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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소설 전환의 년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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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강산
댓글 1건 조회 3,719회 작성일 20-10-03 18: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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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중앙위원회청사 김정일동지의 집무실벽에 걸려있는 전자시계의 시침과 분침은 아홉이라는 수자근방에서 겹쳐지고있었다.

김정일동지께서는 김광성과 림성욱을 팔걸이걸상에 앉히고 담배를 드신채 김광성이 방금전에 드린 문건을 보고계시였다. 그들 건설부문 일군들이 련 사흘동안이나 토의를 거듭하며 새로 수정보충하여 작성한 수도건설대상계획초안이였다. 림성욱이와 김광성은 그이께서 친히 쥐여주신 담배를 받아들긴 하였지만 불을 붙이지 못하고 저도 모르게 재털이에 슬그머니 놓은채 자못 긴장해진 눈길로 그이의 피로가 어린 안색만 살펴보고있었다.

계획초안을 거듭 훑어보시는 김정일동지의 안색에 차츰 그늘이 비껴들기 시작했다.

《문수벌에 7∼8천세대분의 현대적인 다층문화주택들을 건설할것을 예견했단말이지요? 동무들이 크게 마음을 먹고 욕심을 부렸다는게 알립니다.》

김정일동지께서는 잠시 생각에 잠기셨다가 계획초안문건을 집무탁에 놓으시였다.

《동평양에 짓고있는 산원과 천리마거리의 창광원은 그걸 맡은 곽운필동무가 올해안으로 손을 턴다고 장담했으니 당대회전에 넉근히 준공식을 하고 운영할수 있습니다. 인민대학습당과 빙상관설계는 어느 정도로 진척되고있습니까?》

림성욱이 자리에서 일어나 대답을 드리려고 하자 김정일동지께서는 앉아 이야기하라고 손짓하시였다. 어쩔수 없이 성욱은 좀 부자연스러운 자세로 팔걸이걸상에 앉은채 말씀을 드렸다.

《인민대학습당에는 120여명의 설계집단이 달라붙어 몇달째 전투를 하고있는데 인차 설계를 끝마칠수 있습니다. 빙상관은 설계시안만 확정되면 인민대학습당처럼 규모도 그닥 크지 않고 내부구조도 덜 복잡하기때문에 이제 시작하여도 한두달안으로 완성도면을 내놓을수 있습니다.

그런데 빙상관은 외형을 어떤 식으로 하겠는가 하는것때문에 아직 본격적인 설계단계에 들어가지 못했습니다.》

림성욱의 옆에 묵묵히 앉아있던 김광성이 기회를 놓칠세라 한마디 곁들었다.

《소장동무가 이번에 삼지연스키장에 현지답사 갔다가 기발한 착상을 해가지고 돌아왔습니다. 아직 토의에 붙여보진 못했지만 제 개인의 생각으로서는…》

《찬성하고싶다는거겠지.… 그래 어떤 착상입니까?》

《빙상관외형을 스키모자형태로 하자는것입니다.》

《스키모자?》

잠간 그 뜻을 음미해 보시던 김정일동지께서는 호탕하게 웃으시며 자리에서 일어나시였다.

《아주 그럴듯 합니다. 그건 발견입니다. 멋들어진 발견이요. 나도 시당비서동무와 마찬가지로 스키모자에 지지표를 넣겠습니다.》

선거함에 선거표를 넣으시는듯 한 손세까지 써가며 말씀하신 그이께서는 활달한 걸음으로 김광성이와 림성욱의 앞으로 다가오시였다.

뜻밖에 그이의 과분한 평가를 받은 림성욱은 대뜸 얼굴과 목이 뻘겋게 달아올랐다. 충격을 받거나 흥분하면 얼굴이 기름한편인 김광성은 낯빛이 도리여 해쓱해지는데 몸이 비만한데다가 피가 쉽게 끓군 하는 성욱은 순식간에 피부가 익은 가재빛처럼 달아오르군 하였다. 부지중에 자리에서 일어난 성욱은 열띤 목소리로 자신있게 말씀드렸다.

