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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소설 평양은 선언한다 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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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강산
댓글 0건 조회 2,127회 작성일 21-07-03 22: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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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그렇다. 서쪽은 언제나 불길한 방향이였다. 구름은 서쪽하늘가에서부터 밀려와 순식간에 하늘을 어둑하게 덮어버렸다.

도당책임비서 박윤식은 큰물피해방지대책을 철저히 세울데 대한 친애하는 지도자동지의 전화지시를 받은 다음 곧 도안의 모든 군당책임비서들에게 전하고 피해방지대책을 빈틈없이 취하도록 강조하고 또 강조하였다. 그리고는 도의 책임일군들이 지구별로 맡아 큰물피해를 막기 위한 투쟁을 조직하도록 짜고들었다. 송규태는 송탄군을 중심으로 한 동북부지구를 맡게 되였다.

그날밤 중앙텔레비죤이 유라시아대륙의 서쪽에서 밀려오는 시꺼먼 구름층을 촬영한 기상위성사진을 방영하면서 례년에 없던 큰비가 내릴것이라고 예보하는데 벌써 밖에서는 대자연이 요동치였다. 번개의 시뻘건 불채찍이 대공을 후려치고 하늘이 산산 깨여져 허물어내리는듯 한 굉음이 엄청난 재난을 예고하며 울부짖었다. 뒤따라 바람의 아우성소리와 함께 세차게 날리는 비발이 창유리를 휘갈겼다. 송규태는 인편에 보내온 아들의 편지를 읽다가 눈살을 사납게 찌프리고 창밖을 내다보았다.

(이놈 날씨가 일을 내자는게구나…)

아들 기선이는 편지에 이렇게 썼다.

…개인문제때문에 고민하다가 인편이 생겨 부랴부랴 몇자 씁니다. 솔직히 말하면 저는 살고싶은 생각도 없어졌습니다. 저의 운명은 파멸에 직면한것 같습니다. 다름아니라 그 처녀 류성희하고 관계가 깨지게 되였습니다. 처녀의 아버지도 어머니도 마음이 움직였는데 할아버지가 틉니다. 몇달전 처녀의 아버지가 모스크바로 출장떠날 때 저도 외국손님을 바래려 비행장에 나갔다가 그 령감을 만났는데 보통이 아닙니다. 자기네 가문에 비해 우리쪽이 너무 기운다고 얕보면서 트는것 같습니다. 아버지는 우리 시대에 혼인문제에서 가문을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겠느냐고 믿지 않으실수 있지만 처녀의 집안은 가풍이 봉건적이고 령감 허락이 없으면 모다구 하나 옮겨박지 못한다고 합니다. 성희동무는 그 완고한 제왕의 승인을 받지 못해 애를 태우다가 이제는 단념하려고 합니다.

아버지, 정무원이나 어느 기관에 볼일을 만들어서라도 여기로 빨리와 처녀의 부모들과 할아버지를 만나주시였으면 좋겠습니다…

바깥의 번개불에 얼굴이 시퍼렇게 언뜻거렸다. 송규태는 놀라움과 모욕감, 자식에 대한 분격으로 피가 곤두서는듯 하였다. 그는 류한무로인의 경력을 다소 알고있었다.

(한때 련대를 거느렸다는 령감이 그런 봉건상투쟁인가. 허, 어처구니 없군… 당일군의 아버지가… 우리 사회에 신분제도의 잔재가 있다쳐도 그래 이 부위원장의 신분은 낮단 말인가. 싫다면 그만둘것이지, 시라소니같은자식, 살고싶지 않다구? 뭐 파멸이라구? 바보같은자식… 죽어라 죽어!)

그는 담배를 피워물고 창가로 걸어가 숨을 거칠게 몰아쉬며 바깥을 내다보았다. 억수로 쏟아지는 비며 끊임없는 우뢰소리가 자기 가정에 닥쳐올 재난도 예고하는것 같아 가슴이 번거로와졌다.

그리고 자기 몸에까지 비가 축축히 슴새여드는듯싶으면서 모든것이 을씨년스럽게 느껴졌다.

이틀이 지나자 도안의 벌방지대 여러곳들이 물에 잠겨버렸다. 나흘이 지나자 여기저기 군들에서 강뚝이 터졌다. 다락밭들에 사태가 내려 강냉이밭을 쓸어버렸다는 피해보고들이 련이어 올라왔다. 그래도 하늘은 무엇이 성차지 않은지 계속 비를 퍼부었다. 낮이나 밤이나 비는 무더기로 쏟아졌다.

