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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소설 강자 29, 30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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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강산
댓글 1건 조회 10,603회 작성일 21-01-25 19: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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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

 

리석민은 생각이 깊어졌다.

그도그럴것이 동주뽐프공장에 실태료해를 갔다온 윤상배와 김원삼의 반영이 불협화음이였던것이다.

윤상배의 말은 현재 공장이 뽐프생산의 선행공정인 주물직장이 갓 이설을 하다보니 대상설비생산이 지장을 받고있으며 고양정뽐프의 기본재료를 뽑을 저주파유도로가 불비하다는것이였다. 아니, 저주파유도로에서는 절대로 뽑을수 없다는것이다.

그러면서 력점을 찍어 강조한것은 다른 나라에서 만든 고양정뽐프의 기술자료를 한건도 참고하지 못한채 자체로 설계를 했다고 하는데 그걸 어떻게 믿겠는가 하는것이였다.

반면에 김원삼의 말은 윤상배의 말과는 완전히 상반되는 절대적인 긍정이였다.

긴 설명이 없이 그들은 얼마든지 만들수 있다는것이였다.

하다면 누구의 말을 믿어야 하는가.

아마 다른 사람들도 들어보면 론리적으로 상배의 반영이 객관적이라고 할듯 싶었다.

그로 말하면 평양기계대학에서 뽐프에 대하여 전공하였으며 동주뽐프공장에서 현장체험을 한것만큼 그 분야의 물계를 환하게 꿰고있다고 보아야 할것이다.

더우기 께름한것은 처음 만드는 뽐프설계를 다른 나라의 기술자료를 전혀 보지 못하고 자기들식으로 했다는것인데 그것을 기술적으로 담보할수가 있겠는가 하는것이였다.

게다가 믿음이 안 가는것은 무턱대고 할수 있다고 주장하는 김원삼은 동주뽐프공장에 대해서는 전혀 파악이 없는 사람이였다.

현재는 찬반이 일 대 일이지만 반대표를 던질 사람이 또 있었으니 그는 지도국의 차부국장이였다.

처음부터 고양정뽐프제작을 들고나온 리대철을 도깨비라고 쓴외보듯 한 그는 분명 윤상배와 목청을 합칠것이다.

그런데 웬걸, 믿는 도끼에 발등 찍힌다고 엊그제까지만 해도 리대철을 죽일 놈 살릴 놈 하던 차부국장이 언제 그런 일이 있었던가싶게 방금전에 전화로 동주뽐프공장편에 지지표를 던질줄이야.

리석민은 그만 아연해지고말았다.

이제는 어쩔수 없이 자기 주견을 세우는 수밖에 없다는 결론을 내린 리석민은 닭알 주무르듯 조심스럽게 이것저것 재여보던 끝에 드디여 결심을 내렸다.

수입안은 건설초기부터 정정당당하게 승인을 받은것만큼 일이 제기된다고 해도 주견을 세워 할 말이 있지 않는가.

더구나 이제는 시간이 없다.

동주뽐프공장 지배인이 알면 가만있지 않을테지만 어찌하랴.

죽는것보다 까무라치는것이 낫다고 그 공장을 믿었다가 일이 찌그러지면 그 책임을 누가 진단 말인가.

벌써 45층아빠트는 골조조립을 끝내고 내외부미장작업에 들어갔으며 그에 뒤질세라 다른 아빠트들도 이삼일이면 골조조립을 끝내게 된다.

어제 총화때 들은 말에 의하면 모든 아빠트들의 뽐프장들의 내부미장과 타일붙이기를 끝내였는데 남은것은 뽐프를 가져다 설치하면 된다고 한다.

그러지 않아도 건설지휘부 책임일군들이 빨리 뽐프를 대책하라고 독촉하는데 동주뽐프를 믿고있다가 실패하는 날엔 무슨 벼락을 맞을지 모른다.

다 익은 음식을 놓고 입에 넣느냐 뱉느냐 하며 망설인다는게 말이 되는가. 수입을 책임진 권한을 가지고있으면서 무엇을 주저할소냐.

바닥없이 깊어지는 상념에 빠진 리석민을 놀래우며 전화종소리가 울리였다.

송수화기를 집어드니 집의 로친의 살가운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령감, 이젠 날 잊은게 아니우?》

로친의 말에 리석민은 집에 들어가본지 거의 한달이 되였다는 생각이 들었다.

