의 지정좌석인 앞상 두번째의자에 가서 앉았다.

《군화(군수물자)수송 토론이요.》

김웅은 그에게 또 한번 《친절성》을 보이고 계속했다.

《고르노바중기관총은 다리가 있으니만치 차지붕에 그대로 설치할수 있소. 그럼 막심중기 같은것은 어떻게 하겠는가.

그건 김기우의 방법을 도입하면 되오. 달구지바퀴도 좋고 로획품이나 파손된 포의 바퀴를 떼여 그 우에 중기를 설치하여 올려놓는다는거요. 문제는 사격수들인데 필요하다면 동무들도 차에 올라 사격수가 되여야 할것이요.》

로병관은 무슨 영문인지 몰라 옆에 앉은 병기부장의 옆구리를 찌르며 책상우에 의문부호를 그려보였다. 김웅에게 감심한 눈길을 주고있던 병기부장은 물자수송시 적항공기들과 싸울 대책안이라고 했다.

로병관은 새삼스러운 눈길로 김웅을 보며 정신을 번쩍 차렸다. 그런데 김웅은 별치 않은 착안이라는듯 시답잖은 기색으로 말을 이었다.

《이건 동무네가 쏘련영화에서도 봤을것이요. 렬차와 자동차우에서 적기와 싸우는…》

김웅은 뾰족한 턱을 매만지다가 다른 의견들이 없는가고 물었다. 다들 흥성이는속에 포병부사령관이 일어섰다.

《사령관동지! 그이상 더 좋은 방책은 없다고 봅니다. 그런데 그걸 준비하자면 적어도 래일 오전까지는…》

《그래, 준비시간이 한겻은 걸리겠지. 무기상자의 총들을 꺼내 기름을 제거해버리는데 둬시간, 차지붕우에 바퀴들과 삼각가를 설치하는것이 두시간, 명령하달과 조직이 30분… 점심시간을 출발시간으로 하는것이 좋을것 같소. 하긴 이건… 계속 비가 내린다는걸 전제로 한것이요. 비가 오지 않으면 고사포를 올려놓았다 해도 적기들은 꿩본 매처럼 덮칠테니까.》

김웅의 손이 또다시 뾰족한 턱에 가닿을 때 부관이 바쁜 걸음으로 그에게 다가왔다.

《최고사령관동지께서 찾으십니다.》

《전화?!》

김웅이 벌떡 일어설 때 부관이 열려진 뒤문을 가리켜보였다.

《무선전신입니다.》

《으-음.》

그가 사라져 10분도 안되여 부관이 다시 나타나 로병관을 찾았다.

《사령관동지가 부르십니다.》

로병관은 부러움과 의혹이 치민 눈길들을 느끼며 웃주머니의 수첩을 꺼내들고 부랴부랴 부관을 따라섰다.

무선전신기앞에는 무선수와 연필을 들고 앉은 변신참모가 김웅을 조심스럽게 훔쳐보고있었다.

《철령으로부터 금강교까지의 항공감시초소가 몇개요?》

김웅의 다급한 물음에 로병관은 최고사령관동지께서 물으셨다는것으로 하여 한껏 긴장된 속에 말을 떼였다.

《철령까지는 1km당 항공감시초소가 하나씩 있고 신교리부터 금강교까지는 2. 5km당 하나씩 그리고 직동령에도 1km당 하나씩의 항공감시초소와 매 초소옆에 고사총소대들이 있습니다.

철령과 금강교, 직동령에도 고사총소대들과 함께 고사포들이 설치되여-》

《그건 아오.》

김웅은 신경질적으로 내뱉고는 얄팍한 입술을 깨물며 변신참모의 연필에 시선을 멈추었다.

《보고를 드리오.

새로운 정황에 따라 항공감시초소와 고사화력기지들을 더 늘이고있습니다. 이로부터 수자상 종합은 아직 못하였습니다. 두시간안으로 그에 대한 상세한 보고를 드리겠습니다.》

말을 마친 김웅은 초조한 눈길로 변신참모가 만드는 암호문을 내려다보았다. 로병관은 두뽐가량의 무선전신지우에 다급히 쓴 글두들을 련관시켜보았다.

