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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소설 평양은 선언한다 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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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강산
댓글 0건 조회 4,109회 작성일 21-06-26 13: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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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튿날아침 포멘꼬에게서 전화가 왔다. 하루 휴식하게 되였으니 자유롭게 유쾌한 시간을 보내라는것이였다. 두시간후 뜻밖에도 칼 웨베르가 나타나 모처럼 만났고 휴일까지 차례졌는데 어디나 교외 멀리로 나가 숲속의 신선한 공기를 마시며 산책할 의향이 없느냐고 물었다.

그들은 웨베르가 누구한테서인가 빌려온 자가용차를 타고 아르한겔쓰끄촌으로 나가 숲속으로 들어갔다.

로씨야대륙에서 흔히 볼수 있는 숲… 해묵은 락엽들이 쌓이고쌓여 발이 푹푹 빠지는 펑퍼짐하며 끝간데 없는 대지에 뿌리를 박고 대들보처럼 미끈하게 자라오른 락엽송과 봇나무들의 울울창창한 수림, 머리가 찡 저려들도록 청신한 공기, 괴괴한 정적, 나무가지들사이로 각광처럼 쏟아져내리는 여러갈래의 해빛, 소리없이 한잎, 두잎 반짝거리며 날아내리는 노란 락엽들… 대도시 가까이에 이런 수림이 있다는것이 놀라왔다. 도시가 숲을 밀어내며 공격해오다가 대수림의 무궁한 종심에 기가 질려 주저앉아버린듯싶었다.

두사람은 해볕이 괜찮은 림간의 공지 잔디밭에 벌렁 누워 이윽토록 제나름의 상념에 잠겨있다가 일어나앉아 수진이 가져온 인삼주를 몇잔씩 나누고 그사이 살아온 생활경위며 가정들에 대하여 이야기하였다. 그러다가 숲속을 거닐며 끝없는 정치담을 하였다.

《여보게, 자네는 왜 론쟁에서 한마디 말도 안하는가? 왜 도사리고만 있는가?》

《도사리는게 아닐세.》

《조국에서 시끄러운 론쟁에 끼여들지 말라는 권고라도 받고 왔는가?》

《아니… 나는 론쟁에 나서 열을 올리기보다 분격을 누르고 자중해서 진지하게 듣고 분석해보는 편을 택하였네. 평양을 떠날 때 이번 려행의 목적중 하나를 <개편>의 실상을 깊이… 깊이 파악하는데 두었으니까.…》

《에-익, 하기야 그렇지, 저런 속물들한테 열을 냈댔자 무슨 소용이겠나.》

《칼, 어제 우와로브를 잘 조겨댔네. 너무 통쾌해 손바닥에 불이 일도록 박수를 쳤네.》

《고맙네….》

《그자는 서방의 앞잡이가 다 됐더군… 다 됐는지 원래 앞잡이인지…》

《개자식, 더 두들겨패는건데… 밤에 잠자리에 누우니 한가지 중요한 문제를 빼놓고 조겨댔다는 아쉬운 생각이 들었네. 그 사회제도, 정치풍토가 어떤것인가 하는건 예술을 보면 직관적으로 느낄수 있다, 알수 있다, 당신네 나라에서만도 고리끼, 마야꼽쓰끼, 파제예브, 아. 똘스또이, 블로크와 쇼쓰따꼬위치, 하챠뚜랸, 쎄도이, 울라노바, 레뻬찐쓰까야, 무히나의 조각… 인간을 아름답고 고상한 세계에로 인도하는 얼마나 많은 예술을 창조해냈는가. 그러나 서방은 무엇을 조작해냈는가. 부패, 타락, 퇴페의 고취, 인간을 동물성에로 끌어내리는것들을 얼마나 많이… 이렇게 조겨대는건데… 우와로브, 로씨야돼지새끼… 조선에는 저런놈이 없나?》

