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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소설 비약의 나래 제45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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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강산
댓글 0건 조회 4,595회 작성일 21-05-08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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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5 장

5

 

림수봉은 남편이 별일 없을것이라고 하였지만 강민옥은 좀처럼 불안에서 헤여날수 없었다. 그는 안전부에 불리워간 남편을 두고 속을 썩이던 나머지 아버지의 도움을 받으려고 친정으로 갔다. 아버지는 사회안전부와 중앙검찰소에 아는 사람들이 있을수 있었다. 어떻게 해서라도 남편이 무사하도록 힘써주기를 부탁하려고 했었다. 민옥의 생각에는 남편이 무사할것 같지 않았다.

아버지는 밤이 깊어서야 집으로 돌아왔다.

《아버지, 꼭 부탁할게 있어서 왔어요.》

민옥은 저녁상을 물리고난 아버지를 조심히 바라보며 말했다. 입을 열기가 수월치 않았다. 평성에 남편을 따라나간 후로 뻔질나게 찾아오는 친정이지만 부모들에게 기쁨을 가져다주는 일이란 있어보지 못했다. 새살림에 필요한 그 무엇을 가져가기 위해 찾아오거나 가정불화로 흐려진 기분을 가시기 위해 찾아오군 했었다. 아무리 부모라 하더라도 그러한 걸음을 거듭하는것이 죄스러웠다. 더구나 이번 걸음은 아버지에게 시끄러운 부담으로 될것이 명백했다.

《무슨 부탁이냐?》

무심히 되묻던 아버지의 표정이 서서히 굳어졌다. 딸의 그늘진 얼굴에서 심상치 않은 일이 벌어졌다는것을 깨달았던것이다.

《유압뽐프실험이 있었는데 그만…》

《그만 어찌되였다는거냐?》

아버지는 미간을 찌프리며 뒤를 재촉했다. 이때 부엌에서 설겆이를 끝낸 어머니가 방안에 들어와 앉았다. 어머니에게는 여적 저간의 사정을 말하지 않았다. 어차피 알게 될 일이지만 앞질러 어머니의 속을 태워드리고싶지 않았다.

《그래 무슨 일이 있었니?》

두사람의 얼굴을 번갈아보던 어머니가 나직이 물었다.

민옥은 아버지의 낯색만을 살피면서 폭발사고가 일어난 전후사연을 설명했다.

말없이 듣고난 아버지는 지그시 두눈을 감고 침묵했다.

《아버지, 과학실험을 하다가 저지른 사고이기때문에 다른 사고와는 그 성격이 다르다고 생각해요.

법적인 제재를 받기 전에 어떻게 하나 지금 손을 써서 무사하게 해야지요. 그러니 어떻게 해서라도…》

민옥은 간절히 애원했다.

아버지는 한참만에야 입을 열었다.

《내가 어떻게 무슨 낯으로 법기관에 말을 한단 말이냐. 처부모도 부모인데 그렇게 말을 듣지 않고 제 고집만 세우더니… 그 사람이 우리 금속공업부 무역회사 해외출장소에 나갔다면 얼마나 좋았겠니? 하는수없이 그 자리에 다른 사람을 임명해서 외국에 내보냈다. 그런데 재목이 못되는 사람이 다른 나라와 무역거래를 하다보니 첫 거래부터 밑지는 장사를 했단 말이다. 국제시장가격보다 우리의 강철을 눅게 팔았거던. 조국에 돌아온 그 사람을 오늘 호되게 추궁을 하면서 한편으로는 홍범이를 원망했다. 홍범이라면 그런 일이 없었을게다. 내 권고를 듣지 않고 제 하고싶은대로만 하더니 젠장…》

아버지는 전에없이 성을 냈다.

민옥은 더 말을 못하고 고개를 떨구었다. 돌이켜보면 아버지가 그럴만도 하였다. 한쪽무릎을 세우고 앉아서 근심스레 한숨을 톺던 어머니가 참견을 했다.

