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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소설 빛나는 아침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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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강산
댓글 0건 조회 2,165회 작성일 20-06-23 0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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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jpg

 

제 7 장
 

1

 

세면장에서 손수 면도를 하시던 김일성동지께서는 수건으로 턱과 볼을 문대시면서 집무실로 나오시였다. 전화기를 당겨놓고 두세번 송수화기를 들어올리시였건만 평양철도국장과 통화를 해내실수 없었다. 교환이 잘 나오지 않는데다가 어찌다 한번 걸린것마저 국장실이 비여있는것 같다고 하였다.

(그렇다면 김책은 어데로 갔는가?)

시간이 넘은지 오랜데 소식이 없는것이다. 그이께서는 집무실에서 나오시여 좌현의 방문을 열어보시였다. 좌현이도 없었다. 책상우에 모자가 있는것을 보면 금방 자리를 비운것이 분명하였다.

그이께서는 아래층 식당칸으로 내려가시였다. 역시 식당도 텅 비여있었다. 그이께서는 현관을 거쳐서 마당으로 나오시였다. 그때마침 좌현이가 급히 대문안에 들어서는중인데 그의 손에는 물바께쯔가 들려있었다. 뒤이어 운전수 방동무도 량쪽에 하나씩 물그릇을 들고 들어왔다. 뽐프가 고장나서 자동차방열통에 넣을 물을 옆집에 가서 길어오는중이라고 하였다.

《역으로 갑시다.》

그이께서 서두르시자 좌현이 바께쯔를 놓고 돌아서며 물었다.

《김책동지를 만나자는것이 아니십니까?》

《그렇소.》

《저기 옵니다. 막 달리다싶이 급히 옵니다. 차가 고장난것 같습니다.》

그때 김책이 대문안으로 들어섰다. 온 얼굴에 땀이 흠뻑 내배였다.

《시간이 좀 늦었습니다.》 김책은 중절모를 벗어들며 《사정이 있어서.》하고 뒤말을 이으려고 하였다.

《올라갑시다.》

김일성동지께서는 김책을 앞세우고 현관안으로 들어가시였다. 집무실에 이르신 그이께서는 김책을 의자에 앉힌 다음 자신께서는 그옆 쪽걸상에 나란히 앉으시였다.

김책은 서둘러 평양철도공장에 나갔던 보고를 하려고 하였다. 그렇게 되자 그이께서는 담배갑을 밀어주시면서 박원식을 불러 함께 마주앉는것이 어떤가고 물으시였다. 처음에는 약간 의아한 표정을 지었지만 인차 김책은 그렇게 하는것이 좋겠다고 동의하였다.

그이께서는 예정했던 시간보다 실태료해가 1시간이나 늦어졌다는 그자체가 벌써 사태의 복잡성과 긴장성을 말해주는것이기때문에 여러 단계를 걸칠 필요가 없이 박원식으로부터 직접 들어보아야겠다고 결심하신것이였다. 김책은 앞방으로 건너가 좌현에게 철도공장에 갔다오도록 지시를 주고 돌아들어왔다.

《그럼 먼저 김책동무가 료해한것부터 들읍시다.》하고 김일성동지께서는 약간 초조해하는듯한 김책의 얼굴을 쳐다보시며 말씀하시였다. 《그러니까 박원식동무는 부상을 당하지 않았습니까?》

《그 점에서는 별일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사태가 매우 어렵게 되였습니다. 시작은 철도공장이였는데 이제는 그 범위를 벗어나서 철도기관구에까지 파급되였고 그것이 이제는 보선구, 전기구, 역종업원에게까지 미쳐갔습니다.》

《역시 그렇구만.》

그이께서는 김책에게 나가보라고 하셨을 때 철도는 모든 공정이 련쇄되여있기때문에 사건이 인차 련관된 단위에 파급될것이며 동시에 산하 각 역들에까지 영향이 미쳐갈것이라고 예견하시였던것이다.

《사건은 점차 더 확대될것 같습니다. 벌써 오늘 오전에 떠나야 했던 3개의 렬차가 다 떠나지 못했습니다.》

《3개의 렬차가 떠나지 못했다면 그건 철도에서 하나의 혼란입니다. 징조가 매우 좋지 않습니다.》

김일성동지께서는 침울한 안색으로 창밖을 내다보시였다. 진회색하늘이 낮게 드리워 당장 눈이라도 내릴것 같았다. 언제나 락관적이신 그이께서 이런 정도의 우려를 표신하신다는것은 매우 드문 일이였다.

