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편소설 전장의 행운아 11 > 통일게시판

본문 바로가기
사이트 내 전체검색

통일게시판

장편소설 전장의 행운아 11

페이지 정보

profile_image
작성자 강산
댓글 1건 조회 5,323회 작성일 20-08-25 20:02

본문

20200816210102_50f4c2aed3117073de23b94f0d1c921e_qktb.jpg

제 2 장

명 령

2

미8군사령관 월톤 워커중장이 마산에 자리잡은 미25사단의 야전지휘소에 나타난것은 놀랄만 한 사변이 아닐수 없었다.

전쟁판에 어울리지 않게 검은 에나멜칠이 흑요석처럼 반질거리는 《크라이슬러 리무진》에서 내려선 워커는 전쟁상황이 막급하기는 해도 벗어버릴수 없는 사령관의 직분을 잊지는 않았다는것을 시위하려는듯 끼끗한 야전복차림을 하고있었다. 목이 긴 야전용군화는 부관이 얼마나 닥달질을 했는지 스러져가는 석양을 받아 반들거렸다.

례식을 갖추어 그를 영접하고난 사단장 윌리암 킨은 도토리알만 한 김이 도드라진 볼편을 떨며 열물을 토한듯 쓰거운 웃음을 지었다. 상주에서 있었던 불쾌한 일이 문득 떠올라서였다.

중과부적으로 남하해오는 인민군의 맹렬한 공세앞에 슬죽어 도망칠 구멍수를 찾던 그때 상주에 전개되여있던 킨의 지휘소에 장갑차를 타고 불쑥 나타난 워커는 조폭한 성미 그대로 직급과 나이에 어울리지 않을만큼 분별을 잃고 참모들앞에서 벅작 고아대여 킨사단장을 난처하게 만들었었다.

《퇴각하겠다구? 물러서겠단 말이지?》

킨을 노려보는 워커의 모습은 먹이감을 노리는 사냥개와 같았다. 그 어떤 리해나 융화를 허용하지 않는, 일단 제구미만 당기면 상대가 누구이든 사정없이 씹어삼킬듯 서슬푸르게 번득이는 눈길은 로회한 킨도 치를 떨게 했다.

《나는 명령하오. 무조건 현 계선을 고수하시오! 고수인가 죽음인가? 선택은 이 두가지밖에 있을수 없소!》

그렇게 되여 킨의 운명은 상주에서 끝장을 보게 되여있었다. 인민군대의 산악같은 위세에 맞선다는것은 너무도 승산이 없는 모험이였다. 절명의 위협을 고스란히 받아들여야 하는 불운한 신세를 통탄하며 일각이 천추같은 무서운 절망의 시각을 보내던 그의 눈앞에는 워커의 날카로운 매부리코가 보였다.

(《부르독》! 똑 들어맞는 이름이야.)

웨스트포인트사관학교시절 동창생들이 월톤 워커에게 《부르독》이라는 사냥개의 이름을 별명으로 붙여주었다는 사실을 킨은 알고있었다. 사냥개처럼 사납고 잔혹한 야수성은 워커의 기질이자 장점이였다.

《죽이라! 그러면 너는 파멸에서 구원될것이며 승리자의 월계관을 차지하게 될것이다!》 이것이 그가 념불처럼 외우는 말이였는데 젊은 때 언제인가는 동창회에서 친구를 단검으로 찔러 중태에 빠뜨린적도 있었다고 했다. 꽤 막역했던 그의 친구는 워커의 옷자락에서 피냄새가 풍긴다는 시시한 익살을 부렸다가 그런 봉변을 당했던것이다.

이제는 예순고개를 넘긴 로년기에 이르렀지만 타고난 기질은 어쩔수 없는 모양 토끼를 노리는 사냥개처럼 지금도 살기띤 눈알을 번득거린다.

하기야 부르독의 기질이 없었다면 워커의 한생은 비참했을것이다.

제1차 세계대전의 와류속에서 일개 기관총중대장에 불과했던 그가 일약 련대장으로 승급한것도 그렇지만 제2차 세계대전때 사단장, 군단장으로 껑충껑충 개구리 뜀뛰기하듯 올리출수 있은것도 무지막지한 싸움광신자로 소문난 패톤의 맹수같은 천성을 찜쪄먹을만큼 뛰여난 기질의 덕이였다. 맥아더나 니미쯔를 비롯한 명성이 뜨르르한 오성장군들에 비하면 미력하고 완만하기는 해도 워커가 전쟁터에서 승전일로를 걸어올수 있은것은 남다른 포악성과 잔인성때문이였다.

아무런 미련도 없이 수하장병들을 죽음의 나락에 밀어넣고서도 장갑차배기가스만 남겨둔채 홀연히 가버렸던 상주에서의 상봉과 작별로 하여 윌리암 킨은 워커에 대한 원한이 사무쳤었다.

