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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소설 비약의 나래 제32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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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강산
댓글 0건 조회 4,120회 작성일 21-04-24 1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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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3 장

9

 

9월제련소의 티탄합금가공설비는 시운전을 거듭했으나 번번이 실패했다. 더는 론의할 여지가 없었다. 불가능하다는것이 누구에게나 명백해졌다.

이 사실을 보고받으신 김정일동지께서는 고중환과 함께 9월제련소로 나가시였다. 국가적으로 가장 절박한 연구과제인것만큼 시급히 대책을 세워야 했다. 고속으로 달려온 승용차는 한시간도 채 못되여 제련소당위원회청사앞에 이르렀다.

몸매가 다부져보이는 한 일군이 급히 청사에서 달려나왔다. 깊이 머리숙여 인사를 올린 그는 자세를 바로하며 자기를 소개했다.

《제 당위원회 부비서입니다.》

《황석태동무는 어데 갔습니까?》

김정일동지께서 물으시였다.

《새로 꾸린 티탄합금가공설비현장에 나갔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도 현장에 나가봅시다.》

《제가 인차 데려오겠습니다.》

《동무네가 양영복선생의 의견을 묵살하면서 무엇을 해놓았는지 보고싶습니다.》

결연히 말씀하신 김정일동지께서는 그길로 제련소구내를 향해 걸음을 옮기시였다. 제련소의 건물들과 구내길은 어느것이나 눈에 익으시였다. 부비서의 안내로 현장에 나오신 김정일동지께서는 잠시 걸음을 멈추고 사위를 둘러보시였다. 전날의 창고건물을 번듯하게 개조하고 현관의 앞머리에 《티탄합금가공직장》이라는 새 간판을 걸었다. 건물주변도 지대정리를 깨끗이 하고 보기 좋은 나무들을 심었다. 비록 실패를 했다 하더라도 황석태의 완강한 전개력과 뛰여난 일솜씨만은 부인할수 없었다. 참으로 아까운 일군이 커다란 과오를 저질렀다는 생각으로 가슴이 아프시였다. 황석태는 당에서 준 과업을 최대한으로 앞당겨 수행하려는 불같은 의욕을 안고 연구사업을 고무했으며 설비공사를 다그쳐왔을것이다. 두말할것없이 충실하고 능력있는 당일군이였다. 그런데 그가 이번에는 어떻게 되여 그처럼 엄청난 탈선을 했는가. 현관으로 들어가신 김정일동지께서는 실내를 둘러보시였다. 새로 갖춘 진공가열로와 압착가공설비들이 들어찬 방안에는 괴괴한 정적이 깃들었다. 그 어디에도 인적은 느껴지지 않았다.

《황석태동무가 왜 보이지 않습니까?》

김정일동지께서는 부비서를 돌아보시였다.

《분명 이리로 오겠다고 했는데 보이지 않습니다.》

부비서는 주변을 두릿거리며 어름어름 대답을 올렸다. 이때 진공가열로안에서 쇠붙이를 두드리는 소리가 울리였다. 뒤이어 사람의 목소리도 두런두런 가늘게 들리였다. 부비서가 급히 달려가 로안을 향해 소리쳤다.

《로안에 누가 있습니까?》

마치질소리와 사람의 목소리가 뚝 그쳤다. 그러나 응답은 없었다. 밖에서 느닷없이 들려오는 물음에 일순 어리둥절한 모양이다.

《비서동무가 아닙니까?》

그럴사하게 짐작한 부비서는 다시 물었다.

《그렇소, 나요.》

로체에 공명되여 어음이 똑똑치 않은 목소리가 울려나왔다.

《빨리 나오시오, 친애하는 지도자동지께서 오셨습니다.》

《뭐요?!》

놀라움에 잠긴 다급한 물음이 뒤따랐다.