김책은 자기 판단으로 사태의 진전이 매우 심상치 않다고 보았지만 그이께서 안색을 달리 하시는것을 보게 되자 한결 더 신경이 팽팽해졌다. 철도사건 그자체도 그렇지만 며칠전에 흥남에서 로가 폭파되였고 뒤이어 련달아 그러루한 사건이 일어나고 있다는 사실이 대단히 좋지 못했다.

박원식에게서 급히 전화를 받고 긴급히 현장으로 달려나가야 했던 평양철도 공장사건이란 대체로 다음과 같은것이다.

이틀전 아침 박원식이 국장방에 찾아가 쌀방통을 시급히 빼낼 토론을 하고있는데 현관쪽에서 왁작 떠드는 소리가 났다. 박원식이 창문으로 내다보니 수십명군중이 현관앞에서 왝왝 소리를 지르며 고아대였다.

《쌀을 내라!》

《철도국장 나오라!》

《왜놈의 앞잡이 한명구 나오라.》

얼핏 보건대 몰려온 군중은 태반이 철도공장 로동자들이였다.

그들은 현관안에 들어서지는 않고 밖에서 으르기만 하였다.

《한명구 너 일은 시키고 왜 석달이 되도록 돈 한푼, 쌀 한되 안주니.》

중년나이가 된 로동자가 자기네들이 몰려온 까닭을 밝히려들었다. 그렇게 되자 이번에는 결패사납게 생긴 청년이 군중들의 기세를 압도하며 웨쳐대였다.

《너 철도관사에 있는 왜놈 피난민들한테는 배급을 줬다는데 우린 왜 안주니. 너 일본가서 공부할 때 그놈들의 개가 됐지. 당장 쌀을 내라.》

이렇게 한마디씩 하자 쌀을 타러 가자는바람에 자루를 들고 나섰던 군중들이 한층 더 기세를 올렸다. 서로 악다구니질을 하고 된욕을 퍼부었다. 오고가던 사람들이 모여들고 역대합실에서 차를 기다리던 사람들이 와야 몰려왔다. 박원식은 창문턱에 성큼 올라서서 군중들을 향해 고함을 질렀다.

《여러분! 흩어지시오. 공장에 돌아가시오. 거기 가서 이야기합시다.》

두주먹을 흔들며 애타게 부르짖건만 누구도 거기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

《국장을 내보내라!》

《쌀을 줘야 우리는 간다.》

《석달동안 쌀도 돈도 안주고 우릴 속였지. 쌀 안주면 일 안한다.》

우들우들 떨면서 방안을 왔다갔다하던 한명구가 박원식에게 애원하듯 소리쳤다.

《박동무! 이러단 큰일나겠소. 뒤문으로 먼저 빠지오.》

《국장동문 여기 가만있으시오. 내가 저 사람들을 설복하겠소.》

문짝 부서지는 소리가 나더니 방문이 쩍 열리며 네댓명의 청년이 욱 밀려들었다.

《여기 있었구나. 한명구! 어서 나와서 대답해라. 쌀을 주겠니 못주겠니.》

그들은 당장 무슨 일을 낼것처럼 을러메였다. 그러나 팔을 쩍 벌리고 막아선 박원식의 기세에 압도된 그자들은 감히 폭행은 못하고 악다구니질만 하였다.

《응! 너 공산당이지. 쌀 내놔라. 쌀을 내놓지 않으면 허리를 분질러놓겠다. 왜놈들도 쌀배급은 주고 우리를 부려먹었다. 렴치있니 이자식. 공산당 너희들이 지금 쌀장사를 하고있지. 가만 보문 뭐나 다 너희 공산당의 작간이란말이다.》

《여러분!》 박원식은 팔을 들어 흔들며 웨치였다. 《우리가 쌀이 있는것을 안주는것이 아니요. 그리구 쌀 못주는것이 철도국장이나 공산당에 책임이 있는것도 아니요. 이것은 건국도상에 있을수 있는 난관이요. 우리는 이 난관을 이겨내야 하오.》

《야 야, 건국두 먹어야 할거 아니냐. 굶어죽는 건국 우리는 싫다. 그런 건국은 공산당 너희들이나 실컷 해라.》

단야공 송순호였다.

《돌아가오. 여기는 쌀이 없소!》

박원식이 단호하게 내대였다.

