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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소설 비약의 나래 제25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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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강산
댓글 0건 조회 4,624회 작성일 21-04-17 2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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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3 장

2

 

당중앙위원회구내를 벗어난 두대의 승용차가 보통문쪽으로 뻗은 도로를 따라 달리고있었다. 김정일동지를 모신 차가 앞에서 달리고 고중환의 차가 그뒤를 따랐다. 평양제1중학교를 향해 떠나신 걸음이였다.

김정일동지께서는 차창가에 사색깊은 시선을 주시였다. 박두해오는 국제수학올림픽출전문제를 두고 생각에 잠기시였다. 아직 적지 않은 사람들이 첨단과학의 높은 목표앞에서 주저하거나 동요하고있었다. 남달리 어렵고 뒤떨어진 처지에 있는 우리가 과연 앞선 나라들을 따라잡거나 앞설수 있을가? 과학발전의 기존관념과 상식을 초월한 목표였으니 그럴만도 하지만 그 밑바닥에는 우리 민족의 월등한 창조적지혜를 믿지 못하는 사상관점이 깔려있었다. 자신을 믿지 못하는 사람은 그 무엇도 창조할수 없으며 그러한 민족은 언제까지나 뒤떨어진 처지에 있기마련이다. 오늘은 비록 뒤떨어졌다 하더라도 래일에는 남을 따라앞설수 있다는 신심과 락관을 가지는것이 중요했다.

김정일동지께서는 우리 민족의 창조적지혜가 얼마나 월등한가를 현실로 보여주려고 우리 학생들을 국제수학올림픽에 내보내려고 하셨던것이다.

그런데 교육부문 일군들은 방청으로 참가해야 한다는 견해들이라고 했다. 고중환자신도 그렇게 생각하고있었다. 평양제1중학교에서 수학을 가르치는 한 교원은 신심을 가지고 정식 경연에 참가할것을 주장해왔다고 한다. 고중환의 말에 의하면 자기 학생들의 실력을 정도이상으로 높이 여기는 교원의 눈무딘 감정때문이라는것이다. 과연 우리 학생들의 실력이 아직 세계적수준에 이르지 못하였을가? 학생들의 실력에는 여러가지 요인들이 영향을 미친다. 교원의 자질과 교육설비, 교육내용과 교육방법 등을 포괄하는 객관적요인들을 두고 말한다면 1중학교는 나무랄데없이 우월하다. 하다면 주관적요인이라고 할수 있는 우리 학생들의 지적능력이 남들보다 뒤떨어진단 말인가? 절대로 그럴수는 없었다. 우리 민족의 재능이 월등하다는것은 지나온 력사가 증명하고있다. 우리 민족은 태고적부터 자기의 지혜와 슬기를 과시하여왔다. 남들처럼 다른 민족의 문화를 받아들여서 그에 토대하여 문명의 첫걸음을 내디딘것도 아니다.

