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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소설 전환의 년대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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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강산
댓글 0건 조회 3,268회 작성일 20-10-23 14: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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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림성욱은 신문과 함께 아들에게서 온 편지를 받았다.

… 그리운 아버지, 어머니, 오래동안 문안편지 한장 올리지 못해서 죄송합니다. 아마도 제가 이렇게 쓰면 아버지는 또 마음속으로 <녀석 별소릴 다 하는군. 무소식이 희소식이야.>라고 하시겠지요? 늘쌍 저를 엄하게 키우시던 아버지의 얼굴이 눈에 선합니다. 저한테는 이렇게 아버지의 변함없는 모습을 그려볼 때가 제일 기쁘답니다.

부모님께서 바라시는대로 군무에 충실하여 일당백전사로 되겠습니다.

저에 대해선 조금도 걱정하지 마십시오. 이제는 전사로서 제가 할바를 똑똑히 깨닫고있습니다.…

아버지, 평양에 휴가갔다온 우리 중대동무가 아주 희한한 소식을 가져왔어요. 주체사상탑을 건설한다고… 전 온밤을 거의 뜬눈으로 보냈어요. 가슴이 뛰여 잠을 잘수가 없었어요. 그 동무네 집이 바로 탑이 서는 근방이랍니다. 저는 아버님께서 역시 이 일에서 친애하는 지도자동지의 뜻을 받들어 큰몫을 담당하시리라 믿으면서도 제 자랑이 될가봐 동무들한테 그런 말은 못하고 그저 속으로만 자랑을 느낍니다. 평양의 창공높이 주체사상탑이 솟아오르리라는 생각만 해도 가슴이 부풀어오릅니다. 조국에 대한 생각을 더 깊이하게 하며 전연의 우리들이 과연 무엇을 지켜야 하는가를 더 뚜렷이 자각하게 됩니다. 저희들은 그 뜻깊은 건설공사에 직접 참가해서 마음껏 땀을 흘리고싶은 심정들입니다…

…여긴 벌써 선기가 난지 오랩니다. 아버지, 아무리 바쁘시더라도 밤에는 꼭 집에 들어가 쉬세요. 저까지 없으니 어머니는 얼마나 적적하시겠어요.… 이제부터 회답에서는 주체사상탑건설소식을 꼭꼭 적어보내주세요.… 아무쪼록 건강에 류의하십시오…

《여보, 이 녀석이 이젠 제법이요. 셈이 드는가보오. 남자란 군대밥을 먹어야 해.》

전쟁기간 외국에 류학을 가있다나니 군대생활을 못해본 그 아쉬움을 나이들어서도 버리지 못하는 림성욱이다.

《그 애가 어디 어린애라구 그래요?》

그러면서 안해는 두번이나 읽은 편지를 달래서 처음부터 다시금 찬찬히 훑어보는것이였다. 마치나 글줄들 사이사이에 배인 뜨거운 정까지 음미하는듯 이슬에 젖은 그의 눈은 사랑과 대견함이 어린 미소로 떨고있었다.

림성욱은 출근준비를 서둘렀다. 아들의 편지가 괜히 마음을 다급하게 만드는것 같기도 했다.

그는 그 무슨 형태도안을 속사한 종이장이며 계산지, 기술문헌의 골자를 적은 종이장들을 책상우에서 간종그려 사무용가방에 넣었다.

각종 자료에서 발취해낸 수자들과 도안들은 다 탑기초설계안을 결속짓기 위한데 필요한것이다. 건축가로서 구조설계에까지 이렇게 깊이 침투하지 않으면 안될 정도로 탑의 기초문제는 심각한 단계에 이르렀다.

이날 아침 기초설계안에 대한 최종심의가 건설지휘부에서 진행되였다.

림성욱은 두팔꿈치를 책상우에 올려놓고 앞에 차례로 놓인 긴걸상에 앉은 사람들을 바라보았다. 참가할 사람은 다 온셈이였다.

그런데 김광성만이 오지 않았다. 물론 그는 오늘 협의회에 참가하겠다는 의사표시가 없었다. 그래도 혹시나 하는 생각에 자주 출입문쪽을 살펴보게 되는것이였다.