《그게 사실이요?》

《지금 그이께서 여기에 와계십니다.》

로안에서 황급히 서두르는 소리가 들리더니 황석태와 박치영이 밖으로 나왔다. 그들은 모자와 작업복에 시꺼멓게 그을음을 들썼다. 얼굴에도 그을음이 게발려서 모습을 알아보기 어려웠다. 모자를 벗어들고 얼굴을 문지르며 황황히 걸어오던 황석태는 자기의 몰골을 내려다보고 우뚝 멈춰섰다. 그림자처럼 뒤따르던 박치영도 서버렸다.

김정일동지께서는 성큼성큼 그들에게로 다가가시였다. 그제서야 그들은 마음을 가다듬고 인사를 올리였다.

《친애하는 지도자동지, 면목이 없습니다.》

간신히 입을 여는 황석태의 실팍한 목밑에서 정맥관이 꿈틀거렸다.

김정일동지께서는 심중에서 분이 치밀고있었으나 그을음을 들쓴 그를 보시니 얼마나 안타까왔으면 이러랴싶은 생각도 드시였다.

《그래, 로속에 들어가서 무슨 뾰족한 방도라도 찾았습니까?》

《못 찾았습니다. 제가 아무래도 주관적욕망에 사로잡혀서…》

황석태의 얼굴에는 심한 자책의 빛이 흘렀다.

《동무는 자기가 무엇을 잘못했다고 생각하고있습니까?》

준절한 물으심이였다. 황석태는 떠듬거리였다.

《제가 직권을 가지고… 과학기술문제에 개입했던 결과로 오늘과 같은 후과가 빚어졌습니다. 한달째 저는 심각히 자신을 돌이켜보고있습니다.》

《최근에 과학기술발전에 대한 당조직들의 관심이 전례없이 높아지면서 일부 당일군들이 과학기술문제에 개입해나서는 현상이 다른 곳에서도 나타났습니다. 그런데 동무가 이번에 범한 과오는 성격이 다릅니다. 동무는 아직 자기가 범한 과오의 한 측면만을 깨닫고있습니다. 과오는 단순히 과학기술문제에서 독단을 부린데만 있는것이 아닙니다. 이번에 벌어진 사건은 보다 심각한 문제를 안고있습니다. 이곳에서는 티탄합금가공기술개발이라는 하나의 연구과제를 놓구 두개의 연구집단이 서로 다른 방법을 탐구하여왔습니다. 연구사업에서는 실패도 할수 있고 하나의 연구과제를 놓고 서로 다른방법을 탐구할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동무가 어느 한쪽에 편견을 가지고 다른 한쪽의 연구사업을 외면하여온데 있습니다. 어째서 양영복박사의 연구사업에는 외면을 하였습니까?》

《양영복선생의 연구사업은 전혀 승산이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어째서?》

《저는 과학기술을 잘 모릅니다. 그러나 우리의 형편에서는 앞선기술을 모방하기도 어려운것만큼 발전된 나라들에서도 못하는 그런 새로운것을 창조한다는것이 전혀 불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우리의 형편이란 무엇을 념두에 두었습니까?》

황석태는 자기의 사고와 인식에서 커다란 잘못이 있었다는것을 깨달으며 눈앞이 아뜩해오는 느낌을 받았다.

《우리 과학자들의 실력이 아직은 세계적인 수준에 이르지 못한다고 생각했습니다.》

《동무가 우리 과학자들의 창조적지혜를 믿지 못하는데 이번에 범한 과오의 본질이 있고 그 엄중성이 있습니다. 다른 사람도 아닌 동무가 그런 생각을 품고있었다는것이 뜻밖입니다.》