《스키모자형을 승인하시면 빙상관설계도 래달안으로 완성하겠습니다.》

《설계집단의 토의에 붙여보고 다들 찬성하면 스키모자형으로 형성시안을 만드시오.》

김정일동지께서는 림성욱의 곁에 앉으며 말씀을 이으시였다.

《인민대학습당과 빙상관모형사판을 최단시일내에 준비해야 하겠습니다. 래일 어버이수령님께 형성안에 대해 보고드리고 결론을 받겠습니다.

빙상관을 스키모자형태로 하게 되면 건물의 성격이 명백해지기때문에 수령님께서도 마음에 들어하실겁니다. 인민대학습당도 형태를 잘 잡아야 합니다. 대학습당은 수령님께서 오래전부터 우리 인민에게 잘 지어주자고 별러오신 대학습전당인것만큼 인민을 하늘같이 여기시고 인민에게 모든것을 다 바치시는 수령님의 숭고한 뜻과 덕망이 그대로 구현된 기념비적건축물로 돼야 합니다.》

《알겠습니다.》

림성욱이와 김광성은 동시에 대답을 올리였다.

《그리구 문수벌에 새 주택거리를 형성한다? 물론 그건 좋구 그런데…》

김정일동지께서는 뒤말을 흐리시며 오른손가락으로 피아노건반을 눌러보듯 걸상의 팔걸이를 가볍게 다독이시였다. 상념속의 대상들을 이리저리 짚어가며 거기에서 울려나오는 음향을 가늠해보기라도 하시듯… 림성욱은 그이께서 계획안에 문수거리건설을 포함시키고도 아직 얼마간 여지가 있음을 분명히 시사해주시는듯 느껴졌다. 그렇다면 어떤 새로운 대상을 념두에 두고 그토록 깊은 사색을 이어가시는가.…

그이의 음성이 다시 울렸다.

《래년에 6차당대회를 하고나서 두해가 지나면 어버이수령님의 탄생 일흔돐을 맞게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지금부터 6차당대회만이 아니라 수령님의 일흔돐 탄생절까지 내다보면서 건설해나가야 합니다. 그런 견지에서 보면 문수벌에 새 거리를 형성하자는 동무들의 계획안은 백번 옳은것입니다. 우리 인민에게 더 좋고 훌륭한 집을 지어주자는것이 수령님의 평생의 소원인것만큼 우리는 당대회와 수령님탄생 일흔돐까지 인민들을 위한 현대적인 주택을 더많이 건설해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 당에서 건축혁명을 발기한 총적인 목표는 무엇이겠습니까?… 동무들이 작성한 이 계획안에는 아직 그러한 지향이 미약합니다. 동무들이 중요한 일을 붙안고 어지간히 지친것 같은데 우리 이제 밤거리를 산보하며 시원한 바람이나 쏘이면서 의논을 해보지 않겠습니까?

창광원건설이 어느 정도로 진척되였는지, 요즘은 바쁘다보니 코앞에 있는 건설장에도 나가보지 못했습니다. 바람을 쏘이느라면 머리가 맑아져 좋은 생각이 떠오를수 있습니다.》

이렇게 말씀하시며 김정일동지께서 자리에서 일어나시였다.

림성욱이와 김광성이도 따라 일어나기는 하였으나 마음이 무거웠다.

김정일동지의 말씀은 자연히 그이께서 내놓으신 위대한 건설혁명사상을 받들고 사업하여 온 지난날을 돌이켜보게 하였다.

건설혁명, 이는 건축에서 량이 아니라 질이고 거리형성과 내용에서 종전의 답습이 아니라 비약이고 류형과 도식을 허용하지 않는 독창성, 창조의 세계이다. 평양시에는 벌써 건축에서의 비약과 독창성, 창조성을 자랑하는 그러한 건물들이 곳곳에 솟아올라 세상사람들의 아낌없는 찬탄을 모으고있다. 그렇다면 건축혁명, 아니, 나래치는 그이의 건축사상의 폭과 깊이, 그 끝은 과연 어디까지인가. 얼마후 당중앙위원회를 떠난 승용차는 인민문화궁전앞 네거리에서 방향을 꺾어 창광원건설장으로 천천히 달려갔다. 가로등빛이 반나마 꺼져버린 대통로에는 지나다니는 차들도 별반 눈에 띄지 않고 불빛이 깜박거리는 교통지휘봉을 휘두르는 교통안전원의 모습도 보이지 않았으나 보통강쪽에서는 쇠붙이들이 갈리는 소리며 갖가지 소음이 들려오고 그 상공은 동터오는 새벽하늘마냥 불그스레하였다.

