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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소설 전환 제 11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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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강산
댓글 0건 조회 4,976회 작성일 21-02-17 17: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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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용차가 정부청사 앞길로 해서칠성문쪽에 접어들었을 때 수령님께서는 앞자리에 앉으신 김정일동지에게 물으시였다.

《공산주의운동에 대한 100년간의 사상총화는 어떻게 되였소? 짐작에 한두해로는 안되겠지?》

《앞으로 한 2∼3년 걸릴것으로 보입니다. 예상외로 신중해지면서 판을 벌리기 잘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런데 풀기 어려운 문제가 한두가지가 아닙니다.》

《한번 해볼만한 일이요. 우리자신을 위해서도 그렇고 공산주의를 지향하는 온 인류에게 공헌한다는 의미에서도 좋을것 같소. 우리가 공산주의로 가는 길안내자가 된다고 해도 나쁠거야 없지 않소.》

승용차는 어느덧 대성산어구에 들어섰다. 승용차가 멎어서자 이미 대기하고있던 이곳 일군들과 시당위원장과 몇명의 력사학자들 그리고 정치위원들이 수령님을 맞이하였다.

키가 크고 목이 기름한 력사학자 리희준은 대성산과 관련된 력사자료를 거침없이 펼쳐놓았다. 그에 의하면 대성산은 이 아근에서 제일 높은 산마루를 가지고있고 다섯개로 이루어진 봉우리와 산릉선이 오붓이 하나의 골짜기를 감싸안고있다.

우리 고구려의 선조들은 묘하게 생긴 이곳 지형을 리용하여 산성을 구축하였으며 여기서 문무를 발전시키고 외래침략자들을 격퇴하였다. 그러는 동안 20개의 성문이 생기고 150여개의 우물과 물주머니를 만들고 또한 식량저장도 할수있게 하였다. 서력 427년 고구려가 수도를 여기로 옮긴 이후에는 대성산성은 보다 큰 의의를 가지게 되였다.

《그럼 우리 같이 한바퀴 돌아볼가.》 하고 수령님께서는 안내차가 떠나기를 기다렸다가 차에 오르시였다.

일행은 동쪽으로부터 서쪽으로 나가며 처음에 소문봉 그다음은 을지봉, 장수봉, 주작봉의 순서로 나갔다. 봉우리마다 골짜기마다 이끼덮인 옛성곽과 우물터들이 있었다. 여기에는 전설도 또한 많았다.

주작봉에 이르렀을 때였다.

김정일동지께서는 리희준의 력사자료설명이 끝나기를 기다렸다가 한걸음 나서며 말씀하시였다.

《하나 요청이 있습니다. 여기서 끝내고 이밑에 내려가면 사슴못이 있는데 그 기슭에 잠간 들려주셨으면 합니다.》

미리부터 생각해둔것은 아니였지만 불쑥 떠오른대로 말씀올렸던것이다. 추석이 가까와온다고 생각하니 어머님에 대한 그리움이 가슴에 젖어들어 이대로는 발걸음을 돌려낼것 같지 않으시였다. 추석은 추석대로였지만 그것이 곧 9월의 그날과 또한 뗄수 없이 결합되여있었다.

《그래그래 가봐야지.》

수령님께서는 그 어떤 기미라도 느끼시였는지 인츰 그 제의를 받아들이시였다. 그런후에 미소를 지으시고 손을 들어 아득히 내려다보이는 평양일경을 가리키며 계속하시였다.

《오늘 우리가 나와보기 잘했습니다. 지금 상태로서는 유원지라고 말하기 힘들고 그렇다고 해서 옛날 성터라고 부르기도 곤난하게 되여있습니다. 현재는 동물원과 식물원이 있다뿐이지 그외는 자연상태그대로 내버려둔데 지나지 않습니다.

