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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소설 평양은 선언한다 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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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강산
댓글 0건 조회 2,212회 작성일 21-07-11 0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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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이튿날 오후 전연으로 나가는것이 승인되였다.

류한무는 손녀와 함께 군용승용차에 몸을 싣고 전연중대로 향하였다. 련대정치위원과 전연중대에서 안내하러 온 정치지도원이 그들과 동행하였다. 뒤좌석에는 정치위원과 류한무, 성희가 앉고 앞좌석 운전사옆에는 정치지도원이 앉았다.

성희는 달리는 차안에서 앞좌석의 정치지도원때문에 마음을 쓰게 되였다. 그는 렬차에서 우연히 만나 이야기까지 나누어본 중위였던것이다. 정치위원이 객실로 들어와 기쁜 소식을 전하고 따라들어온 중위를 소개하였을 때 그는 격식을 차려 차렷자세를 취하며 《정치지도원 중위 오영준!》 하고 군대식으로 할아버지한테 인사하고는 구면이여서 반색을 띠는 성희한테는 눈길만 흘깃 돌렸을뿐이였다.

그리고 차에 오를 때에는 못마땅한 눈길로 처녀의 목인가 어딘가를 빤히 여겨보는것같더니 외면하였다. 도대체 무엇이 언짢은가?… 엄한 상관앞에서 알은체한것에 기분이 상했는가?…

성희는 중위한테 닭을 무사히 가져왔는지, 최순남이라는 병사는 건강한지 묻고싶은것들도 있었지만 눈살이 꼿꼿해서 잠자코 있었다. 중위도 내내 앞쪽만 내다보고있었다. 그리하여 령길을 치달아오르는 차안에서는 이따금 할아버지와 정치위원사이에만 말들이 오고갔다.

《전쟁때에는 여기가 이렇지 않았겠지요?》

《예… 나무 한그루 없었습니다. 미군포병의 쏘구역이였으니까요. 바람이 불면 재가루만 날렸습니다. 전사들은 여기를 <아스피린고개>라고 했지요.》

《아스피린?…》

《쏘구역에서는 어물거리지 말고 냅다 뛰여서 빨리 통과해야 되니까 땀을 흘리게 되지요. 감기에 걸려 아스피린을 먹었을 때처럼…》

《헛허허… 비슷한 소리입니다.》

《이 <아스피린고개>가 이렇게 울창한 수림지대로 되다니…》

《세월이 흘렀지요…》

류한무는 한숨을 내쉬였다.

《예…》

중대에 도착한 할아버지는 전연초병들의 떠들썩한 환영속에 그들과 인사를 나누고 큰폭의 공화국기발을 중대장에게 넘겨주었다. 날파람있게 생긴 전연중대장은 손님들을 데리고 감시소로 올라가 중앙분계선 저쪽의 콩크리트장벽이며 적고지와 릉선들을 가리키며 적군의 배치상태와 화력망, 최근의 움직임에 대하여 설명해주었다. 할아버지는 그의 말을 듣다가 쌍안경으로 적진을 바라보더니 문득 격한 소리를 내뱉었다.

《저놈새끼들이??… 대낮에도 콩크리트장벽앞까지 나와 싸다니는구만! 음… 음… 두놈… 다섯놈…》

적들의 살기가 감시소안에까지 휩쓸어드는듯싶었다.

 

뒤쪽 정치위원옆에 서있던 성희는 저도 모르게 할아버지곁으로 나갔다. 할아버지는 손녀한테 쌍안경을 넘겨주며 너도 놈들을 봐야 한다고 일렀다. 두근거리는 가슴으로 쌍안경을 눈에 붙인 성희한테로 살벌한 전경이 확 안겨들었다. 눈이 내려 희끗희끗하면서도 재빛으로 얼룩진 마른 잡초덤불들의 거치른 파도, 죽어버린 풀넌출들이며 누데기쪼박 같은것이 수없이 걸려있는 해묵은 철조망의 흐름, 그우에 날아내리는 까마귀떼… 수풀속에서 차겁게 번뜩이는 철갑모들, 키가 난쟁이같은놈이 철조망 바로 뒤에까지 걸어나와 이쪽을 바라보다가 뒤따라온 두놈에게 무엇이라고 지껄였다. 난생 처음으로 적의 몰골을 보는 성희는 적개심과 협오감도 컸지만 호기심도 없지 않아 눈에서 쌍안경을 떼지 못하였다. 소설과 영화에서만 보아온 적의 실태를 지켜보는 처녀는 손등의 정맥이 파랗게 살아오르도록 쌍안경을 꽉 움켜잡았다. 철조망 바로 뒤에까지 나온 저놈들의 배후 콩크리트장벽이며 릉선들뒤에 숨어있을 수천수만의 병력과 그 썩 뒤 얕은 종심과 깊은 종심에서는 우리 신문과 방송이 계속 보도하고 폭로한대로 수만문의 각종 대포들과 핵탄두미싸일들, 핵배낭들, 형형색색의 최신예군용기들이 때를 기다리고있으리라고 생각하니 몸과 마음이 선뜩 얼어붙는듯 하였다.