석달전까지만 해도 앙상한 발대목들사이로 솟아오르는 거밋거밋한 콩크리트구조물이 어떤 건물로 변모되겠는지 누구도 상상하지 못하였었다. 그러나 지금은 그 구조물의 은근한 형태들과 차광유리들이 용접광속에 얼핏얼핏 드러나 이채로운 봉사건물로 되리라는것을 넉근히 가늠할수 있게 했다.

오늘도 창광원건설장은 밤 가는줄 모르고 들끓고있었다. 승용차는 건설장으로 통하는 체육관 옆길에 들어서자마자 뜻하지 않았던 정황에 부딪쳐 멎어섰다. 앞에 여러대의 화물자동차들이 늘어서 길이 막혀버린데다가 뒤에까지 차들이 꼬리를 무는 바람에 되돌아설수도 없었다.

운전사는 차창을 내리고 바깥을 이리저리 살펴보았으나 《포위망》에서 벗어날 별다른 궁리가 떠오르지 않는지 혼자소리로 중얼거렸다.

《챠, 이런…》

운전사의 옆자리에 앉아있던 김광성이 밖으로 뛰여나가려고 얼른 문손잡이를 잡았다.

《비서동무, 그냥 앉아있소.》

김정일동지께서는 그를 제지시키시였다. 평소엔 조용하다가도 일단 무슨 일이 생기면 덤볐다 치는 김광성은 제 자리에 눌러앉아 얼굴이 벌개서 뒤덜미만 쓸어만지였다.

이때 앞에 멎어선 모래차의 적재함우에서 석쉼한 목소리의 임자가 투덜댔다.

《제길, 오늘 밤 또 한탕 밑졌군. 저 친구들의 본위주의라는게 이렇다니까. 어제도 잔토정리를 한답시고 불도젤로 길을 밀어 팡가치더니 또 이 모양이야.》

느직느직한 말소리와 바람에 실려오는 진한 엽초냄새로 미루어보아 어지간히 나이든 늙은축 같았다. 그 목소리가 다시 울려왔다.

《아주마인 녀성인데 왜 산원건설장에 나가지 않구 여기루 지원해오우?》

이번에도 퉁명스럽기는 하나 어딘가 친근감이 슴배인 어조였다.

《녀성들은 꼭 산원건설장에 지원가야만 하나요, 아바이?》 녀자치고는 꽤 걸걸한 목소리가 반문하였다.

《요즘 치마 두른 녀인네들은 다들 기를 쓰고 산원쪽으로만 가고싶어하니말이요. 우리 집 로친네도 내내 산원에만 지원나가군 하는데 그 로친이 글쎄 어제 뭐랬는지 들어보겠소? 내 기가 막혀서… 나이가 한 10년 젊었어도 산원에서 아이낳이를 해보겠는데 통 틀렸다나. 얼굴이 쭈그렁박통같이 돼가지구 셈판없는 소릴 하더라니까.… 하긴 그렇게 말할만도 하지. 허허…》

《아이참, 아바이두 정말 웃기시네.》

명랑한 웃음소리가 뒤를 이었다.

《아바이, 저도 이젠 산원을 넘겨다 볼 때가 지났답니다.》

《그래두 아직 새각시 같아뵈는걸.… 참 아주만네가 북새에서 산댔더라?》

《북새가 맞아요.》

《그럼 래후년쯤엔 문수벌에 옮겨가겠구만?》

《그건 어째서요?》

《래년에 문수벌에다 새집들을 짓는단 말 못들었나? 문수벌에 새 주택거리가 생기면 시내복판에서 단층집살이를 하는 사람이 다 없어질거라고들 그래.》

화물자동차적재함우에서 오고가는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고계시던 김정일동지께서는 빙긋이 웃으시며 나직한 음성으로 말씀하시였다.

