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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소설 평양은 선언한다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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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강산
댓글 0건 조회 6,381회 작성일 21-06-11 16: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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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창밖으로 가로수들이 날아지나갔다.

박윤식은 뒤좌석에 편안히 앉아있었지만 마음은 몹시 불안하고 무거웠다. 협의회에서 하신 경애하는 그이의 말씀이 그에게 큰 충격을 주었던것이다. 그는 여태 아래단위의 일군들을 도와주려고 제철소에도 자주 나갔고 미루등벌에 나가 소조원들이며 농장원들과 함께 밭김을 매면서 담화도 하고 세포총회들에도 참가하였지만 아래를 도와주는 사업에 빈구석이 적지 않은것 같았다. 특히 가슴에 걸리는것은 도와 시, 군당일군들의 현실체험정형이였다.

그는 현실체험에 나갔다온 도당일군들과 시, 군당책임일군들의 총화보고서는 어김없이 읽었지만 담화를 통하여 그 정형을 깊이 료해해본 일은 드물었다. 일부 일군들은 일이 바쁘다고 제날자에 현실체험을 떠나지 않는 현상도 있었다. 제철소에 현실체험 나갔다온 일군들이 내화재문제를 제기한적은 한번도 없었다.…

박윤식은 운전사에게 도당으로 가지 말고 제철소로 곧바로 나가자고 일렀다.

지배인실에는 담배연기가 자욱했다. 리근우는 장의자에 비스듬히 누워있다가 벌떡 일어나앉아 눈을 크게 뜨고 자기앞으로 다가오는 도당책임비서를 지켜보았다. 거멓게 질린 그의 얼굴에 번뇌의 흔적이 력연하고 입가녁에 물집까지 생겼다. 희슥희슥한 머리칼에도 작업복의 어깨며 가슴팍에도 연재 같은것이 부옇게 묻어있었다. 그는 모든것을 각오한 사람의 얼굴이였다. 박윤식은 그런 표정에는 아랑곳없이 퉁명스럽게 소리쳤다.

《이건 곰의 굴이구만. 곰의 굴이야! 무슨 담배를 이렇게 피웠소?》

그리고는 성큼성큼 걸어가 창문을 활짝 열어제꼈다. 리근우는 장의자앞에 고개를 떨구고 서있었는데 온몸으로 해임인가 하고 묻는듯하였다.

《거기 앉소!》

그는 앉지 못하였다.

《책임비서동지, 로에 다시 불을 지핀 다음에 발표해주십시오. 동지적으로 부탁하오.》

《흠… 대단하오. 대단해…》

박윤식은 근엄한 눈길로 그를 흘겨보았다.

《덩지가 황소처럼 커가지고… 그래 목을 떼면 어쩔 작정이요?》

《년로보장에는 절대 넘어가지 않겠소. 용광로에서 쇠물을 다루겠소. 로앞에서 순직하게 해주오.》

그 소리에는 가슴이 저려들어 더 욕하지 못하고 입속으로 중얼거리였다.

《졸장부야… 졸장부라니까…》

그리고는 그의 팔굽을 잡아끌어 의자에 앉혔다. 리근우는 놀란 눈으로 치떠보았다. 박윤식이 친애하는 지도자동지의 말씀을 전달하였을 때 지배인은 불같은 눈으로 그를 지켜보았다.

《자기 비판을 잘하오!》

리근우의 크게 뜬 눈에 물기가 떨었다.

이튿날은 금요일이였다.

박윤식은 도당을 비롯한 전체 도급기관의 일군들을 이끌고 황새벌로 나가 도로공사에 참가하였다. 금요로동에 나온 수천명의 일군들과 충성의 도로건설돌격대원들은 한데 어울려 왁작 끓어번지며 길닦이를 하였다. 사람들과 기계화수단들은 벌을 가로질러 길게 늘어서서 작업하였다. 사람들은 삽질, 괭이질을 부리나케 하고 흙짐을 지고 기운차게 뛰여다녔다. 기계들의 동음, 선전차에서 울려나오는 노래소리, 사람들의 웨침소리로 백리벌이 떠나가는듯 하였다. 어느 누구의 얼굴에나 길을 잘 닦아 어버이수령님의 만수무강을 보장해드리려는 충성의 일념이 불타고있었다. 도로공사가 시작된지 얼마 되지 않았으나 어떤 작업구간에서는 로반이 거의다 닦아졌다.

