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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소설 빛나는 아침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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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강산
댓글 1건 조회 2,192회 작성일 20-06-21 09: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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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jpg

3

 

며칠후였다.

강병철은 로의 양생기간이 불안전하다면서 시험을 2일간 연기할것을 주장하였고 공장장 리연수는 불안전한것은 당신의 심리일뿐이지 여직까지의 공칭기간은 되고도 남는다고 우겨대였다. 리연수는 자기딴에 타산이 있었지만 그것을 공개할수가 없었다. 평양에서 회의가 있은 후 오기섭에게 개별적으로 불리워가 일제때인테리를 함부로 끌어들였다는 엄격한 책임추궁이 있을터이니 그리 알라는 경고를 받았던것이다. 그때 오기섭은 강병철이라고 지명은 하지 않았지만 분명히 그를 념두에 두었던것만은 사실이다. 요새 오기섭이 함흥에 와있다는 소문도 있어서 리연수는 강병철의 처리가 매우 난처했던것이다. 《태평양로조사건》으로 함흥형무소에 미결로 있을 때 련루자들을 불지 않기 위해 그는 고추가루물을 두주전자나 마신적이 있었고 손톱눈에 참대송곳을 꽂고 몇번이나 기절한적도 있었다. 그후 그는 서대문형무소에 이감되여 8년을 복역하였다. 그동안에 받아안은 온갖 학대, 고문, 멸시 그것이 오늘에는 반일감정으로 온몸이 불타오르게 하였다. 때문에 강병철이에 대해서도 왜놈들에게 복무한 기사였다는 한가지 리유만 가지고도 치를 떨었다. 하지만 그는 이때 지나치게 자기 주장을 내리먹였다가 그 결과가 좋지 않으면 뜻하지 않게 《뜨물바가지》를 뒤집어쓸수 있다는것을 고려하여 2일간 연기하는데 마지못하여 동의하였다.

《그대신 2일후에는 점수를 빡빡하게 매길테니까 그건 각오해!》

리연수는 적의가 로골적으로 어린 얼굴로 안경알속에서 파르르 떨고있는 강병철의 눈을 한동안 지켜보았다.

강병철은 정신없이 직장으로 돌아나왔다. 2일간 기일을 연기했다는것이 오히려 그에게는 그 어떤 큰 불안과 압력을 느끼게 하였다. 그의 계산에 의하면 최저계선이 2일이다뿐이지 그것이 안전수치는 아니였던것이다. 마음이 한껏 더 불안하였다. 불우한 한 인간의 운명이 합금로와 공장장 리연수 그 새짬에 끼워서 할딱거리고있다고 생각되였다. 때마침 작업반원들이 휴계실에서 더운물을 마시며 쉬고있었다.

《어떻게 됐어요?》

임형춘이 쓰거운 낯으로 물었다.

《2일간 더 연기하기로 했소.》

《아니 안전하게 하자면 닷새는 더 있어야겠다고 하구선 왜 2일이요.》

《글쎄 그렇게 됐소. 그것도 겨우.》

강병철은 최한덕아바이한테서 쌈지를 달래서 마라초를 굵직하게 말아물었다.

《내 당장 공장장과 뚜꾸고오겠수다. 제가 뭘 기술을 안다고 우릴 숙보는가.》

《형춘이!》 최한덕아바이는 문을 지끈지끈 후려닫고 나가는 임형춘을 불러세웠다. 《그런건 우리가 상관할게 못돼. 해방은 됐지만 집안에 애비에미가 있는것처럼 공장의 웃사람은 공장장이거던. 정 의견있으문 파견원동지를 만나!》

점검작업이 계속되고 기일을 놓고 계속 론의가 분분한 가운데 어느덧 48시간이 지나서 합금로시험을 하게 되였다. 그동안 설비가 적지 않게 복구되였다. 천정기중기, 2대가 살아났고 용수뽐프도 돌아갔으며 그밖의 부대설비의 소소한것까지 다 갖추어졌다. 그중에서도 제일 난공사였던 로체보수도 손색없이 말끔히 끝났다. 강병철은 소재를 장입하기전에 사다리를 타고 내려가 벽체부분을 세세히 점검하였다. 상상했던것보다 훨씬 더 견고하게 굳었다. 그는 작업반원들을 정렬시켜놓고 차례로 지시를 주었다. 그것으로 보수로부터 생산에로 작업공정이 넘어가게 되였다.

잠시후부터 기계와 설비들이 움직이기 시작하였다.

처음에 가슴을 꿈틀할만치 충격을 일으키게 한것은 소재의 장입이였다.