《동무들의 계획안이 벌써 새나간 모양이구만.》

《낮말은 새가 듣고 밤말은 쥐가 듣는다더니 정말 모를 일입니다.》

림성욱은 황황히 변명하였다. 다행스럽다고 할가 승용차의 뒤에 달렸던 화물차들이 하나둘 후진하여 물러서기 시작하였다. 그 기회를 타서 김정일동지께서는 차를 돌려 세우라고 운전사에게 이르시였다.

승용차는 각종 륜전기재들의 전조등불빛이 무수히 엇갈리는 그곳을 떠나 다시금 보통문쪽으로 향하였다. 어디로 가실가? 혹시 산원건설장으로 찾아가시는게 아닌지.… 림성욱은 차창밖으로 흘러가는 천리마거리의 야경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금년 정초에 착공하여 외부공사를 마친 산원과 창광원은 둘 다 래년도에 준공할 대상들이였다. 그래서 이번에는 산원건설장으로 가시는줄 알았는데 뜻밖에도 김정일동지께서는 운전사에게 이렇게 말씀하시였다.

《저기 륜환선거리로 갑시다.》

림성욱은 륜환선이라는 그 거리이름이 어쩐지 귀설게 느껴졌다.

무슨 일때문에 그리로 가시는지.… 알수없는 의문이 그런 느낌을 던져주었는지도 모른다.

어느덧 차는 보통문옆을 에돌아 륜환선거리에 들어섰다.

김정일동지께서는 길가의 어느 한 아빠트앞에 승용차를 멈추게 하시였다. 차에서 내리신 그이께서는 인적이 뜸해진 밤거리를 잠간 둘러보시고 평양역쪽으로 뻗은 길을 따라 천천히 발걸음을 옮기시였다.

림성욱은 조금 떨어져 김광성이와 함께 걸으면서 그이께서 왜 륜환선거리로 나오셨는지 알수 없어 자꾸만 주위를 두릿두릿 살펴보았다.

그이께서 누군가의 집으로 조용히 찾아나오실수도 있는 일인데 자기가 공연히 조급해 하는것같기도 하였다. 이따금 김정일동지께서 걸음을 멈추시며 드문드문 불이 켜져있는 2∼3층 소층아빠트의 창문도 바라보시고 아빠트들 사이길로 들어가시였다가 돌아서 나오기도 하는걸 보면 집을 찾으시느라 오래전의 희미한 기억을 더듬어보시는듯 하였다. 그러나 림성욱은 다음순간 자기의 생각과는 달리 김정일동지께서 륜환선거리 살림집들의 외부구조와 형태에 관심을 두고 자세히 살펴보시지 않는가 하는 느낌이 들어 그이의 시선을 따라 거리의 좌우편에 늘어선 집들을 새삼스럽게 둘러보았다.

전후에 건설한 거리여서 도로만 널다랗지 살림집들은 덩지가 작고 베란다도 없는데다 바라크식지붕까지 씌워놓아 볼 멋이 없었다. 림성욱은 이 거리로 자주 찾아다니며 하도 눈에 익어서인지 이전에는 별로 그런감을 몰랐는데 오늘밤은 이상하게 가슴이 답답해왔다.

승용차는 조용히 그이를 따라오고있었다. 림성욱은 이제라도 그이께서 륜환선거리를 떠나주셨으면 싶었으나 갑자기 왜 여기로 나오셨는지 알수 없어 선뜻 입을 열게 되지 않았다.

김정일동지께서는 이빠트뒤켠을 눈여겨 살펴보시다가 그들을 향해 돌아서시였다.

《왔던김에 우리 저쪽으로 한번 가봅시다.》

김정일동지께서는 2층살림집사이를 지나 어둠이 짙게 깔려있는 골목길로 천천히 걸음을 옮기시였다.

뒤따라 림성욱이가 조심스레 발길을 내짚다가 김광성에게 귀속말로 나직이 말했다.

《주의하라구.》

《이럴줄 알았으면 손전지라도 가져오는걸.》

김광성이 미처 뒤말을 잇기도전에 성욱이가 물창을 밟았다. 낮에 내렸던 소낙비물이 미처 스며들지 못해 길바닥에 옅은 물창이 생긴 모양이였다. 림성욱은 어두운 골목길로 더 이상 지도자동지를 모셔서는 안되겠다고 생각하고 그이를 바삐 뒤따라갔다.

