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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소설 평양은 선언한다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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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강산
댓글 0건 조회 4,133회 작성일 21-06-14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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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차영진은 걸음을 멈추었다.

하늘에는 구름 한점 없었다. 푸른 하늘, 눈부신 해… 설레이며 굽닐며 흐르는 시내물의 여울목에서는 해빛의 조화로 수천수만의 불꽃이 튕겨오르는듯했다. 푸르싱싱하게 자라오른 나무들은 산들바람에 잎사귀들을 반짝이며 청신한 기운을 풍기고 새들은 야단스럽게 우짖으며 이 나무에서 저 나무로 날아다녔다.

이윽고 그가 세멘트공장으로 들어가는 길로 걸어가는데 앞쪽에서 한 녀인이 총총히 걸어나오다가 밝게 웃으며 인사하였다. 주상민의 안해였다.

《주동무한테 왔댔습니까?》

《약을 두고 가서…》

《약이야 제시간에 들어야지… 아이들은 공부를 잘합니까?》

《아버지가 저렇게 되면서 그것들이 싹 달라졌습니다. 공부를 어찌나 채심해서 하는지… 심부름을 시켜도…》

《예…》

《아버지가 진짜 지배인이 되였다는 소문이 나자 학교가 들썩해지고 담임선생이 집에까지 찾아와서 저한테 인사하지 않겠나요. 제가 뭐라고 모두 저를 붙잡고 얼마나 기쁜가, 얼마나 좋겠는가 야단인데 뭐라고 했으면 좋겠는지 모르겠어요.》

《그게 걱정입니까. 기쁘다고, 좋다고 하지요. 춤을 추라면 춤을 추고. 하하하…》

책임비서의 우스개소리에 녀인도 태없이 따라웃었는데 갑자기 가슴에 무엇이 엄습해들었는지 얼굴이 흙빛으로 질리며 입을 싸쥐였다. 두눈에 눈물이 끓었다.

《책임비서동지, 말해줘요. 이러다가… 이러다가 무슨 일이 생기지 않을가요?》

단내를 풍기는 하소연이였다.

《옆에서 모두 기뻐하고 떠드니 같이 좋아하다가도 덜컥 겁이 나요. 맘이 늦춰진 틈에 화가 닥칠것 같아…》

녀인의 눈언저리에 이슬기가 반짝이였다. 모두가 기뻐하는 때에 안해 혼자는 기뻐만 하는것이 아니였다. 누구인가 애정의 그림자는 불안감이라고 한 말이 생각났다.

차영진은 감사의 미사려구가 생략된 이런 실토정을 듣게 되니 녀인이 더욱 미더워지고 정이 통하여 흉금을 터놓았다.

《곁에서 아무리 마음을 쓴다 한들 아주머니 심정같기야 하겠습니까만…》 저도 모르게 한숨이 나갔다. 《나도 그런 걱정이 없지 않았습니다… 우리 굳게… 마음을 먹고 병치료도 잘합시다. 알겠습니까? 정신력이 허물어지면 안됩니다. 아주머니도 그렇구 나도 그렇구 그의 마음을 받쳐주는 지지목이 됩시다. 신심을 가지고 충성으로 보답하도록… 생활도 명랑하게 조직하고… 알겠습니까?》

녀인은 그한테 의지가 되여 친녀동생이라도 되는듯 다소곳이 숙인 머리를 끄덕이였다. 영진은 무엇인가 더 뜨겁고 절절한 말을 해주고싶었으나 생각나지 않았다.

《…학교시절에 들은 옛말이 생각납니다. 한 어머니가 전장에서 치명상을 입고 집에 실려온 아들의 병구완을 했습니다. 온갖 지성을 다해서… 그리고는 낮이나 밤이나 아들의 손을 꼭 잡고있었답니다. 아들은 중태에 빠져있으면서도 이따금 눈을 반쯤 뜨고 어머니를 알아보고는 기운을 냈는데 병구완에 지칠대로 지친 어머니가 석달사흘이 지난 어느 새벽에 그만 깜빡 졸아서 아들의 손을 놓아버렸습니다. 아침에 깨여보니 아들은 벌써 저세상사람이 되였더랍니다…》

녀인은 물기어린 눈으로 그의 얼굴을 빤히 지켜보았다.