하늘우에 바다가 떠있어 그것이 마구 쏟아져내리는듯 하였다. 하늘과 대지는 엇비스듬히 날리는 비발로 이어졌는데 이제는 한데 어우러져 수억만갈래 물폭포로 되여 지상의 모든 창조물들을 들부셔버릴듯이 점점 기승을 부리며 쏟아졌다.

엿새째에는 홍수바람에 전주가 넘어지고 길이 끊어지고 마을들이 침수되였다는 긴급보고들이 올라왔다.

박윤식책임비서는 도책임일군들의 비상협의회를 열고 피해지역과 위험지역에서 주민들을 소개시킬 문제를 의논하고 도안의 전체간부들이 구제작업의 앞장에서 헌신적인 투쟁을 벌림으로써 인민들의 생명재산에 피해가 가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거듭 강조하였다. 책임비서는 은파호, 서흥호, 송탄호와 같은 큰 저수지들에 대하여 몹시 불안해하며 점점 높아지는 수위에 정비례되여 어마어마하게 커질 수압에 제방들이 터지기전에 수문들을 서서히 열어야 하지 않겠는지 전문가들과 토론해보라고 하였다.

송규태는 이전에 한번 터진적 있는 송탄호가 무엇보다도 걱정되였다. 그래서 도안의 모든 저수지들을 관리운영하고있는 도관개사업소에 알아보니 이런 때에는 호수의 수문들을 다 열어놓고있는것이 편안한데 송탄호의 수문들은 두개만 약간 열려있을뿐이였다. 군당책임비서가 열지 못하게 한다는것이였다.

송규태는 군당책임비서와 전화로 만났다.

차영진은 쾌활한 목소리로 부위원장동지가 송탄지구를 맡았다는 소식을 들었다고 하면서 걱정이 많겠다는 인사말부터 앞세웠다. 그 쾌활하고 여유있는 태도가 좀 언짢았지만 내색하지 않고 군의 수해정형을 대충 알아보고는 송탄호의 수문들을 빨리 여는것이 어떤가고 의논조로 말하였다. 차영진은 순응하지 않았다. 아직 수위가 위험계선에 이르지 않았다, 여수터의 수문들을 약간씩 열어 물을 뽑으면서 조절하면 언제가 터질 위험은 없다, 인민들이 가물로 고생하던 일을 생각하면 물을 그냥 흘러보낼수 없다고 하였다.

송규태는 강우량을 보라, 그런 조절놀음을 할 형편이 못된다, 수문들을 열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목소리들이 점점 높아졌다.

《열어야 합니다!》

《더 견뎌보겠습니다!》

《그러다가 언제가 터져 호수물이 한꺼번에 쏟아져내리는 날에는 황새벌이 다 죽탕이 되오. 주민지대는 물론… 그때엔 법앞에서 책임지겠소?》

《너무 그러지 마십시오!》

송규태는 송수화기를 소리나게 내려놓고 분노에 우들우들 떨다가 담배를 피워물었다. 웬일인지 지난날의 일들이 뇌리에 번개쳤다. 리창길의 이주문제, 주상민을 지배인으로 임명한 문제… 차영진은 선임자가 해놓은 일들을 뒤짚어엎자고만 애써온듯싶었다. 이 사람이 왜 이러는가… 이제는 사람을 허술하게 여기는가… 배심을 부리다가 재구를 쳐도 이제는 나는 모른다… 그는 담배를 성급히 빨다가 그것을 재털이에 비벼꺼버리고는 전화로 다른 군들을 찾아 피해실태를 료해하였다. 목청껏 소리치며 전화거는 소리에 방안이 떠나가는듯 하였다.

그날밤 송규태는 불안하고 어수선한 마음으로 사무실에서 밤을 지새웠다. 이튿날에는 송탄군에 전화도 걸지 않았다. 어슬녘에 그는 도당책임비서의 방으로 찾아들어가 동북부지구의 피해정형을 보고하다가 가슴에서 치미는것을 지그시 누르며 차영진의 고집에 대하여 내비치였다.

《그 동무가 왜 그러는가?》

하고 박윤식이 의아한 눈길로 그를 쳐다보았다.

