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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소설 총대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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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강산
댓글 1건 조회 5,680회 작성일 20-11-28 1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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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서《불멸의 향도》

 

                    장 편 소 설

 

2009-05-04-U01.jpg

 

                                박    윤

 

 

( 제 12 회 )

 

 

제 3 장

 

1

 

깊은 골짜기와 보라빛 먼 산줄기를 따라 눈석이가 시작되였다.

겨우내 얼어붙었던 대지는 오랜 잠에서 깨여난듯 눈석임물에 말끔히 씻기여 번들거리고 찬 기운을 밀어내며 해종일 바람이 불어친다. 생기를 잃은채 부옇던 해가 좀 더 바투 다가선듯 따뜻한 해볕이 대지를 골고루 비쳐들자 드디여 파란 풀들이 부풀어오른 땅을 비집고 갸웃이 얼굴을 내밀었다.

봄! 봄은 흘러서 오고 불어서 찾아들고 싹터서 자기를 드러냈다.

엄혹하고 간고했던 겨울이 이제는 물러간것인가.

유진성대장은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가없이 펼쳐진 검푸른 하늘로 수리개 한마리가 날아올라 봄물든 대지를 내려다보고있었다.

고요한 창공의 적막을 깨뜨리며 아츠러운 비행기동음이 울려퍼졌다. 그러자 해빛에 은빛날개를 번쩍이며 은회색폭격기편대가 하늘을 덮어버렸다. 희뿌연 비행운들이 파란 하늘에 순간적으로 얼어붙어 해빛을 가리웠다. 편대들은 재빨리 방향을 바꾸어 급강하하기 시작했다. 그와 동시에 불줄기들이 날아가 타격지점을 때렸다. 각종 차단물과 영구화점으로 구축된 종심깊은 《적》방어진은 삽시에 불바다가 되고말았다. 화광이 솟아오르고 뽀얀 흙먼지가 천지를 덮어버렸다. 비행대는 강력한 선제타격을 련이어 들이대고 타격지점을 벗어났다.

광과 포연이 차츰 가라앉자 둔중한 포성과 함께 포사격이 시작되였다. 방사포의 불줄기들이 최고사령부 작전지휘성원들이 서있는 전방지휘소앞쪽으로 휙휙 지나갔다. 방어선이 건너간 타격지점은 또다시 화염속에 잠겨 앞을 가려보기 힘들다.

유진성은 쌍안경을 내리고 비로소 안도의 숨을 내쉬였다. 만약 실전이였다면 방어지대의 적은 숨소리도 내지 못할것이였다. 강력한 아군의 폭격과 포격에 적진은 개미한마리 살아남지 못할것이다.

유진성은 시계를 들여다보는 리평해를 건너다보았다. 야전복차림의 우람찬 몸매의 리평해사령관은 혁띠를 조여매서인지 평소답지 않게 젊고 날렵해보인다. 인중이 길고 눈꼬리가 째진 철빛얼굴에는 일종의 긴장과 초조감이 슴배여있다. 그는 한자리에 가만 있지 못하고 련속 참모들에게 지시를 주고는 앞선에 말없이 서계시는 최고사령관동지를 일별하군 하였다. 리평해의 얼굴은 온통 땀투성이가 되여버렸다.

유진성은 사령관의 심정이 충분히 리해되였다. 기실 이번 타격훈련은 이곳 동부지구 군부대가 년초부터 시작해온 훈련의 1차 결속단계였다.

유진성자신도 근 한주일간이나 훈련장에 나와있으면서 군부대의 훈련을 지도했었다. 백설의 험준한 령들과 얼음장이 부서지는 수많은 강들을 도하하여 간고하게 진격로를 헤쳐온 군부대들이 드디여 경애하는 최고사령관동지를 모시고 종합훈련을 진행하게 된것이다. 드디여 봄철의 눈석이와 함께 부대들도 화력과 력량을 총집중하는 섬멸적인 타격의 순간을 맞이한것이다. 그사이 유진성과 리평해사이에는 더러 의견상이도 있었지만 종당에는 힘과 지혜를 합쳐 눈에 띄는 성과를 빚어냈다.

지난해보다 전진속도와 군종, 병종들의 협동동작이 눈에 띄게 발전했다. 조건이 불비하여 일부 부대들과 같이 뜻하지 않은 비정상적인 일들이 더러 없은것은 아니지만 리평해는 지휘관다운 완력과 전개력으로 최고사령부와 시간표를 맞출수 있었던것이다.

