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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소설 전장의 행운아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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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강산
댓글 0건 조회 6,310회 작성일 20-08-19 2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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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 장

고향길

5

정찰대는 공주쪽으로 전진해가고있었다.

남진의 길은 그렇게 헐하게 갈수 있는 길이 아니였다. 한강에서 벌써 두명의 전우를 잃은 그들이였다. 피와 땀과 지어 목숨까지도 바치며 인민군병사들은 결전의 길을 헤쳐갔다.

예정된 도하장부근에 이르니 아직은 락조의 잔광이 비껴있어서 금강너머 검은 연기가 몽몽히 서려오르는 공주시가의 괴괴한 건물들이 바라보였다. 그쪽으로 건너간 콩크리트다리는 한가운데의 경간이 두개씩이나 뭉청 끊어져 강물에 처박혔다.

학문은 휴식구령을 주었다.

《날이 어두울 때까지 휴식하면서 요기합시다. 어두워지면 강을 건너야겠소.》

라동수가 다가왔다.

《배를 찾아보지 않겠습니까?》

《찾아봐야 소득이 있을것 같지 않구만. 오면서 보니까 놈들이 말짱 끌어갔다고 하는데 차라리 날이 어두워지면 떼목을 무읍시다. 한강에서의 경험에 비추어 이번에는 강을 건너가서 적정을 알아보기요.》

《전투를 하자는겁니까?》

《우선 혀를 하나 잡기요. 적정을 구체적으로 알아내자면 그게 제일 좋은 수요. 전투는 예상되지 않지만 때에 따라 필요하면 해야지.》

전투가방을 벗어놓고 허리를 펴던 학문은 옆에서 불빛이 벙끗하는 바람에 홱 머리를 돌렸다. 휴식구령이 내리기 바쁘게 풀밭에 퍼더버리고 앉은 김동호가 마라초를 말아물었다.

《담배불을 주의하시오.》

《알았습니다. 하, 이놈 담배 너무 생각나서 한대 피우쟀더니…》

김동호는 마라초연기를 손으로 훌훌 저으면서 중얼거렸다.

《담배로 배를 채운 사람한테는 다 계산이 있는 법인데…》 김기전이 닦은 강냉이자루를 풀면서 너스레를 떨었다. 《담배피우는 사람은 한줌, 다른 사람들은 두줌씩! 어서들 받소.》

그것으로 저녁끼니를 치르어야 했다.

《동호동문 좋겠구만. 딱딱한 통강냉이대신 만만한 연기식사를 하게 됐으니. 고급이지.》

김윤도가 시까스르자 동호는 덴겁하여 아부재기를 쳤다.

《아, 거 무슨 소리를 하슈? 담배는 담배구 식사야 식사지.》

그때였다. 갑자기 쉬익― 하늘을 째는 휘파람소리가 들리더니 이편기슭에서 멀지 않은 강물우에 포탄이 날아와 터졌다. 물기둥이 치솟고 뽀얀 물보라가 정찰병들이 있는 곳까지 몰려왔다.

《제기랄! 동호동무의 마라초가 일을 치는군.》

안창항이가 김동호쪽에 눈총을 쏘았다.

사단군의소로 후송되였던 그는 덕천이와 함께 다음날 인차 뒤따라 왔다. 타박상을 입고서도 그 먼길을 어떻게 제힘으로 걸어왔는지 학문으로서는 놀라왔지만 되돌려보낼수도 없는 형편이여서 정찰대와 함께 행동하게 놔두었다.

또 한발의 포탄이 날아와 터졌다. 놈들은 담배불빛을 보고 포를 쏜것이였다. 뒤따라 무턱대고 쏘아대는 포탄들이 우박처럼 퍼부어졌다. 련달아 터져오르는 조명탄불빛에 사위가 대낮처럼 밝아졌다. 포사격이 언제 그칠는지 알수 없었다.

《안되겠소, 장소를 옮깁시다. 이러다간 직사탄을 맞겠군.》

학문은 줌에 들었던 닦은 강냉이알들을 주머니에 쑤셔넣으며 입을 다셨다.