최근년간 우리의 고고학자들은 대동강류역의 여러 지방에서 류인원으로부터 인간이 진화한 시기의 고인과 그후 신인의 뼈들을 발견하였다. 이것은 우리 나라가 인류발상지의 하나라는것을 자랑스럽게 증명해주고있다. 조선사람은 다른 대륙이나 다른 섬에서 시원하여 맛나는 나무열매와 짐승무리를 찾아서 정처없이 헤매던 끝에 산좋고 물맑은 이 땅에 뿌리를 내리고 생존의 터전을 마련한것이 결코 아니다. 세면을 둘러싼 장쾌하고 드넓은 바다, 기름진 들판과 수림이 무성한 산발들이 조화를 이룬 대지, 꽃피는 봄에 뒤이어 록음짙은 여름이 오고 풍요한 가을과 눈덮인 겨울이 차례로 뒤따르며 계절의 변화를 뚜렷이 하여주는 기후, 눈비를 알맞추 뿌려주면서 년중 거의 모든 나날에 맑고 푸르게 열리는 하늘, 이러한 자연이 부여해준 독특한 정기를 타고난 조선사람은 처음부터 단일한 혈통을 지켜오면서 자기 고유의 문화를 창조하여왔다. 출토된 우리의 구석기들은 다른 나라의 구석기들과 많은 점에서 공통성을 가지고있으며 그 차이점은 희미하게 나타나고있다. 비록 각이한 잠재력을 가졌지만 동일한 출발선에서 떠난 달리기선수들의 간격이 첫 순간에는 쉽게 눈에 뜨이지 않는것처럼 류인원에서 갓 진화한 우리 선조들의 지적능력은 다른 인종들의 그것에 비하여 뚜렷하게 높이 발휘되지 못하였다. 그러나 신석기시대에 이르러서는 그 차이가 뚜렷해지고있다. 토기들에 새겨진 무늬들은 우리의 선조들이 기하학적사고와 조형능력에 있어서 신석기시대 다른 인종들보다 훨씬 앞서고있다는것을 실증해주고있다. 더욱 놀라운것은 원시시대의 고인돌무덤이다. 수십톤씩 되는 돌로 네기둥을 세우고 역시 그만한 크기의 돌로 뚜껑을 덮은 고인돌무덤은 당시 인간들의 석축술과 력학지식이 어떤 높이에 이르렀는가를 말해주고있다.

웬만한 현대의 기중기들도 들어올리기가 불가능한 몇십톤짜리 돌을 당시의 사람들이 어떻게 다루었는지는 바이 알기가 어렵다. 세상사람들은 고대의 대표적인 석축물로 에짚트의 피라미트를 꼽고있다. 물론 피라미트는 웅장함과 정교함에 있어서 력사의 기적이라고 할수 있다. 그러나 고인돌무덤의 년대는 피라미트보다 몇십세기 앞섰다. 에짚트사람들처럼 수십년세월을 거쳐 수십만의 노예들을 희생시키면서 피라미트와 같은 웅장한 석축물을 쌓아올릴 필요를 느끼지 않았으니 말이지 고인돌무덤이 보여주는 놀라운 솜씨를 미루어보아 만일 우리 선조들이 그러한것을 시도하였다면 훨씬 앞선 시대에 보다 훌륭히 창조하였을것이다.

최근에 개발된 최신형년대측정기구로 우리의 청동기유물들을 검증한데 의하면 우리의 선조들은 야만의 시대가 끝나고 문명의 시대가 시작되는 청동기시대의 대문을 남먼저 열어제끼였다. 력사박물관에 진렬된 청동기들의 그 신묘한 연마술과 가공술에는 누구나 경탄을 금치 못한다. 무슨 수로 뽑아내였는지 알길이 없는 머리카락같은 금실과 구시실, 왕관에 장식된 화려한 문양, 유리거울처럼 선명하게 비치는 청동거울… 겉보기에도 놀랍지만 그 유물들의 재질을 알고보면 더욱 그러하다. 같은 시기 다른 나라 청동기들은 단일 유색금속제품들이였다. 금이면 금, 구리면 구리 한가지 금속으로 만들어졌다. 그러나 우리 나라 청동기들중에는 합금으로 된것이 많다. 우리의 선조들은 청동기시대에 여러 유색금속을 합리적인 비률로 함께 녹여서 보다 질좋은 재료를 만들어냈다. 청동기를 쓰면서 그들의 생활은 새로운 면모를 띠게 되였다. 굶주림을 면하는데 모든것을 집중하던 처지에서 벗어나 공상과 환상을 가지며 주위세계를 보다 깊이 인식하게 되였다. 학문과 과학을 탐구하기 시작한 우리의 선조들은 문명에로의 진군을 다그치기 위해 문자를 창제하였다. 문자의 창제는 인류가 이룩한 가장 획기적인 업적이다. 고대문화의 본보기를 창조한 동서방의 앞선 민족들이 자기의 문자를 가지게 된 문명기 초기에 우리 선조들은 뒤떨어짐이 없이 《신지글자》로 불리우는 문자를 만들어냈다. 신지글자가 정확히 어느때 만들어졌는지는 딱히 알수가 없다. 풍파많은 력사의 동란속에서 신지글자로 기록된 책들은 물론이고 그 글자자체가 아득한 옛시절에 인몰되여버렸다. 다행 토기에 새겨진 신지글자의 몇자만이 후세에 전하여졌다. 토기를 검증한데 의하면 고대 발달된 민족들이 문자를 만들어 사용하기 시작한 년대와 비슷하다. 실상 신지글자가 창제된것은 그 글자를 새긴 토기가 구워진 때보다 훨씬 이전일수 있었다. 몇백년 지어는 몇천년전일수도 있다. 감정된 토기의 년대를 기준으로 한다고 하여도 우리 선조들은 당당히 인류최초의 문자들을 가진 선각자대렬속에 들어선것으로 된다.

