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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소설 평양은 선언한다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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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강산
댓글 0건 조회 6,662회 작성일 21-06-06 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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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소재지의 번창한 거리에는 여느때나 다름없이 사람들의 생활이 끓고있었다. 행인들의 얼굴에도 랭차매점에서 머리를 갸웃하고 내다보는 처녀의 눈에도 밝은 미소가 빛났다.

송규태의 집으로 들어가는 골목길에서는 하수도공사가 한창이여서 차를 세우지 않으면 안되였다. 차영진이 차에서 내려서는데 앞쪽에서 총총히 걸어나오던 아름답고 젊은 녀성이 웬일인지 흠칫 놀라며 멎어섰다. 산뜻한 미색양복차림, 연한 화장, 이마에 흩날리는 윤나는 머리칼, 귀여운 미소… 낯익은데가 있는 얼굴이여서 여겨보니 군식료공장 지배인이였다.

《아이, 책임비서동지…》

《아니, 어디 갔다가?…》

《여기 친척집이 있어 도에 왔던김에 잠간 들렸댔어요.》

그리고는 머리를 다소곳이 숙이고 옆으로 지나갔다. 그는 저도 모르게 탄력있게 걸어가는 그 녀자의 뒤모습을 돌아보게 되였다.

울타리를 둘러친 송규태의 집 출입문은 안으로 빗장이 걸려있는지 열리지 않았다. 문설주에 새까만 초인종단추가 붙어있었다. 그것을 누르니 이윽하여 안쪽에서 발자국소리가 나고 문이 열렸다. 훤하게 생긴 인상좋은 청년이 좀 놀란듯 한 표정으로 어디서 왔는가고 물었다.

차영진은 청년의 얼굴에서 어릴적의 인상을 찾아보고 송규태의 아들을 인차 알아보았다.

그러나 청년은 그를 전혀 알아보지 못하고 생소한 사람처럼 대하는것이였다.

영진이 자기 소개를 하자 청년은 집안에 들어갔다가 달려나와서 어서 들어가자고 하였다. 청년을 따라 현관에 들어선 그는 신발을 벗고 전실에 올라섰다. 맞은켠벽에 붙여세운 커다란 경대며 구석쪽의 조각상이 눈길을 끌었다. 한손에 보안경을 벗어들고 구슬땀을 흘리며 웃고있는 용해공을 형상한 동조각상이였다. 그 조각상이 아늑한 집안에 로동계급의 체취를 가득 풍겨주는듯 싶었다. 그는 긴장감을 어렴풋이 느끼며 청년을 따라 한 문앞으로 다가갔다. 청년이 문을 조심스럽게 열었다. 꽃무늬를 수놓은 정갈한 초물주단이 깔린 아담한 방안, 나이론이불이 덮인 침대, 침대곁의 쏘파에서 줄무늬잠옷을 입은 키가 훤칠한 송규태가 반겨웃으며 일어섰다.

《어떻게 우리 집엘 다… 이거 정말 반갑소.》

영진이 병석에 있는것을 알면서도 찾아와서 죄송하다고 인사말을 하자 그는 우리사이에야 무슨 허물이냐고 하며 어서 앉으라고 곁의 쏘파를 가리켰다. 영진은 쏘파에 앉으려는 순간 하얀 방석가녁에 녀자의 머리핀이 떨어져있는것을 보았으나 실례로 될것 같아 그냥 앉아버렸다.

《병이 좀 어떻습니까?》 하고 그는 진중한 얼굴로 송규태를 돌아보았다.

《내 병소문이 송탄에까지 갔소?》

《오다가 길에서 도당책임비서동지를 만났습니다.》

《아, 도로때문에 나갔지… 나는 이러다가는 무슨 꼴이 되겠는지 모르겠소. 죄송해서… 이거야… 로이마치스성관절염이라는데 바쁜 일만 생기면 발작한단 말이요.》

그리고는 스스럼없이 잠옷바지가랭이를 걷어올리고 무릎을 보였다. 살갗이 매끈한 무릎이 벌겋게 부어있었다. 그는 얼굴표정이 뚝해져서 엄지손가락으로 복숭아뼈가장자리를 꾹꾹 눌렀다.

《잠자코 있다가도 날이 흐리거나 중대한 일만 생기면 머리를 쳐들거든… 남산 담당의사는 알레르기현상이라고 하는데 의사들은 설명 못할건 다 알레르기로 민단 말이요. 일이 바쁘면 성해지니 이건 사업알레르기인가, 허허… 이놈만 성해지면 심장이 아파서 못견디겠소.》

《예…》 영진은 알릴듯말듯 고개를 끄덕이였다.

