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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소설 영원한 넋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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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강산
댓글 0건 조회 3,922회 작성일 21-08-05 0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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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국해방전쟁승리기념관 공로강사 김화준중장은 퇴근준비를 서둘렀다. 방금전에 딸에게서 전화가 왔다. 기쁜 일이 있으니 제시간에 정확히 퇴근하라는것이였다. 허, 그 앤 노상 이런다니까!…

청사계단을 내린 김화준은 여느때와 다름없이 마당가에 세워진 승용차곁으로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바로 이때 직일관이 달려와 거수경례를 붙였다.

《중장동지, 만수대예술단 박영순단장동지가 찾아왔습니다. 퇴근시간에 찾아와서 안됐다면서 정문밖에서 기다리고있습니다.》

박영순이가?!… 약간 길쑴하면서도 부근부근한 얼굴에 두툼한 입술을 가진 호감스러운 그의 용모가 언뜻 눈앞에 그려졌다. 당중앙위원회 선전선동부에서 사업하다가 만수대예술단 단장으로 왔다는 소리를 이미 들었었다.

김화준은 정문쪽으로 성큼성큼 걸어갔다. 유한 몸에 닫긴깃옷을 단정히 차려입은것으로 하여 60나이를 바투 둔 제 나이보다 한결 젊어보이는 사나이가 연청색승용차곁에서 서성거리고있었다.

《이거 정말 오래간만입니다. 선생이 바쁜 시간을 다 내다니…》

박영순이 서글서글한 얼굴에 웃음을 지으며 마주 걸어왔다.

《사실은 잠간 만날 일이 있어서 왔습니다.》

《잠간?!…》

김화준은 나직이 웃으며 박영순에게 권했다.

《그럴것없이 내 차를 타고 가면서 얘기합시다.》

박영순이 주춤거리자 김화준은 다시금 웃었다.

《왜요, 단장선생을 그냥 길가에 내버릴것 같아서요?》

박영순은 어쩔수 없는듯 따라웃고나서 자기 운전사에게 혼자 가라고 손짓하고는 김화준이 내여준 옆자리에 올라앉았다.

김화준에게 있어서 박영순은 구면지기였다.

군단참모장을 할 때 만수대예술단이 부대에 순회공연을 왔었다. 당시 그의 이름은 온 나라에 뜨르르했었다. 만수대예술단이 한창 국내외적으로 명성을 떨치던 때라 그가 부르는 독창, 그가 출연하는 남성4중창은 매일이다싶이 텔레비죤화면에 방영되군 했던것이다.

그때 박영순이 전선무대에서 부른 첫 독창은 《결전의 길로》였다. 얼마나 감명깊게 들었던가! 피가 끓던 그 시절에 대한 추억, 탄우속을 누비던 옛 전장과 떠나간 전우들에 대한 생각으로 김화준은 두볼로 줄줄 흘러내리는 눈물을 걷잡지 못했다.

재청 또 재청!

김화준은 병사들과 함께 손벽이 깨여지게 박수를 쳤다. 다음노래는 《전호속의 나의 노래》였다.

그날 저녁 동석식사를 하는 자리에서 김화준은 올곧은 성미그대로 직방 박영순에게 자기 의견을 터놓았다. 재청을 받으면 왜 다른 노래를 하는가? 《결전의 길로》를 다시 부르시오, 그 노래는 두번, 세번이 아니라 열번, 몇십번을 들어도 싫지 않은 노래요!…

김화준은 평양으로 소환되여 올라온 후 조국해방전쟁승리기념관참관을 온 박영순이와 다시 만났다. 그것이 인연으로 되여 종종 만수대예술단공연을 보러 가는 과정에 박영순이 유명한 가수이기 전에 관록있는 작가라는것을 알게 되였다. 60년대에 벌써 《여기는 천리마 내 조국이랍니다》와 같은 명가사를 창작하였을뿐아니라 당의 기초축성시기에는 위대한 장군님을 칭송하는 노래 《친애하는 지도자동지께 드리는 노래》를 내놓는데 한몫 하였다. 이 노래는 만수대예술단창립 2돐을 맞으며 진행한 공연에서 불리워졌다.

