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편소설 평양은 선언한다 67 > 통일게시판

본문 바로가기
사이트 내 전체검색

통일게시판

장편소설 평양은 선언한다 67

페이지 정보

profile_image
작성자 강산
댓글 0건 조회 3,847회 작성일 21-07-30 21:44

본문

20210525210435_b688b794b6b2c74139004afd21fa3013_nlps.jpg

8       

평양선언을 영어, 중어, 로어, 프랑스어, 에스빠냐어, 그리스어로 인류에게 알리는 방송들의 전자파폭풍이 우주공간을 휩쓸고있을 때 지상에서는 건군 60돐을 맞는 혁명무력의 대열병식이 거행되였다.

조선인민군 최고사령관 김정일원수동지께서 혁명무력의 창건자인 어버이수령님을 모시고 주석단에 나오셨을 때 군악대의 환영곡이 장쾌하게 울리는것과 함께 김일성광장과 대동강상공에 수백수천의 축포탄들이 날아올라 하늘땅을 뒤흔들며 련발로 터졌다. 흩날리는 불보라, 불보라… 만세의 함성, 함성… 감격의 선풍에 대기가 설레이고 주석단에 서계시는 어버이수령님의 얼굴에 기쁨과 감격의 미소가 어리였다.

주석단에 서있는 외국국가수반들과 우리 나라 고위간부들이며 초대석에 서있는 61개 나라에서 온 160개 군사대표단과 대표단성원들, 그들의 얼굴들에도 밝은 빛이 넘치였다.

인민무력부장이 열병지휘관과 함께 사열차로 열병대렬을 사열하고 돌아와 최고사령관동지께 조선인민군창건 60돐경축 열병식을 시작하겠다고 보고드리자 그이께서는 마이크앞으로 나가 열병부대들을 향하여 열정에 넘친 음성으로 웨치시였다.

《영웅적조선인민군장병들에게 영광이 있으라!》

온 광장에 그에 화답하는 함성이 터져올랐다.

하늘땅을 들었다놓는 그 함성은 광장의 이 끝에서 저 끝으로 파도처럼 밀려가고 밀려왔다.

김정일!》

김정일!》

《일심단결!》

김정일!》

《일심단결!》

 

열병행진이 시작되였다. 선혈의 빛으로 타는듯한 붉은 기발을 높이 추켜든 항일혁명투사영웅종대와 당기발을 앞에 휘날리는 조국해방전쟁로병종대 그리고 혁명무력의 후대인 만경대혁명학원 학생들, 군사 및 정치대학 종대들과 각 군종, 병종, 군사학교 종대, 근위보병종대들이 군기를 앞세우고 군악에 맞추어 보무당당히 주석단앞을 행진해가기 시작하였다. 무겁게 펄럭이는 군기, 기계처럼 빈틈없이 정확하게 움직이는 종대와 종대의 용기백배한 기상, 상쾌하고 박력있는 취주악에 맞추어 가락맞게 울리는 발구름소리 발구름소리…

김정일동지께서는 밝은 안색으로 열병대오를 바라보며 손을 들어 답례도 보내고 박수도 쳐주시였다. 그때마다 흐르는 대오와 온 광장에 감격과 환희의 선풍이 휘몰아치고 군악대지휘자의 지휘봉이 하늘을 찌르고 열병종대 지휘관인 장령의 군도가 허공을 가로째며 획 아래로 내리비꼈다.

은백색 군도날에서 부서지는 해빛… 척! 척! 척! 대지를 울리는 발구름소리…

외국국가수반들이 위대한 수령님과 최고사령관 김정일동지께로 다가와 손을 뜨겁게 잡으며 축하와 감사의 인사를 하고 초대석의 외국인들도 경탄과 경악, 흥분에 진정을 못하고 술렁거렸다. 주석단에서 주먹을 흔들며 격정을 드러내는 꾸바공산당 정치위원 혁명소좌 후안 알메이다 보스께… 근엄하고 심각한 표정으로 열병대오를 바라보는 독립국가협동체련합무력 총사령부 고문 꿀리꼬브원수… 그때 리지야 꾸즈네쪼바는 공로자들의 초대석 앞줄쪽에서 군관례복차림의 류한무와 나란히 서서 열병대오를 바라보고있었다. 그 녀자는 이 초대석의 조선사람들속에 자기가 유일한 로씨야사람, 그것도 로씨야녀성이라는 자각에 몸가짐을 조심하며 꼿꼿이 서서 열병대오를 바라보았다.

