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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소설 빛나는 아침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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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강산
댓글 1건 조회 7,980회 작성일 20-06-08 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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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양에서 남포로 가는 평탄한 도로로 승용차 한대가 경쾌하게 달리고있었다. 김일성동지께서 몇명의 수원들과 함께 차에 앉아계시였다. 수원들가운데는 최준걸이 끼워있었다. 그러나 그는 자기가 모시고가는분이 장군님이신줄은 전혀 모르고있었다. 그저 정치위원이라고 하기에 그런가부다하고 생각하고있었다.

산과 들에는 가을이 한창이였다. 은백색 해빛이 엇가로 내리질린 안골어구와 그것을 거쳐서 끝없이 펼쳐진 오리알빛 하늘이 정답게 다가오고있다. 그 옛날에는 무턱대고 높아만 보이고 험준한것으로만 기억되시였던 룡악산줄기는 화폭에 담긴 그림처럼 진한 곤청색으로 물들었으며 그것은 또한 온통 황토색으로 변해버린 순화벌과 조화를 이루고있다. 싱그러운 바람이 불었다. 어데선가 무르익은 과일내같은것이 끝없이 풍겨왔다. 길량옆에는 아카시아가 우거졌는데 바람이 그닥 불지 않는데도 동전잎같은 잎사귀들이 함부로 떨어졌다. 반반한 길에도 떨어지고 한참 떠가다가 밭뚝에도 내려앉고 또 어떤것들은 허공에 날아올라 가물가물 맴돌다가 어데론가 아득히 사라지군 하였다.

자동차는 가로수가 짧은 그늘을 던지고있는 새짬을 꿰질러 구릉이 진 언덕을 급히 뒤로 흘러보내였다.

김일성동지께서는 지금 매우 평온한 기분으로 창밖을 내다보고계시였는데 시야에 펼쳐진 자연서경들은 모두 마음 안구석에 깊이 묻혀있던 추억들을 낱낱이 뒤져놓으면서 과거에로 과거에로 이끌어가고있었다. 하여 지금 강선으로 가는 이 한가닥 길에는 사실상 두개의 심리가 펼쳐져있었다. 그 하나는 당창건을 앞두고 큰 규모의 산업부문로동계급을 만나보아야겠다는, 이미부터 그이께서 구상하신 용무와 관련된 사색이며 다른 하나는 완전히 이와 판이한것으로서 포평으로 떠나면서 20년전에 마지막으로 걸으시였던 이 고향길을 놓고 과거를 추억해보고싶으신 서정적인 기분이였다.

칠골뒤산 저기에는 나무숲이 우거졌었는데 지금은 반반한 벌거숭이가 되였다. 그다음 나진 오류골등판도 역시 그렇다. 석섬틀, 송산마을이 들어앉은 왼쪽 평지에는 온통 논이 생기고 아득히 바라보이는 자래동벌만이 예나 지금이나 다름없는 논벌로 남아있다. 이제 잠간사이에 남리가 나지고 다박솔 오솔길을 빠져 순화강쪽으로 나앉은 언덕에 이르면 키낮은 사립문 초가집이 보일것이다. 거기가 고향인것이다. 연연 20년동안 아득히 멀리 떨어져계시면서도 항시 가슴속에 안고사시던 만경대이다. 어느덧 서리의 갈림길이 나졌다.

그이께서는 차에서 내려 같이 가던 좌현에게 만경대로 가는 길을 알려주고 며칠 더 있다가 들리겠다는 기별을 전하라고 하시고는 곧 강선쪽으로 향하시였다.

그이께서는 차창에서 눈을 떼지 못하시였다. 앞을 가로질러 흐르는 대다리강, 이쪽에 높이 솟은 슬메산, 그것을 거쳐 다시 룡악산 봉우리들, 거기서 다시 서쪽으로 내려서면 금천골, 내맹이, 뒤고개, 그런 낯익은 산야들이 창밖에 흘렀다. 차가 룡산개를 끼고 돌면서 신동안으로 들어섰을 때 김일성동지께서는 고개를 돌려 뒤자리를 보시였다. 좌현이를 갈림길에 떨구다보니 뒤자리에는 안경을 낀 최준걸이와 경위대원 최동무가 앉았을뿐이였다.