원료덩어리들은 요란한 소리를 내면서 로안으로 설걷어내려간다. 그것이 몇번 거듭되여 로안에 소재가 무드기 쌓이게 되자 이제는 시꺼멓고 견고하게 생긴 카봉이 쑥 내려가면서 전류가 흐르기 시작한다. 불꽃이 일었다. 합금로와 함께 온 공장안이 부르르 떨면서 붕붕 소리를 내였다. 불꽃은 연방 튕기면서 사위를 눈부시게 비치였다.

강병철은 운전대를 지키고있었다. 전류, 전압, 용수, 가스 등의 바늘이 일시에 떨었다. 이때 그는 침착하게 계기판을 들여다보고있었지만 바늘이 지시하는 그 계선이 무엇을 말해주는지 알지 못할 정도로 흥분되여있었다. 담배를 붙여물기도 하고 상의를 벗어서 작업대우에 아무렇게나 던져버리기도 하고 또는 탁자우에 놓인 사발시계를 이쪽저쪽으로 돌려놓기도 하였지만 바로 이 시각에 그것이 그가 해야 할 응당한 행동이였는지 어쩐지 알지 못하고있었다. 그러다가 그는 홀연 랭랭한 기분에 잠겨 민감하게 하나의 초점에로 시선을 집중시켰다. 《전압!》하고 약간 사이를 두었다가 배전공이 조절기쪽으로 손을 뻗쳤을 때 《2단투입!》하고 구령을 주었다. 철커덕하고 조절기에서 용수철 튀는 소리가 나는것과 동시에 그 어떤 괴물이 용을 쓰는것과 같은 괴이한 소리가 나면서 모든것이 일시에 와르르 떨었다. 다음순간 《꽝!》하고 폭음이 일면서 지진파가 울리듯 철골들이 후두두 떨었다. 로동자들이 비명을 지르며 란간밑으로 뛰여내리기도 하고 철골뒤에 숨기도 하였다. 현장안은 온통 연기에 뒤덮이였다. 푸른 가스가 로두리를 천천히 감돌고있다. 모든것이 실로 눈깜빡할사이에 벌어졌다. 강병철은 창문을 열어잡고 사고현장으로 뛰여내리려 하였지만 그렇게 하지 못하고 벽에 의지한채 가까스로 몸을 지탱하였다.

《누가 다치지는 않았소?》

《여기로 다 모이시오!》

어데선가 멀리서 울리는것 같은 고함소리를 들으면서 몇초동안 서있던 강병철은 밑둥이 잘린 통나무처럼 철썩 땅바닥에 나가자빠졌다.

현장을 지키고있던 리연수가 작업반원들을 확인하였다. 임형춘이 다리에 화상을 입었고 리순만이 벽돌장에 맞아 머리가 터졌다. 그외는 별일 없었다.

《강병철이 어데 갔는가.》 리연수는 급히 소리쳤다. 《강병철을 붙잡으라! 부상자는 병원에 업고가라. 아니 의사를 오라고 하라. 보안서를 부르라!》

얼마후 배전실바닥에 의식을 잃고 쓰러진 강병철을 맞들어 내왔다. 휴계실에서 구급처치가 진행되였다. 의사가 없다보니 의학상식이 있는 사람들이 약창고에서 알만한 약들을 들어내다가 처매기도 하고 먹이기도 하였다.

《인공호흡을 시키라.》 리연수가 사납게 호통을 쳤다. 《이대로 죽어버리면 뭐가 뭔지 모르게 된단말이다.》 옆에서 지키고있던 리연수는 강병철이 숨이 돌아서는것을 보고 또 엉뚱한 생각을 해냈다. 《음식물을 다 토하게 하라! 혹시 약을 먹었을수도 있어.》

이런 식으로 리연수는 연방 새로운 추리를 해내였다. 그러나 그의 음성이나 얼굴표정은 밝지 못하였으며 지어 진속을 알수 없을 정도로 당황했고 얼룩진것이였다. 책임이 두려워서였다. 오기섭이 사건을 알기만 하면 직통으로 《상급의 지시를 묵살하고 파괴행위를 용납한자》라는 규탄을 받을것이며 《저놈이 친일분자보다 더 나쁜놈이다.》하고 잡아넣을것이다. 그런가 하면 이제 강병철이 의식이 회복되여 무어라고 변명할지 무슨 소리를 줴칠지 알수 없는 노릇이다. 《당신이 하라는대로 해서 이렇게 됐소.》할수도 있고 《솔직히 말해서 나는 고의적으로 그랬소.》할수도 있는데 어느것이든지 공장장으로서는 받아안을수 없는 고통거리였다.