리지야는 오늘아침 류수진을 뒤따르는 로씨야동료들속에 끼여 주석단초대석으로 들어오는 출입구까지 와서 가슴가득 훈장이 번쩍거리는 로대좌와 마주치게 되였다.

인민군창건 60돐에 즈음하여 최고사령관동지의 배려로 대좌의 군사칭호를 받고 례복까지 선물로 받았으며 열병식행사의 초대장까지 받은 류한무는 신이 나서 출입구앞으로 걸어오다가 맏아들의 뒤를 따르는 로씨야손님들속에서 은발의 녀인, 이미 이야기를 들은바 있는 수난의 그 녀인을 알아보자 걸음을 멈추었다.

수진이 녀인과 아버지를 서로 인사시켰을 때 류한무로인은 리지야 꾸즈네쪼바선생, 이야기를 많이 들었습니다 하며 손을 군모채양밑으로 무겁게 올렸으며 그 녀자는 아, 하고 가느다란 탄성을 내지르며 매달리듯이 로인의 팔을 덥석 잡았다. 로대좌는 그의 잔등을 부드럽게 다독여주며 모여선 로씨야벗들에게 우리 명절에 와주어 정말 고맙습니다, 로씨야동지들, 어려운 처지일텐데 이렇게 와주어 정말 고맙습니다라고 하며 손까지 쳐들어 보였다. 리지야는 군모밑으로 백발이 흘러내리고 눈이 어글어글하며 성미 또한 호협한 벗의 아버지, 이 예비역의 로대좌한테서 에핌할아버지의 체취가 느껴져 그의 곁에서 열병식도 보고 신문 《빠뜨리오뜨》를 위한 취재도 하고싶었던것이다.

열병종대들은 군악에 맞추어 힘차게 걸어나갔다. 리지야 꾸즈네쪼바의 눈길은 종대의 앞에서 무겁게 펄럭이는 군기, 그뒤에 장령, 군관들에게로, 대렬속의 병사들, 하나같이 구리빛인 얼굴, 얼굴들, 철갑모밑에서 불타는 눈동자들, 강철의 의지로 빚어진듯한 그쯘한 몸매들, 포석바닥을 울리는 군화발들에로 옮겨갔다. 그리고 난생처음으로 보는 대취주악단, 힘있게 움직이는 지휘봉에로, 환희의 선풍에 휩싸인 주석단쪽으로, 그앞에 일정한 간격을 두고 한줄로 서있는 완전부동자세의 표식병들한테로 그리고 다시 열병종대로 옮겨왔다. 자를 대고 그은듯한 일직선횡대로 척! 척! 내딛는 군화발들, 장쾌한 취주악에 맞추어 수백수천의 군화발들이 가락맞게 밟아나가는 포석바닥도 거대한 북으로 되여 진감하는듯 하였다. 경쾌하게 혹은 장엄하게… 군악소리, 발구름소리, 구령소리, 만세소리의 화음에 가슴이 울렁이고 넋이 날아나는듯 하였다. 현기증이 나며 눈앞이 돌아가는듯 하였다. 그때마다 리지야 꾸즈네쪼바는 류한무의 팔을 끼며 그한테 기대였다. 로대좌는 로씨야녀인에게 팔을 맡긴채 자부심에 넘쳐 끝없이 설명하였다. 통역은 류수진이 하였다.