《허허허! 미안하오. 하도 일이 바쁘니 언제 로친 생각을 할새가 없구려. 그래 요새 심장은 어떻소?》

《상배 그 사람이 사다준 수입약이 좋긴 좋습디다. 금시까지 심장이 쑤셔대다가도 그 약만 들어가면 거짓말처럼 뚝 멎는데 얼마나 편안한지 모르겠어요. 그 약도 이제는 얼마 남지 않아 걱정이예요.》

《또 사오면 되지 별걱정을 다 하누만.》

《상배 그 사람이 또 언제 외국에 가우?》

그 물음에 어떻게 대답할지 몰라 바재이던 리석민이 적당히 얼버무렸다.

《때가 되면 갈게요.》

리석민은 골살을 찡그리였다. 이런 딱한 일이라구야.

전화를 끊은 리석민은 입을 다시였다.

마음이 산란하였다.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탄과도 같은 처의 심장병때문에 늘 마음을 놓지 못하는 리석민이였다. 그래 좋다는 약은 다 구하여 써보았지만 별로 차도가 없었는데 상배가 구해다준 약을 먹고 효과가 있다니 야단이 아닌가.

지금 집사람은 상배에게 기대를 걸고있다.

급한 일에 부닥치고보니 어차피 윤상배의 도움을 받지 않으면 안되겠구나 하는 생각이 마음을 휘저었다.

고민에 싸인 사람모양 두손으로 머리를 싸쥐고 한숨을 내불던 리석민은 팔을 뻗쳐 전화기를 끄당겨 번호판을 눌렀다.

삑ㅡ하는 신호음에 이어 확성기로 《윤상배입니다. 안녕하십니까.》 하는 공경스러운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이보게, 암만 생각해봐도 자네 의견을 따라야 할것 같구만.》

그런 말이 나오기를 기다리기라도 한듯 윤상배의 목소리는 거의 환성에 가까왔다.

《당장 확스를 보내겠습니다.》

《그렇게 하라구.》

전화를 끊은 리석민은 큰 시름을 던듯 긴숨을 내쉬였다.

대방에게 확스를 보내려고 국제통신국으로 승용차를 달리는 윤상배의 마음은 바다가로 해수욕을 가는 심정이였다.

푸른 물 출렁이며 어서 오라 반기는 바다에 풍덩 뛰여들어 열기로 단몸을 식히는 상쾌감에 온몸이 쩌릿해났다.

가능성도 보이지 않는 동주뽐프공장에서의 제작이라는 소용돌이에 말려들어 신경전을 벌린걸 생각하면 어처구니가 없었다.

이보라구, 대철이. 욕망만을 앞세우는것은 수영할줄 모르는 사람이 세찬 강물에 뛰여드는 격이야.

우에서 이미 결정한것을 뒤집어보겠다고 버둥거려야 꼬리가 몸을 흔드는 법은 없어.

어쨌든 자넨 담통이 큰 사내야.

성공을 한다는 담보도 없이 그런 엄청난 판을 벌리겠다고 하니 참…

우둔한 놈 곰 잡는다니까 자네도 우둔한체 하고 곰을 잡아보겠다는건가. 안돼, 현명한 사람은 앉을자리, 설자리를 정확히 가려보는 법이야. 이제라도 결심을 달리하라구. 자네가 그렇게 장담했던 뽐프가 물을 퍼올리지 못하면 그 책임이 몇마디 추궁으로 끝날상싶은가.

법적인 책임이 뒤따른다는것을 왜 생각 못하나.

비행장활주로처럼 곧게 뻗은 광복거리도로를 빠져나와 개선문쪽으로 달리던 승용차가 갑자기 덜컥 멎어서는 바람에 상념에 잠겼던 윤상배가 흠씰 몸을 떨었다.

《왜 그러나?》

운전사가 무겁게 한숨을 내쉬였다.

《또 고장입니다.》

푸접없이 응대하는 운전사는 이제는 고물같은 차를 다루기가 신물이 난다는 인상이였다.

《조금만 참으라구. 이번에 갔다오면 더는 손에 기름묻힐 일이 없을거네.》

차에서 내린 운전사가 기관뚜껑을 열어제끼였다.

뒤따라 차에서 내린 윤상배가 길옆 가로수그늘밑으로 들어서며 주머니에서 담배를 꺼내는데 손전화신호음이 울리였다.

서둘러 손전화기를 꺼내보니 리석민의 손전화번호가 찍혀있었다.

