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편소설 전환의 년대 28 > 통일게시판

본문 바로가기
사이트 내 전체검색

통일게시판

장편소설 전환의 년대 28

페이지 정보

profile_image
작성자 강산
댓글 0건 조회 4,138회 작성일 20-10-29 08:46

본문

20201018225421_5f3c8938218bdca683729de3ac58c991_ems7.jpg

2

 

매개 가정에는 그나름으로 잊어서는 안될 뜻깊은 날이 있다. 그것은 어느 한 식구의 생신날이거나 사랑을 맺은 날일수도 있으며 굉장한 표창이나 영예를 받아안은 경사스러운 날일수도 있다.

미영이에게는 평양에 와서 맞게 되는 아버지의 생일날이 그러한 날이였다. 해마다 동지무렵의 그날을 맞을때면 그는 쓸쓸한 심정으로 인생중년기에 세상을 떠난 아버지를 추억하군 했었다. 하지만 이해의 아버지의 생일날은 그전과 달랐다. 아버지가 살아계셨더라면 틀림없이 받았을 소생의 별을 자식들이 받아안고 처음 맞이하는 생일날이였다. 그러므로 이날을 앞둔 이즈음 미영은 이전처럼 쓸쓸한 심경속에 잠겨있은것이 아니라 자기에게 맡겨진 설계과제를 성과적으로 수행하여야 한다는 오직 그 하나의 열망에 불타고있었다.

(아버지의 생일날까지는 친애하는 지도자동지께서 친히 맡겨주신 주택설계과제를 기어이 마무리지으리라!)

미영은 동생들한테다 집살림을 떠맡기다싶이 하고 설계실에서 침식을 하면서 불철주야로 마지막돌격전투를 벌렸었다. 미영의 심정을 알게 된 미옥이와 철남은 저들끼리 밥을 지어가지고는 끼니마다 식사를 날라주군 하였다. 미영에게 적극 방조를 주군 하던 림성욱이도 때로는 이 기특한 어린이들과 맞다들 때가 있었다. 그런 날이면 미옥이와 철남이한테 집안의 살림형편을 물어보군 하였다. 대상책임자인 동시에 담당설계자인 미영이가 소장의 각별한 관심속에 날라다주는 밥을 먹으면서 밤을 패다싶이 하는것을 본 구조, 전기시설, 위생, 난방 등 각 부문 담당설계원들도 그에 보조를 맞추어 밤낮을 이어가며 작도에 전념하였다. 그리하여 미영이네가 담당한 30층초고층주택설계는 사업소에서 제정해준 년말보다 열흘나마 앞당겨완성될수 있었으며 그 이튿날로 심의에 통과되여 시공자들의 손으로 넘어갔다.

설계가 시공측에 넘어간 날은 설계에 참가한 일곱명의 성원들에게 있어서 공동의 명절과 같이 경사스러운 날이였다. 미영이로서는 그토록 기쁜날 자기를 도와준 설계원들에게 무어라고 감사를 표했으면 좋을지 몰랐다. 하지만 앞으로 최종적인 평가가 내려지기전에 모여앉는다는것도 경망스러운것으로 생각되여 아예 입밖에 내지 않았다. 미영은 동생들과 함께 조용히 아버지의 사진앞에 마주 앉고싶었다.

미영은 여러날만에 집으로 향하였다. 도중에 꽃방에 들려 국화꽃 한묶음을 사들었다. 아직 초저녁때였다. 미영은 마음이 급해져 계단을 두개씩 짚어 집앞에 이르렀다.

문이 열리는 소리를 듣고 부엌과 아래방에서 미옥이와 철남이가 뛰여나왔다. 꽃묶음을 받아든 동생들은 여느때없이 환하고 예뻐보이는 미영이의 얼굴에서 승리자의 환희를 어렵지 않게 알아보았다.

《언니가 설계를 끝마쳤구나!》

미옥이가 생글 웃으며 좋아서 어쩔줄 몰라했다. 능금같은 볼에 보조개가 패였다.

《네가 어떻게 아니?》

《언니얼굴에 다 씌여있는걸 뭐.》

《뭐라구 말이냐?》

《이상 끝!》

미옥이대신 철남이가 큰소리로 웨쳤다.

《누나, 내말 맞지?》

《그래, 맞았어. 너희들이 그새 수고많았다.》

미영은 두 동생의 머리를 량팔에 그러안았다.

《그렇지만 좀 더 수고해줘야겠다. 래일부터는 내가 당분간 건설장에 나가 붙어있어야 돼. 그래도 일없지?》

동생들은 입을 모아 걱정말라고, 밥은 자기들이 날라다주겠다고 하였다.