《아주머니, 우리부터 마음을 든든히 가지고 병치료도 적극적으로 합시다. 상민동문 정신력이 흔들리지 않고 병마를 끝까지 누르면 완치됩니다. 그렇지 않구요. 무슨 일이 생기거나 애로가 있으면 나한테 꼭 알려야 합니다.》

《고마워요. 책임비서동지…》

녀인은 머리를 깊이 숙여 인사하고는 발걸음을 떼였다. 차영진은 가슴이 저릿해나서 저고리고름을 날리며 걸어가는 그 녀인의 뒤모습을 이윽토록 지켜보다가 가던 길을 걸어갔다.

세멘트공장구내는 지원나온 사람들로 붐비였다. 지원자들은 소성로주변에 콩크리트포장을 하는가 하면 뜨락을 번듯하게 다지고 창고를 비롯한 부속건물들을 세우고 새 소성로를 축조하느라고 왁작 끓어번졌다. 정문곁에 서있는 선전차에서 울려나오는 건드러진 민요가락이 로동의 흥취를 더욱 돋구었다. 새로 지어 송진내가 알싸하게 풍겨오는 사무실앞에서는 세포비서 박재순이 걸상에 올라서서 출입문우에 널패쪽을 대고 네귀에 못을 치고있었다. 패쪽에는 빨간 뼁끼로 《생산지휘부》라고 씌여있었다.

차영진은 뒤짐을 지고 그 문패를 쳐다보다가 저도 모르게 《좋구만!》 하고 소리치게 되였다. 박재순은 뒤를 돌아보고 놀라서 걸상에서 뛰여내렸다. 그는 자기가 지배인으로 임명되기라도 한듯 몹시 흥분된 얼굴이였다.

《저건 누구 솜씨요?》

《제가 썼습니다.》

《허, 명필인데… 주동무는 어데 있소?》

《안에 있습니다. 방을 꾸리느라고…》

방안에서는 주상민이 얼굴이 감스름하고 눈매가 고운 처녀와 둘이서 비품들을 옮겨놓다가 책임비서가 들어서자 반기면서도 당황한 얼굴로 인사하였다.

《안됐습니다. 방을 정돈하느라구…》

《해야지. 같이 하자구!》

군당책임비서는 이렇게 선선하게 말하고는 그들의 일손을 도와나섰다. 그는 주상민에게 제자리를 제가 꾸리겠느냐고 롱말을 건네고는 박재순이와 함께 책상과 응접탁을 《ㄱ》자형으로 놓아주고 책장과 철제서류함을 들어옮겨 안벽에 가지런히 붙여놓았다.

그리고는 방안을 두루 살피다가 창문우에 비뚤서하게 걸린 고성기를 바로 잡아놓고 걸상우에 놓여있는 새까만 전화기를 들어 책상모서리에 단정히 놓아주었다. 눈매 고운 처녀는 책임비서까지 팔을 걷고 일손을 거들어주는데 신이 나서 날렵하게 돌아치며 책장이며 응접탁이며 책상우에 물걸레를 놓았다.

영진은 그 처녀에게 이런 날에는 노래가 있어야 제격인데 코노래라도 부르며 하라고 이르며 빙긋이 웃어보였다. 처녀는 그 소리에 고개가 푹 숙여지고 얼굴이 빨갛게 되여 노래는커녕 숨도 쉬는것같지 않았는데 날래게 걸레질하는 알뜰한 눈길에서는 수집고 애틋한 노래소리가 끝없이 흘러나오는것 같았다. 그 처녀가 물걸레질을 끝내고나서 바께쯔를 들고나간 다음 차영진은 응접탁옆에 앉아 (박재순도 그의 곁에 앉았다.) 주상민에게 부드럽게 말하였다.

《상민동무, 자리에 앉소.》

주상민은 선뜻 앉지 못하고 책상옆에 엉거주춤 서있었다. 감격과 흥분, 감사의 정에 목이 메여오르면서도 그자리에 앉자니 송그스러워 주저하는듯하였다.

《앉으라는데…》

거듭 일러서야 그는 몸에 붙지 않은 자리에 겨우 앉았다.

《앞으로 세멘트가 더 요구되겠는데 척척 보장해야 하오.》

《예, 알겠습니다.》 그는 말 마디마디에 진정을 담아 대답하였다.