김정일동지께서는 가슴속에 넘치던 의분이 서운하고 안타까운 감정으로 뒤바뀌여지는것을 의식하시였다. 그것은 의분보다도 몇배로 더 괴로운 감정이였다. 우리 과학자들의 능력에 대한 확신이 부족하다는것은 결국 당이 내세운 고도기술과 첨단과학목표에 대한 신심이 부족하다는것을 의미한다. 자신께서는 오로지 우리 과학자들의 사상적각오와 실력을 믿고 높은 목표를 세우셨던것이다. 그런데 황석태는 우리의 과학기술이 세계적높이에서 뒤떨어져있고 우리 과학자들이 아직은 세계적인 명성을 떨치는 일이 적기때문에 높이 세운 목표앞에서 주저하며 목전의 리익에 급급해서 남의것을 흉내내는 방법으로라도 티탄가공문제를 빨리 해결해보자고 하였다.

림수봉은 또 그나름대로 과학사업에서 행정화의 틀에 빠져 독단으로 문제를 처리하였다.

모든 창조적분야와 마찬가지로 과학에서도 다수가결로 문제를 해결할수 없다. 다수의 의견이라고 해서 다 정당할수는 없지 않은가. 비록 한사람이 주장해도 그것이 옳을수 있다. 이것은 과학의 발전력사가 말해준다. 이렇든저렇든 그 모든것은 과학사업을 지도하는 일군들이 그렇듯 빨리 우리 과학을 세계적수준에로 도약시킬수 있겠는가고 하면서 신심을 못 가지고있다는것을 보여준다.

그이께서는 무거운 생각끝에 격한 음성으로 말씀하시였다.

《나는 우리 과학자들이 조선민족제일주의정신을 가지고 분발해나선다면 세계적인 발견과 발명을 얼마든지 할수 있다고 믿고있기때문에 우리 식의 새로운 창조로 첨단과학과 고도기술의 요새를 점령해야 한다고 그들에게 호소했습니다. 제국주의자들이 과학기술봉쇄를 악랄하게 감행해오는 조건에서 우리에게는 모방이 창조보다 더 어려울수 있습니다. 그런데 동무는 당의 의도와 배치되게 사고하고 행동했습니다.

석태동무, 만일 제국주의자들이 실패한 저 가공설비를 와본다면 우리에게 두번다시 골탕을 먹였다고 쾌재를 올릴것입니다. 조선사람들은 자기들의 기술을 모방할 능력조차 못 가졌다고 할것입니다. 이 얼마나 민족적존엄에 손상을 주는 수치스러운 일입니까?》

그이의 서리발같은 시선에 주변의 공기가 얼어붙는듯 하였다. 황석태는 부르르 몸을 떨었다. 비로소 자기가 저지른 과오의 엄중성을 보며 굴러떨어진 심연의 깊이를 깨달았던것이다.

김정일동지께서는 황석태뒤에 서있는 박치영에게 시선을 보내시였다.

《동무는 젊은 과학자인데 일본의것을 가보고 고작 그것을 모방할 생각을 하다니… 청춘시절에 사는 동무가 왜 놈들의것을 압도할수 있는 월등한것을 창조하려는 포부와 야심을 못 가지느냐 말이요?》

《친애하는 지도자동지…》

박치영은 간신히 입을 열었으나 목이 메여 뒤를 잇지 못했다. 설비공사가 완공되면 커다란 긍지를 안고 그이를 만나뵈옵게 되리라는 황홀한 꿈을 내처 품어온 그였다. 하지만 지금은 정반대의 처지에 선것이다. 얼굴을 들수 없는 몸으로 그이의 앞에 섰다는 절통한 감정으로 눈물이 하염없이 쏟아져내렸다.

《나는 동무가 앞으로 자신의 명예보다 우리 민족의 영예와 존엄을 먼저 생각하는 그런 과학자가 되기를 바라오!》

김정일동지께서는 박치영을 지켜보시다가 그 자리를 떠나시였다. 그이를 고중환과 부비서가 뒤따랐다. 늘 몸가까이 모시고 사업하는 고중환조차 지금처럼 격노하신 그이를 처음 보는듯 했다. 누구보다 믿으셨던 황석태가 저지른 잘못이여서 그만큼 분함이 크셨을것이다.

