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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소설 총대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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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강산
댓글 0건 조회 4,373회 작성일 20-11-30 23:12

본문

  총서《불멸의 향도》

 

                    장 편 소 설

 

2009-05-04-U01.jpg

 

                                박    윤

 

 

( 제 14 회 )

 

 

제 3 장

 

3

 

서북쪽하늘에 무겁게 드리워있던 침침한 구름이 어느 사이에 산정우를 재빛세계로 덮어버렸다.

조선동해를 가까이에 낀 고산지대특유의 변덕스러운 날씨였다. 거센 바람이 골짜기를 따라 중대병영이 있는 산릉선으로 올리불자 유진성은 불시에 싸늘한 랭기를 느끼였다. 계절로는 봄이라 하지만 아직도 늦겨울의 마지막몸부림이 온몸을 오싹하게 만드는것이다.

김정일동지께서는 경사가 급한 산허리를 뭉텅 따내고 넓힌 중대마당가에 들어서시여 주위를 둘러보시였다.

《허. 제법 롱구장맛이 나누만. 우리 병사들이 이 산고지에 운동장을 다 만들다니. 정말 랑만가들이요.》

김정일동지께서는 중대장의 보고를 받으시고 만족해하시며 옹벽쪽으로 다가가시였다.

《휴식날이면 소대별 롱구경기로 산정이 떠들썩합니다. 저 건너편 녀성기관총수들도 경기를 구경한답니다.》

로영진의 자부심어린 목소리에 김정일동지께서는 실눈을 지으시고 골짜기아래를 내려다보시였다.

《중대장동무, 드세찬 병사들인데 롱구공이 저 아래로 굴러떨어지면 야단이겠구만.》

얼굴이 갱핏하여 눌러쓴 군모가 좀 커보이는 젊은 지휘관은 갑자기 긴장을 풀며 두손을 맞잡았다.

《예, 저 아래서 롱구공을 주어오는데 반시간은 걸립니다. 그래서 우린 경기때마다 배구를 잘하는 동무들을 한개 분대가량 이 옹벽아래 대기시키군 합니다.》

《흠, 기발한 생각이요. 그런데 중대장동무, 저 롱구대말이요. 저쪽 롱구대가 좀 낮아보여. 한 5cm정도 차이나는것 같구만. 앞으로 훌륭한 롱구선수도 나올수 있는 중대인데 롱구대규격이 틀리면 안되지.》

중대장과 긴 장대를 찾아든 병사들이 급히 달려갔다. 유진성도 호기심이 들어 그들을 뒤쫓아갔다. 사실 그가 보기에는 두 롱구대의 높이가 같아보였던것이다. 높이를 세심히 재던 중대장이 놀란 눈으로 유진성을 올려다보았다. 두 롱구대높이는 분명 5㎝ 남짓이 차이가 나는것이였다. 유진성은 흥분과 신비로움에 잠겨 얼굴이 온통 상기된 중대장의 어깨를 지그시 누르며 돌아섰다.

어찌 그것을 령장의 안광이 남보다 예리하고 투철해서라고만 보겠는가. 아니, 그보다도 병사들을 생각하시고 사랑하시는 그 뜨거운 심장의 눈이야말로 뭇사람들이 스쳐지나는 자그마한 현상까지도 어버이다운 애정으로 투시하여 이런 신비한 기적같은 일화를 만들어내는것이 아닐가.

유진성은 후더운 가슴을 붙안고 중대세목장쪽으로 서둘러 걸어갔다.

세목장은 넓고 해빛이 잘 비쳐들어 밝고 아담했다.

수행원들이 빙 둘러선 세목장안은 예상외로 조용했다. 유진성은 이상한 예감이 들어 사람들을 조심히 헤집고 앞으로 나갔다. 그는 그 자리에 못박힌듯 굳어지고말았다. 앞으로 더 나갈념을 못하고 물탕크앞에 무릎을 굽히고 앉으신 김정일동지를 보기만하였다. 김정일동지께서는 수도물이 쏟아져내리는 물탕크안에 한손을 잠그고계시였다.

