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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소설 푸른산악 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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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강산
댓글 1건 조회 10,265회 작성일 20-05-23 2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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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

 

9월 29일부터 개시된 《추기공세》는 전선서부에서는 고왕산-삭녕, 천덕산-안혁방향, 전선중부에서는 김화, 김성일대, 전선동부에서는 고성남쪽 8km지점인 345.5고지와 1211고지, 백석산에 대한 공격으로부터 시작되였다.

첫날 전투에서 열점을 이룬 곳은 전선서부의 야월산과 1211고지 그 서쪽의 백석산이였다. 백석산에 대한 공격은 김웅이가 말한바대로 첫 2∼3일동안에는 1211고지와 어금지금할 정도였다. 이렇게 볼 때 김웅의 《우려》일리가 있는 셈이였고 최현도 바로 그때문에 2군단계획분을 더 요구하지 못한것이였다. 로병관이 군의소에 가있는동안 군단장지휘감시소에 올랐던 최현은 1211고지쪽으로 몰려드는 적들보다 백석산에서 울리는 폭음에 더 신경을 썼다. 《파구》가 생겨날수 있다는데서는 김웅과 같았다. 그러나 김웅은 그 《파구》가 새로운 주타격목표를 만들수 있다는것으로 걱정했다면 최현은 그 《파구》가 문등리로 확대되여 군단우익인 석사리로부터 1052고지, 1211고지에 대한 익측타격이 이루어질수 있다는것으로 신경을 쓰게 된것이다.

그러나 로병관앞에서 최현의 눈이 호담스럽게 된것은 그 신경성걱정혈에 침을 맞은때문이였다.

최현과의 전화에서 그의 심리를 간파하신 김일성동지께서는 1211고지에만 시선을 집중시킬데 대하여 말씀하시며 남조선군5보사를 주공으로 한 1211고지에 대한 적의 공격이 미구하여 미10군단전체의 공격으로 될것이라는것을 다시 강조하시였던것이다.

미10군단전체라는것이 최현을 흥분시켰다. 10군단이건 9군단이건 통채로 밀려와도 끄떡없다는 자신심에 충만된 그였다.

미10군단의 선두개척자로 되였던 남조선군5보사는 후날 《함정골》이라고 불리운 1211고지 앞골짜기의 길을 닦는것으로 자기 사명을 마치고 10월 9일을 기해 무대뒤로 사라져버렸다.

1만여구의 시체를 남기고 떠나온 이 사단장에게는 총살형대신 참나무잎훈장이 수여되였다.

다음날부터 미10군단 예비무력전체와 남조선군1군단 주력이 투입되는 치렬한 전투가 벌어졌다.

첫 나흘간은 석사리의 851고지로부터 2군단 좌익전방인 서희령에 이르기까지의 모든 대소고지들을 찔러보다가 드디여 1211고지에 대한 집중공격을 개시하였다.

적은 처음 급습점령을 시도했다.

한치앞도 가려보기 어려운 포연탄우를 리용한 적들은 1211고지앞전방 좌측릉선과 우측릉선의 가칠봉으로부터 눈사태처럼 밀려내려와 불의적인 량면돌격을 감행했고 공격주력으로 된 련대급 산병선은 후날의 《함정골》을 거쳐 1211고지 정면을 단도의 일격마냥 찔러들어왔다.

이곳을 담당한 52사 전투원들에게서 미증유의 격전으로 된 이 싸움은 치렬한 백병전으로부터 시작되였다.

총창과 총탁이 맞부딪치는 싸움이 두세차례 반복되면서부터 적의 공격출발진지를 때리는 아군의 군단포와 사단포의 위력한 사격이 전투의 형세를 역전시켰다.

불의적인 급습시도는 파장식공격으로 바뀌였다. 하지만 그 파장식공격이야말로 전대미문의것으로서 끊임없는 파도식광란이였다. 시체와 시체, 밀물처럼 덮쳐드는 공격대오.