《그럼 무슨 렴치루 일은 시켜, 엉? 화차방통에 있는 쌀은 누구거지? 너희만 먹겠니.》

송순호가 박원식의 목덜미를 움켜잡으며 다과대였다. 저편의 팔을 물리치려는데 한쪽옆에 서있던자가 박원식의 가슴을 내질렀다. 불의에 타격을 받은 박원식은 앞으로 푹 고꾸라졌다.

그때 한명구가 소리쳤다.

《박동무! 권총은 뒀다 뭣에 쓰자는거요. 갈기오, 갈기라구.》

그자들은 권총이야기가 나오자 흠칫 뒤로 물러서서 감히 다시 덤벼들지 못하였다.

이 사건이 철도기관구에도 알려지게 되였다. 철도공장에서 쌀을 내라고 몰려갔는데 우리도 합세해서 들이대자고 하였다. 해방바람으로 언제나 흥분되기 쉬웠던 그들의 가슴에는 단번에 확 불이 달리였다. 한두명이 가자고 선동하자 온 기관구가 삽시간에 떨쳐나섰다. 기관차를 수리하던데서도 나왔고 탄수부들도 떨쳐나섰다. 기관차대가리에 가득 올라타고 역사앞까지 몰고와서는 기적을 빽빽 울리며 소란을 피웠다. 기관구패들은 새까만 작업복앞자락을 헤치고 철도국청사쪽으로 몰려갔다. 이미 있던 군중과 합세한 그들은 기세를 올리며 층계로 달려올라갔다. 그때 총소리가 몇방 울리였다. 보안서원들이 질서를 유지하러 나왔다가 철도공장 로동자들한테 붙잡혀 매를 맞게 되자 허공에 대고 공포를 쏜것이였다. 군중들이 와- 흩어져갔다. 그 광경을 창문으로 내다본 악당들이 밖으로 내뛰였다. 박원식은 그들을 불러세워 끝까지 설복하려고 하였지만 허사였다. 쌀사건은 이것으로 일단 또 한고비 넘기였다. 이제 일이 어떻게 번져지게 되겠는지는 두고 보아야 하였다.


2

 

민기환은 기분이 매우 좋았다. 예정했던대로 일이 척척 진척되여가는것이다. 기분이 상쾌할 때면 늘 그런것처럼 피둥피둥하고 멀쑥한 목을 뒤로 젖히고 로이터안경을 거쳐 먼데를 바라보면서 제법 무릎에다 손가락장단까지 치고있었다. 황금정에 있는 고급려관 맨 서쪽 으슥한 칸에 자리잡은 그는 벌써 며칠째 방안에 들어박혀 관계자들을 하나하나 불러들이고있었다. 서울에 있을 때면 종로 번화가의 이름있는 려관 고급방에 들어 이따금씩 룡산에 있는 철도공장에 나갔다오군 하였는데 여기서는 그럴 필요가 없었다. 서울과 달리 여기 평양에서는 괜히 밖으로 드나들다가 정체가 탄로날수도 있었다. 그러지 않아도 벌써 석달어간에 서울과 평양을 네탕이나 오갔던것이다.

《흥! 조만식목사도 조련치는 않은걸…》하고 그는 입가에 싸늘한 웃음을 지었다. 그는 방금 평남도 인민정치위원회 위원장이란 와드드한 직명을 가진 조만식을 복도에서 바래고 들어왔던것이다. 민기환이 학생시절에 정주오산중학에 입학하니 조만식이 그곳 교장직에 있었다. 계보를 따지면 깍듯이 스승으로 모셔야 할 대상이지만 때가 때니만치 그리고 관계가 관계니만치 그렇게 할 필요가 없다고 보는 그였다. 조만식은 민기환을 만나기 위해 일부러 남포에서 올라온 상공인대표를 여기에 숙박시키고 그를 방문한다는 구실을 대서 찾아왔었다. 술상을 마주하고 앉은 자리에서 조만식은 《민군!》했다가 《아니 민선생!》하고 고쳐 부르고나서 동방례의지국인 조선은 장성한 자식한테도 하대를 하지 않는다고 설명을 달고 그간 서울소식을 듣자고 청하였다. 민기환은 될수록 겸손한 태도를 취하면서 정치계, 실업계, 종교계의 동향을 자세히 설명하고나서 《그쪽에서는》하는 식으로 미군의 모 계통을 분명히 념두에 두고 은어를 쓰면서 조만식에게 요구하는것을 전달하였다.

