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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소설 빛나는 아침 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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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강산
댓글 1건 조회 7,313회 작성일 20-07-02 00: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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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속 마루바닥에 올방자를 틀고있어서 무릎이 쑥 나간 바지는 뎅궁 들려 발목이 보이였고 세수를 하고 빗질을 했지만 꺼슬꺼슬한 머리는 그대로 일어나있었다. 강병철은 성큼 복도에 나섰다가 인차 벽을 짚고야 몸의 균형을 유지하였다.

방안에만 들어박혀있어 그런지 아래다리가 후들후들 떨리였다. 하기는 그동안 얼마나 많은 환상의 길을 걸었던가. 30여년간 걸은 전로정을 수십번 거슬러 오르내리였다. 그런데 평온해졌던 심리가 순간에 왈카닥 충격을 일으켰다. 누가 무엇때문에 지금에 와서 이 처지에 있는 강병철을 만나자고 부르는것일가. 넉넉히 잡아서 3분, 바투 세면 3초동안이면 충분했는데 왜 운명이 또 이렇게 지꿎게 희롱을 하는지 몰랐다.

강병철은 보안서현관앞 세멘트계단 3개를 내려서서 땅을 밟는 순간 머리를 들어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하늘은 두쪼각이였다. 한쪽은 검은구름이 덮이고 한쪽은 싸늘하게 개여있었다. 바람을 가리우기 위해 앞섶을 여미면서 발밑을 내려다보았다. 군데군데 눈이 무져있고 또 그만치 군데군데 눈이 녹은 땅이 시꺼멓게 드러나있었다. 그는 마른데를 골라디디면서 공장사무실쪽으로 걸어나갔다. 렬을 지어선 사택들, 길을 따라 뻗어간 전선줄, 거기에 걸려 펄럭이는 아이들의 가오리연, 골목들에서 나오기도 하고 또 들어가기도 하는 사람들, 어디선가 메질을 하는 쇠붙이들의 음향 등 그 모든것이 판판 낯설은 이방풍경같았다. 낯익고 정답게 보자고 해도 자꾸 간격이 생기였다. 그는 보안서장 박인국의 안내대로 비료공장사무실 2층에 있는 이미 알고있는 넓은 방에 발을 들여놓았다. 순간 그는 눈앞이 아찔해져서 겨우 자빠지지 않고 견딜수 있었다.

차츰 안개가 걷히는것처럼 눈앞이 열리였을 때는 김일성동지께서 그의 팔을 부축해서 의자에 앉히신 뒤였다. 강병철은 의자에서 급히 일어서서 다시 인사를 차리였다. 당장 울음을 터치며 가슴에 안겨 만단 사연을 하소하고싶지만 그는 혼신의 힘을 다해 참았다.

《장군님! 안녕하십니까. 수고스럽게 오셨습니다.》

머리를 숙여 인사를 드리자 김일성동지께서는 팔을 잡아 다시 자리에 앉게 한 다음 말씀하시였다.

《너무 이러지 맙시다. 우리는 평양에서 허물없이 사귀지 않았습니까. 론쟁도 하고 의논도 하고 또 서로 언약도 하지 않았습니까.》

담배를 피우게 되였다. 그이께서는 불을 켜대고 붙이라고 하시였다. 강병철은 사양하려고 뒤로 손을 당기다가 성냥불 꽁다리가 밭은것을 보고 하는수 없이 담배끝을 내대였다. 강병철은 담배를 빨면서 좌석을 천천히 둘러보았다. 장군님의 오른쪽에 공장장 리연수가 허리를 꼿꼿이 펴고 앉았고 그뒤에 보안서장 박인국이 차렷자세로 서있었다. 최한덕은 장군님 왼쪽켠에 앉았는데 무릎에 놓인 손건사가 잘되지 않아 쩔쩔매였다. 하지만 강병철은 자기자신이 어떻게 되여 이렇게 태연해질수 있었는지 알수 없었다. 그는 당황하거나 초조하지도 않았다. 오히려 그는 가슴이 뻐근할만큼 행복감에 잠겨있었다. 전혀 상상할수 없었던 놀라운 일이기는 하지만 장군님을 다시 뵈올수 있다는 그자체만으로써도 참말 다행한 일이였다. 그러나 다음순간 그것을 왈카닥 밀어제끼고 슬픈 생각이 일어났다. 평양에서 만났던 때와는 너무나 판이한 정황에 놓여있다. 이제는 자기자신이 자기 운명을 결정한 뒤기때문에 모든것이 체념화된것이다.

때문에 그는 저번에 와서 장군님께 신소를 해서라도 해결받아야겠다던 원시범의 방안같은것에는 관심이 전혀 없었고 운명의 흐름을 따라 조금도 거슬림이 없이 순탄하게 나가려고 할뿐이였다.

