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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소설 비약의 나래 제35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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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강산
댓글 0건 조회 7,260회 작성일 21-04-27 2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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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4 장

2

 

황석태는 차표를 사들고 역사밖으로 나왔다. 오늘 새벽에 평양에 도착한 그는 시내에서 볼 일을 보고 오후에 평성쪽으로 가는 기차를 갈아타려고 다시 평양역으로 나왔던것이다. 역사의 시계탑을 쳐다보니 차가 떠날 때까지는 한시간 가까이 기다려야 했다. 그는 역전광장끝에 잇달린 공원으로 걸음을 옮겼다. 공원변두리의 장의자한귀에 자리를 잡고 담배를 피워무는데 느닷없이 호각소리가 길게 울리였다. 가볍게 놀라며 그쪽으로 머리를 돌리였다. 거리복판에 서있는 교통안전원처녀가 입에 호각을 물고 지휘봉을 높이 쳐든채 움직일줄 몰랐다. 달려오던 차들이 일제히 멎어섰다. 긴장한 시선으로 거리의 이쪽저쪽을 살폈다. 사방으로 뻗은 도로로 학생들이 붉은넥타이를 날리며 행진해왔다. 손마다 꽃다발을 들었다. 백화점쪽의 통로에는 학생취주악대가 나팔을 불며 나타났다. 학생들은 모두 광장으로 들어서고있었다.

황석태는 눈을 슴벅이며 곁에 앉은 웬 중년사나이에게 물었다.

《무슨 행사가 있는가요?》

《국제수학올림픽에서 돌아오는 학생들을 위한 환영식이 있답니다.》

《그렇구만!》

이런 경사를 보게 될줄이야. 우리 학생들이 국제수학올림픽에서 우수한 성과를 거두었다는 소식은 며칠전의 신문에서 읽었다. 황석태는 그 성과가 얼마나 크게 세계를 경탄시켰는가를 알고있었다.

《조선학생의 첫 금메달》

《민족의 재능을 꽃피우는 조선의 정치리념》

《예상을 뒤집은 경이적인 사변》

세계의 보도계는 각이한 제목을 달고 뛰여난 인재를 나라의 귀중한 재부로 여기시는 현대의 정치가로 김정일동지를 칭송했으며 조선의 과학후비가 믿음직하게 자란다고 아낌없는 찬사를 보냈다. 신문에 실린 세계의 반향을 읽으면서 가슴속에 차오르는 민족적긍지와 자부심을 누를길 없었는데 다행히도 조국으로 돌아온 그 학생들을 직접 보게 된것이다. 무엇인가 서둘러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두리번거리던 그는 급히 꽃방으로 가서 소담스러운 꽃 한송이를 사들고 돌아왔다. 그사이 광장에는 학생들이 빼곡이 들어섰다. 그들의 좌측에는 어른들이 렬을 맞추어 진을 쳤다. 맨앞에 림수봉이 서있는것으로 보아 과학자대렬이 분명했다. 잠시후 환영곡이 높이 울리면서 역사의 정문이 열리였다. 단정한 차림에 자그마한 트렁크를 든 여섯명의 학생과 녀교원이 나왔다. 저들이 바로 그 학생들이고 그들을 키워낸 교원이구나! 환호성이 터져오르고 꽃보라가 날리였다. 뒤전에서 목을 뽑아들고 키돋움을 하던 황석태는 또 한번 놀랐다. 어데서 나타났는지 양영복박사가 맨앞에 선 학생에게 꽃다발을 안기고있었다. 우리 과학의 로세대를 대표하여 보내는 축하의 꽃다발일것이다. 황석태는 오전에 적십자병원을 찾아갔었다. 양영복을 만나서 용서도 빌고 병문안도 하려고 했다. 그러나 헛걸음이였다. 접수실에 들리니 양영복은 어저께 퇴원을 하였다고 하였다. 오늘의 행사가 있기때문에 서둘러 퇴원한것이 아니였을가? 여기서 그를 보게 되니 그런 생각이 피끗 떠올랐다. 거리가 멀어서 학생의 잔등을 쓰다듬으며 무슨 말인가를 하는 그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표정도 가려볼수 없었다. 하지만 남다른 감격에 휩싸여있을 그의 심정은 짐작이 가고도 남음이 있다. 새로운 발명으로 세계과학을 압도하려는 그의 지향과 세상을 놀래운 학생들의 성과는 그 의미가 하나로 통하고있다. 양영복박사는 이 시각 자기의 연구사업에 신심을 가지는 동시에 우리 과학의 찬란한 미래를 그려보며 흥분할것이다.