철조망뒤에서 난쟁이같은놈이 이쪽을 향해 총을 겨누는것 같더니 그 총구, 시꺼먼 죽음의 구멍이 앞으로 확 다가왔다.

《아니?》 성희는 얼결에 탄식비슷한 소리를 내며 주춤 물러섰다. 할아버지가 돌아보고 정치위원이 어깨에 손을 부드럽게 얹으며 왜 그러느냐고 물었다.

《아니, 아무것도 아니예요. 저놈이 총을 쏘자고 했어요.》

처녀는 변명하듯이 황급히 대답하고는 얼굴이 화끈거려 정치위원옆에 서있는 중위를 흘깃 돌아보았다. 오영준은 무슨 생각을 하는지 눈을 지그시 내리뜨고있었다.

《안심하오. 저놈들이 어디다 대고 감히… 그따위 도발은 여기서는 거의 매일이다싶이 있소. 한달전에는 로케트포까지 쏘아대며 중앙분계선을 넘어 쳐들어오는걸 묵사발이 되게 답새겼소. 감히 어디다대고… 어쩌지 못하오.》 하고 정치위원이 말하였다.

하지만 그 위로의 말은 성희의 마음을 더욱 불안하게 만들었다. 한달전에 그렇게 한 놈들이 오늘이라고 못하겠는가. 이제라도 로케트포를 쏘며 그런 도발을 일으킨다면 할아버지 심장이 견디겠는가… 생각이 이런 곬으로 내달리자 마음이 조마조마해지며 여기를 빨리 뜨고싶은 생각까지 들었다.

할아버지는 손녀의 심정은 전혀 눈치채지 못하고 련대장시절의 젊음과 기백이 되살아난듯 중대장과 함께 감시구를 통해 적고지들을 바라보며 적군의 배치상태며 화력조직, 아군의 교차화력, 보포협동 등에 대하여 전쟁경험을 섞어가며 떠들썩하게 이야기하였다. 성희는 할아버지의 그런 모습에 불안감이 좀 가라앉기도 하였다.

저녁식사가 끝난 다음 소대병실에서 로병을 환영하는 련환모임이 있었다.

류한무가 주체40(1951)년 가을 이 계선에서 벌어졌던 치렬한 방어전의 나날에 있은 갱도전, 야간습격전투, 저격수활동, 반포투쟁 등 전투경험들을 구수하게 이야기하였다. 그리고 성희가 청년군인들의 박수갈채에 떠받들려 일어나 수집음에 홍조를 띠며 웅장화려하게 일떠서는 수도의 건설모습을 이야기하였다. 처녀는 새로 건설된 기념비적건축물들에 대하여 말하고는 하나의 도시맞잡이인 광복거리의 규모며 새 살림집들의 내부구조를 상세하게 설명한 다음 격정에 떨리는 목소리로 초병동지들이 조국의 방선을 믿음직하게 지켜주고있기때문에 우리 수도시민들은 마음편히 행복을 한껏 누리며 살고있다, 초병동지들 고마와요 하고 말하였다.

성희의 이야기는 청년군인들한테서 뜨거운 감명을 불러일으켰다. 터져오르는 박수소리에 병실이 떠나가는듯… 그다음 노래들을 불렀다. 모두 목소리를 합쳐 합창을 부르기도 하고 군인들의 요청에 못이겨 성희는 물론 할아버지도 노래를 불렀다. 련환모임이 절정에 올랐을 때 정치지도원 오영준중위가 기타를 들고 최순남이라는 전사와 함께 나섰다.

중위가 익숙한 솜씨로 기타줄을 튕기자 박력이 있으면서도 서정적인 선률이 구성지게 울려나왔다. 리수복영웅과 얼굴모색이 다르지만 어딘지 모르게 그의 신대원시절을 련상시키는 그 병사는 나직한 저음으로 노래를 떼였다. 그것은 노래라기보다 절절한 속삭임이고 심정토로인듯싶었다.

 

이제는 옛전호에 탄피도 삭았으리

고지엔 산딸기가 빨갛게 익었으리

그러나 잊지 마시라 그 열매 드리운곳에

그땅에 묻혀있는 탄피를 탄피를

 

오영준중위는 머리를 수굿하고 여러 손가락으로 기타줄들을 열정적으로 두드려대고 최순남은 터져오르는 분산화음에 취한듯 얼굴이 벌개져 눈을 빛내이며 목청껏 노래불렀다. 몇몇 전사들이 함께 불렀다.