(바야흐로 때가 왔구나.)하고 강병철은 오늘 이자리에서부터 생의 마지막 지점까지의 로정을 짐작해보았다. 이제 그이께서는 부드럽고 온화한 어조로 죄상을 물으실것이다. 그러면 나는 이미 여러번 거듭한 설명을 또다시 반복하게 될것이다. 그다음에는 응당한 정치적 사상적 규명이 있을것이며 로동계급의 리익, 인민의 리익이 침범되였다는것으로 해서 호된 규탄을 받게 될것이다. 그다음에는 박인국이 기세등등해서 나를 끌어다가 더 견고한 방에 가둬넣어둘것이며 그후 어느 달이 없고 흐린 음침한 날 밤 어데론가 끌어갈것이다. 그리하여 한줄기의 파문도 남기지 못하고 한 인생은 종말의 바다밑에 영원히 가라앉게 될것이다.

《그래 합금로가 어째서 폭발했습니까?》

담배불을 재털이에 끄고 안락의자 팔걸이로 몸을 기울이신 김일성동지께서 고개를 숙이고 무릎에 손을 얹어놓고있는 강병철에게 물으시였다.

《저의 잘못으로 해서 공장에 큰 손실을 주었습니다.》

고개를 들면서 정확한 억양으로 대답하였다. 이때 강병철은 엄엄하고 위압적인 표정도 아니고 의아한것도 아닌 그저 평범한 그러면서도 동정이 어린 그이의 시선을 확연히 알아볼수 있었다. 《강철로가 폭파되였다는것은 그 어느 누구의 잘못이 아니고 전적으로 저의 책임입니다. 저때문에 합금생산이 안되게 되였습니다. 탄광에서는 당장 특수강 정머리를 요구하고있는데 주지 못하고있습니다.》

《결국 동무자신이 그런것을 다 알고있으니까 더 할말이 없게 되였습니다. 그래 그 책임을 어떻게 지려고 합니까?》

《그에 대해서는 어떤 가혹한 심판이 내려져도 다 받아들일 각오가 되여있습니다. 이것은 진심입니다.》

《진심이라?》

하고 그이께서는 담배갑을 집어드시였다.

강병철은 다시 고개를 숙이지 않을수 없었다. 그이의 시선이 와닿을적마다 마주보아낼수 없는 불안을 느끼게 되였다. 심리의 맨 안구석에서 가물거리는 세부까지 다 들여다보시면서 그이께서는 때로는 왜 그렇게 하였는가 하고 묻기도 하고 왜 동무는 거짓말 절반, 진실 절반인가 하고 따지기도 하실것만 같았다. 그리하여 강병철은 진심을 말한다고 하면서도 이미 고안된 자기 심산을 드러내놓음으로써 해뜬 대낮에 자기 그림자를 피해보려는 어리석은 인간으로 되고말았다. 잠간 침묵이 흐를 때 방안이 쩌렁 울리면서 그이의 높은 음성이 들리였다.

《동무는 그 책임을 져야 합니다. 사태는 매우 엄중합니다. 다른데서는 벌써 제품이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철도에서는 지난달 17일부터 2개의 려객렬차를 운영하게 되였고 따라서 우편통신도 상당히 민활해졌습니다. 사동, 안주, 고원 탄광들에서도 석탄이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강선제강소에서는 며칠후 첫 쇠물이 나올수 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유독 여기서만은 그렇지 못합니다. 질이 좋은 금속이 나올수 있는 여기는 왜 이모양입니까.》

그이께서는 계속 말씀을 하고계시는데 강병철은 그것을 의식해내지 못할만치 온몸에 서리가 내돋았다. 처음에는 갑자기 오한기가 나는것 같더니 다음에는 온몸에 불이 달린것처럼 아프고 쓰리였다. 목에서는 단김이 치솟고 눈발이 꼿꼿해졌다. 드디여 그는 겨우 숨을 톺아올리면서 울음을 터뜨리였다.

《그런데 아까 저 최한덕로인의 설명을 들어봐도 그렇고 또 강동무의 말을 들어도 마찬가지인데 그동안 또 한번의 실험을 해볼만한 시간이 흘렀는데 왜 초상집처럼 이렇게들 하고있습니까?》

그이의 음조에서는 분명히 그 어떤 오해나 또 어떤 알수 없는 리유로 해서 사태가 악화되고있는데 대해 분개하시는것이 알리였다.

《한가지 물읍시다. 그래 강병철기사가 로를 고의적으로 폭파시켰다는것이 사실입니까?》

강병철은 본능적으로 흠칫 놀라 고개를 들고 그이를 올려다보았다. 이때 그의 눈에는 형용키 어려운 일종의 불안과 초조와 회의의 빛이 어려있었다.

자기자신에 대한 믿음을 잃었고 또 자기를 둘러싼 주위환경에 대한 불신임에 완전히 포로된 그는 자기본연의 량심을 도저히 지켜낼수 없었다. 그리하여 그는 우여곡절을 거쳐서 마지막에 도달하게 될 그 결론을 맨먼저 내대게 되였다.

