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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소설 총대 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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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강산
댓글 0건 조회 1,997회 작성일 20-12-26 18: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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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서《불멸의 향도》

 

                    장 편 소 설

 

2009-05-04-U01.jpg

 

                                박    윤

 

 

( 제 40 회 )

 

 

제 6 장

 

2

 

모든 강은 바다와 이어지기마련이다. 그렇지 않다면 그건 강이 아닐것이다. 김강인은 솔직히 말해서 이런 큰 강이 희한하기도 하였지만 속으로는 좀 두려웠다. 만약 최명진분대장이 퇴원해온다면 벌써 강이건 바다이건 문제없이 정복했을것이다. 한철준참모장은 분대장이 인차 대대로 돌아온다고 했지만 그건 두고봐야 한다. 김강인은 자기가 이제 어떤 낯으로 분대장을 만나야 할지 지금은 도무지 궁리가 서지 않았다. 어찌하여 최명진이 서슴없이 흔들리는 바위에로 뛰여들 때 자기는 곁에 서서 아우성만 쳐야 했던가. 어찌하여 분대장의 몸에서 견인바줄에 뼈가 부서져나갈 때 자기는 보고만 있었는가.

나에게 어떤 비겁성이 존재했던가.

아무리 생각해봐야 분명 그런 너절한것은 없었다. 그저 그런 가슴이 떨릴만 한 위험한 장소엔 좀 다른 사람들, 례하면 분대장이나 대대장같은 일군들이 서야 한다고 생각해봤을뿐이였다. 일은 실지 그렇게 되고말았다.

하지만 리만순정치위원이 힘들게 뛰여와 몸을 내댈 때 김강인은 누군가가 자기를 부르는 소리를 듣게 되였다. 그것이 누구의 목소리였는지 지금도 생각해낼수 없으나 그는 분명히 다정하고 엄격한 그 목소리를 들었다. 그것은 그의 마음속깊은 곳 어딘가에서 울려나오는 목소리였는지도 모른다. 그는 그 목소리, 그 명령을 듣고서야 펄쩍 놀라며 바위밑에 뛰여들었다. 하지만 그것은 그 싱검둥이 김창모땅크장의 말처럼 계기가 늦은 행동이였다. 김창모의 말은 김강인의 부아를 돋구기 위하여 철저히 준비된것이였다.

《강인동무, 동문 같은 북쪽내긴데 말이요. 항상 봐야 좀 늦거든. 누가 우스개소리 하나 해도 동문 남들이 웃음을 다 거둬들인 다음에야 시작하지, 뭘 물어보는것도 그래, 계기가 늦어. 철학적사색을 하느라 그래? 하여튼 좋아. 그게 바로 시인적기질이라는거야. 하지만 명심하오. 전투에선 계기가 늦으면 절대로 안돼.》

병사들은 그 말을 듣고 왁작 웃어댔으나 이번에도 김강인은 함께 웃을수 없었다. 하지만 그것이 웃음의 계기문제가 아닌것만은 명백했다. 위훈의 주인공들이 군의소로 실려갈 때 긁힌 자리 하나 없이 멋적게 서서 그들을 바래야 했던 김강인의 처지는 자기가 보기에도 좀 뭣한것이였다. 김강인은 아예 풀이 죽어버렸다. 언젠가 최고사령관동지앞에 나설 기회가 생긴다면 어떻게 머리를 들고 우러를수 있겠는지 지금은 전혀 자신이 없었다.

김강인은 전마선을 천천히 강건너편쪽으로 몰아갔다. 김창모에게 착 달라붙어 익힌 보람이 있어 노질도 이젠 제법이다. 바람질이 좀 세서 그러지 이런 속도면 인차 기슭에 가닿을것이다. 강하구의 맞은켠에는 대대의 후방기지가 있다. 부대가 이동전에 차지한 밭이지만 한철준참모장의 고집으로 그냥 부치고있다. 펄펄나는 싸움군들이 득실득실한데 강이 무슨 대수냐고 우기는 바람에 강무전 이전 부대장이 할수 없이 손을 들었다고 한다.