《세멘트의 질을 더 높였으면 좋겠소… 지금건 좀 약해. 리들에 나가는 길들에 포장할건 강도가 좀 높아야겠는데…》

《앓기전에 시도한 창안이 성공되면 높일수 있습니다. 래일 다시 실험해보자고 합니다.》

《그렇소? 해보오…》

전화종이 울렸다. 주상민은 전화기를 지켜볼뿐 거기에 손을 대지 못하였다. 차영진이 전화를 받으라고 일러서야 그는 송수화기를 무겁게 들어올려 상대편의 말을 여겨듣더니 송수화기를 책임비서에게 바치였다. 수화구에서 구영세의 목소리가 선명하게 울려나왔다.

《책임비서동지, 제철소에서 지원물자를 싣고 우리한테 온답니다. 래일 오전 9시경에 출발할 예정이랍니다.》

차영진은 기쁨에 겨워 소리쳤다.

《정말이요?- 이거- 어쩐다?-》

《체육관 트라스용 ㄴ형강과 용접설비랑 다 싣고 온답니다. 기술자들까지…》

《여보- 이거- 가만있으면 안되겠소.》

《그래서 환영준비도 하고 대접할 차비도 할가 합니다. 저한테 맡기십시오. 본때있게 하겠습니다!》

《그렇게 하구레. 핫하하-》

그의 호탕한 웃음소리에 자그마한 사무실이 떠나가는듯하였다.

저녁녘에 구영세가 책임비서의 방으로 찾아들어왔다. 그는 벌써 명절기분이 되여 좀 들뜬 얼굴로 지원물자를 싣고오는 로동계급의 대표들을 맞을 계획에 대하여 설명하였다.… 군안의 건설자들과 소년단원들을 동원하여 연도환영을 조직한다, 기동선전대의 취주악이 울리는가운데 군의 책임일군들이 로동계급의 대표들과 인사를 하고 환영의 말을 하며 녀성들과 소년단원들이 달려나가 지원자들에게 꽃목걸이를 걸어준다, 이때 선전차의 확성기에서 음악과 함께 격동적인 선동구호가 울려나온다, 힘이 센 건설자들이 달려나가 손님들을 목마에 태우고 체육관건설장까지 올라오며 연도에서 그들에게 꽃보라의 벼락을 안긴다, 식사를 조직한다, 식사는 종합식당이 아니라 시내가 버들방천에 차린다, 식사에는 군의 특산물과 약간의 주류가 나온다, 그 준비와 접대는 식료공장 지배인 리순희에게 책임지운다, 식사후 련환모임을 가진다, 련환모임에서는 군당책임비서가 발언한다…

《환영분위기는 좋은데 내용이 없소.》

《내용이요? 그래서 식사조직이 있지 않습니까.》

《그런게 아니라… 정치성이 있게 조직해야 되오. 행사에 관통되는 사상이 없소.》

《예… 좀 약합니다.》

《약한게 아니라 없소. 인사말에서도 선동구호에서도 음악에서도 로농동맹을 강화하자는 사상이… 도시의 로동계급이 농촌을 도와주고 농촌의 농업근로자들이 도시의 로동계급을 지원하여 일심단결의 위력으로 사회주의건설을 다그치자는 사상이 강하게 울려나와야 하겠소… 그 동무들에게 우리 건설대상들을 보여주면서 군의 위치와 역할에 대한 당의 구상을 실현하기 위하여 군안의 당원들과 근로자들이 어떻게 일하고있는가 설명도 해주면서…》

《그렇게 하겠습니다.》

《주류가 약간 나온다는건 뭐요?》

《맥주정도로 약간…》

《대낮인데 많이 내놓지 마오.》

《래일이야 일요일이 아닙니까.》

《그래도…》

《예…》

《특산물이란건 뭐요?》

《저 송탄호에 잉어가 와글거리지 않습니까?》

《아, 그거요. 식사준비와 접대는 어째 식료지배인한테 책임지우오? 식당지배인이 있는데…》

《그 망짝같은 로친네를 어떻게 내세웁니까. 이런 일에는 식료지배인인, 리순희가 으뜸이지요. 잘 합니다. 인상도 좋고… 그전에 식당에도 있지 않았습니까.》

《련환모임에서 내가 발언한다는건 빼오. 동무가 모든것을 주관하는것만큼 동무가 하오. 나도 나가는 보겠소.》

차영진은 이튿날 오전 읍거리가 취주악소리와 선전차의 선동구호와 음악소리, 환호소리로 끓어번질 때에도 집행위원회를 열고 간부문제를 비롯한 여러가지 당내부사업을 토의하느라고 나가보지 못하였다. 그는 점심식사를 하고나서 버들방천으로 나가보았는데 련환모임이 한창이였다.