한마디로 집약하면 알맹이는 공산당세력을 압도하는것인데 목적을 달성하는데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라는 단호한 권고였다.

이러한 전제밑에 그 내용이 여러갈래로 뻗어있었다. 민기환이 직접 담당한것은 북조선에 있는 이름있는 인테리들을 남조선으로 끌어가는것이였다. 그의 첫째 대상은 경성제국대학 교수 안동권이였다.

민기환이 안동권을 직접 만나본데 의하면 매우 도고하고 내성적이여서 속심을 잘 알수 없었다. 그러나 자발적으로 서울로 가겠다는것을 보면 지향이 확고하여 별일없는것으로 보이였다. 서울에 가기만 하면 어떤 수를 써서라도 옴짝 못하게 묶어놓을 자신이 있었다. 다음에는 강선의 양춘만인데 그는 나이가 젊다보니 행동반경이 크고 종잡을수 없는점이 있다. 그러나 그는 다시 끌고나가든지 그것이 불가능하면 여기에 박아둘수도 있는 대상이다. 그중에서도 한명구는 없애치워야 할 대상이라것이 명백하다. 공산당편에 적극적으로 가담해있고 철도에 자리잡고있기때문에 영향력이 크다. 때문에 이번에 몇명 내세워 기회를 만들어 없애치우자는것이다.

한명구를 없애치우는 방법은 군중의 불만을 리용하는것이 제일 좋다. 현재 철도에서는 로임도 식량도 제대로 주지 못해 일부 로동자들이 직장에 나오지 않고있으며 불만을 터뜨리고있다. 이 기름가마에 성냥가치를 던지기만 하면 불이 확 달릴것이다. 그러면 한명구는 하는수 없이 제풀에 물러나게 된다. 그렇게만 되면 공산당에 대한 비난도 크게 퍼뜨릴수 있다. 공산당에서는 인테리를 리용하다가 수틀리면 제꺽 떼치운다고 여론을 돌리면 꿩먹고알먹는식으로 되는것이다. 때문에 철도에다가 판을 크게 벌려야 한다.

이밖에도 흥남에 가있는 강병철이와 원시범이 있고 원산에도 한두 대상이 있는데 그도 놓치지 말고 제때에 공작을 들이대야 한다. 그러나 뭐니뭐니해도 현재 중요대상은 한명구를 꺾는것이며 그것을 통해서 아직 평양시내에서 머리를 들지 못하고 숨어있는 과학자들, 작가, 예술인들도 공산당을 반대해서 일어나게 하는것이다.

《이것이 곧 공산당을 누르는 방도의 하나올시다.》하고 민기환의 설명이 끝나자 《알만하오.》하고 조만식은 떨리는 손으로 토목조끼주머니에 내리드리운 회중시계줄을 만지면서 《하지만 나로서야 방법이 있나요. 민선생이 다 처리해야지. 그런데 하나 귀띔할것은 공산당에서는 지식인들을 세차게 끌어당기고있소. 알만해요. 난 오늘 저녁 해락관연회에 나가야 하니까.》하였다.

《공산당에서 당긴다면 김책이나 오기섭이지요? 최준걸이같은건 우리가 한수 쓰기만 하면 자기네가 밀쳐버릴 대상이구.》

《그쯤 알구 선처하시오.》

민기환은 장대한 몸에 우정 무게를 싣기 위해 상체를 제끼면서 《이제 다 잘되겠지요.》하고 더이상 묻거나 설명을 하지 않았다.

조만식이와의 대화는 그것으로 끝이 났다. 다음은 서선전기회사체육단 《집게다리》를 만날 차례였다. 《집게다리》는 축구팀 주장으로서 완력에서는 그 누구도 당해낼수 없는 장사이면서 맹목성에 있어서도 그는 야수적인 특이성을 가지고있었다. 마치 태엽장치를 한 인형처럼 무분별하였다. 그를 요행 철도공장에 박아넣을수 있었으니 이제는 결심을 가지고 내밀면 될것이였다.

민기환은 가슴속에 새겨둔 몇개의 안에 하나씩 점을 찍어가며 따져보았다.

