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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소설 비약의 나래 제7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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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강산
댓글 0건 조회 2,271회 작성일 21-03-29 17: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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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 장

7

 

《저기 동무의 할아버지가!…》

박치영은 우뚝 걸음을 멈추고 나란히 걷고있는 처녀에게 당황한 어조로 속삭였다. 양영복박사가 연회색봄가을외투자락을 봄바람에 날리며 맞은켠에서 보도를 천천히 걸어오고있었다. 누가 새로 만들어주었는지 맵시있는 단장을 조심스레 내짚으며 위태롭게 걸음을 옮기였다. 얼른 다가가서 부축해주고싶었으나 산보길에 나선 자기들의 모습이 그의 눈에 뜨일가봐 두려웠다. 처녀는 더욱 당황했다. 삽시에 얼굴이 빨갛게 물들고 눈동자가 올롱해졌다. 그는 박치영의 줌안에 잡혔던 손을 뿌리치듯 뽑으며 가로수뒤로 몸을 숨기였다. 그리고는 박치영의 옷자락을 자기쪽으로 끄당기며 눈을 할기였다. 그냥 선자리에 굳어져있지 말고 자기처럼 몸을 숨기라는 뜻이였다. 박치영은 양영복에게서 시선을 떼지 못한채 모재비걸음으로 처녀의 옆으로 다가왔다. 방울나무줄기가 어지간히 통개가 굵기는 하였지만 그들 두사람의 형체를 가리워줄수는 없었다. 차라리 선자리에서 양영복의 눈에 들통이 나는것보다 지금처럼 숨는 놀음을 하다가 들키는것이 더욱 난처하고 부끄러울것이다.

하지만 이 순간 그들은 다같이 그처럼 단순한 분별을 잃었다. 학술적인 판단은 남달리 예민한 그들이였으나 첫사랑의 열렬한 감정에 도취된 이 순간에는 어린애들처럼 순진하고 어리석었다.

다행히도 양영복박사는 줄곧 발치에 시선을 떨군채 지나가버렸다. 머리를 깊이 숙인탓으로 그의 표정을 볼수 없었지만 강마른 칼칼한 얼굴에 짙은 그늘이 덮인듯 하였다.

두 청춘은 멀어져가는 양영복박사의 뒤모습을 한동안 지켜보았다.

《동무도 사흘전에 친애하는 지도자동지께서 우리 연구소와 제련소를 다녀가신 소식을 들었소?》

박치영은 언제까지나 할아버지를 바라보며 걸음을 뗄상싶지 않은 양명심에게 속삭이듯 물었다.

《들었어요.》

양명심은 할아버지에게서 이야기를 들었다. 그런것만큼 지금 퇴근길에 오른 할아버지가 무엇때문에 고뇌에 휩싸여있는지를 알고있었다. 할아버지는 경애하는 김정일동지께서 그처럼 바라시는 티탄합금가공기술개발문제에 확답을 올리지 못한 괴로움에서 내처 벗어나지 못하고있는것이다.

《양선생은 그날 처신을 잘못했소.》

할아버지의 등뒤에 안타까운 시선을 보내던 양명심은 그렇게 말하는 박치영을 마주보았다.

《친애하는 지도자동지께서 티탄합금가공기술을 우리자체로 개발할수 없느냐고 거듭 물으시는데 마지막까지 시원한 대답을 올리지 못했으니 말이요.》

《아직은 그에 대한 아무런 과학적구상도 없는 할아버지가 어떻게 확답을 올릴수 있겠어요?》

《설사 지금은 과학적구상이 없다 하더라도 그이께서 주시는 과업이라면 기어이 수행하고야말겠다는 불같은 결의야 있어야 할게 아니요? 양선생을 곁에서 지켜보다못해 당비서동지가 연구소와 제련소가 지혜를 합쳐서 티탄합금가공기술을 개발해내겠다고 말씀드렸다오.》

《…》

《만일 그날 접견석상에 우리 연구소를 대표해서 내가 참가했다면 친애하는 지도자동지앞에 우리가 할수 있다고 확신있게 말씀드렸을거요.》

《동무에게 무슨 학술적인 타산이라도 있는가요?》

그들은 다시 걷기 시작했다.

《양선생과 함께 일본에 가서 티탄합금가공설비를 구경했는데 압착가공의 기본원리가 리해되였거던. 물론 일본사람들은 우리에게 기술적내용을 말해주지 않았소. 그러나 우리도 그들이 개발한 기술적원리에 토대해서 가공설비를 만들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단 말이요. 나는 귀국하는 로정에서 줄곧 머리속에 떠오르는 그 구상을 무르익혔소.》

박치영은 석양이 비낀 아득한 공간을 바라보며 신심에 넘쳐 말했다.