인공호흡과 연방 들이댄 강심제 주사의 덕에 강병철은 드디여 의식을 회복하였다. 휴계실 장의자에 쓰러졌던 그가 눈을 뜨자 벌떡 일어나면서 두리번두리번 좌우를 살펴보기 시작하였다. 옆에 앉은 최한덕아바이를 띠여보자 그는 와락 부둥켜잡으며 소리쳤다.

《아바이! 카봉에 들어가는 전원예방기를 봐주시오.》

《흥? 전원예방기!》하고 리연수가 아니꼽게 낯을 돌리였다. 《여보, 시험은 끝이 났어. 락제요. 연극이 왜 그렇게 빤드름하오.》

그러거나말거나 강병철은 실성한 사람처럼 《예방기를 보라!》 또는 《카봉의 습도를 보라!》하고 고함을 지르며 벌떡벌떡 일어나는것이였다.

리연수의 지시에 의하여 보안서장 박인국이와 최한덕아바이가 병철을 지키였고 그외는 모두 사고현장을 수습하는데 착수하였다. 사방에 널린 쇠붙이들을 한데 모으고 로를 식히기 위해 랭각수를 쏘아넣었다. 앞을 가려볼수 없게 증기가 피여오르고 먼지가 떠돌았다. 리연수는 로앞에 발을 쩍 벌려디디고 서서 이것저것 지시도 하고 간간이 강병철에 대해서 된욕을 퍼부었다. 평양에서 돌아오는 참 가차없이 내쫓아야 하는데 파견원의 권고에 못이겨 두고보자는 식으로 하였더니 결국은 이모양이 된것이다. 결국은 제손가락으로 제눈을 찌른 격으로 되였다. 그러나 종당의 책임소재는 어떻든간에 강병철의 교활하고 간악하며 지어 《살을 아끼지 않는 해독행위》는 이가 갈릴 지경으로 적개심을 불러일으킨다. 며칠후에 온 공장 종업원들을 다 모아놓고 경위를 알려준 다음 없애치워야 한다. 그렇게함으로써 아직 눈뜨지 못한 프로레타리아의 각성을 높여야 할것이다.

석탄먼지가 뽀얗게 오른 장화를 두거덕거리며 리연수는 합금직장안을 돌고있었다. 떡판처럼 쩍 벌어진 등판은 맥없이 기우뚱거리였고 총이 센 머리카락은 꼿꼿이 일어났다. 서대문형무소에 10년가까이 있으면서도 언제한번 이렇게 녹초가 되게 맥빠진적이 없었는데 졸지에 딴 사람처럼 되였다. 그가 내화벽돌과 정광이 뒤섞인 원료작업장 철길을 걸어가고있을 때 뒤에서 부르는 소리가 들리였다.

《공장장동지!》

고개를 돌리니 보안서장 박인국이 허리에 찬 일본도를 붙잡고 달려오고있었다.

《왜 그러오?》

《범인을 어떻게 할가요?》

《범인?》

리연수는 쓰거운 웃음을 띠고 반문하고나서 《범인이야 당신네가 처리해야 하잖소.》하고 화를 내였다.


4

 

징을 박은 가죽장화가 콩크리트바닥을 밟는 소리가 요란스럽게 울렸다. 그것이 복도에서 층계쪽으로 그다음에는 철문쪽으로 옮겨지더니 자물쇠 다루는 소리와 함께 거치른 고함소리로 되여 지하실을 울리였다.

《강병철선생, 그만큼 생각해봤으면 이젠 실토할 때가 되지 않았소? 나오오.》

마루바닥에 가마니를 깔고 누워있던 강병철이 머리를 쳐들고 올려다보았다. 이미 낯이 익은 공장보안서장 박인국이였다. 일본군대의 붉은 가죽장화에 국방색 모직장교복을 입어서 머리에 올려놓은 검은색 캪만 아니였다면 그냥 그대로 일본군장교라고 할수 있었다. 그러나 징병 제1기에 끌려나가 만주 봉천에서 쏘련군대에 의해 풀려나온 그는 머리끝까지 반일사상이 꽉 차있었다.

《빨리 나오오. 솔직하게 자백하면 무사할테니까.》

박인국은 동정하는투로 말은 하였지만 그의 시선은 대단히 긴장돼있었다. 그것은 그의 체질로 된 일제에 대한 반감과 함께 어제 나타난 평양손님 오기섭의 엄포에 의해 한층 더 거칠어졌기때문이였다.

오기섭은 말하기를 《혁명적인 프로레타리아가 어쩌문 그 나약한 인테리의 입을 벌리게 하지 못하는가. 그놈은 명백히 친일분자요. 어느 모로 보나.》라고 했었다. 그래 그는 오늘 하루만 시간을 주면 솔직한 자백을 받아내겠다고 다짐한것이였다.