우리의 선조들은 주위세계를 인식하고 개조하는 과정에 얻은 많은 경험과 지식을 신지글자로 기록했을것이다. 고대의 유물들과 유적들을 보면 당시 우리 나라에도 탈레스나 피다고라스와 같은 인류과학의 첫 개척자들이 있었으리라는것을 어렵지 않게 짐작할수 있다. 당시의 유적과 유물들이 그에 해당한 기초과학의 리론에 토대하지 않고서는 도저히 불가능하기때문이다. 신지글자와 그 기록이 력사의 재난속에 일찌기 묻혀버린것은 참으로 통탄스러운 우리 민족사의 비극이다.

그때로부터 멀리 후세에 이른 15세기에 《훈민정음》으로 불리우는 우리의 문자가 다시 창제되였다. 발음을 할 때의 입모양을 따서 글자획을 만든 훈민정음은 어음학적인 과학성과 표기능력의 우수성으로 하여 세계에 자랑할만 한 글자이다. 가장 우수한 이 글자가 만들어진것은 빈터우에서가 아니라 고대시기에 신지글자를 만들었던 전통에 토대한것이라고 보아야 할것이다. 신지글자는 인멸되였어도 그 글자를 만들 때 발휘되였던 우리 민족의 슬기만은 끊어지지 않고 후대들에게 계승되였을것이다.

고려의 도자기 또한 세계의 자랑이다. 보면 볼수록 더더욱 아름다움과 깊이가 느껴지는 부드러운 색갈, 완벽하달만치 조형미를 갖춘 형태, 다양하고 기묘한 무늬, 가벼우면서도 견고한 재질… 실로 고려청자기에는 우리 선조들의 고결한 심혼과 신비할 정도의 도자기제조기술이 깃들었다. 오늘날에도 세계의 많은 나라 도자기들은 그 수준에 이르지 못하고있다. 그러니 고려사람들은 거의 10세기나 앞질러 세계도자기기술의 상상봉에 올랐던것이다.

13세기 후반기로부터 14세기 전반기에 생존했던 고려의 학자 강보는 수학, 천문학, 력학 등 광범한 분야의 학문을 탐구하였다. 그는 특히 수학에 커다란 업적을 남긴 학자로서 4차방정식풀이법을 발견하였다. 유럽에서는 그때로부터 500년이상 흐른 19세기에 영국의 수학자 오네에 의하여 4차방정식풀이법을 알게 되였다. 그러고보면 고려의 수학자 강보는 유럽수학자들보다 얼마나 멀리 앞섰던가. 부인할수없이 강보는 인류의 지혜를 뛰여넘었다. 하지만 강보는 세상에 널리 알려지지 못했다. 세계과학발전사는 유럽중심주의의 편견에서 서술되여왔다. 만일 공정한 평가가 주어진다면 강보는 중세기 세계수학계의 거물들로 꼽히는 페르마, 파스칼, 데카르트와 어깨를 나란히 해야 할것이다.

고려시기의 재능있는 화학자였던 최무선은 효능높은 화약을 발명하였다. 1380년 500여척으로 왜구가 남해로 침범했을 때 최무선의 화약은 무적의 위력을 남김없이 발휘하였다. 그가 만든 화약으로 장약된 화전과 화포, 화통의 불길속에서 적들은 별로 대항도 해보지 못하고 전멸되였다. 력사에 진포해전으로 불리우는 대전승은 최무선의 과학적지혜에 의하여 이루어졌다.