《최동무!》 그이께서는 의자등받이에 몸을 기대고 옆으로 돌아앉으시였다. 《동무가 알아본데 의하면 우리 나라 강철공업이 언제쯤이면 제 궤도에 들어설것 같습니까. 가령 일제가 정상조업을 했던 43년이나 44년 수준에 이르자면말입니다.》

최준걸은 마치 기다리기나 했던듯이 안경을 벗어들면서 상체를 약간 앞으로 숙이였다. 그는 얼마전에 김책으로부터 이런 문제와 관련하여 준비하고있으라는 지시를 받았던것이다.

《말씀드리겠습니다. 1944년을 기준으로 본다면 조선에서 강철은 20만t도 채 내지 못했습니다. 최고 18만이라는 기록이 있기는 한데 사실여부는 알길이 없습니다. 그런데 지금 여기 강선은 1만t수준, 실지 생산은 8천~9천t정도였습니다.》

최준걸의 경제실태에 대한 료해보고는 계속되였다. 그는 자신의 견해를 명확히 세우기 위하여 그리고 자료에 대한 최대의 신중성과 과학성을 기하기 위해 문헌자료를 뒤지는 한편 강선, 송림, 청진, 성진 등을 직접 돌아보았던것이다.

먼저 부문별 경제실태가 소개되였다. 채취공업, 금속공업, 전력공업, 화학공업, 경공업, 이런 순서로 나가면서 일제시기의 평균치수와 오늘의 실태가 대비되였다. 그중에서도 특히 강조되고 구체적인 자료가 안받침된것은 일제가 패망하면서 공장을 파괴한 실태였다. 끊임없이 품명과 수량이 라렬되고 파괴상을 거듭 언급하게 되였을 때 최준걸은 목이 메여 잠간동안씩 말을 중단하군 하였다.

자동차가 흔들리는대로 자연스럽게 몸을 맡긴채 최준걸의 설명을 듣고계시던 그이께서는 손을 내대시면서 《그만합시다, 그만.》하고 중단시키시였다.

최준걸은 반사적으로 고개를 번쩍 쳐들었다. 순간 자신의 료해자료가 기대에 어긋날만치 불충분한것이 아닌가 하는 위구심이 생기였다. 그러나 가슴을 쓸어만지시면서 침울한 기색을 짓고계시는 그이의 모습을 뵙자 인차 또 다른 하나의 실책을 깨닫게 되였다. 그로서는 실태에 대한 사실성과 정확성에 대해서만 고려했을뿐이지 그것을 통해서 환기되실 그이의 심리적 충격에 대해서는 고려를 돌리지 못했었다. 물론 내 나라가 받은 이 상처를 감출수는 없는것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동질의것을 반복라렬함으로써 쓰라린 상처를 거듭 헤집을 필요는 없었던것이다.

《차를 좀 세우오!》

그이께서는 자리를 고쳐앉으시면서 운전수에게 손을 들어 지시하시였다.

차는 멎고 일행은 그이와 함께 길가에 내려섰다. 마침 그 길옆은 달마산에서 뻗어내린 바위등판이여서 아무데나 앉을수 있었다. 이제 10분을 채 못가서 강선제강소가 나질것이였다.

《여기 앉아서 자세히 들어봅시다.》

그이께서 최준걸을 가까이 불러앉히시였다. 이리하여 최준걸은 다시 보고를 계속하게 되였는데 이번에는 현실태에 대해서는 최소한 적게 말씀드리면서 될수록 그에 대한 복구전망을 많이 언급하기 시작하였다.

그는 선광전문가이면서도 일반 경제학분야에 대해서 늘 학구적인 태도로 관심해왔기때문에 그 어느 부문을 놓고도 별로 막힘이 없이 의견을 제기할수 있었다. 그가 경제일반에 대한것을 총괄분석하고 전망을 제기하면서도 반드시 놓치지 말아야 하겠다고 생각한것은 그이께서 당면하게 직접 관심을 가지고계시는 강철, 석탄, 운수 부문에 대한 문제였다. 더구나 오늘 이 걸음이 다름아닌 강철공장에 향해지고있다는것을 념두에 둘 때 거기에 력점을 찍는것은 응당한것이기도 하였다.