차영진은 명절기분에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른 구세영부위원장의 안내로 손님들의 자리로 가서 제철소에서 책임지고 온 건설담당부지배인을 비롯한 지원자들과 인사를 나누고 그들속에 끼여앉았다. 50여명의 사람들이 빙 둘러앉은 가운데 제철소의 억실억실하게 생긴 로동청년이 풀밭에 나서서 시랑송을 하고있었다.

제철소의 몸매다부진 건설담당부지배인이 곁에 다가앉아 들뜬 소리를 계속하여 랑송을 들을수 없었다. 그는 영진의 무릎을 툭툭 치며 만족하다, 손님대접을 하는걸 보니 송탄사람들의 인심을 알수 있다, 앞으로 여기서 제기되는 문제는 다 풀어준다, 철강재는 걱정말라느니 하며 끝없이 중얼거렸다. 손님을 꾸짖을수도 없어 그의 손을 잡아주며 고맙다고 거듭 인사하였으나 그치지 않았다.

구영세는 저 건너쪽 줄지어 앉은 사람들의 뒤에서 식료공장지배인과 마주서서 손세를 써가며 무엇이라고 열심히 말하고있었다. 화려한 수박색 달린옷을 차려입고 목에 빨간 카프론머리수건을 두른 리순희는 무엇이 그리 좋은지 손으로 입을 가리우며 웃어대였다.

기동선전대의 처녀 다섯명이 남자손풍금수와 함께 풀밭으로 나와 머리를 깊이 숙여 절을 하더니 손풍금의 힘찬 전주에 뒤따라 중창을 불렀다. 요즘 청년들속에 류행되고있는 《잊지 말자 우리 우정》이라는 노래였다. 산뜻한 적위대복차림의 그 처녀들은 두손을 볼록한 가슴밑에 모아쥐고 알릴듯말듯 몸을 앞뒤로 혹은 좌우로 흔들며 서정적인 중음으로 노래를 불렀다.

 

잊지 못할 청춘시절 동무여

우리 우정 그 어데서 꽃폈나

친애하는 지도자동지의

그 품속에 꽃폈네

아 언제나 잊지 말자 우리 우정

 

노래는 고조되고 환희의 선풍이 좌중을 휩쓸었다. 사람들은 흥에 겨워 저도 모르게 노래에 맞추어 손벽을 치게 되였다. 대기가 설레이고 휘늘어진 수양버들가지들이 흐느적이고 사람들이 흥에 못이겨 손이 떨어져나가도록 박수를 치고 서로서로 어깨겯고 몸을 좌우로 흔들어대였다. 중창을 부르던 다섯명의 처녀들이 홀연 흩어져 풀밭에 널리며 박수를 치고 손을 쳐들어 귀엽게 흔드는가 하면 나긋나긋한 허리를 흐느적이며 춤을 추어대기 시작하였다.

그바람에 제철소에서 온 로동청년들과 군의 농민청년들이 동이 터진듯 와ㅡ 춤판으로 밀려나갔다. 그들은 처녀들과 쌍을 지어 혹은 자기네끼리 쌍쌍이 혹은 저마끔 제갈래로 춤을 추며 노래를 불렀다.

 

우리 함께 서로 돕고 이끌며

우리 함께 험한 령도 넘으며

참된 우정 무엇인지 알았네

무엇인지 알았네

 

차영진은 로동청년들과 농민청년들이 어울려 춤을 추는 그 장단과 음악이 풍기는 서정과 가사가 던지는 사상적인 의미에 가슴이 뭉클해지고 눈시울까지 젖어나 풀밭에 앉은채로 박수를 치고 입속으로 노래까지 불렀다. 곁에 앉은 건설담당부지배인은 노래는 부르지 않고 정신없이 어깨를 들썩거리고 박수를 치는가 하면 《좋다-》 《좋지-》 하고 목청껏 부르짖었다.

 

동지 위해 바친 사랑 없다면

우리 어이 우정을 말하랴

 

그날 구영세는 체육관의 트라스를 조립하기 위하여 군에 남은 여섯명의 용접기능공들을 군려관의 제일 좋은 방 세칸에 들이고 《귀빈》으로 환대하도록 하였다.