《없네…》

《왜 없겠나? 어디 숨어있겠지…》

《내 보기엔 숨어있는놈도 없는것 같네.》

《도이췰란드에는 수두룩하네. 저런놈들이 나올수 있도록 허용했거든. 허용했어.》

《누가… 왜 허용했나?》

《우리 집권당인 사회통일당이… 인권… 자유… 이런 공세에 하나하나 양보하다가 아주 막을수 없게 됐어. 아주… 홍수처럼 밀려들었지. 우리 집안에도 돼지꼬리가 나온 놈팽이가 하나 생겼어. 쩍하면 론쟁이고 말다툼이지. 안해는 심장병이 생겨 얼굴이 퉁퉁 부어났네. 돼지꼬리가 나온놈은 서쪽의 방송, 텔레비, 눅거리잡지들에 빠져있더니 제법 항의까지 하기 시작했네. 유엔의 인권선언을 보라. 왜 구속하는가? 선의 자유만 허용하고 악의 자유를 허용하지 않는건 자유가 아니다. 사람은 스스로 량심적으로 판단하고 선택할 능력이 있다. 사람이 무엇인지 아는가? 인권이 무엇인지 아는가? 사회통일당정부는 강권으로, 억지로 개인생활까지 간섭하며 악을 억제하기때문에 그 반발로 방탕에 대한 호기심도 생기고 악행에로 내달리는것이다. 공산주의자들은 사람이 무엇인지 모른다는거네… 기가 막혀서… 때려도 굴복하지 않네. 제법이 아닌가. 돼지꼬리가 달린 녀석은 같은 또래들의 동정, 지지, 고무를 받아 더 못되여지고 련대감 비슷한것이 움트고 거기서 추세란것이 생겨났네. 추세, 사조, 흐름… 이렇게 되니 막기가 백배로 어려워졌네. 추세… 이건 제일 무서운 징조네.》

《여보게 웨베르, 우리 나라에서도 자유주의와의 투쟁이 오래동안 근기있게 진행되여 여러 기회에 자유란 무엇인가, 인권과 자유, 자유와 인권… 이 문제에 대해 여러모로 생각해봤네. 서방이 바로 이 문제로 우리를 계속 공격해왔으니 생각하지 않을수 없었지. 타락의 자유, 악의 자유까지 허용하는건 인간에 대한 무책임성, 우선 인도적이 못되네. 제한이 없는 절대적인 자유란 인간을 로동력으로만 보는 놈들의 비인간성을 자체폭로하는 유인수단이네. 자식을 훌륭한 사람으로 키울 욕망이 강한 부모들일수록 자식에 대한 통제가 강하네.

이걸 인권문제로 거는 작자가 있다면 바보가 아니면 불순한놈이지. 카톨릭교를 비롯한 모든 종교에는 계률이란것이 있고 사회에는 도덕규범이 있고 국가에는 법적인 규제가 있네. 범죄의 경중에 따라 처벌하는 형법도 있고… 이건 무엇을 말하는가? 웨베르, 자유란 절대로 무제한한것이 되여서는 안되며 높은 리성의 통제밑에 있어야 한다. 나는 이렇게 주장하고싶네. 인간의 사상의식의 발전정도에 따라, 도덕성의 완성정도에 따라 그 허용범위가 서서히 넓어져야 한다고 생각하네.》

《흠… 미성년에게 성행위를 허용해선 안되지.》

《74년이라고 생각되는데… 쏘련에서 추방되여 미국에 망명한 작가 쏠레니찐까지도 미국사회에서 4년 살아보고 서구자유주의사회를 탄핵하지 않았는가. 하바드대학에서 한 그 소문난 강연에서 말이야. 병적으로 부패한 사회라고…》

《휴- 그런 일이 있었지. 한데 우리 민주도이췰란드는 다 허물어지게 되였네. 맑스, 엥겔스의 조국이… 사회통일당의 새 지도부가 남의 지령에 따라 다당제를 도입한 덕택에… 그리스도교민주동맹이란것이 생겨 세력을 확장하더니 인민들의 과반수를 쟁취했네. 어렵지 않게. 그리스도교민주주의를 선전하고 인민들의 불만, 40만 외국군대의 근 반세기동안의 장기주둔으로 생긴 반감을 악용하여 민족주의를 고취했네. 패전민족의 심리에 민족주의를 먹여 반쏘반공으로 돌려세우기란 헐한 일이였지. 다원주의, 다당제가 무엇을 가져왔나!》