그 시각 52사지휘부에는 로병관이 나와있었다. 적의 공격이 장군님께서 예견하신바 그대로 지향되는것을 알게 된 그는 넘치는 희열과 격앙속에서 군단포의 조애사격으로부터 사단의 린접계선강화와 예비대투입에 대한 즉각적인 결심으로 최현의 치하까지 받게 되였다.

이날 미10군단사령부에서는 밴플리트와 함께 여러 기자들도 나와있었는데 그속에는 《용감무쌍한 녀걸》로 동맹국들에까지 광고초상이 난 하린 히스도 있었다.

하린 히스는 이날 전투에 대한 기사에 이렇게 썼다.

《…저 불길속에서 살아있는 생물체는 어떤 존재들인가.

용감한 미한련합군의 용사들은 오늘 또다시 34차례의 공격을 벌렸다.

34차! 밴플리트장군은 이 공격을 놓고 <파도식>이라는 비유를 쓰고있다. 말그대로 파도다. 독자들은 로씨야의 명화 <9번째 파도>를 알것이다.

최후의 일격을 가하는 드높은 파도. 죽음의 공포속에 전률하는 선원들… 오늘인가, 래일인가 적의 림종은 시간문제이다.》

그 다음날의 하린 히스의 두번째 기사는 처음의 기사를 일부 정정하는것으로부터 시작되였다.

《독자들은 그전날의 나의 기사를 읽고 승리의 회보를 기다릴것이다. 시간문제라는것만은 변함이 없음을 재삼 확인한다. 하지만 나는 적을 과소평가하고싶지 않다.

적은 불가사이의 신비한 존재들로서 단 한치도 물러설줄 모른다.

그렇다면 아메리카합중국의 젊은이들과 혈맹 한국군들의 전투력이 약해서인가. 그런것은 아니다.

그 수수께끼를 다 푼다는것은 일개의 기자로서는 물론 력전의 지휘관들도 난해함을 말한다.

명백한것은 적들은 어떠한 환경에서도 생명을 보존하는 방법을 가지고있으며 제아무리 막강한 화력과 공격력앞에서도 물러설줄 모른다는것이다.

적들의 고지에는 대포까지 있다.

그렇다면 어떻게 되여 철과 불의 광란속에서 사람도 대포도 다 건재하는가.

나는 그 신비의 비밀 하나를 독자들에게 공개한다.

적은 땅굴속에 있다고 한다.

땅굴?!… 두번째 비밀은 후날로 미루기로 한다.》

하린 히스의 약속은 실현되지 않았다.

그는 《유엔기자단》본부가 있는 대전으로 돌아갔던것이다.

《토핑뉴스》를 쪼아먹으려는 기자들앞에서 하린 히스는 사교춤만을 요구했다.

 

영학은 귀뚤귀뚤하는 귀뚜라미소리에 고개를 들었다.

풀대로 엮어만든 네모배기통에서는 수염을 곤두세운 두마리의 귀뚜라미가 지금은 자기네 연주시간이라고 소리를 높인다.

그러고보니 지동치던 폭음도 멎고 어딘가 쏘구역을 때리는 포소리만이 간간히 울릴따름이다.

매일밤 계속되는 적의 봉쇄사격은 주로 밤 열두시쯤이면 멎군 하는데 그 시각을 알리는것이 바로 저 귀뚜라미들이였다.

이 연주가들을 련대장감시소안의 《푸른 궁전》에 모신 영학의 련락병은 통나무벽에 기댄채 연신 고개방아를 찧고있다.

영학이가 련대에 돌아온뒤 세번째로 맞은 련락병이다. 적후투쟁때부터 함께 지냈던 련락병은 2대대에 통신련락을 갔다가 중상을 당해 후송되였고 그를 대신해온 련락병은 영학이와 함께 3대대로 나가던중 기총탄에 잘못되였다.