환영식이 선포되자 과학원 림수봉부원장이 마이크앞에 나섰다.

그는 원고도 없이 목메인 목소리로 축하연설을 하였다.

《…우리 과학의 자랑스러운 후비들은 국제수학올림픽에 처음 참가했지만 전례를 깨뜨리고 금메달을 쟁취했습니다. 방청으로 참가해서 경험을 쌓고서야 정식 경연에 참가하며 정식 경연에 처음 참가해서는 례외없이 뒤떨어진 순위를 차지하는것이 국제수학올림픽의 전례였다고 합니다. 우리 학생들은 남들이 걸어간 그 순차와 단계를 뛰여넘었습니다. 이들의 성과는 우리 기성세대 과학자들로 하여금 과학연구사업에서도 순차와 단계를 비약할것을 호소하고있습니다. 저는 우리 나라가 가까운 앞날에 과학기술분야에서 세계적수준에 오를수 있다는 신심에 넘쳐있습니다.

오늘 우리 나라에서는 친애하는 지도자 김정일동지의 현명한 령도와 은혜로운 사랑속에서 인민의 창조적지혜가 찬란히 꽃피고있습니다.

이 자리에 모인 과학자, 기술자 여러분!

과학으로 민족의 영예와 존엄을 온 세상에 떨칠것을 우리의 자랑스러운 후대들앞에 맹세합시다!》

과학자대렬에서 우렁찬 박수가 터져올랐다. 황석태도 저도 모르게 그들을 따라 박수를 쳤다. 불현듯 경애하는 김정일동지께서 어찌하여 우리 민족의 뛰여난 재능, 우리 과학자들의 실력을 믿지 못하는가고 준절히 깨우쳐주시던 말씀이 귀가에 쟁쟁히 되살아났다. 오늘 눈앞에서 보게 된 경사로운 사실이 그 말씀의 정당성을 증명해보이고있다. 민족의 영예를 세계에 떨치고 돌아왔다는 의미에서만이 아니라 자신의 그릇된 인식을 바로잡게 하였다는 의미에서 금메달을 받은 학생을 마음속으로 뜨겁게 포옹해주고싶었다. 행사가 끝나자 황석태는 뒤설레는 사람들의 사품속을 비집고 앞으로 나아갔다. 때늦게나마 그 학생에게 꽃송이를 안겨주어야 했다. 하지만 도중에서 멈춰섰다. 금메달을 받은 학생과 녀교원은 무개차에 오르고있었다. 황석태는 환영식에 이어 연도환영이 계속된다는것을 깨달았다. 촬영가들은 역사옆에 서있던 승용차들에 올랐다. 무개차를 앞세우고 승용차행렬이 떠났다. 역전백화점 뒤길 량옆에 늘어선 학생들과 스스로 떨쳐나선 군중들이 꽃다발을 흔들며 환호했다. 그러한 연도환영이 어디까지 펼쳐지는지 알수 없었다.

황석태는 혹시 양영복과 림수봉이라도 만날가 하여 사위를 살피였다. 서로 다른 사죄의 심정을 터놓고싶은 두사람이다. 하지만 어느새 사라졌는지 그들도 보이지 않았다.

황석태는 역사앞 화강석층계에 올라서 환호성이 점점 멀어져가는 천리마거리쪽을 이윽히 바라보았다. 손에는 뜻을 이루지 못한 꽃송이가 그대로 쥐여져있었다. 그사이 렬차시간도 놓쳐버렸다.

그랬으나 환영식에서 받아안은 감동의 여운에 그의 가슴은 여전히 높뛰고있었다.

 

×

 

