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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소설 총대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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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강산
댓글 1건 조회 2,113회 작성일 20-12-08 20:47

본문

총서《불멸의 향도》

 

                    장 편 소 설

 

2009-05-04-U01.jpg

 

                                박    윤

 

 

( 제 22 회 )

 

 

제 4 장

 

2

 

령기슭에서 휴식한 행군대오는 중낮이 될 때에야 겨우 령중턱을 통과하고있었다. 중부지대의 산치고 높지는 않으나 경사가 느려 먼 로정이였다. 큰 나무가 별로 없이 잡관목만 무성한 산지고보니 같은 초여름의 폭양에 달대로 달아 먼지가 풀썩풀썩 일었고 대기는 탁하고 메말라 숨쉬기가 가빴다.

김강인은 벌써부터 배낭이나 장구류의 무게보다도 입안과 목을 무자비하게 허비는 지독한 갈증때문에 허덕이고있었다. 단숨을 내쉴 때마다 목에서 역스러운 쇠비린내가 훅훅 치밀어오르고 한증탕에라도 들어선것처럼 주위가 확확 달고 의식조차 몽롱해지는듯싶다. 눈앞에 물이 있다면 한동이, 아니 한독이라도 단꺼번에 들이마실것 같은 목마름과 조갈증이 점점 그 한계선을 넘고있었다.

사람의 고통중에도 갈증이 제일 무섭고 참기 어렵다는 구대원들의 말이 실감되는 순간이였다. 분대장은 어떤 일이 있어도 물을 아끼라고 신신당부하였으나 김강인은 군용물통의 물을 참지 못하고 이미 솔금솔금 다 마셔버린 뒤였다.

김강인은 몇번씩이나 옆구리에서 데룽거리는 빈 물통에 손이 닿는것을 어쩔수 없었다. 야릇하고 미묘한 찬 느낌을 주던 물통도 이제는 더위와 손바닥의 온기에 시달려 미적지근해졌다. 하지만 물통에 손을 대는것만으로도, 거기에 불붙는 가슴을 식혀줄 생명수가 있었다는것을 상기해보는것만으로도 김강인에게는 조그마한 위안이 되였다.

물, 물, 단 한방울이라도 혀바닥에 떨구어보았으면, 한모금의 물이라도 타는 목구멍에 쏟아넣는다면 발에 날개가 달릴것 같았다.

입안이 타들어 혀와 입천정이 자기것 같지 않은 꽛꽛한 가죽처럼 느껴진다. 갑자기 김강인은 눈앞이 아찔해오고 주위가 빙글빙글 돌아가는것처럼 여겨졌다. 김강인은 정신을 바싹 차리고 앞을 바라보았다. 그는 눈앞에 펼쳐진 물줄기를 보았다. 비말을 날리는 하얀 물줄기는 크지 않은 바위벼랑에서 떨어져내리고있었다. 이게 뭐야? 우리 공장마을 학교뒤골짜기에 있는 덕수골폭포가 아니야? 그는 무작정 폭포수에 뛰여들어 고개를 뒤로 젖히고 물을 마시기 시작했다. 그런데 웬일일가? 아무리 마셔도 타는 목은 조금도 시원해지지 않는다. 오히려 갈증이 점점 더 심해져 목안을 무수한 바늘들이 따끔따끔 찌르는것 같다. 그제야 김강인은 옆구리에 차고있는 물통으로 떠마시려고 생각했다. 그는 끈을 멘채로 물통을 들어올려 아구리를 열기 시작했다. 그 순간 휴식구령이 내리고 누군가의 억센 손이 그의 손목을 틀어잡았다.

《강인동무, 정신차리라구. 이게 뭐요? 아직 갈길은 멀었어. 벌써 극한점이야?》

《분대장동지, 난 물통의 물을… 그저 물통으로 떠마시려고…》

김강인은 열에 떠서 중얼거리다가 와뜰 놀라며 최명진의 얼굴을 마주보았다.

《사람두 참, 어디 잘못된게 아니요? 정 못참겠소? 자, 그 배낭을 이리 주오.》

배낭소리가 나오자 김강인은 정신이 순간에 말짱해졌다. 배낭을 벗기려는 최명진의 손을 딱 잡았다.