《그렇습니다. 솔직히 말해서 저는 로를 폭파하도록 만들었습니다.》

《그렇소, 그것이 사실이요?》

그이께서는 차츰 더 의문에 잠기시며 같은 말을 반복하다가 자리에서 일어나시였다.

《사실이라?》

그때 의자를 덜컥 울리며 여직 아무 반응도 없이 줄곧 강병철을 지켜보고있던 최한덕이 일어났다.

《장군님! 제가 한마디 말씀올리겠습니다. 강병철이 저 사람은 기술은 있는데 인간으로 말하면 졸장부올시다. 지금 속에 없는 거짓말을 하고있습니다.》 성급한 그는 벌써부터 숨소리가 거칠어지고 주먹이 들먹들먹하였다. 언젠가 몇마디 말을 건네보고 따귀를 친것처럼 그렇게 하고싶지만 정중한 좌석이여서 가까스로 분기를 참으며 뒤말을 떠듬떠듬 이어대였다. 《저 사람의 배속은 뻔합니다. 사고는 친것이니 그것은 엎지른 물처럼 주어담을수 없는 노릇이다, 내가 실수를 했다는 속마음을 버선목이라고 뒤집어보일수도 없다, 또 요번것은 그럭저럭 굼땐다쳐도 일본에서 저질렀다는 사고까지 피할수는 없지 않은가, 그런바에는 차라리 내 발로 일찌감치 불더미에 올라앉자, 이렇게 잔꾀를 부리는것입니다. 페일언하고 저 강병철은 따귀를 쳐서 정신이 들게 해야 할 사람입니다. 저한테 맡겨주십시오. 저는 하루동안에 진속을 뽑아내겠습니다.》

김일성동지께서는 방안을 거닐으시면서 최한덕의 말을 주의깊게 듣고계시였다. 그는 강병철을 믿고 사랑하기때문에 그만치 분격이 큰것이다.

《그러니까 고문을 들이대서 실토하게 하겠다는것입니까?》

만면에 웃음을 그리신 그이께서는 강병철이 앞에서 걸음을 멈추시였다.

《강동무! 우리 로동계급의 말을 들었습니까. 저 동무의 말에서는 진심이 느껴지는데 동무의 말에는 어딘지 모르게 꾸민것 같은 감이 있습니다. 그런데 한가지 또 물읍시다. 로를 고의적으로 폭파시켰다면 그 목적이 도대체 무엇입니까? 아이들처럼 로를 가지고 유희를 한것은 아니겠는데.》

《심리과정은 복잡했지만 행동계기는 단순합니다. 난 공산주의를 위해서 강철을 만들고싶지 않았습니다. 야하다에서 권력에 굴종해서 만든 강철이나 이곳 강철이나 갈은것으로 보았습니다. 두 경우에 나의 행동은 다 같았습니다. 모두 일치합니다.》

《그러면 공산주의자들이 당신한테 어떤 피해나 손해를 준것이 있는가요?》

《그것은 나자신에게 직접 미친것은 없고 리념문제입니다. 내가 왜 리념문제에 대해서 말하느냐 하면》하고 강병철은 침착해지려고 애를 쓰면서 말을 계속하였다. 《그 리유는 이렇습니다. 사람은 빵만으로는 살수 없습니다. 그것은 사실입니다. 성서에는 그 대답으로 사람은 하느님에 대한 믿음이 있어야 살아갈수 있다고 하였는데 그건 너무 어리석고 허황해서 저는 한때 예수에 미쳤던것만 못지 않게 맑스나 레닌도 신봉했었습니다. 로마스 모어의 <유토피아>에 대해서도 읽었습니다. 대단히 매력적이였습니다. 그러나 1925년에 조직된 조선공산당이 한짓을 보면 정이 떨어집니다. 그러고보면 세상에는 저를 매혹시킬 리념이 없었던것입니다. 허무합니다. 그래 저는 순결한 마음으로 내 나라, 내 민족을 위하여 힘자라는껏 무엇인가를 해보자고 결심하였습니다. 그런데 이 한쪼각의 소망마저 이룩할수 없게 되였습니다. 저의 지금의 솔직한 심정은 이렇습니다.》

여기까지 말하고나서 강병철은 눈물이 그렁그렁해졌다. 가슴에서 뜨거운것이 북받쳐올라왔다.

《리념문제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참말로 동무는 먼길을 에돌고있는것만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결코 전혀 무익한것은 아니고 어느정도 불가피했다고 말할수 있습니다. 사람이 자기가 갈길을 찾는다는것이 그렇게 헐하지는 않습니다. 그렇지만 우선 우리는 이야기를 허공에 띄워놓지 말고 땅에 발을 붙이고 현실적인것을 론의해봅시다.》

그이께서는 의자를 당겨놓고 강병철과 마주앉으시였다.

《오전에 비료공장을 돌아보았는데 이곳 사람들이 공장복구안을 만드는데 강병철이 크게 공로가 있다고 했습니다. 그것은 어떤 리념으로 해서 그렇게 할수 있었습니까?》

대답이 없었다.