《저걸… 저걸 보십시오! 리지야 꾸즈네쪼바, 저건 근위제2보병사단입니다. 미군의 발광적인 파도식공격을 물리치고 1211고지를 지켜낸 영웅사단입니다. <상심령>, <함정골>에서 미군 정예사단들이 몽땅 녹아났지요!》

《리지야 꾸즈네쪼바, 근위제3보병사단입니다. 저-기 뒤에서 나오는건 근위4사… 서울을 해방한 사단들이지요. 대전포위전을 한 사단입니다. 그때 미24사단장 띤이란 장성을 생포했습니다. 그놈은 늙다리인데… 침략전쟁에 이골이 난… 우리 병사들앞에서 용서해달라고, 자기를 인도주의적으로 대해달라고 엎드려 빌었습니다. 대전에서, 락동강에서, 현리포위전에서 숱한 미국놈들을 생포했지요. 그러다나니 우리 병사들은 한두마디 영어는 다 알았습니다. <헨드 엎!… 까-뗌- 유 살 다이!> 손들지 않으면 천당으로 보낸다는 소리지요. 허허허…》

《리지야 꾸즈네쪼바, 리지야 꾸즈네쪼바! 저걸 보시오. 어뢰정으로 미군순양함 <빨찌몰>호를 격침해서 세상에 소문난 어뢰정전대입니다. 그 뒤에 나오는건 간첩선<푸에블로>호를 잡은… <푸에블로>호사건이란 말을 들어봤습니까? 그때 굉장했습니다. 미국놈들이 다시 전쟁을 일으키자구 했지요. 한데 우리 수령님께서 보복에는 보복으로, 전면전쟁에는 전면전쟁으로! 이렇게 꽝 소리치시니까 저놈들이 쑥 들어갔습니다. 미국정부가 정식으로 우리한테 사죄하고 다시는 접어들지 않겠다는걸 다짐했지요. 그래서 그럼 좋아, 한번 용서한다 하구서 미해군중좌 부쳐를 비롯한 숱한 포로들을 넘겨준 일이 있습니다. 제국주의자들의 침략적본성이란 절대로 변하지 않는것 같습니다. 조선전쟁에서 참패하고 미극동군사령관 클라크대장놈은 조선전쟁은 잘못 고른 시기에, 잘못 고른 장소에서, 잘못 고른 대상과 싸운 전쟁이였다.- 이렇게 개탄했는데 그후에도 계속 집적거렸지요. 예전에 우리 련대에 왜정때 곡마단에서 조교사로 있던 마사원이 있었는데 그 친구 말이… 말같은 짐승의 기억력이란건 5분밖에 안가기때문에 잘못을 저지르면 5분안에 때리든지 벌을 줘야 한다는겁니다. 신통한 소리지요. 미국놈들이 조선전쟁의 교훈을 인차 망각하고 자꾸 집적거릴 때면 그 마사원의 말이 생각났습니다.》

《저걸 보시오! 안동 12사가 나옵니다. 항일투사 최춘국동지가 이끌었던 사단입니다.》

승리자의 자부심에 넘치는 로대좌의 말을 들으며 그 녀자는 머리를 끄떡이기도 하고 밝게 웃으며 벗의 아버지를 돌아보기도 하고 사진기를 눈에 대고 열병대렬을 찍기도 하였다.

열병종대들은 보무당당히 정보로 걸어나갔다. 끝없이, 끝없이… 금빛술이 땅에 스칠듯이 펄럭이며 나가는 군기, 힘있게 울리는 발구름소리, 앞을 곧바로 내다보며 척척 발걸음을 옮겨가는 장령, 군관들, 병사들… 그들의 눈, 눈, 눈들에서는 미래에 대한 확신이 빛났다. 열병종대들에서 자기 수령과 당, 자기 조국과 인민에 대한 충실성과 헌신복무의 투지가 열풍으로 되여 휩쓸어나가면서 그 열기가 초대석에까지 후끈후끈 풍겨왔다. 광장을 뒤흔드는 군악소리… 곡은 바뀌고 또 바뀌여도 하나의 심장의 박동처럼 박자는 변함없이 일매지였다. 온 누리가 취주악의 울림, 만세의 웨침, 대지를 진감하는 발구름소리, 벌써 저 상수쪽에서 먼 뢰성처럼 울려오는 기계화보병군단의 발동기소리로 격동하였다. 높뛰는 심장, 벅차오를대로 올라 터질듯한 가슴… 리지야 꾸즈네쪼바는 무아경의 감격과 도취에 빠져 앞으로 지나가는 열병대오, 애국충정의 도도한 흐름, 열의 대하를 지켜보았다. 끓어번지고 사품치고 회오리치고 태풍처럼 휩쓸어나가는 그 모든 음향들의 바다속에서 쇠소리같은 맵짠 구령소리가 총탄처럼 하늘로 날아올랐다.