그 강 건너밭에는 풋강냉이 약간과 콩을 심었다. 어제부터 강냉이를 수확하기 시작했다. 역시 공병은 이런 후방기지에서도 보장대이다. 수확한 강냉이이삭을 날라들이는 일이 분대에 차례졌다.

지금은 함께 전마선을 맡은 부분대장이 소대장을 따라 중대로 급히 떠나는 바람에 혼자서 빈 배를 몰아가는 길이다.

배를 기슭에서 떼낼 때 한철준참모장이 멀찌감치로 지나가며 높고 가는 목소리로 소리질렀다.

《누구요?》

《공병분대 김강인입니다.》

《소린 왜 쳐? 벌써 알아보았소. 강냉이밭으로 가오?》

《예, 김창모땅크장동지가 기다립니다.》

《좋아, 빨리 와야 하오. 예술선전대공연이 있다구 알리라구. 바람이 부는것 같은데 산골내기가 일없겠소?》

김강인은 당장 볼이 부어버렸다.

《참모장동지, 저두 어렸을 땐 바다가에서 자랐습니다.》

《그래? 처음 듣는 소리다?》

그러나 그것은 사실이였다. 김강인의 출생지는 단천시 룡대였던것이다. 그의 어머니는 룡대수산사업소에서 부기원을 하다가 장강군총각에게 홀치웠다. 어머니는 외가집이 있는 바다가마을에 와서 김강인을 낳고 몸조리를 하느라 돌이 될 때까지 눌러있었다. 그러니 김강인은 나서 1년을 바다가에서 산셈이다.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그는 중학시절에야 겨우 외할머니네 집에 다시 와서 바다를 보았다. 산골짜기에 고인 손바닥만 한 웅뎅이에서 개헤염이나 치던 김강인에게 있어서 끝간데 없는 시퍼런 바다물은 무시무시하게 느껴졌다.…

김강인은 어쩐지 노를 잡은 손에 자꾸 더 힘이 가는것을 느꼈다. 바람이 점차 세지고있었다. 강반우에 구름이 낮추 뜨고 뿌연 안개에 가리워 강변은 보일듯말듯 하다. 그는 불안해져서 조급하게 노를 휘저었다.

안개의 색갈이 차츰 짙어지고 배전을 치는 물결이 군복바지에 튕겨오른다. 전마선은 몹시 흔들거렸다. 배가 별안간 아래쪽으로 밀리는것 같다. 노대에 엄청난 힘이 가고 바람이 온몸을 쓸어눕힐듯이 퍼드럭거린다. 갑자기 하늘이 어두워지더니 비방울이 후두둑후두둑 배전을 친다.

김강인은 떠나온쪽을 돌아보았다. 오히려 그쪽이 자욱한 물안개에 묻혀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결국 가닿을 기슭쪽이 더 가깝다는것을 판명한셈이다. 아무리 갑자기 어두워져도 안개가 껴도 방향을 잃을 념려는 없다. 동해로 향하는 물흐름이 빨랐기때문이다.

그는 마음을 다잡고 싱긋 웃으며 노를 힘차게 저었다. 최명진분대장이 자주 짓는 소리없는 웃음이다. 그 웃음이 웬일인지 김강인의 마음을 푹 가라앉히는 신기한 작용을 하군 했다. 지금 김강인은 분대장의 그 웃음을 상기하려 했고 이런 정황이 발생했을 때 그가 할수 있는 말을 찾아내려고 하였다.

그는 그 말을 찾아내고야말았다.

《강인이, 걱정하거나 덤벼칠건 없어. 이쯤한건 강이라 볼수 없어. 물살이 빨라지더라도 일없어. 그저 좀 사선방향으로 기슭아래쪽에 밀려서 가닿을테니까. 그렇지, 흐름을 직각으로 자르려말고 물흐름을 리용해야지.》

배가 앞으로 아니, 약간 사선으로 전진하기 시작했다.