《부부장동무.》

그이께서 조용히 부르시였다. 한걸음 뒤에서 걷던 고중환은 그이의 옆으로 나란히 나섰다. 어느새 그이의 얼굴에는 의분의 빛이 가셔진 대신 심중한 기색이 떠오르고있었다.

《수학올림픽에 나간 우리 학생들한테서 소식이 없습니까?》

고중환은 어찌하여 그이께서 갑자기 수학올림픽소식을 물으시는지 얼른 리해되지 않았다. 그이의 안색을 조심히 살피며 대답올렸다.

《아직 소식이 없습니다. 며칠후에야 경연이 끝납니다.》

《그들이 좋은 성과를 안고와야 하겠는데…》

그 어조에는 간절한 기대가 흘렀다. 고도기술의 개발에 신심을 못 가지는 사람들에게 우리 민족의 지혜가 월등하다는것을 실물로 보여주고싶은 간절한 심정에 잠기시였던것이다. 이번 일을 두고 여러가지로 생각을 깊이 하시던 그이께서는 한동안 침묵끝에 다시 말씀하시였다.

《과학기술분야에서 허풍을 치는 현상을 결정적으로 극복해야 하겠습니다. 과학적으로 충분히 타산되지 못한 〈발명〉과 〈기술혁신안〉들은 나라에 물질적손실을 줄뿐아니라 우리의 과학기술에 대한 대중의 신뢰를 떨어뜨리고있습니다. 이러한 현상을 극복하기 위한 실무적인 대책을 세워야 하겠는데 생각한것이 없습니까?》

《네, 아직 미처 거기까지는…》

고중환은 얼굴을 붉히며 나직이 대답올렸다. 그러한 페단을 두고 안타까이 여기면서도 그것을 근원적으로 막을수 있는 결정적인 대책에 대해서는 생각해보지 못하고있었다.

《내 생각에는 전국적인 비상설과학기술심의체계를 부문별로 내오는것이 좋을것 같습니다. 그 성원으로는 해당 부문의 권위자들을 망라시켜야 할것입니다. 필요한 경우에는 현장기술자도 망라시킬수 있을것입니다. 한때 문학예술부문에서도 작품선택문제가 복잡했습니다. 그래서 나는 그 부문 사업을 지도하면서 공정한 작품심의체계를 내오도록 하였습니다. 문학예술작품창작이나 과학기술적발명은 옳고그른것을 판단하기가 수월치 않습니다. 때문에 해당 부문에서 유능한 전문가들이 심의하고 도장을 누른것만을 도입하는 엄격한 제도를 세워야 하겠습니다.

이번에 돌아가면 해당 부문 일군들과 토론해보시오. 더 좋은 안이 나올수 있습니다. 가장 합리적인 안을 작성해서 정무원결정으로 법제화하여야 하겠습니다.》