《한마디로 말해서 원상복구를 위해 시간이 얼마나 걸릴것 같소?》

보고가 거의 끝났을무렵에 그이께서 물으시였다.

《모든것을 동시에, 그리고 정상적인 조업을 하는 조건에서 만 5년은 걸릴것으로 추측됩니다.》

《5년이라…》

그이께서 고개를 끄덕이시면서 입가에 빙긋이 미소를 지으시였다. 그것은 짐작하셨던것보다 너무나 차이가 많다는 놀라움의 표시였다.

그러나 최준걸은 침착하게 자기 론리를 펼치였다.

《5년간에 되기만 해도 그것은 큰 성과입니다. 저의 타산으로서는 설비와 자재, 로력 같은것은 보장되는것으로 예견한것이며 기타 요인들 례를 들면 경영상 문제들인 자금, 기술적담보 같은데서는 아무런 장애도 받지 않는것으로 예견하였습니다. 정치위원동지, 저는 5년간에라도 해결하기만 한다면 그것은 전례없는 기적이며 력사앞에서 큰 위훈으로 된다고 생각합니다.》

이때 그이께서는 빛나는 시선으로 최준걸을 쳐다보시였는데 거기에는 어딘지 모르게 의아쩍고 불만스러운 색조가 비껴있었다.

《5년이라…》그이께서는 계속 같은 말을 반복하시였다. 《그래 현재 우리 형편에서 경제를 추켜세우자면 우선 어느 고리를 줴야 할것 같습니까?》

역시 이에 대해서도 최준걸은 사전준비가 있었기때문에 즉석에서 대답할수 있었다.

《경제는 역시 자체의 고유한 법칙에 의해서 발전하기때문에 주관적욕망과는 관계없이 움직입니다. 때문에 우선 자금이 필요한데 정상경제라면 경공업과 상업을 발전시켜 거기서 얻은 수입으로 중공업에 투자하게 됩니다. 우리는 우선 주권기관을 빨리 내오고 그 법에 의해서 경제질서를 세워야 하며 통화안정을 위해서 시급히 화페를 발행하여야 한다고 봅니다.》

《알만합니다.》

그이께서는 우선 경제학적으로 예견할수 있는 그런 전망적인것보다 당장 공업기업소의 무정부상태를 어떻게 가시고 전체 기업소가 조업을 동시에 개시하도록 할것인가 그리고 당면하게 걸린 석탄, 강철, 식량, 그에 따르는 수송문제를 풀기 위한 어떤 묘술이 있겠는가를 탐구하려고 하시였다.

《이미 충분히 료해하고계시리라고 생각합니다만.》하고 최준걸은 침착하게 고개를 들면서 계속하였다. 《전체 기업소를 동시에 조업한다는것은 불가능합니다. 왜냐하면 우선 공업은 부문간, 제품호상간 공정이 사슬처럼 련결되여있는데다가 파괴정도가 서로 다르며 조업을 위해 갖추어진 조건들이 또한 서로 각이하기때문입니다. 그리고 어느 한 부분이나 몇개 기업소를 특수하게 따로 떼서 조업할수 있겠는가 하는것도 구체적인 타산이 있어야 할것 같습니다.》

그의 론거는 확고하였으며 지어 그의 억양마저도 드놀지 않았고 빈틈이 없었다.

《그렇다면 우리는 옴짝 못하게 묶이운셈이 아닙니까.》 그이께서는 옆에서 돌쪼각을 하나 집어드시더니 바위등에 커다란 동그라미를 그려놓으시였다. 《이 안에 포위된셈이지요? 결국.》

최준걸이 고개를 끄덕여 어줍게 웃어보이자 그이께서도 웃으시였다.