최명진분대장은 평양내기이지만 대동강을 혼자서 헤여건느군 했다 한다.

그는 얼굴이 녀자처럼 생겼지만 상체가 속옷을 벗으면 그야말로 근육덩이들로 빚어놓은 조각상같다. 머리도 픽픽 돈다. 소대장이나 때로 중대정치지도원이 정치상학을 집행할 때면 꼭꼭 그를 지명한다. 그의 토론은 명백하고 론리정연하고 자신만만하다.

그는 《탁상교양자료》를 거의 토하나 틀림없이 휑하니 꿰들고있을뿐아니라 입원하기 전에는 어데서 얻어왔는지 정치도서들을 한무더기 가져다보군 했다. 김강인이 몰래 얼핏 뒤져보았더니 그것은 좀 복잡하고 깊이있는것이였다. 슬쩍 물어보니 군관학교 학생들이 리용하는것이란다. 우리 분대장은 대단하다. 때로는 소대장까지 자주 그와 마주앉아 정치리론문제들을 진지하게 토론하군 한다. 때로 소대장은 얼굴이 붉어져가지고 흥분하여 어성을 높이기도 하지만 최명진분대장은 싱긋 웃으며 침착하게 설명한다. 그러면 소대장이 머리를 정열적으로 끄덕끄덕한다. 한철준참모장은 가끔 롱말로 저 최명진이는 이제 군관학교를 갔다오면 사단장까지 될수 있는 《난놈》이라고 춰주기도 한다.

김강인은 자기 분대장을 잘 알고있다. 최명진은 일생 군복을 입고 리만순정치위원처럼 정치일군이 되고싶어하는 군인이다.

입당할 때도 그렇게 말했다고 한다.

김강인은 군복저고리 웃주머니를 손으로 눌러보았다. 정히 싼 비닐봉지가 느껴진다.

최고사령관동지께서 몸소 보아주신 그 귀중한 담배이다.

최명진분대장이 몇대씩 나누어준것을 이렇게 품속에 고이 간직했던것이다. 이제 고향에 가면 부모님들과 동창생들에게 보일 생각이다.

갑자기 상류쪽에서 황토색물줄기가 끓으며 밭이랑처럼 솟구쳐 올라 사품쳐오더니 전마선을 왈칵 덮쳤다. 전마선이 중심을 잃고 한옆으로 기울면서 배전으로 물이 흘러들었다. 그 순간 센 바람이 노대를 빼앗으려는듯 휙ㅡ 나꾸어챘다. 김강인은 겨우 노대를 잡아뽑았다. 강파도가 사나와지고 안개는 다소 설펴진다. 거센 물흐름이 전마선을 마구 감아잡고 사정없이 아래로 끌어간다.

김강인은 노대를 휘저었다. 한순간 그는 자기가 정황판단을 잘못했다는것을 깨달았다. 이 강은 건너편기슭쪽에 평시에도 물살이 센 곳이 있다. 아마 그쪽으로 물곬이 난 모양이다. 제길, 구대원이 그걸 잊다니…

김강인은 잠시 노를 물에 박고 희미한 어둠이 깔린 기슭을 바라보았다. 강기슭은 그리 먼것 같지 않다. 이제는 공병의 체면을 더 지킬 처지가 못되였다.

김강인은 기슭에 대고 소리질렀다.

《땅크장동지!ㅡ 창모땅크장동지!ㅡ》

폭우와 바람소리가 김강인의 목소리를 삼켜버리려고 기승을 부린다. 아무 반응도 없다. 또 계기가 너무 늦었는가? 김강인은 점점 더 안타까운 생각이 들어 두손바닥을 오그려 모아쥐고 목청껏 웨쳤다.

《창모동지! 순철이ㅡ》

노대가 들리면서 전마선은 급류에 실려 떠내려간다.

《창모동지!ㅡ》

그러자 썩 먼 곳에서 가느다란 화답소리가 들리는듯 하다.

