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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소설 평양은 선언한다 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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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강산
댓글 0건 조회 4,595회 작성일 21-07-21 0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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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김정일동지께서는 백두밀림으로 가시였다. 사업일정에 따라 대로천혁명박물관으로 꾸려진 백두산일대의 혁명사적지들을 현지지도해야 하는 사정도 있었지만 국제정세가 격변하는 올해에는 2월이 다가오니 여느때없이 백두성산이 그리워나시였던것이다. 백두산에 대한 그이의 그리움, 그것은 고향에 대한 향수처럼 강렬하고 성스러운 감정이였다.

그이께서는 백두산에 올라 태고연한 천지며 장군봉의 빙설전경도 탄상하고 백두밀영과 간백산밀영, 밀림속의 답사숙영소들도 현지지도하시였다.

량강도당 책임비서와 당력사연구소 부소장이 그이를 수행하였다.

백두고원에는 쾌청한 날씨가 계속되였다. 해빛에 은백색으로 번쩍이는 백두산마루에는 희디흰 구름띠가 걸려 흩어질줄 모르고 은세계를 눈부시게 펼친 백두밀림의 천리수해에는 정적이 깃들어있었다. 서리가 하얗게 핀 나무가지들이며 대기의 흐름마저도 강추위에 얼어붙은듯 모든것이 까딱 움직이지 않고 괴괴한 고요속에 묻혀있었다. 이따금 해묵은 거목들의 우듬지에서 소리없이 흩날려내리는 눈가루가 허공에서 반짝이며 불꽃을 날리는듯 하였다.

오후 김정일동지께서는 무릎을 치는 눈속으로 걸음을 옮겨가며 새로 찾아낸 구호목들을 하나하나 살펴보며 그 영구보존대책을 의논하시였다. 도당책임비서와 당력사연구소 부소장은 그이께 과학자, 기술자들이 착안한 보존대책들을 말씀드렸다.

유구한 세월의 망각속에서 되살아오른 구호들은 그이앞으로 달려나오며 수령님을 모시고 싸운 항일선렬들의 피타는 목소리로 부르짖는듯 하였다.

《이천만 무산민중아, 전민항전에 떨쳐나서라! 우리의 투쟁결의는 조국광복, 우리의 최종목표는 공산주의리상향 건설이다!》

《아, 조국강산아, 우리 다시 오마!》

감사의 눈물, 비분의 피눈물처럼 흘러내린 송진에 가리워진 글발을 쓸어만지시던 김정일동지께서는 량강도당 책임비서와 당력사연구소 부소장을 돌아보시였다.

《이 구호들은 선렬들이 남긴 귀중한 유산입니다. 정신문화의 재부입니다. 과학자, 기술자들과 더 토론해서 영원히 보존하도록 해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기록영화로도 찍어놓고 화첩으로도 만들어 우리 인민들이 다 보도록 합시다. 답사자들이 이 구호문헌들을 다 봅니까?》

《예… 구호목들을 참관로정에 포함시켰기때문에 다 봅니다.》하고 부소장이 말씀드렸다. 《구호들을 빠짐없이 필기해가는 동무들이 많습니다.》

《아주 좋은 일입니다. 우리 청소년들이 사회주의조국이 얼마나 깊은 뿌리에서 태여났는가를 똑똑히 아는것은 매우 중요한 일입니다.

쏘련공산당은 력사가 깊은 당입니다. 그러나 혁명전통교양을 잘 안했기때문에 저꼴로 망했습니다. 아무리 큰 거목이라도 뿌리가 썩으면 쓰러지기마련입니다…》

그때였다. 뒤쪽에서 나무삭정이가 부러지는듯 한 소리가 났다. 도당책임비서가 뒤를 돌아보았다. 빽빽이 들어선 고목들밖에 시야에 들어오는것이 없었다. 산짐승이 지나간 소리인듯 하였다. 그이께서 다시 걸음을 옮기시려는데 뒤쪽에서 분명히 사람의 다급한 목소리가 울리였다.