《여보게 칼, 호네케르동지는 <개편>을 달가와하지 않은것 같은데…》

《반대했지. 견결히…》

《어째 좌절됐는가?》

《<개편>추동자들의 책략이네. 우리 당 상층부에는 대국을 사대하는자들이 태반이였네. 그런자들이… 그런 추종자들이… 당내에서 발언권이 강하고 실권을 장악하고있었네.》

《어째 그렇게 됐는가?》

《지금 생각해보면 간부사업에 문제가 있었어. 간부사업에… 우리 종합대학출신보다 대국의 종합대학출신들을 더 믿어 당의 기본진지들을 맡겼지. 젠장, 화근은 여기에 있었네. 호네케르는 정의감만 살아있는 늙은이였네. 그를 밀어내고 그자들은 남이 하라는대로 다 했네. 다원주의… 다당제…》

《자네는 밀려나지 않았군, 용케…》

《어쨌든 쏘련류학생이거든. 그리고 경제실무일군이니 중시하지 않았겠지… 그러나 이제 정치적견해때문에 밀려날거네.》

《그렇게야 되겠는가…》

《아니, 도이췰란드는 험한판이네. 한달전에 호네케르를 만났네. 별장에서 병약한 몸으로 부인과 함께 쓸쓸하게 지내더군. 배신자들의 눈을 피해 몰래 찾아갔지. 정말 기뻐하더군. 오래동안 이야기했네. 수정주의와 <개편>을 배척한김일성동지의 선견지명에 대해 거듭 말했네. 벌써 반세기전부터 대국에 대한 사대주의를 반대하고 주체를 세운데 대해 현명하고 위대하다고, 도이췰란드당은 그렇지 못했다고 눈물이 그렁해서 말했네. 자신이 평양에 갔을 때와김일성동지께서 베를린에 오셨을 때 더 깊이 허심탄회한 의견을 나누지 못한걸 몹시 후회했네.》

《실각됐으니까 생각이 많으실테지…》

《개인적으로는 정의롭고 청렴하고 소박한 로인이네. 호네케르뿐아니라 우리 도이췰란드에서는김일성동지를 만나본 사람은 누구나 그 인상을잊지 못해하네. 나도 84년 베를린에 오셨을 때 공화국궁전 앞광장에서 가까이에서 뵈웠는데 첫눈에 출중한위인이라는것이 알렸네. 에리히 호네케르가 일찍부터김일성동지의 자주로선을 따랐더라면 이런 비극을 당하지 않았을거네.》

《비극하고는 너무나도 큰 참극이고 재난이 아닌가.》

《여기 와보니 이 대국도 모르겠어. 다 된것 같네. 화김에 우와로브를 족쳐댔지. 그놈이나 때려 무슨 소용인가. 당이 통채로 변질됐는데… 레닌의 당이… 아하… 여보게, 준비위원회가 전체 졸업생들에게 보내는 무슨 공개서한인가 호소문인가 하는걸 채택하려는것 같네. 우리들의 련맹으로 된…》

《그건 무엇하려?》

《인테리들속에서 저항이 있으니까 <개편>을 지지해나서라고 호소하자는거겠지. 우와로브가 기자회견에도 나서고 텔레비에도 출연하겠지.》

《허, 대단하군.…》

《이건 일종의 모략이네. 나는 우와로브의 출세의 도구로 리용될수 없네. 도이췰란드인 칼 웨베르는…》

《모략을 꾸미는게 사실인가?》

《로씨야친구들이 수군거리는 소리를 들었네.》

《절대 안되네. 자기 이름을 팔아 사람들을 부정의의 길로 사촉할순 없네.》

《나는 래일 비행기편으로 가버리겠네…》

《뽀이코트인가?》

《…》

바람소리가 울부짖었다. 키높은 나무들에서 락엽들이 와스스 허물어져내렸다. 그는 아름드리나무에 기대여 쓸쓸한 눈길로 재빛하늘에서 을씨년스럽게 흩날리는 락엽들을 이윽토록 쳐다보았다.

