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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소설 평양은 선언한다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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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강산
댓글 0건 조회 2,276회 작성일 21-05-26 1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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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간 기하학적선이 앞가슴을 사선으로 가로질러 건너간 흑곤색해수욕복은 처녀의 몸매와 건강미를 두드러지게 하였다.

성희는 반백의 아버지앞에서 청춘의 아름다움을 한껏 뽐내고싶은듯 아이적처럼 수집음도 없이 제자리걷기와 뜀질도 하고 몇번이고 허리를 굽혔다 펴는가 하면 팔다리를 세차게 놀려 준비운동을 하였다. 그러다가 휙 돌아서 나직한 탄성을 터뜨리며 하얀 모래불에 발자국을 남기면서 바다기슭으로 달려나갔다. 처녀는 여느 사람들처럼 바다물로 가슴이며 다리를 씻는 일도 없이 달려나가자 바람으로 바다에 첨벙 뛰여들어 파도를 헤가르며 헤염쳐 나갔다.

류수진박사는 자기 딸이 주저없이 바다물에 뛰여드는 그 기세며 헤염치는 솜씨에 저으기 놀랐다. 그는 여러가지 로파심에 엉거주춤 일어서서 헤염쳐 가는 딸만 지켜보았다. 노란머리수건을 동인 딸의 아담한 머리는 파도우에 떠오르는가 하면 후미진 물이랑밑으로 미끄러져 내리면서 둥둥 떠나갔다. 갑자기 어디서 나타났는지 두 총각녀석이 딸앞으로 헤염쳐나와 물총질을 마구 해댔다. 아버지는 그것이 악의없는 장난질이라는것을 알면서도 황황히 달려나가다가 위협적으로 발을 구르며 소리질렀다.

《이녀석들아, 그만두라- 물러서라- 사등뼈를 분질러 놓을테다-》

류수진박사는 자신에게 어울리지도 않는 그런 소리를 내지르고는 스스로도 우스워 아래입술을 깨물었다.

《이-놈-들-아- 죽-인-다-》

딸은 맵짠 물총질로 부리나케 응수하다가 상대편이 두 녀석이여서 감당하기 어려운듯 물속으로 자맥질해 들어가 저만치에 솟구쳐올랐다.

그는 손으로 얼굴을 훔치며 머리를 부르르 떨어 물방울을 털더니 이쪽을 향해 소리쳤다.

《아버지- 들어와- 재미나-요-》

생기가 넘친 그 목소리가 아버지의 가슴에 차분히 젖어들며 따뜻한 정과 대견한 마음까지 불러일으켰다.

성희는 그의 외동딸이였는데 간호원학교를 졸업하고 대학병원 간호원으로 있었다. 얌전하면서도 진취성이 강한 그의 성격은 할아버지한테서 물려받은것 같았다. 친척들도 그렇게 말하였다. 성희자신은 곧잘 《격세유전》이라고 롱조로 말하였는데 그것을 응당한것으로 여기면서도 은근히 자랑하고싶어하는것 같았다.

류수진일가의 정신적지주인 예비역상좌 류한무로인은 한창시절에 대대와 련대를 이끌고 설악산과 서희령 일대에서 미군부대들을 갈대처럼 쓸어눕힌 조국해방전쟁로병이다. 제대되여 년로보장에 넘은 다음 로병은 내내 맏아들인 류수진의 집에서 부양받다가 둘째 아들 류수명이 당중앙위원회 조직지도부에 들어가 친애하는 지도자동지를 가까이에 모시고 사업하면서부터 중책을 맡은 둘째를 뒤받침해주고 보살펴주려고 그의 집으로 옮겨앉았다. 남성으로서 로인의 사생활은 불행하고 고독하였다. 안해가 전쟁기간에 입은 파편상의 후유증으로 사망한 다음 아들들의 진정어린 권유에도 불구하고 재혼하지 않았기때문이였다. 그대신 아들들이 그쯘하고 손자손녀들이 재롱스러워 그것들과 한데 어울려 지내며 보살펴주는 락만으로도 개인적인 불행과 고독을 메꾸고도 남음이 있었다. 로인은 자손들에게 정을 붙이고 살았다. 그래서 성희는 기저귀를 차고 기여다닐 때부터 할아버지에게 노상 업혀다니고 할아버지의 꽛꽛한 팔을 베고 잤다. 아장아장 걸음마를 떼면서부터는 련광정의 장기터에도 업혀가서 할아버지가 따먹은 장기쪽들을 가지고 놀았으며 낚시터에도 따라가 물장난을 하였다. 손녀가 감기에 걸려 기침을 좀 깇어도 할아버지는 그처럼 즐기는 담배마저 끊었다. 그런 생활속에서 할아버지의 구수한 전쟁옛말과 함께 로병의 마음씨까지 손녀의 작은 가슴에 슴배여 들었는지도 모른다.