처녀는 선망어린 눈으로 새삼스레 그를 바라보았다. 학구적인 구상과 새로운 포부로 박치영의 얼굴은 그윽히 빛나고있었다. 동그란 눈동자, 칼날같은 코날, 뾰족한 턱… 박치영은 그 외양부터가 남다른 재기와 영민한 판단력을 말해준다고 처녀는 생각했다.

《우리 할아버지한테 동무의 구상을 얘기해봤어요?》

《아직은 토론하지 못했소. 양선생은 귀국도중에도 일본놈에게서 받은 모욕감을 삭이지 못하고 내처 의분에 사로잡혀있었소.》

명심은 비분으로 떨리는 할아버지의 음성이 생생히 되살아났다. 양영복은 손녀에게 일본에 다녀온 이야기를 들려주고나서 이렇게 말했다.

《나는 우리 나라가 과학기술적으로 제국주의자들보다 앞서게 되는 그날을 보기 전에는 죽어서도 눈을 감지 못할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속이 살아서 뜻만 남았을뿐이지 로쇠하고 병약한 나는 이제 그 무엇을 새롭게 연구할것 같지 못하다. 우리 세대가 못다한것을 너희들 새 세대 과학자들이 반드시 실현해야 한다.》

유언과도 같이 사무치도록 곡진한 당부였다. 그 순간 명심은 할아버지의 푹 꺼져든 눈굽에 비분의 눈물이 고이는것을 보았다. 그 눈물에는 풀길없는 여한으로 옹이진 감정이 끓고있었다.

명심은 할아버지의 그 심정이 그대로 자기의 가슴에 세차게 울려오는것을 의식했다. 이 손녀에 대한 할아버지의 기대는 남다른것이다. 할아버지는 두 아들을 과학계에 내세워 뒤를 잇게 하고싶었으나 뜻을 이루지 못했다. 두 아들의 운명은 다른 길을 걸었다. 맏아들인 명심의 아버지는 전연군부대에서 참모장으로 군무하였고 공부하기를 정 싫어하던 둘째아들은 제련소운수직장에서 일하고있었다.

할아버지는 한대를 건너 손녀인 명심에게 기대를 걸고 어려서부터 자기 슬하에서 키웠다.

명심은 할아버지의 기대에 어긋나지 않게 자라났다. 여기 영림에서 소학교와 중학교를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한 후에 리과대학을 나오고 장래가 촉망되는 녀성과학자로 되였다. 금속재료학이 아니라 기초과학인 수학을 전공하기때문에 할아버지의 연구분야를 직접 넘겨받을수는 없었다. 하지만 과학전선에 함께 서있다는 의미에서는 대를 이어간다고 할수 있었다.

할아버지의 당부를 들으면서 명심은 눈시울이 젖어드는것을 어쩔수 없었다. 할아버지의 심정에 공감해서만이 아니였다. 또 다른 하나의 감정, 과학자로서 할아버지의 생애가 끝났다는것을 인정하지 않을수 없는 서운한 감정이 북받쳤던것이다. 일본에서 심장발작까지 일으켰다더니 할아버지는 넓은 이마에 주름살이 더 깊이 패이고 가뜩이나 강마른 얼굴에서 살이 쑥 내린듯싶었다. 과학을 떠난 할아버지의 여생을 생각할수 있을가?…

그런데 사흘전 오전에 경애하는 김정일동지의 접견을 받고 점심시간에 집에 들어선 할아버지는 격동된 심정으로 이렇게 말했다.

《…그이께서는 고목이 다된 나에게 오늘 또다시 크나큰 기대와 믿음을 주시였다.

내가 일본을 다녀오면서 참을수 없는 민족적의분을 안고온것은 설비를 구입해온것보다 어떤 의미에서는 더 귀중하다고 하셨을 때 실로 생각되는바가 많았다. 새겨볼수록 의미가 심장한 말씀이였다.

그이께서는 내가 그 민족적의분을 안고 새롭게 연구사업에 투신한다면 놈들의것보다 월등한것을 만들어내리라고 기대하신것이 분명하다.

명심아, 나는 어제까지만 하여도 이제 내 나이에 무엇을 더 할수있으랴 하고 자포자기에 빠져있었다. 인생의 마지막연구과제로 내세웠던 티탄합금생산기술까지 완성하고보니 일종의 만족감도 있었고 자기 능력의 한계점에 이르렀다는 생각도 있었다. 그래서 내가 못다한것을 너희 세대들이 이루어주기를 바랐다. 그러나 그이의 간곡한 말씀을 듣고보니 숨이 지는 순간까지 탐구하고 또 탐구해야 한다는 생각을 굳게 가지게 되였다. 이것은 의무이기 전에 량심이고 의리라고 생각한다.