그후 워커와 맥아더의 타협으로 때늦게나마 퇴각하라는 명령이 날아와 죽음의 함정에서 간신히 벗어날수 있었으나 25사를 경시하고 여차하면 휴지장처럼 줴버릴 작정까지 마다하지 않았던 월톤 워커에 대한 킨의 경계심과 타매심은 지금도 숯불처럼 이글거리고있었다. 만약 그때 맥아더의 퇴각명령이 조금만 늦게 내려졌더라면 윌리암 킨은 대전에서 윌리암 에프 띤이 겪은 비극적인 운명을 바로 그 상주에서 겪지 않을수 없었을것이였다.

그날 윌리암 킨은 손을 가슴에 얹고 하느님에게 운명의 기도를 드렸었다.

(전지전능하시고 무소부지하시고 자비로우신 하느님아버지이시여! 제발 사탄과 같은 워커라는 저 사나이의 손에 다시는 나의 목숨을 맡기지 말아주소서. 맥아더장군에게는 천복을 내려주옵소서. 아멘―)

워커가 킨사단을 죽음의 함정에 서슴없이 던져버릴 결심까지 하게 된것은 맥아더와 그 사이의 알륵관계와 띤과 킨사이에 팽배한 경계심의 직접적표현이기도 한것이였다.

원래 띤과 킨은 표면상 매우 가까운 사이였다. 잔악한 성품이 비슷비슷하고 이름마저 엇비슷한 그들은 맥아더가 두팔처럼 아끼는 소장파인물들이였다. 맥아더는 태평양전쟁터에서 자기의 손때가 묻은 두사람을 공평하게 대한다고 늘 말했어도 기실은 띤이 오른팔이라면 킨은 왼팔이였다.

윌리암 킨은 태평양전쟁시기 맥아더가 필리핀을 깔고앉을 때 마닐라에 용약 입성하여 《혁혁한 전공》을 세워 맥아더의 신임을 독차지한 띤에 대한 시기심을 품고있었다. 야심이 만만한 킨은 결코 맥아더오성장군의 총애를 받는데서 두번째 인물이 되기를 원치 않았지만 워커가 8군사령관으로 부임되기 전까지는 띤과 드러나는 마찰이 없이 지내였다. 트루맨을 위시로 한 민주당파의 소산인 월톤 워커는 킨의 마음속에 잠자던 야심의 등잔불을 돋궈준 바늘격이 되였다.

제2차 세계대전시기 노르망디와 오스트리아에서 《혁혁한 전공》을 세운 미3군단장 월톤 워커를 조선전쟁을 직접 주관하는 8군사령관으로 내세워 늘 우쭐렁거리며 대통령에게도 곰살궂지 않은 맥아더를 견제하려는것이 트루맨의 계략이였다.

그런데 워커가 직접 현지에 와보니 조선전쟁판은 너무도 철저한 맥아더의 판이였다. 그것은 전쟁의 쌍기둥인 24사와 25사의 사단장들에게 맥아더의 손때가 너무도 진하게 묻어있었기때문이였다.

(어떻게 하면 맥아더판을 이 워커의 판으로 만들것인가?) 하는 고심으로 심신을 태우던 워커는 맥아더의 총아들을 자기에게 끌어당길 계략을 세웠는데 그것은 먼저 맥아더의 오른팔을 꺾는것이였다. 하여 띤에게 특별한 관심을 두고 그대신 일부러 킨을 차요시하기 시작했다.

그 직접적동기로 된것은 워커의 아들 삼 워커대위가 조선전쟁에 《자원》해온것이였다. 촉기빠른 윌리암 킨이 낯간지러움을 무릅쓰고 삼 워커의 국민적충정을 격찬하면서 꼭 자기네 25사에 맡겨달라는 《부탁》으로 충견적인 친절을 보였음에도 불구하고 워커는 시답지 않아하며 듣기 좋게 거절해버렸다.

《그 애들은 자기 갈길을 스스로 찾아서 갈것이요. 우리는 상관하지 맙시다. 미국의 운명을 우리네 젊은이들이 어떻게 떠메는가를 시험해보는셈치고…》

그러더니 불과 사흘만에 띤의 24사에 보내버렸다. 그것은 분명히 킨에 대한 모욕이였다. 그때에도 킨은 쓰겁게 웃었다. 워커의 편견이 가소로왔다.

(어디 보자, 《부르독》! 이 윌리암은 뭐 밸머리가 없는줄 아는게지.)

월톤 워커가 《부르독》이라면 윌리암 킨은 《페리트》(흰족제비)였다.

그때부터 어금지금하던 킨과 띤의 사이가 더욱 벌어졌고 동시에 워커에 대한 불만이 우후죽순처럼 자라났다. 그래서 그런지 띤이 대전에서 여지없이 패전하고 도망치던 길에 생감자를 파먹던 구차한 행색으로 불행하게도 인민군측의 포로가 되였다는 급보를 받던 순간 《페리트》는 무서운 공포에 전률하면서도 마음 한켠으로는 야멸찬 쾌감을 느끼였다.