《물창을 밟은게 아닙니까?》

김정일동지께서 걸음을 멈추시고 그를 돌아보며 물으시였다.

성욱은 대답이 없이 한걸음 다가서며 안타깝게 간청하였다.

《친애하는 지도자동지 이 골목길은 너무 험해서… 다른데로 가십시다.》

김정일동지께서는 젖은 신발을 신고 서있는 성욱이에게 량해라도 구하듯 다정히 말씀하시였다.

《좋지 못한 길로 데리고 와서 안됐습니다. 그렇지만 이 뒤골목은 인민들이 늘 걸어다니는 길입니다.… 김광성동무는 눈을 넷씩이나 가지고도 잘 보지 못하는것 같은데 내뒤를 바싹 따라오시오.》

김정일동지께서는 웃으며 안경을 낀 김광성이 가까이 다가오기를 기다렸다가 다시 걸음을 옮기시였다. 림성욱은 그이의 곁으로 바싹 다가가며 재삼 간곡한 청을 드렸다.

《길이 험합니다 》

어느덧 림성욱은 그이의 팔소매를 붙잡고있었다.

김정일동지께서는 발걸음을 멈추며 말씀하시였다.

《일없습니다. 아무리 험한들 수령님께서 전후복구건설의 나날에 재더미를 헤치시고 걸으시던 그 길들보다야 더 험하겠습니까. 참 소장동무, 저 아빠트의 집들에 들어가봤습니까?》

《예, 여기에 대학습당을 설계한 남정기동무의 집이 있어 일년에 둬번씩은 찾아다닙니다.》

《그럼 집구조가 어떻게 생겼는지 잘 알겠구만.》

《전후에 다른 나라 설계를 본따서 지은 뻬치까식집이였는데 수령님께서 조선사람의 생활에 맞게 개조해주시여 온돌방에서들 삽니다. 부엌이랑 좁고 불편한 점이 많지만 그런대로 꽤 쓸만합니다.》

림성욱은 별다른 생각이 없이 설명해드리고 아빠트쪽을 돌아다보았다.

2층주택의 어스크레한 뒤뜨락에서 한 녀인이 도회지의 생활에 어울리지 않게 텅텅 장작을 패는 소리가 밤의 정적을 깨뜨렸다. 겨울이라면 구멍탄불을 살리느라고 더러 장작을 패는 때가 있겠는데 이상하였다.

《여름에 탄불을 때는 집은 없겠는데…》

《혹시 알겠소! 집구경도 할겸 가서 만나봅시다.》

김정일동지께서는 녀인에게로 가까이 다가가시였다. 도끼질소리가 멎고 녀인은 손에 장작개비를 든채 일행을 지켜보았다.

그이께서 한발 나서며 녀인에게 말씀을 건네시였다.

《수고합니다.》

《네, 누굴 찾으시나요?》

《지나가던 길에 잠간 들렸습니다.… 밤일을 했습니까?》

《창광원건설장에 야간지원을 갔댔습니다.》

《그렇군요. 여름에도 탄불로 밥을 짓습니까?》

《아닙니다. 저희 작업반녀성들은 래일밤에 돌격대원들한테 들큰한 감주를 대접하기로 분담받았습니다. 그런데 눅눅한 방에 감주단지를 놓으니 감주가 안됩니다. 그래 오늘아침에 탄불을 살궜는데 글쎄 죽어버려서…》

속상한 시늉을 하던 녀인의 두눈이 그제야 화등잔처럼 커지였다. 녀인은 황황히 옷매무시를 바로잡고 그이께 허리를 굽혀 인사를 올렸다.

《친애하는 지도자동지… 제가 미처 몰라뵙구서.》

《우리가 이렇게 밤에 찾아와서 안됐습니다.》

김정일동지께서는 도리여 미안하다고 하시며 녀인을 위안해주시였다.

림성욱은 그때 녀인의 옆으로 다가서며 나직한 목소리로 물었다.

《미안하지만 집구경을 좀 할수 없겠습니까?》

녀인은 갑자기 집구경을 하자니 당황해하는 기색이더니 얼른 응해나섰다.