김일성동지께서는 한걸음 나서시여 강병철의 손을 잡아당기시였다. 양복앞섶에 숨기였던 붕대를 감은 손을 쳐들고 잠시동안 보고계시던 그이께서는 《그래 이 손으로 어떻게 술질을 해서 군대밥통의것을 떠자셨는가요?》하고 물으시였다.

영문을 알지 못한채 손을 내대고있던 강병철은 고개를 폭 떨구었다. 그이께서는 모든것을 다 알고계시는구나 하고 생각하였다. 그렇게 되자 갑자기 코마루가 저려나더니 목구멍으로 뜨거운것이 치밀어올랐다. 어떤 보수도 명예도 필요없었다. 오직 자기의 진심을 알아주는 사람이 이 세상에 단 1명만 있다 해도 그는 자기의 모든것을 기꺼이 바칠 각오가 되여있었던것이다. 그러나 그는 솔직한 자기 심정을 토로하지 않고 이를 사려물면서 참았다. 오열을 삼키고나서 그는 태연하게 대답하였다.

《저는 밥만은 왼손으로 먹는 습관이 있습니다.》

《그렇습니까?》

《밥을 먹으면서 독서를 하자면 그렇게 하는것이 편리했습니다.》

《그것은 그렇다치고 저 최한덕로인의 말을 들으면 로를 쌓느라고 손이 이 모양이 되였다는데 그것은 무엇때문이였습니까.》 대답이 없었다. 강병철은 더욱더 랭철해지려고 애를 썼다. 《무연탄화덕에서 대두박을 끓이고 가마니우에서 쪽잠을 자면서 일했다는데 그것은 무엇때문입니까? 단순히 누구에게 잘 보이기 위한것이라면 이건 너무나 값이 비싸지 않습니까?》

그러나 강병철은 빚어세운듯이 앉아만 있다. 그로서는 그 모든것을 말로 설명하기가 너무나 벅찼던것이다. 보안서 지하실에 웅크리고앉아 만 보름동안에 얽어놓은 그 실꾸리를 가려낼수도 없고 설사 그 한끝을 찾아냈다 해도 그것을 여기에 늘여놓을수 없는것이다.

《강병철동무?》하고 그이께서 나직이 말씀하시였다. 《우리가 처음 만났을 때 동무는 내 나라의 강철을 만들수만 있다면 그 어떤 보상도 요구하지 않는다고 말하지 않았습니까. 부귀도 영화도 필요없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그런데 지금에 와서 동무는 무엇을 요구합니까. 건국도상에서 우리는 첫걸음을 내뗐을뿐입니다. 난 여직까지의 동무의 말을 전혀 리해할수도 없고 믿을수가 없습니다. 동무가 어떻게 합금로를 고의적으로 폭파할수 있습니까?》

그이께서는 두손으로 움켜쥐시였던 강병철의 손을 털썩 놓으면서 고개를 흔드시였다.

그 순간이였다. 강병철은 심장이 뚝 멎는것 같더니 온몸이 싸늘하게 식어들어갔다. 그는 본능적으로 두손을 맞잡았다. 여직까지 흘러왔던 그이의 체온을 간직하려는것이다. 하지만 어느덧 손끝까지 랭기가 미쳐왔다. 그렇게 되자 그는 와락 몸을 던져 장군님의 품에 안겨 실토정을 하고싶었다.

(장군님! 장군님의 말씀이 옳습니다. 저는 로를 고의적으로 폭파시키지 않았습니다. 제가 어떻게 그렇게 할수 있겠습니까.)

가슴속에서는 이런 웨침이 불길처럼 솟아올라왔지만 시퍼렇게 멍이 진 그의 입술은 차츰 더 얼어들면서 끝내 속의것을 내뿜지 못하게 하였다.

옆에서 처음부터 말 한마디 없이 앉아있던 리연수가 의자를 조심스럽게 뒤로 밀어놓더니 이미 책상우에 내놓았던 서류철을 펼쳐들었다.

《여기에 본인이 자필로 쓴 진술서가 있습니다.》

《진술서요?》

그이께서는 리연수가 내드린 서류를 받아 첫장을 펼쳐보시였다. 첫가위에 《합금로 <제1호> 폭발사건과 관련한 진술서》라고 씌여있고 그밑에 강병철의 지장이 시뻘겋게 찍혀있었다.

《요전에 왔던 오기섭동지도 이것을 보고는 부인할수 없는 사실이라고 인정했습니다.》

리연수는 근엄한 얼굴로 한마디 하더니 강병철이와 최한덕을 피뜩 둘러보고나서 자리에 앉았다.

《여기에 동무가 로를 고의적으로 폭파시켰다는 자백이 적혀있습니까?》

연덩이같은 말마디들이 강병철의 흉벽을 텅텅 울려놓는다.

《그렇습니다.》

강병철은 갈린 목소리로 대답하였다.