진포해전에서 사용한 화전(불화살)은 로케트원리에 기초하고있었다. 헹기웠던 활시위의 탄력으로 화살이 날아가는것이 아니였다. 화살의 뒤에 화약을 장약한 화통을 달고 거기에 불을 달아서 폭발하는 화약의 반충력으로 적진에 화살을 날렸다. 꼬리에서 거세찬 불길을 뿜으며 먼거리탄도를 긋는 화전의 위력은 당시로서는 상상하기 어려운것이였다. 세계는 로케트기술의 시원이 서방이 아니라 동방 조선에서 열리였다는것을 공인하고있다.

우리 민족은 이미 중세시기에 오늘의 인류가 대륙간탄도미싸일을 만들고 우주비행까지를 실현할수 있게 한 로케트기술의 첫 개발자였다. 이 얼마나 자랑스러운 일인가! 그러나 그후에는 무지와 몽매의 시대가 도래하였다. 배신적인 음모와 정변으로 고려왕조를 멸망시키고 집권의 야망을 실현한 리성계는 선조들이 이룩해놓은 과학기술을 참혹하게 묵살해버렸다. 과학기술에 대한 수치스러운 배제와 홀시는 리성계의 후손들로 26대에 걸쳐 왕위가 계승되여온 장구한 력사적기간에 변함없이 계속되였다. 물론 세종대왕시기와 같이 과학기술발전에 관심을 돌린 례외적인 시기도 있기는 하였다. 그러나 리조 500년간은 전반적으로 볼 때 봉건지배계급이 유교교리만을 숭상하면서 음풍영월로 헛되이 세월을 보낸 시기였다. 거기에 일제식민지통치의 40여년이 뒤따랐다. 하지만 우리 민족이 지닌 특출한 지혜마저 그 시기에 사라져버린것은 아니였다. 다만 암흑통치하에서 빛을 보지 못하였을뿐이다. 조국의 해방과 더불어 오랜 력사의 질곡에서 마침내 벗어난 우리 민족의 지적능력은 광휘로운 해빛속에 활짝 꽃피기 시작했다. 오늘에 이른 우리의 교육제도는 세상에서 가장 우월하다. 1중학교의 경우에는 교육조건도 나무랄데없이 훌륭하다. 그러고보면 우리 학생들의 실력이 남에게 뒤질 아무런 까닭도 없는것이다. 우수한 지능에 훌륭한 제도와 조건이 주어지고있는것만큼 우리 시대에는 세계적인 학자들이 무수히 자라나야 할것이다. 우리의 과학발전은 너무도 길었던 력사의 공백을 메꾸자고보니 세계적수준에 비해 아직 일정한 거리를 남겨두고있지만 교육은 그렇지 않다.

교육은 상대적으로 뒤떨어졌던 력사의 공백을 과학보다 빨리 메꿀수가 있다. 개별적인간들의 교육년한이 15~20년밖에 걸리지 않기때문이다. 교육사업을 모든 사업에 앞세워온 우리 당의 시종일관한 정책으로 오늘 우리 교육은 세계적인 수준에 당당히 올라섰다고 말할수 있다. 그런데 우리 학생들의 수학실력이 최강자들과 겨룰수 없다니 도저히 믿어지지 않으시였다.

어느덧 승용차는 평양제1중학교 정문에 이르렀다.

김정일동지께서는 앞에 앉은 운전사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리시였다.

《여기에 차를 세우시오.》

운전사는 까닭을 묻지 않고 말없이 차를 세웠다. 운동장을 꿰질러 현관앞까지 차를 몰고가면 한창 수업을 하는 학생들에게 방해가 될수 있다고 여기시는 그이의 심정을 진작 알고있었다. 학교나 유치원을 찾으실 때에는 항상 울타리밖에서 차를 멈추게 하시는 그이이시였다.

김정일동지께서는 고중환과 나란히 운동장으로 들어가시였다.