그들이 벽체만 일어선 체육관옆에서 용접의 불꽃을 날리며 ㄴ형강을 필요한 규격으로 잘라 트라스를 조립하기 시작하자 그 소문이 읍안에 퍼져 체육애호가들과 청년학생들의 관심을 끌게 되였다. 인민학교에 다니는 조무래기들까지 체육관에 찾아와 먼발치에 주런이 서서 용접하는것을 구경하며 좋아서 떠들어대였다. 어떤 쉴참에는 소년단선동대가 북소리를 울리며 찾아와 소품공연을 하였다. 려관에 찾아와 벌방지대에서는 볼수 없는 희귀한 매꽃들이 꽂힌 꽃병을 방마다 놓아주고 가는 처녀들이 있는가 하면 색다른 음식을 해들고 찾아오는 녀인들도 있었다. 체육애호가청년들은 작업장에 찾아와 용접일을 서툴게나마 도와주고 밤이면 맥주통을 들고 려관방에 찾아와 지원자들과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내였다.

사람들의 이러한 성원에 고무된 용접기능공들은 피로도 모르고 낮에 밤을 이어 용접의 불꽃을 날리면서 트라스를 하나 또 하나 조립해나갔다.

닷새후 차영진은 멀리 떨어진 리에 나가 당사업을 도와주고 이른 아침 군당으로 돌아오다가 려관앞에서 구영세부위원장과 려관책임자아주머니가 마주서서 무슨 이야기인가 나누고있는것을 띄여보고 차를 세웠다.

구영세가 얼굴이 거멓게 질려 허둥지둥 그에게로 다가와서 지난밤에 용접기능공들이 몽땅 철수해갔다고 말하였다.

《제철소에서 건설사업소 무슨 작업반장이란 사람이 와서 로농적위대 비상소집이라면서 몽땅 싣고갔답니다.》

려관책임자아주머니는 자기 잘못으로 이런 일이 생기기라도 한듯 얼굴이 해쓱해져서 저고리앞섶을 만지작거리고있었다.

《누구한테도 알리지 않고 려관에만 말하고 가버렸습니다.》

《비상소집이라니까 그랬는가?… 언제 돌아온다고 했소?》

《용접설비까지 다 싣고 갔습니다…》

차영진은 뒤통수를 얻어맞은듯 정신이 얼떠름해졌다.

《뭐요?》

《참을수 있어야지요. 이자 여기 왔던 건설담당부지배인한테 전화를 걸었습니다. 비상소집이란건 작업반장이란 녀석이 수를 쓴거고 사실은 다르더군요. 송규태부위원장이 제철지구에 나가 주택건설을 책임지고 내밀고있는데 외부에 동원된 인원들을 몽땅 소환하라고 한것 같습니다. 그 부지배인 말이 자기네가 가을김장용 배추와 고추, 마늘 같은걸 해결하자고 부근 농촌지대에 기능공들을 파견하여 교환조건으로 거기 건설을 도와주었는데 그래서 인원들이 많이 비였기때문에 벼락이 떨어졌다는겁니다.》

《허튼 소리요. 제철소에 부업지기 얼마인데… 김장감은 늘 공급하고도 남았댔소.》

《글쎄 그런줄 알았는데… 올해에는 잘 안될수도 있지 않습니까. 부지배인은 자기가 우리한테 용접기능공들을 그냥 두자고 간청했는데 교시관철이라면서 막무가내였다고 합니다.》

차영진은 그 소리를 믿고싶지 않았다. 자기가 집으로 찾아갔을 때 송규태자신이 군건설을 도와주겠다고 했으며 걸린 문제들을 풀어주려고 한 일부터 생각하려고 애썼다. 그는 더 말하지 않고 차에 올랐다. 구영세는 타라고 권하지 않았는데도 차안으로 따라들어왔으며 군당에 이르러서는 책임비서의 방에까지 뒤따라 들어왔다.

영진은 응접탁옆에 앉아 담배를 피워물고 스스럼없이 곁에 와 앉는 구영세에게도 한대 권하였다. 두사람은 한동안 말없이 담배만 피웠다. 그들이 내뿜는 파르스름한 담배연기가 머리우로 날아올라 한데 어울려지며 실안개처럼 방안에 흘렀다.

《한번 송규태동지를 조용히 만나보지 않겠습니까?》 하고 구영세는 조심스럽게 말을 건네였다.

《…》

그는 속이 타드는듯 한숨을 내쉬였다.