영학은 련대에 돌아온 첫날부터 최전방진지들에 나가살다싶이 하였다. 사단과 련대참모부에서 료해한것만으로는 만족할수 없었던것이다. 제아무리 구체적인 설명과 정확히 작성된 지도가 있다 해도 직접 가서 보고듣는것보다는 못하기때문이다. 더구나 그의 련대산하 대부분 구분대들이 굴간작업이나 보조적인 방어전투와 기습전만 한데서 새로 맡은 진지들에 익숙치 못한데다가 전투가 여러모로 어렵기때문이였다.

이미전부터 예견한것이지만 1211고지에 대한 정면돌파를 목적으로 한 적의 공격은 그 가렬처절성에서 상상을 훨씬 초월했다.

한주일 채 안되는 전투에서 련대유생력량의 5분의 1이 줄어들었다. 어저께는 가칠봉과 마주한 우측릉선의 한 돌출부를 잃을번 했다.

지금까지는 포사격도 적들의 발길도 거의나 미치지 않던 곳이였다.

지형상으로도 적들이 달려붙기에는 불리한 지형이라고 보았다. 이로부터 그곳에는 관심을 두지 않으면서도 릉선과 돌출부의 어느 한곳도 소홀히 하지 말데 대한 최고사령관동지의 명령에 따라 한개 소대를 배치하였었다.

그것이 은을 내였다. 갑자기 들붓는 포사격에 전호와 은페부까지 죄다 짓뭉개진속에서 살아남은 사람은 불과 몇이 안되였다. 공화국영웅으로 된 안학룡소대장과 김초남부소대장이 무너진 은페부에서 기여나와 경기관총과 수류탄으로 적을 요정냈다.

그런데 전투가 끝날 때가지 누구도 그것을 알지 못했다. 은페부가 날아나 전화도 할수 없는데다가 자욱한 폭연으로 형세를 가늠할수 없었기때문이였다. 지형상으로도 날카로운 산코숭이밑의 우묵진 곳이여서 린접구분대들도 그런 사태를 간파할수 없었던것이다.

영학에게는 이것이 단순치 않은 위험으로 보였다. 그런 현상이 두번 다시 없으리라고는 장담할수 없었다.

(빈 공간이 없는가. 린접과 린접의 련계는?…)

이렇게 묻고따지며 진지들을 알아보고 지도도 새롭게 작성했다.

《들어갈만 합니까.》

나직한 목소리가 울렸다. 벽에 기대여 고개방아를 찧고있던 련락병이 차광막모포를 덧대인 문을 열어제꼈다. 영학은 입이 딱 벌어졌다. 땀에 함씬 젖은 정미순이 문가에 나타난것이였다. 약간 두려워하는 기색이면서도 입에는 웃음을 물고있다.

《엉, 이게 누군가. 어서 들어오우.》

영학이의 반색하는 태도에 미순은 응당 그런 친절을 받아야 한다는듯 자신만만한 자세로 들어와 기운차게 거수경례를 붙였다.

《련대장동지, 련대장동지의 명령대로 련대군의소 간호원 정미순 치료하려 도착하였습니다.》

여러번 입에 굴려본말 같았다. 그는 구석에서 자고있던 부련대장까지 깨여 일어나는것을 보자 삽시에 얼굴이 빨개졌다. 영학은 바빠하는 기색으로 지도를 밀어놓고 포탄상자를 가리켜보였다.

《어서 여기와 앉소.》

미순은 그에 눈길도 주지 않았다.

《처치부터 해야 하겠습니다.》

미순은 누런 광목(현인석이네 집에서 얻은)으로 기워만든 위생가방을 보란듯이 내밀며 영학의 앞에 와섰다.

영학은 기가 막혔다. 상처처치는 그저께 저녁 련대군의소장이 한것으로 마감을 지었다. 미순이도 그것을 모르지 않을것이다.

《우선 앉으라니까.》

미순이와의 약속을 생각했다. 그동안 미순이와 무척 친숙해졌다. 미순은 그가 철규네 련대장이란것을 안뒤부터 틈시간마다 그한테 와서 옷을 빨아주는것으로부터 허접스러운 일을 죄다 맡아했다.