《피프라톡스란 약을 주며 바르면 가라앉는다고 했는데 아무리 발라야 감감 무소식이요. 피프라톡스… 이름이야 그럴듯하지…》

차영진은 그의 성글어진 머리칼속에서 번들거리는 검붉은 살갗이며 귀밑에 패인 주름살을 측은한 눈매로 여겨보며 이제는 나이가 퍽 들었다고 새삼스럽게 생각하였다. 그리고 딱히 짚어 말할수는 없지만 이전과는 좀 다른 체취를 느꼈다.

《당사업을 할 때보다 행정경제사업을 하니 더 힘들지요?》

《허허, 글쎄… 군이 아니라 도적인 판도에서 사고하고 사업해야 하니까 통이 커야 하는데 어떤 때는 또 무한히 잘아져야 한단 말이요. 기중기 한두대나 세멘트 몇t때문에 열을 내야 하거든. 허허… 그래 무슨 일로 이렇게 갑자기 나타났소?》

《도움을 받고싶어 왔습니다. 부위원장동지가 시작했던 체육관건설에 쓸 자재를 받지 못하고있습니다. 계획에 있는데도… 우리 행정위원회 부위원장이…》

《구영세동무가?…》

《예… 몇번 와서 간청했는데 도자재공급위원회 위원장이 도무지 응하지 않습니다.》

《그 령감 고집이라는건 박달나무옹지같은거요. 내 말해주지.》

송규태는 선선하게 말하고는 상두대우에서 사업수첩을 가져다가 몇자 적어넣었다. 영진은 이렇게 쉽게 해결되는가 싶어 의자등받이에 기대며 안도의 숨을 조용히 내쉬였다.

그때 아까 그 청년이 다반에 음료수가 든 고뿌 두개를 담아들고 들어와서 두사람에게 권하였다. 시원하고 감미로운 사이다였다. 송규태가 빈고뿌를 다반에 놓아주며 청년에게 《야, 인사했니? 송탄군당책임비서동지다.》 하고 말하였다. 청년은 처음 듣는듯 놀란 표정을 짓고는 머리를 공손히 숙여보이며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많이 가르쳐주십시오.》 하고 말하였다. 례절바르고 유순한 젊은이였다. 송규태는 엄엄한 얼굴로 그를 넘겨다보며 퉁명스럽게 말했다.

《이놈이 이렇게 컸소. 평양에서 일하는데 출장왔다가 들렸소. 덩지는 크지만 아직 철이 들자면 멀었소.》 하고는 아들에게 물러가라고 손짓했다. 아들은 머리를 숙여 인사하고는 가볍게 돌아서 나갔다. 영진은 그의 집 엄한 가풍이 다소 기이하게도 여겨졌지만 자기집은 부모와 자식들간에 너무 스스럼없지 않는가싶은 생각이 들었다.

《이거 안됐소.》 하고 주인이 말머리를 돌렸다.

《건설을 많이 한다는 소식을 들으면서도 돌봐주지 못해 미안하오. 송탄이야 나한테 잊을수 없는 고장이 아니겠소. 척박했던 돌밭… 거기에 정을 붙이고 땀을 흘리는 사람들… 잊을수 없지… 산… 산골물…》

명상에 젖어 뇌이는 그의 독백에 가슴이 훈훈해졌다.

《나를 욕했을거요. 귀가 가려운 때도 있었소. 관심이 없는건 아니지만… 생각은 늘 하면서도 너무 왼심을 쓰면 옆에서 소리가 날것 같고 그래서 망설이게 되는 때도 있었소… 자재를 받지 못한다는데. 제일 걸린게 뭐요?》

《철강재입니다.》

《어디서나 철강재가 문제요.》

《ㄴ형강 몇t이면 됩니다. 체육관지붕에 올릴 트라스를 만들 ㄴ형강이 없어 건설을 중지하게 되였습니다.》

《음… 제철소의 강재생산량을 볼 때 사실 그쯤한건 새발의 핀데… 요새는 새발의 피도 마를것 같소. 송탄골안에 있을 땐 몰랐는데 여기 올라와서 일해보니 우리 나라 강재수요량이란게 엄청나오. 놀라울 정도요. 국방건설을 내놓고 김철확장공사, 새 강철공장들의 건설, 무산광산을 비롯한 여러 철광산, 희유금속광산들의 확장공사, 한개 도시맞잡이인 광복거리건설, 철도건설, 원양대형짐배를 무을 조선소들의 확장공사… 꼽아보면 끝이 없소. 외래자숙소와 거기 려관에 가보오. 대기업소들의 배경을 가진 인수원들이 와글와글하오. 모두 난다긴다하는 친구들인데 강재를 안준다고 재판에 걸겠다, 제철에 규소강판, 석탄, 전기를 안보내고 제동을 건다 하고 으름장을 놓는판이요. 낮추 붙어 사정하는놈은 하나도 없소. 오죽하면 저 억대우같은 제철지배인 리근우령감이 협심증에 걸렸겠소. 허허…》

차영진은 입안이 말라들었다.