《안녕?… 비가?… 여기도 비!… 포, 무기, 탄약운반은?…》이라는 글자는 《항공감시초》라는데서 끊어졌다.

로병관은 지금 이 시각까지 최고사령관동지께서 쉬지 않고있으며 비가 내리는것을 아시고 전선물자보장에 류념하셨다고 판단하였다.

무선전신수의 재빠른 타전이 끝나자 또다시 딸각거리는 소리가 울리며 하얀 종이띠가 흘러나오고 두 눈을 한껏 치뜬 변신참모가 그 전신지우에 큼직큼직 글을 쓰며 토가 없는 단어들을 자기 말로 련결시켜 읽었다.

《항공감시초소설치는 총성신호만이 아니라 수기신호로도 전달받게끔 시계를 정리할것. 높은 산봉우리에서의 총성신호는 계곡도로의 운전사들과 도로복구대원들에게는 잘 들리지 않을수 있으므로 중간신호련락초소를 만들것.

고사화력기지 증설을 찬동한다.

현재 보유하고있는 포, 무기, 탄약운반을 언제까지 끝내려는가?》

김웅은 로병관을 얼핏 돌아보고는 단호한 태도로 입을 열었다.

《전선사령부는 최고사령관동지의 작전적의도에 따라 금일부터 본격적인 수송전투에 진입하였습니다. 저희들은 어떤 최악의 조건속에서도 일주일안으로 계획된 정량의 포, 무기, 탄약을 해당 계선까지 수송보장하겠음을 확약합니다. 》

로병관은 놀랐다.

 (《수송전투에 진입했다》고?-)

김웅의 말을 잘못 듣지 않았는가 하여 그를 다시 여겨보았다. 이 순간 김웅의 얼굴은 대리석조각상처럼 보였다. 거짓보고를 하였다는 죄스러운감은 조금도 보이지 않았다. 오직 굳센 각오와 결심어린 빛만이 강하게 느껴졌다.

(하긴 이 즉시 전투비상소집을 하여 수송전투를 조직하면 크게 틀린말은 아닐수 있지.)

그는 김웅에 대한 의혹과 반발을 이런 식으로 눌러버렸다.

일분도 안되여 김웅의 보고에 대한 최고사령관동지의 답전이 변신참모의 글과 말로 옮겨졌다.

《좋다. 지금 비가 내리고 장마가 계속될 조건에서 도로수리대책에 만전을 기해야 할것이다. 위험요소들을 알아보고 배수로를 깊이 째며 락석과 사태가 날수 있는 곳에 대하여서는 미리 제거하거나 井형의 방틀을 쌓아 예방대책을 취해야 할것이다. 수송보장에서 주되는 위험은 항공폭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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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산님의 댓글

강산 작성일

(위에서 계속)

최고사령부는 두개 대대의 고사포를 증파하려고 한다. 전선사령관은 그 포대대들의 도착과 함께 즉시 안변천과 그 일대의 고사포들을 철령이남에 전진배치시키게끔 조직사업을 할것이다. 질문이 있는가?》

《최고사령관동지!》

김웅의 얼굴에는 희색이 만면하였다.

《저희들은 지금 항공습격에 대처한 수송대책을 토론하던 중입니다. 저희들은 매 수송차들에 중기관총과 경기를 걸어 적기와의 대공전투를 벌리며 수송전투를 하려 하고있습니다.

최고사령관동지, 이번에는 조그마한 실책도 없으리라는것을 단언합니다.

새벽이 다가오는데 그만 주무시기를 바랍니다.》

김웅은 자기의 말을 암호문화하는 변신참모의 손놀림을 날카롭게 지켜보다가 무선전신수가 전건을 때릴 때에야 고개를 들었다.

《무선전문들을 문장화해야겠소.》

그는 로병관에게 나직이 말하고 전신지를 들었으나 눈길은 시종 전신기의 테프대에 가있었다.