무슨 깊은 생각에 잠기셨는지 아무 말씀없이 그냥 차거운 물탕크안에 손을 잠그신채 철철 넘쳐나는 맑은 물을 바라보신다. 물은 보기에도 선뜩하리만큼 차거워보였다. 그이의 손은 어느새 빨갛게 물들어버렸다.

물방울이 사정없이 튀여나 그이의 야전복자락과 세목장바닥을 흥건히 적셨다.

유진성은 좀자르다가 그이의 곁으로 다가갔다.

《장군님, 물이 찹니다.》

근심과 걱정에 젖은 갈린 목소리가 방안을 울렸으나 김정일동지께서는 그냥 명상에 잠기시여 쏟아지는 수도물에 손을 잠그고계시였다.

유진성은 가슴이 옥죄여들었다. 최고사령관동지께서는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계실가? 무슨 생각에 그리도 골몰하시기에 주위의 소리도 가늠하지 못하실가?

그이의 얼굴에는 추억과 사색, 고뇌의 빛이 어렴풋이 비껴있었다.

문득 김정일동지께서는 놀라신듯 얼굴을 돌리시였다.

《가만, 이자 뭐라고 했소?》

유진성은 마냥 달아오르는 뜨거운 눈길을 들었다.

《최고사령관동지, 물이 차다고 했습니다. 그러시다가…》

말끝을 맺지 못하는 유진성을 유심히 올려다보시던 김정일동지께서는 천천히 몸을 일으키시였다.

《허. 그래? 난 물이 차다는것을 조금도 느끼지 못했소.》

《?!…》

김정일동지께서는 밖으로 걸어나가시였다.

세찬 바람이 불어치자 두텁게 드리웠던 재빛구름 한끝이 열리면서 강렬한 해빛이 쏟아져내렸다. 그러자 자연은 갑자기 생기를 띠고 활기있게 술렁거리는것 같았다. 황백색산벼랑이며 협곡밑의 이깔숲들이 물기를 머금은채 설레이고 산새들이 날개들을 번쩍이며 창공을 가득 채운다.

김정일동지께서는 한동안 봄의 은근한 숨결을 가늠하시는듯 주위를 둘러보시다가 부관에게 몇마디 이르시고나서 중대식당쪽으로 향하시였다.

그이께서는 식당입구에 들어서시자 서둘러 뒤따라선 로영진장령을 돌아보시였다.

《부대장동무, 내 오늘 왔던김에 동무네 병사들에게 특식을 좀 해주려하오.》

《?!…》

젊은 장령이 뜻밖의 일에 당황하여 머뭇거리자 그이께서는 미소를 지으시며 뜬김이 서린 식당안을 둘러보시였다.

김정일동지께서는 식당근무를 서는 병사들의 인사를 받으시고나서 부뚜막쪽으로 걸어가시였다. 커다란 가마에서 김이 문문 피여나고있었다.

《마침 물이 끓고있구만. 부관동무, 어서 지함의 만두를 가마에 넣소. 만두가 풀어지지 않게 살짝 익혀야하오. 응, 조심히!》

김정일동지께서는 지함을 눈여겨보시다가 리평해쪽으로 돌아서시였다.

《아무래도 만두가 량이 좀 모자랄것 같구만. 이 주변의 녀성기관총중대 병사들에게도 맛을 좀 보여야지 늘 롱구경기만 구경시킬수 없지. 우리가 병사들을 위해 만두를 좀 빚어보기요.》

김정일동지께서는 야전복팔소매를 걷어붙이시며 활짝 웃으시였다.

《사령관과 유진성동무도 어서 자리를 잡소. 어디 동무네 솜씨도 봅시다.

어떻소? 사령관동무는 만두빚는걸 다 잊어버린게 아니요? 제손으로 해먹어야 맛이 더 있는 법이요. 자, 그럼 다들 앉소. 먼저 밀가루반죽부터 하기요.》

김정일동지께서는 쩔쩔매는 유진성과 리평해를 데리고앉아 버치에다 하얀 밀가루를 쏟고 반죽을 시작하게 하시였다.

리평해가 물을 솔금솔금 두며 가루를 이겨나가는데 어찌나 솜씨가 잽싸고 빠른지 순식간에 반죽덩어리가 생겨난다.