《내가 보기에는 이 포위환을 뚫을 유일한 구멍은 모든 공장, 기업소가 일제히 작업을 개시하는거라고 봅니다. 깨진데서는 복구하고 그렇지 않은데서는 생산을 진행하는 식으로말이요.》

그이께서는 돌로 포위환을 북북 그어헤치시였다. 원을 이루었던 선이 여러군데 토막이 나자 그이께서는 돌로 땅바닥을 두드리시였다.

《5년이라는 기일은 너무 깁니다. 물론 동무가 말한 그 경제학이 요구하는 기초조건들을 우리는 지금 아무것도 가지지 못하고있습니다. 정권도, 법률도, 화페도 없습니다. 말그대로 맨주먹뿐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기어이 해내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는 살아갈수 있습니다.》

《5년전에는 힘들것 같습니다.》

그는 솔직성이 지나쳐서 외람되게 처신하고있는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전부터 그는 경제일군으로서 정확하고 철저한 성품을 가졌다는 말을 들었었고 그것으로 해서 칭찬도 받고 또 비난도 사군 했다. 《제털 뽑아 제구멍 메꾸는 사람》이 주관에 사로잡혀 정치위원앞에서 혹시 어떤 실책을 범하고있지나 않는지 불안스러웠다.

《그렇습니까?》 김일성동지께서는 솔직성이 그대로 느껴지는 그를 믿음에 찬 눈길로 바라보시며 말씀하시였다. 《솔직한 충고가 고맙기는한데, 해봅시다. 우리에겐 이런 경험이 있습니다. 우리가 총을 잡고 유격전을 벌릴 때 어떤 사람들은 그것이 불가능하다고 했습니다. 유격전이라는것은 정규군의 강력한 지원이 있는 조건에서만 가능하며 공고한 후방이 있는 조건에서만 성립된다고 하였습니다. 그것은 경험이 만들어낸 정설이며 하나의 준칙으로 되여있었습니다. 우리는 정규군도 없었고 후방기지도 없었습니다. 그러나 우리앞에는 무장투쟁의 길밖에 없었습니다. 그것마저 못하게 된다면 우리는 앉아서 죽어야 했습니다. 그래 하는수 없이 왜놈들의 총을 뺏어들고 싸우게 되였고 결국 오늘에 이르렀던것입니다. 그러니 결국 우리는 혁명전쟁의 기존규범을 어기고 반칙을 범한셈입니다. 오늘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전체 인민에게 나라를 사랑해서 일어서라고 하겠습니다. 법률에 의해서가 아니라 애국심을 가지고 말입니다. 식량이나 로임을 위해서가 아니라 자기자신과 후손을 위해 당분간 고생하자고 호소하겠습니다.》

최준걸은 그것이 이제 어떻게 현실에서 구현될것인지에 대해서는 아직 상상이 미치지 못했으나 무엇인가 쇠기둥같은것이 가슴에 박혀오는것을 력력히 감촉하였다.

《한가지 물읍시다. 인테리의 경우에 우리의 호소에 대해서 어떻게 태도를 취할것 같습니까? 그거야 최동무가 잘 알수 있지 않겠습니까?》

《그에 대해서는 한마디로 말씀드리기 곤난합니다. 왜냐하면 처지가 각기 다르기때문입니다.》

《처지가 다르다는 측면만 보면 그렇게 됩니다. 그러나 우리는 차이보다 공통점을 더 중시해야 합니다. 그들에게는 모두 애국심이 있습니다. 인테리들은 모두 다름아닌 조선민족입니다. 때문에 그들은 망국노의 설음을 뼈에 사무치게 체험했습니다. 이것이 과연 재산을 얼마간씩 가지고있었다는것이나 일제에게 얼마간 복무했다는 그것보다 중요한 처지가 아니란말입니까. 또 동무처럼 기술을 가지고 조국건설에 이바지하겠다는 그것이 우리 인테리들의 일반적 소망이 아니란말입니까. 난 며칠전에 남조선에서 온 한 기술자를 만나보고 그것을 확신할수 있었습니다.》 그이께서는 마치 자기자신이 어떤 잘못이라도 저지른것처럼 침울해진 최준걸을 쳐다보면서 말씀을 계속하시였다. 《이런 관점에서 로동자도 믿고 기술자도 믿고 또 사무원들도 믿읍시다. 그들은 애국의 길로 나설것입니다.》

그이께서는 최준걸의 얼굴에 미소가 피기 시작하자 매우 만족해하시였다. 일행은 그이를 모시고 차에서 내리였다.