노래는 김정일동지의 커다란 노여움을 사게 되였다. 한없이 겸허하신 그이께서는 누가 이런 노래를 지으라고 하였는가, 만약 만수대예술단이 두번다시 이런 노래를 들고나오면 엄한 처벌을 주겠다고 경고까지 하시였다. 하여 노래는 오래동안 묻혀있다가 그이를 따르는 위인칭송의 열기가 더는 막을수 없는 현실로 펼쳐진 1970년대 중엽에 이르러서야 빛을 볼수 있었다.

《그래, 무슨 일때문에 나를 찾아왔습니까?》

박영순은 그 특유의 웅글은 목소리로 조용히 대답했다.

《우리 만수대예술단이 전선중부에 순회공연을 떠납니다. 그 기회에 나도 따라가서 군인들에 대한 취재라 할가, 체험이라 할가, 다문 얼마간이라도 그런 과정을 겪어보고싶습니다.》

김화준은 놀란 눈길로 박영순을 돌아보았다.

《단장사업을 하면서도 여전히 손에서 붓을 놓지 않고있구만요!》

박영순은 가볍게 웃었다.

《이번에 종목편성을 하면서 생각이 많았습니다. 혁명적인 군가들은 다 인민군협주단에서 나온것이고 우리 만수대예술단에서는 군인들을 불러일으킬만 한 그런 씩씩한 노래들이 창작된것이 별로 없었습니다. 체험에 대하여 말한다면 예술행정사업을 보는 저라고 거기서 제외될수 없다고 봅니다.》

김화준은 고개를 끄덕이였다.

《찬성이요. 명성으로 보아도 만수대예술단에서 응당 혁명적인 군가가 나와야지요. 단장선생이 현실체험을 한다는것도 좋은 일이고…》

《그래서 말입니다, 체험지는 어디에 선택해야 하겠는지 또 현실체험하면서 놓치지 말아야 할건 무엇인지… 저야 군사복무를 못해본 군사문외한이 아닙니까.》

김화준은 공연한걸 묻는다는듯 소리내여 웃었다.

《체험지야 응당 병사들이 있는 중대로 정해야지요. 거기에 가야 병사대중의 생활과 진실한 감정, 지향을 포착할수 있습니다. 〈결전의 길로〉와 같은 노래상을 포착할수 있단 말입니다.》

박영순은 깊이 생각해보는듯 잠시 말이 없었다.

《그때 헤여진 후 난 선생의 노래를 계속 기다렸습니다. 하긴 만수대예술단으로 다시 오기 전까지는 그럴 경황이 없었겠지요. 그래도 뭐 좀 속으로 생각하는건 없었습니까?》

박영순은 약간 면구한 표정을 지었다.

《요즘에 와서 혁명전통주제의 작품을 생각하고있습니다.》

김화준의 눈에는 대뜸 호기심이 어렸다.

《지난해 4월 15일에 어버이수령님을 모시고 우리 만수대예술단이 공연을 하였습니다. 그러고보면 수령님을 모시고 진행한 마지막공연이였습니다. 공연이 끝나자 어버이수령님께서는 우리 창조성원들을 몸가까이에 불러주시였습니다. 공연을 잘했다고 치하해주시며 우리 만수대예술단이 앞으로 나아갈 길을 하나하나 밝혀주시던 수령님께서는 혁명전통주제의 작품도 꼭 창작할데 대한 간곡한 당부를 하시였습니다. 결국 그날의 간곡한 당부가 수령님께서 우리 예술단에 주신 마지막유훈으로 되였습니다.》

《혁명전통주제라면 그 령역이 대단히 넓은데…》

박영순은 이미 생각하고있은듯 주저없이 말했다.

《지금은 고난의 행군시기입니다. 그런것만큼 30년대 고난의 행군시기 사령부를 목숨으로 보위한 항일혁명투사들을 원형으로 상을 잡아볼가 합니다.》

순간 김화준은 놀란듯 그를 돌아보았다.