《그렇게 하십시오. 한데 집안이 루추해서 》

《일없습니다. 그저 집구조를 좀 보려구 그럽니다.》

녀인의 집은 아래층이였다. 녀인은 출입문을 열고 비좁은 복도에 들어섰다.

김정일동지께서는 촉수낮은 전등이 불그스레 켜져있는 복도로 뒤따라 들어서며 물으시였다.

《식솔이 몇이나 됩니까?》

《세대주와 아이들 둘, 모두 넷입니다. 세대주는 야간교대여서… 전기기관차공장에 다닙니다.》

그러면서 녀인이 방으로 들어가 전등을 켜려하자 김정일동지께서는 얼른 만류하시였다.

《가만두십시오. 아이들이 깨나겠습니다. 그러니 이쪽이 한칸, 저쪽이 한칸이구만요. 집이 좁지 않습니까?》

《네식구에 두칸이여서 아무 불편이 없습니다.》

《저기가 부엌이구만.》

김정일동지께서는 잠자는 아이들이 깨지 않게 부엌쪽으로 조용히 걸어가시였다. 부엌은 길죽한 복도 한끝에 있었다.

김정일동지께서는 잠시 부엌안을 유심히 둘러보시였다. 림성욱이 옆에서 나직한 목소리로 주민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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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산님의 댓글

강산 작성일

(위에서 계속)

림성욱이 옆에서 나직한 목소리로 주민들이 여러해동안 살며 잔손질해서 집안구조가 더러 개조됐으나 건설당시의 근본적인 결함은 그냥 남아있다고 설명하였다.

김정일동지께서는 아무런 응대도 없으시다가 녀인에게 세면장이 어딘가고 물으시였다. 녀주인이 몹시 당황해하면서 말씀드렸다.

《저기 가시대가 넓어서 거기서 세수도 하고 빨래도 합니다.》

《그렇습니까?》

김정일동지께서는 타일을 붙인 가시대앞에서 걸음을 멈추시고 무거운 시선으로 굽어보시였다.

한순간 림성욱이에게는 그이께서 조용히 한숨을 쉬신듯이 느껴졌다.

녀인은 죄송스러운 어조로 말씀올렸다.

《이제 탄창고로 쓰는 이 작은칸을 세면장으로 개조하려 합니다. 친애하는 지도자동지, 이만하면 얼마든지 살아나갈수 있습니다.》

녀인은 자기가 어릴적에 토성랑의 반토굴집에서 살던 때에 비하면 호강스럽게 지낸다고 서둘러 덧붙이였다.

김정일동지께서는 고개를 끄덕이시고 한걸음 물러서서 부엌에 달린 소창문이며 그을음이 앉은 멋없이 높은 천정도 쳐다보시였다.

김정일동지의 흐린 안색을 살피던 녀인이 또다시 말씀드렸다.

《이제 다른 아빠트에 집이 나면 그리로 이사가게 됩니다. 그때는 집도 잘 꾸리겠습니다.》

김정일동지께서는 복도로 걸음을 옮기시며 녀인한테서 집안의 구조에 대해 좀 더 자세히 설명을 들으시였다.

베란다도 없고 웃방은 널마루방이여서 겨울에는 랭방일것이다. 륜환선거리집들이 건설된 직후에 위대한 수령님께서 몹시 노하시여 뻬치까를 온돌로 개조하게 하시였으나 아래방에만 온돌을 놓았고 아직 웃방은 겨울 한철 추워서 창고처럼 쓴다고 하였다. 그이께서는 좁은 복도를 지나 천천히 출입문밖으로 나서시였다.

녀인이 황급히 뒤따라나왔다. 김정일동지께서는 녀인을 돌아다보시며 《건설장의 돌격대원들에게 감주를 대접하려는 정성은 좋은데 밤이 깊었으니 이젠 쉬시오.》하고 말씀하시였다. 다심한 그이의 말씀에 녀인은 목이 메여 아무말도 못하였다.

밖에 나오신 김정일동지께는 녀인이 패다만 장작개비앞에서 걸음을 멈추시였다. 어느 집의 라지오에서인지 방송원의 목소리와 밤 열한시를 알리는 신호음이 나직하면서도 또렷이 들려왔다.