그렇게 되자 방금전에 장군님께 기탄없이 말씀드리고싶었던 욕망은 자취없이 사라지고말았다.

(내 말은 어데까지나 공뜬 빈소리고 욕망에 불과하다. 그러나 공장장은 드놀지 않는 근거를 내대지 않는가. 그만두자. 그만두자. 얼마간 참고 견디면 모든것은 예상대로 될테니까.)

김일성동지께서는 별로 놀라와하시는 기색도 없이 《진술서》를 책상 한쪽에 밀어놓으시더니 강병철을 향하여 미소를 띠고 말씀하시였다.

《우리가 처음 만났을 때 강선제강소의 양춘만기사에 대해서 말한 기억이 납니까?》

《양춘만, 그렇습니다. 제가 그때 그런 사람이 있다는것을 알려드렸습니다.》

강병철은 눈을 번쩍 뜨고 쳐다보면서 호기심이 어린 표정을 지었다.

《양춘만은 서울로 도망간것이 틀림없었습니다.》

《그럴것입니다. 다른데는 갈데가 없는 사람입니다.》하고 강병철은 역시 놀랄만한 일이 아니며 앞이 뻔하다는 기분을 보이면서 가볍게 질문을 하였다. 《누가 서울에서 만나보았습니까?》

《그렇습니다. 우리 동무들이 우정 찾아가 만났습니다. 강선에 다시 돌아가 강철을 만들자고 하니까 인차 동의하고 길을 같이 떠났습니다.》

《그렇습니까?》 강병철은 안미간을 좁히면서 머리를 약간 가로틀었다. 《그렇게 순순히 따라나섰다는것은 좀 리해가 되지 않습니다. 혹시 어떤 위협을 느낀것이나 아닙니까?》

《그런 일은 없었습니다. 그런데 평산까지 왔다가 도망쳤습니다.》

《옳습니다. 그럴겁니다.》 환성에 가까운 소리를 질렀다. 그리고나서 강병철은 활기를 띠고 보태였다. 《그것이 진실입니다. 제가 그때 명확히 말씀을 올렸다고 생각됩니다. 그 사람만은 좀 특수합니다.》

《하긴 그런것 같습니다. 그런데 얼마전에 그가 제발로 우리를 찾아왔습니다. 자기 잘못을 깨닫고 강철을 만들겠다는 맹세도 했습니다.》

《제발로 찾아왔단말입니까?》

그는 흠칫 몸을 솟구기까지 하면서 어리둥절해 좌우를 둘러보기까지 하였다. 믿어야 할지 믿지 말아야 할지 알수 없었다. 순간순간에 운명이 책장번지듯 하는것이다. 도망쳤다는것은 응당한 일로 되는데 제발로 찾아왔다는것은 믿을래야 믿을수 없었다. 그래 그는 생각던끝에 장군님께서 강병철을 설복하기 위해 극단한 실례를 하나 만드신것이나 아닌가 짐작해보았다. 그렇지만 미소를 띠신 장군님의 얼굴에서는 전혀 그런 느낌을 받을수 없고 다만 전이나 지금이나 변함없이 진지한 기운만이 온몸에 풍기고있었다. (그것이 사실이라고 하자.)하고 강병철은 고개를 떨구고 생각해보았다. 그런데 장군님께서 어째서 양춘만의 이야기를 지금 나한테 말해주시는것일가. 처음에 대수간 비치시였던 이야기에 대한 후일담일수도 있겠지만 보다는 곡절이 있기는 하지만 종착점에서는 달리 될수 없다는 하나의 불가피성을 납득시키시려는것이나 아닐가. 하지만 양춘만이도 이제 앞날에 있게 될 나같은 경우를 두고보아야 하는것이다. 그렇다. 두고보아야 한다.

《장군님!》하고 강병철은 약간 떨리는듯한 음성으로 말을 떼였다. 《양춘만이 돌아왔다는것은 참으로 놀라운 일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좋은것이라고 생각됩니다. 그러나 제가 바라는것은 앞으로 나처럼 되지 말아달라는것입니다.》

신중성을 띠고 시작한 강병철의 말을 주의깊이 듣고계시던 김일성동지께서는 그가 말을 끝내자 즉시에 물으시였다.

《나처럼 되지 말라는것은 무슨 말입니까?》

강병철은 대단한 용기를 내여 대답을 올리였다.