어데서나 국제수학올림픽에서 돌아온 학생들의 이야기가 벌어졌다. 뻐스정류소와 리발소들에서도 연도환영의 전경과 박상수학생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고중환은 집을 향해 천리마거리를 걷고있었다. 바로 이 거리로 국제수학올림픽에서 돌아온 학생들과 그들을 데리고 갔던 정금화가 꽃물결을 누비며 지나갔다. 공식석상에 나서지는 않았지만 오전에 벌어진 그 행사를 고중환이 직접 조직했다. 그는 뻐스정류소와 식당들에서 울려나오는 기쁨과 찬양에 넘친 목소리들을 들으며 오늘의 행사가 사람들에게 준 감동의 크기를 현실로 보는듯싶었다. 동시에 심한 자책감을 느끼였다. 여차했으면 자기로 하여 사람들에게 그처럼 충격을 안겨준 오늘의 경사가 없을번 하였다. 우리 학생들을 정식 경연에 참가시키면 어차피 실패를 가져올것이라고 주장했던 자신을 되돌아보지 않을수 없었다. 방청으로 참가해서 경험을 쌓기 전에는 승산이 없다고 생각했었다. 흥성거리는 사람들앞에서 버젓이 머리를 들수가 없었다. 저 사람들이 만일 그 사연을 안다면 나를 얼마나 비난할것인가? 오늘의 경사는 지난날의 나의 관점과 일본새가 얼마나 잘못된것인가를 증명해보이고있다. 엄연한 현실이 나의 얄팍한 심장과 비좁은 시야를 거울로 비쳐내듯이 선명히 드러냈다. 현실적인 결과로 증명되는 사실앞에서는 자신을 합리화할 여지가 조금도 없었다. 나의 그릇된 견해대로 되였다면 민족의 영예를 떨칠수 있는 오늘의 기회를 잃어버렸을것이다. 만일 그렇게 되였다면 그것이 우리 인민과 청소년들앞에 얼마나 무서운 죄악이였을가? 아찔하게 내려다보이는 낭끝에 섰던 자신을 되돌아보는듯 한 공포와 전률이 전신을 줄달음쳤다. 친히 1중학교에 나가시여 학생들의 실력을 구체적으로 알아보시고 국제수학올림픽에 그들을 출전시킬 결심을 내리시던 경애하는 김정일동지의 모습이 눈앞에 떠올랐다. 오늘에 와서 돌이켜보면 그이의 그 결심이 우리 인민과 청소년학생들에게는 오늘의 경사를 가져다주었지만 나 개인으로 보면 죄악의 나락으로 떨어질번 하였던 이 몸을 바로세워준셈이다. 언제면 그이의 위대한 심장과 정확한 안목을 따라배울수 있을가? 언제면 그이의 높으신 뜻을 유감없이 따르는 일군이 될수 있을가?…

《아버지!》

리발소옆의 보도를 걷는데 딸애의 부름소리가 들리였다. 머리를 들어보니 향미가 네거리교차점의 공중전화소옆에 서있었다. 점심시간이면 전에도 이 장소에서 딸애와 종종 만나군 하였다. 그 애의 학교가 길건너에 있었다.

《아버지가 다른 사람들과 부딪칠가봐 겁났어요.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하시나요?》

향미는 눈을 깜박이며 사뭇 근심스레 물었다. 먼발치에서부터 이 아버지가 고개를 숙이고 걸어오는 모습을 지켜본 모양이다. 고중환은 어설피 웃음을 지어보이였다.

《너도 연도환영에 나왔댔느냐?》

향미의 손에 빨간 꽃다발이 쥐여져있었다.

《나왔댔어요. 정말 굉장했어요.》

잠시 서있던 고중환은 딸애를 데리고 집을 향해 걸음을 옮기였다. 같이 점심을 먹으러 가는 길이였다.

《나도 1중학교에 다닌다면 앞으로 국제수학올림픽에 나갈는지도 몰라.…》

향미가 혼자말로 중얼거렸다.

고중환은 두눈을 가늘게 뜨고 앞을 바라보는 딸애의 얼굴에 아쉬운 그늘이 어리는것을 보았다. 순간 그 애의 순진한 가슴에 이 아버지의 잘못으로 상처를 남긴듯 한 괴로움이 명치끝을 아릿하게 자극해왔다.

향미는 응당 1중학교에 다닐수 있었던것을 그만 예상치 않았던 일로 뜻을 이루지 못했다.

지난해 입학시험이 한창 벌어지던무렵이였다. 향미는 구역과 시에서 조직하는 선발시험들에서 우수한 성적으로 통과했다. 평양제1중학교 학생들은 소학교 졸업생들중에서 선발하기도 하고 중등반 3학년에서 선발하기도 하였다. 향미는 중등반 3학년에서 선발시험에 응시하였다. 두 단계의 시험을 거치고 마지막 최종시험을 앞둔 며칠전에 고향에서 작업반장으로 일하는 형님이 집에 들리였다. 형님에게는 향미와 동갑인 막내아들이 있었다. 그 애도 군적인 선발시험을 통과했는데 도적인 선발시험에서 딱 한점이 모자라서 락선되였다고 했다. 저녁상을 물리고났을 때 형님은 간절히 부탁했다.

