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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소설 전장의 행운아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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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강산
댓글 0건 조회 7,016회 작성일 20-08-29 2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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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2 장

명 령

6

 

《뭐야?》

참을수 없을만큼 화가 치밀어오른 배달환은 용수철에서 튕겨나듯 일어서며 참모장의 유들유들한 볼편을 힘껏 후려갈겼다.

《그만큼 일렀는데 놓쳐버렸단 말이야? 엉? 이 새끼야, 넌 대체 모가지가 몇개길래 늘직늘직하게 놀아? 쌍!》

호수물에 뛰여들어갔다는 인민군정찰병이 온 하루 24시간동안 물속에 숨어있다가 수색대를 요정내고 달아났다는것이 믿어지지 않았다. 그러나 호수가를 지키던 한개 소대가 저승에 가고 무기까지 말짱 없어진것을 봐선 유령같은 정찰병이 살아 도망친것이 분명했다. 너무도 억이 막혀 부하들을 모조리 둘러메치고 밟아죽이고싶은 심정이였다.

그렇게 지독한 놈이라면 인민군측에서 꽤 품들여 파견한 정찰병이 분명할진대 그런 놈을 놓쳐버렸다는것이 부아를 더 돋구었다.

배달환은 비린청을 돋구었다.

《그놈은 분명 우리의 〈킨지대〉를 노리고 침투한거야. 그놈을 당장 사로잡지 못하면 〈킨작전〉이 위태해! 네놈들이 그걸 모른단 말인가? 쌍!》

악에 받쳐 부르짖는 그의 목소리에 모두들 목을 움츠렸다.

《킨작전》이 시작되면서 진동―함안일대에 주둔한 각 련대와 대대들에 소속되여있던 수색중대들을 긁어모아 수색련대를 내온것은 《킨지대》의 안전을 보장하기 위한것이였다. 그러고도 모자라 킨사단장은 수색련대지휘부를 수색사령부로 승격시켜주었다. 배달환은 수색련대의 련대장 겸 사령관인셈이다. 킨사단장은 남하해오는 인민군대를 저지시킬 철의 반타격전을 은밀히 준비하기 위해 설정한 《킨지대》에서의 절대안전은 미국과 남조선의 운명이 달린것이라고 하면서 련대내의 중대들에 무기와 물자를 푼푼하게 보급해주었다.

《우리 미국인들은 빈말을 하지 않소. 명심해야 하오. 작전의 주역은 물론 우리 미군이 맡겠지만 당신들의 몫이 결코 작은것이 아니요. 이 지대의 지형지물을 잘 아는 배중령 당신인것만큼 수색전에서 성과를 거둘수 있을거요. 우리 미군의 작전에 〈한국인〉들을 개입시키는것도 바로 당신들이 이곳 지형과 실정을 잘 알겠기때문이요. 작전의 안전을 목숨걸고 보장하시오. 나의 이름으로 불리우는 이 지대에 인민군정찰이 얼씬도 못하게 해야 하오. 운명을 거시오. 운명을! 배중령의 행운이 바로 이 〈킨지대〉에서 이루어지길 바라오. 우린 당신을 믿겠소.》

킨이 한 말이였다.

배달환은 킨의 속심을 잘 안다. 《킨지대》의 안전이 이루어지지 않는 경우 목숨을 내놓으라는 소리였다.

사람의 목숨이란 얼마나 검질긴것인가. 38°선에서 죽음의 고비를 넘고 이 남해가에 쫓겨온 그는 이번작전에서 실패하는 경우 절대로 목숨을 부지할수 없다는것을 잘 알고있었다. 우선 제임스가 용서하려 하지 않을것이다. 련대를 인민군대의 먹이로 내버리고 도망친 그를 처벌하려고 《국군》군법회의에서 검사관이 파견되여왔었다. 그러나 다행스럽게도 《국군》의 통수권이 미군에 넘어간 뒤여서 제임스의 보증에 의한 킨사단장의 두둔이 큰 효력을 보아 배달환의 처벌건은 흐지부지되여버렸다.

《당신은 운수가 좋삽네다, 배중령. 나를 만난것을 하나님께 감사드려야 합네다.》

그날 제임스가 축배잔을 쥐여주며 격려한 소리였다.

《과시… 미국은 저의 은사입니다.》

달환은 목이 꺽 메여 잃어버린 존엄과 명예를 《킨작전》에서 되찾으리라 굳게 마음먹었다. 그럴만한 담보는 얼마든지 있었다. 수색대사령부소속의 중대들은 인민군대한테 실컷 두들겨맞고 쫓겨온 패잔병들을 긁어모아 편성한 오합지졸이기는 했으나 갖춘 화력은 미군부대들에 짝지지 않았다. 고문관인 제임스가 장담하는것도 바로 그 점이였다.

수색력량을 총동원하여 《킨지대》안을 날마다 참빗질하면 난다긴다하는 인민군정찰병들도 발붙일수 없을것이다. 일단 침투한 흔적을 발견만 하면 막강한 화력을 집중하여 일거에 소멸해버릴것이다. 하여 킨사단장의 믿음에 보답하고 이 배달환은 승진의 더 높은 계단을 톺아오르게 될것이다.