좀전에 전화를 하였는데 또 무슨 전화인가.

불길한 예감이 마음을 긴장시켰다.

《윤상배입니다.》

공경스레 전화를 받던 윤상배의 얼굴이 금시에 우거지상이 되였다.

한참이나 막대기처럼 꼿꼿해서 전화를 받은 윤상배는 전원을 끄며 역증을 내였다.

《빌어먹을! 제가 뭐길래 발잔등을 밟는거야.》

승용차기관에 코를 박고있던 운전사가 얼굴을 들며 웬일인가 해서 윤상배를 쳐다보았다.

분풀이를 하듯 손에 쥐였던 담배가치를 꺾어 집어던진 윤상배의 얼굴에선 경련이 푸들거렸다.

방금 리석민으로부터 받은 전화는 대방에게 확스를 보내되 뽐프전량이 아니라 시험용으로 몇대 들여보내라고 하라는것이였다.

일이 그렇게 된것은 좀전에 김원삼이 날린 불찌때문이라고 한다.

뽐프공장실태료해이후 제기한 자기의 의견을 무시한 리석민이 윤상배의 말을 듣고 뽐프전량을 들여오기로 하였다는것을 알게 된 김원삼은 격분하였다.

육박전에 나선 병사마냥 눈에 쌍심지를 켜들고 리석민을 찾아간 김원삼은 책상을 두드리며 윤상배가 공장사람들앞에서 입에 침발린 소리를 하고 돌아와서는 딴소리를 하면 되는가, 그가 제기한 뽐프생산불가능설은 그 공장 로동계급의 존엄과 자존심을 무시하는 용서받을수 없는 행위이다, 현재 공장에서는 뽐프제작에 들어갔는데 수입품을 들여오면 그 사람들이 가만있을상싶은가, 당장 달려올라와 윤상배의 목대를 꺾어놓든 무슨 일을 칠것이다, 그렇게 되면 우리의 립장이 어떻게 되겠는가고 하였다.

사개가 빈틈이 없는 김원삼의 공격에 끓는물벼락을 맞은 국수오리신세가 된 리석민은 입이 열두개라도 할 소리가 없었다.

그가 돌아간 후 리석민은 직급상 아래사람인 김원삼에게 끌려다니는 자신이 원망스러웠다.

처음에 뽐프문제가 제기되였을 때 주견을 명백히 세웠더라면 이런 일이 없었을텐데…

한걸음의 양보가 오늘 나를 어떤 처지에 몰아넣었는가.

일인즉은 이렇게 되였다.

며칠전 저녁사업총화때 건설지휘부 책임일군이 리석민에게 윤상배동무가 동주뽐프공장에서는 절대로 고양정뽐프를 만들수 없다고 하면서 수입안을 다시 검토해줄것을 제기하였다며 어떻게 된 일인가고 따져물었다.

그러면서 언제는 수입을 보류하고 동주뽐프공장에 맡기겠다고 하더니 왜 이제와서 이랬다저랬다 하는가고 몰아댔다.

영문을 모르고 앉은벼락을 맞은 리석민은 속이 불끈하였다.

자기와 토의도 없이 그런 제기를 한 윤상배의 처신이 불만스러웠으나 어차피 그를 비호하는 수밖에 없었다.

그것은 그 공장에 실태료해를 내려갔던 윤상배의 말을 들은 후로는 그곳에서 뽐프를 만든다고 해도 꽤 구실을 하겠는가 하는 의문이 시시각각 굴러가는 눈덩이처럼 커지는것을 어쩔수 없었기때문이였다.

그래서 계약된 뽐프를 들여오지 않으면 안될 사정을 구구히 설명하고 겨우 승인을 받아냈다.

다행스러운것은 그 자리에 김원삼이 없은것이였다.

그는 룡성기계련합기업소에 출장을 내려갔던것이다.

그가 다시 수입승인을 받았다는것을 알면 어떻게 나올것인가는 불보듯 뻔해 골머리를 앓는데 머리가 베아링같은 윤상배가 기막힌 묘안을 내놓았다.

우리는 전혀 그런 일이 있을줄 몰랐는데 대방이 계약날자가 지났다고 토의도 없이 일방적으로 들이민걸 어쩌란 말인가고 하면 김원삼이 아무리 뱀의 창자처럼 곧기로서니 무슨 말을 하겠는가 하는것이였다.