《우- 로-》

종대지휘관 장령이 군도를 뽑아 머리우에 쳐들었다가 눈부신 빛발을 날리며 휙 가로질러 아래로 엇비스듬히 뻗친다.

《봐-ㅅ!》

그 순간, 순간에 눈앞이 부옇게 흐려진다. 아, 어찌된 일인가… 그 장령의 은백색 군도가 현재와 과거를 가르고있던 그 무엇을 일격에 갈라버린듯… 갈라져 너펄거리는 장막을 터치며 짙은 안개바다같은것이 휩쓸어나와 시야를 흐려놓으며 넋을 송두리채 삼켜버렸다.

그것은 하많은 추억, 추억, 추억의 안개바다였다. 봄, 45년 봄… 봄… 아, 붉은 광장… 전승경축열병식… 삐오넬처녀애 리자는 … 향기그윽한 백합꽃다발을 안고 레닌묘의 주석단으로 깡충깡충 뛰여올라갔다. 같은 또래 삐오넬처녀애들과 함께… 모스크바에서 제일 이쁘고 똑똑한 애들이라고 했다. 리자는 주석단으로 올라가 자기가 맡은 로꼬쏩쓰끼원수를 찾아가 삐오넬경례를 하고 두손으로 꽃다발을 받들어올렸다. 원수는 한손으로 꽃다발을 받아쥐고 다른 손으로는 리자를 금발머리 인형애처럼 갑삭하게 들어올려 능금볼에 입을 맞추었다. 소리나게… 로꼬쏩쓰끼원수의 목을 그러안았다. 큰 귀에 입술을 대고 속삭이였다. 원수동지, 쓰딸린은 어디 있어요? 저기 저기 저 검은 수염이 소담한 저분이야. 쓰딸린을 보았다. 난생처음으로 아주 가까이에서… 이쪽 이쪽분들은 영화에랑 나오는 부죤느이, 워로실로브… 저 쓰딸린곁에 있는건 쥬꼬브원수… 리자는 작은 가슴이 한껏 부풀어오르고 고무풍선처럼 하늘로 둥둥 날아오를가봐 겁이 나 로꼬쏩쓰끼원수의 목을 더 꼭 그러안았다. 아, 얼마나 행복했던가? 그때 쓰딸린은 인류의 구성, 쏘련은 피압박인류의 해방자, 평화의 성새… 아, 그 자랑… 그 자부심!

리자는 자기 키가 자라는것보다 차례지는 행복이 더 빨리, 더 높이, 높이 자라오르는것 같았다. 즐거운 소년단야영, 엄마, 아빠와 함께 쏘치휴양… 중학교 공청생활, 웃음이 헤픈 처녀동무들, 장난이 심한 총각동무들, 그들과 함께 지내기 얼마나 재미났던가… 대학, 과학탐구에 몰두… 첫 원자탄시험, 첫 원자력쇄빙선 레닌호, 첫 인공위성, 첫 우주비행가 유리 가가린… 아, 그때 쏘련은 인류의 희망! 등대! 행복의 절정… 나는 쏘련사람이다! 이 말은 얼마나 긍지높이 울렸던가! 그때 그 자랑, 긍지! 그 자부심은 어디로, 어디로?… 대학 1학년때 설맞이 가장무도회의 밤, 밖에서는 눈바람이 울부짖고 강당안에서는 희열에 넘친 원무의 회오리바람…

 

 

     어디에로 그대 사라졌느냐

     내 청춘의 시절이여

      앞날은 무엇을 약속하는가

     헛되도다 내 눈 그대를 찾으나

     안개속에 묻혔는듯…

 

 