그런 야심으로 시작한 일이 첫걸음부터 랑패를 보게 된것이 분했다.

《참모장! 넌 뭘하는 놈이야? 쌍! 호수에서 놓쳐버린 그놈을 당장 잡아다가 내앞에 내놔! 놓쳤으면 천리를 따라가서라도 붙잡아야 할게 아냐. 〈킨지대〉를 노리구 들어온 놈이 〈킨지대〉안에 있겠지 하늘나라에 갔겠는가?》

악에 받친 달환은 아직까지 얼얼한 볼따귀를 슬슬 문지르며 목석처럼 서있는 참모장을 향해 게거품물고 소리질렀다.

《서북청년회》출신인 홍성구라는 이 참모장녀석은 채병덕의 수하에서 련대장을 해먹던 작자인데 인민군대의 포위에 들어 련대를 쫄딱 녹여먹고서도 어떤 연줄로인지 킨사단장의 눈에 들어 배달환의 참모장으로 임명되였다. 비록 소령이지만 체격으로나, 태권도 삼단자라는 완력으로나 배달환이 경계하지 않으면 안될만큼 무분별하고 불량스러워 거칠거칠한 녀석이였다. 아마 달환이가 제임스와 막역한 사이만 아니여도 당장 책상을 치며 마주 덤벼들었을지 모른다. 그가 믿던 채병덕이 하동에서 미군 못드중좌와 함께 황천에 간 다음부터 좀 주눅이 들기는 했어도 원체 막돼먹은 놈팽이여서 걸핏하면 거세한 황소처럼 미욱하게 날뛰는것이 배달환이도 손아귀에 틀어잡기가 조련치 않았다. 지금도 눈치가 올곧지 않다.

《긴데 사령관님, 한가지 문제가 있습니다.》

《뭐야?》

《어제 우리 아이들이 인민군정찰병으로 추측되는 한놈을 추격하던중 미군 29련대주둔지에 조금 못미처서 깜틀 놓쳐버렸습니다. 한것은 미군부대들이 우리 〈국군〉수색중대들의 활동을 심히 저애했기때문입니다. 미군들이 비밀비밀 하면서 우리 〈국군〉을 자기들의 주둔구역에 아예 들여놓으려 하지 않으니까 별수 없었지요. 수색작전의 효률을 높이려면 〈킨지대〉내에 배비된 미군부대들의 구역에 우리도 자유롭게 드나들수 있어야겠는데… 정 그렇게 못해주겠으면 미군부대들의 주둔구역을 확정한 배치도 같은거래도 하나 있어야겠습니다. 기래야 우리레 담당해야 할 지대를 명확하게 계선그을수 있고 인민군정찰병들이 무엇을 노리고 준동하겠는가를 알수 있습니다. 지금형편에서 인민군정찰병들이 미군과 우리사이의 공간지대를 타고 움직이면 저쪽도 이쪽도 별수가 없지요. 이번과 같은 일이 다시 생기는 경우 효과적으로 대처하자면 꼭…》

달환은 뱁새눈을 사납게 치떠올렸다.

《그건 절대비밀이야. 미군에서두 일개 대대장들은 구경할 엄두도 못 내는거거덩.》

참모장의 메밀눈이 배달환의 뱁새눈 못지 않게 독을 뿜었다.

《기렇게 믿지 못하겠음 다 해먹을게지 우리한테 못살게 굴건 뭐유? 련대장이 정 기러문 내레 고문관님한테 청들이지요. 수색작전에서 우군의 배치정형두 몰라가지구서 뭘해먹겠다구 기래요?》

예상했던 불집이 터졌다. 제임스의 주관하에 있은 작전모의때 배달환이 꺼내놓았던 《킨지대》조감도를 참모장이 모를리 없었다. 제임스가 킨사단장한테서 받아왔다는 그것이 루설되는 경우 누구도 무사치 못하리라고 어마어마한 엄포를 놓은 바람에 신주모시듯 감춰두고있는것인데 불량기가 다분한 참모장이 곧장 골받이를 해대는것이다. 저렇게 대드는것은 가뜩이나 사나운 감정이 폭발의 극단점에 이르렀다는 표시였다. 인민군정찰병을 놓쳐버린 추궁에 한장의 종이장을 걸고 맞받아치며 대드는것은 그게 절실히 필요해서라기보다 자기를 하대한다는 선입견때문일것이였다. 이런 때는 한걸음 물러서서 얼려넘기는것이 상책임을 약삭바른 달환이 모를리 없었다.

배달환은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맹호출림이라더니 과시… 좋아, 홍참모장의 요구를 들어줄터이니 금후 인민군정찰병들을 놓쳐버리는 일이 단 한건도 있어선 안되겠소.》

《념려마십시오. 헤…》

책상서랍을 드르륵 뽑아낸 달환은 접었던 지도를 꺼내놓았다. 그리고는 손으로 목을 베는 시늉을 해보였다.