 

땀배인 군복속에 전사가 간직한것

어머니 편지인가 마라초쌈지인가

전사는 안고 산다네 가슴속 깊은곳에

소중히 안아지킨 조국을 조국을…

 

성희는 사회주의조국의 방선을 지켜선 현세대병사들의 소박하고 깨끗한 심정이며 지난 전쟁에서 조국을 지켜낸 로병들에 대한 그들의 존경심이 가슴뜨겁게 안겨와 저도 모르게 할아버지를 돌아보았다. 노래에 심취된 할아버지의 눈굽에서 뜨거운것이 끓고있었다.

련환모임이 끝나자 정치위원은 련대지휘부로 올라가고 류한무는 하루밤 병사들과 함께 자보기 위하여 손녀와 함께 소대에 남았다. 정치지도원 오영준중위도 남았다.

취침시간이 되자 초병들은 군복을 벗지 못하고 신발도 신은채로 누웠다. 류한무와 오영준중위도 신발을 신은채로 구석쪽에 병사들과 나란히 누웠다. 병사들은 련대의 첫련대장이 자기네와 한자리에 누워 잔다는 기쁨과 행복감으로 하여 인차 잠들지 못하고 설레이며 저희들끼리 무엇이라고 소곤소곤 속삭이기도 하였다. 정치지도원이 두번이나 자라고 주의를 주어서야 잠잠해졌다.

성희는 할아버지한테 약을 드리고는 소대장실옆방에 따로 마련된 자리로 돌아왔으나 잠들지 못하고 위생가방안의 주사기통이며 갖가지 구급약봉지들을 꺼내놓고 다시 정리하여 넣기 시작하였다. 그때 최순남이라는 병사가 끓인물이 든 보온병을 들고 들어왔다. 성희는 반겨 웃으며 자리를 권하고는 그가 부른 노래며 이것저것 여러가지 이야기를 나누다가 정치지도원이 고향어머니가 보낸 닭을 무사히 가져왔더냐고 물었다.

병사는 무슨 큰 군사비밀이라도 루설된듯 놀라며 의아한 눈빛으로 그를 지켜보았다.

《그걸 어떻게 압니까?》 가까이에서 보니 최순남은 귀밑에 보슴털이 보르르한 애숭이였다.

《정치지도원동지가 말했지요.》

《이전부터 아는 사이나요?》

《아니… 여기로 올 때 렬차에서 좀 같이 왔어요.》

《예…》

《닭을 무사히 가져왔어요?》

《예! 저기 닭사에 있어요.》

《도중에 죽지 않았군요. 아니 그 먼길에…》

《우리 정치지도원동진 특별한 사람이야요.》 병사는 친형을 자랑하는 소년처럼 좀 우쭐해져서 말했다.

《뭐가 특출해요! 보니 그저 그렇던데…》

《챠- 이거, 한두번 봐서 알아요? 보통사람이 아니야요. 군관이 위신없이 닭을 배낭에 넣어가지고 수백리길을 온것만 봐요. 죽이지도 않고… 우리 엄마 심정을 생각해서… 나를 생각해서 그랬지요. 설명절때마다 전체 전사들 고향에 편지를 써요. 부모들한테… 어떤 땐 리당비서들한테도… 그래서 모든 부모들과 다 편지거래를 가지고있어요. 자기생각은 꼬물만치도 안해요. 전사들을 위해… 남을 위해 사는 사람이야요. 절대 아는척하지 말아요. 성을 내요…》

성희는 웬일인지 저도 모르게 한숨이 호-나갔다.

《알겠어요.》

최순남은 얼른 일어나 나갔다. 성희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할아버지가 념려되여 복도로 나갔으며 좀 망설이다가 기척소리를 내지 않고 문을 방싯 열고는 병실안을 들여다보았다. 병사들은 모두 잠들었는데 할아버지는 허리를 구부정하고 통로를 따라 움직이며 차버린 모포를 바로 덮어주는가 하면 여미여주고있는것이였다. 문곁의 보이지 않는 구석쪽에서 누군가의 속삭임소리가 났다.

《그만… 그만하고 쉬라요.》

《신들을 신고 자니까 번열이 나서 자꾸 차버리는구먼…》

《신대원들입니다. 이제 습관이 되면 일없어요.》 정치지도원의 목소리였다.

성희는 문을 소리없이 닫아주고는 자리로 돌아왔다. 신발을 신은채로 침대에 모로 꼬부리고 누웠지만 잠이 오지 않았다. 발이 거북스럽고 화끈거렸다.

(전쟁때도 아니고 평화시기인데 내내 저렇게 신발을 벗지 못하는가?… 나야 손님인데…)

성희는 일어나 신발을 벗으려다가 가책이 들어 도로 누웠다. 잠이 오지 않았다. 잠을 청하려고 눈을 꼭 감고있다가 모포를 머리우에까지 당겨쓰고는 아무 생각도 하지 않으려고 애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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