《밥은 이제부터 안날라와도 돼. 현장식당에서 먹겠으니까… 자, 방에 들어가자.》

미영은 국화꽃을 꽃병에 꽂아놓고 액틀에 넣은채 간수해두었던 아버지의 사진을 책상우에 세워놓았다. 어머니는 그것이 미영이가 다섯살때 찍은 사진이라고 하였다. 아버지는 앞자락에 여섯개의 단추가 달린 구식양복차림이였다. 기름을 발라 왼가리마를 타서 단정하게 빗어넘긴 머리, 무릎우에 얹은 한손, 그 손에 틀어쥐고있는 굵다란 의문부호같이 생긴 파이프… 여러모로 지식인다운 체취가 풍기는 사진이였다.

평양에 올라와서 처음 꺼내놓는 사진이다. 그러니 오래간만에 아버지를 만나보는셈이다. 아버지의 모습을 대할 때면 언제나 눈물부터 앞서군 하던 미영이였지만 오늘은 마음속으로부터 저절로 피여오르는 미소를 금할길 없었다.

(오늘은 아버지앞에서 울지 않겠어요. 제가 웃어도 나무람하지 말아요. 무슨 일이 생겼는지 아신다면 아버지는 춤을 출거예요. 아버지가 생전에 고치지 못했던 그 거리의 집을 하나 크게 제가 완성했어요. 아버지의 유고에서 형태에 변형을 가하고 높이도 두배나마 높여 초고층으로 늘였어요. 아버지가 초안잡았던 호화주택설계를 발전시켰다고 할가요.…)

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미영은 아버지사진앞에서 일어났다. 함경도내기의 인민반장아주머니가 자기네가 담근 깍두기를 맛보라 하면서 한사발이나 들고왔고 또 상점에서 인민반으로 공급되여 나온 물고기전표도 주고갔다. 드살스럽게 생기고 말투가 거칠었지만 그가 만든 젓갈품이나 김치는 류달리 맛있었고 인정 또한 지내볼수록 여간 깊지 않았다. 미영은 옷을 갈아입고 부엌으로 나갔다. 또다시 문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둔탁하고 늘어지게 두드리는 소리였다.

(누구일가?)

미영은 출입문을 빠끔히 열고 복도를 내다보았다. 뜻밖에도 문혁인데 웬 비닐주머니와 네모길죽한 마분지곽을 그러안고 있어서 아마 팔굽으로 문을 두드린 모양이였다.

《어떻게 우리 집엘 다?… 어서 들어오세요.》

《이웃에 온지 이젠 퍼그나 됐는데 한번도 와보지 못해서?》

문혁은 다소 어줍어하며 안으로 들어왔다. 그렇지만 지난번에 식량공급소와 탑건설장에서 만났을 때와는 달리 안색은 퍼그나 밝았다. 아래간의 앉은뱅이책상에 마주앉아 동화책을 보던 철남이 얼른 일어나 허리굽혀 인사를 하자 문혁은 빙그레 웃으며 말을 했다.

《네가 다람쥐를 기른다는 철남이구나.… 옛다, 이건 너한테 선사하는거야.》

철남은 그가 내미는 비닐주머니를 얼결에 받아안으며 물었다.

《이건 뭐예요? 아저씨.》

《도토리다. 네가 다람쥐먹이때문에 속상해한다지?》

철남은 대뜸 입이 함박만해졌다.

《히야! 정말 좋구나. 전번에 구두를 수리하는 할아버지가 내 다람쥐를 보고 도토리를 구해주마 하더니 그 할아버지가 보낸거나요?》

《그래, 그 할아버지가 보낸게다. 네가 황주에 두고온 북슬개를 그리워 하더라면서 이젠 그것대신 고운 얼룩고양이를 한마리 얻어다주겠다고 하더구나.》

《아저씬 그 할아버지하구 같이 사나요?》

《그렇다. 내가 아들구실을 제대로 못하는 그 집 아들이다.》

문혁은 롱말을 하며 멋적게 웃었다. 철남이는 너무도 좋은 나머지 고맙다는 인사말조차 잊고 베란다로 통하는 문밖으로 나가더니 다람쥐창을 들고 다시 들어왔다.

《촌에서 가지고 온 도토리가 다 떨어져서 요새 요놈은 콩이랑 밤이랑 맨 그런것만 먹었어요. 한데 참 이상해요. 다람쥐가 도토리를 더 좋아하는게.》

철남이는 도토리를 장안에 넣어주었다. 아닌게 아니라 다람쥐는 지체없이 도토리를 까기 시작했다.

《난 쌀자루를 문혁동무의 집에 가져가기전까지는 친애하는 지도자동지를 모시고 유람선을 함께 탔던 분이 문혁동무의 아버님이란걸 몰랐어요.》

미영이는 다람쥐장에서 문혁에게로 눈길을 돌리며 말하였다.