《아… 여보게… 엥겔스의 유명한 편지가 생각나네. 맑스가 서거했을 때 호보켄에 있는 조르게한테 보낸 편지말이네.…》

수진은 담배를 피워물었다.

《인류가 맑스의 머리만큼 키가 낮아졌다고 했던가…》

《그리고 중심이… 중심이 없어졌다고 했지… 중심이 말이네… 결정적인 시기에는 자연히 프랑스인, 로씨야인, 미국인, 도이췰란드인들이 찾아가 조언을 구하고 그때마다 완벽한 지식을 가진 천재만이 줄수 있는 명백하고 확고한 조언을 받던 그 중심이 없어졌다고… 그 말이 왜 이렇게 가슴을 치는가… 레닌, 쓰딸린의 서거후 이 나라에는 참된 후계자, 수령이 없었네. 이러나저러나간에 쏘련까지 허물어지면 그때는 끝장이네…》

《와보니 다 허물어지게 됐더군…》

《이건 극비네. 라옙쓰끼와 그의 동료들은 새 당을 조직하려는것 같네.》

《당을?!》

《그들의 배경에 큰 인물이 숨어있는것 같네.》

《아, 그래서 내내 침묵을 지켜왔군.…》

《그 침묵뒤에서 맹렬히 활동한것 같아. 각지에서 온 동창생들을 자기들의 조직에 흡수하려고…》

수진은 가슴이 뛰였다. 라옙쓰끼… 뚤라의 세습적인 무기제조공의 자손, 까르빠찌야에서 전사한 려단정치위원의 아들…

《안되네. 이젠 늦었어. 다 기울어진 대국의 붕괴를 누가, 누구들이 무슨 수로 멈춰세우는가? 허물어지면 깔려죽을수밖에…》

그들은 한시간가량이나 흩날리는 락엽들속을 거닐며 이야기를 나누다가 숲을 떠났다.

그날저녁, 식사전에 포멘꼬한테서 다시 전화가 왔다. 우와로브동지가 개인명의로 《모스크바》호텔호화식당에 식사를 차리니 늦지 말고 와달라는것이였다. 그리고는 거기 호텔의 식사는 중지시켰노라고 꼬리를 달았다.

류수진은 마음이 썩 내키지 않아 알려준 시간보다 약간 늦어서 《모스크바》호텔로 갔다. 여느때없이 마음이 긴장되였다.

포멘꼬의 안내로 식당에 들어선 그는 첫눈에 벌써 모든것을 알아맞혔다. 저녁식사에 초청된것은 동창회참가자 전원이 아니였는데 그들중에는 《개편》반대자들이 태반이였다. 《개편》지지자들은 불과 몇명이였다. 며칠간의 론쟁에서 날카로와진 감정들을 가라앉히고 다시 화목을 도모하여 동창회를 의도한데로 끌고가자는 시도가 분명하였다.

칼 웨베르는 오지 않았다. 그러나 라옙쓰끼는 왔다. 웨베르의 말이 생각나 라옙쓰끼를 새로운 눈으로 여겨보게 되였다. 해쓱한 얼굴, 코밑에 더부룩한 밤빛수염에도 서슬이 돋힌듯 한 인상… 그가 돋보였다.

모두 식탁들에 둘러앉고 접대원이 잔들에 술을 붓기 시작하자 우와로브는 무엇이 그리 유쾌한지 벙글거리며 처음에는 갈색머리 접대원처녀에게 다음에는 동창생들에게 실없는 롱말을 건네는것이였다.