미8군의 기둥사단이라고 짬짬이 춰올리군 하던 24사가 괴멸되여 자연히 기둥격이 된 25사의 가치를 새롭게 인식한때문인지 아니면 부산교두보에 대한 북조선군 익측타격의 엄중성을 통감한때문인지 월톤 워커가 오늘 별스럽게 살가운 기색으로 이붓자식처럼 박대하던 킨의 사단에 이렇게 드문 걸음을 한것이였다.

전쟁의 운명이 막다른 고비에 다달은 이즈음 워커 그자신도 퍽 고민스러운것 같았다. 나이에 비해 윤택이 돌던 이마에 잔주름이 많아졌고 한복판에 독수리의 부리처럼 매부리코가 돋아난 얼굴에 수심이 비껴있는것을 킨은 알아보았다.

킨과 나란히 서있는 팍크대좌를 비롯한 작전참모장교들의 손까지 친절하게 잡아주고난 워커는 늘 차겁게 번뜩이던 눈가에 자애에 가까운 빛을 떠올렸다.

윌리암 킨은 저으기 처량한 생각마저 들었다.

맞춤한 때를 타서 킨이 눈짓하자 팍크대좌가 서둘러 작전탁에 큼직한 지도를 벌러덕벌러덕 펼쳐놓았다.

위엄있는 팔자걸음으로 작전탁앞에 천천히 다가선 워커는 습관대로 부둥부둥한 목덜미를 손으로 슬슬 문대며 매부리코를 벌름거렸다.

《사단의 작전은 어떻게 되여가고있소?》

일부러 스스럼없는 태도를 지어보이는것이였으나 워커의 행동거지는 어째서인지 여전히 시들해보였다.

작전탁가녁에 놓여있던 상아지시봉을 서둘러 집어든 킨은 지도의 여기저기를 짚어가면서 부대들의 형편과 인민군부대들과의 대치상태에 대하여 설명하려고 서두를 떼였다.

《마산계선으로 진출하는 인민군련합부대들이 큰 위협으로 된다는건 주지의 사실입니다. 각하도 이에 대해선…》

《본론에 들어갑시다. 시간이 없잖소.》

킨의 손에 들려있는 상아지시봉을 주시하며 워커가 몰풍스레 말했다.

그 상아지시봉으로 말하면 미25사가 루쏜섬을 점령했을 때 일본군 참모부에서 로획한것인데 킨은 전승의 기념으로 맥아더에게 진품을 선물하고 후에 그것이 아쉬워서 모조품을 만들었다. 맥아더의 집무실에서 지금의것과 꼭같은 상아지시봉을 본 일이 있는 워커는 기분이 언짢았다.

《알겠습니다.》 킨은 작전탁에서 약간 물러나서 발언을 이었다. 《국군사단들이 현 방어계선을 필사적으로 지탱해내도록 하고 시간을 얻어 새로 투입한 우리 사단관하 25련대를 마산계선의 북쪽에, 24련대를 중부에, 27련대를 남쪽지역에 배치하고 땅크와 포 등 중무기들은 공격진의 중심에 은밀히 집결시키고있습니다. 본 사단은 이삼일안으로 출발계선에 기동전개하여 다음행동으로 이전할 계획입니다. 벌써 전위부대는 하동을 향해 출발한 상태입니다.》

《다음행동이란 뭐요?》

워커가 무엇을 바라는지 킨은 잘 알고있었다. 부산의 좁은 지역에 몰켜든 8군에 대한 인민군의 익측타격이 얼마나 위험천만한것인가를 워커가 모를리 없다. 남조선의 이른바 세번째 수도인 대구에 대한 인민군대의 공세도 문제이지만 부산을 익측에서 직접 위협하는 인민군련합부대의 진출이 그의 두통거리일것이다. 익측으로 가해오는 인민군의 공격을 좌절시키자면 남해안 익측방어선에서 적극적인 공세를 취함으로써 인민군대가 진주로 들어오는 길을 차단하고 대구방면의 인민군주력을 마산쪽으로 유인하여 부산에 대한 압력을 덜어내야 한다. 그것은 막강한 무력의 사용을 전제로 하는것이다. 때문에 《페리트》답게도 킨은 더 많은 병력을 증강해주지 않는다면 인민군대와의 격전이 불가능하다는것을 암시하느라고 무진 애를 쓰는것이였다.

부하의 그쯤한 잔꾀를 분간 못할 천치가 결코 아닌 워커는 대번에 화가 돋아올랐다.

《당신의 임무는…》 그는 늙은이답지 않게 엄청나게 큰 소리를 질러서 좌중을 놀래웠다. 《마산지구에 거대한 탄막방패를 형성하여 적의 전진을 멈춰세우며 그 방패를 내들고 신속히 전진하는것이요. 적어도 남강남안―진주고개―사천계선을 확보해야 하오. 그것은 부산교두보의 남쪽날개가 될것이요.》

단숨에 엮어대고 매부리코를 쳐든 그는 떠보는듯 한 눈길로 킨을 노려보았다.