《저기… 저기요!》

《어디… 어디요?》

《지도자동지이십니다!》

거목들의 줄기사이에서 눈투성이가 되여 사람인지 곰인지 형체를 가늠할수 없는 그림자들이 언뜻거렸다. 앞에 선 사람은 숙영소일군이 분명한데 뒤따르는 두 사람은 온몸이 눈투성이가 된데다가 얼굴에 성에가 허옇게 불리여 누구들인지 도무지 알아볼수 없었다.

그 두사람은 허연 입김을 확확 내불며 엎어지고 미끄러지며 이쪽으로 정신없이 달려왔다. 태고연한 밀림의 정적속에 환희에 찬 부르짖음소리기 메아리쳤다.

《지도자동-지-》

김정일동지께서는 허겁지겁 다가오는 그들한테로 마주걸어나가시다가 너무 놀라와 뚝 멎어서시였다. 비로소 한석비서와 류수진박사를 알아보시였던것이다.

《아니, 동무들이 어떻게 된 일이요? 이 추운날에…》

《친애하는 지도자동지! 보고자료를 가져왔습니다. 이번 로작에 대한 국제적인 반영이 대단합니다! 수진동무가 너무 오고싶어해서 함께 왔습니다.》

《잘-했소!》

그이의 희열에 넘친 음성이 밀림속의 정적을 흔들고 나무가지들에서 성에가루가 하얗게 흩날려내렸다.

《사회주의가 좌절된 나라들에서도 공산주의자들의 움직임이 있습니다.》

《로씨야, 벨라루씨, 우크라이나, 까자흐쓰딴… 로므니아, 벌가리아, 뽈스까에서도… 여기…여기 다 있습니다.》 하고 수진은 그 대륙들을 맡기듯 보고자료가 든 두툼한 서류봉투를 두손으로 그이께 드리였다.

《어디… 어디 봅시다!》

김정일동지께서는 눈에 덮인 바위에 걸터앉아 모든것을 다 잊고 보고자료를 펼쳐보시였다. 순간에 백두밀림도 숨을 죽이는듯 하였다.

그이의 빛발같은 눈길이 자료의 글줄우로 가로세로 달리였다.

숙연한 고요속에 문건을 번지는 종이소리만 울릴뿐… 해묵은 가문비나무가지에서 실안개처럼 날아내리는 눈가루가 문건우에 유리가루처럼 반짝이며 흩어졌다.

김정일동지께서는 한손으로 그것들을 쓸어버리고는 여념이 없이 글줄들을 더듬어나가시였다. 이윽고 그이께서는 기쁨과 흥분으로 불깃하게 상기된 얼굴을 들고 한석이며 류수진을 정겹게 바라보시였다.

《이거야말로 가슴을 태우며 기다리던 소식이요. 동무들, 고맙소, 정말 고맙소!》

답사숙영소일군이 한걸음 나서며 한석과 류수진이 비행기로 날아와서 숫눈길을 헤치며 여기로 올라오다가 도중에 《털털이》가 고장나 고생한 이야기랑 말씀드렸다.

김정일동지께서는 그들이 평양에 앉아 전화로도 보고할수 있으나 직접 달려온 그 심정이 리해되셨다. 더우기 수진이 여기까지 찾아온것은 여간 대견하시지 않았다. 하여 환한 안색으로 박사앞으로 성큼성큼 다가가 그의 어깨며 잔등, 팔소매에서 눈을 털어주시며 귀나 손발이 얼지 않았느냐, 이 추운날에 여기가 어디라고 이런데까지 찾아왔느냐, 정신이 있느냐고 하시며 껄껄 웃으시였다. 그리고는 몸둘바를 몰라하는 그의 팔을 스스럼없이 끼며 재촉하시였다.

《자, 자, 어서 갑시다. 어디나 뜨뜻한데 가서 이야기합시다. 띠를 풀어놓고…》

그이께서 한석과 류수진을 데리고 가까운데 있는 답사숙영소로 가시였다.

물매가 급한 뾰족지붕밑에 귀틀벽을 두텁게 둘러친 답사숙영소는 난방이 잘되여 방마다 후끈하고 창문유리들에 그려진 신기한 무늬의 성에가 축축히 녹아내리고있었다.