그는 정치론쟁이란 건강에도 해로운 백해무익한것이라고 하며 맞은편 식탁에 앉아있는 라옙쓰끼쪽을 턱짓으로 가리키며 자기는 지난밤 저 독설가때문에 잠이 오지 않아 혼났다, 19세기라면 결투라도 청할게 아닌가고 껄껄 웃어댔는데 그런 모습에서는 호협한 성품까지 느껴지는듯 하였다. 우와로브는 끊임없이 떠들었다. 학창시절의 우정을 상기시키며 우리가 정치론쟁을 하자고 모였는가, 언제나 사람들을 적대적인 량극으로 분렬시키고 증오와 류혈을 동반하는 정치여, 갈데로 가라고 소리치며 호탕하게 웃어대였다.

모두 그한테 적당히 응대하며 마시고 먹고, 먹고 마시는 일을 부지런히 하였다.

류수진은 약간씩 마시며 곁에 앉은 우크라이나 친구하고 체르노빌원자력발전소의 사건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악사석에서 음악이 울리자 춤을 추는 사람들도 생겼다. 술, 음악, 유쾌한 롱말들… 어느덧 사람들은 취흥에 들떠 말이 많아지고 목소리들이 높아지고 편집증이 발작한듯 저마다 한가지 화제에 집착하여 어슷비슷한 소리들을 되풀이하였다.

류수진도 취기에 얼굴이 벌겋게 되여 우크라이나친구를 붙잡고 체르노빌의 참사에 대한 이야기를 계속 나누는데 라옙쓰끼가 포도주병을 들고 수진에게로 찾아와 잔을 찧자고 하였다. 그는 비여있는 옆자리에 앉았다. 말을 건네였다.

《여보게, 이번에 좋지 못한것만… 착잡한 론쟁과 추태만 보여줘서 안됐네.》

《리해하네…》

《수진동무, 자네가 동창회에 와서 본것, 그것이 전부라고만 생각하지 말아주게. 로씨야에 저런 작자들만 있는건 아니네.》

그는 우와로브쪽을 흘깃 돌아보며 말했다.

《여보게 친구, 뻬뜨랄까의 시가 생각나는가?… 해 짧고 구름 많은 나라에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사나이들이 태여나더라… 미구에 수습될것이네.》

《충심으로… 바라네… 한때 인류가 희망의 등대로 바라보았던 레닌의 조국에서 이게 무슨짓인가?!》

《레닌이 창건하고 이끌었던 당도 례외로 될수 없었지… 당이 변질하여 관료화되니 인민들속에 불만이 쌓이고 그 불만을 악용하여 반공민주주의세력들이 들고일어났네. <개편>바람을 타고… 저 우와로브 같은자들이… 여보게, 조선은 어떤가?》

《우리 나라는 안정되여있네.》

《부럽군, 우정으로 터놓고 말하는건데 여보게, 관료주의도 없나?》

《내 말을 믿으라구. 지난날 개별적인 관료주의자들은 있었네. 우리 당은 창건이래 반세기동안 인덕정치를 실시하며 관료주의를 반대해 투쟁해왔네.》

《당신네도 자유민주주의바람을 철저히 막지 않았더라면 어떻게 됐을지 모르네. 그런 의미에서김일성동지의 선견지명과 로련한 정치에 대해 감탄하지 않을수 없네.》

《여보게 라옙쓰끼, 자네는 우리에 대해 너무 모르고있는것 같네…》

《모른다구?! 모를수 있지. 한번 가볼가 하는 생각도 없지 않네.》

갑자기 저쪽에서 그릇들이 부딪치고 숟가락같은것들이 방바닥에 떨어지는 소리가 나서 돌아보니 우와로브가 주정을 하는것인지 뭉툭한 손가락으로 라옙쓰끼를 가리키며 부르짖었다.

《여보게- 독설가선생, 거기서 아시아친구를 붙잡고 뭘하는가. 우와로브교수를 찬미하고있나?!》

라옙쓰끼는 가슴이 선뜩 얼어들도록 랭기를 풍기는 눈빛으로 그를 노려보았다.

《라옙쓰끼- 좌석의 분위기에… 시대의 흐름에 역행하지 말라구!》

라옙쓰끼는 얼굴이 백지장처럼 되여 천천히 일어나더니 그쪽으로 다가갔다. 우와로브는 시퍼런 불꽃이 날리는듯 한 눈으로 그를 지켜보았다.