윤상배의 말이 그럴듯 하여 계약된 뽐프전량을 다 들여오기로 하였는데 지금쯤 함흥에 있다고 생각한 김원삼이 어떻게 그것을 알고 달려왔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였다.

보이는 곳에서 날아오는 총알은 피하기 쉽지만 몰래 쏘는 화살은 피하기 어렵다고 전혀 예상치 않았던 김원삼의 급습타격에 리석민은 그만에야 입이 얼어붙고말았다.

그래서 한동안 끙끙거리다가 궁여지책으로 내놓은 타협안이 동주뽐프공장에서 자기들이 만드는 뽐프를 기술적으로 담보한다는 담보서를 받아내고 제작을 승인하되 전량이 아니라 먼저 다섯대정도 만들어 수입뽐프와 비교시험을 해보고 두 뽐프중 기술적특성과 성능이 우월한것을 선정하자는것이였다.

결승선을 눈앞에 두고 넘어진것 같은 분통에 윤상배의 마음은 기름가마끓듯 하였다.

리석민도 김원삼도 다 원망스러웠다.

리석민은 왜 주대없이 시계추처럼 이리흔들 저리흔들거리는가.

또 김원삼은 제가 뭐라고 권한도 없으면서 국가적인 중대사를 놓고 이래라저래라 훈시질인가.

저도 모르게 무거운 한숨이 새여나왔다.

고래싸움에 새우등 터진다고 중간에 끼여 눈치보기를 해야 하는 자신의 처지가 궁상스러웠다.

생각같아서는 될대로 되라고 나자빠지고싶었지만 돈이라는 마귀의 유혹에 깊숙이 빠진 윤상배에게는 그럴만한 배심이 없었다.

차를 수리했다는 운전사의 말에 윤상배는 우황든 소 앓듯 끙끙거리며 차안으로 몸을 들이밀었다.

국제통신국에 도착한 윤상배는 처음 계획하였던 확스로가 아니라 전화로 대방을 만나기로 하였다.

전화를 신청하자 인차 대방이 나왔다.

《아, 윤선생, 안녕하십니까. 소식을 기다리고있던중입니다.》

대방의 목소리는 친절하였다.

그 나라 말을 자유자재로 하는 윤상배가 답례의 인사를 하고 계약된 뽐프전량을 당장 들여오지 못할 사정에 대하여 구구히 설명하였다.

그러자 대방이 노발대발하였다.

《이보시오, 윤선생, 당신 우리 회사를 뭘로 보는거요. 우리 뽐프는 시험용이 아니라 완성품이란 말이요. 우리는 당신이 요구하는걸 다 들어주었소. 가격도 흥정해주고… 사적인 부탁도 다 들어주었소. 그런데 당신의 요구는 너무 무례하구만. 거래를 취소합시다. 당신네가 아니라도 거래대방은 얼마든지 있소.》

대방의 목소리는 단호하였다.

무참하게 짓밟힌 자존심이 윤상배를 미칠지경으로 만들었으나 울며 겨자먹기로 참는수밖에 없었다.

온몸이 용광로앞에 선듯 홧홧 달아올랐고 발광이 난 심장은 당장 밖으로 뛰여나올듯 곤대질을 하였다.

땅바닥에 어깨닿기를 당한채 가까스로 대방의 량해를 구한 윤상배는 전화를 끊었다.

온몸이 땀으로 미역을 감은것처럼 흠뻑하였다.

뼈빠진 사람모양 휘친거리며 밖으로 나선 윤상배는 청사앞 휴식터의자에 무너지듯 주저앉았다.

그의 머리우에는 얼럭덜럭한 구름이 꽉 덮여있었다.

당장 어느 구름에서 비가 쏟아질지 가늠할수가 없었다.



30

 

유리병밑굽만큼이나 두터운 돋보기안경을 코잔등에 올려놓고 송화가 가져온 신문을 들여다보던 최금석이 넌지시 물었다.

《창근이도 뽐프제작조에 뽑히였단 말이지?》

진달래꽃무늬가 점점이 박힌 달린옷을 입고 거울앞에서 옷매무시를 보던 송화는 창근이 소리가 나오자 금시에 시무룩해졌다.

《예.》

《창근이야 손재간이 있으니 뽑힐만도 하지. 일감을 맡겨주면 잘할거야.》

듣기가 거북한듯 송화는 입을 비죽거렸다.

창근이라면 덮어놓고 좋다 하는 아버지가 민망스러웠다.