나는 이미 14년전에 년로보장을 받을 나이가 지났으니 공민적인 의무감을 놓고 말한다면 이제 과학일선에서 물러선다고 하여도 조금도 부끄러울것이 없다. 그러나 친애하는 지도자동지께서 그토록 큰 믿음을 주셨는데 그것을 저버린다면 나는 량심도 의리도 없는 인간일것이다. 헌데 티탄합금가공기술개발에 아무런 구상도 없다보니 그이께 대답을 드리지 못했구나. 티탄합금생산기술을 완성한 다음부터라도 다음단계의 기술을 연구하는데 진작 착수했더라면 사정이 달리 되였을지도 모른다. 과학자로서 자기를 서둘러 마무리해버리려고 작정을 했던 지난날이 부끄러워 얼굴을 들수 없구나. 여생이 얼마 남지 않았으니 티탄합금가공기술을 완성하겠는지는 기약할수 없는 일이다. 하지만 성공을 보지 못한다 하더라도 그이의 뜻을 따라 자기의 지혜와 힘을 마지막순간까지 깡그리 바쳐왔다고 자부하며 눈을 감는다면 한됨이 없을것이다. 스스로 끝장이 났다고 인정했던 그 계선에서 오늘을 계기로 과학자로서의 나의 인생은 새롭게 시작된다고 할수 있다!》

사무치는 후회와 비장한 각오가 담긴 할아버지의 고백이였다.

명심은 과학계의 로장으로 또다시 자기의 위치를 확고히 차지하게 될 할아버지를 보게 된것이 너무도 기뻐서 앙상한 그의 손을 더듬어잡고 눈물을 머금었다. 생각할수록 꺼져가던 할아버지의 탐구욕과 정열에 활력을 부어주신 경애하는 김정일동지의 크나큰 믿음이 고마왔다.…

양명심은 한동안 자기 생각을 더듬던 끝에 끊어졌던 대화를 다시 이었다.

《할아버지도 이제부터는 가공기술연구에 전심을 다할거예요. 동무한테 좋은 구상이 떠올랐다면 인차 토론해보세요.》

《그런데 그 구상이 아직은 남들과 토론을 할만큼 무르익지 못했소.》

《다른 사람이라면 몰라도 우리 할아버지한테야 미숙한 구상이라도 터놓고 조언을 받을수 있지 않아요?》

《양선생이야말로 학술적인 고집이 세고 요구성이 높아서 젊은 사람들이 서뿔리 자기 견해를 터놓기가 어렵단 말이요.》

박치영은 싱긋이 웃었다.

명심이도 따라웃었다.

박치영의 말대로 할아버지는 학술적인 주장이 남달리 센 학자로 알려져있었다. 그러나 할아버지의 풍부한 지식과 경험에 박치영의 명민한 착상과 기지가 합쳐지게 된다면 기어이 성공할것이다. 박치영은 티탄합금생산기술연구에서 할아버지의 재능있는 조수로 이미 큰 기여를 하였다고 한다. 치영동무와 같은 실력있는 젊은 조수를 가지고있는것은 할아버지에게 있어서 하나의 행운이 아닐가? 명심은 믿음과 사랑이 흐르는 시선으로 박치영을 쳐다보았다.

낮동안 따스한 봄볕을 대지에 쏟아붓던 태양이 어느새 지평선너머로 사라졌다. 어느덧 서켠하늘에 저녁노을이 불길처럼 타올랐다. 서쪽을 향한 창문들에 분홍색광채가 어리였다. 도로를 달리는 차들의 시창들에도 노을빛이 번쩍거렸다.

그들은 제련소에서 서쪽으로 초간히 떨어진 공원으로 들어갔다. 하루일을 마친 로동자들을 위해 아담하게 꾸려진 크지 않은 공원이였다. 복판에는 물보라를 기폭처럼 날리는 분수터가 있고 그 왼쪽에는 절묘한 바위들이 비죽비죽 솟은 인공동산이 있었다. 동화속의 화폭같은 그 동산에는 바위짬들에 뿌리를 박은 진달래가 만발했다.