그러나 그는 끝내 나타나지 않았다.

림성욱은 나직이 한숨을 내쉬고 좌중을 둘러보며 이렇게 선언하였다.

《오늘 이 협의회가 마지막인것만큼 다시한번 진지하게 토론해봅시다.》

진지하게… 이렇게 말한 림성욱자신에게도 이 말은 이상하게 들렸다. 그래 과연 적게 토론해봤단말인가?

유민호를 비롯한 적지 않은 사람들은 처음부터 이제 더 토론해보나마나 결론은 명백한데 더 론의할게 있느냐는듯 한 표정이다.

지난번 협의회때에는 시작되기 바쁘게 먼저 열이 올라서 제 주장을 내놓던 그들이 오늘은 처음부터 숫제 침묵만 지키는것이였다.

앞줄에 앉아있던 박광운이 피끗 강문혁을 돌아다보았다. 그들의 시선이 허공에서 부딪치며 가라앉으려는 방안의 공기에 그 어떤 새로운 불꽃을 튕기는상 싶었다. 적어도 림성욱이한테는 그렇게 생각되였다.

림성욱은 자기한테로 옮겨지는 문혁의 눈길을 피하면서 무엇을 찾기라도 하듯 책상우에 펼친 노트장에 시선을 주었다. 일찌기 이렇듯 힘겨운 자리에 앉아 본 일이 있는것 같지 않았다.

김광성이처럼 당적으로 지도할 위치에 있다면 차라리 실무가들한테 일임할수도 있으련만 림성욱이로서는 그럴수도 없는 처지이다.

그는 요즘 어느 나라 문헌에서 탑의 기초설계가 통판기초안의 원리와 비슷한걸 보았는데 특허설계여서 그런지 바닥에 깔린 천연암반의 암질에 대해서는 일언반구도 없었으며 또 고르롭지 못한 암반이 어떤 형태로 되여있는지도 밝혀놓지 않았다.

경사각도가 심한 암반을 그대로 리용하는것이 모험이라는 통판기초안 반대자들은 침강정기초안만이 만사람이 공인하는 절대적인 안정성을 가진다는것이다.

림성욱은 론의되는 통판기초안이 새로운것이며 탑건축의 구조설계에서 대담한 착상이고 비상히 훌륭한것임을 요새 수많은 문헌들을 연구하면서 깊이 파악하게 되였다. 하지만 다른 건축물에서 통판기초에 관여한적은 있으나 주체사상탑과 같은 큰 규모의 탑기초에서는 처음 맞다들리는 문제여서 쉬이 결론을 내릴수 없었다.

초기에 통판기초앞에 의혹을 품었던 림성욱은 많은 시간을 바쳐 기술문헌들과 자료들을 연구하고난 지금에는 통판기초안을 깊이 확신하고있었다.

그러나 림성욱은 소장으로서 자기의 견해를 서뿔리 내놓지 않았다. 그것은 그의 로숙한 사업방법이기도 하였다. 자기의 견해를 먼저 내놓으면 일부 사람들인 경우 그것을 마치 행정적인 결론처럼 받아들일수 있고 따라서 과학기술적인 론쟁이 활발해질수 없다고 여긴탓이였다.

그는 오늘도 역시 자기 견해를 앞세우지 않고 다른 사람들이 먼저 의견을 내놓게 하였다.

바야흐로 론의에 불이 달리기 시작할 때였다.

구조설계에서 중진으로 알려진 학사인 오 뭐라는 (림성욱은 얼른 그 이름이 생각나지 않았다.) 번대머리 중년사나이가 상반신을 걸상등받이에 젖히며 흥심없이 입을 열었다.

《뭐 이제 더 길게 토론해 볼 필요가 있겠습니까.》

여태 유민호와 함께 통판기초안을 부정해온 그는 이제 더 할 말이 있느냐는듯 녀자처럼 통통한 손으로 턱을 주물러대고있었다.

그리고는 자기의 좌우편을 휘둘러보며 빈정거리듯 말했다.