한순간 유진성은 이마살을 찌프렸다.

(최남호… 동무가 어쩌면 그런 행동을 하는가. 이 엄혹한 시각에 장군님께서 마음을 쓰시게 하다니… 그 경험과 충직성을 우리가 너무 믿은것인가. 동무가 엄중하게도 인민들과 병사들의 리익을 침해할 때 밑의 사람들은 산발을 헤치며 석수를 맞으며 부대의 진격로를 마련하고있었다. 부하들의 옳은 의견까지 무시하면서 동무가 단행한 비원칙적인 결심과 행동이 과연 어떤 결과를 낳았는가?…)

문득 유진성은 며칠전 군부대 훈련지도중 도하장에서 얼핏 만났던 김한경대좌의 얼굴이 떠올랐다. 성격이 올곧고 고지식한 대좌는 상관앞에서 조금도 에두르지 않았다. 박신철의 제기를 묵살한 최남호에 대하여 강한 불만을 내비쳤다. 이미 보고를 받은 문제였지만 벌어진 일을 구체적으로 알았을 때 유진성은 마음이 무거워졌다. 유진성은 야전천막으로 돌아와 오래동안 상념에 잠겼다. 벌써부터 아래사람들을 무시하고 다소 독단적으로 일처리를 하군 하는 최남호의 작풍을 알고있었지만 오히려 그것을 지휘관다운 배짱과 전개력으로 은근히 긍정해온 자신에 대한 환멸이 먼저 앞섰기때문이였다. 하지만 이번 사건을 과연 자기가 제일이라는 일종의 독선으로만 봐야 하겠는가. 거기에는 보다 심각한 사상적문제가 뿌리박혀있다는것을 유진성은 간파하고있었다. 부대를 지휘하면서 세운 공로와 평가 그리고 전군적인 훈련지도에서 무리없이 세운 성공의 탑들은 결국 그를 저도 모르는 사이에 교만하게 만들었으며 나중에는 군민관계를 훼손시키고 병사대중을 무시하는 안하무인격의 거칠고 용렬한 인간으로 되게 하여 그 결과를 상상할수조차 없을 위험한 계선까지 끌고간것이 아닌가….

유진성장령은 무거운 한숨을 내쉬며 리평해의 눈길을 따라 공격출발계선쪽을 바라보았다.

아득한 재빛숲에서 땅크와 장갑차들이 일제히 기세좋게 달려나와 구릉지대를 내닫기 시작했다. 화염이 가라앉자 타격지점이 또다시 끓어올랐다.

기본타격대는 전격적인 공격으로 《적》방어지대를 타고앉기 위하여 세찬 화력을 집중하며 일사천리로 전진해갔다.

김정일동지께서는 지휘성원들을 돌아보시였다.

《올해를 훈련의 해로 정했는데 정신이 번쩍 듭니다. 타격이 비교적 째였습니다. 이번에 유진성동무랑 수고가 많았습니다. 그런데 사령관동무!》

쌍안경을 드시고 타격집단의 공격모습을 눈여겨 살피시던 김정일동지께서 뒤를 돌아보시였다.

총정치국장과 총참모장곁에 서있던 리평해사령관이 가까이 다가서자 그이께서는 부관에게 쌍안경을 넘겨주시였다.

《타격집단편성은 괜찮은데 시간이 문제인것 같소. 지난 시기의 재판입니다. 물론 현대전이 시작되여 아직 이 고전적인 틀을 깬 경험이 없었기때문에 우리의 의견이 생소할수 있습니다. 아무래도 전투서렬의 편성과 속도에 문제가 있는것 같습니다.》

유진성은 장군님께서 하시는 말씀의 의미를 간파하지 못한채 어리둥절한 마음으로 리평해를 바라보았다.

리평해가 한발 앞으로 나섰다.

《최고사령관동지, 오늘 우리 군부대는 공군에서 협동을 잘해주었기때문에 지난 시기보다 작전결속을 훨씬 앞당겼습니다. 전번 서부지구훈련때 저도 참관했지만…》

작전경험이 풍부하고 그에 못지 않게 승벽이 센 리평해는 다소 억울해하는듯한 표정이였다.