그 값으로 전방군의소나 붕대소로 데려가 달라고 떼질을 썼다. 장군님을 만나뵈온 뒤부터 그 성화가 더욱 심해졌다. 그때는 영학이도 《도주》결심을 한 뒤라 쾌히 승낙했다. 철규를 만나게 할수 있다는것이 한가지 신세갚음으로 된다고 생각했고 산골처녀여서인지 궂은일, 마른일 가리지 않는것이 마음에 들었다. 그리고 영학으로서는 주요하게 노리는것이 또 하나 있었다. 군의소들이란 대체로 일종의 소식처로서 전선과 후방의 온갖 소식들이 다 모여드는것이고 그것은 또 입과 입을 거쳐 전방으로 퍼져나가는것이다. 미순이는 장군님을 만나뵙지 않았는가.

영학이의 도주를 눈감아준 사단군의소장도 미순이를 내놓는데는 머리를 찌붓하다가 결국에는 그때문에 손을 들고말았다.

《한데 여기까진 어떻게 왔소.》

영학의 말라붙은 상처자국에 옥도정기를 바르던 미순은 새침해서 눈을 흘겼다.

《길은 물어서 왔고… 보초들은 죄다 어서어서하고 잔등을 밀어주더군요.》

《이 감시소 보초도?…》

《그럼요. 련대장동지가 다들 제덕분에 온걸 알고있으니까요. 웃지 마세요. 웃으면 상처가 터져요.》

《야, 나도 부상당해봤으면 좋겠구나.》

모포를 뒤집어쓰며 다시 눕는 부련대장의 말에 미순은 소리없이 웃다가 졸지에 눈이 꼿꼿해져 영학을 찌를듯 보았다. 역시 약속때문인것 같았다.

(어떻게 한다?)

그렇지 않아도 철규네 중대에 한번 가보기로 했던것이다. 어찌 보면 아직까지 안간것이 미순이때문인것 같이도 생각되였다.

옷을 다 입고난 그가 시계를 보며 일어서자 부련대장도 벌떡 일어났다.

《또 나가시렵니까?》

《계획대로 오늘밤까진 죄다 돌아봐야겠소. 이앞 박격포중대와 1대대지휘부를 거쳐 칼릉선에까지 가보자고 하오. 미순이, 동무도 같이 가야지?》

《네?!-》

미순은 발딱 일어섰으나 방안사람들의 시선을 느끼자 짐짓 놀라는 시늉을 하며 되물었다.

《저도 함께 가야 합니까?》

《그럼 치료대로 나왔으면 임무를 수행해야지. 포탄도 가져가고.》

미순은 태연한 표정을 지으려 했으나 기뻐하는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부련대장에게 몇가지 지시를 주고 련대탄약공급소에 들려보니 철규네 중대분의 포탄은 물론 1대대탄약들도 다 날라간 뒤였다.

포탄과 탄약공급은 탄약공급소들에서 주관하지만 대부분 그걸 쓰게 될 당자들이 날라간다. 이때문에 전방에 나가는 사람들인 경우 그가 누구든 해당고지들에 보낼 탄약을 날라가는것이 하나의 규정처럼 되여있다.

철규네 중대에 이르기까지 한시간이 걸렸다.

한달전까지는 빽빽이 치솟은 나무와 풀넝쿨에 애를 먹었다면 이번에는 토막쳐 휘뿌려진 나무들과 무릎까지 빠져드는 푸석흙에 진땀을 뽑았다. 장마철에는 포폭탄에 의해 뒤집혀진 땅이 인차 꾸득꾸득해졌으나 지금에는 모래밭 한가지였다.

《포병용초불》이 휘황히 밝은 철규네 갱도안에서는 금방 날라온 포탄들의 유막을 벗기는 작업을 하고있었다. 포탄에 굳어붙은 그리스를 통신선철사로 훑어내리면 강엿같은 기름이 오가리처럼 밀려내리는데 그것을 모아 만든것이 《포병양초》다.