《오중흡7련대를 념두에 둔 말입니까?》

《예.》

김화준의 마음은 저으기 설레였다. 우연한 일치라 할가, 어쩌면 생각이 이렇게 같을수 있단 말인가?…

김화준의 머리속에는 낮에 총정치국의 박진건대장을 만나던 일이 생각났다. 강의안의 현실부분을 곱씹어 읽어보던 대장은 고개를 끄덕이였다.

《오중흡7련대를 오늘의 현실에 결부시킨것이 좋습니다. 조국해방전쟁시기 조국수호정신도 항일무장투쟁시기 사령부보위정신에 뿌리를 두었다고 말할수 있습니다. 그 뿌리가 있어 오늘의 수령결사옹위정신도 있는것이 아니겠습니까.》

승용차는 서서히 멈춰섰다. 장령사택으로 들어가는 갈림길이였다.

운전사는 손님이 갈곳을 몰라 중장의 눈치를 보는 자세였다.

김화준은 박영순의 동의없이 운전사에게 일렀다.

《집으로 그냥 가세.》

박영순이 당황해하자 김화준은 그의 잔등에 가볍게 손을 얹었다.

《우리 이야기는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김화준은 박영순을 이끌고 자기 집 계단을 올랐다. 초인종을 누르자 문이 열리며 웃음이 활짝 비낀 딸 선희의 모습이 나타났다. 아버지의 가방을 받아들고 안에다 대고 기쁨에 넘쳐 소리쳤다.

《오빠들, 아버지가 오셨어요!》

응접실쪽에서 웅성웅성하는 소리가 나더니 매우 건장하게 생긴 두명의 군관이 걸어나와 약속이나 한듯 거수경례를 붙였다.

《아버지, 안녕하십니까!》

전쟁시기 전우의 아들인 조무진과 자기의 아들 김윤범이였다.

《인사들 하거라. 만수대예술단 단장선생님이시다!》

그리고는 박영순에게 보통키에 두리두리한 얼굴, 호방스러운 눈매를 가진 조무진이부터 소개하였다.

《전쟁시기 351고지에서 함께 싸운 내 전우의 아들입니다. 아버지의 뒤를 이어 지금 351고지쪽에서 련대장을 하고있습니다. 이 사람은 내 아들이고 전선중부에서 련대정치위원을 하고있습니다. 앞으로 만수대예술단이 거기에 간다니 또 만날수도 있을겁니다.》

김화준은 그제야 군모와 군복상의를 벗어 선희에게 넘겨주었다. 그러자 체소한 몸집을 가진 로인의 모습으로 되였다. 하지만 준수한 얼굴모습이며 특히는 두눈에 실려있는 무게있는 눈빛은 뭇사람들과 류다른 위엄을 안고있었다.

응접실에 들어서자 그는 쏘파가 아니라 바닥에 자리를 잡으며 물었다.

《그래, 어떻게들 되여 이렇게 한날한시에 같이 왔느냐?》

모두들 김화준을 따라 빙 둘러앉는 속에 김윤범이 대답했다.

《이번에 전연군단 련대장, 련대정치위원들에 대한 강습이 있었습니다. 오전까지 강습이 끝나고 오후부터 자체시간을 주었는데 래일 모두 부대로 출발하게 되여있습니다.》

《그래…》

김화준은 대견스러운 눈길로 그들을 쳐다보았다.

생김새는 서로 달라도 하나같이 듬직하고도 침착한 성격들이다.

무진이는 윤범이하고 어릴 때부터 서로 오가며 한형제처럼 지냈다.

《아버지묘소에는 가보느냐?》

조무진은 어줍게 고개를 숙였다.

《짬이 나질 않아서… 집사람만 보냈댔습니다.》

《음…》

전쟁때 당한 부상으로 오래동안 병석에 누워 신고하다가 때이르게 돌아간 조무진의 아버지 조동석이였다.