우선 먼저 유원지로서 체모를 갖출수 있게 놀이터도 꾸리고 봉사시설도 들여와야 하겠습니다. 지금은 자동차로도 한바퀴 돌기 힘들 지경입니다. 길도 잘 닦지 않았습니다. 그 다음에는 강성대국이였던 고구려의 옛성터를 본래대로 복구해야 하겠습니다. 성돌이 마구 굴러다니지 않게 다 수집해서 원상대로 성을 쌓아놓고 우물이나 늪도 다 찾아내야 합니다.》

수령님께서는 허리에 손을 얹으시고 평양일경을 쭉 둘러보시였다. 사동벌로부터 반원을 그리며 남포쪽 그다음에는 룡악산쪽을 한눈으로 바라보느라면 실로 평양은 예로부터 알려진 명승지이며 살기 좋은 고장이라는것이 가슴흐뭇하게 안겨온다. 글자에 적은그대로 평탄하고 비옥한곳으로 되였다. 한껏 무르익은 초목들은 하나의 대도시를 푸른색으로 물들이였는데 군데군데 일어난 고층건물들은 마치 수정궁을 련상할만치 찬란한 빛을 뿌리고있다. 한쪽에는 현대적대문화도시, 또 다른 한쪽은 수천년세월을 헤아리는 옛성터, 어쩌면 그리도 과거와 현재가 한점에 맞붙어있는것인가. 그런 의미에서 볼 때도 역시 평양을 보기 위해서는 여기 대성산에 올라야 한다는 말이 옳다.

어디선가 한줄기 바람이 불어와서 옷깃을 흔들어놓는다.

흠뻑 무르익은 과일내같은 들향기가 얼굴을 스치며 지나간다. 잠시 자연을 바라보신 수령님께서는 장쾌한 기분에 잠기여 말씀을 계속하시였다.

《우리는 애국전통을 자랑해야 합니다. 애국전통이 굳건해야 그후 공산주의자들이 이룩한 혁명전통이 더욱 값이 있게 됩니다. 조상도 없고 선렬도 없는 백지판에 하늘에서 뚝 떨어진것처럼 공산주의자들이 혁명을 했다 하면 그것은 력사를 외곡하는것이며 공산주의자들의 투쟁을 비속화하는것입니다. 때문에 여기를 유원지이기전에 먼저 선조들의 피땀이 스민 고구려의 수도라는것을 잘 나타내게 해야 합니다.》

수령님께서는 나라와 민족을 사랑한 우리 선조들에 대하여 매우 큰 긍지를 가지며 또한 우리 시대에 와서 그것이 빛을 뿌리게 되였다는 사명감을 가지고 이 일을 해야 한다는데 대하여 힘주어 말씀하시였다.

그이께서는 허리를 굽히며 성밑에서 자그마한 돌을 하나 집어들고 앞으로 내드시였다.

《동무들, 이것을 보시오. 어느 시인이 말한것처럼 이 성돌밑에 우리 선렬들의 넋이 깃들어있는지 어이 알겠습니까. 그런데 우리는 이것을 밟고 다니지 않습니까. 다 찾아냅시다. 연개소문도 좋고 을지문덕도 좋습니다. 김응서나 계월향이도 좋습니다. 애국적소행을 다 찾아냅시다.》

앞에 서있던 리희준은 력사가로서의 사명과 그 긍지에 젖어 거듭 허리를 굽혀 사의를 표하였다. 수령님께서는 그윽한 눈길로 좌우를 둘러보면서 말씀을 계속하시였다.

《그리고 동무네와 같은 력사학자들은 글을 많이 써내서 모두 알게 하고 후대들에게 물려주기도 해야 합니다. 그래야 애국의 전통이 대를 이어 흘러내려가게 될것입니다. 해방직후에 우리가 남조선에서 들어온 동무들을 여러명 만났는데 그들의 말이 오늘도 생생히 떠오릅니다. 남조선의 서울은 참말 이상한데라고 하였습니다. 서울의 많은 지식인들이 자기 나라 력사는 잘 모르는데 중국이나 유럽에 대해서는 잘 알고있더라는것입니다.