(사람두 참, 아직도 부대장때 그 버릇은 못버렸단말이야. 어깨에 왕별을 한줌이나 달고도 다른 단위를 이기려고만드니… 무슨 사람이 저런가? 이젠 최고사령관동지앞에서까지 응석을 부리며…)

유진성은 속으로 두덜거리며 맞갖지 않은 눈길로 오랜 전우인 리평해의 얼굴을 쏘아보았다. 이번 훈련도중에도 이런 승벽때문에 자주 유진성의 핀잔을 듣던 리평해였다.

김정일동지께서는 미소를 지으시였다.

《허허. 사령관동무, 동무네 성과를 깎자는건 아니요. 그런 의미에서 볼 때는 오늘 훈련이 만점짜리라고 할수도 있소. 우리가 말하는건 현대전의 전형적인 공격전법을 두고 하는거요.

장엄하고 위용이 있지만 어딘가 모르게 틀에 매이고 형식적인 허세를 부리는것같단 말이요.

사령관동무, 내가 제일 싫어하는게 뭔지 압니까? 그건 창조성이 없는거요. 새로운 사색, 새로운 지향, 새로운 전진, 만약 이것이 없다면 우리 사업에서 창조성이 뭐겠소. 군사분야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전번 포병구분대의 화력복무훈련을 보면서도 새삼스럽게 느껴져 지적했지만 우리에게는 아직도 재래식잔재가 남아있습니다. 저건 재래식이라고 볼순 없지만 새 세기를 눈앞에 둔 시점에서 낡았다는 인식이 강하게 듭니다.》

김정일동지께서는 힘있는 손세를 쓰시며 공격작전에 대하여 말씀하시였다. 그이께서는 공격작전에서의 전투서렬과 각 병종의 속도와 위치를 두고 새로운 구상을 펼쳐보이시였다.

그이의 눈가에는 사색과 함께 깊은 예지와 슬기가 번쩍이고있었다. 유진성은 가슴이 울렁거렸다. 그이의 두뇌속에서 그 어떤 창조적인 발견이 섬광처럼 빛을 뿌리고있다는것을 직감할수 있었기때문이였다.

《최고사령관동지, 솔직히 말씀드려서 저는 너무도 새로운 문제여서 놀랐습니다. 아직까지 군사학에서는 이 문제가 철저히 기정사실화되여있지 않았습니까.》

리평해가 두손을 맞잡으며 어줍은 미소를 띠자 김정일동지께서는 통쾌하게 웃으시였다.

《하하하. 작전전술에서는 제노라 하는 리평해동무답지 않구만. 좋습니다. 함께 연구해봅시다. 새로운 작전문제이기때문에 흥미가 있고 열정이 끓는것입니다.

레닌은 클라우제위츠의 전략리론에 의존하고 모택동은 손자병법에 의거해서 군사활동을 벌렸는데 우리는 수령님의 주체전법에 기초해서 현대군사리론을 완성해봅시다!》

김정일동지께서는 한손을 야전복옆구리에 짚으시고 멀리 군인들의 만세소리가 울려오는 언덕쪽을 바라보시였다.

파랗게 트인 봄하늘로 꿈틀꿈틀 솟아오르던 화염이 연한 실구름과 한데 어울려 뿌연 운무가 되여 내려앉는다.

김정일동지께서는 군부대지휘부청사앞에 차가 멈춰서자 주위를 둘러보시였다.

마른 담쟁이덩굴이 벽을 따라 차분히 올려붙은 청사옆에 화강석을 다듬어 밑굽과 기둥을 세우고 고급석재로 품들여 지은 아담한 집 한채가 눈에 띄웠다.

《사령관동무, 집이 한채 더 생겼구만.》

김정일동지께서는 관심어린 눈길로 찬찬히 살펴보시였다.

《최고사령관동지, 장군님께서 군부대에 오시면 모시려고 준비한 집입니다. 잠시라도 편히 쉬시기를 바라는 저희들의 마음입니다.》

리평해사령관은 꽉 조여맨 혁띠고리를 바로 잡으며 정중하게 말씀올렸다.

《그렇습니까?》

김정일동지께서는 물기가 올라 번들거리는 아름드리 느티나무밑에 멈춰서시였다.

그이께서는 터실터실한 나무줄기를 손으로 쓰다듬어보시다가 곁에 따라선 리평해쪽으로 돌아서시였다.