《집게다리》를 리용해서 한명구를 없애든지 옴짝 못하게 눌러야 하였다. 현재까지는 예정대로 순탄하게 사건이 번져가고있다. 철도공장에서 쌀소동을 일으켜 그 화가 한명구에게 그리고 그것을 거쳐서 공산당에 쏠리게 한것은 참말 천재적인 발견이라고 할수 있었다. 역시 미국인의 머리는 우리보다 머리 한기장만큼 크다는 말이 옳다. 《그쪽에서》는 쌀을 내라고 소동을 일으키는것은 마치 로씨야 프로레타리아가 동궁을 향해 몰려가면서 웨치던 구호 비슷하다고 하였다. 그렇다 한들 상관이 무엇인가. 공산당을 골탕먹이는데 공산당의 방법도 필요하다면 써야 한다.

민기환은 옆방에 가서 수하인물 문가를 불러왔다. 키가 작고 오돌차게 생겼는데 민기환이 꼭지만 떼면 즉석에서 두수 세수 안을 써놓는 모사이다. 민기환은 무엇을 하든 세밀한 타산을 앞세우면서 동시에 자기 위신과 권위를 고려하였다. 미군정장관을 대상하는 그 격에 맞게 처신해야 한다고 보는것이다. 조만식은 인물이 크니까 직접 상대하지만 이제부터의 인물은 모두 문가가 대상하기로 하였다.

문기척소리도 없이 《집게다리》가 나타났다. 6척장신이 찌글써하고 문안에 들어선다. 그는 해방전에 류정에 있는 서선전기회사축구팀 주장이였는데 요새는 철도공장 목공반에서 일하고있었다.

《앉으라!》

문가는 명령조였다. 진작부터 옴짝 못하게 만들어야 한다.

《이제는 어쩔 작정인가? 집게.》

흑안경을 낀 문가가 밭은 목을 뽑으면서 위풍을 보이며 곱지 않은 시선으로 노려본다.

《거사는 이제부터지요.》

《그렇기는 한데 그걸 어떻게 성취하자는가말이다.》

입을 싸쥐면서 민기환은 고개를 돌리였다. 묘주냄새가 물컥물컥 풍겨서 코를 들수 없는것이다.

《멀쩡한 정신으로는 견디기 바쁘거던요.》

《심정은 알만해. 국장실 습격까지는 비슷하게 되였는데 이제 해락관연회에서 모두 삶은 호박처럼 되지 않을가?》

문가는 계속 곱지 않은 말로 위엄을 뽑고있다.

《웬걸요. 지금 눈이 똑바로 박힌 조선사람치고 공산당 좋다는게 있는줄 아시오. 공산당을 쳐라하면 모두 들고일어날 판입죠.》

《경적필패란 말이 있어. 그래 집게. 이제 해락관에서는 어떻게 할 작정인가?》

민기환은 상아물부리를 입귀에 거느즉이 걸어놓고 우정 지켜보고만 있다.

《어떻게 할기 있는가요. 먹을것은 실컷 먹고 제 볼장을 보는거지요. 한 50명 우리 패를 끌고갔다가 케를 보아 공산당에 대한 불만을 터치고 그다음에는 공산당본부에 몰려갑니다. 그래서는 쌀을 내라고 웨치지요. 나는 그런 정도밖에 모릅니다.》

《괜찮아. 그런데 그렇게 슬슬 번져지겠는지 그건 알수 없잖나.》

문가는 역시 용이주도하게 타진한다.

《리치야 뻔하지요. 슬슬 몰고나가다가 중앙선을 넘어서면 냅다달려 백선까지 들어가면 됩니다. 그후에는 어느놈의 발에 맞던지 십중팔구는 꼴문에 들어가기마련입니다.》

《하하하.》

문가는 앙상한 어깨를 흔들며 웃었다. 그러면서 그는 너무 배포가 유한것이 마음에 걸려 좀 긴장시켜야겠다고 마음먹었다. 《거사》를 시합에 비기는 그것이 좋지 않았던것이다.

《여! 집게, 상대가 다름아닌 공산당이라는걸 알아야 돼. 공산당은 세계 6분의 1에 정권을 세우고 이제는 2분의 1을 차지할 심보란말야.》

《어쨌거나 길고짧은건 시합을 해봐야 압니다.》

《공산당 맨꼭대기에는 김일성장군님이 계시다는 소문이 있는데 그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나?》

《그건 거짓말입니다.》 《집게다리》는 취기가 차츰 더 번져 뻘겋게 된 얼굴을 흔들며 단호히 부정하였다. 《김일성장군은 나와 같은 평안도 태생입니다. 우리 평안도내기는 공산주의와 관계가 없습니다. 절대루! 개선연설을 보시오. 공산주의하자는 말이 티끌만치나 있는가. 내 말이 안믿어지나요?》

《그러나 만약 그것이 사실이라면 어찌겠는가?》

문가는 민기환에게서 공산주의자가 틀림없다는 말을 들었기때문에 확신을 가지고있었다.