이윽고 2층주택의 뒤마당을 따라 승용차가 멎어선데로 향하시던 김정일동지께서는 다시금 걸음을 멈추시고 어둠침침한 현관들과 2층주택들을 한동안 주의깊게 둘러보시였다.

김광성이 용기를 내여 그이께 아뢰였다.

《친애하는 지도자동지, 밤이 깊었습니다.》

《이제는 열한시가 넘었습니다.》

림성욱이 안타까운 어조로 덧붙이였다.

김정일동지께서는 두사람을 돌아보시며 조용히 말씀하시였다.

《밤이 깊었으면 뭐랍니까? 동무들도 금방 보지 않았습니까. 우리 수령님께서 반당종파분자들이 지어놓은 륜환선거리집들때문에 심려하시며 걸으시던 그 새벽에 비하면 아직 초저녁이라고 할수 있습니다. 수령님께서는 종파놈들이 끼쳐놓은 후과로 인민들이 고생하는것이 가슴이 아프시여 1955년 11월 25일 새벽에 이 거리로 나오시였습니다. 동무들은 여기가 어딘지 모르고있는것 같은데 여기가 바로 어버이수령님께서 심려어린 걸음을 하셨던 그 장소이며 우리가 들어갔던 골목길도 수령님께서 걸으신 바로 그 골목길입니다.》

김광성이와 성욱은 불시에 얼어붙은 사람들처럼 아무 말도 못하고 한동안 꼿꼿이 서있기만 하였다.

…륜환선거리에 새로 지은 2층살림집 난방시설이 뻬치까로 되여있어서 주민들이 추위에 떨고있을뿐아니라 여러모로 불편을 겪고있다는 보고를 받으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밤새도록 주무시지 못하시다가 이튿날 날이 채 밝지 않은 어뜩새벽에 몸소 륜환선거리 2층주택지구를 찾으시였다.

아직 정리되지 않은 잔토들이 무덕무덕 쌓이고 벽돌장들과 발대목들이 마구 널린 험한 골목길에 이르신 수령님께서는 찬바람 부는 한지에서 주민들이 깨여나기를 오래동안 기다리시다 맨 처음으로 불이 켜진 집으로 들어가시였다.

수령님께서는 부엌도 보시고 온기를 찾아 아이들이 뻬치까옆에 누워자고있는 랭방이나 다름없는 방안에도 들어가보시였으며 창고, 지어 위생실까지 열어보시였다. 이른 새벽부터 아침늦게까지 그렇게 여러집을 일일이 다 돌아보신 수령님께서는 종파놈들이 볼품없는 너절한 집들을 지었다고 분격을 금치 못해하시며 륜환선거리를 떠나시였다.

그때로부터 얼마후 수령님께서는 새로 임명된 건설상을 부르신 자리에서 우리 살림이 어느 정도 펴이면 곧 륜환선거리에 세운 병신집들은 다 헐어버리고 새집을 짓자고 하시였으며 그때까지 당분간 그집들에 뻬치까대신 온돌을 놓아주고 집구조도 고쳐주어 거기사는 사람들의 불편을 덜어주어야겠다고 하시였다.

그것이 어언 20여년전 일이였다. 온돌바닥에서 뜨뜻이 지내게 된 륜환선거리의 주민들은 입사초기의 불편함을 죄다 잊고 지금은 모두 편안하게 살고있다. 광성과 성욱이도 역시 륜환선거리주민들처럼 가슴아픈 그 옛일을 잊고있었다. 하지만 김정일동지께서만은 항시 그 일을 잊지 않고계신듯 감회깊으신 어조로 말씀을 이으시였다.