킨은 조금도 주눅들지 않고 끝까지 제 구복만 채우려들었다.

《그러자면 우리 사단병력만으론 부족할것 같습니다.》

워커는 사격직전의 포신처럼 쳐들리는 분격을 슬그머니 눌렀다.

《좋소. 그럼 당신에게 독립 5련대와 두개의 중땅크대대를 배속시켜주겠소. 그들은 방금 부산항에 상륙했소. 그뿐이 아니요. 당신은 곧 29보병련대의 두개 대대를 보충받게 될것이고 앞으로 필요하다면 우리 8군의 예비대로 두고있는 림시1해병사단을 통채로 넘겨주겠소. 공군도 전적으로 당신들을 지원할것이요.》

그래도 킨은 뭐가 불만인지 시원한 대답을 하지 않았다. 다시 일어나는 노기를 억지로 참으며 워커는 킨의 손에서 상아지시봉을 앗아들었다.

《귀관들은 알아야 하오. 마산지구에서의 성공여부가 우리 8군의 운명을 결정하는 열쇠라는걸 말이요. 마산을 내주면 대구―부산간의 도로를 차단당하오. 이것이 뭣을 의미하는가는 귀관들도 잘 알것이요. 말하자면 지금 이 시각부터 25사가 우리 8군전체의 운명을 떠맡은거나 같소. 그런 의미에서 난 이번 작전을 제25사단장의 이름으로 부르고싶소. 이번 작전을 〈킨작전〉이라고 이름지읍시다. 나의 이 제의에 맥아더장군도 쾌히 동의했다는것을 알리는바이요.》

그것은 사실이였다. 월톤 워커의 작전안에 맥아더는 굵은 색연필로 군소리없이 수표했던것이다. 하지만 지금 워커가 자기의 착안인것을 꼬집는것은 맥아더의 심복인 윌리암 킨을 자기에게 보다 다가붙이려는 속심에서였다.

막급한 때에는 불가사의한것도 평범해보이는 법이다. 그의 속심이 검든희든 킨을 감동시키기에는 충분한것이였다.

킨은 불시에 목이 컥 메여올랐다. 이미전의 뻣뻣하던 마음이 사뭇 누그러들면서 이런 워커를 질시하고 원망해온것이 스스로 미안스럽기까지 했다.

《황공합니다, 각하!》

워커의 목소리도 젖어들었다.

《강대한 우리 미국이 크지도 않은 이 나라에서 쫓기우는 신세가 되다니… 합중국 국민들과 세상사람들앞에 체면이 없게 됐소. 대아메리카합중국의 명예를 되찾는 길은 오직 철의 위력에 의거하는 길밖에 없소. 귀관은 당장 오늘부터 전력을 다해 공세를 강화하여 남강남안지대를 깔고앉으시오. 앞으로 그곳은 〈킨지대〉로 불리울것이며 조선전쟁만이 아닌 미합중국의 화려한 전쟁사에 이번 작전은 귀관의 이름으로 영원히 아로새겨질것이요. 축하하오. 흔치 않은 영광이요!》

팍크를 비롯한 참모들이 투덕투덕 박수를 쳤다.

할말을 마친듯 워커는 긴 가죽쏘파에로 걸어가 털썩 주저앉았다. 푹신한 등받이에 비대한 웃몸을 기대인 그는 가늘게 쪼프린 눈으로 킨을 건너다보았는데 그 모습은 이전의 《부르독》과 판판 달랐다. 다심한 사려를 담은 미소가 입귀에 피여났는데 그것을 강조하려는듯 이마에는 지렁이같은 피줄이 두드러졌다. 사나운 존재로만 여겨왔던 워커에게서 손자손녀를 거느린 조부와도 같은 모습을 목격하게 되니 위로라도 해주고싶은 생각이 불쑥 일어나는것이였다.

두손을 배허벅에 포개여붙인 킨은 그앞에 공손히 서서 성의껏 주어섬겼다.

《각하, 비록 지금은 우리가 렬세에 몰리우지만 북조선을 상대로 각하가 벌리고있는 맹투맹격전은 대아메리카합중국의 권익을 지키는 성전으로서 온 국민의 찬탄을 불러일으키게 될것입니다.》

워커는 흥심없이 대꾸했다.

《그렇겠지. 하지만 너무 힘이 드는군. 나이는 못 속이겠어. 예순을 넘어서자마자 용기가 싹 사라져버린단 말이야. 그걸 보면 맥아더장군은 용해. 일흔고개인데두 끄떡없거던. 일전에 부산철퇴안을 건의했더니 뭐랬는지 아오? 조선엔 덩께르크가 절대로 있을수 없다는거요. 금옥같은 말이지.》

그것은 며칠전에 있은 일이였다. 상주에서 악에 받쳐 돌아온 워커는 아무래도 타산이 서지 않아 골머리를 앓았다. 킨에게 친 호통은 그자신에게 방어선고수의 의지가 있어서라기보다 말여지하에 빠진자의 화풀이에 불과했다. 참모들과 론의를 거듭했어도 신통수가 나지지 않게 되자 자포자기의 감정은 배가했다. 하여 맥아더사령부에 미군을 아예 부산에서 철퇴하자고 제안했었다.