《나를 어떻게 생각해도 좋습니다… 여기에는 감정이 깔려있습니다. 그 어른한테 노여움이 있습니다. 단단히…》

차영진은 응접탁에 시선을 박은채 침울한 목소리로 대꾸하였다.

《그건 무슨 소리요? 동무생각에는 도부위원장이 그 어떤 감정이나 사심으로 일하는것 같소?》

《챠- 이거, 그는 사람이 아닌가요? 감정을 가진 사람이 아닌가요?》

《그만두오!》

《아니, 좀 말을 합시다. 일이 이렇게 된바치고 나두 좀 말해야겠수다. 휴- 말을 다 듣고 죽이든지 살리든지 맘대루 하시우… 이렇게 된건 책임비서동지한테두 책임이 있어요. 자업자득이지요. 병석에 누워있는 송부위원장한테 찾아갈 때 빈손으로 덜렁덜렁 갔다는 말을 들었는데… 옛정을 생각해서라도 뭘 좀 들고가면 어떻습니까. 우리 제약에서 보약도 괜찮은걸 만드는데 몇병 들고가면 어떻습니까? 환자한테 들고가는것도 뢰물인가요? 예? 인정이 통해야 말하기도 쉽고 사업하기도 헐하고… 저쪽에서도 도와주고싶은 생각이 나지 않겠습니까. 살줄을 모르니 사람들과의 관계가 빡빡해질수밖에… 그전에 옷장때문에 큰변이 난것처럼 야단치는걸 보구 고생하겠구나 하고 생각했습니다. 그때 그 소문이 군안에 쫙 퍼져 모두 움츠러들어가지고 리에 나가면 점심 한끼 해주는것도 눈치를 보면서 닭알 한알을 더 올려놓는것도 조심했습니다.》

《그렇게 됐다면 잘된 일이요.》

《허… 너무 이러지 마십시오. 솔직히 말하면… 사실은 여기서 인계하고 도에 올라간 송부위원장이 거기서 생활적으로 자리를 잡을 때까지는 우리가 돌봐주는게 도리가 아닙니까? 책임비서동지가 그러니 모두 마음속으로는 생각하면서도 어쩌지 못하고 찾아다니는것도 눈치를 보면서 몰래… 이게 뭡니까. 나는 동지적으로 말합니다. 이전에 지은것들은 발칵 뒤집어놓고 새로 지으면서도 인사말한마디 없었으니… 나라도 섭섭한 생각이… 노여움이 들겠수다. 그 량반이 이웃군들에는 자주 내려오면서 우리한테는 웬만해서 안들리는걸 보십시오. 이래도 감정이 없습니까? 예? 내라도 송탄에 가있는 용접기들도 례외없이 철수시키라고 소리치겠습니다!》

차영진은 참을수 없어 소리쳤다.

《그만하오!》

구영세는 얼굴이 벌겋게 되여 기겁한 눈으로 책임비서를 돌아보았다.

《아니, 왜 이럽니까?》

《동무가 그를 뭘로 보는가. 함부로…》

《아, 아 그러지 마십시오.》

《됐소… 됐소…》

《좋수다.》 하고 구영세는 우둘렁거리며 밖으로 나갔다.

그가 나간 다음 영진은 우들우들 떨리는 손으로 담배가치에 가까스로 불을 붙이고는 씁쓸한 연기를 한껏 들이켰다가 후- 내불었다. 그는 한손으로 식은 땀이 내밴 이마를 고이고는 생각에 잠겼다.

가슴이 후둑후둑 뛰였다. 구영세가 괘씸하게 여겨지면서도 그가 자신의 사상정신적수준에서 보고 느낀 진실의 일단을 말하지 않았는가 하는 놀라운 생각이 가슴 한구석으로 스며들었다.

(송규태라는 일군은 어떤 사람인가? 구영세동무 말대로 그런 세속적인 문제로 나한테 감정을 품었다면… 아, 얼마나 원칙이 강하고 인정미있는 일군이였던가, 무엇이… 도대체 무엇이 그를 이렇게 만들었는가? 도의 한 책임일군으로서 개인감정이나 사심으로 일한다면 그 후과는 막심하다. 이전의 관계로 인정에 사로잡힐것이 아니라 바로잡아야 한다. 개별적으로 의견을 말하던지 조직적으로 풀던지…)

끝없는 생각에 잠겨 허공의 한점을 지켜보는 그의 눈이 불꽃처럼 빛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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