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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소설 전장의 행운아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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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강산
댓글 0건 조회 4,041회 작성일 20-09-11 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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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4 장

신념의 산마루

6

 

《뭐라구? 우리 헌병중대 말이요?! 그것들은 김화에서부터 행불인데 어디에 나타났다구? 평강?!… 그곳 비행장도 습격을 받았다? 하, 우리 사단 야전병원도 털리웠는데 … 예, 예.…》

배달환은 송수화기통을 두손으로 그러쥐고 목청을 돋구었다. 린접사단인 2사단장한테서 걸려온 전화였다. 수화기에서 울려나오는 소리가 모기소리처럼 앵앵거리는데 화가 올라 당장 내동댕이치고싶었으나 한주일째나 가뭇없이 사라졌던 자기네 헌병중대가 뜻밖의 지점에 출몰했다는 바람에 온몸이 귀가 되여 전화통에 더 바싹 달라붙었다.

그는 미군이 공세로 이전하기 시작하면서 괴뢰군 2군단 3사단장으로 일약 승급했다. 물론 윌리암 제임스가 적극 활약한 덕분이였다. 남해안일대에서 쓴맛을 본 윌리암 킨은 배달환을 자기에게 천거한 제임스를 꾸짖으면서 수색련대를 일선부대로 개편해버리려들었다. 그런데 배달환의 운명은 그리 기박한것이 아니였다. 《유엔군》이 공세에로 넘어가 전선이 멀리 북쪽으로 이동해가는 형편에서 더우기는 《크리스마스총공세》가 시작된 조건에서 수색련대를 모체로 인원을 보충하여 사단으로 승격시켜야 전선에 요구되는 편제를 채울수 있었다. 그때 제임스가 나서서 실전경험이 있는 배달환이 사단장자리에 적합한 인물이라는것을 킨에게 겨우 설득시켰다. 그렇게 되여 맥아더의 총공세명령에 따라 모든 부대들이 일선에 나서게 된것은 당연한것이지만 배달환은 사단장이 되여 전선에 나온것이였다.

《당신은 이 제임스를 하느님으로 여겨야 합네다. 사단장의 자리가 영원히 자기것이 아니라는것을 명심해야 합네다. 아직까지 실패의 쓴맛을 무수히 겪었으나 난 그래도 당신을 버리지 않았삽네다.》

사단장으로 임명받은 날 어깨를 툭툭 쳐주며 훈시하는 제임스의 팔소매에 눈물을 떨구었던 배달환이다. 그에게 있어서 제임스는 행운의 신이였고 운명의 구세주였다.

제임스는 이미 군단미군사고문관으로 올라앉아 이틀이 멀다하게 사단들을 들볶았다. 평강에 헌병중대가 나타나자마자 비행장이 습격당했다는것을 그가 알면 또 추궁이 불같을것인데 이제는 어떡한단 말인가. 거듭되는 은혜를 베풀어주는 그에게 조그마한 보답도 하지 못하는 자신이 벌레처럼 가긍스럽게 여겨졌다.

송수화기를 내려놓고난 그는 버릇처럼 아래턱을 손으로 싸쥐였다.

평강에 전개하기로 하고 출발시켰던 야전병원이 신원을 알수 없는 헌병대에게 의약품이며 침구류까지 말짱 빼앗기고 군의관이며 간호부들이 어디론가 모두 끌려갔다는 보고를 받은것은 오늘 이른아침이였다. 아무리 생각해보아도 이상했다. 그 헌병대가 아군이라면 아무리 탐욕이 땅거죽같은 놈들이래도 인원들까지 매모조리 쓱싹해버릴 까닭이 없는것이다. 게다가 미군이 신설하려던 비행장이 습격받았다는것을 보면… 그러니 추리는 명확한 결론에 떨어진다. 인민군정찰병들이 아군의 헌병중대로 가장하고 맹활동을 개시한것이다.

(옳다, 바로 그것들이다. 그놈들이 진짜 헌병중대를 없애치우고 헌병행세를 하고있다!)

이런 추리에 다달으자 배달환은 정신이 깜뜰하여 비칠거렸다. 얼마나 악귀같은 놈들이면 전투력이 막강한 헌병중대까지 몰살시켰단 말인가. 가부간 그놈들이 악질은 악질이다. 킨지대에서도 연방 상상도 못했던 골탕을 먹었더랬는데 지금 맞다든 놈들도 도무지 상상치도 못할 일들만 골라가며 빚어내고있다.

(혹시 몰라, 능란한 솜씨를 보면 분명 킨지대에 기여들었던 그놈들의 작간이 아닌지. 남해안의 넓은 지역에서 제멋대로 날뛰며 막대한 피해를 준 그놈들을 한놈도 사로잡지 못하지 않았는가. 인민군대의 주력이 바로 동부산악지대로 후퇴한다니 그놈들도 살아남아 분명 태백산줄기를 타고 행군해갔을것인즉 능히 여기서 맞다들 가능성이 있는게거덩.)

몸이 으스스 떨렸다.

그날 저녁 사단지휘부에 들린 제임스는 어디서 마시고왔는지 위스키냄새를 역하게 풍겼다. 중언부언하는 배달환의 보고를 받고난 그는 화가 나서 두손가락으로 제 머리를 톡톡 두드렸다.

《돌대가리, 마산일대에서 그만큼 쓴맛을 봤으면 좀 령리해질줄도 알아야 하지 않겠삽네까. 오리가 닭쫓듯 뒤꼬리나 따라다녀서야 어떻게 그 날랜 인민군정찰병들을 잡아낸다는겁네까. 미리 함정을 마련해놓으란 말입네다, 함정을!》

《예? 함정이요?!》

뱁새눈을 한껏 치켜올리고 쳐다보는 배달환을 우멍한 눈으로 내려다보던 제임스는 흥 코김을 내불었다.