《아니, 분대장동지, 일없습니다. 끝까지 내힘으로 가겠습니다. 제가 아마 깜빡 존 모양입니다.》

《허허, 정 힘들면 사양말고 배낭을 달라구.… 이제 령마루에 오르면 샘물이 있으니 조금만 참기요. 아주 시원한 샘이야. 자, 어서!》

최명진의 말에 김강인은 펄쩍 뛰였다.

《절 어떻게 보고 그럽니까? 일없습니다. 전 아직 십리, 아니 백리는 참을수 있습니다.》

최명진은 어이없는듯 그를 한참 들여다보더니 길섶으로 훌쩍 뛰여갔다가 인츰 되돌아왔다. 그의 손에는 폭양에 물기가 빠져 시들시들한 풀대같은것이 들려있었다.

《이걸 씹어보라구.》

《이건 뭡니까?》

《오, 이건 싱아라는거요. 입안에 넣고 씹어보라구. 한결 갈증이 덜릴거요.》

김강인은 말이 떨어지기 바쁘게 다 쇤 싱아대를 와락 입안에 쓸어넣고 게걸스럽게 씹었다. 씁쓸하고 시크무레한 맛이 들기까지는 한참이나 있어야 했다. 풀대의 물기가 가문 대지처럼 바짝 타는 입천정을 녹이기가 힘들었던것이다.

김강인은 갈증이 덜린다기보다 무엇인가 진정되는것 같은감을 받았다.

휴식중의 병사들도 저마끔 달려들어 풀대들을 쥐여뽑았다.

《야, 이거 우리 고향의 수정천이 생각나누만.》

땅크장 김창모가 입귀를 벙긋거리며 파란 싱아대를 들여다보았다.

《체ㅡ 청진에 싱아가 있기나 하나?》

김강인이 발쭉거리며 이미 신맛이 다 빠진 섬유질을 내뱉았다.

《강인동무, 어떻게 보구 그래? 있단말이야. 이것보다 더 튼튼한 싱아가 있거든!》

김창모가 억울한듯이 들이대자 병사들이 와 웃어댔다.

《제길, 강인동무, 이런땐 우리 땅크를 냅다 몰아 이 령을 넘었으면 좋겠다. 강인동무도 태우고말이요.》

김창모는 눈을 깜박이며 김강인을 시까슬렀다.

《체ㅡ 그러단 발바닥에 털이 납니다!》

《뭐? 발바닥에… 강인동무, 그래 우리 땅크병들이 공병하고 같은줄 아오? 결전의 날엔말이요, 이 발엔 흙 한점 안묻히고 땅크로 냅다 조긴다는거!》

김창모는 흰 이새를 보이며 유쾌한 미소를 지었다.

김강인은 기분이 나빠 또 싱아대를 입에 집어넣었다.

최명진은 김강인의 얼굴을 유심히 들여다보더니 갑자기 무엇이 우스운지 폭소를 터뜨렸다.

《체, 분대장동지, 왜 웃습니까? 제가 너무 게걸스럽다는거지요?…》

《아니, 아니요. 우리 누이생각이 나서 그러오. 누이가 조카애를 낳기 전인데 말이요. 한번은 내가 학교에서 돌아오니 누이가 바가지에 무드기 담은 밤알만 한 새파란 열매를 정신없이 먹질 않겠소. 하도 맛있게 입소리까지 내며 먹길래 나도 냉큼 달려들어 억지로 몇알 조절했지. 껍질이 두텁고 시퍼런 채 익지도 않은 추리더군.》

《추리요?》

김강인은 실망해서 입맛을 다셨다.

《누이가 그렇게 맛나 하는걸보면 분명 꿀같이 달것 같더군. 그 시퍼런 선 추리를 한알 입에 물었지. 강인동무, 그 맛이 어쨌을것 같나?》

최명진은 시치미를 뚝 따고 김강인을 돌아보았다.

김강인은 귀가 솔깃해진 병사들을 둘러보며 볼부은 표정을 지었다.

《체, 시큼털털했겠지요.》

병사들이 와 하고 폭소를 터뜨렸다. 어느새 나타났는지 리만순정치위원과 한철준도 한데 끼여 빙긋빙긋 웃었다.

