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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소설 비약의 나래 제38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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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강산
댓글 0건 조회 6,533회 작성일 21-04-30 2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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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4 장

5

 

고중환은 아침 일찌기 과학원을 향해 떠났다. 승용차의 뒤좌석에 깊숙이 몸을 묻고 오늘 하루동안에 처리해야 할 일들을 생각했다. 언제나 사색을 깊이하고 행동에 옮기는 그에게는 출근길이나 출장길에서 그날의 일과 앞으로의 사업을 구상하는것이 굳어진 습관으로 되여있었다. 고르롭게 울리던 승용차의 동음이 높아지는 바람에 상념에서 깨여났다. 어느새 승용차는 동북리고개를 치달아오르고있었다.

단숨에 고개를 넘어 배산벌을 지날 때였다. 전차정류소옆으로 초간히 떨어진 가로수밑에서 낯익은 얼굴이 보였다. 밤색외투를 입고 서있는 나이지숙한 남자는 과학원의 림수봉부원장이였다. 낯모를 젊은 녀인이 그와 마주서있었다. 연자주빛솜옷에 눈부시게 흰 털목도리를 두르고 자그마한 트렁크를 들었다. 헌데 무엇때문인지 울고있었다. 림수봉은 난처한 기색으로 녀인을 타이르고있었다. 그 표정들로 보아 녀인은 림수봉의 타이름을 듣지 않고 그 무엇을 눈물로 하소하고있는것이 분명했다. 고중환은 젊은 녀인이 림수봉의 며느리가 아니면 딸이라고 생각했다. 못 본척 하고 지나버려야 했다. 가정적으로 불미스러운 일이 벌어지는 장소에서 만나면 림수봉의 립장이 딱해질수 있었다. 그런데 승용차가 그들의 옆을 지날 때 림수봉이 이쪽을 알아보고 반겨 인사를 했다.

《차를 세우시오.》

운전사에게 말했다. 승용차는 그들을 뒤에 남기고 얼마쯤 지나서야 멎었다. 고중환은 차실문을 열고 뒤를 돌아보았다. 젊은 녀인과 헤여진 림수봉이 총총히 다가왔다.

《출근길입니까?》

고중환은 선선한 표정으로 물었다.

《그렇습니다.》

《그렇다면 어서 타십시오.》

림수봉이 오르자 승용차는 다시 떠났다. 그는 뒤창으로 방금 헤여진 젊은 녀인을 뒤돌아보더니 혼자말처럼 중얼거렸다.

《참, 야단났습니다.》

제쪽에서 먼저 사연을 말하고싶어하는 기색이였다. 고중환은 말없이 그에게 의혹의 시선을 보냈다.

《이자 그 녀자는 기계공학연구소 석홍범동무의 처인데 남편과 다투고 친정으로 간답니다.》

고중환은 놀랐다. 림수봉의 며느리나 딸일것이라는 예상이 빗나갔기때문이 아니였다. 석홍범의 가정에 불화가 있다는것이 잘 믿어지지 않았다. 전에 만나본 일이 있지만 석홍범은 가정에서 안해의 인격을 무시하는것과 같은 무례한 행동을 할상싶지 않았다.

《무슨 일로 다투었답니까?》

《이번에 다툰 구체적인 동기는 모르겠습니다. 석홍범동무의 처는 전부터 남편이 과학원에 온것을 못마땅하게 생각하고있습니다.》

《왜 그런답니까?》

《외동딸이여서 평양에 있는 늙은 부모들을 모셔야 하기때문이랍니다. 말은 그렇지만 본심이야 머리를 안쓰고 쉽게 일하면서도 먹을알이 있는 직업을 원하기때문이지요.》

《그 녀동무의 아버지는 뭘 합니까?》

《금속공업부 강서원부부장이 바로 그 녀동무의 아버지입니다.》

《그렇구만.》

《지금 당에서는 과학기술을 그처럼 중시하지만 젊은 세대들, 특히 간부자녀들속에서는 과학연구사업에 종사하지 않으려는 경향이 나타나고있습니다. 연구소들에서 제기된 자료를 보면 최근년간에 대학을 졸업하고 배치된 연구사들중에서 딴데로 가겠다는 동무들이 어데나 한두명씩 있습니다.》