《알겠습니다.》

고중환은 그이께서 밝혀주신 과학기술심의체계의 륜곽을 머리속에 그려보았다. 그는 지금껏 안타까와하면서도 어쩔수 없는것으로 여기던 장벽이 금시 눈앞에서 허물어지는듯 한 느낌을 받았다. 돌이켜보면 과학기술분야에서 공정하고 정확한 평가가 뒤흔들린탓으로 심중한 후과를 빚어낸 사실이 적지 않았다. 허위적인 《발견》이나 《발명》이 농업생산과 공장건설에로까지 이어져서 경제건설에 큰 손해를 준 일도 없지 않았다. 그와는 반대로 진정으로 가치있는 과학기술적성과가 개별적인 학자나 일군에 의해 부정되여 아깝게 묻혀버리는 일도 있었다. 과학분야에서는 진리를 주장해도 오유로 되고 오유를 주장해도 진리로 되는 경우가 생활의 다른 분야보다도 많다고 할수 있다. 이것은 우리의 현실만이 아니라 인류과학사의 전로정이 보여주고있는, 그래서 어쩔수 없는 일로 여겨오는 하나의 페단이다. 과학탐구는 언제나 미지의 세계에 대한 발견을 지향한다. 탐구의 그 길은 태고연한 밀림속을 헤쳐가는것 같은 초행길이다. 그 길에서 보고 느끼고 발견한것은 다른 사람들이 체험하지 못한 초행자만의것으로 되기마련이다. 그렇기때문에 탐구자가 새롭게 발견한것에 대한 객관적인 평가를 공정하게 내린다는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인간의 판단능력은 자기 인식의 한계를 초월할수가 없는것이다. 가치있는 발견들이 력사의 안개속에 묻혀버리거나 거짓으로 오인되는것은 결코 까닭없는 일이 아니다. 또 과학탐구에 몰두한 사람자체가 본의아니게 허위적인 성공에 쉽게 유혹될수 있다는 사정도 문제의 복잡성을 가져오는 까닭으로 되고있다. 흔히 과학탐구는 환상으로부터 시작되여 가설로 이어지고 그 가설이 현실적인 객관적법칙으로 확인되는 과정을 거친다. 과학자에게 있어서 환상은 반드시 필요한것이다. 과학적환상이 없이는 새로운 발명이 불가능하다. 그런데 그 환상에 포로된 나머지 그것을 법칙으로 확인하지 못한채 진리로 주장하는 경우가 있는것이다. 그러한 주장에 공명이 깔리고 개별적일군이 개입되면 문제가 복잡하게 번져지군 하였다. 과학기술문제에서는 흔히 지지자가 긍정되고 반대자는 보수주의감투를 쓰기가 쉬웠다. 새로운 발견은 낡은것과의 투쟁을 동반하기마련이라는 변증법의 론리가 아니더라도 누구나 과학적발견에 찬양을 보내고싶어하는 사회적심리가 작용하기때문이다. 광범한 대중은 발견의 진실여부를 모르고 성공의 소식에 무작정 기뻐하는것이다. 고중환은 그런 일을 당할 때마다 난감했다. 그런것만큼 경애하는 김정일동지께서 방금 발기하신 새로운 과학기술심의체계를 두고 격동되는 심정을 금할수 없었다. 한없이 안타까와하던 구속감에서 벗어난듯이 몸이 거뜬해오면서 마음이 후련했다. 의심할바없이 새로운 심의체계에 의하여 오래동안 지속되여오던 그 모든 페단들은 극복되고 우리 과학은 언제나 공정한 평가가 주어지는 새로운 장을 열게 될것이다. 이제 다시는 위조가 진리로 오인되는 허망한 일도 없을것이며 진리가 허위로 부정되는 억울한 일도 없을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본다면 실패한 티탄합금가공설비가 중요한 의의를 가진다고 할수 있다.

경애하는 김정일동지께서는 화를 복으로 전변시키시였다. 고중환은 그이에 대한 경모의 정으로 가슴이 설레였다.

연구소의 크지 않은 회의실에서였다.

김정일동지께서는 과학자들과 자리를 함께 하시였다.

《우리는 이번의 실패에서 교훈을 찾고 티탄합금가공의 새로운 기술을 기어이 자체의 힘으로 연구해야 합니다. 그 절박성에 대해서는 동무들도 잘 알고있기때문에 더 설명하지 않겠습니다.》

그이께서는 학자들에게 미더운 시선을 보내시며 담담한 음성으로 말씀을 계속하시였다.