《여기가 강선제강소라! 선녀가 내려온다고 해서 강선이라고 했다는데 이렇게 변했구만. 갈밭이 우거지고 물새가 새끼치던곳인데 강철이 나온단말이지.》 그이께서는 허리에 손을 짚으시고 공장전경을 바라보시였다.

 

7

 

승용차가 제강소정문에 이르자 경비실에서 목총을 든 청년 하나가 급히 달려나왔다. 그는 아래우 풀색 양복을 입었고 가죽띠로 허리를 동이였는데 왼팔에는 붉은천으로 완장을 둘렀다. 경위대원 최동무가 먼저 다가가 용무를 말하자 목총을 든 청년은 발뒤꿈치에서 딱 소리가 나게 발을 모으면서 군대식 거수경례를 하였다.

《우리는 강선제강소 자치위원회 지시로 공장을 지키고있습니다.》

청년은 얼굴이 시뻘겋게 되면서 큰소리로 보고하였다. 그렇게 되자 경비실에서는 2명의 그 나이또래 청년이 또 달려나왔다.

김일성동지께서는 세 청년의 손을 다정히 잡아주시면서 수고한다고 고무의 말씀을 하여주시였다.

《좋소, 좋아. 대단히 마음에 듭니다. 우리 공장인데 우리가 지켜야지. 수고들 합니다.》

그이께서는 량쪽팔로 허리를 짚으시고 공장안을 빙 둘러보시였다.

《그래 지금 무엇들을 하고있습니까?》

청년들의 설명에 의하면 공장은 전부 멎어있고 직장마다 경비서는 사람들이 몇명씩 있을뿐이라고 하였다.

일행은 장군님을 모시고 우선 제선직장에 들리였다. 널다란 직장안은 휑뎅그렁 비여있었다. 몇달전까지만 해도 질이 좋은 철선을 뽑았다고 하는데 지금은 뻘겋게 녹이 쓴 쇠줄퉁구리 몇개가 널려있을뿐이다. 일본놈들은 패망하면서 어느 기대 하나 성한것이 없이 모조리 파괴했던것이다. 말로 들으실 때보다 현장에 와 목격하시니 그 정상이 더 처참하였다. 그 모든것가운데서도 가장 가슴아프신것은 침울한 표정을 하고 기대옆에 서있는 로동자들의 기분상태였다. l 000명 가깝던 종업원이 200명밖에 남지 않고 다 흩어졌다. 그가운데는 장마당에서 열쇠장사를 하던 그 로동자도 끼여있을것이였다.

그이께서는 제선직장에서 곧 제강직장으로 옮겨가시였다. 공장의 심장부라고 할수 있는 여기에는 전기로가 2대 있는데 그것도 모두 파괴되여 싸늘하게 식어있었다.

그이께서는 불이 꺼진 로벽을 짚어도 보고 바닥에 아무렇게나 던져진 쇠장대와 곰배를 들어옮겨도 놓으시면서 한동안 말없이 걸으시였다. 불길을 내뿜던 아구리에서는 휘지근한 바람이 내불리고 얼어붙은 쇠덩이우로는 이름모를 벌레 1마리가 기여가고있었다.

그이께서는 주먹으로 로벽을 툭툭 치시면서 《완전히 숨이 멎었군.》하고 옆에 서있는 최준걸을 쳐다보시였다.

최준걸은 머리에 썼던 캪을 벗어들고 허리를 약간 굽히면서 《그렇습니다. 현재 제가 알고있기에는 북조선의 용광로, 강철로가 모두 이와 같은 상태에 있습니다.》하고 한걸음 뒤로 물러섰다. 그는 마치 이 사태가 자기에 의해 저질러지기나 한것처럼 몸둘바를 몰라하였다.