어찌하여 그 노래가 지금 다른 뜻으로 번지여 가슴을 치는가. 어디로 사라졌나, 어디로… 내 기쁨, 내 자랑, 내 희망 쓰웨따야! 어디로 사라졌나 쓰웨뜰라나… 내 삶의 빛… 헛되도다, 내 눈 너를 찾으나 안개속에 묻혔는듯… 어디로 갔나, 내 님, 내 남편, 정의인, 량심인, 어디로 사라졌나, 내 청춘시절이여, 빨지크해병 에핌할아버지, 아, 어디로 가셨나, 어디로 갔나, 쏘베트사람, 대로씨야 민족의 자부심! 어디로, 어디로 갔나… 붉은 광장, 낮이나 밤이나 봄이나 겨울이나 크레믈리지붕우에서 날리던 붉은기, 어디로, 어디로, 어디로? 아, 어디로? 미싸일탄두들이 줄지어 흐르던 붉은 광장의 열병식, 쏘련공산당의 영예, 영광… 어디로 갔나, 저세상에 갔어도 수억을 이끌던 레닌의 학설, 어디로 갔나, 레닌이 창건한 사회주의강국…

리지야 꾸즈네쪼바는 입술을 깨물고 전률하다가 손수건으로 입을 막으며 터지고 터지고 또 터져오르는 쓰디쓴 비애과 오열을 씹어삼키였다. 그러나 진정이 되지 않았다. 또 터져올랐다. 참을수 없었다.

행진하는 열병종대… 군악소리…

어딘가 인적이 없는 들판으로 달려나가 쓰러져 목놓아 울고싶었다. 그 녀자는 초대석에서 빠져나가려고 두리번거렸다. 사람, 사람, 사람… 초대석은 사람들로 빼곡이 차서 어느쪽에도 비집고 나갈 틈이 없었다. 터질 길이 막혀서인지 비분은 더더욱 참을수 없이 터져올랐다. 눌렀다. 남의 명절에 참가하여 이래서야 되는가. 누르고 또 눌렀다. 그러자 그것은 불같은 웨침으로 번지여 가슴에, 뇌리에 쩌렁쩌렁 메아리쳤다. 아, 여기선 열병식인데 우린 무엇이 모자라 무엇이- 무엇이 모자라? 풍요한 대지, 세계최강의 공업, 원유, 석탄, 강철… 무엇이-무엇이?- 꾸르챠또브, 필라쏘브, 레오노브, 솔로호브, 쇼쓰따꼬위츠, 울라노바, 가가린… 수백만 대군, 핵탄두미싸일, 무적의 전략공군… 도대체 무엇이-모자라?

무엇이 무엇이-모자라? 총, 총, 총 한방 쏘지 못하고 망했는가. 2억 5천만이 절망의 나락으로 굴러떨어졌는가. 망국노, 매춘부, 거지, 강도단… 리지야 꾸즈네쪼바는 그만 리성을 잃고 오열을 터뜨리기 시작하였다.

다가오는 기계화보병군단에 정신이 팔렸던 류한무는 깜짝 놀라 녀인의 어깨를 그러안았다.

《리지야 꾸즈네쪼바, 왜 이러시오? 이 좋은 날에… 그만… 그만… 그치시오. 왜 이럽니까? 리지야 꾸즈네쪼바…》

그 위로에 설음이 터져올라 그 녀자는 흑흑 소리를 내여울었다.

비오듯 쏟아져내리는 눈물이 로대좌의 군복단추며 훈장들에 뿌려졌다. 비방울처럼… 피방울처럼…

류한무는 당황해서 수진에게 너도 손을 잡으라고 눈짓하고 화들화들 떠는 그 녀자의 어깨를 가슴에 꽉 끌어안았다.

《그만… 그만… 그치시오. 리지야 꾸즈네쪼바, 사람들이 보겠습니다. 당신은 위대한 로씨야민족의 딸이 아닙니까…》

슬라브의 자존심, 레오노브의 지성, 가가린의 심장을 생각하며 누르며 삼키려고 모지름을 썼건만 더 터져올라 입술을 깨물고 가슴을 부여잡고 몸부림쳤다.