《당신네 한국인들은 대체로 아둔한 형의 인간들입네다. 하나하나 코코를 다 말해주어야만 하니 참 일해먹기가 힘이 든단 말입네다.》

달환은 비굴한 표정을 짓고 머리를 조아렸다.

《어쩌겠습니까. 미국어른들이 아니면 그 누가 우리를 도와주겠습니까. 고문관님, 어서 고견을 주십시오.》

제풀에 성수가 오른 제임스는 꺽꺽 게트림을 하고나서 력설하기 시작했다. 무척 많이 마신것 같지만 취한것이 아니였다. 말을 꼭꼭 씹어가며 훈장이 소학생을 가르치듯 했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아야 합네다. 후퇴하는 적들은 지금 단순히 쫓겨가는게 아닙네다. 그들은 용의주도하게도 우리 미군과 국군부대들을 이리저리 끌어내치면서 하나하나 소멸하고있삽네다. 그들의 뒤를 따라만 다녀선 그들이 하자는대로 놀아줄수밖에 없는게 아니겠삽네까. 그렇게 해선 안됩네다. 우리는 그들을 부단히 추격하면서 특수작전을 펴서 유인소멸해야 합네다. 그들의 앞에 함정을 파고 놈들을 그속에 끌어들여야 합네다. 알만합네까?》

《예― 아, 알겠습니다. 우리의 훌륭한 심복들을 적들의 기동로앞에 당장 파견하겠습니다.》

《좋삽네다. 우리는 압록강, 두만강에 가닿기 전에 인민군주력을 깡그리 소멸해치워야 합네다. 그러자면 바로 코앞에서 우리를 괴롭히며 날치는 인민군정찰대부터 제거해야 합네다. 북반부 각 지역에 조직된 치안대력량도 잘 리용해야 합네다.》

배달환은 머리를 주억거렸다. 우묵한 눈확속에서 번득거리는 제임스의 파랑눈을 쳐다보며 감복하지 않을수 없었다.

(과시 미국인들은 머리가 돌거덩, 현명하단 말야. 특수요원들을 파견해서 치안대들을 지휘하게 해야지. 내가 왜 그런 생각을 못했댔을가.)

그의 머리가 다람쥐채바퀴처럼 돌기 시작했다.

그에게는 음흉한 타산이 있었다. 산간지역마을들에 요원들을 침투시켜서 후퇴하는 인민군부대들을 유인소멸하자는것이였다.

(제임스고문관의 말대로 우선 귀신처럼 횡행하는 인민군정찰대부터 없애버려야 해. 가만, 습격받은 비행장과 야전병원의 위치, 행불되였다는 헌병대의 행로를 놓고 그자들의 행동경로를 련상할수 있지. 그렇다면 분명…)

달환은 삵의 웃음을 지었다. 늘 괴롭게 굴던 적들을 요정낼 때가 되였다는 생각이 흉벽을 긁어댔다. 판문계선에서의 괴멸, 킨지대에서의 실패… 지금까지는 늘 쫓기고 얻어맞으며 쓴맛을 보았어도 운수는 결코 각박한것이 아니였다. 인민군대가 《유엔군》의 추격을 받으며 쫓겨가는 지금이야말로 사무친 복수를 하고 승리자의 월계관을 줌안에 걷어넣을수 있는 절호의 기회인것이다.

《두고보자, 이놈들아!》

그는 저도 모르게 입밖에 소리내여 부르짖었다. 잉걸불처럼 타오르는 그 내심을 다는 알수 없는 제임스가 우멍한 눈확속에서 반득거리는 파랑눈으로 놀랍게 그를 돌아보았다.

배달환은 목이 긴 미국제군화뒤축을 딱 소리가 나게 붙이며 경례를 해보였다. 그 동작만으로도 충견의 속을 헤아려볼수 있었던듯 제임스는 헤벌쭉 웃으며 두손가락을 이마우에 쳐들었다.

《오케이! 당신도 기뻐할줄 믿삽네다. 내 인차 본국에 휴가를 갑네다. 가는 길에 당신네 춘부장을 만나볼 생각입네다. 안부를 꼭 전해주겠삽네다. 미국에 갔다가 돌아올적에는 당신이 부러워하는 나의 이런 행운의 호신부를 꼭 가져다주겠삽네다. 용기를 내야 합네다. 용기를. 으흐흐…》

제임스는 목에 걸었던 황금십자가를 꺼내여 자랑하듯 내흔들었다. 취한 놈의 넉두리이기는 하지만 배달환은 말만 들어도 황송해나서 두손을 썩썩 마주비볐다. 무관으로서는 보기 드물 정도로 세심한 제임스였다. 불과 죽음이 란무하는 이런 란리판에서도 달환의 욕구를 자상히 헤아리며 격려해주는것을 잊지 않는것이였다.

자기가 그 무슨 예수 그리스도나 되는듯 제임스는 두눈을 지그시 감고 서서 웅얼웅얼 뇌이였다.

《이 십자가가 당신에게 틀림없이 행운을 가져다주는 호신부로 될것입네다. 미국에 충실하시오. 하나님의 나라 우리 미국에.…》

《고문관각하! 명심하겠습니다. 이번에는 미국의 은공에 기어코 멸사봉공하겠습니다.》

《좋삽네다, 멸사봉공! 아주 좋삽네다. 오케이!》

그제야 취기가 걷잡을수없이 오르는것인지 제임스는 쏘파에로 비척비척 다가가 찔 늘어져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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