《어쩌자는건가?!》

《…》

《까잔에는 우리 사람들이 없을줄 알어? 우정으로 충고할 때 자중하라구!》

라옙쓰끼의 입에서 휘파람같은 소리가 새여나왔다.

《고맙소… 누구처럼 제거해버린다는거겠소? 우리는 리지야 꾸즈네쪼바를 잊지 않고있소.》

우와로브는 배포유하게 벙글거렸다.

《민감한걸… 제법이야… 그런데 여기에 그 녀자는 도대체 무슨 상관인가?》

《가정사정으로 늦어진다고 했는데 왜 아직 나타나지 않소?》

《그걸 우리가 어떻게 알아?》 하고 포멘꼬가 끼여들었다. 험악한 얼굴이였다.

《애당초 알리지도 않았지? 동창생들앞에서 무엇인가 폭로되는것이 싫어… 살인자!》

우와로브는 주먹으로 식탁을 내리치며 《배신자!》 하고 씹어뱉았다. 포멘꼬는 빈술병을 머리우에 쳐들어 라옙쓰끼한테 던질듯이 부들부들 떨며 누구를, 감히 누구를 욕하느냐고 소리치고 그런 광란속에서 접대원처녀는 비명을 지르며 달려나가고 제일 아래쪽 식탁의 한 동창생친구는 얼이 나간 사람처럼 우리는 마피아의 악당들보다도 못하다고 부르짖으며 얼굴을 싸쥐였다.

바로 그때였다.

출입문이 활짝 열리며 자그마한 백발의 녀인이 들어섰다. 상복을 입은 전세기의 미망인처럼 보이는 검은 옷차림의 그 녀인은 얼굴이 초췌하였으나 도고한 표정으로 방안을 둘러보았다.

모두 놀라서 녀인을 돌아보았다. 그리고는 녀인에게서 풍겨오는 가슴섬찍한 기운에 선 사람들은 선채로, 앉은 사람들은 앉은채로 굳어져버렸다. 포멘꼬의 머리우에 쳐들린 술병만이 아래로 스르르 미끄러져내릴뿐…

《리자-》

《리지야-》

일시에 터져오르는 환성과 함께 라옙쓰끼를 비롯한 여러명의 동창생들이 달려나가 리지야 꾸즈네쪼바를 에워쌌다. 격정에 넘친 부름소리들, 떠들썩한 인사말들… 라옙쓰끼가 그 녀자를 이끌고 뒤켠에 서있는 류수진의 앞으로 다가와 이 조선사람이 누구인지 알겠느냐고 물었다.

리지야 꾸즈네쪼바는 물기어린 눈을 슴벅이며 수진을 뚫어지게 지켜보다가 매여달릴듯이 와락 다가서 손을 잡았다. 그 녀자의 입술에서 신음비슷한 소리가 나직이 흘러나왔다.

《아…》

수진은 그 녀자의 얼굴에서 30여년전, 꽃나이적 리자의 모색을 찾아보려고 애쓰며 가냘프고 싸늘한 손을 잡아쥔채 놓을줄 몰랐다. 그 녀자의 손바닥에서 전률이 느껴졌다.

《어째서 이렇게 늦었소?》

《신문에서 소식을 읽고 달려왔어요. 동무들을 만나고싶어….》

《리자, 초청장을 보내지 않았단 말이요?》

리지야 꾸즈네쪼바는 대답하지 않았다. 얼굴에 원망의 빛이 어릴뿐…

모두 우와로브의 식탁쪽을 돌아보았다. 어디로 사라졌는지 거기에는 우와로브도 포멘꼬도 없었다. 류수진과 라옙쓰끼를 비롯한 동창생들은 리지야 꾸즈네쪼바를 식탁에 앉히고 그 녀자의 도착을 축하하여 떠들썩하게 축배를 들었다.

리지야는 타락한 녀자처럼 권하는 술을 거침없이 마셔버리군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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