그는 김화준이보다 두살이나 우인 형님벌이였지만 자기 련락병을 했었다. 351고지에서였다. 하루에도 몇번씩 죽음의 문턱을 넘나들어야 하는 그 전장에서 조동석의 세심한 눈길은 순간도 김화준의 몸에서 떠날줄 몰랐다. 그것은 성실성이였고 그의 순박한 인간미이기도 하였다. 함포사격에 은페부가 주저앉는 그 순간에 그가 버팀목이 되여주지 않았더라면 김화준은 지금처럼 성성히 살아남을수 없었을것이다. 결국 상관인 중대장을 지켜 중상을 당하고 후송되였던것이다.

김화준은 전쟁이 끝나자바람으로 그가 입원하고있는 전상자병원을 찾아갔다. 퇴원한 후에는 물론이고 사망전까지 때없이 그의 집을 찾군 했다. 그 부상이 아니였다면 조동석의 운명도 달리되였을것이다.

김화준은 짤막하게 한숨을 내긋고나서 무진이와 윤범을 둘러보았다.

《강습에서 많이 배웠을테지. 어디 너희들의 반영이나 들어보자.》

조무진은 앉은자세를 바로하며 조용히 입을 열었다.

《조국의 현실을 지금처럼 무겁게 받아들여본적이 없었습니다. 사회주의를 지키느냐 마느냐 하는 문제가 이제는 우리 군대의 총대에 달려 있다는것을 절감했습니다.》

《정세강연도 있었는데…》

김윤범이 역시 나직한 어조로 말을 보탰다.

《현재 우리가 처한 실정과 사회주의를 버린 나라들의 실태, 이와 때를 같이하여 우리를 고립압살하려는 적들의 책동이 무모한 단계에 이른데 대하여 구체적으로 언급되였습니다.》

김화준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고나서 박영순에게 말했다.

《난 아까 차안에서 선생이 창작하려는 작품의 원형을 두고 깜짝 놀랐다고 해야 할지, 감탄했다고 해야 할지 그런 흥분을 느꼈습니다.

지금이야말로 30년대 고난의 행군을 방불케 하지요. 익측도 후방도 없고… 이런 속에서 적들이 노리는것이 무엇이겠습니까. 30년대 적들의 주되는 목표가 혁명의 사령부였다면 오늘은 우리 혁명의 수뇌부라는것은 너무도 명백한 사실입니다.…》

김화준은 이어 조무진과 김윤범을 돌아보며 방금 한 말을 곱씹었다.

《너무도 명백한 사실이야. 어제와 오늘의 두 년대를 이어보면 인민군대에서는 오중흡동지와 같은 지휘관이 필요한거야.

너희들도 다 련대장, 련대정치위원이기에 하는 말인데 그런 지휘관이 되지 않고서는 오늘의 시련을 감당하지도 이겨내지도 못해.

어떻습니까, 단장선생에게는?… 작품에서 말하자는 내용이 이것이 아니겠습니까?》

지금껏 이야기에 집중하고있던 박영순이 저으기 상기된 얼굴로 김화준을 마주보았다.

《중장동지, 댁으로 오기 전까지 저에게는 그저 표상만이 있을뿐이였습니다. 하지만 이야기를 듣고보니 보다 실천적인 문제들이 새롭게 떠오릅니다. 앞으로 취재방향도 짐작됩니다.》

김화준은 만족한 웃음을 지었다.

《그렇다니 나도 기쁩니다. 여기 전연련대장, 련대정치위원을 잘 봐두시오. 앞으로 창작을 위해서도 다시 만날수 있으니까.》

부엌에서 어머니를 도와 음식을 준비하던 선희가 방안으로 들어와 아버지곁에 살며시 자리를 잡으며 어리광부리듯 말했다.

《아버지, 무진오빤 강습을 떠나오기 전부터 우리 공장 세명의 처녀들이 사단에 온다는걸 다 알고있었대요.》

김화준은 반기듯 조무진을 바라보았다.

《하지만 그속에 선희가 있는줄은 몰랐겠지.》

조무진은 김화준을 향해 마주 웃었다.