성희는 파도에 떠밀리며 기슭으로 헤염쳐 나오고있었다.

얼마후 그들 부녀는 솔밭속의 오솔길을 따라 료양소쪽으로 걸어갔다. 처녀는 해수욕을 하여 몸과 마음이 날아오를듯이 상쾌한지 웃음어린 얼굴로 아버지를 쳐다보며 이런 바다가에서 내내 살았으면 좋겠다고 하였다.

아버지는 딸이 혼기에 이르렀다는것을 새삼스럽게 느끼며 지나가는 말로 물었다.

《송 무어라는 청년은 그후에도 찾아왔니?》

《아유, 시끄러워 죽겠어요. 며칠전에는 집에 찾아와서 엄마하고 두시간이나 이야기하다 갔어요.》

《그래 엄마는 어떻게 보더냐?》

《엄만 그저… 정말 한심해요. 총각나이에 벌써 합영회사 지도원이고 아버지는 도에서 손꼽히는 간부겠다, 똑똑하고 집안도 뜨르르하다면서… 정말 한심해요. 우리 병원에 보름 입원해있었는데 날 어떻게 안다구? 어처구니 없지. 병동처녀들 말이 나보다도 삼촌한테 더 관심이 크다나? 삼촌이 당중앙위원회에 있다는 소리를 어디서 들은 다음부터 저런대요. 지하철도에서 앞을 막아서는가 하면 쫓아다니구…》

《그건 오해일수도 있다. 불같은 심정을 지닌 청년인지 아니…》

성희는 손을 저어 앞에서 시끄럽게 날아도는 하루살이떼들을 쫓아버렸다.

《아버지, 난 의대를 졸업할 때까지는 아무 생각도 안하겠어요.》

수진은 응대를 안하고 묵묵히 걸어갔다. 딸은 화제가 끊어졌는지, 아버지의 무거운 침묵에 주눅이 들었는지 머리를 다소곳이 숙였다.

《집에서는 별일이 없느냐?》

《…》

《엄마는 어떻게 지내느냐?》

《엄마요? 그저 가내반일로 바삐 돌아치지요 뭐…》

《음…》

《아버지…》

《?…》

《다른 걱정 말아요. 빨리 건강을 회복해야지요. 삼촌엄마 말이 아버지가 수술한 날부터 할아버지가 며칠밤 주무시지 못했대요.》

《이제는 거의 회복됐다. 기운도 왕성해지고… 에텔마취가 심했던지 기억력이 좀 약해졌어. 어제는 옛친구한테 편지를 쓰려고 했는데 이름이 갑자기 생각나지 않더라. 허허…》

성희는 홀연 다른 생각에 빠져버린듯 몇순간 응대를 안하다가 중뿔난 소리를 했다.

《엄마네 가내작업반이 순회우승기를 탔어…》

그것은 속마음을 감추려는 잔꾀인것 같았다. 수진은 의아해서 딸을 돌아보았다.

호실로 돌아오자 그는 성희를 의자에 앉히고 자기는 침대에 걸터앉아 딸을 빤히 지켜보았다.

《집에선 무슨 일이 없냐?》

딸의 맑은 눈동자에 바깥 정원수의 푸른빛이 아롱거렸다.