김정일동지께서는 병사들과 함께 땀을 흘리며 군복자락에 흰 밀가루를 묻혀가지고 돌아가는 유진성을 바라보시였다.

그이께서는 잠시 만두를 빚는 모습을 지켜보시다가 팔소매로 이마의 땀을 훔치시였다.

《아까말이요. 정말 난 손이 찬줄을 느끼지 못했소.》

김정일동지의 새삼스러운 말씀에 유진성은 얼굴을 들었다.

김정일동지의 눈가에는 따뜻한 추억과 사색이 비껴 얼른거렸다.

《?!…》

《오히려 속이 달아올라 눈물을 보일번 했소. 콸콸 쏟아지는 수도물을 보니 병사들을 위해 년로하신 몸으로 이 높은 고지우에 오르셨던 우리 수령님생각때문이였소. 지금은 로영진동무네가 길을 낼 생각을 다했지만 그때는 차길이 없어 수령님께서 몸소 걸어오르시였소. 그런데 초소에 오신 수령님께 영접보고를 올리던 구분대장이 그만 목이 메여버리고말았소. 그날 수령님께서는 손발이 저리시여 지팽이를 짚고계셨단말이요.

수령님께서는 눈물을 머금은 구분대장을 보시며 미소를 지으시였소.

〈허허. 이 지팽이가 동무를 울렸구만. 내가 오늘 좀 식을 내느라고 지팽이를 짚었는데 뭘 그러나.〉 

수령님께서는 부관에게 지팽이를 넘겨주시였소.

〈이걸 아무래도 치워야겠소. 병사들이 보면 또 울겠소. 그러지 않아도 물배낭을 지고 고생하는 우리 병사들인데… 자, 다들 이리 오시오. 이 고지우의 병사들이 물고생을 안하게 방안을 토의합시다. 올라오며 보니 돈이 좀 들더래도 계단식양수장을 하나 놔야할것 같애. 병사들을 위해 뭘 아낄게 있나….〉

동무들, 저 수도물은 이렇게되여 중대의 세목장에까지 쏟아지게 된거요.

정말 우리 수령님이시야말로 이 세상에서 병사들을 제일로 사랑하시는 친근한 어버이이시였소.》

《!…》

김정일동지께서는 잠시 말씀을 끊으시고 장령들이 만든 만두를 바라보시였다.

끝이 안으로 보기좋게 오무라든 알맞춤한 크기의 만두들이 상우에 가지런히 놓이기 시작했다. 곁에서 일손을 돕고있던 중대장과 사관장이 생각깊은 눈길로 그 사랑의 만두를 뚫어지게 지켜보고있다.

《그날 수령님께서는 바로 이 중대식당에 들리시여 병사들과 함께 소박한 점심식사를 나누시였소. 수령님께서 병사들에게 무슨 음식이 제일 그리우냐고 물으셨는데 산골내기 어린 전사가 만두소리를 했거든.

내 그게 지금까지 마음에 걸려 오늘 만두를 가져온거요.…》

《!…》

유진성은 숨을 제대로 쉬지 못하며 눈길을 내리깔았다. 위인들의 거창한 사랑의 세계, 인정의 세계가 너무도 가깝게, 그토록 벅차게, 한없이 뜨겁게 가슴을 치기때문이였다.

병사들에 대한 위대한 백두의 령장들, 위대한 최고사령관들의 그 헌신적인 복무정신이 이 순간 그의 가슴을 세차게 두드리며 격정에 젖었던 어제와 오늘에 대하여 그리고 보다 휘황한 래일에 대하여 확신하게 하는것이다.

아니, 이것은 결코 놀라운 충격도 새로운 발견도 아니였다.

인간은 환희와 신비한 감동속에 늘 잠겨있다면 그것을 평범한것으로 감수하기마련이다. 유진성은 눈물진 시선으로 창밖의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하지만 위대한 령장을 몸가까이 모시면서 그 불멸의 혁명실록의 나날들의 직접적인 산 증견자로 순간순간을 맞고보내는 자신은 또 얼마나 행복한 인간인가.

