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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소설 평양은 선언한다 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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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강산
댓글 0건 조회 4,442회 작성일 21-07-09 01: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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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평양ㅡ평강행 급행렬차는 어둠속으로 쏜살같이 내달렸다. 손님들이 잠든지 오래여 상급침대칸은 아늑하고 조용하였다.

성희가 드린 수면제의 효험때문인지 할아버지도 깊은 잠에 들었다.

할아버지를 따라 먼길에 나선 손녀는 잠들지 못하고 로인의 맥박도 자주 짚어보고 발치쪽 모포도 알뜰살뜰히 여미여주고는 차창곁에 오도카니 앉아 바깥을 하염없이 내다보았다. 이마에 흘러내린 몇오리 머리칼이 은실처럼 빛났다.

처녀는 정맥이 파랗게 살아오른 오동통한 주먹으로 턱을 고이고 차창밖으로 흘러가는 산간벽지의 밤풍경을 내다보기만 하였다. 이따금 산간역들의 빨갛고 파란 신호등불빛이 휙휙 날아지나가고 저멀리 어둠속에서 농장마을의 불빛들이 서서히 돌아가며 뒤로 흘러가버리고 차바퀴소리들이 높고 웅글게 울릴적마다 시내물의 희유스름한 흐름이 굽어보였다.

구역동원부장은 할아버지한테 련대가 살아있을뿐아니라 현대적무장으로 장비되여 여러 지방으로 전전하며 훈련도 받고 전투임무도 수행하다가 지금은 전쟁때 싸우던 계선에 전개되여 전연경계임무를 수행한다고 알려주었다.

할아버지는 잃었던 가족을 찾은 사람처럼 기쁨과 흥분에 겨워 떠날 차비를 서둘렀다.… 문득 평양역에 할아버지를 바래러 나왔던 엄마의 상심한 얼굴이 떠오르며 가슴이 못내 저려들었다.

성희는 어머니의 심정을 알면서도 기어코 떠나고말았다. 어찌하여 그랬던지 지금 생각해보면 송기선이라는 사람에 대한 감정이 애매하고 정돈되지 않았기때문이였다. 그가 싫으면서도 그 까닭을 딱히 짚어 말할수 없었다. 그는 속을 태우며 따라다니고 불같은 열정으로 생각해주는데… 누구보다도 살뜰하게 대해주고… 왜 이럴가… 공연한 자존심? 속이 못되여?… 엄마 말대로 그는 직업, 리상, 인물, 가정환경, 생활조건… 어디 하나 빠진데가 있는가. 그리고 아프리카항쟁투사들을 도왔다는 남다른 경력, 사람이 그런 거짓이야 꾸며대겠는가… 난 왜 이럴가?…

처녀는 이따금 한숨을 호ㅡ 내쉬는가 하면 저도 모르게 화끈 달아오른 뺨을 쓸어만지며 눈을 조용히 내리감았다. 어쨌든 엄마와 송기선의 《공세》가 없는 먼곳으로 간다고 생각하니 몸과 마음이 홀가분해졌다… 어느 산간역에서인가 렬차가 멎어서고 밖에서 왁작 떠들어대는 소리가 들려왔다.

성희는 어디까지 왔는가 하여 차창밖을 내다보다가 복도로 나가 조용조용 걸어서 차량의 출입문밖에 나가섰다. 랭기를 품은 상쾌한 바람이 얼굴을 스치며 머리속이 찡 저려났다. 천내라는 역이였다. 한 젊은 군관이 승강대에 서있고 예닐곱명의 늙은이, 젊은이, 아이들이 앞을 다투어 그의 손을 잡아쥐며 떠들썩하게 작별인사를 하였다.

《잘ㅡ가게.》

《편지하세요.》

《아저씨ㅡ 또 와ㅡ》

나이지숙한 어머니는 그의 손을 놓지 못하여 눈물이 그렁하여 부르짖었다.

《정치지도원ㅡ순남이를 부탁하네ㅡ때릴 일이 있으면 때리라구ㅡ 에미 이름으로, 그애는 애지중지 키워서 철이 없네. 때리고싶으면 머리만 내놓고 잔등이나 엉치나 아무데나 때려도 좋네…》

젊은 군관은 허리를 굽석거리며 큰소리로 웃어댔다.