강병철은 오금이 저리고 쑤시여 인차 움직여낼수가 없어서 끙끙 신음소리를 해가며 처음에는 무릎을 펴고 또 그다음에는 목을 세우는 등으로 한참이나 모대기다가 겨우 일어났다. 일본에 있을 때 시작되였던 관절염이 습기찬 방에서 다시 도진 모양이다. 벽을 붙잡고 겨우 문칸까지 발을 내짚은 그는 박인국이 팔을 부축해서야 가까스로 몸의 균형을 유지하면서 서장실 걸상에 걸터앉게 되였다.

《밤사이에 좀 생각해봤소?》하고 박인국은 책상우에 놓았던 로이터안경을 코에 걸면서 위엄있게 물었다. 《생각을 복잡하게 할거 있는가. 왜놈들한테서 공장을 파괴할 지시를 받았으면 받았다고 한마디 하면 될게 아니요. 또 그렇지 않고 자기 마음으로 이놈들을 다 망하게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해서 그랬다면 그렇게 말하면 되오. 만약 강선생이 끝까지 뻗댄다고 하면 우리도 할수 없이 신사식으로는 못하고 입을 열도록 하게 될테니까. 그럼 서로 재미없잖소. 우리도 노상 주먹치기가 아니라 근거를 쥐고있다는걸 알아야 돼. 알겠소?》

강병철은 머리가 뗑해서 아무것도 알수 없었다. 우선 건강이 파괴되여 정상적인 사고를 할만한 기력이 없었고 또 박인국이 차츰 더 란폭해지고 불쑥불쑥 내대는것이 안정된 사색을 할수 없게 만들었다. 강선생이라고 매번 불러놓고는 반말이 아니면 해라투의 죄인취급을 하고있다. 물론 죄라면 죄로 될수 있겠지만 결과만 보지 말고 의도도 참작해야 할것이 아닌가. 두석달 걸려서 복구할 전기로를 불과 20여일 걸려 원상대로 만드노라고 강병철은 실로 모든 정력을 다 쏟아놓았다. 앉았다일어나면 하늘이 새노래지고 땅이 빙글빙글 돌았다. 그러나 이제 로에서 강철이 나오면 그것만으로도 그 로고를 다 씻고 몸이 거뜬해질것으로 알았었다.

《왜 그렇게 갑자기 머저리짓을 해. 응, 그래 강병철이 계속 그렇게 입을 봉하고 뻗칠셈인가.》

그러거나말거나 강병철은 박인국이 받아적겠다고 내놓은 종이장우에 시선을 던진채 입을 열지 않는다. 박인국은 약이 올라 계속 다궂는다.

《우리는 처음에 당신이 말한대로 실수했는가 했댔소. 그러나 알고보니 당신은 고약한 친일분자요. 바른대로 말하오. 어째서 로를 폭파시켰는가?》

말투와 기분으로 보아 이제는 완전히 죄인취급을 하고있는것이다. 《고약한 친일분자》 그 표현이 어떻게나 랭랭했던지 예리한것으로 심장을 콱 찌르는것 같았다. 온몸에 찬기운이 찌르르 미쳐가면서 정신이 혼몽해지기까지 하였다. 이전생활을 두고 그렇게 말한다면 피를 씹으면서도 접수할수 있고 또 접수하는수밖에 없겠지만 8. 15후를 놓고 특히는 이 흥남을 놓고 그렇게 말한다면 그것은 너무 억울한 루명이였다. 오히려 그와 반대로 자기딴에는 그렇게 하는것이 자신을 바로세우는 길이며 또 애국의 길에 통해있다고 여기였던것이다. 로의 폭발을 두고 말한다면 그것은 큰 잘못이라는것을 인정할수 있다.

왜냐하면 로복구기일이 너무 짧았으며 그나마 내화물축조공이 없어서 강병철이 자신의 손으로 직접 쌓은것이였다.

《거듭 말하지만 난 로폭발을 고의적으로 하지는 않았소. 그것은 나혼자 한것이 아니니 작업반동무들에게 물어보면 확실한것을 알수 있소. 난 어디까지나 량심적이요. 량심에 꺼리는 일은 할수 없었소?》

첫 대답이 뜻밖에 완강하고 전날과 추호의 차이도 없는데 놀라지 않을수 없어 박인국은 안경을 벗었다꼈다하면서 어쩔줄을 몰라하였다.

《그래? 량심에 꺼리는 일은 할수 없었다. 알만해. 이제 그 <깨끗한 량심>을 보여주지.》

확실히 그것은 위협이였다. 하지만 강병철은 겁을 먹지 않았다. 말그대로 그는 량심에 꺼리는것이 전혀 없었다. 해방이 되는 그날부터 다시는 두개의 자아를 안고 살지 않기로 결심한 그였던것이다.