《그러니 우리는 모든것을 새로 시작해야 하겠습니다.》

그이의 음성이 어떻게나 컸던지 철골로 떠받들린 천정까지 울리였다. 그것은 최준걸에게 하시는 말씀도 아니였으며 두리에 모여선 로동자들에게 들으라고 하시는 말씀도 아니였다. 그 음조에서는 분명히 단호하고 결정적인, 그러면서도 적의에 불타는 열도와 결의를 강하게 느낄수 있었다. 그이께서는 로동자들을 모이게 하라고 하시였다.

삽시간에 로동자들이 수십명 모여왔다. 그중에는 한 50이 가까운 중년도 있었고 열대여섯살 나보이는 소년도 있었다.

《여기 이렇게 선체로 이야기를 좀 합시다.》하고 그이께서는 쇠장대를 가로타고넘어 로동자들이 모여선 앞으로 몇걸음 다가서시였다. 《보는바와 같이 강철로는 싸늘하게 식었습니다. 그러나 우리 로동계급은 살아있습니다. 우리는 일제통치에서 영원히 해방됐습니다. 우리는 해방된 조선의 로동계급입니다.》

이렇게 시작하신 그이의 말씀은 거침없이 흘러나가기 시작하였다. 처음에는 비참하게 파괴된 공장을 보고 또 그만 못지 않게 가라앉은 로동계급의 감정에 신심을 주려고 하시였지만 그렇게만 되시지 않았다. 여직까지 해방된 조국에서 보고 듣고 느낀것을 죄다 이야기하고싶으시였다. 그간 군중과 접촉하실 기회가 없었고 강철로동자와 같은 산업로동자들은 더구나 만나신적이 없었던것이다. 그이께서는 마치 이웃사람들과 이야기하는것처럼 조용조용히 신창탄광 탄부의 열쇠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시였다. 그러시고는 어떤 일이 있어도 공장을 우리 손으로 복구해서 쇠물을 뽑아야 한다고 하시였다. 일본놈들이 다시는 여기서 쇠물이 나오지 못할것으로 생각하는데 기어코 조선로동계급의 본때를 보여야 한다고 하시였다.

말씀을 끝내신 그이께서는 상의 단추를 끄르고나서 그중 나이어린 로동자앞으로 다가가시였다. 온 얼굴에 눈만 반짝거리는 열댓살 나보이는 소년인데 저고리소매는 손끝을 가리우고 발에는 말박만한 지하족을 신었다. 그이께서는 거북등같이 튼 손을 만져보시면서 여기서 무엇을 했느냐고 물으시였다.

소년은 불찌에 타서 구멍이 숭숭한 모자를 벗어들고 로에 빠져죽은 아버지를 대신해서 이것저것 심부름을 했다고 하였다.

《보시오. 이것이 바로 우리 조선로동계급의 처지입니다.》

그이께서는 소년의 손목을 끌어 슬라크무지우에 올려세우며 말씀하시였다.

《동무들이 이제부터 수고를 많이 해야겠습니다. 동무들이 나라의 주인이며 공장의 주인입니다. 주인인 동무들이 빨리 쇠물을 뽑아야 합니다. 그래야 나라가 일어설수 있습니다. 강철이 있어야 석탄도 캐고 철도가 움직입니다. 그런데 지금 우리는 돈이 없어 로임을 줄수 없습니다. 쌀창고가 비여있어서 배급도 인차 줄수 없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앉아서 신세타령이나 하다가 일본놈대신에 다른 자본가가 와서 우리를 노예로 만들기를 기다리겠는가 아니면 애국심을 가지고 일어나서 강철을 구워내겠는가.》

《강철을 굽겠습니다. 우리는 다시 노예가 될수 없습니다.》

구레나룻이 꺼멓고 키가 큰 중년사나이가 앞으로 성큼 나서면서 불같은 결의를 내뿜었다. 뒤이어 다른 로동자들도 주먹을 흔들며 노예로 될수 없으니 혁띠를 조르고라도 로를 복구해서 쇠물을 뽑겠다고 하였다.