《무슨 일이 있겠어요…》

《우리 과학원에서는?…》

그러자 딸은 얼굴빛이 달라지면서 보름전 사회과학원에서 이상한 소문이 돈 일이 있다고 하였다. 아버지가 강연을 잘못하여 이제 대론쟁이 벌어질지도 모른다는 여론까지 돌았다는것이다. 수진은 울컥 피기가 올라 얼굴이 빨개졌으나 침착하게 따져물었다.

《너는 어디서… 누구한테서 들었느냐?》

《직접 듣지 않았어요. 그제 삼촌네 집에 갔다가 서재에서 할아버지와 삼촌이 주고받는 말을 엿들었어요. 아래방에서 삼촌엄마와 이야기하는데 할아버지가 노해서 말씀했어요. <사회과학원에 소문이 짜- 났다. 너는 어째 형을 휘여잡지 못해? 혁명인데 동생이 형을 교양하면 못쓴다더냐. 강사로 초빙됐으면 준비를 잘해가지고 나갈것이지…> 이러지 않겠어요.》

딸은 단숨을 내쉬고는 내쏘는듯한 어투로 계속했다.

《아버지, 강연을 잘못했다는게 믿어지지 않아요. 그러지 않아도 할아버지가 엄마를 자꾸 교양하자고 해서 사이가 버그러졌댔는데 이번에 또… 엄마는 너무 분해서 연구소에 찾아가 소장을 만났어요.

서만복교수는 엄마한테 조직적으로 제기된것은 아니라면서 안심하라고 했대요. 연구소 소장선생님이 무슨 볼 일로 인민경제대학에 나갔다가 강연이 어떻던가고 물었는데 글쎄 아버지가 떠난 다음 청강생들속에서 여론이 좀 있었다고 한것 같아요. 아빠가 개편에 공감한다나? 호호호. 어처구니 없어서… 엄마는 집에 돌아와서 에그 사람이 어쩌면 저렇게 똑똑치 못할가, 야야, 박사구 뭐구 집에 끌어들여 가내반에나 넣어야겠다. 이러지 않아요. 호호호…》

딸은 의자등받이에 기대며 깔깔 웃어댔다. 류수진은 얼굴빛이 어둑해져 담배를 피워 물었다.

그러거나말거나 엄마처럼 바지런한 성희는 옷장문을 열고 아버지의 덞은 런닝샤쯔며 타올수건을 들고 세면장쪽으로 발길을 떼다가 고개를 돌렸다.

《아버지, 걱정말아요.》

세면장으로 들어간 처녀는 빨래질을 하면서 코노래까지 흥얼거렸다. 어느 정탐영화의 주제가인것 같았다. 세상일이란 성희의 생각처럼 그렇게 단순한것이 아니였다.

류수진박사는 창가로 다가가서 고요한 정원쪽을 내다보며 깊은 생각에 잠겼다. 뒤짐을 진 손끝에서 심혼이 바작바작 타드는 연기인듯 파르스름한 담배의 실연기가 라선을 그으며 서서히 날아올랐다…

그는 인민경제대학에 나가 졸업을 앞둔 당일군반 학생들앞에서 쏘련과 동유럽나라 당들의 최근동향에 대하여 강연했었는데 이야기를 끝내였을 때 한 청강생이 쏘련에서도 개편이 계속되면 동유럽나라들에서와 같은 사태가 벌어지지 않겠는가고 물었으며 자기는 두고 봐야 할 일이지만 아직은 그렇게 단언하기 어렵다고 대답하였다.

청강생은 앉지 않았다.