《모르겠습니다.… 이전에 보아도 부직간부로 있다가 단위책임자가 되면 숨어있던 본색이 다 드러나는 동무들이 있었는데… 사람이 영… 설복도 했는데도 말을 안듣습니다.》

《좋소. 그 문제는 후에 보기로 하고 우선 수습부터 해야지.》

박윤식은 송수화기를 천천히 들어올려 송탄군당책임비서를 찾으라고 이르더니 문득 얼굴빛이 거멓게 질렸다.

《그쪽 방향의 선로가 어떻게 됐소…》

《예?…》

《두시간전부터 통화가 되지 않는다오. 체신국에서 복구하러 나간지 오랜데 종무소식이요.》

송규태는 얼굴이 창백해져 휘파람같은 소리로 부르짖었다.

《아, 언제가!…》

《뭐라구?》 박윤식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웬만한 물살에는 콩크리트전주들이 넘어지지 않습니다. 언제가 터져 휩쓸어내리는 물에 전주들이… 전주들이 쓰러지고 꺾어진것같습니다.》

분명히 동북쪽에서 우우우… 우르르릉… 하는 굉음이 울려오고 밀려내리는 홍수의 선기가 방안에 휩쓸어드는듯하였다. 도당책임비서는 엄엄한 눈길로 그를 지켜보았다.

《동무가 직접 송탄으로 가서 사태를 수습하오.》 그의 목소리는 군사명령처럼 단호하게 울렸다.

얼마후 승용차는 송탄으로 가는 도로에 들어서 쏟아지는 비속을 달리였다. 차가 들출 때마다 흙탕물이 차창에까지 튀여올랐다. 어스름… 비… 어디에나 물판이였다. 차안에 앉아 침울한 얼굴로 바깥을 내다보는 송규태의 머리에는 착잡한 생각들이 끝없이 뒤엉켰다가 흩어지며 회오리쳤다.… 리순희… 구영세… 송탄을 떠나온 다음에도 자기를 잊지 못해 드문드문 찾아왔던 사람들… 그들의 운명은 지금 어떻게 되였을가… 십여년전 홍수때 구제작업을 하다가 물에 떠내려간 행정경제위원회 지도원, 그의 시신은 저 황새벌 길가 가로수에 걸려있었지. 손풍금을 잘 타는 친구였는데… 그는 불길한 생각을 털어버리려고 눈을 감으며 머리를 저었다. 그러자 자신이 가고있는 위험지구에 대한 걱정은 어디로인가 날아가버리고 아들생각만 가슴을 파고들었다.

기선의 편지… 당일군들의 가정에 신분관념이 그토록 농후하다면 이건 문제이다. 류한무로인이… 한때 련대를 거느렸다는 로인이 그런 봉건완고파란 말인가… 아니… 믿을수 없는 소리다. 저녀석이 나를 움직이자고 거짓을 꾸며댄게 아닌가…

그는 분격이 치밀었으나 다음 순간에는 동정으로 뒤바뀌였다. 자식이 측은해졌다.… 여태 나는 사업만 사업이라고 하면서 저애를 잘 보살피지 못했어. 남들처럼 극진히 보살펴주지 못했지. 외지에 나가 혼자 지내면서 얼마나 속이 타면 그런 편지를 썼겠는가. 고민… 파멸… 살고싶지 않다… 이건 사랑에 대한 진지한 감정이라고도 볼수 있지 않는가. 원 녀석두…

가슴이 찌르르 저려들었다. 그는 숱한 인명과 재산을 휩쓸어버렸을 재해구역으로 가면서, 또 자기한테도 어떤 위험이 닥칠지 모르는 고장을 향해 달리면서 왜 이런 생각이 갈마드는지 그 까닭을 알수 없었다. 그 께름직한 심리의 원인을 파헤쳐보려고도 하지 않았다. 그럴 경황도 없었다.

고개길을 내리던 차가 갑자기 멎어섰다. 운전사가 기겁하여 소리쳤다.

《아, 저걸 보십시오!》

어스름속으로 내뻗친 두줄기의 전조등불빛에 바다처럼 펼쳐져 번들거리는 물판이 내다보였다. 강뚝도 길도 물에 잠겨 보이지 않았다.