《우리 아버지도 그러시더구만. 친애하는 지도자동지를 모시고 배를 탔던 처녀가 쌀자루를 가져왔길래 웬일인가 했더니 우리 아빠트에 촌에서 새로 이사해온 처녀더라고 하면서 미영동무에 대해서 이것저것 묻지 않겠소. 그리구 같은 대학에도 다녔겠다, 지금은 같은 설계사업소에 다니는데 왜 그 집에 다니지 않느냐고… 한데 나두 그사이에야 어디 찾아올 경황이 있었소?》

《오늘은 무슨 바람이 불어서 이렇게 왔어요?》

《감사의 인사를 드리려…》

《녜? 무슨 감사?…》

《아니 그저 좀…》

《제가 감사받아야 할 일이 뭐가 있어요?》

미영은 의문보다 어째선지 즐거운 마음이 앞섰다.

《여하튼 이것두 마저 받소. 뭐 변변치는 않지만…》

문혁은 마분지곽을 열고 그안에서 하얀 석고조각상을 들어냈다. 금강산 상팔담에 내려와 미역을 감군 하였다는 전설적인 팔선녀중의 한 선녀를 형상한 조각이였다. 다람쥐한테 정신이 팔려있던 철남이와 부엌에서 동자질을 하던 미옥이마저 문혁이가 내놓은 까닭 모를 선물에 호기심이 나서 고개를 갸웃이 하고 방안을 들여다보았다.

《매력이 있군요. 그런데 이 선녀가 행선지를 삭갈린게 아닌가요?》

미영은 여전히 의혹이 풀리지 않았다. 그러자 문혁은 얼굴에서 어줍은 기색을 날려버리고 직방 털어놓고 말하는것이였다.

《나는 오늘에야 소장동지한테서 미영동무가 그동안 얼마나 애태웠는가를 알았소. 한밤중에 원하림선생님을 찾아가 안타까이 호소했다더구만. 난 이번에 소장동지에 대해서도 새로 알게 된바가 많소. 친애하는 지도자동지앞에서 내 설계가 부결당할 형편에 놓인 내막을 말씀드린 사람은 소장동지였더구만. 물론 원하림선생도 많은 수고를 하시구… 미영동무, 인사가 늦어서 안됐소. 정말 고맙소.》

문혁의 말은 진정에 차있었다. 웬일인지 미영은 얼굴이 달아올랐다. 귀중한 혁신안이 부결당하고 무시 당할것만 같아 너무나 안타까운 나머지 원하림박사를 찾아가기까지 했지만 당자인 강문혁에게서 이런 인사를 받게 되니 어째선지 이전보다 그가 훨씬 더 친근하게 느껴지는것이였다. 물론 미영은 박사에게 한 자기의 하소연이 그렇게도 빠르게, 그렇게도 극적으로 친애하는 지도자동지께 보고되리라고는 짐작도 못했었다. 그래서 미영은 한편으로 지금 자기가 당치 않은 인사를 받은것 같아 옹색하고 송구스런 심정이기도 했다.

미영은 지난밤에 있었던 사실을 비로소 알고 감동에 겨워 두손을 모아 가슴우에 얹었다.

《그랬군요.… 문혁동무, 축하해요. 친애하는 지도자동지의 그 사랑에 우리 다같이… 우린 정말 행복한 세대예요.》

《그렇소, 그렇소.》

미영의 마음은 그냥 하늘을 날으는것만 같았다. 얼마후 문혁이가 자기 집으로 돌아간 다음에도 미영은 한동안 일손을 잡지 못하였다. 어쩌면 오늘은 이다지도 크나큰 기쁨이 겹쳐들가? 속담에 복은 쌍으로 오는 법 없고 화는 외로 오는 법이 없다고 하였지만 미영이에게는 복이 하루사이에 세쌍으로 굴러든셈이다. 자기가 하던 설계의 완결, 선녀조각상과 함께 가슴에 안겨든 문혁의 따뜻한 정 그리고 문혁이 그리도 애타하던 통판기초안이 성사되리라는 확고한 전망도… 미영은 방안에서 괜히 서성거리다가 앉은뱅이책상우에 올려놓은 조각상과 마주앉았다. 백옥같이 새하얀 선녀의 매혹적인 자태를 넋없이 바라보고있던 그의 머리속으로 몽롱한 추억의 안개가 그림자처럼 얼핏 스쳐지나갔다.

오래전에 유민호가 자기에게 선사한적이 있는 명상에 잠긴 미인의 조각상이 상기된것이다. 선녀상과 미인, 둘 다 녀인상이다. 이것은 우연한 일치라고 할수 없을것이다.

이미 황주의 룡소에 영원히 수장되여 버린 미인상과 지금 자기앞에 새로 세워진 선녀상은 그것을 들고온 동기부터가 완전히 다르고 사람들도 전혀 비슷한 점이라군 없는 판판 다른 사람이 아닌가!

(아마 너는 내곁에 영원히 같이 있게 될거야.)

미영은 선녀상을 들어 볼에 대고 속으로 혼자 속살거렸다.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서비스이용약관 모바일 버전으로 보기 상단으로


Copyright © 2010 - 2023 www.hanseattle1.com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