《사령관동무, 동무들의 심정은 충분히 리해됩니다. 하지만 아직 우리 지휘성원들이 최고사령관의 의도를 잘 모르는것이 걱정됩니다. 솔직히 말하면 나는 한해의 거의 전부를 병사들속에서, 눈비 내리는 전선길에서 보내다나니 이젠 저 야전승용차에 습관되고 정이 붙었습니다. 오히려 푹신한 침대우에 누우면 불편하여 잠이 오지 않습니다. 전선에서 전선으로 쉼없이 달리는 저 야전승용차가 내게는 침실이고 집무실인셈입니다.》

《?!…》

김정일동지께서는 사색에 잠기신 눈길로 그 자리에 굳어져버린 리평해를 한동안 바라보시다가 말씀을 이으시였다.

《우리에게 있어서 휴식이란 뭐겠습니까. 병사들이 생활에서 불편함을 모르고 발편잠을 자면 그게 우리 일군들의 기쁨이고 휴식이 아니겠소. 우리가 저런 집에 들어앉아 무슨 휴식이 되겠는가. 오히려 바늘방석에 앉은것같아 마음이 고통스러울거요. 사령관동무, 동무들의 의도는 어떻든지간에 이건 최고사령관과 병사들을 갈라놓는 행위로밖에 달리될수 없거든.》

《최고사령관동지!…》

리평해는 더 다른 말을 못하고 머리를 짓수그리더니 가슴을 들먹이며 긴 숨을 내쉬였다.

김정일동지께서는 그의 어깨에 다정히 손을 얹으시고 겸양어린 미소를 지으시였다.

《내 말이 좀 혹독하더라도 들어두시오. 우린 모든 문제를 설정하고 제기할 때 그 첫자리에 병사들을 내세워야하오. 그래야 탈선이 없거든. 내가 왜 최고사령관을 생각하는 동무들의 심정을 모르겠는가. 하지만 최고사령관의 마음속에는 온통 병사들만이 꽉 차있다는 이 진실을 동무들이 언제나 명심하고 일해준다면 나는 더없이 기쁘겠소. 사령관동무, 집을 잘 지었으니 우리 병사들을 위해 무엇을 더해줄수 없겠는가를 생각해보자구.

유진성대장동무, 동무생각엔 병사들을 위해 이 집을 어떻게 썼으면 좋겠소?》

그이의 뜨거운 말씀이 안겨준 충격에서 채 깨여나지 못한 유진성은 달아오른 얼굴을 들고 잠시 주춤거렸다.

《최고사령관동지, 문화오락실이나 교양실로 전환시키면 좋을것 같습니다.》

《군인회관이 있는만큼 그건 틀렸소. 내 생각에는 이 건물을 군인도서관으로 쓰면 어떻겠는가 하는겁니다. 지금 종이사정으로 책부수를 늘이지 못하는만큼 혁명적인 소설들이랑 비치하면 우리 병사들이 일요일마다 즐겨 찾아올거요. 사령관동무의 생각은 어떻소?》

김정일동지의 따뜻한 물으심에 리평해는 물기가 어린 눈을 들었다.

《최고사령관동지 말씀대로 당장 도서관으로 개조하겠습니다. 병사들을 위하시는 장군님의 뜻을 제 꼭 명심하겠습니다.》

《대답이 시원한걸보니 좋아. 우리 인민군대지휘성원들이 무엇때문에 있는가. 병사들이 없다면 우리가 뭐겠소.

자 동무들, 우리 언제나 병사들을 위해 헌신하는 참된 복무자들이 되기요!》

김정일동지께서는 팔을 내저으며 뜨겁게 말씀하시고나서 정력적인 걸음을 지휘부청사쪽으로 내짚으시였다.

유진성은 머리를 수굿하고 흥분된 마음으로 그이의 뒤를 따라섰다.

받아안은 뜨거운 격정은 나래가 돋친듯 몇해전에 있은 일을 되살려올리며 크나큰 감동을 불러오는것이였다.