《많은 사람들이 통판기초안에 대하여 신뢰성이 없다고 하였는데 토론할 분이 더 없으면 마감으로 그 설계자한테나 언권을 주시지요.》

바로 그때 누군가 걸상을 뒤로 밀치면서 일어나는 사람이 있었다. 당사자인 강문혁이 일어서는줄 알고 모두들 뒤돌아보았다. 그런데 뜻밖에도 그가 앉은 긴걸상과 나란히 개별걸상에 앉아있던 건설대학 원하림교수가 자리에서 일어선것이였다. 그는 자세를 바로잡을새도 없이 석쉼한 목소리로 흥분해서 말했다.

《오윤환동무, 무슨 말을 그렇게 하오? 오동무는 통판기초안이 과반수의 지지를 받지 못했다고 했는데 그건 사실이요. 그러나 과학적진리는 다수가결에 의해 결정되는게 아니란걸 동무두 알거요. 여러분, 이런 말을 용서하시오만 설사 여기 모인 전체 성원이 반대한다고 해도 과학적진리는 진리대로 존재하는것입니다. 과학계에 이런 일이 한두번만 있었습니까? 난 지금 우리가 그런 경우에 처해있는것 같이 생각됩니다. 신중히 다시한번 자기들의 견해에 대해서 검토들을 해봐야 할 때라고 생각합니다.》

원하림이 강문혁의 통판기초안작성에 일정하게 관여하였다는것을 모르는 사람이 없었다. 그래서인지 원하림은 협의회 전기간 한번도 강문혁의 설계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표명한적이 없었다.

《지금 심사성원들 다수의 지지를 받고있는 침강정기초안은 구조학을 공부한 사람이면 누구나 내놓을수 있는, 이렇게 말하는걸 량해하시오만 그건 비창조적인 설계입니다. 통판기초안은 그것과는 달리 창조적인 탐구가 뚜렷한 설계안이라구 봅니다. 나두 여러모로 세계적인 판도에서 탑건축을 더듬어보았습니다. 한데 이번 통판기초안의 경우는 기념탑의 기관부분까지 포함하여 기초의 심도와 중량을 천연암반을 리용하여 담보할수 있는 설계를 완성했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한가지 론의될수 있다면 지하의 석회암암반의 경사로 인한 기울임문제인데 30m이상의 깊이에 형성된 암층이니만큼 걱정할 필요가 없다고 봅니다.

과학적으로 세워진 설계규정과 실측자료를 보아도 큰 면적의 기초는 일정한 정도로 침하가 제한될뿐아니라 지반의 성질에 거의 무관계한것으로 되여있습니다. 말하자면 기념탑의 기울임현상이 발생할 우려가 전혀 없다는것입니다. 여기에 그것을 실증해주는 자료가 있습니다.》

원하림박사가 앞상우의 가방에서 두세건의 두툼한 문건을 꺼내놓자 조용하던 좌석은 삽시에 술렁거리기 시작하였다.

로박사의 학술적인 론증에 힘을 얻은 림성욱은 비로소 허리를 펴고 걸상에 몸을 젖히였다. 그는 저도 모르게 안도의 숨을 내쉬였다.

일이 그쯤되자 문혁의 견해나 듣고 말겠다던 침강정기초안주장자들이 《절대적인 안전성》의 론리를 또다시 들고나와 잠시 협의회장은 수습하기 어렵게 소란스러워졌다.

《좀 조용들 하십시오.》

림성욱이 손을 들어 장내의 떠들썩한 분위기를 저지시키는데 유민호가 벌떡 일어났다.

《오늘 원하림선생님이… 귀중한 자료들을 제출하여 문혁동무의 통판기초안에 대한 불신이 얼마간 해소되였다고 생각합니다. 이건 대단히 기쁜 일입니다. 그런데 큰 면적의 기초에서는 지반의 성질에 관계없이 거의나 침하가 없다는 선생님의 말씀을 어떻게 믿어야 되겠는지요?》

원하림박사는 민호를 흘깃 바라보고나서 퉁명스럽게 대꾸했다.