《그날 아침에 퍽 늦어 무거운 심정으로 저택에 돌아오신 어버이수령님께서는 차려놓은 조반도 들지 않으신채 덞은 옷만 갈아입으시고 내각청사로 나가셨습니다. 나는 그날 저녁에야 수령님께서 새벽에 어디에 나가셨고 무엇때문에 그리도 가슴아파하시는지를 알았습니다. 수령님께서는 유격대원들이 백두산에서 싸울 때도 귀틀집을 짓고 온돌을 놓고 지냈는데 종파놈들은 제 나라 수도의 한복판에 우리 식이 아닌 집을 짓고 뻬치까를 놓는 놀음을 벌렸다고 하시며 분개해하셨습니다. 다음날 나는 수령님을 모시고 륜환선거리에 나갔던 부관한테서 수령님께서 전날 나가신데가 어딘지 알아가지고 여기에 일부러 나와보았습니다. 수령님의 마음을 그토록 아프게 하고 수령님의 분격을 자아내게 한 그 잘난 집이라는것이 도대체 어떻게 생겨먹었는지 알아보고싶었기때문입니다.… 많은 세월이 흘렀지만 나는 그때 일이 잊혀지지 않습니다.》

비록 어둠속이였지만 김정일동지의 안광에서는 분노의 빛이 번뜩이는것 같았다.

《내가 그때 처음 이 집들을 봤을 때도 그렇고 그후에도 그렇고 오늘밤에 다시 와봐도 역시 마찬가지인데 이 집들은 볼수록 혐오감이 나고 보기가 역겹습니다. 동무들은 건축가들이니 아마 나보다 더할것입니다.

이 집을 설계한 사람도 온돌방에서 나서자랐을것이고 김치와 된장을 먹으면서 살아온 조선사람이겠는데 어떻게 되여 조선사람들의 생활습성과 기호에 전혀 맞지 않는 저따위 집을 설계하였는지 나는 도무지 리해되지 않습니다.》

《그건… 그때 사대주의에 쩌들대로 쩌든 건설상을 하던 김승하라는 자가 외국에서 제가 살던 주택을 찍은 사진까지 보여주면서 그대로 설계하라고 내리먹였습니다.》

림성욱은 재능있는 설계가였으며 자기의 옛 벗이였던 이미 작고한 심운호를 념두에 두고 말씀드리였다.

《소장동무는 이 집을 설계한 당사자를 알고있습니까?》

《저도 김광성동무도 잘 압니다. 평양대극장을 설계한 사람이였습니다. 그런데 김승하와 그 추종분자들이 직권을 가지고 강압적으로 내려먹여서 할수 없이 저런 집을 설계했습니다. 속대가 약해서 과오를 범했습니다.》

《속대가 약했다.… 그것이 문제입니다.》

그이의 음성은 여전히 근엄하게 울리였다.

《나는 이 거리를 볼 때마다 그때의 건설상도 저주하고 설계가도 저주했습니다. 이 거리가 수령님의 가슴에 너무나 아픈 상처를 남겼기때문입니다. 그런데 대극장설계가가 김승하의 강요에 굴복하여 이런 너절한 집을 짓다니… 어떤 경우에도 사람은 신념이 흔들려서는 안됩니다. 인테리인 경우에는 더욱 그러합니다. 속대가 약해선 안됩니다.》

이윽고 림성욱이 그이의 곁으로 다가섰다.

《친애하는 지도자동지, 이젠 그만 돌아가십시다.》

《돌아갑시다. 하지만 소장동무도 수령님께서 여기 사는 주민들때문에 근심이 많으시다는걸 알게 되였으니 오늘 밤 여기로 찾아온 내 심정이 리해될것입니다. 물론 앞으로 이런 집들이 다시는 생겨날수 없겠지만 이 집들을 그냥 두고서는 언제나 마음이 편할것 같지 못합니다.》

두팔을 가슴에 결으시고 생각에 잠겨 거니시던 김정일동지께서 그들앞으로 돌아와 조용히 말씀하시였다.

《이제는 돌아들 갑시다.》

그이께서는 곧 승용차쪽으로 향하시였다.

《래년도계획안에 대하여서는 우리 서로 좀 더 무르익혀가지고 다시 협의확정하도록 합시다. 며칠안으로 곽운필동무랑 관계자들이 다 모여서 계획안을 누르는 협의회를 가지자고 합니다.》

밤하늘에서 번개가 일더니 뒤이어 멀리서 다음은 가까이에서 우뢰소리가 울렸다. 아직은 그 전모를 가늠할수 없지만 불원간 건설에서 새로운 사변이 벌어질것임을 예고해주는듯 한 우뢰소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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