나이 좀 먹은 사람들도 우리 나라에서 유명한 의사 박제상이나 방랑시인 김삿갓은 잘 모르지만 중국의 리태백이나 백이숙제는 잘 알고있다는것입니다. 젊은 사람들은 아브라함 링컨이요, 쉑스피어요, 카이제르요, 괴테요 하고 열손가락이 모자라게 꼽아댄다는것입니다. 그래 내가 그것은 하나도 이상할것도 신기할것도 없다, 일제침략자들이 우리 사람들을 그렇게 만들어놓았다고 하였습니다. 일제의 간악성은 령토를 강점했다거나 자원을 략탈했다는 그것만이 문제가 아닙니다. 가장 큰 죄악은 우리 조선사람들의 넋과 민족성을 빼앗으려 한것입니다. 민족성!》

이 대목에서 수령님께서는 손을 들어올려 정수리를 쭉 뽑는 시늉을 여러번 해보이시였다. 《사람이 어느때 죽는가. 숨이 끊어졌을때? 아닙니다. 심장이 멎는 때? 그것도 아닙니다. 사람이 넋을 빼앗기면 그때 죽는것입니다. 그러니 숨을 쉬고 심장이 뛰여도 넋을 잃으면 죽습니다. 이 넋! 민족이 어느때 망하는가. 령토를 잃었을 때? 아닙니다. 역시 민족의 넋, 민족성을 빼앗겼을 때 망하는것입니다. 일제는 바로 그것을 노린것입니다. 성을 갈고 <일어 상용>을 하게 하고 조선을 <내지화> 한것이 그때문인것입니다. 우리가 산에서 싸울 때 보천보전투를 하게 된것도 그때문이였습니다. 국경지대의 경찰관주재소를 하나 쳤다는것이 군사행동으로서는 극히 작은것입니다. 그러나 그때 우리는 <동조동근>을 인정하지 않는다, 성을 고칠수 없다, 조선의 넋은 살아있다! 이것을 위해 국내진공작전을 했던것입니다. 지금 우리 당에서는 사상사업에서 가장 중요한 예봉을 사대주의를 반대하는데 돌리고있습니다. 제나라것이 없거나 부실하면 자연히 남을 넘겨다보게 되고 남에게 머리를 숙이게 되는것입니다. 바로 그렇기때문에 강성대국이였던 고구려의 수도 여기를 잘 꾸려야 합니다. 그리고 고조선의 시조 단군도 찾아보아야 합니다. 단군은 신화적존재에 불과하다는데 그것도 왜놈들의 말이니 믿을것이 못됩니다. 한때 평양에 기자묘라는것이 있었습니다. 그에 대해서는 이 선생이 잘 알고있을것입니다.》

수령님께서는 수첩에 받아적느라고 여념이 없는 리희준쪽으로 돌아서면서 손짓을 하시였다.

리희준은 고개를 숙여 동의를 표시하고 말씀을 올리였다.

《정전이 된 이듬해인데 저 모란봉에서 좀 내려가 칠성문밑에 있는것을 파보았댔습니다.》

《그렇습니다. 그것이 기자묘가 틀림없다면 거기에 무슨 유물이 다문 얼마라도 있어야 할것이 아닙니까. 그런데 깨진 벽돌장 몇개가 나왔을뿐입니다. 그래서 기자라는 인물도 그 사람이 중국에서 나왔다는것도 모두 거짓이라는것이 판명되였습니다. 이 모든 사실을 미루어보아 무엇을 알수 있는가. 사람은 자기 넋으로 살아야 한다 그 말입니다. 속담에 범한테 물려가도 정신만 잃지 않으면 산다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우리 혁명에서 의연히 가장 큰 위험은 사대주의에 있습니다. 국제공산주의운동에서 주되는 위험인 현대수정주의도 사대주의가 끌어들일수 있는것입니다.》

이 대목에서 수령님께서는 옆에 서있는 김정일동지를 쳐다보시였다. 방금전에 렬사들의 묘에 가보자고 했던 생각이 떠올랐던것이다. 선렬들의 이야기가 나오자 갑자기 그들에 대한 그리움이 가슴속에 피여올랐던것이다. 하여 서둘러 이야기를 끝내시였다.