《이건 극비중의 극비야. 루설되면 이거야.》

참모장의 메기입이 헤벌어졌다.

《알겠습니다. 이에 기초해서 수색중대들을 다시 배치하겠습니다.》

《좋다. 사흘내로 어떤 놈이든 잡아다놓으라.》

참모장이 엉치바람을 피우면서 떠나간 뒤 배달환은 제임스를 기다렸다. 제임스는 마산에 있는 킨사령부에 갔는데 이틀이 넘도록 나타날줄 모른다. 외삼촌의 녀서기 포치엔에게 함안의 농가에서 빼앗아낸 백제 의자왕시대의 도자기를 선사하겠다면서 갔는데 톱톱한 대접을 받는 모양이다.

그는 저녁무렵에야 잔뜩 취해서 비칠거리며 나타났다. 예상했던대로 기분이 아주 좋아서 사령부에 들어서자마자 《브라보!》를 련발하며 엄지손가락을 내흔들었다. 그것은 사기가 올랐을 때마다 하는 버릇이였다. 우묵한 눈에 희열이 넘치고 입에서는 람술냄새가 확 풍겼다.

《기분이 썩 좋으셨습니다.》

《오케이! 오늘은 하나님의 은총이 이 제임스에게 몽땅 내려지는 날입네다.》

진흙이 잔뜩 게발린 군화에서 억지로 발을 뽑아내고는 침대에 벌렁 나가누웠다. 락타직모포를 베고 두손을 허공에 잔뜩 뻗치며 만용을 부렸다.

《누가 우릴 이긴단 말입네까! 누가? 이 제임스의 의지를 누가 당해낼수 있단 말입네까! 오, 포치엔! 나의 사랑! 사단장은 늙었삽네다. 제임스는 젊었삽네다. 이 전쟁이 아무리 잔혹해도 나의 마음은 때묻지 않삽네다. 마셨삽네다. 람술의 달콤한 맛처럼 이 제임스의 마음은 변함이 없을것입네다. 오, 나의 사랑 포치엔!》

(취했군.)

우연이지만 남의 사생활을 들여다보게 된것이 부자연스러워 배달환은 옹색한감을 느꼈다. 고문관이 취중몽담에 빠진 덕에 인민군정찰병을 놓쳐버린 불쾌한 객담을 면하게 된것이 다행스러웠다.

(며칠안으로 그놈의 인민군정찰병을 손아귀에 넣을수도 있을테니 그때까지 오늘일은 묻어두자.)

배달환은 발끝걸음으로 물러섰다. 그런데 제임스는 잠든것이 아니였다. 저가락같은 손가락을 펴들고 달환을 불렀다.

《배련대장, 당신은 목석한가지. 왜 가만있삽네까?》

《무슨 말씀이신지?!》

달환은 발끝까지 쭉 흘러내리는 오한에 몸을 떨었다. 오늘 있은 일을 벌써 다 알고 추궁하려드는것인가? 무릎이 떨려 걸음이 잘되지 않았다.

《아, 내가 말하지 않았삽네까? 아, 당신은 모를겁네다. 미군1기갑사단의 신형땅크들이 도착한 사실을 말입네다.》

《예?! 예에―》

제임스는 우묵 들어간 눈확속에서 번득이는 파랑눈에 불을 켜들고 일어나앉았다.

《킨사단장의 능력을 낮추 보면 안됩네다. 부산항에 도착한 〈엠26퍼씽〉신형땅크들을 몽땅 우리한테 끌어내왔단 말입네다. 내 방금 그것들을 죄다 돌아보고 오는 길인데 굉장합네다! 인민군대는 멀리서 한번 보기만 해두 줄행랑 놓을겁네다.》

《그렇습니까. 과시 미국은…》

《내 이미 말하지 않았삽네까? 우리 미군 한두개 사단이면 전쟁형편이 싹 달라질게라구. 비록 우리가 반도의 남단에 쫓겨왔지만 아직은 때늦지 않았삽네다. 미국의 막강한 힘은 바로 이 〈킨지대〉에서부터 발휘될것입네다. 여기서 인민군대의 전진을 멈춰세우고 쭈―욱― 밀고올라가 압록강, 두만강! 다시 쭈―욱― 대륙으로! 아시아, 유럽, 온 유라시아대륙으로 자유세계의 판도를 넓혀갈것입네다. 큰 배는 천천히 떠나는 법입네다.》

제임스의 넉두리는 지루할 정도로 계속되였다. 킨사단장이 짜놓은 작전안이 굉장하다는것과 인민군대를 격퇴할 작전을 지휘하느라 련 열이틀째 한잠도 못 자고있더라는둥 횡설수설하는것을 들으며 배달환은 미구에 현실로 증명될 승전의 광경을 눈앞에 그려보게 되는것이였다.

(그러면 그렇겠지. 미국어른들이 궁지에 빠져 가만있을탁이 있나. 이제 전선정황이 싹 달라지고 제임스고문관의 말대로 북으로 진공하게 될것이다.)

배달환은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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