김정일동지께서는 숙영소의 방들을 돌아보고는 너렁청한 전실에 나와 쏘파에 손님들을 앉히고는 부관에게 활기에 넘친 음성으로 이르시였다.

《뭐나 좀 가져오오. 손님들이 꽁꽁 얼어서 고드름처럼 되였소.

이런 때엔 속부터 덥혀야 하오.》

부관이 그 말씀의 뜻을 인차 알아맞히고 백두고원의 특산물인 들쭉술과 유리고뿌를 가져왔다. 그이께서는 두개의 고뿌에 술을 가득 부어 한석과 류수진에게 권하며 몸을 녹이라고 하시였다.

《옛날 사람들은 주량이 도량이라고 했는데 반드시 그런것은 아니고… 속이나 덥힐 정도로 마시십시오.》

그러시고는 자신의 고뿌에도 술을 약간 따랐다.

술이 약한 류수진박사는 인차 취기가 올라 눈언저리가 벌개졌다. 어느덧 전실에는 화기가 돌고 활기에 넘친 이야기들이 오고갔다.

김정일동지께서는 류수진박사가 작성한 보고자료들을 보시며 글줄들에 밑줄도 긋고 표식도 하면서 자본주의가 복귀된 나라들에서의 공산주의자들의 움직임에 대하여 구체적으로 료해하시였다. 류수진은 몸가짐을 바로 가지고 흥분을 누르려고 애쓰면서 조용히 말씀드리였다.

《그 나라들에서 집권당이 와해된것은 사실이지만 견실한 공산주의자들은 참혹한 실패에서 교훈을 찾고 새로운 당의 재건을 위해 맹렬히 움직이고있습니다.》

《그것은 아주 좋은 일입니다. 그러나 이전 집권당들이 당세도와 관료주의적인 전횡으로 인민들의 외면을 당했기때문에 공산당의 영상이 흐려져 이제 새 당을 조직하고 인민대중의 지지를 얻기가 헐치 않을것입니다.》

《예… 그래서 당의 명칭도 바꾸고 강령도 새롭게 제기하고있습니다. 저희들이 료해한데 의하면 이전 쏘련과 동유럽나라 인민들속에는 공산당에 대해서는 환멸을 느끼나 사회주의제도자체에 대해서는 애착심과 미련을 가지고 회고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럴수 있습니다.…》 하고 그이께서는 사색적인 시선으로 허공의 한점을 응시하며 잠시 생각에 잠기시였다.

《로씨야나 체스꼬, 벌가리아 같은데서는 토지의 사유화를 반대하고 꼴호즈를 필사적으로 지키면서 지방당국에 저항하는 농민들이 많습니다. 레닌의 고향인 울리야놉쓰크에서는 지금도 사회주의적시책이 실시되고있습니다.

한가지 우스운 일화를 알게 되였습니다. 얼마전 모스크바의 한 거리에서 사람들이 백주에 유보도에 나타난 고르바쵸브한테 달려들어 뭇매를 안겼는데 알고보니 그것은 진짜 고르바쵸브가 아니라 고르바쵸브와 비슷한 사람이였답니다. 그 사람은 울상이 되여 자기 번대머리를 쓸어보이며 존경하는 동지들, 보시오, 내 이마에 날짐승이 찌를 갈긴것 같은 기미가 없지 않느냐고 하였답니다…》

김정일동지께서는 빙그레 웃으며 사람들이 그 배신자를 얼마나 증오했으면 그런 일까지 있었겠는가고 하시였다.

《사회주의가 좌절된 동유럽를 돌아본 일본의 한 사회평론가는 사회주의시기를 그리워하며 사회주의제도로 되돌아가려는 인민들의 지향을 <역류>현상이라고 표현했습니다. 그 <역류>를 이루는 인민대중의 흐름이 새로 재건될 공산주의적정당들의 정치적지반으로 되지 않을가 하고 생각합니다.》

《그 <역류>는 이제 날이 갈수록 더 거세찬 흐름으로 될것입니다. 인민들이 자본주의의 쓴맛을 보면 볼수록… 그 인민들을 하나의 정치적력량으로 단합시키려면 새로 재건되는 당이 이전의 공산주의집권당과는 완전히 새로운 사상적기초우에 조직되여야 합니다. 강령도 새롭게 제기하고…》

《예, 그렇습니다. 오늘 그 나라들의 거의 모든 새 공산주의운동지도자들은 맑스주의에 제한성이 많으며 맑스주의를 교조적으로 적용한 지도사상으로는 사회주의건설을 옳게 이끌수 없다는것을 깨닫게 된것 같습니다. 그래서 새로운 지도사상을 모색하고있습니다. 쏘련이 붕괴된후 그들속에서 주체사상에 대한 관심이 대단히… 대단히 높아졌습니다.》

류수진은 흥분된 목소리로 말하였다.