8. 15해방을 그는 차원이 높게 조국과 민족과 결부시키지는 못했었다. 물론 이에 대하여 생각 안한것은 아니지만 그것은 사실상 아득히 먼데 놓여있는 하나의 관념이였다. 그러나 두개의 자아로부터 단 하나 자기 량심이라는것으로 지탱되는 《나》로 살수 있다는것을 그는 8. 15로 보았었다. 그렇기때문에 그는 설사 최악의 경우에 림한다 해도 로폭파는 고의적이 아니라는 량심적인 대답을 변경시킬수 없었다. 그러나 운명은 얼마나 지꿎게 인간을 희롱하는가. 원인과 과정에는 차이가 있었지만 로의 폭발은 1944년 야하다에서도 한번 있었다. 그때에도 공장적인 범위를 벗어나 경찰서구류장에 구금되였었다. 로가 폭파되고 3명의 조선인로동자가 화상을 입었다. 그 사건을 《야스가와사건》이라고 불렀다. (강병철은 그때 야스가와로 창씨되여있었다.) 그런데 이번에 또 어슷비슷한 사고가 났다. 로는 폭발되고 일부 설비에 손상이 갔으며 로동자 1명이 화상을 입었다. 야하다에서는 일본경찰이였고 지금에는 자기 민족의 손에 의해 구금된것이다. 이 일이 앞으로 어떻게 번져갈지 그것은 누구도 몰랐고 강병철이자신도 전혀 예측할수 없었다. 야하다에서는 고문을 당한끝에 병원으로 실려갔다가 다시 공장으로 나갈수 있었는데 여기서는 어떤것으로 될는지.

박인국은 한참동안이나 모멸에 찬 시선으로 쏘아보고있다가 낯색하나 달리하지 않는 강병철을 향해 분격을 터뜨렸다.

《당신같은 인간이 있었길래 우리 조선은 36년간 일제의 식민지로 되였던것이요. 친일분자 강병철!》

했으나 강병철의 얼굴에는 여전히 아무런 심리적변화도 나타나지 않았다. 그러자 이번에는 박인국이 입가에 의미있는 미소를 지으면서 옆방에 대고 소리쳤다.

《여, 송동무! 거 그 동무 데리고 들어오우.》

옆방에서는 마치 기다리고있었다는듯이 의자 옮겨놓는 소리가 몇번 나더니 푸른 뼁끼도색을 한 문짝이 쩍 열리면서 량쪽겨드랑에 짝다리지팽이를 집은 수척한 청년이 하나 나타났다. 그뒤에는 푸른색 군복을 입은 송동무라는 패기만만한 청년이 따라섰다.

《여기 앉소.》

박인국이 강병철이 앉은 맞은켠 의자에 짝지팽이청년을 앉히더니 《여보, 강선생! 이 청년을 한번 자세히 보우. 그런후에 우리 오손도손 이야기해보기요.》라고 하였다.

강병철은 아무런 충격도 느끼지 않으면서 고개를 들어 짝지팽이 청년을 쳐다보았다.

《알만한 사람이 아니요?》

하고 박인국이 한걸음 다가섰다. 어데선가 본것 같기도 하고 또 생판 처음보는것 같기도 하였다.

《어떻소. 대답해보우. 그거야 어려울것이 있소.》

《잘 모르겠소. 어데서 본것 같기도 하고 전혀 본적이 없는것 같기도 하고.》

《그렇다. 그러면 최성우동무. 동무가 자세히 말해보우. 이 강선생이 알아듣게말이요.》

그들사이에는 이미 사전토론이 있었던 모양이다. 최성우는 강병철이 앞으로 얼굴을 내대면서 떨리는 목소리를 내였다.

《나를 모르겠소? 정말.》

그렇게 되자 강병철은 더욱더 얼떠름해졌다.

《당신은 야하다제철소 제3호로 제2교대 기사였지요? 야스가와상, 나는 그 로밑에서 슬라크를 쳐내고…》

침착하게 앉아있던 강병철은 와뜰 놀랐다.

최성우는 바로 최한덕의 맏아들이다. 얼마전 그는 집에서 멀거니 창밖을 내다보다가 우연히 사람들 틈에 끼여 걸어가는 강병철의 얼굴을 띠여본적이 있었다. 그날 저녁 그는 집에 들어온 아버지에게 이 사실을 말하면서 그 사람이 분명 일본서 본 야스가와라는놈같은데 어쨌으면 좋겠는가고 물었다. 그러나 최한덕은 벌컥 성부터 내면서 야스가와면 어떻고 무슨 상관이냐, 설사 그 사람이라고 해도 지금 일하는것을 보면 량심적으로 건국에 이바지하려는 각오가 대단한 사람이니 아무 말 말고 가만있으라고 욱질렀다. 아버지가 하도 펄펄 뛰기에 최성우도 그럴만하고있었는데 아니나다를가 로가 폭파되였다는 소문이 짜하니 들려왔다. 그는 더이상 참을수가 없었다.