멀리 보이는 울창한 수림우에 황혼이 내리기 시작했다. 사처에서 기여든 어둠은 인차 모든것을 감추어버렸다.

위치를 조금 옮겨 앉은 정찰병들은 어둠속에서 떼를 무었다. 폭격에 넘어진 나무들을 끌어내여다 칡넝쿨로 결박하니 훌륭한 떼목이 되였다.

포사격은 여전히 그치지 않았는데 초저녁때보다는 한풀 죽어서 드문드문 쿵당거렸다. 이제는 적들도 싫증이 난 모양이다.

밤 한시, 정찰병들은 무기와 장구류들을 떼목에 싣고 헤염치면서 전진했다. 적의 포격소리가 큰 도움으로 되였다. 요란한 그 소리때문에 적들은 정찰대의 행동을 발견할수 없는것이다.

철썩철썩 물을 걷어차는 소리는 포성에 묻혀버렸다. 늠실늠실 흐르는 금강의 소연한 물결이 떼목에 철썩, 처절썩! 부딪치고 부딪치며 그 무엇을 안타깝게 하소연하는듯 했다.

마침내 넓은 강을 건너 전원이 무사히 기슭에 올랐다. 모래불을 인차 극복한 정찰병들은 재빨리 수림속에 뛰여들었다.

숨돌릴 사이가 없었다. 장교놈들이 마음놓고 나다닐만 한 큰길을 찾아내야 했다. 이미 지도작업을 할 때 예상했던 방향으로 진출하면서 산아래쪽을 주의깊게 살폈다.

적들의 탐지기에 걸려 행동이 로출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 무선기는 밤새 차단했다.

도로를 발견한 다음 그 주변의 수림속에서 지루한 한밤을 보냈다.

드디여 새날이 서서히 밝아왔다. 동쪽하늘이 희붐히 들리더니 차츰 만반사물이 선명한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그때에야 산아래쪽을 지나 구불구불 뻗어간 신작로의 자태를 가려볼수 있었다. 공주―론산간 도로였다.

《저 도로가 맞춤할것 같구만. 김동호동무와 안창항동무만 날 따르고 나머지 동무들은 여기에 남아서 엄호하시오. 무슨 일이 생기면 중대장동무가 대책하오.》

세명의 정찰병들은 버젓이 도로에 나섰다. 석비레를 다진 도로는 꽤 탄탄했는데 그걸 보아도 많은 차들이 지나다닌다는것을 알수 있었다.

도로우를 오락가락하며 시간을 보내는새에 눈부신 아침해살이 퍼졌다. 이맘때쯤이면 행인들의 왕래가 많아질무렵이다. 아닐세라 조금 있더니 부르릉거리는 차소리가 들려왔다.

(큰놈이 걸려들어야겠는데.…)

모두 한껏 긴장된 눈길을 그쪽으로 돌렸다.

공주쪽으로 굽이돌아간 길머리에 나타난것은 찌프차였다. 그런데 가까이 다가온 차에 앉은 놈들을 살펴보니 그리 신통치 못했다. 운전사옆에 앉은 괴뢰군장교는 겨우 중위였다.

(저런 부스레기따위가 방어구역전반을 알고있을 탁이 없지.)

실망한 학문은 빈입을 쩝쩝 다셨다. 정찰병들은 그의 표정만 보고서도 그냥 지나보내라는 뜻을 제깍 알아차렸다.

찌프차는 휘발유냄새를 확 풍기며 지나갔다.

《부과장동지, 괜히 놓아보낸게 아닐가요? 저놈들이 제편에 알리기라두 하면…》

안창항이가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십분 그럴수 있다. 방금 지나친 중위놈이 좀 의심쩍어하는 눈치였다. 적들이 수상한 기미를 차리고 추격해온다면 시끄러움을 당할수 있다. 하지만 학문은 못 들은척 아무런 대꾸도 없이 길가에 벋치고 서있었다. 마음은 태연하였다.