《여보, 지나간 일은 지나간 일이고 사위가 불행한 일을 당했는데 어떻게 강건너 불보듯 하겠소. 사회안전부에 당신이 잘 아는이들이 있지 않소. 래일이라도 틈을 내서 찾아가보구려.》

《듣기 싫소. 그건 치외법권을 원하는거나 같소.》

《제 딸을 봐서라도 어떻게 그럴수가 있소?》

《내가 나선다고 될일이 아니란 말이요. 나라의 경제사정이 점점 어려워지는 때에 수입제공작기계를 석대나 마사먹었다니 어떻게 무사할수 있소. 사위가 아니라 딸이라도 그렇겐 못해. 응당 교훈을 찾아야지!》

사위에 대한 아버지의 원망과 분노가 그대로 자기에게 퍼부어지는듯 하여서 민옥은 얼굴이 화끈 달아올랐다. 수치와 모멸속에서 아버지에 대한 기대가 무참히 깨여지는것을 의식했다.

초인종이 울리였다. 때아닌 때에 누가 찾아왔는가? 세사람은 일시에 마뜩잖은 시선을 복도쪽에 겨누었다. 또다시 초인종이 울리였다. 어머니가 하는수없이 무릎을 짚고 움쭉 일어나서 전실로 나갔다. 출입문 열리는 소리에 남자의 목소리가 뒤따랐다.

《금속공업부 부부장동지댁이 옳습니까?》

《그렇습니다. 뉘신지?》

《금속공업부 무역회사 해외출장소에 있습니다.》

《어서 들어오세요.》

서로 주고받는 어머니와 손님의 목소리가 들려오더니 뒤이어 그들이 나타났다. 민옥에게는 손님이 낯선 사람이였다. 그러나 방금듣게 된 말을 통하여 그가 누구라는것을 알았다. 언젠가 아버지가 사위에게 그토록 권고하던 그 자리를 차지한 사람이다. 자기 또한 한때는 황홀한 꿈을 안고 남편이 해외출장소로 날아가기를 원했었다. 남편이 끝내 거역한 탓으로 그 꿈이 이루어지지 못했었다. 그 자리를 차지한 손님을 보는 순간 질투심에 가까운 감정을 느꼈다.

민옥은 재빠른 시선으로 그를 유심히 뜯어보았다. 회갈색바지에 같은 색갈의 남방샤쯔를 산뜻하게 차려입은 그의 몸에서는 연한 향수내가 풍기였다.

《동무가 어떻게 왔소?》

아버지는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서며 메마른 어조로 물었다. 사위를 두고 성을 내던 기분을 채 가시지 못했기때문인지 아니면 본인에 대한 불만때문인지 뻣뻣하게 대하였다. 그러나 손님은 그것을 이미 예견하였는지 불쾌감을 드러내지도 않았고 당황해하지도 않았다. 들고온 외국제려행용가방을 보란듯이 앞으로 돌려서 두손으로 모두어잡고 미안한 기색을 지어보일뿐이였다.

《낮에 부부장동지의 비판을 받고 뉘우치는바가 많았습니다. 조용히 하고싶은 이야기가 있어서 찾아왔습니다.》

《그럼 내 방으로 가세.》

아버지는 손님을 데리고 자리를 떴다.

민옥은 옆방으로 건너가는 손님의 뒤모습을 싸늘한 눈길로 주시했다. 뉘우치는바가 많으면 사무실에서 자기비판을 할것이지 무엇때문에 집에까지 찾아오는가? 꺼질듯 한 어머니의 한숨소리에 머리를 돌리였다.

《너희들 일이 참 안되였구나.》

단둘이 남게 되자 어머니는 딸을 측은히 바라보며 한탄을 계속했다. 그러다가 중얼거리듯 말했다.

《네가 그 사람을 따라다니다가는 한뉘 마음고생만 할것 같구나.…》

어머니는 한숨을 쉬며 한탄하듯 말했다. 민옥은 어머니의 얼굴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그러니 나더러 어찌란 말인가. 헤여지라는 말인가. 어째선지 어머니의 말마디들이 예리하게 가슴에 박히였다. 남편이 과학원으로 진출한 후 다툼도 많았고 원망도 많았지만 다른 생각은 꿈에서조차 하여본 일이 없었다. 자기로서는 남편의 지향을 전혀 돌려세울수 없다는것을 깨닫게 되자 더는 다투지도 않았다. 공연한 가정불화를 거듭 일으키는것은 부질없는 일이였다. 남편이 새로운 기밀방법을 착상하게 된 다음부터는 점차 그의 연구사업에 관심을 돌리였다. 참말로 그의 착상이 현실적으로 성공을 하게 된다면 유압공학에서 어떤 전변을 가져오게 되는가를 알았다. 그것을 위하여 남편은 생명의 위험까지를 무릅쓰고 실험을 단행했다. 나라의 과학발전을 위해 헌신하는 그런 남편을 배신하라고 이 딸에게 권고하다니?!…

어머니는 딸의 시선을 피하여 삑 돌아앉아서 자꾸만 한숨을 쉬였다.