최성우가 이 공장에서 일하기 시작한것은 18살때부터였다. 2년째 되던 1943년 겨울 이 공장에도 전체 종업원들에게 징용령이 내렸다. 자의로 공장을 리탈할수가 없게 되였고 모든 면에서 군사규률이 적용되였다. 그이듬해 이 공장에서 최성우를 포함한 30명의 로동자가 야하다를 비롯한 일본 강철공장들에 끌려가게 되였다. 최성우는 야하다 제3호로에서 노예로동을 강요당하기 시작하였다. 조선로동자에게는 원시적인 집단기식과 살인적인 유해직종밖에 차례지지 않았다. 외출이 금지되고 앓는다 해도 치료할수가 없었고 하루에 50개 질통분의 슬라크를 리유여하불문하고 져내야 하였다. 온몸에 슬라크가루가 게발리고 며칠에 한번씩은 손이나 발 그리고 목덜미에 화상을 입군 하였다.…

박인국은 또 다그어댔다.

《그래 아직도 모르겠는가.》

강병철은 아무 말도 할수 없었다. 이것은 신에 의해서만 꾸며질수 있는 운명의 교차이기때문에 이 앞에서 변명할수도 없는것이고 또 그 어떤 진실이라는것을 밝혀보았대야 아무 소용이 없을것이였다. 다만 그는 선량하면서도 절망적인 시선으로 짝지팽이청년을 물끄러미 쳐다볼뿐이였다.

최성우는 일본에서 강요당한 인간이하의 멸시와 불이 펄펄 이는 뜨거운 슬라크질통 그런것이 단꺼번에 회상되여 목안이 마르고 입술이 타는듯 하였다. 물론 앞에 앉아있는 안경쟁이 야스가와가 그가 당한 모든것의 책임을 다 질수는 없겠지만 그를 통해 환기된 감정은 뼈저린 원한과 복수심뿐이였다. 최성우는 갑자기 무슨 생각이 들었던지 염낭에서 담배 한대를 꺼내들고 그것을 강병철이 앞에 불쑥 내대였다.

《엇소, 이번에는 내것을 한대 피워보우. 그때 당신은 조선로동자들에게 쩍하면 담배를 권하면서 서로 고통을 참아내자고 했었지. 그래 한가지 물어보기요. 당신의 잔등에 큰 흠집이 있지? 3호로에 있던 로동자들이 일본놈 아오끼가 연구했다는 로에 불을 넣다가 폭발했었지. 난 거기에 없었지만 한짝패의 말을 들어서 알게 되였던거요. 그때 당신은 잔등이 데서 흠집이 생겼소. 내가 알고있는 야스가와라면 그것이 있어야 한단말이요.》

최성우는 점점 더 굳어져가는 강병철에게 달려들어 줄무늬가 간 상의의 덜미를 잡고 쭉 내리그었다. 아닌게아니라 강병철의 잔등에는 험상하게 생긴 상처자국이 하나 있었다.

《보라! 이것이면 더 말할 필요 없을거요. 야스가와, 인정하는가, 당신은 왜놈의 개질을 하면서 우리 조선로동자들을 끌고갔던거야. 아오끼가 연구했으면 아오끼에게 해보라고 하면 될것인데 왜 당신은 그것을 맡아나섰는가. 왜 그런 험한 판에 우리 조선로동자들을 내몰았는가. 당신은 왜놈의 졸개요!》

얼굴이 하얗게 질린 강병철은 와들와들 몸을 떨었다. 그러나 그는 모지름을 쓰면서 한마디 웨치였다.

《그때 나는 그렇게밖에 할수 없었소.》

《무엇이 어째? 그때 야스가와, 넌 우리 로동자들이 위험해서 못하겠다고 뻗대니까 따귀를 치고 목덜미를 끌고 현장으로 갔지.》

《그렇소. 그것도 사실이요.》

《그럼 너는 뭐냐, 야스가와, 말하라!》

최성우는 주먹으로 책상을 치며 고함을 지른다.

입을 딱 벌린 강병철은 신음소리를 내였다. 그것은 사실이였다. 따귀를 친것도 목덜미를 끌고간것도 다 사실이였다. 왜? 무엇때문에? 그것은 제목숨을 살리기 위해서였지, 그리고 그와 함께 같은 동포의 가련한 처지를 동정해서였지,

강병철은 머리를 떨어뜨리였다.