적들은 인민군대가 벌써 금강건너에 나타났다는것을 쉽게 믿으려 하지 않을것이다. 엄연한 사실도 굳이 믿고싶지 않아서 모지름을 쓰는 바로 그것이 금강에 의지하여 방어진을 펴놓고 어떻게 하나 인민군대의 공격을 막아보려 악을 쓰는 적상층의 심리일것이다. 설사 놈들이 추격해온대도 문제될것이 없다. 산발속을 이리저리 끌고다니며 전투를 벌리느라면 저들의 방어진이 후위에서 위협을 받게 될것이다.

또 발동소리가 들려왔다. 굽인돌이에서 한대의 찌프차가 대가리를 드러냈는데 쏜살같이 달려온 차우에는 괴뢰군대령놈이 점잔을 빼며 앉아있었다.

(에크! 큰놈이로군.)

흡족해난 학문은 한손을 척 들고 길복판을 막아섰다. 다른 정찰병들은 앞에총 하고 길옆에 나란히 서있었다. 《MP》글자가 새겨진 철갑모를 눈두덩까지 눌러쓴 그들의 거동은 틀림없이 안하무인격으로 건방지기 짝이 없는 헌병들이였다.

속력을 내며 달려오던 찌프차는 경적소리를 째지게 울리더니 학문의 발치에 곤두박힐듯 멎어섰다. 찌프차의 앞창에 이마를 세게 짓쪼은 대령놈은 단박에 화가 머리끝까지 올라서 소래기를 뽑았다.

《뭐야? 돼먹지 않게!》

그놈의 축 처진 량볼편이 노성에 푸들푸들 떨었다. 헌병인데다가 헌병장교가 거쿨지고 감때사나와보이는 사나이가 아니라면 당장 권총이라도 뽑아들 기색이였다.

학문은 살가운 미소를 짓고 다가서면서 절도있는 경례를 붙였다.

《미안합니다, 대령님. 특별검속입니다.》

《뭐라구?! 어디 소속 헌병인데?》

증명서를 꺼낼듯이 품속에 손을 넣는 학문의 거동을 기웃이 넘겨다보던 대령놈은 갑자기 억! 소리를 지르며 허궁 길옆 풀밭에 나떨어졌다. 찌프차옆에 슬그머니 다가섰던 김동호가 억센 팔뚝힘으로 뒤덜미를 잡아휘둘렀던것이였다. 뒤좌석에 앉아있던 두놈의 괴뢰군장교들은 안창항과 리학문의 비호같은 타격에 끽소리도 못 내고 쓰러졌다.

《내 격술맛이 어드래?》

바쁜중에도 안창항은 시까스르는것을 잊지 않았다.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였다.

《철수!》

찌프차를 길가의 숲속에 처박고 나무가지를 덮어서 숨겨놓은 다음 대령놈을 둘러멘 김동호를 앞세우고 깊은 수림속으로 빠져들었다. 푸른 숲은 정찰병들을 믿음성있게 숨겨주었다. 엄호하던 정찰병들이 그들을 맞았다.

학문은 경계조직을 한 후 곧 심문에 들어갔다.

차용대는 의례 그랬듯이 심문결과를 지휘부에 보고할 잡도리로 벌써 무선기를 전개해놓고 대기했다.

숲속의 바위밑에 꿇어앉은 대령놈은 아직도 정신이 얼떨떨한 상태였다.

《당… 당신들은 누구요?》

《아직도 모르겠소? 이젠 제정신을 차리고 우릴 도와야겠소. 우린 인민군대 정찰병들이요. 자, 순순히 다 털어놓는게 좋을게요.》

학문은 겉에 덧입었던 장교복을 헤쳐놓았다. 인민군대 군관복어깨우에 반짝이는 별이 드러났다. 그제서야 정황을 알아차린 대령놈은 고개를 푹 떨구었다.

《그러니 당신들은?…》

《그렇소. 우린 공주근방의 병력배치를 알아야겠소!》

대령놈은 풀이 죽었지만 툴툴거릴만 한 용기는 있는 모양이였다.

《휴― 당신들의 대담성에는 탄복하지 않을수 없지만… 하지만 이곳이 국군의 공고한 후방이라는걸 잊지 않는게 좋을게요. 총소리만 나면 나의 부하들이 인츰 달려올게란 말요.》

학문은 쓰거운 웃음을 지었다.