영학에게 황황히 영접보고를 하고 난 철규는 미순을 보자 눈살을 잔뜩 찌프렸다.

《이 녀동문 누굽니까?》

《모르던가? 정미순이라고 동무네한테 부상자가 없는가 해서 찾아왔소.》

영학의 말이 끝나기 바쁘게 모두의 시선이 미순에게 쏠렸다.

《여긴 정말 별천지군요. 초도 있고 구름노전도 있고…》

미순은 굵기가 팔뚝만 한 《초》를 쓰다듬어보며 딴전을 피웠다.

《그건 이런걸로 만든답니다.》

철규의 련락병이 포탄에서 벗겨낸 그리스와 상자안의 유지를 꺼내여 재빨리 초를 빚어보이며 미순에게 귀속말로 물었다.

《미순이어머니지요? 전 다 알고있습니다.》

《여, 건 무슨 소리야?》

영학에게 통나무의자를 권하던 철규가 으름장 비슷이 웨치고는 뚱딴지 같은 《로태진》을 찾았다.

《태진동무, 태진동무!》

그가 두번 채 부르기전에 다부지게 생긴 중사가 나타났다.

철규는 련락병과 미순이를 향해 또 한번 눈을 빨고는 영학에게 황급히 말했다.

《련대장동지, 우리 중대엔 후송당한 동무들외엔 부상자라고 이 로태진포장밖에 없습니다.

얼른 처치를 끝내고 저 간호원동문 보냈으면 합니다.》

《그럴가, 한데 어떤 부상이요?》

그가 로태진을 향해 묻자 로태진은 가벼운 상처라고 하면서도 처치를 받았으면 하는 기색이였다. 그런데 미순의 기색이 말이 아니였다. 입술을 꼭 다문채 철규를 쏴보고는 로태진더러 상처를 보자고 했다.

로태진의 상처는 그의 말대로 크게 심한것 같지 않았다. 오른쪽 어깨살이 조금 패여나갔는데 포탄화약으로 지진것이 알렸다. 전사들의 자작치료법이다. 약간 겁질린 태도로 상처를 살펴보던 미순이도 마음이 놓이는지 자신만만하게 핀센트며 알콜솜을 꺼내다가 철규가 기웃이 내려다보는것을 알자 발끈하여 내쏘았다.

《중대장동진 왜 이런 중상자를 그냥 둬요? 이런 감염성창상은 생명에도 위험해요.》

바빠난것은 로태진이였다.

《아, 이건 아무것도 아니요. 그놈의 포탄파편이 한번 슬쩍 건드리다 만거니까. 간호원동무의 손이 닿으니 벌써 낫는것 같수다레.》

그 말에 가벼운 웃음소리와 함께 누군가 《저 친구 미순이엄마를 기다렸던가봐.》하고는 키득거렸다.

《련대장동지, 나가보시지 않겠습니까.》

철규가 말했다. 미순이와 《미순이엄마》라는 말이 그 원인인듯 싶었다. 영학은 비주룩이 웃었다.

《련대장이 예까지 온것만도 대단한데 어딜 또 나가자는거요.》

《여긴 통풍이 잘 안되여서.》

《그까짓거야 뭐라오. 인차 떠날테니 걱정마오. 헌데 여기선 콩나물을 어떻게 기르오?》

얼핏 떠오르는 생각을 물었다. 철규는 여러가지 방안들을 놓고 현상응모를 붙였는데 포탄상자에 모래를 담아 기르는것이 당선되였다고 했다.

《그 방법은 저 미순동무에게서 배우오. 한 30분정도의 강의면 될테니까. 동문 나하고 포좌지를 돌아보기요.》

그는 밖으로 나서려다말고 미순이를 눈짓해 찾았다.

《우리가 약속했던대로… 알려주오.》

《알겠습니다.》

《한데 저 동문 무엇때문에 데려왔습니까?》

밖에 나선 철규가 뿌루퉁한 기색이였다.