새삼스레 듣는 이야기가 아니였다. 부분적이기는 하지만 어데나 이런 현상들이 있다는것을 알고있었다. 놀라운것은 금속공업부 부부장의 딸에게서 그런 현상을 보는것이다. 사업분야가 다르다보니 강서원이 어떤 일군인지 알지 못했다. 그러나 명백한것은 그가 우리 나라 경제의 가장 중요한 부문을 책임진 일군들중의 한사람이라는 사실이다. 나라의 경제를 추켜세우기 위한 근본방도가 과학기술발전에 있다는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있을것이다. 그는 자기 딸이 과학연구에 전심을 하는 남편의 지향을 반대해나선다는것을 알고있을가? 딸의 그릇된 사고방식을 두고 어떤 태도를 취하고있을가? 대중앞에서는 우리 당의 과학중시정책을 받드는 일군으로 자신을 분식하지만 뒤에서는 자녀들을 과학기술부문에서 딴데로 빼여돌리는 사람들이 없지 않다. 강서원도 그런 사람이 아닌지…

과학원에 도착한 고중환은 석홍범을 찾았다. 그가 과학원에 나온것은 오후에 과학기술부문 일군들의 협의회가 있기때문이였다. 회의준비정형도 알아보고 그간 연구사업의 실태를 료해하려고 아침 일찌기 나왔다. 그런데 림수봉의 말을 듣고보니 우선 석홍범을 만나고싶었다.

얼마후에 석홍범이 방안에 들어섰다. 정중히 인사를 하는 그의 얼굴에는 어두운 그늘이 비꼈다. 아침에 있은 안해와의 다툼으로 흐려진 기분을 좀처럼 가시기 어려워하는것 같았다.

《앉소.》

석홍범은 책상앞에 놓인 의자에 앉았다.

고중환은 수척해진듯 한 그의 얼굴을 측은히 바라보았다.

《전에 만났을 때보다는 얼굴이 축간것 같구만. 어디 아프지 않소?》

 친절히 물었다.

《괜찮습니다.》

《그렇다면 연구사업에 지내 무리한것 같구만.》하고 고중환은 석홍범의 낯빛을 살피며 말머리를 돌리였다.

《동무는 가정에도 응당한 관심을 돌려야 하겠소. 초고압유압프레스를 새롭게 개발하려는 큰 포부를 지닌 동무가 한가정의 화목을 도모하지 못해서 동네의 말밥에 오르다니… 유감스러운 일이요.》

석홍범은 수치감에 상혈된 얼굴을 들며 똑바로 마주보았다. 말없는 눈빛은 가정의 불화를 어떻게 아는가고 묻고있었다.

《내 방금전에 이리로 오다가 친정으로 가는 동무의 안해를 보았소. 듣자니 동무의 안해는 동무가 과학원을 떠날것을 원한다더군. 그렇소?》

《…》

《사실이 그렇다면 동무가 잘 교양을 해야지. 사랑하는 안해 한사람을 교양할 능력이 없다면 미지의 과학기술을 개발하는 일이야 더욱 불가능할게 아니요.》

그렇게 변죽을 울리자 석홍범은 반발적으로 나왔다.

《아닙니다,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안해를 설득시키는 일이 새로운 발명을 하기보다 훨씬 더 어렵습니다.》

자기 생활의 결론을 말하듯이 명백히 말한 그는 다시 고개를 떨구며 가늘게 한숨을 삼켰다. 고중환은 그 한숨에서 석홍범이 겪고있는 가정생활의 고뇌를 엿보았다.

《그래 장인도 동무가 딴데로 옮겨앉을것을 바라고있소?》

석홍범은 침묵했다. 설사 그렇다 하더라도 말하지 않을것이다. 장인때문에 남모르는 고충을 겪고있다 하더라도 남의 면전에서 그에 대한 불만을 드러내지 않을것이다. 결함을 감싸려고 해서가 아니라 자식의 도리에 어긋난다고 생각할것이다. 고중환은 공연한 물음이였다는것을 깨달았다. 가정의 리면사를 더 캐여볼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며 힘주어 다시 말했다.