참으로 그들의 결의는 눈물이 날만치 고마운것이였다.

《최동무!》하고 김일성동지께서는 옆에 섰던 최준걸을 쳐다보시였다. 《이 동무들은 해내겠다고 합니다. 우리가 이걸 믿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최준걸은 놀라서 어리둥절해졌다. 그가 여태 보아온 로동자는 이렇지 않았다. 일본 북해도에서도 그렇고 만주의 장춘, 조선의 무산 철광 그리고 얼마전까지 자기가 있었던 백년광산의 로동자들 모두가 하루의 로임과 하루의 식량배급을 위해 삽이나 괭이를 들고 힘겹게 로동을 했었다. 그는 감격에 겨워 아무 대답도 하지 못한채 머리를 숙이고있었다.

김일성동지께서는 여기서처럼 모두 이렇게, 전체 조선로동계급이 들고일어나면 곧 로임도 주게 될것이고 식량도 실어오며 따라서 모든것이 정상화될것이라고 하시였다.

말씀을 끝내신 그이께서는 만면에 웃음을 담으시고 맨 선참으로 결의해나선 중년로동자에게 물으시였다. 그는 금년 40세인 리만석이란 용해공이였다.

《동무는 어떻게 돼서 그렇게 좋은일에 앞장설 결심을 했습니까?》

리만석은 벗어들었던 모자를 공연히 주물럭거리다가 대답하였다.

《저는 공산당원입니다.》

《공산당원이란말이지. 그래 언제 당원이 되였습니까.》

《닷새전에 되였습니다. 박원식이라는 동지가 방조를 주어 들었습니다. 오늘저녁에 5명으로 세포를 내오게 됩니다.》

《박원식동무가? 그래 그 동무가 여기 와있습니까?》

《예, 그렇습니다. 평양기관구에서 기관차를 수리하는데 강철소재를 구하러 와있습니다. 지금 저 분괴직장앞에서 철무지를 뒤지고있습니다.》

그이께서는 만족한 웃음을 지으시였다. 이미부터 동에 번쩍 서에 번쩍한다던 박원식이 날파람있게 움직이는데는 놀라시지 않을수 없었다.

일단 담화를 끝내신 그이께서는 경위대원 최동무에게 박원식이 일하는데 가보라고 하시였다. 강철직장 쇠란간을 밟으며 내리시던 그이께서 문득 걸음을 멈추시였다.

《최준걸동무! 저 동무들 결의가 실현될것 같습니까?》

《꼭 되리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동무!》하고 그이께서는 공산당원이라는 그 중년로동자를 향해 물으시였다. 《기술자는 있습니까, 누가 싸늘하게 식은 저 로에 숨을 불어넣습니까, 주먹치기론 안될것이 아닙니까?》

《그것이 문젭니다. 그러나 해보겠습니다.》

리만석은 발을 모으고 크게 대답하였다.

《그렇게는 못합니다. 기술은 열성만으로 대신 못합니다.》

이렇게 되여 강철직장마당에서 다시 담화가 시작되였다.

해방전까지만 해도 이 공장에서 직공장이상, 계장이상은 전부 일본사람이 해먹었다. 특히 강철직장과 분괴직장에는 반장까지 일본사람들이 독차지했었다. 그런데 일본가서 류학한 양춘만기사 단 1명만이 강철직장 기사로 있었다. 양춘만의 구상으로 제3호전기로를 건설하던중이였는데 해방된 다음날 왜놈들을 두들겨팰 때 어느 사이에 빠졌는데 나타나지 않는다고 하였다.

《그런데 왜 그 기사가 나타나지 않습니까? 누가 그한테 친일파라는 딱지라도 불인것이 아닙니까?》

리만석은 자세히 말씀올리였다. 어떤 사람은 양춘만이 서울로 달아났다고도 하고 룡강에서 이름난 지주인 아버지한테 가서 숨어있을것이라고 한다는것이다. 그가 도망친 리유는 로동자들이 몰아준것때문이 아니고 순전히 자기가 일제에게 복무한것이 가책이 되여 그런것이라고 하였다.

