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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받은 생을 돌이켜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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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사나이
댓글 0건 조회 3,424회 작성일 22-05-15 0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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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체111(2022)년 5월 15일

복받은 생을 돌이켜보며

 

사람들은 나를 보고 복받은 인생이라고 모두 부러워한다.

30대 초엽에 사는 평범한 녀성인 내가 만사람의 축복속에 이 세상 만복을 다 누리게 된것은 그 어떤 비범한 기질이나 재능을 가지고있어서가 아니다.

평범한 군관의 딸로 태여나 수도의 교외에 있는 농촌마을에서 성장한 나의 인생에서 극적인 변화가 일어난것은 주체98(2009)년 1월 15일 김정숙평양제사공장을 찾아주신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장군님께 나의 작업모습을 보여드린 그날부터였다.

공장에 갓 들어와 일을 배우기 시작한 양성공으로서 그런 영광을 지니게 될줄 생각조차 하지 못하였다.

그날밤 꿈만같은 행복에 잠 못 이룬 나는 다음날 이른아침 일터로 달려갔다.

한것은 양성공에 불과했던 나의 미숙하기 그지없는 작업모습을 위대한 장군님께 보여드린것이 몹시 마음에 걸렸기때문이였다.

위대한 장군님께서 우리 공장에 다시 오시는 그날엔 혁신자의 모습, 고급기능공의 모습을 보여드릴 굳은 결심을 다지며 높은 목표를 내세우고 뛰고 또 뛰였다.

허나 나의 그 꿈은 실현될수가 없었다.

온 나라가 피눈물에 잠겼던 그 나날 나는 굳게 맹세하였다.

위대한 장군님께 보여드리지 못한 혁신자의 모습을 경애하는 김정은원수님께 꼭 보여드리리라고.

가슴은 활활 불타는데 육체가 따라서지 못하여 주저앉고싶을 때도 있었지만 그때마다 조직과 집단의 고무와 방조가 있었기에 나는 분연히 일떠서서 혁신에로 줄달음칠수 있었고 집단주의경쟁의 거세찬 열풍속에 다년분계획완수자로 자라날수 있었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의 탄생 100돐이 되는 뜻깊은 해에 조선청년의 최고영예인 김일성청년영예상수상자가 되였고 그해 8월 28일에는 청년절경축대회 대표로 영광의 대회장에도 들어서게 되였다. 뿐만아니라 조직과 집단의 그 믿음속에 고급기능공으로, 혁신자로 성장한 나는 꿈에도 소원하던 조선로동당원의 영예도 지니게 되였다.

주체105(2016)년 6월 20일 이날 나는 한생에서 가장 크나큰 영광과 행복을 받아안았다.

이날 우리 공장을 찾아주신 경애하는 원수님께서는 충정의 70일전투기간에 년간 인민경제계획을 앞당겨 완수하고 조선로동당원의 영예를 지닌 동무라는 공장일군들의 보고를 받으시고 못내 대견해하시며 나의 젖은 손을 허물없이 잡아주시였다.

경애하는 원수님께서는 나를 미덥게 바라보시며 나에게 혁명하는 사람에게 있어서 당원이 되는것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더 값높은 영예는 생의 마지막순간까지 당원의 고귀한 정치적생명을 계속 빛내여나가는것이라는 한생의 좌우명으로 될 귀중한 가르치심을 주시였다.

경애하는 원수님의 사랑과 믿음은 청춘의 활력을 부어준 생명수였고 시대의 앞장에서 줄기차게 달려가는 로력혁신자로 되게 한 원동력이였다.

나는 그해 6년분 인민경제계획완수자로 되였다.

그 나날에 받아안은 사랑과 배려는 또 그 얼마인지 모른다.

위대한 장군님의 존함이 모셔진 시계표창을 수여받은 나는 지난해 9월 공화국창건기념일을 맞으며 전국의 로력혁신자들과 함께 당중앙위원회 본부청사에서 경애하는 원수님을 모시고 기념사진을 찍는 크나큰 영광을 또다시 받아안게 되였다.

애어린 단발머리로 기대앞에 섰던 내가 오늘은 가정을 이루고 딸자식을 가진 어머니가 되였고 작업반장이 되였다.

나는 거듭거듭 안겨지는 경애하는 원수님의 뜨거운 사랑과 믿음에 충성으로 보답하기 위하여 나 하나만이 아닌 작업반원들모두가 혁신자가 되고 고급기능공이 되도록 적은 힘이나마 다 바치겠다.

하여 5개년인민경제계획을 남먼저 완수하고 경애하는 원수님께 충성의 보고를 올리겠다.

김 정 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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