눈앞이 뿌옇게 흐려졌다. 안개가 뒤설레이는듯… 사품치는 안개저쪽에서 열풍을 일으키며 밀려나오는 기계화보병종대, 발동기의 동음소리, 무한궤도소리, 취주악의 웨침, 그 소리들에 날아난듯 안개는 간곳 없고 눈앞으로 확 다가오는 기계화보병대오. 군악의 가락에 맞추어 일매지게 흐르는 무한궤도, 무한궤도, 무한궤도수송차우에 줄지어 앉아있는 병사, 병사, 병사들, 불꽃같은 눈들에서 빛발쳐나오는 의지, 얼굴마다에 넘치는 긍지, 자부심, 하나같이 름름하고 당당한 자세… 웬일인지 온몸이 싸늘하게 식어들고 피가 얼어붙는듯… 가슴에 얼음쪼각 같은것이 날아들어 쿡 박히는듯한 충격, 심장이 비틀려지는듯한 아픔, 아 누구냐? 쏘련… 사회주의강국을 병들게 하고 채무자의 멍에를 들씌운자들은 누구냐- 그 녀자는 화들화들 떨었다…

로씨야의 명예, 로씨야의 자부심을 짓밟은자들은 누구냐, 아름답고 고상한 로씨야녀성들에게 매춘의 치욕을 강요한 자들은 누구냐. 배신자들, 변절자들, 저주가 있으라, 저주가 있으라, 저주가 있으라!

뒤따라 보병들을 태운 무한궤도수륙량용차행렬이 끝없이 끝없이 지나가고 땅크종대들이 밀려나왔다. 광장을 뒤흔드는 동음… 언제 공군사열이 시작되였는지 하늘로는 중폭격기편대들이 날아갔다. 그뒤로는 언제인가 과학환상소설에서 본듯한 삼각형의 추격기편대들이 빛살같이 날아왔다.

그 녀자는 재빛으로 퇴색한 눈으로 하늘을 치떠보았다.

그것들은 군사학에서 경제적잠재력이라고 하는 이 나라의 깊은 경제적중심, 국방공업으로부터 직접 열병광장으로 밀려나오는것 같았다.

강철의 대하, 무력의 시위는 언제 끝나려는지 새라새로운 타격수단들이 흘러가더니 이번에는 미싸일종대가 나타났다. 줄줄이 늘어선 류선형미싸일들의 우람찬 동체, 그것들을 끄는 무한궤도견인차, 쇠소리, 쇠소리… 짓눌리는 땅, 대지와 대기가 전률하고 초대석까지 움씰거리는듯… 견인차운전실에 앉아있는 군관과 병사, 미싸일뒤쪽에 앉아있는 병사들의 름름한 모습, 침착한 얼굴… 비탄과 분격과 울분은 어디로 가고 어찌하여 가슴이 이리도 편안히 가라앉고 든든해지고 설레이기까지 하는가… 아 어찌하여… 어찌하여 저 병사들이 이민족의 아들이 아니라 심정이 통하고 호흡이 통하고 피가 통하는 동포의 아들로 안겨오는가… 구리빛얼굴, 강철빛얼굴, 얼굴, 얼굴… 어찌하여 저들이, 저 병사들이 원한을 하소하고싶도록, 의지하고싶도록 미덥고 친근하게 안겨오는가! 별안간 귀가 확 열리며 초대석의 환성, 박수, 웨침소리들이 태풍처럼 몰아쳐와 정신을 휘둘러놓는다.

리지야 꾸즈네쪼바는 이름할수 없는 환희가 터져올라 미싸일종대를 향해 박수를 쳤다. 손바닥에 볼이 일도록 치고 또 쳤다. 자기가 여기서 유일한 이민족의 딸이라는 조심성은 어디로 날아가버렸는지 사람들의 환희에 한데 어울려 박수도 치고 손도 내흔들었다. 그리고 가슴이 들뜨고 떠들어대고싶어져 로대좌를 돌아보았다.

《대좌동지! 저것도… 저 미싸일들도 조선동지들이 자체로 만든건가요?!》

맏이가 큰소리로 통역했으나 류한무는 기계의 동음이며 광장의 환호소리, 군악소리에 귀가 멀어 그 녀자한데 허리를 굽히며 소리쳤다.