《우리 녀석이 합격이 되도록 자네가 도당에 말을 좀 해주게. 자네의 전화 한통이면 알아볼걸세. 그렇게 되면 그들이 모르쇠를 하지 못할걸세.》

고중환은 얼른 대답을 못했다. 거절하기도 딱하였고 그렇다고 들어줄수도 없었다. 자신이 늘 해당 일군들에게 높은 당적원칙을 가지고 학생선발에서 불순한 요인이 작용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말하여왔다. 그런데 시험에서 락선된 조카를 입학시키려고 뒤골목공작을 할수야 없지 않는가? 학생선발에서 표현되는 부정은 다른 사업의 부정적현상과 그 성격이 전혀 다른것이다. 학생선발에서 원칙과 공정성이 뒤흔들린다면 조국의 장래에 돌이킬수 없는 엄중한 후과를 미치게 되는것이다. 고중환은 한껏 미안한 표정으로 그 부탁만은 들어줄수가 없다고 하였다. 그러자 형님은 어성을 높였다.

《이제 이 집 향미는 1중학교에 보낼테지. 한발 먼 조카애는 외면하겠지만 제 딸이야 무관심할턱이 없겠지. 내 두고보겠네.》

《두고보십시오. 나는 제 자식의 일이라도 절대로 직권을 람용하지 않습니다!》

고중환은 처음으로 말마디에 힘을 주었다.

《자네야 딸때문에 직접 나서서 춤을 출 필요도 없겠지. 아무개딸이라는걸 알면 밑에 사람들이 어련히 입학을 시켜줄테니까.》

돌아앉은채로 비웃듯이 내뱉는 형님의 말이 자극적으로 안겨왔다. 만일 향미가 1중학교에 입학을 한다면 자기가 어떤 모습으로 남들의 눈에 비낄것인가를 비로소 깨닫는듯 하였다. 고중환은 예견치 않았던 무거운 도덕적감정에 짓눌리며 결연히 말했다.

《향미가 시적인 선발시험에서 합격되였지만 1중학교에 보내지 않겠습니다. 저만 똑똑하면 일반중학교에서도 얼마든지 대학에 갈수 있습니다!》

이리하여 향미는 일반중학교에 그냥 남아있게 되였다.

1중학교를 그리도 동경했던 향미는 그후 그 학교의 교재들을 빌려다가 틈틈이 공부를 했다. 같은 학년이라도 1중학교는 일반중학교보다 교재내용의 수준이 한계단 높았던것이다.…

《난 오늘 무개차에 서있는 학생들보다 수학선생님에게 더 열렬한 축하를 보냈어요. 그 학교에서 학생들의 수학실력이 높은건 그 선생님이 잘 가르쳐주기때문이예요.》

향미는 명랑한 표정으로 말했다.

《이따금 그 학교를 찾아가면 너에게도 수학문제풀이를 친절히 가르치군 한다던 교원이 바로 그 선생이였느냐?》

고중환은 피끗 머리에 떠오르는 생각을 따르며 물었다. 향미는 다른 학교의 학생인 자기에게도 친절히 가르쳐주는 녀교원을 두고 이야기한적이 있었다.

《그래요!》

향미는 기쁨에 넘쳐 대답했다. 국제수학올림픽우승자를 키워낸 교원에게서 자기도 이따금 개별지도를 받는다는것이 무등 자랑스러운 모양이다.

《그 선생이 네가 누구의 딸이라는것을 알고있느냐?》

《몰라요. 언젠가 아버지가 뭘 하느냐고 묻기에 로동자라고 했어요.》

《왜 거짓말을 했니?》

짐작이 가는 일이였지만 그렇게 물었다.

《아버지가 높은 간부라고 선생님앞에서 은근히 우쭐대는 학생들을 난 미워해요.》

고중환은 눈앞에 정금화의 모습이 떠올랐다. 국제수학올림픽참가문제를 가지고 사무실에 찾아왔다가 실망과 원망을 안고 돌아가던 모습이였다. 향미와의 관계를 진작 알았다면 그날에 달리 대하여줄수 있지 않았을가? 정식 경연에 참가할것을 간절히 바라던 심정을 따르지는 않는다 하여도 보다 친절히 대해주었을것이다. 이제 그 학교에 나가 정금화를 다시 만나면 그의 청원을 무참히 거절했던 사실을 사과하고 때늦게나마 학부형으로서의 인사도 차릴것이다.

고중환은 보통문너머 평양제1중학교쪽을 바라보며 향미에게 말했다.

《정금화선생은 참으로 훌륭한 교육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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