《나는 양영복박사를 비롯한 연구소의 일부 학자들이 초소성가공기술을 개발하기 위한 연구사업을 이미전부터 하여왔다는것을 알고있습니다. 일전에 그 선생을 만났을 때 그 연구정형을 구체적으로 묻고싶었습니다. 그러나 병상에 누워있는 그와 연구사업을 오래동안 론의할수 없었습니다. 연구사업에는 신경을 쓰지 말고 병치료를 잘하라는 당부만 하고 병원에서 돌아왔습니다. 이 자리에는 양영복선생의 과학적구상을 잘 알고 적극 조력해온 동무들이 있는것만큼 그들의 의견을 듣고싶습니다. 초소성가공방법의 연구는 어느 정도 진척되였고 그 전망은 어떻습니까?》

손관식소장이 얼굴을 번쩍 들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는 이 순간을 애타게 기다려온듯싶었다.

《장담할수는 없습니다만 저희들로서는 신심을 가지고있습니다. 양영복선생이 병환에 계시면서도 한달전에 매우 의의있는 실험지시표를 작성해서 보내왔습니다. 이제 그 실험을 해서 정확한 수치들을 얻어내면 티탄합금의 변형속도감도지수를 나타내는 공식을 유도해낼수 있는 전제를 마련하게 됩니다. 그다음에는 제작실험을 할수 있습니다.》

《실험에 필요한 실험설비들은 부족되는것이 없습니까?》

《우리 연구소에는 콤퓨터를 비롯한 현대적인 실험설비들이 이미 갖추어져있습니다. 그런데 주사식전자현미경이 한대 더 있었으면 합니다.》

《좋습니다. 보내주도록 하겠습니다.》

김정일동지께서는 수첩에 《주사식전자현미경》이라고 쓰신 다음 밑줄을 그으시였다.

《주사식전자현미경이 없어서 양영복선생이 시도하는 실험을 못하고있습니까?》

《아닙니다. 그 현미경은 다음단계의 실험에 필요합니다. 양영복선생이 시도하는 실험을 못한것은…》

손관식은 뒤를 잇지 못하고 시선을 떨구었다.

《어서 기탄없이 말하시오.》

그러나 여전히 손관식은 침묵했다. 객석에서 젊은 학자가 민망스레 손관식을 바라보더니 불쑥 일어섰다.

《양영복선생이 병석에서 실험지시표를 보내왔을 때 저희들은 생각되는바가 많았습니다. 그래서 소장선생이랑 여럿이 실험에 착수했댔습니다. 실험을 시작한지 이틀만에 저희들은 당장 걷어치우라는 지시를 받았습니다. 압착가공기술설비가 완공되여가는데 연구소의 한쪽 구석에서는 딴전을 보면서 완공공사에 동원된 사람들에게 신심을 잃게 하는 행동을 한다는것이였습니다. 그렇게 되여 중지되였습니다.》

김정일동지께서는 안색을 흐리시였다.

황석태의 편견이 빚어낸 후과를 다시금 실감하시였다.

그이께서는 서있는 두사람에게 어서 앉으라고 손짓을 하시며 학자들을 둘러보시였다.

《나는 동무들이 연구하는 초소성방법을 적극 지지합니다. 무엇보다 양영복선생과 동무들의 사상적각오와 독창적인 과학적지향이 마음에 듭니다. 나는 최근에 초소성에 대한 책을 몇권 보았습니다. 금속의 초소성질이 발견된지 얼마 안되기때문에 지금 세계적으로 볼 때 그 성질을 리용한 가공방법은 극히 제한된 일부 유색금속에 국한되여있습니다. 동무들이 더 잘 알겠지만 지금 금속가공학분야에서는 오래동안 내려오던 압착가공시대가 조만간에 끝나고 초소성가공방법의 새로운 시대가 도래한다고 합니다. 동무들이 성공하면 티탄합금의 가공에서 압착가공단계를 뛰여넘어 초소성가공방법을 세계에서 처음으로 개척한것으로 될것입니다. 미래의 금속인 티탄을 미래의 가공법인 초소성방법으로 가공하는것은 참으로 뜻깊은 일입니다!》

순간 얼굴에 함뿍 웃음을 담은 학자들이 일제히 박수를 터치였다. 우렁찬 박수는 그칠줄 몰랐다.