《뭐ㅡ라구요ㅡ뭐ㅡ라구요?》

수진이 더 큰소리로 설명하자 류한무는 리지야 꾸즈네쪼바의 어깨에 손을 얹으며 웨치였다.

《그렇습니다. 다ㅡ다ㅡ우리 손으로ㅡ 우리 기술로ㅡ》

《대단합니다!》 그리고 그 녀자는 손을 들어 열병대오를 가리키며 웨쳤다.

《대좌동지! 이 무력시위! 사회주의 지키는 이 군대! 이 시위야말로 평양선언! 평양선언입니다!》

《옳습니다! 리지야 꾸즈네쪼바선생, 좋은 말씀을 해줘 감사합니다!》

주석단우측 초만원을 이룬 외국인초대석에서도 감격과 환희의 선풍이 몰아치고있었다. 행성의 모든 대륙에서 온 각이한 피부색, 각이한 언어의 외국손님들은 자신들을 잊고 열병대오를 향해 폭풍같은 박수도 보내고 탄성도 터뜨리며 설레이였다. 철퇴같은 주먹을 흔들며 무엇이라고 웨치는 아프리카 어느 나라 군사대표단성원, 기갑종대를 향해 거수경례를 붙인채 군모채양에서 손을 떼지 못하는 남아메리카의 중년장교, 꽃양산을 높이 쳐들어 좌우로 흔들며 환호하는 유럽녀성… 라옙쓰끼는 왼쪽 가슴을 움켜쥔채 주석단쪽을 돌아보았으나 숲을 이룬 사람들의 설레임에 가리워 아무것도 볼수 없었다.

그때 주석단에서는 외국수반들이며 당수들이 위대한 수령님께로 다가와 혁명무력을 창건하고 육성해오신 60여성상의 로고에 경의를 표하며 축하의 인사를 드리였다. 수령님께서는 그들과 악수를 나누고는 담담하게 말씀하시였다.

《감사합니다. 우리 무력이 이렇게 현대화된 무적강군으로 된데는 김정일최고사령관의 수고가 컸습니다. 나는 김정일장군이 곁에 있어 일하기 헐합니다. 사실 축하는 그가 받아야 마땅합니다.》

김정일장군님은 손님들의 인사를 받고 정중히 답례하고는 다시 열병대오를 바라보시였다.

그이의 시선이 가닿자 열병종대들에서는 생기와 활력, 충성의 열정이 백배로 터져올라 행진하는 그 기세에 하늘땅이 뒤흔들렸다. 군악의 장쾌한 웨침소리… 광장으로는 미싸일종대가 지나가고있었다. 무한궤도견인차들에 끌려 줄줄이 흘러가는 류선형의 미싸일들, 그 은회색 동체들에서 해빛이 부서지고 삐죽하게 내뻗친 빨간 탄두들에서 아지랑이가 피여오르는듯 하였다.

무한궤도견인차운전칸들에서 주석단을 향하여 대렬경례를 하는 군관들과 병사들의 눈, 눈, 눈들에서 불꽃이 날리는것 같았다.

최고사령관동지께서는 만족한 안색으로 손을 높이 들어 그들에게 답례를 보내시였다.

광장은 발동기들의 동음과 무한궤도소리로 떠나가는듯 하였다…

평양선언이 인류의 아름다운 노래라면 혁명무력의 그 시위는 힘의 화음, 철의 장엄한 반주였다.

열병식이 끝나자 김정일동지께서는 주석단가녁으로 나와 손을 높이 들어올리며 초대석에 인사를 보내시였다. 초대석의 로병들과 공로자들을 비롯한 각계 인사들은 그이의 존함을 부르며 만세를 목청껏 웨치면서 환호하였다.

 열광의 선풍속에서 리지야 꾸즈네쪼바는 터져오르는 격정에 목이 메여 만세도 부르지 못하고 두손을 가슴앞에 모아쥔채 그이를 우러러 쳐다보기만 하였다.

(아, 김정일동지!…)

그 녀자의 눈에 어린 물기가 강렬한 해빛에 불꽃처럼 빛났다.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서비스이용약관 모바일 버전으로 보기 상단으로


Copyright © 2010 - 2023 www.hanseattle1.com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