《과학적으로 공인된 문제에 구태여 의문을 가질 필요가 있소? 설사 약간의 영향이 있다해도 공사기간 1개월안으로 침하가 끝나기때문에 얼마든지 방지할수 있소.》

《그런데 선생님… 외람된 말인지 모르겠지만 량해해주십시오. 여기는 그 어떤 론문의 독창성을 지지해주고 내세워주는 장소가 아니라 정치적으로 큰 의의를 가지는 기념비를 일떠세우기 위한 엄숙한 자리입니다. 지금 우리가 결정지어야 할 문제는 그 어떤 개인의 공명이나 명예나 사랑하는 제자의 재능에 대한 남다른 관점이나 호의와 같은 감정이 절대로 개입해서는 안될 심중한 문제입니다.》

《동문 정말…》

원하림은 자기를 뒤돌아보는 유민호의 멀쑥하고 랭랭한 얼굴을 어처구니없이 바라보고있었다.

《유민호동무.》 하고 림성욱이 한마디하였다.

《심사성원으로서 하나의 제안을 놓고 과학적론증을 한것이 어떻게 되여 어느 제자에 대한 편애로 되며 사사로운 감정의 개입으로 되오? 동무도 박사선생한테서 배운 제자가 아니요?》

림성욱의 목소리는 높지 않았으나 준절하였다.

한데 유민호는 《미안합니다. 제말이 과했다면 용서하십시오.》하더니 이번에는 림성욱소장이 아니라 강문혁이를 향해 말했다.

《문혁동무, 동문 알거요. 내가 동무에게 여러번 얘기한것처럼 목전의 문제가 너무나도 중요하기때문이란걸. 난 동무의 모험적인 발기를 어떻게 해석해야 할지 리해할수 없소. 여기서는 첫째도 둘째도 안전이요. 고르롭지 못한 암반을 까내고 기초를 들여앉히는것은 지하구조설계에서 가장 안전한 방법이란걸 동무도 알거요.》

강문혁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는 무엇에 떠박질리워 앞으로 나가려는 자신을 가까스로 제지하듯 앞의 걸상등받이를 틀어쥐고있다가 한참만에야 말문을 열었다.

《여러분들도 아다싶이 저는 기존방법에 매달릴수 없었습니다. … 저는 우리 실에 주체사상탑 구조설계과제가 떨어졌을 때 우선 사상정신적으로 종전의 자기보다 훨씬 비약해야겠다는 각오를 했습니다. 주체사상탑… 여기서 나는 인간에 대한 우리 당의 리상과 요구를 새롭게 보았습니다. 그 리상, 그 요구앞에서 나도 한 설계가로서, 인간으로서 자기의 힘을 느끼며 대담해지고싶었다는것입니다.》

《강문혁동무의 그 말은 옳다고 봅니다.》

유민호도 그 말에는 긍정하지 않을수 없는 모양이다. 그는 극력 여유있게 말하려고 애썼다.

《그렇습니다. 정치적으로 거대한 의의를 가진 이런 건설대상일수록 당적량심이외 다른 잡생각은 없어야 합니다. 개인의 공명으로 인한 그 어떤 실수도 허용될수 없습니다.

물론 자고로 과학이 실패와 곡절을 고임돌로 하여 발전해온건 사실입니다. 하지만 거듭 말하지만 이 공사가 우리 설계가들이 량심이나 담력을 시험하는 장소로 될수는 없지 않습니까?》

유민호의 목소리는 지어 절절하고 안타깝게 울리기까지 하였다.

바로 그때 출입문이 열리고 김광성이 들어섰다.

닫긴깃의 보위색옷을 입은 그는 옆구리에 얄팍한 쟈크가방을 끼고있었다.

그러지 않아도 김광성이를 마음속으로 기다리고있던 림성욱은 좌중을 둘러보며 《마침 중간휴식을 하려던 참인데 다들 밖에 나가 좀 쉽시다.》하고 말하였다. 그리고는 강문혁이만은 방에 남아있으라고 일렀다. 그리하여 방에는 세사람이 남게 되였다.

림성욱의 곁에 가 앉던 김광성이 림성욱이와 강문혁을 번갈아 바라보았다. 김광성은 이 방안에서 무슨 론의가 벌어졌는지를 어렵지 않게 짐작할수 있다는듯 대번에 강문혁이한테 이렇게 말했다.