민옥은 자기 방으로 건너갔다. 한때 자기네가 신혼생활을 하던 그 방이였다. 그는 전등도 켜지 않고 침대에 쓰러지듯 누워버렸다. 친정부모들을 생활의 기둥처럼 믿고 사흘이 멀다하게 찾아오던 지난날이 되새겨졌다. 지금에 와서 보니 그 기둥은 좀이 쓸대로 쓸어서 잘못 의지하다가는 여지없이 나자빠질수 있는 그런것이 아닌지… 그런줄을 모르고 남편보다 부모들을 더 의지하고 살아온 나는 얼마나 어리석었던가. 아버지의 말이면 무조건 옳은것으로 여겨왔다. 안일한 생활태도와 남편의 과학적지향에 대한 불만이 나의 머리속에 자라난것이 어느 정도는 부모들의 영향이 아니였을가? 다 자란 자식이 자기의 잘못을 부모의 탓으로 밀어붙이는것은 도리에 어긋나는 처사일것이다. 자기로서의 견해와 판단력을 못 가진 부실한 자식의 변명일것이다. 나의 그릇된 사고방식은 어디까지나 자신의 불찰이다.

민옥은 잠들지 못하고 뒤채다가 새벽에야 잠이 들었다.

이튿날 아침 늦잠을 깬 그는 세면을 하고 부모들의 방으로 건너갔다. 어머니가 밥상을 챙겨놓고 기다리고있었다.

《아버지는 어데 갔어요?》

《출근을 했다. 무슨 잠을 그렇게 자니?》

무심히 시계를 보니 8시가 가까와오고있었다.

어머니가 밥상우에 씌웠던 흰 보자기를 벗기였다. 밥상우에는 외국제 고기통졸임들과 음료통졸임이 여러개 올랐다. 민옥은 의아한 눈길로 통졸임들을 가리키며 물었다.

《이건 웬거예요?》

《어제 저녁에 왔던 그 사람이 가져왔더구나.》

어머니는 귤물통 하나를 집어들고 뚜껑을 따서 딸에게 주었다.

《난 아까 맛을 보았다. 얼마나 향기롭고 시원한지 모르겠더라.》

민옥은 귤물통을 바라보았다. 해외출장소 책임자라는 사람의 손에 들려있던 두툼한 려행용가방이 생각났다. 가방속에는 무엇인가 많았었다. 그는 낮에 아버지로부터 비판을 받고 뉘우치는바가 많아서 집에까지 찾아왔다고 말했었다. 그러나 그것은 거짓이였고 찾아온 속심은 달랐다.

어머니는 느슨한 웃음을 지으며 은근한 어조로 다시 말했다.

《그 사람이 어제 밤 돌아갈 때 나한테 봉투 하나를 쥐여주더구나. 간 다음에 속을 뽑아보니 외화가 들어있지 않겠니. 인사를 차릴줄 아는 사람이더라.》

《아버지도 그걸 알고있어요?》

《오늘 아침 보여드렸다. 그랬더니 막 욕을 하더라만… 어쩌겠니. 가져온거야 받아야지.》

민옥은 어머니가 받은 그 외화가 어떻게 생긴것인지를 어렵지 않게 추리했다. 해외출장소 책임자는 무엇인가 양보하면서 상대로부터 사례금 아니, 뢰물을 받았을것이다. 그 사례금의 일부가 어머니의 손으로 흘러들었다. 한쪽에서는 나라의 부강을 위해 자신의 모든것을 희생시키면서 지어는 자기의 생명까지를 바칠 각오를 가지고 과학을 탐구하고있는데 다른 한쪽에서는 나라의 재부로 부정거래를 하며 제 주머니를 채우는 행위가 벌어지고있다. 이 얼마나 심각한 대조인가? 자기의 가장 가까운 사람들에게서 두 극단을 보게 되니 참으로 형용 못할 심정이였다. 밥술을 멈춘채 눈물을 머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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