《핫하하. 어머니, 걱정말아요. 우리 군대엔 때리는 법도 없거니와 잘ㅡ 해요. 모범군인인데요. 이제 진짜 리수복영웅처럼 되지 않나 두고보라요.》

《잘ㅡ 키워주게. 여보게 정치지도원ㅡ 장가갈 땐 우리 집에 와서 성례를 치르게ㅡ 부모님들을 대신해서 우리가 치르겠네ㅡ》

《어머니ㅡ 그럼 처녀까지 골라주십시오ㅡ》

《정말인가?ㅡ 어떤 처녀가 좋나?ㅡ》

《예ㅡ 새까만 눈이 두개만 배겨있으면 됩니다. 핫하하…》

그바람에 밑에 서있는 어른들은 유쾌하게 웃어대고 조무래기들은 깡충깡충 뛰여오르며 손벽을 쳤다.

어느덧 기차가 떠났다. 젊은 군관은 배웅나온 사람들에게 거수경례를 붙이고는 뒤로 서서히 멀어지는 그들을 향하여 손을 높이 들어 흔들었다. 성희는 출입문곁 차벽에 기대여서서 사람들의 존경과 사랑을 받는 이 젊은 군관은 어떤 사람일가 하는 호기심에 이끌려 그의 뒤모습만 지켜보았다. 팔에 렬차안내원의 완장을 두른 이쁘장한 처녀가 방긋 웃어보이며 차문을 닫으려 하자 군관은 얼른 돌아서 올라왔다. 군모채양그늘밑에 숨어있는 숱진 눈섭, 크지 않으나 서글서글하고 정기가 번쩍이는 눈, 길쑴한 얼굴, 목을 떠받든 령장에서 은빛으로 반짝이는 두개의 별…

《처녀동무, 어디까지 갑니까?》

성희는 려행중에 흔히 오갈수 있는 그 범상한 물음에 웬일인지 화닥 놀라 차벽에 붙어서게 되였다. 무엇이라고 대답해야 되겠는데 입술이 떨어지지 않았다. 중위는 재차 물었다. 처녀는 가까스로 할아버지하고 좀 어디 간다고 하였다.

《예…》

차량의 련결부에서 불어드는 바람결에 머리카락이 날리고 옷자락이 펄럭이였다.

젊은 중위는 흥심이 없는지 돌아서서 차창밖을 내다보았다.

밖에서 지나가는 빨간 신호등불빛때문인지 그의 한쪽 관자노리며 뺨, 목에 노을빛이 언뜻언뜻 어렸다. 성희도 돌아섰다. 그 순간 문득 뒤쪽에서 무엇인가 푸들쩍거리고 꼭꼭꼭… 하는 괴이쩍은 소리가 났다. 얼결에 돌아보았다. 중위의 발곁에 놓인 새 군대배낭이 살아움직이는듯 꿈틀거리고 그안에서 괴이한 소리가 흘러나왔다.

중위는 황급히 배낭을 들어올려 아구리를 열어보았는데 그안에서 볏이 시뻘건 수닭의 대가리가 불쑥 솟구쳐올라 두릿거리였다.

《어마…》

성희는 너무 놀라 저도 모르게 두손을 봉긋한 가슴앞에 모아쥐며 새된 소리를 내였다. 수닭은 인간세상의 무시무시한 속도며 차바퀴들의 울림소리에 기겁한듯 깃을 푸들쩍거리며 날아오르려고 발광하였다. 중위는 시무룩한 얼굴로 윤이 흐르는 닭의 목을 슬며시 잡아 안으로 밀어넣으며 중얼거리였다.

《친구, 진정하게나. 하루밤만 고생하면 되네. 이제 천하제일 명승절경을 보게 될거구. 새벽마다 자네가 목청을 뽑으면 병사들이 고향을 눈앞에 그려볼거네. 진정하라구. 용치… 용아…》

수탉은 그의 부드러운 목소리에 속이 가라앉은듯 잠자코 있었다. 중위는 공기가 통하도록 아구리를 느슨하게 조인 배낭을 안은채 미소어린 눈길을 처녀에게 흘깃 던졌다.

《부대로 가져가나요?》

성희는 너무 신기하고 재미나고 호기심에 끌려 저도 모르게 묻게 되였다.

《우리 부대에 알을 잘 낳는 암닭이 여러마리 있는데 이런 어른이 있어야 제격이지요. 이 어른이 이제 이른아침마다 꼬끼요ㅡ 하고 울면 우리 초병들은 고향땅의 평화로운 아침을 생각하지 않겠습니까.》

《정말…》

《수닭의 구성진 울음소리란 평화로운 아침을 상징하지요. …무력부에 볼 일이 있어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신대원네 집에 들렸댔는데 그 부모들이 선사했습니다.》

《아까 그 순남이라는?…》

《아 들었구만!…》 중위는 저으기 놀랐다.