《예, 사단장동지가 대성요업공장 세명의 처녀들이 최전연의 군관들과 일생을 함께 하기 위하여 사단에 온다는걸 알려주었습니다. 그런데 그속에 선희가 있는줄은 집에 와서야 알았습니다!》

박영순은 그 말을 듣다말고 작가적인 호기심때문인지 김화준에게로 고개를 돌렸다.

《그런데 따님이 어떻게 되여 그런 훌륭한 결심을 하게 되였습니까?》

김화준은 빙긋이 웃었다.

《저 애는 몇해전까지 려도방어대에서 군사복무를 했지요. 간호원으로 말입니다. 거기서 입당까지 했구요.

한데 제대되여 건설전문학교까지 졸업하고나서 하는 말이 자기에게 후회가 있다면 군관이 못된것이라는겁니다.

이 아버지도 60나이 넘도록 군복을 입고있지, 제 오빠도 군관으로 복무하고있으니 그런 생각을 할만도 하지요. 제 말로는 그 후회가 군관의 안해로 되는 길을 택하게 하였다고 하는데…》

김화준은 한번 말해보라는듯 선희에게 넌지시 눈길을 주었다.

선희는 얼굴을 붉히며 고개를 숙였다. 그러자 방안으로 들어설 때의 어리광스러운 모습은 어데론가 사라지고 성숙한 처녀의 자태로 돌아왔다.

《사실… 저도… 이런 결심을 하게 될줄은… 우린 동무결혼식에 갔댔는데…》

선희는 조용조용 이야기를 시작했다.

남편될 사람은 최전연에서 복무하는 군관이였다.

선희와 동무들은 한쌍의 부부에게 꽃다발을 안겨주고 축하의 노래도 불러주며 진심으로 그들의 앞날을 축복해주었다.

그런데 떠나올무렵 녀동무가 이제 헤여지면 언제 또 만나겠는가고 하면서 그냥 더 있다 가라고 하는것이였다. 그래서 선희네는 조용한 방에 따로 모여앉아 신랑, 신부와 이야기를 나누게 되였다.

누군가가 신랑에게 전연이야기를 해달라고 청했다. 그러자 그 군관은 벌씬 웃으며 자기는 말주변이 좋지 못하지만 평양처녀들의 부탁을 어찌 마다하겠냐면서 이런저런 전선생활에 대해 감명깊게 들려주는것이였다. 자연 남편들과 병사들을 친어머니의 심정으로 돌봐주고있는 군인가족들에 대한 이야기가 화제에 오르게 되였다.

앞에는 전연, 옆에는 산, 뒤에도 산, 인가가 있는 곳으로 가자 해도 40여리, 하여 노상 사람 그리운 정에 산다는 최전연의 군인가족들이란다. 게다가 때없이 울리는 적들의 심리전방송소리, 이즈음 더더욱 자주 들려오는 총포탄소리…

그런 날 밤이면 의례히 사랑하는 남편의 신상에 별고가 없는지 가슴조이며 군인가족들이 잠을 못 이룬다. 그런 최전연의 밤은 그 얼마이던가?

그러다가도 남편들이 초소에서 돌아오는 날이면 집집의 굴뚝마다에서 그리움의 연기가 세차게 피여오르고 성의껏 마련한 진수성찬이 상에 오르고 또 초소로 떠날 땐 따뜻한 안해의 사랑, 조국수호의 감정을 남편들의 가슴마다에 듬뿍 채워보내고…

최전연의 군인가족들은 이렇게 한생 남편의 믿음직한 길동무가 되여 조국을 지켜가는 총대의 멜끈으로서의 자기 본분을 다하고있는것이다.

이야기끝에 군관은 자기의 안해를 정깊은 눈길로 바라보며 이렇게 붙이였다.

《이제 이 사람이 부대에 가면 아마 둥둥 떠받들리우게 될겁니다.》

《아니, 왜요?》

선희와 처녀들은 거의 동시에 호기심어린 질문을 던졌다.