《왜, 반갑지 않소?》

《반갑지 않다기보다 중대에선 다들… 알고있습니다.》

《미순이엄마란 그래서 한말인가?》

《네. 편지란에 이름도 똑바로 쓸줄 몰라 그렇게 된것입니다.》

《여하튼 다들 기뻐하던데.》

《거야 련대장동지가 왔으니까 그런거지요. 중대엔 장가간 동무들도 많은데 그들이 어떻게 생각하겠습니까.》

《부러워할테지.》

《그러니 제 처지가 어떻게 됩니까.》

《처진 무슨. 한데 내가 동무네 부부상봉때문에만 데려온줄 아오? 난 그가 장군님을 뵈온 동무이기때문에 련대군의소에까지 데려왔소. 그가 보고들은 말이 퍼지면 다들 날고뛸것이 아니요.》

《그가 장군님을 만나뵈웠단말입니까?》

철규는 끔쩍 놀라는 자세로 걸음까지 멈추었다.

《좀 있다 가서 자세히 들으라구. 장군님께선 동무네가 화선식결혼을 한것도 알고계시오. 그러니 이제 가면 정식 안해라고 소개하고-》

《련대장동지, 그게 정말입니까?》

《아니, 내가 미쳤다고 그런 일까지 거짓소릴 하겠소.》

《미안합니다. 그럼 그 동무를 그냥 둬두시렵니까?》

《동무생각엔?… 전방치료대원으로 떨굴가?》

철규는 펄쩍 뛰였다.

《여긴 있을데가 못됩니다. 겁은 별로 없는 동무지만 전방경험이 없는 주제에 무슨 망신을 시키려구요. 며칠전부터 포지휘기들이 알아차렸는지 여기두 105㎜ 지정사격구역이 되였습니다.》

철규의 말에 영학은 새삼스럽게 주위를 휘둘러보았다. 밤빛에도 여기저기 포탄홈들이 널린것이 알렸다.

《로태진동무도 그것때문에 다쳤소?》

《네, 로태진포장을 아십니까?》

《기억에 있소. 한달반전인가 입당했지. 중대민청부위원장을 한다는것 같던데.》

영학은 그와 함께 포진지들을 돌아보며 사격좌지와 목표들을 알아보았다. 포좌지들은 산턱에 바싹 붙어있어서 폭탄이건 105㎜이건 직탄을 맞을 념려는 없었으나 파편만은 피할수 없었다. 그는 철규네 중대의 포병정찰수들이 자리잡은 고지정점의 감시소를 여겨보다가 안학룡소대의 전투를 생각하며 물었다.

《동무네 최소사거리가 저 고지의 2참호계선까지라고 했지. 그런데 적들이 고지꼭대기에 달라붙는다면 어쩌겠소.》

《그런일은 있을수 없습니다.》

《아니 있을수 있소. 대답하오.》

댓글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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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산님의 댓글

강산 작성일

(위에서 계속)

《그런 경우면야 부득불 뒤계선으로 약 50m 물러나 쏘면 될것입니다.》

영학은 머리를 저었다. 박격포의 최소사거리란 포의 양각을 최대로 했을 때의 거리다. 때문에 그이상 더 가까운곳에 쏘려면 부득불 뒤로 물러나서 쏴야 하는데 철규는 바로 그것을 말하는것이다.

《동무의 그 정황처리는 3점밖에 못되오. 포를 뒤로 굴러가는 사이면 전투는 끝나는것이고… 또 여기서 50m뒤로 물러선다면 적의 직탄에 얻어맞을것이 아니요.》

《그까짓 직탄이야 뭐랍니까.》

《누가 죽고살고하는걸 말하자는건가?》

《방법은 있습니다. 포가에서 포신을 분리시켜 85°각도로 쏘면 저 고지꼭대기에 떨어질것입니다. 그런데 명중효률이 부족합니다. 손과 어깨로 조종해야 하니만치 자칫하면 포탄이 제 머리우에 떨어질테니까요.》

《그렇소. 그때문에 연구도 하고 토론도 해보라는거요.》

《알겠습니다. 하지만 너무 걱정마십시오. 저흰… 저 고지우의 동무들을 믿습니다.》

《누군 안믿소?》

영학은 그의 검질긴 고집에 웃음을 터뜨렸다.