《문혁동무, 잘 생각해보우. 여기가 세상에 다시 없는 주체사상탑을 건설하는 공사가 아니라면 우리도 동무의 기초안을 지체없이 내밀어주고싶소. 한데.》

《우리》라고 말하는 김광성의 얼굴을 흘깃 쳐다보는 림성욱은 그한테서 이제라도 어떤 지지와 긍정을 찾으려고 했던 자신이 허무하게 느껴졌다.

마지막기대마저 잃어버린 림성욱은 마음이 허전했으나 잠자코 있었다.

김광성이 안경알을 번뜩이며 여느때없이 열띤 목소리로 말했다.

《문혁동무, 리론과 실천에서는 차이가 난다는걸 동무도 알겠지. 건축과 건설에서는 더 심하게 나타난다는것두. 건축가인 내가 구조설계에 대해서는 잘 모른다고 할수도 있소. 한데 어찌겠소. 건재가 많이 들고 시공기일을 끌기는 하겠지만 보다 안전하게 침강정방법으로 나가는게 옳지 않겠소?》

그러자 긴 걸상에 앉았던 강문혁이 모임장소에서처럼 벌떡 일어났다.

《옳습니다. 비서동지, 바로 만년대계이기때문에 저도 그러는겁니다.》

김광성이 손바닥으로 책상을 소리나게 쳤다.

《이 동무가 정말, 동무 고집이 보통이 아니구만. 그래 고르롭지 못한 암반을 까내고 침강정기초를 하는것이 그래 위태위태하게 경사진 천연암반에 통판기초를 하는것보다 못하단말이요?》

강문혁은 그렇게 말하는 김광성이를 원망에 찬 눈으로 바라보았다.

허나 목소리는 강경하였다.

《비서동진 천연암반을 위태위태하게 보시는데 전 바로 그 천연암반을 리용하는것이 만년대계의 탑건설에 유리하다고 보았습니다.》

김광성은 손끝으로 안경을 올려밀며 상대방을 쏘아보다가 《동문 정말…》 하고는 머리를 설레설레 저었다.

강문혁이 김광성의 시선을 피해 고개를 외로 틀면서도 말을 계속했다.

《시공기일이 오래구… 아빠트 여러채분의 강재와 세멘트가 더 들어간다는것두 무시할수 없는 조건입니다.》

그러자 김광성이 뜻밖에도 소리를 내여 웃으며 말했다.

《설계가로서 응당 그런 타산도 있어야지. 하지만 문혁동무, 이 경우에는 제발 그 실무적인 타산을 하지 마오. 그런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되오. 그건 우리가 알아서 할 일이요.》

《네?… 비서동진… 너무합니다.》

자기의 말이 상대방한테 분명 모욕감을 주었다고 생각했는지 김광성은 《됐소, 됐소.》 하고 미안쩍은 미소를 띠우더니 림성욱이를 돌아보았다. 그한테서 어떤 구원의 손길이나 바라는듯이…

아닌게 아니라 김광성이 딱하게 되였다는것을 알면서도 림성욱은 무슨 말을 할수 없었다.

방안에는 잠시 침묵이 흘렀다.

림성욱은 책상우에 한팔굽을 세워짚은채 여전히 말이 없었다. 우선 문혁의 결단성있는 말에서 받아안은 충격이 어지간히 컸던것이다. 저 나이에 문혁이처럼 대바른 소리를 하면서 내가 살았던가 하는 왕청같은 자책감에 사로잡히기까지 했다. 일년 열두달 언제 한번 남한테 얼굴을 붉히는 일없이 늘 무엇인가 깊은 생각에 잠겨 말없이 지내던 젊은이가 저렇게도 주장이 견결할줄은 정말 몰랐다. 림성욱은 한생을 론쟁이 번다한 건축가들속에 살면서 어언간 머리가 희여졌지만 오늘에야 자기보다 삼십년이나 후배인 문혁이를 통해 과학자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새삼스럽게 알게 된것 같았다.

림성욱은 마침내 조용히 입을 열었다.

