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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소설 전환의 년대 40 (마지막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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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강산
댓글 0건 조회 2,199회 작성일 20-11-11 1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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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여 력사적인 당 제6차대회가 눈앞에 박두해왔다.

김정일동지께서는 지난밤도 당대회준비사업을 결속짓느라 당중앙위원회 일군들과 함께 꼬박 새우고 새날이 밝자 집무실을 나서시였다. 며칠사이에 몰라보게 축가신 그이의 신색이 념려되여 잠간만이라도 휴식할것을 권고하던 책임부관이 거의 울상이 되여 김정일동지께서 들고나오시는 서류가방을 받아들었다. 활달하신 걸음으로 청사마당에 나서신 김정일동지께서는 자신의 차에 부관을 태우시면서 오래간만에 평양시구경이나 하자고 밝은 음성으로 말씀하시였다. 그이의 서류가방에 넘쳐난 문건의 부피만 보아도 한가하게 평양구경을 떠나시는 걸음이 아니라는것이 확연해서 부관은 어리둥절한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그사이 승용차는 당중앙위원회구내를 벗어나 아침해살이 차넘치는 거리로 조용히 달리였다.

길옆의 고층주택들과 상점, 식당들에 각종 장식간판들이 울긋불긋 나붙고 무궤도전차선로의 둥근 기둥들에는 붉은색바탕의 당기발이 꽂히여 평양은 벌써 명절일색으로 단장되였다. 천리마거리의 넓다란 대도로를 따라 천천히 달리는 승용차의 차창에 거대한 《스키모》가 비쳐들었다. 올봄에 착공하여 벌써 골조작업을 마친 빙상관이였다. 역광장에 이르신 그이께서는 잠간 창광거리에도 들려보자고 하시였다.

사흘전에 있은 준공식때 매 건물의 외형, 외장색갈, 내부구조까지 자세히 돌아보신 수령님께서 몹시 기뻐하시던 모습이 떠올라 그냥 지나쳐가실수 없었다. 그날 일군들은 년로하신 수령님께 차를 타고 창광거리를 돌아보실것을 권고했으나 수령님께서는 이 좋은 날 무엇때문에 차안에 들어앉겠는가고 하시며 퍼그나 젊어지신듯 팔을 내저으며 정력적으로 걸음을 옮기시면서 설명을 들으시다가 이렇게 말씀하시였다.

《전후에… 어느 추운 겨울날 새벽에 이 거리에 나왔댔지. 한데 그게 어디쯤 되는지 못알아보겠구만… 변했소. 많이 변했소.》

수령님께서 뻬치까대신 온돌이라도 놓아주자고 하시던 그 륜환선거리의 형체는 그 어디에도 없다.

《동무들, 수고했소. 난 대만족이요.》

수령님께서는 너무도 기쁘시여 기념촬영장에서 림성욱이며 김광성, 곽운필들만이 아니라 남정기까지 친히 불러주시며 그들모두를 자신의 옆자리에 가까이 앉혀주시였다.…

김정일동지께서는 차머리를 돌려 다시금 승리거리로 나서시였다. 어느덧 가을빛이 짙어가는 대동강기슭에 하늘을 떠받들고 완공에 가까운 주체사상탑이 거연히 솟아있었다. 그이의 눈앞에는 평양산원의 불밝은 창문들이며 황홀한 보석주단도 보이는듯싶으시였다. 인민대학습당의 합각지붕들은 남산재우에서 푸른 하늘로 솟구치며 그 거대한 깃을 퍼덕이는것 같았다.

《부관동무, 이젠 모란봉에 올라가서 평양시를 다시한번 부감해봅시다.》

김정일동지께서는 오늘 정말로 평양시내를 구경하려고 떠난것 같으시였다. 승용차는 잠시후 모란봉길로 올라가다가 을밀대앞에서 멎어섰다. 그이께서는 차에서 내리시였다. 인적없는 포도우에 새벽이슬이 내리고 멀리 문수벌 한끝에서는 붉은 태양이 불끈 솟아오르고있었다. 차넘치는 해살을 휘감고 평양은 기운차게 솟구쳐 일떠서는듯… 전혀 새로운 수도의 모습으로 부각되여 장엄하게 번쩍거리고있었다.