좀 있어 전신지가 풀려나오자 그는 점으로 이어진 부호들을 삼킬듯 보며 이마살을 잔뜩 찡그렸다. 김웅은 모르스부호도 잘 알았을뿐아니라 그전 부관이 《폭사》되기전까지 리용하던 암호해석표도 변신참모 못지 않게 휑하니 꿰뚫고있었다. 그러나 부관의 《폭사》와 함께 최고사령부에서 새롭게 작성해보낸 암호해석표는 아직까지 통달하지 못한터라 변신참모의 연필과 입이 움직여 질 때까지 기다리지 않으면 안된다는것으로 화증이 났던것이다. 변신참모의 연필이 《전선사령관의 결심과 수송조직에 전적인 찬동》이라는 글구를 만드는것을 보자 그는 한숨소리인지 아니면 중국말의 좋다는 뜻인지 《호!-》 소리를 길게 내며 엄엄한 자세로 뒤짐을 지였다. 그의 심중을 안듯 변신참모가 청 높은 소리로 읽었다.

《나는 전선사령관의 결심과 수송조직에 전적인 찬동을 표한다. 경의를 표하며, 김일성》

김웅은 박수를 치듯 두손을 소리나게 맞잡았다가 손에 감긴 전신지를 로병관에게 넘기고 뛰듯이 방을 나섰다. 로병관이 변신참모에게 무선전문의 글을 문장화하라는 말을 남기고 김웅의 집무실로 들어섰을 때는 모든 지휘관들이 차렷자세로 일어난 상태였다.

《명령, 이 즉시 전선사령부관하 모든 수송구분대와 병기창고들은 전투비상소집에 들어간다. 병기물자의 수송과 운반조직은 포병부사령관과 병기부장이 책임지며 후방부사령관과 그 관하 차와 인원들도 포병부사령관의 조직과 요구에 복종한다.》

김웅은 병기물자반출조직에서 류의해야 할 점들과 몇몇 중요창고들에는 여기 모인 지휘참모일군들이 직접 가서 집행정형을 감독, 방조하도록 이름까지 찍어 과업을 준 후 그로서 좀해 볼수 없는 유쾌한 태도로 말을 맺었다.

《동무들, 최고사령관동지께서는 금번작전과 관련된 우리의 대책안과 결심에 대하여 전적인 찬동을 표시하며 치하를 주시였소.

신임에 보답합시다.》

모두가 방을 나설 때 로병관은 이름할수 없는 허전함속에서 지금쯤 금강교를 넘어섰을 최현과 황영학을 생각했다.

(후안무치한 일이야.)

그는 김웅의 기세넘친 얼굴을 보면 볼수록 그전까지 별로 느끼지 못했던 혐오와 반감을 참기 어려웠다. 최현군단장만 나타나지 않고 또 그의 강경한 《수송대책》발언이 없었더라면 김웅은 황영학의 문제건에만 열을 올렸을것이고 포와 탄약보장에 대해서는 장군님께 변명조의 대답만 드리며 땀을 흘렸을것이다. 그러자 김웅이 늘 뇌이군 하던 《절대의 기준》에 대한 말이 떠오르며 짙어가는 환멸에 어두움을 입혔다, 김웅은 손자의 《지(지모, 지혜로움), 신 (믿음), 인(어짐과 덕), 엄(위엄), 용(용감성, 용기)》을 지휘관들이 갖추어야 할 자질과 풍모라고 하며 그것이 수천년전의 사람이 만들어낸것이지만 오늘이나 먼 후날에도 변함없는 《절대의 기준》이라고 하였고 그러한 기준에 부합된 인물이 자기라는것을 은연중 내비치기를 좋아하였다.

그러나 오늘까지의 로병관에게 비쳐진 김웅은 《지, 엄, 용》에서는 모르겠지만《신, 인》에서는 의혹이 많았다. 오늘의 일은 바로 그가 내세우기를 즐기는《신》에도 거짓이 있음을 보여준 대표적실례라고 봐야 할것이였다.

믿음은 진실과 잇닿은것인데 그는 최고사령관동지께 거짓보고를 하였고 응당 그 《신》이 있는 사람이라면 최현에 대해서 말해야 할것이고 지휘관들앞에서 먼저 자기비판부터 하는것이 옳았을것이다.

(결국 그에겐 《엄》밖에 없지 않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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