김정일동지께서도 환히 웃으시며 그들과 함께 박수를 치시였다. 자신의 심장과 그들의 심장이 하나의 맥박으로 고동치는것을 느끼시였다.

담화를 마치신 그이께서는 학자들의 배웅속에 연구소를 떠나시였다. 정문을 나서시던 그이께서는 마당에 나와선 그들을 되돌아보시였다. 헤여지기를 아쉬워하는 그들을 보시자 얼른 발걸음이 옮겨지지 않으시였다. 불현듯 하나의 생각이 떠오르시였다.

《동무들, 이제 나와 함께 평양으로 갑시다. 얼마전에 예술영화촬영소에서 오랜 과학자의 운명을 취급한 영화를 만들었는데 나더러 보아달라고 어저께 보내왔습니다.

오늘 저녁에 그 영화를 나와 함께 봅시다. 오늘은 평양에서 지내시오. 그리고 래일은 일요일이니 대성산이나 만경대유희장에서 휴식을 하고 돌아오시오. 갔던김에 양영복선생의 병문안도 하시오. 누구나 그 선생을 만나보고싶겠지만 거리가 멀다보니 몇동무만 찾아갔던 모양인데 모두가 찾아가면 그 선생이 얼마나 기뻐하겠습니까. 듣자니 영화는 곡절많은 생활의 풍파속에서 오직 위대한 수령님께 자신의 운명을 의탁하고 살아온 과학자가 주인공이라는데 양영복선생이 본다면 꼭 자기의 지나온 생활을 보는것 같을것입니다. 그 선생도 오늘저녁 함께 보았으면 좋겠지만 병석에 있으니 하는수 없습니다. 래일 동무들이 면회를 갈 때 록화필림을 보내주겠습니다.》

학자들은 넋을 잃은듯 잠자코 서있었다. 마치 그이의 말씀을 꿈결에서 들은것처럼 어리둥절한 얼굴들이였다. 상상할수 없는 행복과 기쁨에 휩싸이다보니 모두다 현실감각을 상실한것 같았다. 북받치는 감사의 정도 표현하지 못했고 기쁨의 환성도 터치지 못했다.

한시간후에 과학자들을 태운 대형뻐스가 평양을 향해 떠났다. 불시에 벌어진 일이여서 환송을 나온 사람은 없었다. 하지만 학자들은 만사람의 축복을 받으며 떠나는 느낌이였다. 이제 소식을 알게되면 가족과 친지들은 물론 온 도시가 놀라움과 기쁨에 휩싸일것이다. 뻐스는 시내를 벗어나 들판으로 뻗은 도로를 따라 달리였다. 차안에는 발동기의 동음만이 고르롭게 울릴뿐 숙연한 침묵이 흘렀다. 그이를 한자리에 모시고 새 영화를 보게 될 이 저녁과 수도의 유원지에서 휴식으로 즐거울 래일의 하루, 마치 자기 운명을 그린듯 한 영화를 보면서 더없이 감격할 양영복의 모습… 학자들의 머리속에는 그 모든것이 생동하게 떠올랐으나 누구도 말이 없었다. 어쩐지 자기들의 감정을 서뿔리 입밖으로 표현하는것이 경박한 일처럼 느껴졌다. 앞에서는 김정일동지께서 타신 승용차가 일정한 간격을 두고 달리였다. 학자들은 줄곧 그 승용차를 바라보면서 가슴속 깊은 곳에서 울려나오는 자기 심장의 목소리에 조용히 귀를 기울이고있었다. 정녕 경애하는 김정일동지의 품속에서 조선의 과학자로 사는 이 행복을 그 어디에 비기랴! 남들이 거친 순차와 단계가 아니라 비약의 지름길로 우리의 과학기술을 이끄시는 그이의 거인적인 보폭에 발걸음을 맞추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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