《말두 말라구. 한입 척 깨물자 이크 이게 뭐야? 두터운 껍질이 벗겨지면서 신 추리물이 쭉 흘러나와 혀와 입안에 튀여나는게 아니겠나! 아이쿠, 얼마나 시던지, 그만 눈물이 다 나옵데. 그러거나새거나 나는 그 시디신 선 추리를 와작와작 다 씹어먹었지. 정말이요. 와작와작!》

《와작와작!》

병사들이 마치 합창이나 하듯이 그 말을 받아외웠다.

김강인은 금시 신 추리를 입에 넣은것처럼 몸서리를 치며 군침을 꿀꺽 삼켰다. 어느새 입안에 군침이 생긴것이다.

병사들이 좋아라 웃어댔다.

《분대장동지, 흥! 좋긴 좋은데 속진 않습니다. 체, 분대장동지 누이야 무용배우, 아직 새파란 처녀가 아닙니까. 글쎄 제가 평양에 갔을 때…》

김강인이 머리를 기웃거리자 리만순정치위원이 그의 등을 두드렸다.

《모르는 소리, 이 명진동무에겐 늘씬한 사촌누이가 자그만치 다섯이나 있단말이요.》

그러자 주위의 병사들이 산이 떠나갈듯 들썩하게 웃어댔다.…

행군대오는 령마루를 향해 꾸준히 흘러갔다. 한낮의 태양이 심술궂게 대지를 데쳐낼듯 내리비치고 대기에는 바람한점 없다. 파랗게 트인 창공에 실구름이 몇점 한가히 떠있을뿐이다.

또다시 참을길없는 갈증이 엄습해왔다. 분대장의 기지있는 선 추리이야기도 분대원들의 물에 대한 무섭고 검질긴 육체상욕구를 더는 달랠수 없었다. 김강인은 허둥거리며 령마루가 다가오기만 기다렸다. 령마루에 다달으면 샘물을 마실수 있었다. 한모금의 물을 마시면 이 세계가 달라질것 같았다. 천리라도 훨훨 날아넘을것 같았다.

령마루엔 물이 있다. 생명수가 있다. 병사들은 마지막기운을 쓰며 령마루를 향하여 돌진하고있었다.

하지만 령마루에 도착했을 때 병사들을 기다린것은 샘줄기가 아니라 가물에 바짝 마른 샘터뿐이였다.

김강인은 휴식구령이 내리기 바쁘게 샘터로 달려가 샘물이 솟았다는 곳을 손가락으로 마구 허벼내기 시작했다. 손끝에 피가 지도록 모래흙을 파냈으나 축축한 기운조차 느껴지지 않았다.

김강인은 락심하여 얼굴을 들었다. 순간 그는 마른 샘터를 빙 둘러선 분대원들과 눈길이 마주쳤다. 구대원들의 타는 입술과 뻘겋게 충혈진 눈에도 실망의 그림자가 짙게 얼른거리고있었다.

최명진분대장이 다가왔다.

김강인은 원망어린 시선으로 그를 올려다보며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분대장동지, 샘물이 … 말라버렸습니다.》

최명진은 김강인을 측은하게 바라보며 입가에 느슨한 미소를 지었다.

《허, 이놈의 샘물도 아마 병사의 의지를 시험하려는가 보오. 이태전에 넘을 때엔 맑은 샘이 콸콸 솟았는데… 그래 강인동무, 더 견딜수 있겠소?…》

김강인은 조갈든 입술을 힘없이 놀리며 분대장을 겨우 올려다보았다.

《일… 없습니다. 하지만, 야, 물을 단 한모금이라도 마신다면…》

《그럼 구대원들한테 떨어지지 않겠단말이지?…》

최명진은 싱긋이 웃으며 둘러선 구대원들과 눈을 맞추었다.

김강인은 입안이 말라 혀가 잘 놀지 않는것을 느꼈다.

《천리라도…》

《허허허. 천리까지야 뭘. 자, 내게 비상용물통이 있소. 한모금씩 돌려가며 마시라구!》

김강인은 그 말을 듣자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눈이 초롱초롱 빛나기 시작한 김강인을 바라보던 최명진이 허리에 찬 물통을 벗겨들었다. 그는 잠시 생각하고나서 물통을 곁에 서있는 하사에게 먼저 내밀었다.

《입대순서로 돌리기요.》

《분대장동지부터 드십시오.》

《허, 난 제외요. 이미 마셨으니까.》

물통이 천천히 돌기 시작했다. 신대원 한명이 근무중이라 이 자리에서는 유감스럽게도 김강인이 막내였다.