《들어가시자요.》

《감사합니다. 난 여기가 좋습니다. 후방의 밤풍경을 한껏 바라보며 려행하고싶습니다. 우리한테는 이렇게 불빛이 밝은 밤이 없습니다.》

《전연인가요?》

젊은 중위는 대답없이 돌아서 차창밖을 묵묵히 내다보다가 《지새지 말아다오 평양의 밤아》라는 노래를 휘파람으로 조용히 불렀다.

성희는 문득 초면의 군관한테 너무 스스럼없이 군것 같은 숫저운 생각이 들어 살며시 출입문을 밀고 안으로 들어왔다.

류한무가 눈을 떴을 때 손녀는 희붐하게 밝아오는 차창밑 탁자에 쓰러져 자고있었다. 자고있는 그 모습을 보니 애틋하고 측은한 생각이 들어 조심조심 침대에 눕혀주고 모포를 덮어주었다. 그리고는 자리에 돌아와 담배를 피워물었다.

(집에 두고 올걸 공연히 데리고 오지 않았는가…)

집에서는 마음도 없는 헤식은 녀석때문에 단련을 받겠는가싶었고 또 전연부대에 가보면 생각되는바도 많을것이라고 여겨 따라나서는것을 물리치지 못했었다. 그는 담배연기를 들이켰다가 시름겨운 한숨과 함께 후ㅡ 내불고는 차창밖을 내다보았다. 렬차가 어느 역에 들어서는지 전주들이며 파란 신호등불빛이 느릿느릿 뒤로 물러가더니 안변이라고 써있는 역명판이 언뜻 눈앞을 스쳐지나갔다.

(아니 벌써… 신고산이 지척이 아닌가!)

신고산… 신고산은 전선동부로 나가는 관문이였다. 가슴이 울렁거렸다. 설레였다. 청춘시절의 꿈과 땀이 슴배인 고향의 동구앞에 이른듯 지난날, 전화의 그날의 추억이 한꺼번에 떠오르며 취흥처럼 되여 몸과 마음을 걷잡을수 없이 휘둘러놓았다. 51년가을의 장마, 폭우와 포화를 들쓰며 직동령을 넘던 결사의 강행군, 적 수천을 쓸어눕힌 억대우같은 4중대의 영웅기관총수, 중상당하고도 고지에 남아 전투를 지휘하다가 승리의 환성이 들려오자 쓰러져 운명한 1대대장, 정황판단이 정확하고 작전수립이 번개같이 신속한 참모장, 두뇌가 비상한 참모군관이였지… 그 불바다속에서도 꽃은 피여… 이 뚝배기련대장한테 무엇이 볼것이 있다고 은근한 짝사랑을 쏟아부은 사단군의소의 쌍태머리 녀준의, 안해가 불쌍해 어쩌지 못하고 외면해버렸지.… 서울처녀였어. 세브란스의대에서 의용군에 입대한 인테리가정의 외동딸… 그 포연속에서도 언제나 머리태끝에 흰나비같은 리봉이 팔랑거렸지… 아, 그들은 다 어디로 갔는가… 40년이란 망각의 그 흐름속에 영영 묻혀버렸는가… 류한무는 가슴이 꺼져내리는듯 하여 담배연기를 한껏 들이켰다가 길게 내뿜었다. 이제 련대에 가도 그때 20대의 하전사들도 환갑이 지났을것이고 그사이 몇세대가 교체되였을테니까. 옛련대장을 알아볼 사람은 하나도 없다는 서글픈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사람들은 교체되고 또 교체되여도 련대는 옛부대번호로 살아남아 전투임무를 수행하고있으며 군기도 살아있지 않는가. 불멸의 련대… 련대가 싱싱하게 살아있는데 개인적으로 알아보는 사람이 없는것이 무슨 대수랴… 차창밖 어스름속에서 흐르는 안변벌의 새벽풍경… 앞쪽에서 울리는 전기기관차의 은은한 경적소리… 기차는 로병을 아득히 흘러간 피끓는 시절에로 실어가고있었다.

급행렬차는 이른아침에 신고산역에 도착하였다. 류한무는 손녀와 함께 군단사령부에서 마중나온 중좌의 안내로 승용차에 몸을 싣고 길을 떠났다.