《선렬들을 잊지 맙시다. 을지문덕이나 강감찬이 훌륭합니다. 그러나 우리 공산주의선렬들은 개개의 사람들모두가 옛장수들에 비교가 안됩니다. 사상의식과 희생정신, 그 리념에서 월등한것입니다. 잊지 맙시다.》

말씀을 끝내신 수령님께서는 땅바닥을 내려다보며 왔다갔다 하다가 무엇을 문득 생각하셨는지 그만하고 헤여지자고 하시였다. 안내원들과 헤여진 수령님께서는 김정일동지께 아까 말하던 거기에 가보자고 하시였다.

곧추 질러가면 한 반km도 되나마나한 거리인데 오던 길을 되잡아가다보니 시간이 퍼그나 걸리였다. 평지에 내려서니 길은 괜찮았다. 사슴못으로 올라가는 언덕에는 항일혁명투사들의 묘지가 있었다. 소나무숲속에 터를 잡고 봉분들을 지어놓았다.

돌층계를 오르고나니 누가 비질을 하였는지 비석이나 상석의 두리를 말끔히 쓸어놓았다.

김정일동지께서는 수령님을 안내하여 묘소를 한눈으로 바라볼수 있는 언덕에 올라서시였다.

어느덧 숙연한 감정에 잠겨 서로 대화도 나눌수 없게 되였다. 갑자기 해일처럼 밀려든 비애와 착잡하게 일어나는 추억으로 해서 가슴이 쩌릿해날뿐이였다. 한동안침묵한채로 서있다가 김정일동지께서 먼저 말씀하시였다.

《누가 보건대도 여기는 항일혁명투사들의 넋이 깃들만한곳이 못됩니다. 구석지고 초라합니다. 제가 알아보니 그때는 이 근방에 하나둘 널린 묘를 한군데 모이게 하자는 생각뿐이였다고 합니다. 그렇지만 결국은 한군데 모이지도 못했습니다. 지금은 혜산에 몇십구가 있고 또 여기저기 지방에 모두 널려있습니다. 제생각에는 세상사람들이 다 볼수 있는곳에 보란듯이 렬사릉을 하나 만들어 거기로 옮겨가는것이 좋을것 같습니다.》

《생각해봅시다.》

두분의 대화가 차츰 축축히 젖어들고 시선은 점점이 자리잡은 분묘들에서 떨어지지 못하였다.

대화는 더 계속되지 않았다. 그때 뒤에서 인적기가 났다. 김정일동지께서 뒤를 돌아다보니 허담이 화환을 들고 따라오지 않는가. 그러고보니 오전중에 우정 찾아와서 대성산에 가보자고 하던 생각이 나시였다. 화환을 맞들고 올라오는 그의 눈에는 비애의 처절한 빛이 어려있었다.

김정일동지께서는 순간 가슴이 찡 울리는것을 느끼시였다. 어쩌면 그리도 남의 심정을 신통히 알아맞히는가싶었다. 누구에게도 내색을 하지 않았지만 9월 22일 어머님께서 돌아가신 날을 하루 앞둔 오늘 그이의 심정은 매우 괴로우시였다.

화환이 옆으로 지나갈 때 꽃향기가 진하게 풍기였다. 온통 하얀 국화꽃인데 맨 웃도리에 붉은꽃이 몇송이 달려있고 내리드리운 붉은 댕기에는 《김정숙어머님을 추모하여》라는 글이 씌여져있었다.

김정일동지께서는 화환을 따라 봉분이 줄지어선 맨 웃단까지 천천히 올라가시였다.

자그마한 비석이 서있었다. 《항일혁명투사 김정숙동지의 묘》라고 씌여있는 그앞에 화환이 놓이였다.

눈앞이 갑자기 흐려지더니 모든 사물이 물에 뜬 그림자처럼 느물느물 흔들리였다. 깊숙이 머리를 숙이였는데 어깨가 알릴듯말듯 떨리였다. 때마침 무심한 산새 한마리가 가지에서 날아올랐다. 그바람에 나무가지가 가볍게 흔들리였다.

얼마간 지체한후 걸음을 돌리였다. 층계를 내리는데 몇명의 녀인들이 꽃다발들을 안고 올라오고있었다. 여겨보니 김명화를 비롯한 항일혁명에 참가한 녀투사들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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