《헌데 요새 왜 우리 집에 발길질을 안하는지 모르겠구나. 혹시 너와 무슨 일이 있은게 아니냐?》

《아니…예요. 바쁘니까 못 오겠지요 뭐.》

급해맞아 아닌보살을 하기는 하였지만 송화의 마음속에서는 이지러진 창근의 모습을 아버지앞에 터놓아야겠다는 충동이 갸웃이 고개를 쳐들었다.

어쩔가. 말을 할가 하고 망설이던 송화는 설레설레 머리를 흔들었다.

창근이를 친아들이상 여기는 아버지가 그 소릴 들으면 어떻게 반응을 할지 바이 가늠을 할수가 없었기때문이였다.

십중팔구 창근을 탓하기 전에 오히려 너는 뭘하고있었느냐고 펄펄 날며 자기만 죽도록 욕을 할것이다.

송화는 뒤늦게야 부모자식간에는 한치의 간격도 없다지만 생활에선 할 말도 마음대로 못하는 때도 있음을 느끼게 되였다.

창근과 우연히 맞다든 관계라면 싫다 나쁘다고 명백히 계선을 가르련만 어릴 때부터 한뿌리에서 자란 나무처럼 뗄래야 뗄수 없는 정을 이어왔으며 거기에 형제처럼 자별하였던 아버지들의 운명까지 얽혀있었다.

세월의 흐름은 많은것을 변하게 하였지만 아버지의 마음속에는 생명의 은인인 창근의 아버지가 영원한 모습으로 남아있었고 사위로 정한 창근에 대한 정이 맥맥히 흐르고있었다. 그 어간에 송화가 있었다.

그때문에 아버지가 창근을 싫다 하기 전에 송화 자기가 먼저 머리를 흔드는것은 도저히 있을수 없는 일이였다.

그런데 어찌하랴. 창근이가 자기의 마음속에서 점점 멀어지는것을…

이제라도 갈지자걸음을 그만두고 곧은 길을 가라고 안타까이 간청도 하고 모진 말도 했건만 정을 떼자고 잡도리를 했는지 그냥 제 밸대로이다. 아이, 속상해. 이럴 땐 어쩌면 좋아.

안달복달하는 마음을 진정 못하고 집을 나선 송화는 계획한대로 시도서관으로 향하였다.

오늘은 일요일이다.

공장에서는 뽐프제작에 들어가기 전에 제작조성원들에게 휴식을 주었다.

집에서 할 일이 많았지만 굳이 도서관으로 가기로 한것은 일하면서 배우는 교육체계에 망라되여 공부하기로 마음먹은 송화에게 입학시험준비에 필요한 참고서들이 필요하였기때문이였다.

입학시험에서 합격되자면 직심스럽게 공부를 해야 한다면서 당장 도서관에 가서 참고서들을 빌려오라고 등을 떠민것은 정향이였다.

그 많은것을 어떻게 한꺼번에 공부하는가고 아부재기를 치는 송화를 보며 정향은 해죽해죽 웃으며 노래 《돌파하라 최첨단을》의 가사 한구절을 읊어주었다.

    …

    지식경제시대인 오늘날 떨어지면 기술의 노예 되리

    …

그 소리에 송화는 두손을 들고말았다.

지내볼수록 정향은 정이 가는 처녀였다. 도서관에서 정향이가 적어준 참고서들을 한아름 빌려 가방에 넣은 송화는 거리에 나섰다.

이제부터 정향이한테 거마리처럼 달라붙어 배울테다.

콤퓨터를 배울 때처럼…

아직은 서툴지만 처음 콤퓨터앞에 마주앉았을 때 같아서는 아버지가 비웃듯이 게발 놀리듯 건반을 두드려대는게 아무리 날구 기여도 몇달이 걸려도 배워내지 못할것 같더니 이악스레 달라붙으니 별게 아니였다.

한증탕처럼 찌물쿠는 무더위에 송화의 얼굴에서는 땀이 비오듯 했다.

그늘을 찾듯 두릿거리던 송화는 길옆에 꾸려진 공원의 아지무성한 느티나무를 발견하고 한숨 돌리고 갈 생각으로 공원안으로 들어섰다.

시원하게 그늘을 던진 나무아래에는 송화를 기다리듯 긴의자가 놓여있었다.

거기에 앉으니 한결 시원하였다.

유희기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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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산님의 댓글

강산 작성일

(위에서 계속)

유희기구들과 체육시설을 갖춘 공원은 사람들로 흥성거리였다.