눈에 달이 오른 최성우는 지팽이를 휘둘러 갈기려고 하였다.

《여! 여, 최성우 그럼 못써!》

박인국은 지팽이를 빼앗으면서 《이제 제입으로 다 자백하게 하고 인민재판을 할테니까 참소.》하고 씹어뱉는 소리를 하였다.

그러거나 말거나 최성우는 분노를 이기지 못해 펄펄 뛰였다.

《보안서장동무! 이자가 노는 꼴을 보니 안되겠습니다. 그때 부상당한 로동자가 겸이포제철소에 있다는데 거기에 련락해서 저자를 끌어다가 즉살탕을 먹이게 합시다.》

한참 왁짝 떠들고있을 때 최성우의 아버지 최한덕이 기침을 컬럭컬럭 깇으며 나타났다.

《야, 너 거 무슨 망동이냐. 썩 물러가지 못해!》

들어서자마자 대번에 호령부터 한다.

《아버진 왜 자꾸 그래요. 저런 반동을 그냥 두면 건국에 지장있어요.》

《어서 나가라! 내 알아서 처리할테니 넌 삐치지 말아!》

최성우는 벌겋게 충혈된 눈으로 마뜩지 않게 아버지를 쳐다보다가 지팽이를 휘둘러 짚으며 밖으로 씽하니 나가버린다.

《서장동무!》 최한덕은 의젓한 목소리로 박인국을 부르며 한걸음 나섰다. 《미안하네만 잠간 자네도 나가주게. 내 단둘이서 한두가지 물어볼 말이 있네.》

오랜 로공이고 밸머리가 보통이 아닌것을 안 박인국은 좋을대로 하라는 식으로 군말없이 나가버리였다. 최한덕은 강병철이 앞으로 의자를 당겨놓고 몇분동안 침묵을 지키였다.

숨막힐듯한 순간이 한초한초 지나갔다. 최한덕이 입을 열었다.

《암만 보아도 난 자네가 나쁜놈같지 않은데 자네 생각은 어떤가?》

강병철은 대답할수 없었다. 다년간 로동에 찌들고 인생고초를 맛볼대로 맛본 로공이 동정이 함뿍 어린 시선으로 쳐다보고있는것이다. 사고를 쳐서 이 순간까지 그는 목에 칼이 들어오는 경우가 있다 하더라도 진실을 밝히려고 결심하고있었다. 로폭발은 고의적이 아니고 우연한 사고라는것을 증명할수 있는 기술적조건들을 얼마든지 들수 있었다. 그러나 이 순간에, 더구나 야하다에서 저질렀던 쓰라린 상처마저 들추어내게 된 이 마당에 와서 우연하고 공교로우며 한생 후회하여도 모자랄 운명의 비꼬임을 구차하게 빌붙으면서 수습하고싶지 않았다. 일제때는 잘못 살았다. 그러나 지금은 량심적으로 살고싶고 또 그렇게 행동한것도 사실이였다. 그러나 현실은 그 보잘것없는 량심마저도 받아주려고 하지 않는다. 기술적조건도 그렇고 또 이 사건을 둘러싼 몇몇 인간들 그들모두가 한 지식인의 가냘픈 성의마저 받아주려고 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구태여 운명에 저항할 필요가 있으며 또 그렇게 했다고 한들 그것이 통할수가 있겠는가. 가령 오늘은 그럭저럭 무사히 넘길수 있다치자. 그러나 이제 앞으로는 오늘 이 정도가 아니라 보다 엄청난 사건이 생길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때 가서 오늘을 후회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아바이!》하고 강병철은 뜨거운 입김을 후 내불고나서 잠간 사이를 두었다가 명확하게 뒤말을 이었다. 《나는 나쁜놈입니다.》

《나쁜놈? 그건 거짓말이다. 난 그 눈을 보면 다 안다. 나쁜놈은 눈이 그렇게 맑지 못해. 똑똑히 말하라!》

《똑똑히 말해서 나는 나쁜놈입니다.》

《그래? 정 그렇다면 그럼 내 묻는 말에 대답하라!》

최한덕은 붉은실이 왔다갔다하는 눈을 부라리였다.

《대두박을 삶아먹고 손에 피가 나게 벽돌을 쌓은것이 가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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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산님의 댓글

강산 작성일

(위에서 계속)

강병철은 대답할수 없었다.

《또 한가지, 빨리 특수합금강을 뽑아서 정머리를 만들어 탄광에 보내자고 하던것도 거짓말인가?》

역시 입이 열리지 않았다.