그이께서는 신중한 안색으로 듣고만 계시였다.

《쏘련의 붕괴는 자본주의나라 공산주의자들속에서도 맑스주의에 대한 회의를 불러일으켰습니다. 당의 지도사상이 당원대중의 외면을 당하게 되자 70, 80년의 투쟁력사를 자랑하던 당들도 순식간에 허물어지기 시작했습니다. 당원들은 사회주의에 대한 신념을 잃고 무리로 탈당하고있습니다.》

김정일동지께서는 예지에 빛나는 안광으로 그를 보며 나직이 말씀하시였다.

《원래 제2국제당의 영향하에 있던 일부 유럽 공산당들에는 우익사회민주주의경향이 농후했기때문에 그럴수 있습니다.》

《지금 유럽당들에는 두가지 경향이 나타나고있습니다. 사회주의에 대한 신념을 완전히 잃고 무리로 탈당해버리는 경향과 사회주의에 대한 신념을 잃지 않고 낡은 당에서 갈라져나와 새 당을 조직하려는 움직임입니다. 이 두번째 부류의 당활동가들은 맑스주의의 제한성을 통절히 느끼고 자주시대의 요구에 맞는 새로운 지도사상을 모색하고있습니다. 상대적으로 사회민주주의의 영향을 적게 받은 라틴아메리카의 공산당들은 대체로 견결한 립장을 견지하고있습니다. 그 당들은 주체사상을 연구하고 지도사상으로 삼으려는 움직임을 보이고있습니다.》

《주체사상을 따르는것은 20세기말에 와서 세계적인 추세로 되였습니다.》 하고 그이께서는 한석비서를 돌아보시였다.

《당국제부에서는 앞으로 주체사상선전과 보급을 기본으로 틀어쥐고 대외활동을 벌려야 하겠습니다.

우리가 무엇으로 자주의 새 길을 모색하는 당들을 도울수 있겠는가?…》

그때였다. 어딘가 멀리에서 우뢰소리같은것이 방바닥이며 벽이 알릴듯 말듯 전률하는듯 싶었다. 지붕에서 새된 휘파람소리가 울부짖고 뜨락에서 무엇인가 와지끈 박산이 나는 소리… 안개가 자욱히 낀 창문유리들이 흐릿해지고 방안이 어둑해지는듯 싶었다.

김정일동지께서는 기쁘고 흥분하신 얼굴로 한석을 돌아보시였다.

《눈보라요… 백두의 눈보라가 터지오!》

그러시고는 벌써 희뿌옇게 흐려지는 창문쪽에 눈길을 주시며 눈보라의 울부짖음에 귀를 기울이시였다.

《저 소리를 좀 들어보시오. 항일대전의 함성인것 같소.

투사들의 피타는 부르짖음… 녀대원들의 노래소리까지 들려오는것 같소. 음악이요. 대교향곡이요.》

그이께서는 명상에 젖은 눈빛으로 전실안을 거니시다가 창문곁에서 멎어서시였다.

《지난날 많은 작곡가들이 계절에 대해 썼지만 어느 협주곡이나 교향곡도 저런 장엄한 감정을 표현하지 못했소…》

눈가루가 창문유리를 후려치는듯 짜르르… 짜르르… 하고 야릇한 소음이 울렸다.