《책임부관동무, 저걸 보시오. 우리 평양이 얼마나 많이 달라졌습니까. 이제는 우리가 새로 건설한 주체사상탑과 개선문, 인민대학습당, 창광거리, 빙상관만 보고도 평양이 어떤 도시인가를 알수 있게 되였습니다. 이제야말로 평양이 인민이 주인으로 나라를 다스리는 주체조국의 수도, 김일성동지의 도시로 되였습니다. 다시말해서 인민왕도가 됐습니다! 이제는 수령님께서 바라시는대로 당대회를 맞게 되였습니다.》

김정일동지께서는 뜨거운 열정이 어린 음성으로 말씀하시였다.

《이젠 내려갑시다.》

김정일동지께서는 승용차를 타고 모란봉에서 내려오시자 곧 금수산의사당으로 향하시였다. 당대회준비사업이 끝났다는 보고를 어버이수령님께 드리려는것이였다.

 

어느덧 1982년의 봄빛도 바야흐로 짙어가고있었다. 먼 산, 가까운 산, 그 어디에나 파릇파릇 새싹이 움트기 시작한게 엊그제같은데 만수대언덕길의 살구나무들에는 보라빛 꽃망울들이 터질듯이 부풀어올랐다. 해마다 기화요초 우거진 꽃계절이 오면 꽃에 관심하는것은 당연한 일이라고 하겠다. 하지만 김정일동지의 정력적인 령도로 수도의 중심부에 대화원을 이룬 기념비적건축물들은 어버이수령님의 탄생일을 민족최대의 경사로 맞이하는 이해 봄을 그 무엇보다도 화려하게 장식해주었다.

4월초 남산재우의 인민대학습당이 배움의 대문을 열어 우리 인민은 또다시 크나큰 은정과 복을 받아안게 되였다. 련이어 현대적인 빙상관이 개관되고 수령님의 조국광복위업을 후손만대 길이 전할 개선문제막이 성대히 거행되였다.

4월 15일, 명절 당일에는 유서깊은 대동강반에 우뚝 솟은 주체사상탑 제막식이 열리여 수령님의 탄생일을 기념하는 뜻깊은 행사의 최고절정을 이루었다.

이날아침 대동강의 량켠 대안과 유보도에는 20만명의 평양시민들이 모여와 인파를 이루고 제막의 순간을 초조히 기다리였다.

드디여 오전 10시, 남산재우에 새로 거연히 일떠선 인민대학습당의 종시계가 뗑뗑 울리며 제막의 시각을 알려주었다. 제야의 종소리마냥 멀리 평양의 하늘가로 은은히 울려퍼지는 그 장중한 음향에 맞추어 제막사가 랑독된 후였다.

대동강반에 요란히 울려퍼지는 환영곡과 함께 만세의 폭풍같은 함성이 터져오르고 꽃물결이 세차게 파도쳐 설레였다.

왕년의 청년장군, 《백두산 호랑이》로 일제의 간담을 서늘케 한 김일성동지께서 장구한 세월 주체의 기치를 휘날리며 잃었던 내 나라를 찾아주시고 우리 인민을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인민으로 높이 추켜올리시느라 한평생을 바치신데 대한 감사의 웨침, 환호성은 하늘땅을 메웠다.

꾸르릉 꾸르릉 지심을 울리며 축포가 터져올랐다. 아울러 손에손에 들었던 고무풍선이 떠오르고 수천마리의 비둘기들이 하늘높이 날아올라 주체사상탑 상공에서 감돌 때 사람들은 감격에 목이 메여 흐느끼며 오열을 터뜨렸다.

대동강 푸른 수면우에서는 쌍분수가 흰 물보라를 날리였다. 탑의 봉화가 활활 타올랐다.

인류건축력사가 알지 못하는 거대한 탑앞에 두손을 맞잡고 경건히 선 림성욱의 눈에서도 뜨거운 물기가 번뜩거리였다.

그의 옆에서는 김광성이가 연신 눈을 슴벅이다가 천천히 고개를 돌리였다.

량어깨가 축 처져 꺽꺽 울음을 삼키던 유민호가 무슨 일인지 맥락없이 중얼거리였다. 누구도 그에게 관심하는 사람이 없었으며 유민호도 구태여 그것을 바라지 않았다.

그의 얼굴을 적시는 눈물은 다른 사람의것과는 너무나도 달랐다.

모두가 기쁨과 환희에 넘쳐있는데 민호의 가슴속에서 터져나온 속죄도 때와 장소에 어울리지 않는것이였다. 하지만 림성욱은 그렇게만 볼 일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 말없이 그를 묵묵히 지켜보았다. 이 인간사랑의 신성한 탑앞에서 자기 인간됨을 반성하는 저 눈물… 이것이야말로 유민호의 생활에서 처음으로 찾아보게 되는 진심인지 몰랐다.