《그것이 사실이라면?》하고 《집게다리》는 순간에 얼굴이 하얗게 질리였다. 《그것이 사실이라면 난 퇴장입니다. 부정선수니까요.》

《뭣이 어째?》

문가는 표독한 눈으로 쏘아보면서 겨드랑밑으로 손을 가져갔다.

그 손이 나오기만 하면 가슴에 구멍을 내는것이 나온다는것을 《집게다리》는 잘 알고있었다.

《알겠수다, 알겠어요.》 《집게다리》는 정신이 번쩍 들어 문가의 팔을 붙잡고 애원하였다. 《어찌는가 보느라고 한 소리인데 량해하라요.》

문가는 눈 한번 깜박 안하고 몇분동안 퍼렇게 이문것 같은 《집게다리》의 얼굴을 쳐다보고있다가 천천히 손을 뽑았다.

《똑똑》 문기척소리가 났다. 그때까지도 곁에서 팔짱을 끼고앉아 부하들이 노는꼴만 말없이 지켜보고있던 민기환은 긴장한 빛을 띠우고 문쪽에 시선을 돌렸다.

《누구야?》하고 문가가 자리에서 일어서자 《접니다.》하는 귀익은 목소리가 들리였다. 그는 다시 아래목에 급히 가앉으며 《문선이냐?》하고 묻자 문밖에서 《그렇습니다.》하는 소리가 들리였다.

철도정복에 독구리샤쯔를 받쳐입은 방문선이 들어섰다. 스물댓되나마나한 패기만만한 청년이다.

《앉으라.》

청년은 선생앞에 선 학생처럼 고분고분하였다. 무릎을 꿇고 정좌해 앉더니 량손을 각각 무릎우에 올려놓고 고개를 든다.

《네가 오늘 거사에서 뭣을 해야 하는지 아는가?》

문가는 우정 눈섭을 맞갖잖게 치켜올리면서 씹어뱉듯이 한마디 던지였다.

《알고있습니다.》

《뭘 아는가? 안다는게 뭔가말이다.》

창문밖을 내다보면서 다궂는다. 얼혼이 나간 방문선은 목을 차츰 움츠리면서 힐끔힐끔 눈치를 보고있다가 겨우 대답을 하였다.

《해락관에서 술을 먹다가 소동이 벌어지게 되면 공산당우두머리를 쏘는것입니다. 거기 나타난 우두머리면 아무나 상관없지요?》

《그렇다. 미상불 김용범이가 틀림없을거다. 그게 아니면 오기섭이나 김책일수 있다. 그러나 이번에 놓치지 말아야 할건 박원식이다. 강선이요 서울이요 또 어데요 하면서 우리 앞길을 간데마다 막아서는놈이 그놈이야. 그놈만 제끼면 한명구는 뿌리가 끊긴 나무와 같다. 집게, 알겠는가. 어데다 꼴을 넣어야 하겠는지.》

《똑똑히 알았습니다.》

《됐다!》

민기환은 더이상 보고만 있을수 없었다. 《집게다리》가 우정 중을 뜨기 위해 그랬는지 아니면 그의 말대로 실수를 한것인지 알수 없지만 어쨌든 그는 매우 위태위태한 느낌을 주었다. 그래 그는 방문선에게 속에 없는 소리를 하게 되였다.

《네가 혹시 공산당을 쏘라는 그걸로 이 민기환이라도 쏠 생각을 하고있는거 안야?》

《네?!》

방문선은 흠칫 놀라면서 좌우를 두릿두릿 살피였다. 말을 해놓고도 민기환은 곧 후회하였다. 그래 재빨리 기분을 돌리였다.

《그건 롱말이구.》

《아무리 롱이라도 그런 말이야 어떻게 합니까?》

목이 조여드는것 같은 느낌이 있었던지 방문선은 독구리샤쯔목깃을 잡아당겨놓고 고개를 외로 돌리며 말하였다.

《이번에 성공하면 나 미국에 공부시키러 보낸다던거 약속 지켜야 합니다.》

《그래 난 일구이언 없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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