가만 앉아있어도 숨이 턱턱 막히는 무더위속에서도 젊은이들은 배구장에서 승부를 다투느라 열을 올리고있었다.

그들을 보느라니 문득 불볕이 내리지지는 한여름 무기, 장구류를 지고 강행군을 하던 군사복무시절이 생각히웠다.

벽돌장을 깨지 못해 무더위속에서 주먹이 퉁퉁 붓고 피가 배도록 타격훈련을 하던 그때도 삼삼해졌다.

눈물과 땀이 버무려진 얼굴, 목에서 나던 쇠비린내, 손목이고 손가락이고 어디라 할것 없이 쑤셔대고 터지고 저려오는 아픔에 숟가락도 들수 없었었다.

그때 무슨 정신으로 그 힘들던 때를 이겨냈을가 하고 생각하니 지금도 긍지스럽다.

병사의 존엄과 배짱, 총대를 틀어잡은 병사는 무적의 강자가 되여야 한다는 자존심이 끓어넘쳤기에 펄펄나는 싸움군으로 자랄수 있었다.

그런 녀성들이 얼마나 많은가.

녀성비행사, 녀성포병, 녀성락하산병… 군복은 온통 물주머니가 되였지만 한걸음도 물러서거나 주저앉아서는 안되였던 그때에 비하면 배구를 치는 젊은이들이 흘리는 땀은 아무것도 아닌듯 싶었다.

알락달락한 배구공이 높이 떠서 그물사이로 오가는것을 흥미진진하게 지켜보던 송화는 기척을 느끼고 돌아보다가 눈이 덩실해졌다.

언제와서 앉았는지 한쌍의 처녀총각이 옆에 사람이 있는것도 아랑곳하지 않고 머리를 맞대고 무슨 이야기인지 달콤하게 주고받고있었다.

막 시샘이 날 정도로 꼭 붙어있었다.

눈치들도 없지. 하긴 사랑에 빠지면 장님이 된다고 했지.

뒤늦게야 송화는 눈치가 없는것이 그들이 아니라 자기라는것을 느끼고 황황히 자리에서 일어섰다.

아이참, 저들이 날 얼마나 원망할가.

도망치듯 공원 깊숙이 걸음을 옮기던 송화는 굴러온 돌이 박힌 돌 뽑는다더니 자기가 그 신세가 된것 같아 절로 웃음이 나갔다.

그들이 부러웠다. 자기에게도 저런 때가 있었던가 싶었다.

있었다면 제대되여 창근과 두어번 청천강변을 거닌것이 전부였다.

그것을 굳이 산보라고 해야 하겠는지.

부지중 언젠가 창근이 했던 유혹적인 《약속》이 생각히웠다.

《좋아, 이제부터 매일 송화를 기쁘게 해주겠어. 퇴근후에는 산보도 하고 극장과 영화관에도 가고… 좋지?》

마음을 설레게 하는 그 말에 나는 얼마나 기뻐하였던가.

허나 그 멋진 《약속》은 한갖 말장난에 지나지 않았다.

하다면 내가 바란것이 그런 감상적인 산보였던가.

아니였다. 뒤늦게라도 맡은 일에 근면하고 성실하여 집단과 동지들앞에 자신의 존엄과 자존심을 지키기를 바란것이 아니였던가.

그런데… 바닥없이 깊어지는 상념에 빠져 허둥지둥 걸음을 옮기던 송화는 돌부리에 발이 걸리는 바람에 몸중심을 잃고 비칠거리였다.

여기가 어딘가? 눈앞에 해빛을 받아 번뜩이며 흐르는 강물이 보였다.

그제야 송화는 자기가 시내와 떨어진 청천강방천우에 서있음을 의식하였다. 어마나, 내가 무슨 정신에 예까지 왔담.

타고장에 처음 온듯 얼빠진 표정으로 주위를 일별하던 송화는 갑자기 몸을 떨었다.

몇걸음앞 버드나무아래에 나란히 놓여있는 두개의 돌의자를 본것이다. 어서 오라 반기는듯 한 그것을 보느라니 가슴이 후두둑 뛰였다. 부지중 여기에 와본지가 까마득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처음 여기에 창근과 나란히 앉아 사랑을 속삭이며 무지개빛처럼 아름다운 래일을 꿈꿀 때가 아득한 옛날처럼 느껴졌다.

앞으로 그런 날이 다시 있을가 생각하니 마음이 서글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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