《문제는 동무 안해의 립장이요. 동무는 하나의 발명보다 한사람의 안해를 교양하는 일이 더 어렵다고 하였는데 구체적인 생활에서는 그럴수도 있겠지. 그러나 그것은 남편의 의무와 책임을 다할줄 모르는 사람의 경우요. 다투면서 소란을 피울것이 아니라 열렬한 사랑속에 깨우쳐주고 이끌어주시오. 동무의 지향이 정당한 이상 안해도 조만간에 동무를 리해할거요.》

《알겠습니다.》

석홍범은 입속으로 중얼거렸다. 짓숙인 얼굴은 한껏 붉어졌다. 당중앙위원회 부부장한테까지 가정의 불화를 드러내보인것이 형언할수 없이 부끄러웠던것이다.

《그 얘기는 그만합시다. 어려운 연구과제를 안고 탐구의 고민이 큰 동무한테 가정적인 고충까지 겹친것이 안타까와서 하는 말이였소.》

고중환은 련민의 눈길로 그를 바라보며 잠시 동안을 두었다가 부드러운 어조로 물었다.

《그래 그동안 연구사업은 어떻게 되였소?》

서서히 고개를 드는 석홍범의 눈에는 음울한 그늘이 가셔지고 생기어린 빛이 떠올랐다.

《부부장동지, 얼마전에 새로운 기밀방법을 구상했습니다.》

《그렇소?》

고중환은 반가움에 넘쳐 몸을 그에게로 기울이였다.

《뽐프의 작업압력을 추종해서 내압에 비해 기밀부의 공기압을 증폭시키면 기밀을 보장할수 있다는 과학적확신을 가지게 되였습니다!》

석홍범의 목소리는 벌써 활기에 넘치였다. 안해의 일로 하여 가슴을 짓누르던 수치감은 어느새 사라져버렸다. 자기의 연구사업을 두고 잠재하던 흥분이 그를 사로잡았다.

《좀 자세히 설명해줄수 없겠소?》

석홍범은 그러한 청을 기다렸다는듯이 열정적으로 설명하기 시작했다. 고중환은 흥미를 가지고 들었다. 전공학문이 다르지만 자연과학기초원리들을 잘 알고있는 그는 석홍범의 륜곽적인 설명에서 성공의 실머리를 엿보았다. 새로운 기밀방법을 착상한 기초원리가 리해되였던것이다. 석홍범은 분주히 옷주머니를 뒤지며 도면을 그려보일 종이를 찾았다.

《가만, 종이는 여기 있소.》

고중환은 서류가방을 열고 사무용지를 여러장 꺼내주었다.

석홍범은 재빨리 종이우에 도면을 그리고 기밀장치의 구조와 작용원리를 상세히 말하였다. 어떤 대목에서는 압력곡선을 그려보이기도 하고 력학의 수식을 써보이기도 하였다.

다 듣고난 고중환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기발한 착상인것 같았다.

《그래 과학심의에 제기해봤소?》

《처음에는 반대하는 동무들이 있어서 저도 확신을 못 가졌댔습니다. 김책공대 류체력학강좌장선생님을 찾아가 지도를 받은 후에 확신을 가지고 좀더 구상을 무르익혔습니다. 두주일전에 류체력학 과학심의위원회가 있었는데 모두가 저의 구상을 지지했습니다.》

《그렇다면 연구집단을 다시 무어서 제작에 착수해야겠구만.》

《림수봉부원장동지가 연구집단을 다시 조직해주었습니다.》

그 연구집단을 해산했던 림수봉이 다시 조직해주었다니 반가운 일이였다.

어쩌면 그 하나의 사실이 림수봉의 사고방식에서 일어난 근본적인 변화를 보여준다고 할수 있었다. 첨단과학의 점령에로 현명하게 이끄시는 경애하는 김정일동지의 따뜻한 손길아래 과학자인 석홍범이나 지도일군인 림수봉이 자기 성장의 길을 힘있게 걸어가고있다는 생각으로 가슴이 후더웠다.

 

×

 

예견했던 협의회는 과학자회관에서 열리였다. 전국의 연구기관들은 물론 국가과학기술위원회와 조선과학기술련맹, 과학기술통보사와 부문별 과학기술협회, 고등교육기관의 책임자들이 모여왔다. 수백석을 가진 장내였지만 어떤 사람들은 자리가 모자라서 급히 날라온 개별의자들에 앉았다.

주석단복판에 앉은 고중환은 좌중을 둘러보다가 자리에서 일어나 마이크를 약간 앞으로 끄당겼다.