《<다원주의> 하나만 놓고 봐도 이 <다원주의>가 도입된 동유럽나라들에서는 온갖 사조와 정치운동을 허용한 결과 자본주의사상이 사회를 휩쓸고 반체제적인 정치그루빠들과 정당들이 발족하여 공공연히 활동하면서 사회주의제도가 다 허물어지게 되였습니다. 그런데 쏘련이라고 무사하겠습니까?》

《쏘련과 동유럽나라들은 사정이 다릅니다. 동유럽나라들은 쏘련군대에 의하여 해방되였고 쏘련의 강력한 영향력과 원조로 사회주의제도가 수립되였으나 사회주의혁명을 철저히 수행하지 못하여 착취계급의 사상과 감정, 그 잔여분자들이 하나의 정치세력으로 남아있는것이 화근으로 되였습니다. 동유럽나라 당들이 자기네 실정을 고려함이 없이 쏘련당의 개편로선을 교조적으로 받아들여 저런 란동이 벌어졌습니다. 그러나 쏘련은 레닌, 쓰딸린당에 의하여 사회주의혁명을 제일 처음으로, 그것도 가장 철저히 수행하였기때문에 반사회주의적인 사조와 정치세력이 강력한 력량으로 대두할수 있는 사회경제적지반이 없습니다. 그리고 쏘련당이 개편을 해도 자기 정치경제적기반인 사회주의제도가 허물어질 지경에 이르기까지 하겠는가 하는것입니다. 쏘련에서는 공민전쟁후 경제령역에서 자본주의적요소들을 일부 허용한 신경제정책을 실시했는데 그때에도 론의들이 많았습니다. 청소한 사회주의제도가 허물어지고 자본주의가 복귀되지 않겠는가 하여…》

그때였다. 앞줄 창곁에서 한 청강생이 불쑥 일어났다. 담차고 억세게 생긴 중년당일군이였다. 그는 주저하는 기색이란 전혀 없이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

《나는 유럽쪽에 가본 일이 없지만 좌우간 쏘련의 사회주의제도가 동유럽나라들에 비해 더 공고한건 사실일것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개량주의적인 <개편>을 저렇게 계속 해대는데도 과연 무탈할수 있겠는가 하는것입니다.》

《그러니까 쏘련에서도 사회주의가 어떻게 될수 있다는건가요?》

《개량주의, 수정주의를 하면 자본주의로 나가게 된다는거야 상식으로 되여있는데 쏘련이라고 례외로 될수 있겠습니까?》

《문제는 저 <개편>을 어떻게 보는가 하는 관점에 달려있습니다. 쏘련에도 크게 나누어 두가지 상반되는 관점이 있습니다. 자본주의로 쉽게 기울어질수 있는 우경으로 보는 관점하고 관료주의를 청산하고 사회주의적민주주의를 높은 수준에서 발양시켜 사회생활전반에 활력을 불어넣고 나라를 비약적으로 발전시키자는 획기적인 <전략>으로 보는 관점하고… 우리 당이 아직 이렇다 저렇다 평가를 내리지 않고 있는것만큼 속단하지 말고 두고 봅시다… 멀리에서 망원경으로 바라보면 여우를 승냥이로 볼수도 있지요. 허허…》

방안공기가 한결 가벼워졌지만 청강생은 의아한 눈길로 강사를 여겨보았다.

강좌실로 돌아온 그는 강연에 참석했던 강마른 몸매의 강좌장에게 두번째로 질문한 청강생이 누구냐고 물었다. 산간오지군인 송탄군의 책임비서인데 종합대학 철학부 졸업생이여선지 자주 론전을 불러 일으키는 괴짜, 탐구열이 높으며 성미가 불같은 일군이라고 하였다… 그 청강생들이 무엇이라고 했는가? 아버지의 노성, 연구소 소장 서만복교수가 했다는 말… 여론이 돌아간것만 미루어보아도 자기가 없는 사이에 범상치 않은 일이 생긴것 같았다. 아버지는 어디서 들었을가. 련광정장기터에 어느 연구사의 입이 다사한 부친이 다니는게 아닌가…

(서만복교수가 강연에 의견을 가지고 론의에 붙였는지도 모른다. 여기서 태평스럽게 료양생활을 즐긴다는건 량심이 없는짓이다.)

그는 벽장에서 트렁크를 꺼내여 옷가지들을 서둘러 개여넣었다.

촉기빠른 성희가 세면장문을 빠끔히 열고 방안을 들여다보았다.

《아버지, 왜 그래요?》

《평양으로 올라가야겠다.》

《아니?…》

딸은 눈이 휘둥그래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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