미국의 충실한 아들딸들이 푸주간의 송아지처럼 피를 쏟으면서 공포와 절망과 비애에 잠겨있다면서 눈물을 머금고 들이대는 하소연에도 맥아더는 덤덤해했다.

《본관은 부산에 대해선 마음을 놓소. 거기서 미5해병련대를 소환해도 별일 없을줄로 나는 아는데… 애치슨장관이 8군사령관을 잘못 천거한가보오. 유럽의 맹장을 아시아의 맹장과 니꼬르트해본 본관자신도 물론 오유를 범했고…》

오묘한 비난이였다. 태평양전쟁을 맡아치른 맥아더 자기와 맞세워보려고 트루맨과 애치슨국무장관이 유럽전쟁에 군단장으로 참전했던 워커를 내세운것을 조소한것이였다.

워커의 부산철퇴안을 두고 맥아더는 그것은 극동에 대한 미국의 포기를 의미하며 아시아 나아가서는 세계질서를 수립해야 할 미합중국의 권리와 의무를 포기한다는것을 의미한다는 어마어마한 표현을 쓰면서 가볍게 부결해치운 다음 백악관과 펜타콘도 세계적인 판도에서 동맹국들의 병력을 가능한껏 끌어들이기 위해 맹활약중이니 락심할것은 없다고 격려해주었다.

그 순간 워커는 맥아더가 이전에 들고나왔다가 철회했던 인천상륙작전을 다시 꿈꾸고있다는것을 알아차렸다. 심대한 비밀로 되는 문제여서 입밖에 낼수 없었지만 맥아더에 대한 워커의 견해는 이전과 많은 점에서 달라졌다.

《가부간 과달카섬에서도 견뎌냈다는 식의 지나친 우월감에는 충분히 공감할수 없소만 부산방어진안에 들어앉아서도 벌벌 떨고만 있는 리승만에 비해보면 맥아더는 과연 이름난 무장이 분명하단 말요. 미국의 자랑이지.》

워커는 킨의 금발머리녀서기 포치엔이 엉뎅이를 흔들며 들어와 애교있게 부어주는 위스키를 한잔 마시고는 곧 떠나갔다. 《크라이슬러 리무진》에 올라앉아 작별하기 전에 저승길로 헤여져가는 사람을 보듯 킨을 흘낏 돌아보며 나직하게 그루박았다.

《이 작전을 극비에 붙이시오. 적들도 잠자고만 있지는 않을테니까. 무쇠주먹을 슬며시 틀어쥈다가 적들이 예측할수 없는 결정적인 순간에 강타를 먹여야 하는거요.》

《마음 놓으십시오, 각하!》

별스레 들레이는 마음으로 킨은 워커중장을 배웅해주었다.

《음, 마음을 놓겠소.》

월톤 워커가 두눈을 지그시 감았다가 뜨고나서 뜨직뜨직 한마디를 남기자 성미가 강마른 부관이 차문을 후려닫았다. 스르릉 들리는듯마는듯 한 동음소리를 남기고 승용차는 표범처럼 순식간에 킨의 시야에서 사라져버렸다.

×

《화랑》호는 늦은 저녁때에야 마산항에 입항했다.

제임스가 마산입항을 결심한것은 외삼촌인 윌리암 킨의 사단지휘부가 그곳에 전개했다는 소문을 들었기때문이였다. 과연 미25사단지휘부가 마산시의 한복판에 듬직하게 자리잡은 시청건물에 들어있었다.

배달환이 제임스의 꽁무니를 따라 사단지휘소에 나타난것은 워커의 승용차가 먼지발을 일구며 금방 떠나간 뒤였다.

제임스는 도박에서 횡재하고 제집에 돌아온 장손마냥 의기양양해했다. 하기는 미국에서 조선으로 건너오던 길에 들렸던 일본에서 만났을 때 제임스에게 호신부로 금십자가까지 선사했다는 킨이고보면 비록 무공을 떨친 영웅은 못된다 해도 일선에서 죽음의 고비를 겪고 돌아온 조카를 푸대할 외삼촌은 아닐것이다.

《킨삼촌한테 〈페리트〉란 별명이 붙어있는데 그건 족제비처럼 날래다는걸 말하는거지 다른 이의는 없삽네다. 이제 배중령도 알게 될것입네다.》

지휘부건물로 들어서면서 제임스는 하인을 고을원네 집에 데리고온것만치나 으시대였다.