박치영과 양명심은 그 주위를 한바퀴 돌아서 소나무밑의 장의자에 나란히 앉았다. 겨울동안은 한적하던 공원이 지금은 사랑을 속삭이는 청춘남녀들로 활기를 띠였다. 공원구내는 쌍을 지어 거닐기도 하고 의자에 나란히 앉기도 한 청춘들로 한벌 덮이였다.

해가 지자 대기는 선선해졌다.

《춥지 않소?》

박치영은 처녀의 곁에 바투 붙어앉으며 나직이 물었다.

《괜찮아요.》

명심은 발치에서 땅우에 뾰족이 내민 이름모를 풀싹을 뜯어 코끝에 가져가며 싱그러운 봄의 정취를 호흡했다.

땅거미가 깃들기 시작하자 군데군데 서있는 등주에 전등이 켜졌다. 푸른빛을 띤 전등빛은 상혈된 청춘들의 얼굴을 부드럽게 비쳐주었다.

박치영의 눈에는 그 빛발속에 드러나는 명심의 얼굴이 전에없이 아름답게 느껴졌다. 조심히 팔을 뻗쳐서 처녀의 허리를 껴안았다. 처녀의 따스한 체온에 가벼운 현기증을 느끼며 더듬는 어조로 입을 열었다.

《명심동무, 우리는 언제까지나 그리움에 시달리며 결혼을 미루어야 하오?》

명심은 달아오르는 볼을 쓰다듬을뿐 침묵했다. 어떻게 대답을 해야 할지 알수 없었다. 사무치는 그리움에 애를 태우기는 자기도 마찬가지이다. 1년에 한두번 주어지는 상봉만으로 그리운 회포를 나누어야 하는 자기들의 사랑이 그지없이 애달팠다. 그러나 어찌하랴. 버릴수 없는 연구과제가 결혼의 그날을 미루게 하고있었다. 박치영은 그것을 모르지 않는다.

《그리움이 곧 사랑의 행복이 아닐가요?》

명심은 한참만에야 박치영의 얼굴을 정겨운 눈으로 똑바로 바라보며 반문했다.

《우리처럼 멀리 떨어져서 여러해를 두고 서로 그리워하며 청춘시절을 보내는 사람들은 흔치 않을거요.》

박치영은 고개를 들어 어덴가를 망연히 바라보았다. 명심이도 그 눈길을 따랐다. 분수터너머에는 수많은 가지들을 실실이 드리운 수양버들 한그루가 숙연히 서있었다.

말없는 두 청춘의 표정이 그윽해졌다. 어느 달밝은 여름밤에 그들은 저 수양버들밑에서 사랑을 약속했었다. 그것이 몇해전이였던가?…

박치영이 양명심을 알게 된것은 청진광산금속대학을 졸업하고 금속공학연구소에 갓 배치되여왔을 때부터였다. 그는 양영복박사의 연구실에 오게 된것이 다행으로 여겨졌다. 누구의 지도밑에서 연구사업을 시작하느냐에 따라 발전이 크게 좌우될수 있다고 생각했기때문이였다. 양영복박사가 쓴 전공교과서를 배우기도 하였고 그가 학계에 널리 알려진 학자라는것도 알고있었다. 양영복은 다른 사람들이 범접하기 어려운 괴벽한 성미가 없지 않았다. 그러나 그 무엇을 물어오는 후배들에게는 언제나 친절히 가르쳐주었다. 박치영은 때로 휴식일이나 저녁시간에 양영복의 집을 찾아가 학술론담을 나누군 하였다.

그런데 하루는 낯모를 녀대학생이 집에 있었다. 알고보니 그는 리과대학에 다니는 양영복의 손녀인데 여름방학을 맞아 집에 왔다고 하였다. 아름답다고는 할수 없으나 생신한 성숙미가 흐르는 처녀의 자태는 박치영의 시선을 끌었다.

양영복이 집에 없을 때에는 명심이와 이야기를 나누었다. 학우들과 멀리 떨어져 말벗이 그립던 때여서인지 명심이도 즐겨 응하였다. 티탄으로부터 꼭지를 뗀 화제는 세계과학의 추세에로 번져지기도 하고 새로 나온 영화나 소설에 대한 이야기로 뒤바뀌기도 하면서 여러갈래로 펼쳐졌다. 과학에 대한 공통된 지향이 그들을 접근시켰다.

어깨나란히 밤거리를 거닐며 집에서 끝내지 못한 화제를 이어가기도 하였다. 밤하늘에는 전기로의 화광이 노을처럼 비끼였다.

 박치영은 점점 세차게 고동치는 자기 심장의 박동을 의식하며 생각했다. 앞으로 명심이와 결혼한다면 어떤 결과를 가져올가? 리상적인 과학자부부… 명심은 과학을 사랑하는 교양높은 처녀이다.

