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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소설 총대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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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강산
댓글 0건 조회 7,214회 작성일 20-12-05 1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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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총서《불멸의 향도》

 

                    장 편 소 설

 

2009-05-04-U01.jpg

 

                                박    윤

 

 

( 제 19 회 )

 

 

제 3 장

 

8

 

생활의 길엔 곡절도 있는 법이다. 성공과 환희도 있고 실패와 좌절도 있으니 그 굴곡많은 길을 굴함없이 헤쳐가야 할 인생길을 념두에 두었을것이다. 만약 최남호가 평범한 나날속에 이것을 생각했다면 그저 평범한 사색으로 스치고말았을것이다. 하지만 그는 지금 생활의 순간순간을 온몸이 예민한 귀와 눈이 되여 자기자신과 주위사람들을 살피며 쓰거운 고뇌속에서 하루하루를 보내고있었다. 그는 한주일간을 거의 포사격장에서 살다싶이하며 잠과 끼니를 잊은채 뛰여다녔다. 왜 뛰여다녔는가? 리유는 특별히 없었다. 면목이 있는 사격장 군관들은 평소답지 않게 포탄상자를 메고 말없이 뛰여다니는 그를 측은한 눈길로 바라보는것이였다. 사관들과 병사들도 몇번 말리는척 하다가는 어디론가 숨어버리군 했다. 주위가 조용해지면 그는 화선의 잔디밭에 주저앉아 담배를 꺼내들었다. 힘들게 끊었던 담배가 도루메기되고말았다.

그는 담배를 풀썩풀썩 피우며 어수선한 상념에 잠겨버렸다. 육체적으로 힘을 뺀다고 마음이 편해지는것은 결코 아니였다. 그는 쓸쓸한 생각에 잠겼다. 래일은 서부지구부대들의 포실탄사격이 있게 된다. 년초부터 계획하고 아래부서들이 근기있게 밀어온 포실탄사격이였다. 담당한 참모를 억지로 눌러앉히고 부득부득 이곳으로 내려온 그였다.

화선기슭의 아카시아와 평양뽀뿌라에 햇잎이 돋아 눈부시게 팔랑거린다. 최남호는 새삼스러운 눈으로 봄의 들판과 하늘을 바라보았다. 계절은 바야흐로 전진하고있었으나 그는 자기만이 유독 한자리에 머물러있는것 같았다.

아니, 그가 앞으로 걸어가면 떠나온 곳에 무엇인가 귀중한것이, 결산하지 못한것이 수두룩하게 남아있을듯 싶어 뜨지 못하는 기분이였다.

하지만, 래일은 또 떠나자, 마음은 떠나지 못해도 몸은 떠나자, 래일은 동부지구로 가야 한다, 일속에, 훈련속에 몸을 잠그자, 그러면 마음도 따라올것이다. 했으나 다음날저녁 최남호는 급히 내려온 김한경에게 《포로》되여 평양으로 올라오고말았다. 며칠사이에 살이 쪽 빠진 그를 보고 김한경대좌는 걱정어린 눈을 껌벅이였다.

《부국장동지, 안되겠습니다. 혁명을 하루이틀하다가 그만두겠습니까. 이런… 때일수록 자중하고 몸을 돌봐야 합니다.》

최남호는 집으로 돌아왔다. 안해도 단아도 보이지 않았다.

최남호는 몸을 씻고 제 방에 들어박혀 또 담배갑을 꺼내들었다.

새삼스럽게 유진성의 준절한 말들이 귀에 생생히 되살아났다.

그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 비수가 되여 마음속깊은 곳의 상처를 헤집는것이였다.

그는 또다시 그 아픔을 느꼈다. 그는 두손으로 이마와 뒤통수를 가볍게 문질렀다. 관자노리가 아파오더니 이어 그것은 머리통 전체로 퍼져갔다. 그는 다시 머리를 싸쥐였다.

유진성대장의 말이 옳다. 내가 무슨 전사의 자격이 있는가. 인간된 량심이 있는가! 그러고보면 나라는 인간은 얼마나 무서운 위선자인가. 결국 전군적인 훈련에서 눈에 띄는 실적을 내여 이미 굳어져온 일군으로서의 영상을 흐리려하지 않았다고 감히 부정할수가 있는가.

출입문쪽에서 가볍게 문소리가 들려왔다. 신발장을 여는 기척이 나는듯 싶더니 이윽고 조용해졌다. 아마 안해는 신발장안에서 남편의 단화를 알아본 모양이다. 최남호는 무의식적으로 귀를 강구었으나 출입문쪽에서는 더 아무런 소음도 들리지 않았다. 그는 어쩐지 속이 허전해지고 괴로왔다.