현관앞에 이르셨을 때 낯익은 교장이 허둥지둥 달려나왔다.

《정말 뜻밖입니다. 이렇게 오실줄은 몰랐습니다.》

《미리 알리고 나오면 학생들이 공부도 안하고 모두 운동장에 나올것 같아서 소문없이 나왔습니다.》

김정일동지께서는 교장의 안내로 그의 사무실에 들어와 쏘파에 앉으시였다. 무심히 둘러보시니 눈익은 방안의 전경이였다. 학교의 청사를 준공할 때 마지막으로 이 사무실에도 들려보시였었다. 그날 동행했던 림춘추부주석은 방안에 갖추어진 최상급의 비품들에 황홀해하면서 교장의 어깨를 두드렸다.

《여보, 동무의 사무실이 내 사무실보다 훨씬 더 요란하오. 부럽소. 그럴수만 있다면 부주석자리를 내놓고 여기 와서 교장사업을 하고싶소.》

롱담이였지만 해방직후 중국 동북지방에서 사업할 때 교육에 관심을 가지고 연변대학창립에 관여했던 그로서는 노상 빈말이 아니였을것이다. 교장은 아무런 응대도 없이 히뭇이 웃고있었다.

김정일동지께서는 림춘추에게 이렇게 말씀하시였다.

《교장자리가 그렇게 탐이 난다면 이 학교의 사업을 책임진 심정으로 한가지 맡아주어야 할것이 있습니다.》

《저더러 무엇을 하라는겁니까?》

림춘추는 무슨 일이건 기꺼이 맡아나설 용의가 있다는 뜻으로 길쑴한 얼굴에 웃음을 담고 반문했다.

《학교를 돌아보니 교육설비는 나무랄데없이 갖추어졌습니다. 이제 남은것은 학생들을 잘 먹이는 문제입니다. 귀중한 학생들인것만큼 영양관리도 잘해야 하겠는데 중앙인민위원회가 후방사업을 직접 맡아주었으면 합니다.》

《그러니까 나더러 후방부교장을 하라는 말씀이시군요.》

소리내여 크게 웃던 그는 교장에게 말했다.

《내 후방부교장으로 소임을 다할테니 교장선생은 그 일은 조금도 걱정말고 학생들을 우리 과학의 역군으로 훌륭히 키워주시오.》

여전히 롱조였으나 마지막부탁에는 절절한 호소가 울리고있었다. 항일전의 나날에 총칼로써만이 아니라 지식과 의술로써 원쑤격멸의 성전에 2중으로 기여하였던 로투사는 과학기술의 중요성을 누구보다 잘 알고있었다. 그러기에 이날의 경사를 그토록 기뻐했던것이다.

김정일동지께서는 그로부터 여러해후에 병석에 누운 그를 찾으셨던 일을 다시 상기하시였다. 그때 림춘추는 김정일동지의 손을 잡고 쇠잔한 목소리로 이런 말을 했었다.

《달포전에 1중학교에 나가 아이들이 공부하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정말 대견스러웠습니다. 친애하는 지도자동지의 시대에 우리 나라는 과학기술분야에서도 용약 세계적수준에 오를수 있다는 생각이 들더란 말입니다.》

투사의 병세가 위급해진데 마음이 쓰이여서 그때는 무심히 들으시였다. 그러나 며칠후 그의 령전에 서시였을 때 그 말이 심중한 의미를 가지고 되새겨지셨다. 우리 과학기술의 선진수준에로의 도약이 혁명의 전세대가 자신의 어깨우에 짊어주는 력사적과제의 하나라는 생각이 드시였다.…

《림춘추부주석이 돌아간 다음에도 중앙인민위원회에서 학교의 후방사업을 잘해줍니까?》

상념에서 깨여나신 김정일동지께서 교장에게 물으시였다.

《잘해주고있습니다. 고기와 물고기는 물론 과일도 정상적으로 공급하고있습니다.》

《그러니 보장해줄것은 다 보장해주는셈인데 학생들의 성적이 왜 높지 못합니까? 국제수학올림픽에 제출되였던 문제를 가지고 처음 시험을 쳐봤을 때에는 태반의 학생들이 손도 대여보지 못했다더군요.》

《정말 면목이 없습니다.》

교장은 죄송스러운 어조로 대답올렸다.