《그건 다름아닌 평양녀자이기때문이지요.》

《예?!》

처녀들은 웃음을 참지 못했다. 선희도 손으로 입가를 가리우며 어이없는 웃음을 지었다. 세상에 원, 단지 평양녀자라는것때문에 그렇게 떠받들리운단 말인가? 어딘가 모르게 희떱게 여겨졌다. 그러나 재차 설명을 다는 군관의 말은 아주 의미심장한것이였다. 그가 사랑이란 사업과 생활 그리고 교제를 통해 이루어진다지만 자기들에게는 그런걸 생각조차 할수 없다는것, 하물며 수도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있는 자기한테 이렇게 평양처녀가 온다는게 어디 쉬운 일인가고 솔직한 감정을 터놓을 때 선희는 스스로 얼굴이 붉어짐을 느꼈다.

평양처녀! 그의 입에서 자랑스레 울려나오는 그 부름속에는 혁명의 수도에서 사는 자기들 처녀일반에 대한 최전연군인들의 뜨겁고 숭엄하고 진실한 믿음과 사랑이 어려있는것이 아닐가? 과연 나도 조국을 위해 제일 수고를 많이 하는 그들이 그렇게 내놓고 떳떳이 자랑할수 있는 평양처녀라 말할수 있는가?

그는 말했다. 평양처녀들이 최전연에 시집을 오면 누구나가 다 열렬히 축복해준다고, 그것자체가 자기들한테는 더없는 힘과 용기로 된다고…

그날 밤부터 선희의 고민이 시작되였다. 그의 귀전에는 그 군관의 목소리가 계속 울려왔다. 그들은 평양처녀가 최전연에 시집오는것자체를 그 무슨 대단한 희생으로 생각한다. 평양처녀라고 뭐 특별한 존재들인가? 아니다. 오히려 당과 수령의 사랑과 배려를 더 많이 받으며 자라온 우리들이기에 누구든 응당 최전연을 마다하지 말아야 하지 않겠는가? 군관이 못된걸 후회한다던 자기의 처사가 한갖 위선처럼 느껴졌다. 한발 먼저 군관의 안해가 되여 전연으로 떠나는 동무한테도 어쩐지 해소 못할 빚을 진것만 같은 심정이였다.

며칠동안 그렇게 우울해있는 선희의 거동이 끝내 아버지, 어머니의 눈길속에 걸려들고야말았다.

아버지는 딸의 고민을 다 들어주었다. 그리고 평생 군복을 입고있는 아버지를 봐도 그렇고 최전연에서 복무하는 오빠를 생각해봐도 옳은 결심을 하였다고 그를 적극 지지해주었다. 하여 함께 결혼식에 갔던 동무들중 제대군인출신 두 동무와 다시 모여앉아 심중히 이 문제를 의논하게 되였던것이다. 가자, 그리로 가는 길이 군사복무의 길을 변함없이 이어가는 길이고 아버지장군님 가장 가까이로 가는 길이다. 올해 설날 다박솔초소로부터 시작하여 장군님께서 련일 찾으시는 곳은 인민군부대, 구분대들이 아닌가. 사회적으로 군사중시기풍이 서가고 모든 사람들의 기대와 관심이 군대로 향하고있는 때에 우리 제대군인 세 처녀들이 선구자가 되자.…

《결국 우리 결심이 공장당위원회에까지 알려지게 되였던거예요.》

박영순은 감탄을 금치 못했다.

《훌륭한 딸을 두었습니다. 모두가 군사를 중시하는 시대의 흐름에 앞장섰다고 봅니다. 이제 군대에서도 그렇겠지만 사회적인 반영도 대단히 클겁니다. 저도 이렇게 군인가정과 자리를 함께 하고보니 벌써 그 시대의 흐름에 몸을 잠근 기분입니다.》

김화준은 미덥게 박영순을 바라보았다.

《단장선생, 앞으로 전연부대들에 대한 공연도 그렇고 목적하는 체험도 성과적으로 되여 꼭 훌륭한 노래가 나오길 바랍니다.》

《중장동지, 고맙습니다!》

박영순은 거듭 사의를 표했다.

안해가 방안에 들어와 김화준에게 식사준비가 다되였음을 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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