꺼부정한 제임스의 등어리가 밤색가죽을 씌운 사단장방의 묵직한 나들문뒤로 사라진 다음 배달환은 부관방 한켠구석에 놓인 긴 쏘파의 등받이에 피로한 몸을 기대고 무료하게 앉아 앞으로의 운명을 점쳐보기라도 하려는듯 두눈을 꾹 감았다.

파도가 철썩이는 고향마을의 기와집이 떠올랐다. 가벼운 해풍에도 울창한 참대숲이 와슬렁거리고 어부들이 몰아오는 매생이마다에 전복이며 소라며 해삼이 그득그득하던 남해섬!

이 세상에 태여날 때부터 그는 행운아였다.

애비의 개화장 내짚는 소리를 들으며 청양산이 드리운 해변가로 가던 길, 숱한 머슴과 하녀를 부리며 진수성찬에 묻혀 늘 부귀영화를 누려온 생활, 일본이 패망하고 미군이 들어온 뒤에도 운명의 신은 그를 버리지 않았다. 부산에 새로 생긴 군사영어학교를 나오고 《국방경비대》에 들어갔을 때 마침 이 제임스라는 귀인을 만나 곧장 장교로 등용되였고 지금껏 대대장으로, 련대장으로 승진일로를 걸어왔다. 물론 고향섬의 재부를 긁어다 섬겨바친 애비 배덕구의 공덕이기도 했지만 킨사단장의 명함과 연줄로 하지중장을 비롯한 미군의 장성들과 안면이 깊은 제임스를 만난것이 그에게 있어서 휘황한 출세의 드레박줄이였다.

지난해부터 부쩍 왕성해진 리승만《정권》의 북진기운에 들떠서 감히 북녘에 선제공격을 들이댈 때까지도 제임스가 하느님을 믿는 그만큼 달환은 제임스를 운명의 구호신처럼 믿었다.

그것이 허장성세일줄이야. 우러러보이던 제임스는 인민군대앞에서 너무도 초라한 썩은 나무였고 《국군》은 그 나무가지에 어리석게 붙어있는 마른 잎사귀였다. 굴뚝같은 욕심과 야심에 넘쳐 시작했던 군생활의 길이 이처럼 고행에 찬길로 이어질줄은 미처 몰랐었다.

이제라도 고향에 가서 아버지의 재산인 섬마을을 호령하며 한가하게 살고싶은 생각이 불쑥 일었다.

(아, 당장 고향에 돌아갈수만 있다면…)

려수앞바다를 지나올 때 지척에 있는 남해도의 고향마을을 바라보며 첨벙 물에 뛰여들어 도망이라도 치고싶은 충동이 솟구쳤었다. 아마 그랬다면 제임스는 서슴없이 권총을 꺼내들었을것이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자신의 가긍한 처지에 환멸감이 들었다.

(저 제임스야 외삼촌을 믿어 등탈이 없겠지만 나는…)

달환은 두려움과 기대감이 엇갈린 눈으로 제임스가 사라진 가죽씌운 문쪽을 바라보았다.

그러나 제임스도 영 고민거리가 없는것은 아니였다. 킨사단장의 방에 들어서는 순간부터 가슴이 두려움으로 하여 화들거렸다. 비록 미군에 비하면 군견값에도 안가는 《국군》이라고 해도 한개 련대나 녹여먹은 죄는 가벼울수가 없으리라는것을 각오해야만 했다. 킨은 일본에서 만났을 때 《국방군》이라는 인간방패가 없다면 미군이 더 많은 피를 흘리게 된다고 했던 훈시를 잊지 않고있을것이다.

퇴매한 성격이여서 그리 호인답지 못한 킨을 제임스의 부모들조차 좋아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제임스가 그를 따르는것은 킨이 윌리암가문의 유일한 장성인때문이였다. 플로리다주에서 한뉘 농장을 경영하는 고루한 아버지보다는 으리으리한 군복을 떨쳐입고 장병을 호령하는 무관인 외삼촌에 대한 부러움을 제임스가 지니게 된것은 락화생을 코물에 발라먹던 어릴 때였다.

외삼촌 킨 역시 가문에서 자기에게 애정을 보이는 유일한 조카를 남달리 가까이 여겼다. 게다가 워커의 아들 삼 워커나 유럽주둔군사령관으로 있는 아이젠하워의 아들 죤슨을 비롯한 미군부 고위장성들의 자녀들이 조선전쟁에 수십명이나 참가하고있는 때에 류행병처럼 돌아가는 참전열속에서 자기의 명분을 세워주는 제임스가 있는것이 다행스럽기도 했다. 그러나 원래 트이지 못한 성미여서 그런지 아니면 군인이여서 그런지 만날 때마다 별로 각근한 정은 오가지 않았다.

입술을 실룩거리는것으로 상대를 무시하는 버릇이 있는 윌리암 킨은 도토리알만 한 김이 돋은 볼편을 가볍게 푸들거리며 제임스를 사납게 노려보았다.