《이미 알고있는것처럼 오늘 협의회에서는 친애하는 지도자 김정일동지의 조치에 따라 새로 조직된 과학기술심의부문 사업정형을 토론하겠습니다. 이에 대한 보고를 국가과학기술위원회 위원장동무가 하겠습니다.》

고중환의 옆에 앉았던 국가과학기술위원회 위원장이 보고문을 들고 연단으로 나갔다.

환갑에 채 이르지 못한 나이였으나 그의 머리는 검은 오리가 하나도 없는 은발이였다. 때이르게 세여버린 머리카락때문에 장년기의 책임적인 국가행정일군이라기보다 로학자다운 인상을 풍기였다. 그의 보고는 길지 않았다. 하지만 지난날의 성과와 편향이 명백히 지적되였고 적중한 실례들이 그것을 안받침하였다. 보고가 끝나자 열렬한 토론들이 있었다. 부문별 과학심의책임자들은 해당 과학의 높은 권위를 가진 연구소의 소장들과 중앙대학의 강좌장들이 겸임하였다. 그렇기때문에 토론에는 주로 그들이 참가하였다. 과학기술심의체계가 나온지는 반년밖에 안되지만 어느 과학분야에서나 그 기간에 수십건의 심의를 하였다. 연구기관과 대학들에서 제기하여온것도 적지 않았지만 인민경제 여러 부문에서 심의를 의뢰하여온것이 훨씬 더 많았다. 과학기술지식과 지혜를 가진 사람들은 어디에나 있었다. 그러나 밑에서는 그 누가 기발하고 신통한 창안이나 발명을 하여도 과학성여부를 자체로 판단하기가 어려워서 묻어두는 경우가 많았다. 그런데 드디여 때를 만나 그것들을 심의에 제기해왔던것이다. 능력있는 학자들이 망라된 심의체계에서는 집체적인 론의를 거쳐 공정한 평가를 주었을뿐아니라 더욱 훌륭히 완성할수 있는 조언과 방조를 주었다. 말하자면 광범한 대중의 창조적지혜를 계발하고 연구사업을 옳게 이끌어주는 기능도 수행하였다.

고중환은 토론이 계속될수록 새로운 심의체계의 생활력을 보다 깊이 깨달았다. 경애하는 김정일동지로부터 심의체계를 내올데 대한 가르치심을 받고 기구를 조직할 때만 하여도 전자의 기능만을 념두에 두었다. 그러나 생활자체가 후자의 기능까지를 동반했다. 생활은 그이께서 취해주신 조치가 얼마나 정당하고 현명한가를 말해주고있었다. 고중환은 그이를 모시고 9월제련소에 내려갔던 때를 회상했다. 오늘에 와서 돌이켜볼수록 실패한 티탄합금가공설비사건을 예리하게 분석하고 대책을 세워주신 그이에 대한 경모의 정이 끓어올랐다. 정치를 하나의 과학, 하나의 기술이라고 한다면 거기에는 현실을 정확히 분석하는 과학성과 그로부터 가장 적중한 대책을 세울줄 아는 로숙한 정치실력의 겸비를 의미할것이다. 참으로 김정일동지는 그 량자를 겸비하신 철저한 실력가형의 정치가이시였다.

경건한 심정에 사로잡힌 고중환은 그 누구와 그때의 회포를 나누고싶은 충동을 느끼며 장내를 둘러보았다. 왼쪽좌석의 중간쯤에 손관식이 앉아있었다. 그의 얼굴에 남다른 흥분이 흘렀다. 그와 시선이 마주쳤다. 오가는 말은 없었으나 지금 그가 체험하는 감정이 어떤것인지를 알고도 남음이 있었다. 공정한 심의제도가 없었던탓으로 마음의 고충을 겪어야 했고 과학자의 량심을 저버리는 행적도 남기였던 그였다. 그렇기때문에 지금 누구보다도 격동되여있을것이다. 만일 양영복박사가 오늘의 협의회에 참가하였다면 손관식보다도 더 흥분된 심정일것이다.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참가하지 못했다. 시간을 다투며 새로운 티탄합금가공설비개발에 전심을 하는 그는 연구사업에서 하루도 몸을 뺄수가 없었다.

협의회에서는 이미 얻은 성과와 경험에 토대하여 과학기술심의사업세칙을 더욱 완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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