《당신을 구원하겠다고 목숨까지 내걸고 달려올 용사가 정말 〈국군〉에 있을가?》

《국군을 함부로 모욕하지 마시오!》

대령놈은 제법 위세를 부리려들었다. 이런 때 한숨 늦추면 후과가 좋지 않을수도 있다. 학문은 더 말씨름하고싶은 생각이 없었으나 세상물정 모르는 민충이같은 놈을 앞에 놓고 목소리를 높이지 않을수 없었다.

《이놈아! 정신을 차리고 현실을 똑바로 알아두라. 인제는 여기도 우리의 해방지구야. 김일성장군님의 방송연설을 네놈도 들었겠지? 김일성장군님께서 명령하시면 그게 곧 법인거야. 인민군대의 승리와 조국의 통일은 이제 시간문제이고 이곳만이 아니라 저 제주도 한끝까지도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신성한 령토란 말이야. 백두산호랑이가 한나산에 벌써 한발을 내짚었다. 잔말말고 묻는 말에나 대답해. 공주에 집결된 적의 대호와 력량은?》

놈은 학문을 힐끔 쳐다보았다. 무엇인가 말할듯말듯 하더니 다시 왼고개를 틀었다.

《말하지 못하겠는가?》

《난 모르오. 당신은 이 국방군 대령을 너무 얕봤소, 소좌!》

(건방진 놈!)

치미는 분노를 겨우 묵새기며 학문은 권총을 꺼내여 안전장치를 푼 다음 무릎앞에 탁자처럼 놓여있는 바위우에 척 올려놓았다. 그 허세가 몇푼어치나 되는지 보자는 배심이였다.

《무슨짓을 해서 대령까지 게바라올랐는지는 모르겠지만 당신들의 계급장이란게 미국놈들이 마음내키는대로 쥐여얹어준건데 뭘 그리 뻐길게 있는가. 채병덕이처럼 하루아침에 끈 끊어진 갓신세가 되는게 〈국군〉장교들이고 통수권까지도 미국놈에게 빼앗긴 그런 허수아비가 〈국군〉이 아닌가. 이젠 더 묻지 않겠다. 이 총앞에서 당신스스로 결심하라. 우리의 요구에 응하겠는가 아니면 민족앞에 지은 죄를 결산받겠는가? 총은 빈말을 몰라!》

선고와도 같은 엄엄한 소리에 대령놈은 턱을 쳐들었다. 검싯한 두눈이 파들파들 떨었다. 거기에는 방황하는 심리와 공포가 짙게 어려있었다.

《비밀을 내놓으면 정말 목숨을 담보하겠소?》

《우린 거짓말할줄 몰라.》

궁싯거리던 놈은 드디여 속을 터놓기 시작했다. 그놈은 금강방어선의 빈구석을 패잔병들로 보강할 임무를 맡고 괴뢰군참모본부에서 파견되여오던 작전참모였다. 그놈은 누에처럼 퉁퉁한 손가락으로 리학문이 펼쳐놓은 지도의 여기저기를 짚어가며 부대들의 대호까지 낱낱이 불러댔다.

《새로 증강되는 병력은 없는가?》

《당신들도 알겠지만 우리에겐 증강할 병력예비가 없습니다. 괴멸된 부대들의 패잔력량을 전부 여기에다… 제발 목숨만은 담보해주겠습니까?》

무척 간절한 기대감에 사로잡힌 눈길로 정찰병들을 둘러보며 또 묻는다. 학문은 머리를 끄덕여보이고 엄하게 명령했다.

《네놈들의 현 상태를 구체적으로 말하라.》

《예, 예, 다 말합니다.》

가소로운 놈이였다. 이런 놈들의 용렬하고 취약한 본성을 잘 알고있는 학문이였으나 방금전까지도 객기를 부리던자가 그렇게 쉽게 물러앉아버리는데 어리둥절해질 지경이였다.

촉기빠른 차용대가 알아낸 정보를 제꺽제꺽 종합해서 무선으로 지휘부에 날려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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