박윤식이 사로청원들과 어울려서 땀을 뻘뻘 흘리며 삽질을 하는데 근처의 군당에서 젊은 일군이 숨이 턱에 닿아 뛰여와서 당중앙위원회로부터 긴급한 전화가 왔다고 알려주었다. 그는 어떻게 군당까지 달려갔는지 알지 못하였다.

군당책임비서의 방이였다. 송수화기에서 전류의 흐름때문인지 먼바람소리 같은것이 간간이 들리더니 친근한 음성이 울려나왔다. 가슴이 뭉클해졌다.

《친애하는 지도자동지, 안녕하십니까? 박윤식이 전화를 받습니다.》

《금요로동을 한다지…》

《예…》

《수고합니다. 오늘 아침 수령님께서 1호용광로대보수를 잘할데 대하여 교시하시였습니다. 질이 높은 내화벽돌과 성능이 좋은 기계요소들을 보장해주고 중앙과 도에서 적극 도와 최단시일에 대보수를 끝내야 한다고 하시였습니다. 지배인동무한테도 책임이 큰것만큼 되게 비판해야 하겠습니다.》

《예…》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리근우지배인의 안해가 사망한데 대하여 몹시 가슴아파하시였습니다. 지배인이 합숙에서 식사를 하고 내의도 제손으로 빨아입는다니 어디 됐느냐고 하시며…》

《예?!…》

《책임비서동무, 그의 의향을 물어보고 크게 반대가 없으면 결혼을 시키는게 어떻습니까?》

박윤식은 순간에 목이 메여올라 선뜻 대답을 올리지 못하였다.

《고맙습니다. 저희들은 미처 생각하지 못하였습니다.》

《그러니까 동감이란 말이지요?》

《예. 그렇습니다. 그의 생활을 보살펴주는 반려가 있으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책임비서동무 생각도 그렇다니 좋습니다. 핫하하… 됐습니다. 그런데 리근우지배인이… 환갑이 지난 그 아바이가 선보러 다닐수야 없지 않습니까. 크게 광고를 낼수도 없는 일이고… 동무가 조용히 상대를 수소문해보는것이 어떻습니까?》

《알겠습니다.》

《그의 기호와 녀성관… 의향을 충분히 고려해서 상대를 구해야겠습니다. 우리가 권한다는걸 알면 그가 의견을 말하지 않고 덮어놓고 응할수 있기때문에 그런 말은 절대 하지 말아야 합니다. 알겠습니까? 이런 일에는 사람의 개성이 제일 강하게 작용하고… 또 어떤 혼인이든지 선택적인 감정에 기초해야 한다고 합니다. 그한테 선택의 자유가 충분히 보장되여야 합니다. 알겠습니까? 모든것을 책임비서동무가 발기하고 주관하는 식으로 해주십시오. 알겠습니까?》

《지도자동지, 안심하십시오.》

《그의 자존심과 인격을 건드리지 않도록 예술적으로 해야 합니다.》

《예… 알겠습니다.》

그날 저녁무렵 박윤식은 제철소로 나가 리근우지배인을 만났다. 강철직장의 파철더미곁에서였다. 그들은 평퍼짐한 철판을 깔고 나란히 앉았다.

박윤식은 이것저것 생활적인 이야기를 나누다가 언제까지 합숙밥을 먹고 내의도 제손으로 빨아입겠는가, 개체생활을 보살펴주는 알뜰한 손길이 있으면 좋지 않겠느냐고 하였다.

리근우는 쓸쓸한 얼굴로 무거운 한숨을 내쉬였다. 그러자 박윤식은 장가들 생각이 없느냐고 단도직입적으로 들이댔다. 리근우는 허거프게 웃으며 누구를 웃기자고 이러느냐고 하였다. 박윤식은 정색해서 동무가 개체생활에 불편이 많아가지고 지배인구실을 제대로 할수 없기때문에 심중히 토론하고 의견을 주는것이라고 하였다. 리근우도 정색해졌다. 그는 나라고 왜 그런 생각이 없겠는가, 한데 다 늙어빠진것한테 어떤 녀성이 오자고 하겠는가, 마음이 무던한 식모나 하나 붙여달라고 하였다. 박윤식은 그의 말을 막았다. 식모를 두면 시시펑덩한 여론이 돌수도 있다. 정식으로 새 안해를 맞아들여야 한다. 내가 맞춤한 상대를 찾아보겠다.