김강인은 눈물이 왈칵 쏟아지는것을 느꼈다. 그는 다시 억세게 노대를 틀어쥐였다. 그는 자기의 팔목에 힘이 생겨나는것을 느꼈다. 두다리를 뻗치고 노를 저어 기슭에 붙이려고 애썼다.

그 순간 귀가 멍하도록 음산한 소리를 지르며 바람이 그를 덮쳤다. 김강인은 어쩔새없이 강물에 떨어졌다. 했으나 한손에는 그냥 노를 쥐고있었다. 사나운 물결이 그를 마구 잡아당기고 고정못에 걸린 노대가 빠져 나가려고 푸들거린다.

김강인은 노대를 놓고 기슭으로 헤염쳐 보려고 생각했다. 하지만 대대의 귀중한 재산인 전마선을 버릴수 없다는 책임감이 들었다.

김강인은 발버둥을 쳐서 배전을 틀어잡았다. 힘껏 몸을 솟구려하자 금시 배가 뒤집힐듯이 기우뚱거린다. 그는 물의 뜰힘을 리용해 천천히 배전에 기여올라 쓰러지였다. 그는 배의 중간 가름대우에 뺨을 댔다. 그는 지치고말았다. 이제는 그 가느다란 동지들의 화답소리도 끊어지고말았다. 폭우는 그냥 쏟아지고 바람은 강물우에서 울부짖었다. 그는 흠칫 놀라며 일어나앉았다. 주위는 물소리가 소란하고 짙은 어둠과 안개가 모든것을 삼켜버렸다.

이대로 자꾸만 떠내려가면 안된다. 그러다가는 바다로 흘러들수 있다. 김강인은 이제 얼마쯤 더 내려가 린접구분대의 염소방목장이 있는 강굽인돌이쪽에서 물흐름이 떠진다는것을 알고있었다. 그곳이 김강인이 마지막운명을 판가리할 결정적물목이다. 거기서 배를 기슭으로 몰아야 한다. 만약 그럴수 없을 땐 어쩔수 없이 배를 버리고 기여서라도 기슭에 올라야 한다. 그렇다! 힘을 아껴야 한다. 이제는 밑에 신대원들이 세명씩이나 붙었는데 구대원이라는것이 이게 뭐람! 무엇인가 쩝쩔한것이 입귀로 흘러든다. 그것은 비물이 아니였다. 김강인은 손으로 볼을 씻었다. 피가 묻어나는것 같다. 비로소 방금 물에 떨어질 때 배전에 머리를 쪼았다는것을 깨달았다.

그는 중심을 잃고 요동하는 배우에 엉거주춤 일어섰다.

그 순간 검은 하늘에 눈부신 퍼런 섬광이 번뜩이면서 아츠러운 우뢰소리가 강반을 뒤흔든다. 련속 터지는 섬광속에 쏟아져 내리는 비줄기와 어둠에 잠긴 검푸른 숲이 비쳐들고 격랑을 일으키는 격노한 황토색강물이 얼핏 드러난다.

김강인은 비칠거리며 일어나 노대를 잡아쥐였다. 한찰나 강하구쪽에서 무서운 굉음을 지르며 달려든 강력한 폭풍이 김강인을 허궁 들었다. 김강인은 소리를 지르면서도 손에서 노대를 놓지 않았다. 광풍은 김강인을 한길이나 되게 끌어올렸다가 배전에 태질하였다. 그는 순간 앞이 캄캄해지면서 어딘가 천길나락 같은데로 떨어져 내려갔다. 김강인은 무엇인가를 잡으려 하였으나 몸은 그냥 아래로 떨어진다. 문득 그는 손에 노대가 쥐여있는것을 깨달았다. 그러나 노대를 걸칠 곳이 없다. 그는 계속 어디론가 떨어져 내리고있었다. 그것은 속도가 고르롭고 몸을 둥둥 띄우는것 같은 일종의 안정감이였다. 그는 비로소 한숨을 내쉬며 노대를 꼭 틀어쥐였다. 이대로 잠들수 있을것 같았다. 그는 풀밭에 자기가 누워있는것 같았다.

아! 드디여 기슭으로 기여오른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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