《련대를 줴팽개치고 그새 어딜 쏘다녔어? 하느님의 품으로 갔는가 했는데…》

사나운 표정에 비해서는 꽤 너그러운 말투였다. 제임스는 돌멩이처럼 굳어졌던 마음의 한귀퉁이가 후르르 풀리는감이 들었다. 그러한 안도감은 원래 비위좋은 성미를 든장질해주었다.

《하느님덕분에… 외삼촌, 사선을 넘어온 조카를 대하는것치군 너무합네다.》

제임스는 두손을 쩍 벌려보이며 응석을 부리듯 머리를 옆으로 털었다. 그래도 킨의 낯색은 변하지 않았다. 《국군》부대에 고문관으로 보낸 뒤부터 터무니없이 건방지게 변해버린 조카녀석의 말투에 진절머리가 나는 킨이였다. 고루한 조선인들앞에서 위신을 세우려고 지나간 세기말에 조선땅을 횡행하던 선교사들의 말씨를 본딴것이 버릇으로 굳어진 모양이다. 기형적이고 고약한 말버릇은 당대가도 고쳐낼것 같지 못하다는 생각이 들면서 속빈 웃음이 나왔다. 그래도 조선말을 킨 자기보다 먼저 배우고 능란하게 번지는데는 내심 감탄하지 않을수 없었다. 허나 킨은 아무런 내색을 않고 차거운 소리를 내뱉았다.

《너무할건 하나도 없다. 이 전쟁판에서 그런 혈친관계는 잊는게 좋아. 군규정대로 부르거라!》

이번에는 어깨를 으쓱하며 제임스가 빈정거렸다.

《그러겠삽네다. 사단장각하, 내가 〈국군〉에 고문관으로 파견되도록 한것은 바로 당신입네다. 각하가 세계일류급의 군대라고 장담했던 그 〈국군〉이라는 허재비때문에 난 저세상 하나님품으로 갈번 했삽네다.》

그제서야 킨은 피씩 웃었다. 《국군》의 《위력》에 대하여 제임스에게 력설했던것이 생각났던것이다. 늘 전방에 나서야 하는 《국군》보다는 안전한 미군부대에 그냥 있고싶다고 고집하는 제임스를 달래느라 그렇게 말했던것이 걸각질할 빌미를 준것이였다.

《그건 덜레스가 한 말이다.》

몰풍스럽게 발뺌하는 킨의 태도를 비웃듯 제임스는 어깨를 으쓱했다.

《아무튼 같고같지 않삽네까. 그래도 나는 원망하지 않삽네다. 미군병사로서의 의무를 알고있는때문입네다. 그래서 이렇게 사단장각하를 찾아온게고… 각하의 슬하에서 싸우

댓글목록

profile_image

강산님의 댓글

강산 작성일

(위에서 계속)

각하의 슬하에서 싸우고싶삽네다.》

그때에야 제임스가 찾아온 용건을 알아차린것인지 모재비로 삐뚜름히 서있던 킨은 픽 돌아섰다.

《그렇다면 좋아. 당장 새로운 작전이 시작되는데 〈국군〉에서 일한 경험이 있는 너와 같은 실력자들이 절실히 필요해. 〈국군〉 수색련대를 맡거라. 거기 련대장자리가 비여있기는 하지만… 곧 적임자를 찾아내겠다.》

제임스의 우묵한 눈확안에서 반디불같은것이 반짝했다.

《그런 문제라면 내가 각하께 도움을 드릴수 있삽네다. 나와 생사를 함께 한 조선인이 하나 있는데 지금 여기 와있삽네다. 배달환이라구… 련대장으로 일한 경력이 있는것만큼 마음에 들것입네다. 만나보겠삽네까?》

킨은 어깨만 으쓱했을뿐이였다. 그것은 썩 마음이 내키지는 않으나 굳이 반대의사가 없다는 뜻이였다. 전쟁 수일간에 홍수처럼 범람한 숱한 패전장졸들을 다 기억할수는 없었지만 제임스의 련대가 당한 수치스러운 괴멸과 련관된 배달환에 대해서는 그도 좀 알고있었다.

제임스는 밤색가죽문을 활 열어젖히고 배달환을 큰소리로 불러들였다.

대기석에 앉아있다가 소스라치듯 화닥닥 일어선 달환은 제임스의 손짓을 따라 질주하듯 달려들어가 킨의 앞에서 군화뒤축을 딱 소리가 나도록 맞붙이며 절도있게 경례했다.