군용승용차는 평화로운 소도시를 벗어나 남으로 달리다가 철령의 넓게 닦은 비탈길을 치달아오르기 시작하였다. 철령의 험준한 산발들과 아찔하게 깊은 골짜기들… 추억많은 길이였다. 령중턱에서 굽인돌이를 돌던 차는 하마트면 우에서 굴러내려오는 중땅크에 깔릴번 하였다. 땅크포신이 차창앞으로 휙 돌아오는 순간 운전사가 번개같이 제동을 밟아 손님들은 앞좌석등받이에 가슴을 찧을번 하였다. 련이어 뒤따르는 땅크가 위혁적인 굉음을 울리며 들이닥치자 운전사는 황급히 조향륜을 돌려 차를 도로가에 바싹 붙여세웠다. 땅크들은 한대 또 한대 꼬리에 꼬리를 물고 굽인돌이를 돌아섰다.

참모군관인 중좌는 류한무를 돌아보며 지난밤 땅크군단의 한 중대가 자기네 린접보병군단의 방어계선으로 진출하는 야간기동훈련을 하였는데 그 땅크들이 기지로 돌아가는것 같다고 하였다.

어마어마한 중땅크들의 동음, 무한궤도소리로 귀가 멍멍해져 그의 말소리가 간신히 들렸다. 공기가 떨고 땅이 움씰거렸다. 당장 령길이 허물어져내릴것같아 마음이 조마조마해졌다. 성희는 얼굴이 해쓱해져 할아버지의 팔을 꼭 붙잡고있었다.

이윽고 차는 도로가녁을 따라 무쇠장갑차들의 흐름을 거슬러 천천히 굴러갔다. 류한무는 열과 함께 중유냄새를 풍기고 바람을 일으키며 지나가는 그 강철의 흐름에서 눈길을 떼지 못하였다. 흙이며 풀포기 같은것들이 붙어있는 포신, 진흙투성이 되여 돌아가는 무한궤도바퀴, 돌가루 같은것들이 묻어있는 정면장갑, 흙탕물이 게발린 후면장갑, 이슬이 비지땀처럼 흐르는 포탑이며 측면장갑, 열려진 시창안에서 날카롭게 빛나는 눈… 그 모든것들은 땅크종대가 지난밤 어떤 장애를 극복하며 진출계선으로 돌진했는가를 말해주는듯 하였다. 땅크종대가 끝나자 차는 속도를 높여 지그자그형으로 올리뻗은 령길을 치달아올랐다. 차가 마지막굽인돌이길을 돌아 내달리는데 중좌가 운전사에게 세우라고 다급히 일렀다.

저 앞쪽 령마루에 두대의 땅크가 서있는데 그 옆에 대여섯명의 장령, 군관들이 모여서있었다. 그들속에서 보위색 잠바옷차림을 한 분이 땅크의 포신이며 령길옆 들쑹날쑹한 산봉우리들을 가리키며 무엇이라고 열정적으로 말씀하고계시였다.

류한무가 자기 눈을 의심하며 차창을 통하여 앞쪽을 정신없이 내다보는데 중좌가 다급히 속삭이였다.

《친애하는 지도자동지이십니다!》

《예?!》

《지난밤 땅크중대와 함께 진출계선에 나갔다 오신것 같습니다. 아바이, 가만히 앉아계십시오.》 하고 중좌는 차에서 뛰여내리더니 앞쪽을 향하여 차렷자세를 취하였다.

그 순간이였다. 동쪽 산마루를 스쳐 줄기차게 비쳐드는 신선하고 강렬한 아침해빛에 손을 높이 들고 말씀하시는 령장의 모습은 금빛조각상처럼 두드러지고 땅크의 포신이며 장갑은 쇠물빛으로 타오르는듯 하였다.

(아니 며칠전에는 함남일대를 현지지도하셨는데 오늘은 이런데서… 아, 여기가 어딘가? 그것두 땅크종대와 함께!…)

류한무는 세상사람들이 다 모르는 그이의 불면불휴의 로고에 대하여 생각하니 가슴이 쩌릿하게 저려들었다. 그리고 여태 년로보장자로 집에서 편안히 지낸일이 못내 뉘우쳐졌다.

문득 그이께서 이쪽을 돌아보시더니 한 장령에게 무엇이라고 이르시는것 같았다. 장령은 이쪽을 향해 대여섯걸음 걸어나와 지나가라고 손을 저었다.

류한무는 차에 오른 중좌에게 우회도로가 없는가, 중요한 작전문제를 토의하시는것 같은데 방해해서야 되겠느냐고 말하였다. 돌아서려고 차가 후진하는데 그 장령이 서라고 손짓하고는 달려와서 중좌에게 어디 차며 안에 누가 탔느냐고 물었다. 장령의 보고를 받은 친애하는 지도자동지께서 이쪽으로 걸어오시였다.

류한무는 황황히 차에서 내렸다. 그리고 어떻게 그이앞으로 달려갔는지 느끼지 못하였다.