《교장선생도 우리 학생들이 정식경연에는 참가할수 없다고 생각한다지요?》

《그렇습니다. 올림픽에 제출되는 시험문제는 우리 학교들에서 치는 시험문제와는 엄청나게 차이가 있습니다. 수준이 높을뿐더러 기발하게 실머리를 찾지 않고서는 전혀 손을 댈수 없는 묘한 문제들입니다.》

《그런데 이 학교의 한 수학교원은 신심을 가진다더군요.》

《그후 몇번 다시 시험을 쳐보고 신심을 가지는데 그것은 어디까지나 지나친 욕망입니다.》

《그 교원을 좀 만나게 해주시오.》

교장이 수학강좌에 전화를 걸었다.

녀교원이 나타나기를 기다리시던 김정일동지께서는 교장에게 물으시였다.

《그 교원의 자질은 어떻습니까?》

교원의 자질이 학생들의 실력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기때문에 그것부터 알고싶으시였다.

《교원년한도 오래고 자질도 높은편입니다.》

잠시후에 정금화가 방안에 들어섰다.

김정일동지께서는 반가움과 기쁨에 넘쳐 인사를 올리는 그에게 의자를 권하시였다.

《앉으시오. 수학올림픽참가문제와 관련해서 수학을 직접 가르치는 선생들의 의견도 들어보고 학생들이 수학공부를 어떻게 하고있는가도 보고싶어서 나왔습니다. 선생은 정식경연에 참가해도 승산이 있다고 한다는데 기탄없이 의견을 말하시오.》

정금화는 고중환의 눈치를 얼핏 살피고나서 여러번 시험을 다시 쳐보는 과정에 성적이 점차 높아지는것을 보고 신심을 가지게 되였다고 말씀드리였다.

《매번 같은 문제를 가지고 시험을 친다면 몰라도 다른 문제를 가지고 시험을 치는데 그렇게 갑자기 성적이 높아질수야 없지 않습니까?》

그 물으심을 기다린듯 정금화는 다소 흥분된 어조로 대답올렸다.

《수학올림픽에 제출되는 문제들은 단순히 배운 지식의 소화정도를 검열하는 문제들이 아니였습니다. 배운 지식에 토대해서 학생들의 창조적사고력을 최대한으로 계발하는 방향에서 제시된 문제들이였습니다. 그런데 우리 학생들은 지금까지 배운 지식의 소화정도를 검열하는 시험문제에만 습관되여있었습니다. 창조적사고를 계발하는 시험문제들은 생소했습니다. 첫 시험에서 성적이 예상외로 나빴던것은 그 풀이방법때문이였습니다. 교원들이 수학올림픽문제들에 대한 풀이방법을 가르쳐주자 그후 시험들에서는 학생들이 자체로 문제풀이의 실머리를 찾기 시작했습니다. 말하자면 창조적인 사고력과 추리력을 문제풀이에 지향시켰습니다. 그래서 점수가 높아졌던것입니다.》

김정일동지께서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시였다. 충분히 리해가 가시였다. 고중환도 그제야 저으기 공감하는듯 한 낯빛이였다.

《부부장동무, 우리 학생들의 시험방법을 결정적으로 고쳐야 하겠습니다. 배워준것을 받아내는 식의 시험방법을 더는 지속시키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알겠습니다.》

고중환은 우리 교육일군들이 낡은 시험방법을 고집한다고 안타깝게 호소하던 정금화를 생각했다. 그 호소가 무엇을 의미했던가를 깨달았다.

《친애하는 지도자동지, 자신있습니다. 정식경연에 참가하도록 해주십시오.》

정금화의 눈에는 간절한 열망이 불타고있었다.

《나는 선생의 그 신심을 믿습니다. 그 문제는 다른 수학선생들의 의견도 들어보고 학생들의 수학공부정형도 알아본 다음에 결정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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