공원에 이른 박치영은 수양버들밑에서 양명심에게 사랑을 고백했다. 처녀의 마음을 공감시킬수 있는 말마디들을 고르고골라서 가슴속에 묻어두었던만큼 어음이 조금 떨렸을뿐이지 순조롭게 자기의 심정을 헤쳐보일수 있었다. 그는 자기의 심정을 강조하듯 처녀의 손을 덥석 잡고 지그시 힘을 주었다. 처녀는 줌안에서 손을 빼며 숨가쁜 소리로 이렇게 말했다.

《나는 아직 대학생입니다. 사랑이나 결혼은 졸업을 한 다음의 일이예요. 량해하세요.》

입밖으로 새여나오는 그 말마디들과는 달리 마주보는 양명심의 눈에는 억제된 사랑의 감정이 불타고있었다.

어깨우에 드리운 수양버들가지들이 밤바람에 설레이며 부드러운 잎새로 한껏 달아오른 두 청춘의 얼굴을 스치였다.

《동무가 졸업할 때까지 기다리겠소.》

박치영은 명심이가 졸업을 할 때까지 1년을 기다렸다. 그동안 하루가 멀다하게 편지를 썼다. 이따금 양명심에게서도 회답이 왔다. 학습에 기울여야 할 정열을 빼앗기지 않으려고 드물게 보내오는 회답이였지만 글줄마다에는 처녀의 순결하고 열렬한 감정이 깔려있었다.

그런데 대학을 졸업한 명심은 영림이 아니라 평성의 기계공학연구소에 배치를 받았다. 결혼을 하자면 어느 한쪽이 직장을 옮겨야 했다. 기계공학연구소에서는 명심에게 커다란 기대를 걸고있었다.

태반이 기계공학부문의 전문가들뿐인 연구소에서 수학전문가는 이채로운 존재였고 그만큼 필요한 존재이기도 하였다. 명심은 연구소에 배치를 받은 이듬해에 초고압유압프레스연구집단에 망라되였다. 연구사업의 시작과 더불어 받아안은 첫 과제를 저버릴수 없었다. 그렇기도 하지만 그 프레스기술연구에 자기의 지식과 재능을 꽃피우려는 열렬한 희망도 있었다. 결혼을 해도 초고압유압프레스를 해놓은 다음에 할 결심이였다. 그래서 몇해동안 결혼을 미루면서 한해 한두번 휴가를 받거나 다른 일로 영림에 오게 되는 기회를 빌어 박치영과 그립던 정을 나눌수 있었다. 이번에도 며칠간 휴가를 얻어 영림으로 왔던것이다.

《언제 평성으로 떠나겠소?》

수양버들을 바라보며 추억을 더듬던 박치영이 먼저 침묵을 깨치였다.

《래일…》

명심은 나무정수리에 시선을 멈춘채 말끝을 삼켰다. 래일 떠나겠다는 말이 쉽게 입밖으로 터져나오지 않았다. 그 역시 헤여지고싶지 않았다. 애인과 함께 다정히 속삭이는 이러한 저녁을 여러날 더 즐기고싶었다.

《그렇게 빨리?》

박치영은 처녀를 원망스레 쳐다보았다.

양명심은 한숨을 앞세우며 량해를 구하듯 응대했다.

《우리 연구집단의 문헌조사결과에 대한 과학평의회가 모레 있어요.》

《내 전에도 말했지만 수학자인 동무는 우리 연구소에도 필요하오. 동무가 이리로 오겠다고 주동적으로 제기를 하면 과학원에서 승인을 할거요.》

《초고압유압프레스연구사업에서 물러설수가 없어요. 내 립장을 리해하리라고 생각했는데…》

《리해하오, 리해해.》

박치영은 안타까운 빛을 담고 똑바로 겨누어보는 양명심의 눈길에 부딪치자 빙긋이 웃었다. 그리고는 헌헌한 표정을 짓고 별빛이 총총한 밤하늘에 시선을 보내며 시를 읊는듯이 덧붙였다.

《청년과학자들의 류다른 사랑!》

《우리 서로가 연구과제를 수행한 다음에 성공의 기쁨을 안고 결혼을 한다면 그야말로 뜻깊은것으로 될거예요.》

저 멀리 제련소의 상공을 엇비스듬히 가로지르며 류성이 날았다. 눈부신 백광으로 포물선을 긋던 류성은 순간에 사라져버렸다.

하지만 두 청춘과학자의 시야에는 황홀한 그 빛줄기의 잔광이 그대로 남아있는듯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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