김정일동지께서는 못내 반가와하시며 허리를 굽혀 인사올리는 로인의 손을 뜨겁게 잡아주시였다. 그이의 온몸에서는 거인적인 열정과 기백과 담력이 확확 풍겨왔다.

《어제 수명동무한테서 들었습니다. 좋은 일입니다. 아주 대단히 좋은 일입니다!》

류한무는 목이 메였다.

《장군님, 죄송합니다. 저는 여태 늙었다고 대우만 받으며 집구석에 편안히 앉아있었습니다. 련대가 보고싶어 손녀를 데리고 길을 떠났습니다.》

《감사합니다.》

《예… 제가 찾아가서 무슨 큰 보탬이야 되겠습니까.》

《아니… 그렇지 않습니다. 이러한 때 조국을, 우리 사회주의제도를 지키기 위해 피흘리며 싸운 전쟁로병들이 옛부대로 찾아가 전사들을 고무하는것은 대단히 중요합니다. 의의가 큽니다!》

그이께서는 로인의 손을 잡으신채 말씀을 이으시였다.

《예비역상좌동지가 련대를 떠나신 다음 몇세대가 교체되였는지 모릅니다.》

로병은 자기를 아바이나 로인이라고 부르지 않고 군사칭호로 불러주시는데 그만 가슴이 뭉클해졌다. 서리내린 숱진 눈섭밑 크게 뜬 눈에 생기가 불타올랐다.

《어느 련대던가요?》

류한무가 사단과 련대의 대호를 말씀드리자 장군님께서는 지금 그 련대는 전연방어선에 배치되여있다고 하시며 먼 남쪽 산발들을 돌아보시였다.

저 멀리 중중첩첩으로 겹쳐진 산발들의 회색파도우에 흰 구름이 뭉게쳐오르고있었다.

김정일동지께서는 이마에 손채양을 붙이고 그쪽을 생각깊은 안색으로 바라보시다가 조용히 말씀하시였다.

《지금 병사들은 거의 70년대에 출생하여 행복속에 자라난 새 세대들입니다. 우리는 그들을 믿고 저 방선을 맡겼습니다. 우리 병사들은 하나같이 사회주의조국을 목숨바쳐 지켜야 한다는 정치적자각이 대단히 높습니다. 전투력도 강하고 사기도 아주 높습니다. 나가면 그들한테 지난 조국해방전쟁때 미제침략군을 족치던 전투경험이랑 많이 들려주십시오.》

《예… 병사들한테 들려줄 전투이야기를 몇건 준비해가지고 갑니다.》

《좋습니다. 옛 련대장의 생동한 전투담은 병사들한테 여러모로 큰 충격을 줄것입니다. 그런 경험이야기는 몇천냥의 원호물자보다도 더 값비싼것입니다.》

류한무는 장군님의 그 후한 말씀에 취흥이라도 도는듯 얼굴빛이 불깃해졌다.

《고맙습니다.》

《부대에 나가면 련대장시절과 조금도 다름없이 부족점이 있으면 깨우쳐주십시오.》

《아니 저야… 어쨌든 손님이 아닙니까.》

《아닙니다. 옛 자기 련대로 가는데 무슨 손님이겠습니까. 지휘관들이 무엇을 잘못하고있으면 따끔하게 일러주십시오. 그런 일은 없겠지만 만약에 상좌동지의 조언을 귀등으로 흘려보내는 친구가 있으면 우리 특명을 받아가지고 왔다하면서 호되게 꾸짖어주십시오.》

《장군님…》 류한무는 그이의 크나큰 믿음에 목이 메여 더 말을 잇지 못하였다.

그이의 뒤쪽에 서있는 두 장령이 초조한 얼굴빛으로 팔목시계를 보았다. 눈결에 그것을 띄여본 류한무는 옛 군인의 감각으로 자기때문에 군사행동의 일정이 순간이나마 지체될수 있다는것을 즉시 느꼈다.

로병은 황황히 차렷자세를 취하며 기운차게 말씀드렸다.

《장군님, 가보겠습니다.》

그이께서는 년세도 많은데 험한 산골길에 조심하라고 이르시며 로병의 손을 따뜻이 잡아주시였다.

그이앞에서 물러서 차있는데로 돌아서던 류한무는 문득 수진이와 수명이ㅡ 두 자식을 극진히 보살펴주시는 그 은정에 대한 감사의 말 한마디 드리지 못했다는 아쉬움이 들어 걸음이 떠졌다. 그때 한 장령이 따라와 팔을 끼며 잘 가라고 인사말을 하고는 여기서 그이를 만나뵙게 된것을 당분간 말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일러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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