《또 한가지, 장군님 연설을 듣고 그길로 여기로 달려왔다는것도 가짜겠다?》

이때 왈카닥 가슴에 치받치는 분노, 모멸 그런 감정을 억제하지 못해 강병철은 화를 내듯이 큰소리로 웨치였다.

《아바이! 나는 나쁜놈이라고 하잖소.》

《나쁜놈이라구? 정신을 차리게 해줄테다!》

무쇠덩이같이 억센 최한덕의 주먹이 강병철의 볼통으로 날아들었다. 눈에서 번개불이 번쩍하는 순간 강병철은 《아이구!》하고 신음소리를 내면서 의자에서 바닥에 떨어져내렸다.

《속일놈이 속인다면 우린 그렇겠거니 하겠다. 시라소니같은자식!》

최한덕은 훌쩍 일어나 나가면서 무어라고 웅얼거리였지만 알아들을수는 없었다. 강병철은 울음이 터져올랐으나 혼신의 힘을 다해 참았다. 너무나 참되고 선량한 존재앞에서 주눅이 든것이다. 바로 강병철이 자기자신이 최후에 내대며 변명하고싶었던 사실들이 아바이의 입을 통해서 하나하나 다 나왔던것이다. 그러나 그의 가슴속에서는 이렇게 감격을 안고 조용히 물러나는것이 좋지 앞날에 이와 반대되는 경우에 직면하면 그때는 어떻게 될것인가 하는 또하나의 강병철이 머리를 쳐드는것을 어쩌지 못하였다. 지금 이 자리에서 그것을 내대고 동정을 사서 요행 모면했다고 하자. 그러나 야하다사건은 이제 무엇으로 변명해낼것인가.

야하다사건의 진상이란 이런것이였다. 태평양전쟁이 차츰 절정을 향해 치달아오르게 되자 강철수요는 그에 비례해서 급속히 뛰여올랐다. 거기에 응하기 위해 각종 연구사업이 진행되였는데 아오끼란놈이 속성제강법이라는것을 연구해서 실험을 하게 되였다. 실험은 위험을 동반하였기때문에 회사측에서는 조선로동자만을 쓰기로 내정하였다. 조선로동자들에게 작업지시를 해야 했던 아오끼는 반일감정을 운운하면서 자기대신 조선사람인 강병철이 하는것이 좋겠다고 제기했다. 그통에 강병철은 놈들의 협박을 못이겨 실험작업을 하게 되였다. 시험을 거절하면 아무때고 흔적도 없이 이 세상을 하직해야 했고 그것을 접수하게 되면 큰 모험을 무릅써야 하였다. 이런 새짬에 끼운 그는 할수 없이 실험에 응하게 되였는데 예견했던대로 실험은 실패로 끝이 났다. 이 과정에 강병철은 여직까지 한생을 통해서 겪어야 했던 모든 고뇌보다 더 큰 심적고통을 겪어야만 하였다. 로동자들은 죽음의 구뎅이에 제발로 걸어들어갈수 없다고 뻗대였다. 강병철은 눈물을 머금고 그들을 설복해야 하였다. 그 과정에 로골적으로 《왜놈의 졸개》라는 악담까지 듣게 되였다. 그러나 끝까지 반대하면 어느때 모두 바다에 싣고나가 물에 던져버리게 될는지 알수 없었다. 그렇기때문에 그는 조선로동자들을 위해서 또 자기자신을 위해서 혀를 씹으면서 모험을 하고 요행수를 바라는 길을 선택하게 되였던것이다. 이리하여 그는 15명의 조선로동자들에게 따귀를 쳐가며 시험로에 불을 지필것을 강요하게 되였으며 마침내 로가 폭파되여 3명의 로동자와 함께 자기자신도 화상을 입게 되였었다. 당시 그는 병원에 누워서 제가 저지른 행위에 대해서 랭정하게 평가해보았는데 불행중 다행이라는 격언이 이런 경우에 적중하다는 결론에 도달하였다. 그러나 사람의 일이 이렇게 공교로울수가 있는가. 과거를 낱낱이 백지로 하고 량심을 안고 살아보자던것이 이토록 무자비하게 짓밟힐줄이야 누가 알았겠는가. 그것도 몇해전에 바다건너 이국땅 어느 한 강철로앞에서 벌어졌던것이 이토록 현실적인 사건까지 껴묻어안고 나타나 바투 목을 조이리라고는 생각지 못했던것이다. 너무나 야속한 운명앞에서 그는 전률하였으며 일체의 리성적인것을 죄다 포기해버리고말았다. 될대로 되라는것이 그가 도달한 총적결론이였다.

이렇게 되자 갑자기 그의 심정은 평온해지는것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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