《양춘만에게는 나와 같은 경우가 앞날에 있을수 있다는것입니다.》

《그렇다면 동무는 로를 고의적으로 폭파시켰다는것을 그대로 인정합니까?》

《그렇습니다. 저 진술서에 쓴것이 모두 사실그대로입니다.》

《진술서? 저 문건말입니까?》

《그렇습니다.》

《나는 저것을 인정하지 않습니다. 나는 저런 문건을 인정하지 않습니다!》 그이께서는 오른손을 머리우까지 높이 쳐들었다가 힘있게 엇가로 내리그으시면서 자리에서 일어나시였다. 《나는 저런 문건놀음에 진절머리가 난 사람이요.》 자리를 뜨신 그이께서는 급히 맞은켠 벽에까지 걸어나갔다가 다시 돌아오시여 처음에는 리연수에게 다음에는 강병철에게 손짓을 하며 말씀을 계속하시였다.
《나는 저 문건을 인정하지 않습니다. 오기섭동무도 동무의 필적을 내보이면서 진술서에 적힌것을 인정해야 한다고 하였지만 나는 그것을 반대했습니다. 산 사람을 믿지 않고 문건을 믿으면 사람이 제정신을 잃게 됩니다. 나는 항일무장투쟁을 시작한 때로부터 지금까지 여러번에 걸쳐 쓰라린 체험을 했습니다.》

그이께서는 잠간 중단하셨다가 다시 계속하시였다.

《무장투쟁초기에 반<민생단>투쟁이라는것이 벌어졌습니다. 그것때문에 숱한 사람들이 잘못되고 많은 고생을 했습니다. 그때에도 바로 저런 문서보따리를 메고다니면서 잘 싸우는 사람들을 모해하게 만들었습니다. 직접 본인을 만나서 한마디 물어보면 되는것인데 잔뜩 문건을 만들어가지고 서로 의심하게 하였습니다.》

그이께서는 《민생단》문서보따리를 태워버리고 모두 단결해서 일제와 싸우던 이야기를 상세히 하시였다.

그이께서 말씀을 계속하시는데 별안간 뒤에서 문기척소리가 났다. 뒤이어 김좌현이 들어왔다. 좌현은 장군님께 가까이 다가서서 몇마디 귀속말로 말씀드리였다.

《들어오라고 하시오. 지금 만납시다.》

김일성동지께서는 강병철에게 잠간 좀 쉬였다가 다시 계속하자고 하시고 자리에서 일어나시였다.

김좌현이 문을 열어잡은채 곤색작업복을 입은 중년사나이를 들여놓으며 인사를 시키였다. 장군님께서는 다정히 인사를 나누신후 의자를 권하시였다.

《좌현동무, 그걸 내놓으시오. 여기서 우리모두 같이 토론해봅시다.》

그렇게 되자 강병철은 금시 긴장을 풀면서 호기심이 어린 눈으로 공무과에 있는 선반공 한문호를 쳐다보았다. 한편 옆방에 나갔던 좌현이는 종이에 싼 꾸레미를 하나 들고 들어와 탁자에 펼치였다.

방안사람들의 시선이 일제히 쏠린 가운데 나타난것은 나무로 깎고 양철을 오그려붙인 놀이감총이였다. 총과 함께 몇개의 쇠쪼각이 있었는데 그중에는 괘종시계치차같은것도 있고 태엽 비슷한것도 있었다.

김일성동지께서는 싸창모양으로 만든 총가목을 집어들고 어리둥절해있는 한문호에게 설명을 하시였다.

《이걸 가지고 련발사격을 할수 있도록 만들수 없겠습니까?》

한 마흔쯤 나보이는 지혜롭게 생긴 한문호는 총가목이며 총신이며 그에 따르는 부속품들을 하나하나 살펴보더니 나직이 말을 떼였다.

《실지 화약을 써서 총알이 나가야 하겠습니까?》

《아니요. 아이들 놀이감이니까. 소리만 나면 됩니다. 조건부는 단방치기가 아니라 련발로 나가도록 자동장치가 돼야 합니다.》

《그런데 흐름식으로 많이 나와야 하겠습니까? 이거 하나면 되겠습니까?》

《많이 만들어도 좋습니다. 여기다가 놀이감전문공장을 하나 만들어도 반대없습니다. 그러나 현재는 이거 하나면 됩니다.》

《알겠습니다. 오늘중으로 만들겠습니다.》

《수고해주시오.》

좌현이와 함께 한문호는 물러갔다. 리연수, 강병철 등 방안사람 모두가 어리둥절해졌다. 무슨 크고 요란한 일이 벌어질것으로 알았는데 아이들 놀이감을 부탁하시는것이다. 그러나 강병철이만은 그윽한 심정에 잠겨 장군님을 우러러보았다. 저것은 단순한 놀이감이 아니라 무슨 큰 의의를 띠는것일수 있다. 혹시 그때 본 양춘만이 아들애것이 아닌지 모르겠다. 어쨌든 비범한 일인것만은 사실이다.

다시 본래의 화제로 돌아가신 김일성동지께서는 10여년전 이야기를 눈에 보는것처럼 방불하게 형상하시고나서 강병철의 진술도 결국 《민생단》보따리와 같다고밖에 볼수 없다고 단호하게 론단하시였다. 계속해서 그이께서는 평양에서 만났던 이야기를 다시 상기시키시였다.