《너무 속을 태우지 마오. 나한테는 이런 때 열을 식혀주는 심리적인 위안제랄가 진정제랄가 하는게 있소. 속을 태우며 열을 올리다가도 감정을 누르고 론리적으로 추구해본단 말이요. 왜 이런가? 우리 경제규모가 이전에는 상상도 할수 없었던 정도로 방대해져 사처에서 대건설이 벌어지고있기때문이다. 생각하면 할수록 부족되는 자재… 이 이상현상자체가 조국의 번영을 말해주는 하나의 징표다… 이렇게만 생각하면 긍지가 생기고 답답하던 가슴이 시원히 열린단 말이요. 허허…》

영진이도 싱그레 웃었다.

《두메산골에서도 체육관을 짓겠다고 하니 자재가 모자랄수밖에 있소… 설사 누가 도와준대도 도자재공급위원회 힘으로는 강재를 뽑아내지 못하오. ㄴ형강 한대도… 어림도 없소. 어떻게 하는가…》

송규태는 눈을 지그시 내리뜨고 손끝으로 턱을 슬슬 만지며 한동안 궁리하다가 입을 열었다.

《그 체육관을 뒤로 미루면 안되겠지?》

《…》

《자신이 없는데… 내 리근우지배인한테 개인적으로 사정해보겠소. 그 령감이라는게 원래 배짱이 떡돌같은데다가 이제는 가슴에 군살까지 앉아서 웬만해서 움직이지 않소. 정무원 부장쯤이 손을 내밀어도 허양 쳐내깔린단 말이요. 부총리 말은 좀 듣는지… 좌우간 해보기요.》

《그럼 가보겠습니다.》

《여보, 그런데 자재도 긴장한 때에 체육관건설은 왜 부득부득 하자고 그러오. 썩 후에 지어도 될텐데…》

《체육관이 빨리 있어야 되겠습니다. 다른건 다 제쳐놓고 청년들이 자기 선수들이 도경기에랑 가서 늘 꼴찌를 하니까 제고장에 대한 긍지가 없습니다. 향토애를 키워주기 위해서도 체육을 발전시켜야겠습니다.》

송규태는 머리를 끄덕이였다.

《향토애… 중요하지… 그전에 인계할 때 잊은 문제가 더러 있는데… 너무 소소해서…》 하고는 거기 읍에 사는 한 청년이 물이 맞지 않아 자주 앓기때문에 옮겨달라고 계속 제기해서 그 문제가 자기한테까지 올라왔는데 그후 어떻게 되였는지 모르겠다고 하였다.

《아, 그런 문제가 있습니다. 우리 식료공장 지배인 사촌동생입니다.》

《옳소… 그냥 있다는 말을 들었는데… 나를 원망할거요. 인계직전에 옮겨주라고 했던 문제인데 사람문제인것만큼 신중하게 처리해주오.》

《예… 그런데… 다른 사람들한테 주는 영향이 좋지 못할가봐 덮어두고있었습니다. 저도 몇번 제기를 받았댔습니다.》

《내 부탁으로 생각하고… 깊이 고려해주오.》

《예, 토론해보겠습니다.》

송규태는 손님을 바래워주려고 뜨락까지 나와 그의 손을 잡으며 전혀 뜻밖의 말을 하였다.

《송탄호에 드문드문 올라가보오?》

《몇번 올라갔댔습니다.》

《배놀이하기 좋고 물고기도 잘 물린다고 곱게만 봐선 안되오. 물이란건 용을 쓰니 무섭더구만. 어느핸가 장마철에 제방이 터져 물이 내리쓸었는데 읍이 엉망진창이 됐소. 그때 구제작업을 하다가 행정경제위원회 지도원이 잘못됐는데 시신을 저 멀리 황새벌에서 찾았소. 가로수가지에 걸려있었소. 허허, 기막혀서… 그때부터 나는 맘을 놓지 못했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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