《비서동무, 오늘은 비서동무가 아무래도 당적인 결론을 해야겠는데…》

김광성은 고개를 약간 숙이고 중얼거리듯 말하였다.

《글쎄 저 동무의 통판기초안을 론문으로 제출한다면… 나도 심의자로서 찬성하겠는데… 한데 큰 정치성을 띠고있는 기념비건설이니 참. 우리도 밖에 나가서 바람을 좀 쐬고옵시다.》

결국 강문혁의 제안을 지지할수 없다는 뜻이였다. 김광성이 밖에 나갔으나 림성욱은 그냥 남아있었다. 그러니 과학적으로 정당성을 인정하면서도 새로운 제안을 버려야 한단말인가? 고심참담한 노력끝에 대담한 혁신안을 제기한 강문혁은 설계가로서 이제 어떤 길을 걸어야 하는가? 자칫하면 정신적불구자가 될것만 같고 그래서 만사를 불신하며 설계가들의 창조적본분에 회의심을 품고 살아갈수도 있지 않는가? 한 재능있는 설계가가 그렇게 되는데도 김광성이 이런 태도를 취해야 하는가? 김광성자신이 한생을 다 바쳐 건축을 열렬히 사랑했으며 다른 사람들한테도 부단히 탐구하고 창조할것을 요구해온 사람이였다. 그는 새로운것을 창조하려면 대담하고 모험도 두려워해서는 안된다고 주장해왔다. 한데 어제날의 그 김광성이 당일군이 된 오늘에 와서 달라졌단말이지.…

잠시 그런 생각에 잠겨있던 림성욱은 긴 걸상에 등을 붙이고 삐뚜름히 앉아있는 문혁에게 시선을 던지였다.

《문혁동무, 이리 좀 가까이 오오.》

강문혁이 천천히 일어나 그에게로 다가왔다.

《동문 어떻게 했으면 좋겠소?》

문혁은 말없이 서있었다. 림성욱은 그제야 문혁의 움푹 꺼져들어간 두눈을 보고 그도 장시간의 론쟁으로 하여 어지간히 신경이 날카로와졌음을 비로소 깨달았다.

《소장동지.》

문혁이가 안주머니에서 네겹으로 접은 종이를 꺼내여 그에게 주었다.

《지난 밤에 잠도 오지 않고 해서 좀 끄적거려본겁니다. 한번 봐주십시오.》

림성욱은 종이장을 펴들고 문혁을 흘끔 쳐다보았다.

《이건 뭐요?》

《글쎄…》

《동무가 시를 썼소?》

림성욱의 낯빛은 심중해졌다. 평시에 묻는 말에나 겨우 대답하던 토목설계가가 시를 썼다는것이 얼른 믿어지지 않았다.

《그게 시인지 어떤지는 저도 모르겠습니다. 그저 거기에 저의 마음을 솔직히 적었을뿐입니다.》

그러나 림성욱은 벌써 문혁의 말을 듣고있지 않았다. 시를 읽어본 그는 종이장을 도로 주며 움쭉 일어났다.

《알겠소, 알겠소, 동무의 심정을… 동무도 가서 푹 쉬오.》

림성욱은 뒤이어 자신이 한 말에 눈물이 핑 고여오르는것을 느끼며 창문가로 다가섰다.

대동강변에서는 늙은 수양버들이 세찬 강바람에도 떨어지지 않는 푸르른 잎사귀들을 거둬안고 이리저리 뒤척이고있었다. 협의회참가자들이 다시 방안으로 들어와 자리를 잡기 시작했다. 림성욱은 여전히 창가에 서있다가 제자리로 돌아와 앉았다. 협의회는 오늘로 결속 지을수 없다는것이 명백해졌다. 나머지시간에 차라리 래일로 예견했던 기단과 탑신의 구조설계에 대한 합평을 하는것이 어떻겠는지… 생각에 생각을 거듭한 끝에 림성욱은 탑기초안에 대해선 김정일동지께 사실대로 보고드리고 지도를 받는 길밖에 다른 길이 없다고 보았다.

일단 그렇게 결심하고나니 다소 마음이 가벼워지는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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