남편의 신상에 불현듯 찾아든 변화를 두고 누구보다도 신경이 예민해지고 섬세해진 안해였다. 아픈 몸으로 더욱 정성을 기울여 밥상을 장만했고 복도에서 발소리조차 내지 않으려고 실내화를 벗고 다녔다.

최남호는 이런때면 자기자신이 이상하게 느껴졌다.

자기의 감정과 신경이 바늘끝처럼 뾰족해진데 놀랄뿐이였다. 다른때 같으면 가까운 주위사람들의 이런 섬세한 동작들과 소음들이 그의 눈에 띄우고 귀에 걸려 들리가 만무였다.

그런데 좌절과 실망, 뼈저린 자책감에 깊이 빠져버린 지금, 인생의 중대한 대용단이 필요한 이 시각 과연 자기자신이 이런 사소하고 부차적인것들에 지꿎게도 시선과 신경이 간다는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차라리 안해가 로골적으로 남편에 대한 불만과 경원, 지어 적의를 드러낸대도 마음이 이렇듯 무겁고 허전하지는 않을것이다. 단아가 패뜩패뜩하는 제 성미를 그대로 살려 아버지를 질시하거나 원망한대도 지어 비난하거나 책망한대도 그는 오히려 마음이 가벼울것같았다.

그들의 조심스러움, 그들의 말없는 격려, 억울함을 당한것같은 애처로운 표정들이 반대로 최남호에게는 무서운것이였고 참을수 없는것이였다.

(여보, 차라리 이 몹쓸 남편을 맞대놓고 푸념이라두 하구려. 사정을 두지 말고 등을 때려라도 주구려…)

최남호는 지금 쓰거운 상념속에 자기의 마음이 여지없이 약해졌다는것을 깨달았다. 무엇인가 억센것에 기대고싶은, 아니 비록 작은것에라도 인간적인것에 매달리고싶은 상서롭지 못한 충동이 체내에 일어나고있다는것은 그의 마음이 가늘어졌다는것을 의미하는것이다.

《아!ㅡ》

그는 가볍게 신음소리를 냈다.

그 순간 불현듯 전화종소리가 울렸다.

그는 첫순간 그 소리를 듣지 못하고 자기 상념속에 빠져있었다.

재차 들리는 전화종소리를 의식하는것과 함께 그는 비스듬히 열린 문가에 소리없이 나타난 안해의 놀란 얼굴을 보았다.

두사람의 눈길이 한점에서 부딪쳤다.

최남호는 흠칫 놀라 전화기로 허둥지둥 달음쳐갔다.

《최남호동무요? 내 김정일입니다.》

너무나도 귀에 익고 친근한, 청청하신 음성에 최남호는 온몸이 그대로 돌처럼 굳어져버렸다.

그는 자기가 무슨 정신으로 인사의 말씀을 올렸는지 가늠할수 없었다.

그는 자기를 수습하지 못한채 그저 송수화기를 틀어쥐고 서있을뿐이였다.

《무슨 목소리가 그렇습니까. 군부대들앞에서도 쩡쩡 울리던 그 쇠소리나는 지휘관의 목소리는 어디 갔소. 그래 책벌이 최남호라는 인간을 한순간에 쓸어눕혔단말이요?…

허허, 동무의 아들이 들었다가는 깜짝 놀라겠소. 군관인 아버지야말로 병사의 진짜거울이거든…

최남호동무가 아들 하나는 잘 두었습니다. 우리가 전번에 전선길에서 최명진이를 만났댔는데 정말 큰 힘을 얻었소. 그곳 구분대지휘관들도 최명진분대장에 대한 평판이 좋았소. 몸도 건강하고 군사복무를 아주 성실히 하거든!》

김정일동지의 약간 높은 음성에는 상대방의 마음을 순간에 확 끌어당기는 따뜻한 인정미가 풍기고있었다.

최남호는 눈시울이 뜨거워지는것을 의식했다.

《최고사령관동지, 정말… 면목이 없습니다.》

《허허, 동무가 고민한다는 보고를 받았습니다. 그 말을 들었을 때 솔직히 말하면 난 동무에 대한 기대가 허물어지는것 같았소. 견실하고 진실한 혁명동지로 믿었던 동무에게 그런 나약성이 숨어있었다는것이 리해되지 않았소. 그래 우리가 비판을 하고 중한 책벌도 주는것이 무엇때문이라고 생각하오? 사람이 미워서인가? 몹쓸 놈이라고 밀어내치는것인가?…》

김정일동지께서는 잠시 말씀을 끊으시였다.

최남호는 가슴을 파고드는 그 뜨거운 목소리를 자기의 두뇌, 아니 심장과 넋에 깡그리 새겨넣으려고 이 순간 모지름을 쓰고있었다.

《최남호동무가 우리의 심정을 그렇게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섭섭합니다. 책벌도 큰 사랑이란걸 알아야 하오.