《아주 패기있는 젊은이로군. 헌데 어떻게 되여 련대를 졸지에 지옥으로 보냈는가? 군법앞에서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모르는가?》

어느새 다가왔는지 킨의 서기 겸 통역관인 포치엔이 그의 말을 조선말로 번져주었다. 로스안젤스에서 살다가 변호사로 일하는 남편과 리혼하고 군복을 입었다는 미모의 그 녀자는 동양의 력사와 문물에 대해 꽤 해박한 상식을 가지고있었다. 포치엔이라는 이름자체가 고대그리스의 신화에 나오는 행운의 신을 의미하듯이 그 녀자의 운수는 퍽 좋은 편이였다. 군복을 입자마자 장교로 제발된데다가 태평양전쟁 전기간 킨의 서기 겸 통역으로 안전한 사령부에만 있었던것이다. 선교사로 극동의 여러 나라들을 표랑하며 한생을 보냈다는 애비의 덕택으로 아시아각국의 세태풍속에 대한 깊은 파악이 있을뿐아니라 일본말과 중국말, 조선말까지 제법 능란하게 번질줄 아는것이 거치른 전쟁판에서도 언제나 고급한 생활조건을 담보해준 밑천으로 되였던것이였다.

포치엔의 빨간 입술을 통해 옮겨지는 킨의 말뜻을 알아듣는 순간 배달환의 온몸에는 전류처럼 쩌릿한 전률이 쭉 뻗어갔다. 이젠 죽었구나 하는 생각이 몽둥이에 맞은것처럼 뒤통수를 뻥하게 만들었다. 그는 풀썩 무릎을 꿇고 주저앉아 킨의 바지가랭이를 덥석 부여잡았다.

《각하, 죽을 죄를 지었습니다. 인민군이 그처럼 교묘하고 조포한 놈들인줄 미처 몰랐습니다. 다시 기회를 준다면 그놈들과 이발을 사려물고 싸워 복수하겠습니다.》

윌리암 킨은 《페리트》답게 더러운 개를 피하듯 삑 몸을 돌려 창문쪽으로 갔다가 천천히 돌아오면서 큰 선심을 쓰는 신선처럼 부드러운 소리로 대범한 체면을 시위했다.

《좋소, 제임스의 보증도 있고 하니 곧 새로 편성한 수색련대를 중령, 당신에게 맡길 생각이요. 그 련대를 반공맹견부대로 만들어 신임에 보답하기를 바라오. 여담삼아 말하면 지금 채병덕씨는 우리 미군에서 일개 대대장통역관으로 밥통을 채우고있는 판이란 말요. 그의 운명에 비해보면 당신은 행운아인셈이요.》

《예, 나의 하느님인 미국이 선사해준 행운을 절대로 빼앗기지 않겠습니다. 맹세합니다.》

핑핑한 엉치어리까지 길게 드리운 금발머리를 흔들며 나갔던 포치엔이 빨간 샴팡주가 반쯤씩 담긴 술잔 세개를 다반에 받쳐들고 들어왔다.

킨은 피아니스트처럼 길죽한 손가락들을 뻗쳐 술잔을 거머쥐고 이마높이까지 쳐들어보였다.

《앞으로의 건투를 위해!》

그를 본따서 술잔을 기울이는 제임스를 흘깃흘깃 곁눈질하며 달환은 떨리는 손으로 유리잔을 입가에 가져갔다. 짜릿하고 상쾌한 액체가 속을 스르르 씻어내렸다. 그러나 마시지 못할 독주를 쏟아넣은듯 속이 께름해났다.

《국군》참모총장을 해먹던 채병덕이 전쟁이 한창인 때에 파면되였다는것도 놀라왔지만 구접스럽게 미군통역관노릇을 한다는 사실은 아연한 일이였다. 코김만 내불어도 날아가는 독수리를 떨군다던 채병덕의 운명이 그러할진대 일개 련대장에 불과한 내 처지에 앞일을 어떻게 장담한단 말인가. 하지만 제임스의 호탕한 웃음이 그의 무거운 시름을 가뭇없이 날려주었다.

《미스터 배, 알겠삽네까? 이제부터 새 출발입네다. 나도 당신도! 내 이미 말하지 않았삽네까? 미국을 믿으면 된다고.》

배달환은 머리를 푹 숙여 경의를 표했다. 그 순간 머리속에 인박히는것은 자기를 끝까지 버리지 않은 제임스에 대한 고마움이였다.

(실로 그렇구나. 그처럼 막강한 미국앞에서 한국인의 자존이란게 뭐 말라빠진거냐.)

볼것 없는 조선인을 제임스처럼 선듯 믿어주며 그렇듯 서슴없이 선의를 베푸는 킨사단장에 대한 숭배심도 그의 눈굽을 적셔주는것이였다. 그는 숙였던 고개를 번쩍 쳐들고 이발이 갈리도록 부르짖었다.

《제 백골이 되여도 미국의 이 은혜를 잊지 않겠습니다.》

《오케이!》

《브라보!》

킨과 제임스가 동시에 환성을 질렀다. 그들을 바라보며 배달환은 운명의 신은 참 자비하다는 생각에 가슴이 다 뻐근해왔다.

(과시! 미국인들은 속통이 크다더니… 한국인들과는 근본다르거덩.)


서비스이용약관 모바일 버전으로 보기 상단으로


Copyright © 2010 - 2023 www.hanseattle1.com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