대원들은 물통이 자기에게 옮겨올 때마다 입에 대고 오래동안 물을 먹었다. 한모금을 마시는데 무슨 시간이 그리 오래 걸리는지… 김강인은 속이 바질바질 타들었다. 이렇게 돌다간 물통의 물이 중간에서 말짱 없어지고말것 같았다.

김강인은 아예 눈길을 떼고말았다. 차라리 보지 않는편이 나을것이다.

그 순간 물통이 김강인의 손에 쥐여졌다. 김강인은 가슴이 후두둑 뛰는것을 느끼며 물통아구리를 입에 가져갔다. 그러자 누군가의 억센 손이 물통을 잡았다. 최명진분대장이였다.

《가만, 강인동무, 입을 벌리오. 이 소금 몇알을 입안에 넣어야 물이 넘어가오. 자!… 이젠 됐소.》

김강인은 눈을 감고 물통을 기울이기 시작했다. 시원하고 감미로운 생명수가 콸콸 쏟아져내렸다. 김강인은 정신없이 물을 꿀꺽꿀꺽 들이키기 시작했다.

밑굽에나 찰랑거릴줄 알았던 물은 거의 그대로 남아있었다. 김강인은 그것을 전혀 느끼지 못한채 그냥 물통을 기울이고있었다. 김강인은 물통의 물을 마지막 한방울까지 깡그리 요정내고서야 피끗 정신을 차렸다.

그는 빈 물통을 들고 동지들을 둘러보았다. 구대원들은 김강인을 바라보며 모두 빙그레 웃고있었다.

그제야 김강인은 모든것을 깨달았다. 구대원들은 물통을 입가에 댔을뿐 단 한방울도 마시지 않은것이다. 하지만 마시는척 하느라고, 아니 그리도 마시고싶은 물의 촉감을 얼마간이라도 느껴보려고 오래동안 입가에서 떼지 않았던것이다.

김강인의 얼굴은 온통 수수떡이 되여버렸다. 그제야 처음 물통을 손에 들었을 때의 알찬 무게와 정신없이 물을 마시던 전과정이 새삼스레 돌이켜졌다.

《분대장동지… 동지들… 제가 그만 물통의 물을 다… 마셔버렸습니다.》

김강인은 울상이 되여 최명진과 분대원들을 둘러보았다. 분대원들은… 다정히 웃고있었다.

《어때? 강인동무, 이젠 힘이 생기지? 정말 천리라도 갈것 같구만.…》

《분대장동지…》

대원들을 위해 아껴둔 물통을 다 털어내놓고도 분대장은 지친 빛이 없이 그냥 웃고있다.

행군출발구령이 울렸다.

김강인은 배낭을 추스르며 말없이 걸었다. 앞에서 최명진분대장의 미더운 등이 움직인다. 김강인의 눈가에 뜨거운것이 맺혔다.

《분대장동지…》

최명진이 그냥 걸으면서 얼굴을 돌렸다.

《왜그러오? 강인동무, 걷기가 불편하오?…》

김강인은 세차게 머리를 흔들었다.

《아닙니다. 분대장동지, 전 물이 아니라 동지들의 그 뜨거운… 전 이대로 정말 천리, 만리라도 갈수 있습니다!》

대오옆으로 씨엉씨엉 지나가던 한철준대대장이 거밋거밋한 얼굴에 흘러내리는 땀을 손으로 훔치며 미소를 지었다.

《제기랄, 이젠 우리 강인동무도 구대원이 다 되였구만!》

최명진이 의미있는 시선으로 대대장을 돌아보았다.

《대대장동지, 이 강인동무의 배낭이 왜 다른 병사들보다 크고 무거운지 아십니까?》

댓글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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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산님의 댓글

강산 작성일

(위에서 계속)

《그건 또 무슨 소리요?》

김강인이 당황하여 분대장의 옆구리를 쿡 찔렀다. 그러니 분대장은 다 알고있었던것이다. 최명진은 또다시 하얀 이를 드러내며 싱긋 웃었다.

《아닙니다. 그건 비밀입니다.》

《좋아, 좋아! 이 대대장이 모르는게 있는줄 아나? 강인동무가 이악하거든. 그래서 장군님의 병사지! 하하하!》

한철준대대장은 만시름을 잊은채 활짝 웃고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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