동무는 우리가 생사를 같이한 동지를 잊거나 멀리하는걸 보았는가! 그가 비록 천리, 만리밖에 있더라도 찾아가 품에 안고 생명을 잃었더라도 붉은 기폭에 안아오는것이 우리 당입니다. 단 한명이라도 우리가 혁명동지를 배척하는걸 동무가 보았는가? 알고있다면 대답해보오!》

그이의 절절하신 음성이 거대한 뢰성마냥 최남호의 가슴을 흔들었다.

최남호는 그저 송수화기를 억세게 틀어잡은채 큰 호흡으로 격정을 누르고있을뿐 아무 대답도 드릴수 없었다.

《!…》

《나는… 언젠가… 백두산바람을 맞으며 밀림속을 함께 걸을 때 동무를 심장에 새기게 되였소. 수령님위업을 받들어 혁명의 한길에 생사고락을 같이 할 혁명동지로 동무를 심장에 간직했단 말이요. 우리가 지금 제국주의련합세력의 고립압살과 준엄한 혁명의 시련속에서 강행군을 하고있는때 동무가 그래 내곁을 떠나겠단말인가. 그건 붉은기를 버리겠다는것과 다름이 없소. 그래 우리는 누구를 믿고 붉은기를 지키고 혁명을 하란말이요?

최남호동무, 대답해보오!》

뜨거운것이, 불같은 물줄기가 볼을 타고 흘러내렸다.

격동으로 달아오른 가슴에 산악같은것이 일어선다.

최남호는 그만 참지 못하고 오열을 터뜨리였다.

《최고사령관동지, 제가 또다시 죄를 지었습니다. 의리도 신념도 없이 제가…》

《그만하오. 동무가 자기를 깊이 뉘우친다는것을 모르는게 아니요. 허나 그것이 도를 지나쳐서 자기를 무자비하게 타매하고 그것이 자살적인 반성으로까지 치달으니 마음이 아파 그러오.

허참, 동무같은 고지식한 인간은 한번 비판하기도 무섭구만. 됐소. 그래 군인답게 대답하오.

최남호동무, 이제 더 주저앉겠는가. 당의 믿음에 백절불굴의 정신으로 새 출발을 하겠는가?》

《최고사령관동지!… 제… 심장이 뛰는 마지막순간까지 귀중한 그 말씀을 명심하겠습니다. 당을 받드는 길에서 다시는 헛길을 걷지 않겠다는것을 맹세드립니다.》

최남호는 목이 꺽 막히여 더 말씀드리지 못하고 소리없이 눈물을 흘리였다. 그는 마치 앞뒤가 콱 막힌 깊은 협곡에 들었던 사람이 해비치는 드넓은 대지에 나선것처럼 류다른 안정이 이 순간 자기에게 찾아왔다는것을 깨달았다.

인간이란 믿음과 사랑앞에서는 그리도 무른 존재인가. 믿음이란 그래서 그리도 값높은것이고 떠나선 살수 없는 생명소같은것인가. 그리도 고귀하고 해빛같은것이기에 그것은 위대한 심장만이 줄수 있는것인가.

《허허, 군인다운 대답을 들으니 내 마음이 다 후련합니다. 전사의 길이 늘 평탄하겠는가. 승리와 영광도 있고 준엄한 시련과 곡절도 있는것이지. 우리야 혁명하는 사람들이 아니요. 언제한번 시간이 허락되면 우리 속을 툭 터놓고 이야기해보기요. 혁명가의 인생과 래일을 두고말이요!》

김정일동지의 음성은 무엇인가 아쉬움에 젖어있었다.

최남호는 전화가 끝난후에도 오래도록 그 자리에서 움직이지 못하고있었다.

창밖에서는 해가 지고있었다. 바람에 나무가지들이 떨리고 그 사이로 지는 해도 락조도 어쩐지 가볍게 흔들리는것처럼 느껴진다. 그는 아직도 자기의 눈가에 눈물이 맺혀있다는것을 깨달았다. 그는 자신을 강철같은 사나이라고 내심 여기고 살아왔다. 어떤 엄혹한 정황에서도 눈물을 흘리지 않았다. 하지만 그는 지금 처음으로 눈물을 보이고있었다. 그 눈물속에서 한생에 두번다시 없을 귀중한 언약의 시간을 끌고있었다.

등에 덧옷이 천천히 씌워졌다. 그는 돌아서서 말없이 안해의 연약한 어깨를 쓰다듬었다.

《여보, 내가 막 역겨웠지?…》

《아무 말 말아요. 고통은 지나가지 않았나요.》

락조가 그 녀자의 잔잔한 눈을 비쳤다.

최남호는 비로소 안해의 눈이 그토록 사려깊고 그윽하다는것을 발견한듯싶어 놀라운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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