《강병철동무! 나는 그때나 지금이나 전혀 다름이 없습니다. 우리가 인테리인 동무와 손을 잡고 같이 혁명을 하자고 한것은 그 어떤 사탕발린 빈소리가 아니라 진정입니다. 이것은 오늘도 그렇고 래일도 그렇고 또 영원히 그럴것입니다. 이것은 어느 누구의 혼자 생각이 아니라 우리 당의 방침이며 의지입니다. 우리 혁명이 이것을 요구하고있습니다. 또 동무들의 처지에서 볼 때도 이것은 근본문제이며 절실한것입니다. 우리 조선의 인테리앞에는 단 하나의 길이 있을뿐입니다. 그것은 우리 인민과 더불어 민주주의인민공화국을 수립하고 부강한 내 나라를 건설하는 그 길입니다. 이것이 우리가 가야 할 정로입니다. 이 길외에 절대로 다른 길이 있을수 없습니다.》 그이께서는 주의를 집중해서 듣고있는 동무들을 한번 빙 둘러보시고나서 다시 말씀을 계속하시였다.《여기서 한가지 동무에게 명백히 말해둘것이 있습니다. 아까 동무는 공산주의를 위해서 강철을 만들 생각이 없었다고 하였습니다. 그것은 또한 리념에서 온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이것을 놓고 말해봅시다. 여기 오기 며칠전에 우리는 신의주에 갔던 일이 있습니다. 공산당을 반대하는 악선전에 넘어간 학생들이 란동을 부리였습니다. 그 학생들은 공산당이라면 덮어놓고 반대하였습니다. 거기에 우리가 나가 연설을 하는데 <김일성장군님은 공산주의자입니까?>하고 군중들가운데서 누가 큰 소리로 물었습니다. 그래 나는 서슴없이 <나는 공산주의자입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모두 아연해졌습니다.》 계속하여 그이께서는 공산주의자와 조선독립운동에 대하여 해설하시였고 적들에게 매수된 나쁜놈들이 공산주의탈을 쓰고 나쁜짓을 하는것이 있었다는데 대하여 례를 들어가며 말씀하시였다. 그런후에 강병철이 지금 처한것과 같은 구체적인 대상을 들어 분석하시였다. 《내가 보건대 강병철동무는 이러한것보다 더 심각한 인생문제를 생각하고있는것 같습니다. 동서고금의 유명무명의 수많은 인사들이 인간에 대하여, 인생에 대하여 말하였습니다. 인간은 죄악의 존재라고도 하고 반대로 인간은 선의 존재라고도 하며 인간은 령혼을 가진 동물외 아무것도 아니라고도 합니다. 우리는 인간이 있어 자연도 우주도 가치와 의의를 가지며 또 그 인간이 그 모든것을 개조하고 향유한다고 봅니다. 때문에 우리는 그 인간을 믿고 사랑하는것으로써 혁명을 하고 나라도 찾으며 그 인간을 위해서 한생 자기를 바칠 각오로 살아가고있습니다. 이것이 지금 우리 조선공산주의자들의 리념입니다. 이것이 당신에게 적대되기때문에 자기 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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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산님의 댓글

강산 작성일

(위에서 계속)

이것이 당신에게 적대되기때문에 자기 운명은 고사하고 털끝 한오리 바칠 생각이 없다면 섭섭하기는 하지만 강병철동무! 우리와 이자리에서 깨끗이 미련없이 헤여집시다. 당신은 여기 앉은 다른 동무들과 달리 이러저러한 인생관을 모두 알고있을것이기때문에 나는 이런 정도로 강병철의 립장을 묻습니다.》

강병철은 가슴이 섬찍해나서 고개를 들었다. 왜 그런지 온 심장의것이 졸지에 쑥 뽑히는것 같은 허무한 생각이 들었다.

김일성동지께서는 이쪽 기분에 대해서는 전혀 고려하는것이 없는것처럼 자신의 감정만을 터치시는것 같았다.