《동무넨 이제 몇시에 자오?》

《취침시간은 드레가 없습니다. 적들이 밤늦게까지 달려붙을 때는 대체로 밤 12시쯤부터이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엔 9시부터 1시까지 자리에 들었다가 련대공급소에 가서 포탄이랑 쌀이랑 날라옵니다. 그리고 날이 밝을 때까지 취침합니다.》

《그러니 이제부턴 잠시간이구만.》

영학은 왼켠 둔덕에 자리 잡은 1대대지휘부쪽을 보다 말고 그만 들어가라고 했다.

《미순동무는 어떻게 하랍니까?》

《거야 오늘밤중으로 보내야지》

1대대지휘부에서는 대대장이하 모든 지휘관들이 자지않고있었다. 그런데 하나같이 침울하다고 해야 할지, 비장하다고 해야 할지 모를 컴컴한 얼굴들이였다.

《왜 다들 이 모양이요?》

그의 물음에 정치부대대장이 한장의 종이를 내밀었다.

《3중대에 갔다가 가져온것입니다.》

탄약상자안의 포장용종이에는 정자로 박아쓴 글이 빼곡찼는데 그 한귀퉁이는 피에 젖어 검스레했다.

《이건 뭐요?》

《최고사령관동지께 올리자고 쓴 그들의 맹세문입니다.》

《맹세문?》

황영학은 요즈음 들어와 이런 맹세문들이 많이 올라오고있음을 알고있었다. 최고사령관동지께서 다녀가시고 그 뒤를 이어 적들의 본격적인 《추기공세》가 개시됨과 함께 각 부대 당위원회와 정치부들에서는 공개당총회와 군무자총회를 통해 전사들을 전투승리에로 고무추동하면서 여러가지 형식과 내용의 편지와 맹세문을 채택하여 그이께 올렸다. 처음에는 련대와 대대급으로 올리던 편지와 맹세문들이 전투가 치렬해지자부터 중대, 소대 지어는 개별적전사들이 올리는것도 있었다. 황영학은 정치부대대장의 온몸이 흙투성이고 그의 눈에 피물같은것이 고인것을 느끼며 맹세문을 펼쳤다.

 

경애하는 수령 김일성장군이시여!

여기는 1211고지 좌측릉선 전호속입니다.

오늘 우리는 열한번째의 적의 《파장식공격》을 막 물리치고 이 자리에 모였습니다…

 

황영학은 다른 맹세문들과 별로 튀여나는 점을 찾지 못했다.

《그런데 왜 그렇게 우거지상이요.》

《그 맹세문을 쓴 세포위원장동무와 여섯명이 잘못되였습니다. 세포위원장동무는 그 맹세문을 가슴에 품고있었는데… 총탄에 심장부위를 맞은 상태에서도 손으로 그걸 꽉 누르고있었… 습니다.》

영학은 이 중대가 28차례의 공격을 물리쳤다는것을 생각했다.

짜릿한 눈길로 맹세문의 마지막글줄까지 죄다 읽어보았다.



경애하는 수령 김일성장군이시여

당신들의 아들들인 우리가 살아있는 한 1211고지는 영원히 조국의 고지로 굳건히 솟아있을것입니다.

우리를 항상 승리에로 인도하시는

경애하는 수령 김일성장군 만세!



《이 동무들한텐 동무가 갔댔소?》

《네, 다들 복수전을 하겠다고… 야간공격에 나가려는걸 간신히 말렸습니다.》

 

황영학은 무슨 말을 했으면 좋을지 몰랐다. 다급히 울리는 전화종소리가 그를 도와주었다.