《그래 동무네들은 어떻게 생각합니까. 그 기술자가 없이도 강철을 뽑을수 있을것 같습니까?》

번연한것인데도 그이께서는 로동자들스스로가 판단을 하도록 하시려는것이다.

《우리들도 그걸 몇번 토의해보았습니다. 기술을 좀 안다는축들은 양춘만을 데려오든지 그렇지 않으면 그러루한 기술자가 있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일부 로동자들은 왜놈의 앞잡이노릇을 하던자들을 또 섬길 생각을 하지 말고 경험을 살려서 우리끼리 해보자고 합니다.》

《그래…》 그이께서는 약간 그늘진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시였다. 뒤짐을 지신채 마당을 한참이나 거닐으시던 그이께서는 리만석이 앞에서 멈추어서시더니 《양춘만기사는 독신이였습니까?》하고 물으시였다.

《가정이 있습니다. 부부간에 아이 하나가 있습니다.》

《가족들도 동시에 없어졌습니까?》

《아닙니다. 가족은 사원사택에 지금도 있습니다.》

《가족은 있다!》

잠간 무엇을 생각하고나신 그이께서는 고개를 드시더니 여기 로동조합이 나왔다는데 거기로 가보자고 하시였다.

그이께서는 로동조합일군들과 한참동안 담화하시고나서 산기슭에 자리잡은 사원사택마을로 가시였다. 양춘만의 집은 맨 우쪽에 위치하고있었다. 리만석이 앞장에 서서 안내하였다. 집은 볼꼴이 못되였다. 유리창이 깨지고 창호지는 뜯어져 너덜거리고 마당은 비를 대본지가 오래돼서 검불이 한벌 널려있었다. 현관에는 녀자고무신이 1컬레 놓여있었는데 애오라지 그것 하나만이 이 집에 사람이 살고있다는것을 말해주고있었다.

《아주마니 있소?》

거쉰 목소리로 리만석이 몇번 부르건만 방안에서는 가뭇 대답이 없다. 하는수 없이 리만석이 부엌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김일성동지께서는 마당한켠에 멀찍이 서시여 박원식이와 이야기를 나누고계시였다. 로동복을 입은 박원식은 그후 사업을 보고하노라고 신바람이 났다. 닷새동안에 기관차부속을 깎을수 있는 소재를 1자동차분 구했다고 하였다. 그것이면 기관차 2~3대는 문제없이 수리할수 있을것이라고 하였다.

김일성동지께서는 그것도 중요하지만 공장안에 세포를 내올수 있게 한것이 더 큰일이라고 치하하시였다.

그때 리만석의 목소리와 함께 녀인의 울음소리가 터져올랐다. 염열의 독기를 잃어버리고 벌써 매우 온화해진 가을의 저녁해빛이 주택거리를 덮었는데 난데없는 처절한 녀인의 울음소리가 불길하게 물결쳐나갔다. 비통하게 울리는 녀인의 울음소리에 가슴이 섬찍해지신 그이께서는 급히 마당안으로 들어서시였다.

리만석은 미닫이문을 쩍 열어제끼더니 밖을 내다보라고 손짓을 하면서 방바닥에 드러누운 녀인을 들어일쿠려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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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산님의 댓글

강산 작성일

(위에서 계속)

《아이를 살려야겠습니다. 빨리 갑시다.》

《군대어른! 우릴 제발 건드리지 말아주어요.》

《아주머니, 왜 자꾸 그렇게 삐뚤게만 생각합니까!》

최동무는 화가 나서 고함을 치다싶이 웨치였다.

《일어나시오, 빨리.》

아이를 빼앗아 포대기에 싸기 시작하자 녀인은 자리를 뜨고 일어났다.

최동무는 아이를 안고 녀인을 떠밀어 차에 앉히였다.

차가 떠나게 되자 녀인은 아이를 가슴에 와락 그러안으며 울음을 터치였다.

자동차는 살같이 평양을 향해 달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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