《그러나 후회는 하지 마시오. 사람들은 모두 아무때나 아무런 대가도 치름이 없이 자기 길에 들어서지는 못합니다. 그런데 왜 동무는 솔직하게 말하지 않습니까. 아까 동무는 양춘만이 앞으로 나처럼 되지 않기를 바란다고 말했습니다. <앞으로 나처럼> 이것을 동무는 명백하게 밝혀서 말해야 하는것입니다. 동무는 지금 인테리에 대한 자그마한 몰리해앞에서 우리들이 한사코 없애야겠다고 노력하고있는 부분적인 결함을 두고 투정을 부리고있는것입니다. 동무는 량심 그대로 내 나라의 철을 위해서 자기의 모든것을 다 바쳤습니다. 그것은 정말 눈물겹습니다. 손끝에서 피가 흐르는데도 벽돌을 축조했습니다. 그 손이 너무 쓰리고 아파서 손을 쳐든채 가마니우에서 딩굴며 밤을 새웠습니다. 동무는 대두박을 화덕에서 삶아먹으며 일했습니다. 여기가 아니고 저쪽에 있었다면 동무는 호의호식을 할수 있으며 아무리 나쁜 경우라 해도 대두박을 씹을 형편은 아닙니다. 그러나 여기 앉은 공장장은》하고 김일성동지께서는 날카로운 시선으로 리연수를 쳐다보시는데 그는 벌써 순간에 얼굴이 하얗게 질려있었다. 《공장장은 동무의 고충을 알아주고 도와줄 대신에 색안경을 끼고 감시만 하고있었습니다. 이전에 잘먹었으니 일없다, 아직 일본책만 보고있다 이런 식입니다. 솔직히 말하면 공산주의자라고 자칭하는 공장장은 동무에게 대단히 몰인정하게 대했습니다. 그러니 동무는 이런 사람들의 감시하에서 금속을 만드는것이나 일제때 야하다에서 강철을 만드는것이나 본질상 무엇이 다른가라는 의문을 가지게 되였던것입니다. 동무의 가슴속에는 지금 이런 엄중한것이 숨어있습니다. 하긴 여기만 그런것이 아니라 평양에도 여기 공장장과 같은 사람이 있을수 있고 또 한동안 우리 대렬속에 그런것이 나타날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으로 해서 동무네가 우리를 믿지 않고 우리를 외면하는 길로 나가서는 안됩니다.》

강병철이앞에 손을 내대고 두세번 흔들어보이신 그이께서는 잠시 중단하시였다가 다시 계속하시였다.

《우리가 생각하건대 당신들이 우리와 리념을 합치지 못할 근거는 하나도 없습니다. 또 그렇다고 해서 당신들이 가야 할 그 어떤 다른 화려하고 휘황한 길이 있는것도 아닙니다. 다시한번 말해둡니다만 우리는 처음 만났던 그때처럼 우리는 당신들을 믿고 당신들은 우리를 믿고 같이 한길을 갑시다.》

강병철은 이때 온몸의 균형을 잃고 물에 뜬것처럼 기우뚱거림을 느끼였다. 그러자 그는 의자가름대를 붙잡고 자빠지지 않으려고 무진 애를 썼다. 그러다가 그는 가슴을 움켜쥐면서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무아몽중에 빠진 그는 아무것도 식별해낼수 없었다. 오로지 그는 장군님만을 믿고 따르려던 절절한 념원과 피타는 노력이 졸지에 허공으로 날아나는것 같아 그것을 한사코 붙잡으려고 팔을 들어올리며 모지름을 썼다.

《장군님! 저는 변함없이 장군님만 믿습니다.》

그는 한마디 한마디 힘을 주어 정확하게 속심을 터치였다.

장군님의 말씀은 투철하고 단호하였으며 그러면서도 사랑과 믿음의 숨결이 그토록 강렬하여 마지막까지 부둥키고있던 불신에 대한 종창을 그는 사정없이 북북 찢어놓았다. 그는 방바닥에 털썩 엎드려 어깨를 들먹이기 시작하였다. 그이께 무한정 많은 말을 해야 하고 또 할수 있을것 같았는데 무슨 말부터 어떻게 해야 할지 갈피를 잡을수 없었다. 그래 그는 넘쳐나는 오열을 삼키고있을뿐이였다.

《강병철동무! 일어서시오. 이 길로 합금로로 나가시오. 우리 인민이 당신을 지켜보고있습니다.》

방안에서는 더이상 아무런 음향도 울리지 않았다.

강병철은 천천히 일어섰다. 그리고는 마치 구령을 받은 전사처럼 조금도 곁눈을 팔지 않고 현관을 나서더니 합금로쪽으로 곧추 걸어갔다.

김일성동지께서는 창문을 거쳐 한 지식인이 가고있는 걸음을 묵묵히 지키다가 흠칫 놀라시였다. 문앞에서 웬 청년이 강병철을 지켰다가 따라가는데 그 외모로 보아 신창의 박창술이 틀림없었다. 그때에야 그이께서는 박창술이 한 전화가 오늘 여기로 자신을 오게하는데 큰 견인력이 되였다는것으로 해서 빙그레 미소를 지으시였다.

강병철이 로에 도착하니 해는 벌써 지고 밤이 되였다. 그는 합금로안에 들어가 다시 쌓기 위해 무둑히 무져놓은 내화벽돌무지에 털썩 엎드리였다. 그리고는 몸을 우들우들 떨면서 속으로 부르짖었다.

(이 믿음을 안고 나는 한생 살겠다. 이 지탱점이 있는 한 나는 다시 흔들리지 않을것이다. 이것이 서있으면 나도 서있고 이것이 넘어지면 나도 같이 땅에 꺼꾸러질것이다. 이것이 나의 모든것이다. 이 단 하나의 길로 드팀없이 한생을 걸어갈것이다.)

밤은 깊어가는데 숨을 죽인 로앞에서 단 1명의 기사가 내쉬는 갸냘픈 입김이 가물가물 피여오르면서 로의 두리를 천천히 감돌고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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