그때 김정일동지를 몸가까이 모시고 일하는 일군들은 군건설과 당사업, 국가활동전반을 보시느라 피곤에 몰린 그이께 잠시라도 휴식을 보장해드리고싶은 간절한 소원에서 풍치 수려한 대동강기슭에 아담한 휴식각을 새로 건설하고있었다. 사실 이 사업은 비밀리에 진행되고있었는데 어떻게 된 사연인지 얼마못가서 김정일동지께 알려지게 되였다. 그이께서는 처음 해당 일군에게 부드러운 낯색으로 휴식각건설을 중지할데 대하여 타이르시였다. 해당 부문에서는 몹시 난처하였으나 심중한 토의끝에 그냥 조용히 내밀기로 결정짓고 이 사업을 중단하지 않았다. 김정일동지께서는 당시 복잡하게 얽혀 돌아가는 국제정세로 조성된 험난한 시련과 난관을 진두에서 헤쳐나가시느라 때로는 야전승용차안에서, 때로는 집무실의 걸상우에서 잠간씩 쪽잠을 자시며 손에서 일감을 놓지 않으시였다.

유진성은 늘 마음속 한구석에 최고사령관동지의 건강에 대한 큰 걱정이 응어리져있던 참이였으므로 그이의 몇차례에 걸친 준절한 만류가 계셨음에도 불구하고 해당 일군들이 끈질기게 이 일을 내미는것을 보고 충심으로부터의 환영과 은근한 지원포를 쏴주고있었다.

어느날 저녁 유진성이 작전방향에서 들어온 통보를 가지고 장군님의 집무실에 들어섰을 때였다.

한손으로 팔굽을 잡으시고 명상에 잠기시여 창밖을 내다보시던 김정일동지께서 유진성을 띄여보시며 눈가에 반가운 미소를 지으시였다.

《그래 요즘 부인이랑 앓지 않습니까?》

그이께서는 통보자료를 보시고나서 눈길을 드시였다.

《장군님께서 배려하여주신 새집에 이사온 다음부터는 살수가 난 모양입니다. 이전처럼 토장도 담그고 크지 않은 터밭에 갓까지 심었습니다. 솔직히 말씀드리면 장군님께서 또 집에 오실수 있다면서 갓김치를 익을 차례로 열단지나 담가놓고 기다리는중입니다.》

유진성이 얼굴이 불그레해가지고 어줍게 말씀올리자 김정일동지의 따뜻한 눈가에는 감심의 빛이 어리였다. 그이께서는 걸상등받이에 몸을 기대시며 문건철을 집무탁우에 놓으시였다.

《동무부인은 정말 속이 깊은 녀성이요. 내가 갓김치를 좋아하는걸 잊지 않고있다니…》

김정일동지의 어조는 감동에 젖은듯 다소 낮고 갈리시였다.

그때 창밖에서 둔중한 폭음이 간간히 들려왔다.

김정일동지께서는 성급히 자리에서 일어나 창가로 다가가시였다. 그이께서는 창문을 활짝 열어젖히시였다. 눈부신 저녁노을빛과 함께 서늘한 바람이 밀려들어 창가림보가 옆으로 휘늘어졌다.

《진성동무! 저 소리가 들립니까?》

김정일동지께서는 안광을 빛내시였다.

《때아닌 폭음이 아닙니까?》

《허허허. 그렇습니다. 내가 대동강반에 짓는 그 휴식각을 당장 폭파해버리라고 했습니다. 대동강가에 휴식각을 덩실히 지어놓으면 인민들이 속으로 뭐라 하겠소. 저 폭파소리야말로 이 김정일이가 철저한 인민파라는것을 세상에 소리치는 장엄한 포성입니다!》

김정일동지께서는 팔을 앞으로 힘있게 펼치시며 밝은 웃음을 터치시였다.

유진성은 심장이 멎는것같은 강한 충격속에 그이의 음성처럼 울려오는 그 둔중한 폭음을 여겨듣고있었다.…

김정일동지께서는 군부대 지휘성원들과 함께 작전지도를 마주하시고 각 부대들의 배치와 임무 등을 구체적으로 밝혀주시고나서 사령관방을 나서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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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산님의 댓글

강산 작성일

(위에서 계속)

관하부대들을 찾으시려는것이였다.

《아직 시간이 있는데 진성동무, 군부대 전방지휘소와 중대를 돌아봅시다.》

유진성대장이 조심스레 시계를 들여다보았다.

《최고사령관동지, 사실 일정에는 래일 아침부터 중부지구 군부대지휘관들의 모임이 계획되여있습니다. 그리고 래일 오후엔 평양에서 국방위원회가 있습니다. 마전령을 통과하자면 오늘 낮중으로 떠나셔야 할것 같습니다.》

《일없습니다. 밤길이면 뭐랍니까. 수령님께서 오르셨던 고지인데 그냥 갈수 없습니다.》

유진성은 난감하여 그자리에 우뚝 서버렸다.