야전승용차가 고지를 내리기 시작하자 김정일동지께서는 만세의 함성을 터치며 따라나서는 병사들에게 손을 흔드시였다. 병사들에게 만두국을 먹이시고 다정히 기념사진을 찍어주시고 쌍안경이며 기관총, 자동보총을 안겨주시고 떠나시는 길이였으나 그이께서는 무엇인가 더 주지 못하고 가는것이 아쉬우신듯 차창에서 시선을 떼지 못하시였다. 야전승용차는 최전선을 가까이 낀채 협곡과 산길을 따라 쉬임없이 달렸다. 벌써 오후해가 저물고있었다.

눈석임물을 뒤집어쓴 야전승용차가 철령기슭에 이를 때까지 김정일동지께서는 아무 말씀이 없이 차창밖의 험준한 산발들을 바라보시였다.

굽인돌이를 지날 때마다 푸른 바늘잎나무들이 듬성듬성 서있는 산벼랑들과 양지쪽언덕들에 연분홍빛갈 같은것이 점점이 붉게 타며 시선을 끈다.

철령마루부근에 이르자 야전승용차가 멈춰섰다.

김정일동지께서는 차에서 내리시였다. 그이께서는 한손을 허리에 짚으시고 먼 산발들을 이윽토록 부감하시였다.

령밑 협곡에서 철령특유의 골바람이 불어와 그이의 굽실굽실한 머리칼들을 흩날렸다. 그이께서는 눈을 쪼프리시고 한걸음 더 내짚으신채 먼 기슭으로 시선을 돌리시였다. 겨우내 단조로운 회검색으로 우울한 잠에 취해있던 산천이 한순간 갑자기 눈을 뜬듯 생기가 흐르고 대지에는 보라색언덕들이 물기에 젖어 번들거리고 재빛숲들은 더 색조가 진해져 금시 푸른빛으로 물들것 같다. 그 봄의 미묘한 서곡인듯 연분홍점들이 여기저기 붉게 타올라 보는 가슴을 야릇하게 찌른다. 아직도 음울한 랭기가 흐르는 협곡의 음달들에는 잔설이 잔뜩 웅크리고있어 정신을 번쩍 들게 하고 겨울과 봄의 줄기찬 교차를 실감하게 한다. 그것, 보라빛산발들과 부푼 대지, 분홍빛갈들과 백설, 석양이 비낀 철령의 창공은 이 순간 아름다운 조화를 이루어 가슴속에 이름못할 짜릿한 환희를 솟음치게 했다.

《참, 철령은 볼수록 아름답소!》

김정일동지께서는 장미빛채광이 비껴간 하늘로 눈부신 나래를 털며 날아예는 산새들을 올려다보시며 조용히 말씀하시였다. 유진성도 고개를 들어 깃을 찾아 분주히 돌아치는 메새들을 신기한듯 바라보았다.

《최고사령관동지, 이 철령에 진달래가 폈습니다.》

김정일동지께서는 명상에서 깨여나시여 리평해를 돌아보시였다.

《아까부터 눈여겨봤는데, 벌써 진달래라… 참, 놀라운 일이요.》

《원래 진달래는 눈석이가 한물 진뒤 핀다는데 저도 이 고장에서 처음 목격합니다.》

리평해는 우선우선한 표정을 짓고 김정일동지께 진달래꽃숲을 가리켜드리였다.

김정일동지께서는 꽃숲을 찬찬히 바라보시다가 말씀하시였다.

《정말 아름답소. 진달래는… 우리 수령님께서 사랑하시던 꽃이였소.…

수령님께서는 철령을 회상하실 때면 늘 진달래를 상기하시군 했소. 진달래와 철쭉이 많아 철령인지도 모르겠다고 웃으시군 하시였소.》

유진성은 향기진한 꽃을 바라보고계시는 최고사령관동지의 모습을 우러르며 마음을 진정하지 못하고있었다.

한떨기의 꽃을 봐도 늘 어버이수령님을 그리시는 장군님의 그 충정의 세계에 머리가 숙어졌다.

이윽고 철령을 내린 야전승용차는 병사들을 찾아서 또다시 먼 행군길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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