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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 력사를 가진 야금기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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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강산
댓글 0건 조회 1,740회 작성일 21-08-05 00: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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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 력사를 가진 야금기술​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뛰여난 슬기와 재능을 가진 우리 인민은 예로부터 과학과 기술, 문학과 예술을 높이 발전시켜 나라의 명성을 떨쳤습니다.》

우리 민족의 우수한 문화유산들가운데는 오랜 발전력사를 자랑하는 야금기술도 있다.

우리 나라에서는 벌써 국가성립이전시기인 B. C. 4000년기 후반기에 청동야금기술을 상당한 수준에서 활용하고있었다.

당시 청동제품들로서는 도끼, 단검, 활촉, 끌 등의 무기류, 로동도구들은 물론 가락지와 방울, 팔찌, 귀걸이, 단추 등 치레거리에 이르기까지 그 가지수와 형태가 다종다양하였다.

고조선의 건국이후 청동야금기술은 더욱 발전하였는데 이 시기 우리 선조들은 그 이전의 3원소합금(동, 석, 연)기술을 계승하면서도 제품의 용도에 따라 보다 세밀하게 합금비률을 조절하는 법을 터득하여 활용하였다.

B. C. 2000년기 말엽부터 고조선에서는 철이 대량적으로 생산되기 시작하였는데 우리 선조들은 제철제강 및 금속가공기술발전에 힘을 넣어 무기와 로동도구, 마구류 등 다양한 철제품들을 생산하였다.

황해북도 황주군 고연리유적 2호집자리에서 발굴된 쇠쪼각과 철광석슬라크, 함경북도 무산군 범의구석유적에서 나온 B. C. 1000년기 전반기의 선철로 만든 쇠도끼, 자강도 시중군 로남리유적에서 나온 B. C. 1000년기 후반기의 강철로 만든 쇠도끼 등이 그 대표적유물들이다.

제철제강기술만이 아니라 금, 은, 동 등을 제련하는 기술도 발전하였는데 부여에서 그 수준이 높았다.


- 비파형단검을 만드는 우리 선조들 -

고대국가시기에 이어 삼국시기에 들어와 야금기술은 더욱 세련되였다.

특히 고구려의 야금기술은 높은 수준에 있었는데 건국초기부터 질좋은 강철제 및 주철제무기, 공구, 농기구들을 많이 만들었다. 그러한 유물들은 자강도 시중군 로남리유적을 비롯하여 많은 유적들에서 발굴되였다.

철제품들가운데는 가마, 화로, 널못 등 여러가지 일용생활도구들도 많았는데 평안북도 운산군 룡호리 1호무덤에서 나온 철제화로, 평양부근에서 나온 쇠로 만든 자루달린 세발솥 등은 정교한 주물품으로 유명하다.

특히 압록강류역에서 발굴된 쇠로 만든 패쪽갑옷은 고구려의 높은 주강기술과 단조기술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유물이다.

고구려 첫 시기의 한 유적에서 나온 철제품은 오늘날의 강철제품에 비해볼 때 그 조성과 단조기술에서 별로 큰 차이가 없다.

고구려시기의 유적들에서 발굴된 철제유물들가운데서 주목을 끄는것은 주조한 선철제품보다 단조한 강철제품들이 더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있는것이다. 고구려에는 사람만이 아니라 말에게까지 갑옷을 입힌 개마무사군단이 있었는데 이것은 고구려의 철생산기술이 높은 수준에 있었다는것을 보여주고있다. 고구려의 질좋은 철제품들은 이웃나라들에도 많이 수출되였다.


- 개마무사 -

이 시기에 금, 은 및 동제련술도 매우 발전하였다. 한 력사기록에는 《하나의 은광에 수백가호가 달라붙어 은을 캐여 국용에 쓴다.》는 내용이 있는데 이것은 당시 고구려의 광업규모를 엿볼수 있게 한다.

고구려사람들은 광석을 제련하여 1차가공한 금과 은, 구리를 가지고 주조, 압연, 도금, 합금, 조금기술을 배합하여 훌륭한 금, 은, 동세공품들을 만들었다.

발해는 고구려의 야금기술을 계승발전시키였다. 발해의 유명한 특산물가운데는 위성의 철과 부주의 은도 있었는데 국내외시장들에서 그 인기가 높았다고 한다. 특히 동은 주요 수출품중의 하나로서 그 수요가 대단하였다.

고려시기에 들어와 광물채취 및 야금기술은 더욱 발전하였다. 동제련기술도 급속히 발전하여 많은 동이 생산되였다. 959년에 이웃나라에 여러차례 황동을 수출하였는데 그 량은 한번에 5만근이나 되였다고 한다. 우리 나라에 왔던 이웃나라의 사신들은 고려에는 동으로 만든 그릇류가 많다고 부러워하면서 그것을 많이 구해가지고 돌아가군 하였다.

조선봉건왕조시기 금속광물자원을 개발하기 위한 탐사가 적극 추진되고 제철, 제강, 제련업이 더욱 활발해졌다.

19세기 말엽 이웃나라의 어느 한 사람은 우리 나라에서 만든 솥을 하나 구입하여 1 000여km거리를 수개월이나 려행하면서 리용하였는데 조금도 상하지 않았다고 하면서 만일 유럽의 선철로 만든 솥이라면 아마 깨져나간지도 오래 됐을것이라고 놀라움을 금치 못하였다.

이처럼 오랜 력사와 전통을 가진 우리 선조들의 야금기술은 나라의 국력을 높이고 인류과학기술발전에 큰 기여를 하였다.

본사기자  조선의 오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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