아닌보살하던 리근우는 갑자기 열이 올라 정기가 번쩍이는 눈으로 그를 흘깃 돌아보더니 어디 봐둔데라도 있는가고 슬그머니 물었다. 박윤식은 그의 잔등을 철썩 때렸다. 어떤 녀성이라야 하는지 요구조건만 대라, 하늘끝에 가서라도 그런 가인을 훔쳐오겠노라고 큰소리를 쳤다.

리근우는 웃지 않았다. 잠시 생각하더니 다섯가지 조건이 있다고 하였다. 박윤식은 환갑이 지난 녀석이 어느분의 뜻인줄도 모르고 이렇게 까다롭게 구는가싶어 은근히 부아가 치밀었으나 꾹 참고 그가 엮어내리는 요구조건을 목책에 적어나갔다.

1. 나이는 사오십정도.

2. 고등중학교졸업 이상의 지식정도.

3. 인물은 수수해도 좋으나 교양이 있고 문화성이 있어야 한다.

4. 달린것이 없어야 한다.

5. 잡병이 없어야 한다.

적어놓고보니 그다지 까다로운 요구조건도 아닌것 같았다. 하지만 그 요구조건에 맞는 상대를 찾아내기란 결코 헐한 일이 아니였다.

무엇때문이라는 사유는 밝히지 않고 아래일군들을 통하여 도급기관들과 교육, 보건 부문, 편의봉사망까지 샅샅이 뒤져보았으나 적합한 대상이 나타나지 않았다. 속이 달아올라 탐색범위를 점점 넓혀 군에까지 알아보았으나 마음에 꼭 드는 대상이 없었다. 그는 남이 아니라 어느 과년한 혈육의 혼처를 구하는듯 열이 올라 그 일에 몰두하면서 속을 태웠다. 보름이 지난 어느날 도당경리부장과 몇가지 후방경리사업문제를 의논하고나서 하소연하였는데 그는 어렵지 않게 자기가 구하겠다고 장담하며 도당합숙의 식모 강미옥이 어떠냐고 하였다.

박윤식은 무릎을 쳤다. 바로 곁에 적임자를 두고 먼데서 찾은것이였다. 강미옥은 눈물을 방울방울 떨구며 거절하였다. 알아보니 합숙의 녀성들이 간호원노릇을 하다가 송장이나 치자고 그런 령감한테 가겠느냐고 들고 일어났다는것이였다.

박윤식은 경리부장을 시켜 드살이 센 녀인들을 눌러놓은 다음 강미옥을 다시 만났다. 역시 응하지 않았다. 그럴수록 다소곳이 앉아있는 녀인의 자태가 마음을 더 끌었다. 나이 오십이 가까이 되였으나 구겨지거나 거칠어지지 않고 청초한 미와 아련한 성품을 고스란히 간직하고있는 녀인이였다. 깨끗하고 단정하게 가꾼 머리, 맑은 살결, 애틋한 정을 자아내는 눈매, 한쪽볼에 찍혀있는 새까만 기미는 순박한 소녀시절까지 련상시켜주는듯하였다. 그는 마음속으로 이 녀인을 몇번이고 리근우곁에 세워보고 손색이 없다고 생각하였으며 백번 찍어서 넘어가지 않는 나무가 없다는 속담까지 상기하면서 설복하려고 애썼다.

하루저녁에는 강미옥을 사무실에 불러놓고 마주앉아 다 터놓고 이야기하였다. 상대는 제철소지배인 리근우동무이다. 그는 철생산으로 우리 당을 받드는 중책을 걸머진 경제지도일군인데 개체생활을 뒤받침해줄 벗이 없어 고독하게 살며 사업과 생활에서 적지 않은 애로를 느끼고있다.