전화를 받던 대대장의 입에서 괴성이 터져나왔다.

《미군이? 그게 사실인가. 음, 알겠소.》

《련대장동지 병풍바위뒤에 미군아이들이 쫙 깔렸답니다.》

《미국놈들이?!-》

《네, 련대장동지한테는 미처 보고하지 못한것인데 지금으로부터 두시간전에 2중대 1소대가 병풍바위습격전투에 나갔댔습니다.》

《2중대 1소대야 오늘밤에 이 앞으로 오게 되지 않았소?》

《네, 권석찬동무네는 바로 그때문에 습격전에 나갔습니다.》

《권석찬이네가? 덤비지 말고 침착히 말하오.》

《알겠습니다. 권석찬동무의 소대는 오늘 교방하게 된다는걸 알고 병풍바위를 까겠다고 제기해왔습니다. 그놈의 병풍바위에서 쏘는 화력이 권석찬동무네 우익인 3중대동무들을 옴짝 못하게 한다는걸 알고 그전부터 벼르던것이였습니다.

그런데 오늘 덮치고보니 괴뢰군 한개중대가 틀고앉았던 그곳에 미군아이들이 꽉 들어찼다는겁니다.》

《상한 사람은 없다오?》

《없답니다. 완전점령은 못했지만 중기화점을 요정내고 미군아이들의 모포까지 한짐 빼앗아왔답니다.》

《미국놈들이란말이지.》

장군님께서 뒤계선의 포들까지 전부 앞선에 진출시키라고 하신 진뜻이 더욱 명백해졌다. 숨이 가빠올랐다.

《이젠 진짜 해볼만 한 싸움을 하게 되였소. 어떻소. 떨리지 않소?》

《떨리다니요.》

《동무같은 사람은 좀 떨어야 되오. 1211고지의 최대격전장이 바로 동무네 이앞이요.》

《알고있습니다. 놈들이 장군님께서 그어주신 죽음의 길을 따라 고스란히 몰켜온다는것도.》

《배포가 좋구만.》

또다시 울리는 전화종소리에 더 다른 말을 할수 없었다. 련대참모장으로부터 그를 찾는 전화였다. 적구에 나갔던 사단정찰 두명이 련대참모부에 들렸는데 미1해사와 남조선군3보사의 지휘참모장교들이 미2보사와 남조선군5보사의 공격출발진지를 돌아보고있는 사실을 알아왔다고 했다. 황영학은 더이상 대대부에 지체할수 없음을 알았다. 사단에 제기하여 해결할 문제들과 일련의 진지들을 보강하고 포병화력체계를 놓고 몇가지 토론할 문제들을 생각하며 떠나려는데 정치부대대장이 맹세문을 상기시켰다.

《이걸 가지고가야 하지 않습니까?》

《미안하오.》

맹세문을 전투가방에 넣을 때 손이 떨렸다.

《동문 지금도 군사지휘관이 되고싶어하오?》

황영학의 물음에 정치부대대장 리용우는 응당한 질문이라는듯 대답했다.

《그렇습니다. 지금 여기선 정치일군으로서 할 일이 크게 없습니다.》

이 정치부대대장은 용감성과 담이 큰것으로 이름이 난, 정치일군이라기보다 군사지휘관재목이라고 봐야 할 사람이였다. 락동강에서 후퇴할 때 사경에 처한 최현군단장을 구원해낸 사람도 이 정치부대대장이였다.

《동문 왜 정치일군이 할 일이 없다고 생각하오?》

《저희들로선 지금 죽지말라는 정치사업밖에 할것이 없습니다.》

《죽지말라?…》

영학은 가슴이 뭉클해졌다. 그랬다. 지금 정치일군들은 물론 지휘관들까지 죽음을 불사하는 전사들의 열기를 조절하는데 퍼그나 애를 쓰지 않으면 안되였다.

(죽지말라!…)

돌아오는 길에 영학은 몇번이고 이 말을 되뇌여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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