《박사선생, 백두산의 눈보라를 구경한적이 있습니까? 나가서 보고 이야기를 계속하지 않겠습니까?》

그이께서 출입문을 여니 허연 김이 사품치며 휩쓸어들었다. 그 김속을 뚫고 밖에 나선 류수진은 그이를 따라 뜨락으로 걸어나가려다가 여태 느껴보지 못한 차거우면서도 화끈한 기운이 얼굴이며 온몸을 확 후려치는 바람에 그만 헉 느끼며 쓰러질듯이 기우뚱거렸다. 눈앞에서 뽀얀 눈보라의 안개가 소용돌이치고 속눈섭이 떡떡 얼어붙었다. 대지를 뒤집어엎는듯 한 눈바람의 무시무시한 울부짖음소리… 그는 대자연의 그 어마어마한 요동과 함성속에서 자기 몸이 가랑잎처럼 날아나는듯 하여 무엇인가 붙잡고, 무엇에나 의지하고싶어 머리칼이며 외투자락을 날리면서 허우적거리다가 문득 나타나 얼싸안는 억척같은 기운에 몸과 마음을 맡겼다.

김정일동지이시였다. 그이께서는 한팔로 박사를 안아 부축하며 껄껄 웃으시였다.

《겁을 먹지 말고… 자, 눈을 뜨시오. 저걸 보십시오. 얼마나 장관인가!》

그러시고는 길을 열어주시려는듯 활개를 크게 저으며 성큼성큼 앞으로 걸어나가시였다.

류수진은 눈을 뜨고 눈바람이 휩쓰는 수림을 내다보았다. 백두련봉들에서 회오리치다가 소백수골안과 간백산쪽으로 휩쓸어내린것이 분명한 그 눈바람은 점점 더 용을 쓰며 천리수해를 뒤덮었다. 어느덧 밀림은 눈보라의 자욱한 안개에 묻히여 희거먼 산발들처럼 어른거리는가 하면 검푸른 자태를 뚜렷이 드러내며 거창하게 설레였다.

눈바람은 천년 묵은 거목들의 얼기설기 뻗은 가지들을 흔들어 대며 눈가루를 뽀얗게 털어버리면서 윙-윙-웅-웅-히유-히유- 하고 울부짖었다. 그 소리는 백두성산의 지심속에서 울려나오는 웨침소리로, 혹은 항일전의 함성으로, 혹은 수천만 군중의 환성으로 들리였다.

눈보라, 눈보라… 불가항력적인 힘과 백두의 신비한 기상을 풍기는 그 눈보라는 어마어마하게 파도치며 밀림을 휩쓸다가도 무서운 함성을 지르며 해일처럼 덮쳐드는가 하면 아스라하게 날아올라 새파랗게 어룽거리는 해를 가리워버리군 하였다. 그러다가도 홀연 잦아들면 하늘에 은가루같은것이 가득차서 반짝거리고 그속에 눈부신 물결무늬가 언뜻언뜻 비끼였다.

황홀경에 빠진 류수진박사는 추위도 까마득히 잊고 그 눈보라의 안개속을 허둥지둥 걸어나가다가 갑자기 들이닥치는 바람에 날리지 않으려고 두발을 벌려짚고 섰다. 윙-윙- 눈바람의 함성… 뒤따르던 한석비서가 그의 팔을 끼며 목청껏 소리쳤다.

《여-수진동무-백두산이 우리한테-힘을 주느라구-이러네. 하하…》

그때였다. 저 앞쪽 둔덕진곳에 오르신 김정일동지께서 솜외투자락을 날리며 하늘을 쳐다보다가 주먹을 높이 쳐들어 흔드시였다.

《동무들- 얼마나-얼마나-좋은가! 헛허허…》

그 호탕한 웃음소리에 화답하는듯 온 밀림의 바다가 장엄하게 설레이며 웅-웅- 울부짖고 몰아치는 눈보라의 은백색 갈기들이 아스라하게 날아올라 하늘을 쓸었다.

류수진박사는 저도 모르게 담이 커지고 정력이 북받치며 이제 세상에 놀라운 변화가 일어나리라는 예감이 들었다.

그는 환희에 넘쳐 그이쪽으로 걸어올라가며 마음속으로 부르짖었다.

(아, 김정일! 저분이야말로 사회주의의 좌절의 흐름을 재건에로 돌려세우는 세기의 영웅이 아닌가!)

밀림의 바다는 장쾌하게 설레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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