김정일동지께서는 문득 생각나신듯 유진성을 돌아보시였다.

《참, 부관에게 일러서 평양에서부터 준비해가지고 온 만두지함을 차에 실으라고 하시오.》

《최고사령관동지, 식사는 저희들이 준비하겠습니다.》

《오ㅡ 그건 도중식사감이 아니요. 필요해서 가져가는거요. 좀 모자라지 않겠는지 모르겠소. 준비한 지함이 하나 더 있겠으니 그것도 마저 싣도록 하시오.》

《알았습니다.》

유진성은 전화로 조직사업을 한후 서둘러 복도로 나왔다.

김정일동지께서는 넓은 복도를 걸으시며 뒤따르는 리평해사령관을 돌아보시였다.

《오늘 진행한 훈련경험에 기초하여 싸움준비를 더 다그쳐야 하겠습니다. 올해를 훈련의 해로 선포했으므로 나는 임의의 순간에 군부대들의 전투력을 예고없이 검열해보려고 합니다. 전번에 공군사령부에 〈폭풍〉을 내렸는데 그 동무들이 당의 기대에 어긋나지 않게 긴급출동을 잘해제꼈습니다. 각 비행대가 순식간에 떨쳐나서 활주로를 박차고 날아올라 경계비행에 들어갔는데 하늘을 꽉 덮은 우리 매들을 보고 남조선주둔 미제침략군과 태평양공군이 기겁하여 전투태세에 넘어갔다고 합니다. 어떻소? 사령관동무! 자신있는가?》

《최고사령관동지! 우린 땅우에 발을 붙이고있지만 한번 본때를 보이겠습니다.》

리평해는 차렷자세를 취하며 자못 배포유하게 말씀드렸다. 눈귀가 약간 째진 그의 네모진 얼굴엔 이 순간 감때사나운 사나이처럼 결패가 흐른다.

김정일동지께서는 자존심이 높고 승벽이 센 장령을 얼핏 스쳐보고나서 빠른 걸음으로 복도를 지나 중앙홀로 나가시였다.

김정일동지께서는 중앙홀정면에 걸려있는 대형미술작품앞을 지나시며 얼핏 그림을 훑어보시더니 그냥 걸음을 옮기시였다.

유진성은 리평해사령관과 인민군책임일군들과 함께 급히 그이의 뒤를 따라섰다.

현관문쪽으로 가시려던 김정일동지께서 다시 돌아서시여 빠른 눈길로 그림을 살펴보시였다.

다채로운 조선화기법을 현대적미감에 맞게 잘 살려 창작한 미술작품에는 경애하는 최고사령관동지께서 장령들과 함께 눈길을 걸으시며 활짝 웃으시는 모습이 형상되여있었다. 유진성도 여러번 눈여겨보아왔지만 최고사령관동지를 모시고 온 세상이 들썩하게 웃는 장령들의 모습이 볼만하였다.

눈치가 빠른 리평해사령관이 한걸음 나서며 팔을 들어 그림을 가리키였다.

《최고사령관동지, 우리 군대화가들이 품들여 그린 작품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 그림앞에 서면 발을 떼지 못합니다. 다들 걸작이라고 합니다.》

리평해는 긍지에 넘친 목소리로 설명하며 미소를 지었다.

김정일동지께서는 그의 말을 들으시다말고 다시 돌아서시여 걸음을 옮기시였다. 유진성은 미술작품이 김정일동지께 만족을 드린것같아 가벼운 마음으로 리평해를 바라보았다. 사령관의 얼굴에도 행복감이 어려있었다.

그 순간 현관문을 나서시던 김정일동지께서 또다시 대형조선화를 돌아보시였다. 그이께서는 걸음을 멈추시고 가벼운 미소를 지으신채 짐짓 엄하신 눈길로 리평해를 일별하시였다.

《사령관동무! 아까 들어올 때도 생각했던건데, 동무들이 정 최고사령관을 그리겠거든 저렇게 장령들과 우르르 몰켜서서 웃는 모습이 아니라 병사들과 함께 있는 화폭을 담소!

저 그림은 마음에 들지 않습니다!》

《?!…》

유진성과 리평해는 그 자리에 우뚝 굳어지고말았다.

김정일동지께서는 서둘러 야전승용차쪽으로 걸어가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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