송규태는 차에서 내려 물가로 달려나갔다. 서늘한 바람이 얼굴을 스치였다. 엄청난 재난의 냄새인듯 한 감탕냄새같은것이 페부를 찔렀다. 그는 저도 모르게 헉 하고 숨을 들이켰다. 범람한 홍수는 이쪽과 저쪽 산기슭에까지 가득 차서 넘실대며 서서히 흘렀다. 굼니는 물결의 출렁대는 소리가 적막속에 들려오고 괴괴한 흐름우에 희뿌연 물안개가 음산하게 피여올랐다. 저쪽 트레트레 흐린 물결우에 뿌리채 뽑힌 나무며 생활의 잡동사니들이 둥둥 떠내려가는데 그밑 강바닥으로 숱한 바위돌들과 시체들이 굴러가는것 같았다. 그리고 저 상류쪽에서는 사람들의 아우성소리가 분명히 들려왔다.

(아, 언제가 터졌구나! 차영진이… 무슨짓을 저질렀어?!)

이제는 이세상사람이 아닐수도 있는 차영진… 그한테 어제 속이 뒤틀려 한번도 전화하지 않았던것이 모진 가책으로 안겨들었다. 아, 어제… 어제 한번만 더 전화했더라면 수문을 열지 않았을가… 그는 망연자실하여 우두커니 서있다가 어스름에 가리운 앞산쪽을 바라보며 길이 끊어졌으니 이제는 산발을 타고 갈수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산발을 타고 골짜기들을 휩쓸어내리는 물을 무사히 헤염쳐 건너갈수 있겠는가… 젊었다면 몰라도… 송탄으로 갈 생각을 하니 가슴이 얼어들었다.

그가 망연자실하여 검스름한 산발들쪽만 하염없이 바라보는데 운전사가 새되게 소리쳤다.

《앗, 시체!… 저기… 저기…》

송규태는 운전사가 가리키는 길가로 정신없이 뛰여갔다. 흙탕물이 밀려와 철썩거리는 길가의 수풀속에 보기에도 끔찍한 그림자가 쓰러져있었다. 그런데 다리는 물속에 잠겨있지만 한손은 앞으로 내뻗쳐 무슨 나무그루터기같은것을 틀어잡은채 굳어져버린듯하였다. 엉거주춤 서있는 그의 곁으로 운전사가 날아지나가 그 사람을 돌려눕히고 더듬더듬 쓸어만져보더니 온기가 있다고 소리쳤다.

송규태도 그 사람한테 다가가 흙탕물이 질벅한 머리칼을 쓸어넘기고 얼굴을 씻어주었다. 로농적위대복차림의 30대의 젊은이였다. 그가 운전사와 함께 인공호흡을 시켜 물을 토하게 한 다음 육중한 몸을 맞들고 차에 가서 뒤좌석에 올리려는데 어디에선가 새된 부르짖음소리가 들려왔다.

《여보-세-요-》

쏟아지는 비속에서 작달막한 처녀가 총알같이 달려나오며 울음섞인 목소리로 물었다.

《송탄호언제가 터졌나요? 터졌다는게 정말인가요?!》

송규태는 운전사와 함께 실신한 청년을 좌석에 눕힌 다음 차곁으로 다가온 처녀에게 주의를 돌렸다. 어디서 무슨 소리를 듣고 정신없이 달려왔는지 처녀의 행색은 말이 아니였다. 비물이 흐르는 람루한 작업복, 헝클어져내려 이마며 볼에 붙은 머리칼… 오돌지게 생긴 처녀는 발을 동동 구르며 소리쳤다.

《언제가 터졌나요? 터졌지요? 예? 대줘요. 대줘요? 누구한테도 말하지 않겠어요. 부위원장동지, 직물공장에 다녀요. 저 동문 살았나요? 언제가 터졌지요? 예?》

《보면 몰라-》 송규태는 이렇게 버럭 소리치고는 차에 올랐다.

그리고는 까닭모르게 홀가분해진 마음으로 소리쳤다.

《산 사람부터 구원해야겠소. 빨리 병원으로!》

나이 지숙하고 무던하게 생긴 운전사는 차거운 눈빛으로 그를 흘깃 돌아보았다. 이윽고 차가 왈칵 달려나가자 송규태는 얼결에 뒤를 돌아보았다.

처녀는 어디로 사라졌는지 보이지 않았다. 그는 아무 생각도 하지 않으려고 애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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