당적인 분공으로 생각하고 그의 반려로 되여 생활을 보살펴줄수 없겠는가… 녀인은 고개를 숙이고 대답을 못하였다. 도당책임비서의 간절한 권유와 당적분공이라는 말에 소홀히 처신할수 없어 심중하게 생각하고 또 생각하는듯하였다. 우선 어떻게나 입을 열게 해야 된다는 생각으로 새 공장을 짓자고 해도, 도시를 건설하자고 해도, 기계나 가위, 식칼, 바늘, 꽃양산, 크림통과 같은 필수품을 만들자고 해도 철, 철, 철이 필요하다고 이야기하였다. 그리고는 형제들이나 친척들중에 제철소에 다니는 분들이 없는가, 제철소에 가본 일이 있느냐고 물었다. 녀인은 기여들어가는듯한 목소리로 서너번 가본 일이 있다고 하였다. 그 말이 반승낙처럼 들려 여간 기쁘지 않았다. 내색하지 않고 리근우지배인을 한번 만나볼 생각이 없는가, 만나보고 물러서도 다르게 생각하지 않겠다, 소문을 내지 않고 한번 조용히 만나보는것이야 무슨 큰일이겠는가고 하였다. 녀인은 머리를 다소곳이 숙이고 대답을 안했다. 그러나 이전과는 달리 순종의 자태였다.

박윤식은 무슨 다급한 일이라도 생긴듯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전화기에로 갔다. 리근우를 찾았다. 그가 나오자 안해가 될 동무를 모시고 이제 곧 떠나겠으니 사무실에서 대기하라고 소리쳤다. 녀인은 운명의 급전환을 예감하며 당황한 얼굴, 겁에 질린듯한 눈으로 그를 돌아보았는데 그 눈길은 조금만… 조금만 기다려달라고 애절하게 부르짖는듯하였다. 그러나 박윤식은 소뿔은 단김에 빼야 한다는 생각만 하는듯 그런 야릇한 심정에는 아랑곳없이 녀인을 이끌고 밖으로 나가 차에 태웠다.

리근우지배인은 전화로 일러둔대로 자기 사무실에서 기다리고있었다. 언제나 거푸수수한 인상이던 그는 머리에 기름을 바르고 면도질도 깨끗이 하여 멀쑥한 얼굴로 앉아있다가 박윤식이 녀인을 데리고 방에 들어서자 젊은이처럼 벌떡 일어났다. 그리고는 녀인쪽은 보지 않고 도당책임비서한테만 전에없이 격식을 차려 인사하였다.

박윤식은 두 사람을 서로 인사시키고나서 충분히 이야기해보라는 말만 남기고 밖으로 나왔다.

지배인실의 창문들에서는 불빛만 환하게 흘러나왔는데 안에서 무슨 이야기가 오가는지, 서로 상대한테서 어떤 인상을 받았는지 도무지 가늠할수 없어 시간이 흐를수록 속이 바작바작 타들었다. 사근사근한데라고는 없는 리근우… 저 곰서방이 무슨 우둔한 소리를 줴쳐 녀자를 놀래우거나 실망케 하지 않겠는가, 싫다는걸 우직스럽게 강요하여 녀자를 노엽히거나 울리지 않겠는가…

그는 담배를 성급히 빨며 뜨락을 천천히 거닐기도 하고 뒤짐을 지고 우두커니 서서 야금기지의 희붐한 하늘을 쳐다보기도 하였다. 한시간 남짓하게 지나서였다. 뒤쪽에서 발자욱소리가 났다. 놀라서 돌아보았다. 리근우가 먼길을 달려오기라도 한듯 단숨을 내불며 느릿느릿 다가왔다. 어떻게 됐느냐고 성급히 물으니 뒤덜미를 슬슬 쓸어만지며 사람이야 지내봐야 깊이 알수 있지 않는가 라고 막연한 소리를 하였다.

그런 뜨뜨미지근한 태도에 벌컥 성을 내며 싫다는건가 좋다는건가 소리치며 그의 손을 슬그머니 잡아쥐였다. 그 손이 단쇠처럼 뜨끈하였다.

이튿날 밤 지배인의 집에서 검소한 결혼잔치가 있었는데 련합당책임비서와 부지배인들을 비롯한 7∼8명의 손님들이 방안에 들어가려고 할 때 한대의 승용차가 뜨락으로 들이닥쳤다. 모두 놀라서 돌아보았다.

차에서 송탄군당 책임비서가 내리고 운전사가 탐스러운 과일이 가득 들어있는 궤짝을 부리였다.

《이게 어떻게 된 일이요?》 하고 도당책임비서가 반색을 띠며 물었다. 차영진은 서글서글한 눈에 미소를 가득담고 도당책임비서와 모두에게 인사를 하였다.

《지원물자를 싣고왔다가 소식을 들었습니다. 이런 경사날에 가만히 있을수 있습니까?》

《고맙소!》

모두 그를 방안으로 끌어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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