그래, 여기서 깨끗이 뉘우치라, 아직은 젊고 앞길도 창창한 나이가 아닌가… 기쁨과 고뇌는 값진 인생을 받드는 두 기둥이라고 했거늘 림성욱은 오늘의 이 기쁜 날을 기점으로 하여 유민호도 새롭게 출발하게 되면 얼마나 좋으랴싶었다.

그날 김정일동지께서는 어버이수령님 탄생 70돐경축연회에 맨선참으로 설계가들을 불러주시였다.

림성욱과 곽운필, 남정기가 연회에 참가하여 그이의 접견을 받았다.

김정일동지께서는 연회장 중간석을 차지한 그들의 인사에 환한 웃음으로 답례하시고 뜨겁게 손을 잡아주시였다.

《동무들, 수고했소. 정말 수고했소. 방금 수령님께서는 평양에 새로 일떠선 건축물들만 봐도 조선이 어떤 나라인가를 잘 알게 되였다며 대단히 기뻐하시였습니다. 동무들은 단순히 집을 짓는 설계가들이 아니라 세상앞에 내 나라를 빛내이는 사람들입니다. 우리 앞으로도 수령님께서 바라시는대로 내 나라를 지상천국으로 일떠세우는 인민의 충복이 됩시다.》

김정일동지께서는 깊은 심회에 잠겨 《내 나라…》하고 되뇌이시면서 림성욱과 곽운필, 남정기의 얼굴을 이윽토록 정겹게 지켜보시였다.

하지만 아직은 누구도 그 다정하신 눈빛속에 담겨있는 의미를 알지 못하였다.

오직 한사람, 시당비서 김광성이만이 그 기쁜 사연을 안고 명절날밤에도 자기 사무실에서 분주한 시간을 보내였다. 이제 림성욱과 곽운필의 앞가슴에서 번쩍일 금별메달, 남정기의 인민설계가 내신서를 작성하느라 연회에도 참가하지 못한 김광성은 이날 정말 당일군다운 일을 하는것 같았다.

그는 이런 경사로운 일을 위해서라면 열밤이라도 새울듯 한 정력으로 온몸이 뜨겁게 달아올랐다. 김광성은 김광성이대로 자기 사업의 긍지와 자부심이 따로 있었다. 김광성은 오래전에 씨를 뿌려놓았다가 지금 수확기를 맞이한 기분이였다. 그는 부지런한 농부다운 심정으로 집에서 날라다준 건빵을 씹으며 문건작성에 여념이 없다가 《아차!》하고 무릎을 쳤다.

작년 정초 문혁이와 결혼한 미영이가 산원에서 생남을 하고 명절전날에 퇴원한다는것을 깜박 잊어버린것이였다. 문혁은 릉라다리를 설계할 새로운 과업을 받고 현재 외국출장중에 있다. 며칠전에 김정일동지께서는 그러한 사정을 보고받으시고 주체사상탑건설에 크게 공헌한 문혁이가 서운해하지 않게 제막식날자라도 알려주는게 좋겠다는 은정어린 말씀을 하시였다. 그리하여 문혁은 머나먼 구라파땅에서 국제전화로 4월의 봄명절아침 주체사상탑 제막식이 있게 된다는것과 함께 귀동자가 태여난 기쁜 소식을 한꺼번에 전해듣게 되였다. 그 일까지는 썩 잘되였는데 분망한 사업에 싸여 미영이가 산원에서 퇴원할 때 문혁의 대역을 해주리라 했던 생각을 잊어버리고보니 결말이 볼꼴없이 돼버리고말았다.

(원, 이런 변이라구야!)

김광성은 즉시에 안해한테 전화를 걸어 이제라도 준비해둔 산꿀과 보약을 꾸려들고 미영이네 집으로 찾아가도록 신신당부했다. 그다음에야 김광성은 자기 먼저 림성욱소장이 선손을 쓰지 않았겠는가는 생각이 들어 흐뭇이 담배를 붙여물었다.

이튿날 아침이였다. 어버이수령님탄생 70돐경축 중앙텔레비죤 특집방송에서는 서정가요 《내 나라》를 자주 내보내였다. 김광성은 그 자세한 내막까지 알지 못했지만 무척 행복한 자신을 느끼며 창가로 다가섰다.

축복받은 1980년대의 세번째 봄은 이렇게 시작되였다. 찬란한 아침해빛이 평양의 하늘가에 가득 넘치고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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