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웅이 되는 길 (5) > 기사

본문 바로가기
사이트 내 전체검색

기사

영웅이 되는 길 (5)

페이지 정보

profile_image
작성자 사나이
댓글 0건 조회 2,246회 작성일 22-07-29 00:49

본문

영웅이 되는 길 (5)

 

영웅뒤에 서있는 참된 스승


전화의 영웅들중에는 한편의 시와 함께 오늘도 인민의 마음속에 열여덟살의 꽃나이청춘으로 영생하고있는 인민군병사가 있다.

그가 바로 리수복영웅이다.



영웅적행동은 육체에 대한 정신의 승리이다는 말이 있다.

1951년 10월 30일.

1211고지의 좌측 무명고지를 빼앗기 위한 전투를 앞두고 돌격조의 조장으로 임명된 리수복영웅은 심장에 높뛰는 맹세를 담아 자기의 수첩에 이렇게 썼다.


《나는 해방된 조선의 청년이다

생명도 귀중하다

찬란한 래일의 희망도 귀중하다

그러나 나의 생명, 나의 희망, 나의 행복

그것은 조국의 운명보다 귀중치 않다

…》


영웅은 비록 18살 꽃나이에 생을 마쳤어도 그가 남긴 시는 70여년이 지난 오늘까지도 이 땅의 피끓는 수천만 청춘들을 조국수호위훈에로 고무하고있다.

하다면 해방된 조선의 평범한 청년이였던 리수복영웅의 심장에 어떻게 되여 그토록 고귀한 애국의 넋이 새겨질수 있었던가.

영웅의 뒤에는 영웅을 키워낸 참된 스승이 있다.

조국이 기억하고 인민이 기억하는 공화국영웅을 키워낸 스승, 그는 순천고급중학교(당시) 문학교원이였던 최일근선생이였다.

해방직후 리수복영웅이 순천고급중학교에 입학하여 첫 문학수업을 받을 때였다.

담임교원인 최일근선생은 학생들에게 며칠밤을 지새우며 등사기로 찍어낸 《백두산》시집을 나누어주고 따라읊도록 하였다.

학교에 문학소조를 조직하고 시 《백두산》을 더 많은 학생들에게 배워주면서 그들의 가슴속에 수령에 대한 열렬한 숭배심과 조국애를 키워준 최일근선생의 모습은 리수복영웅의 마음속에 참된 애국자의 모습으로 깊이 자리잡게 되였다.

최일근선생이 어떤 사람인가 하는것은 그의 최후가 잘 말해준다.

조국해방전쟁이 일어나자 정치공작대로 서울에 나가 남조선의 청년학생들에게 혁명송가 《김일성장군의 노래》와 시 《백두산》을 보급하는데 전념하던 최일근선생은 1950년 9월 적들에게 체포되였다.

그는 악착한 고문을 들이대며 전향을 강요하는 원쑤들을 단죄하면서 견결히 맞서 싸웠으며 사형장에 나선 최후의 순간 《김일성장군 만세!》를 소리높이 웨쳤다.

불뿜는 적화구앞에 한순간의 주저도 없이 피끓는 가슴을 내댄 육탄영웅의 뒤에는 바로 이런 스승이 서있었다.

하다면 최일근선생이 그토록 시 《백두산》을 사랑했고 그 누가 뭐라고 해도 학생들에게 영명하신 김일성장군님만을 따라야 한다고 가르친것은 과연 무엇때문이였던가.

최일근선생에게도 젊은 시절 갈길 몰라 방황하던 인생을 참된 진리의 길로 이끌어주고 위대한 수령님을 따르는 혁명의 길에 세워준 잊지 못할 스승이 있었다.

반일학생운동에 참가하였던 최일근선생이 1941년 가을 적들에게 체포되여 서대문형무소에 갇혔을 때였다.

놈들에게 매맞은 어혈과 통분함으로 잠들지 못하고있을 때 어둠속에서 그의 손을 꼭 잡으며 다정히 속삭이는 사람이 있었다.

30대의 그 사람은 감방안에서 기회가 있을 때마다 보천보전투를 비롯한 조선인민혁명군의 투쟁소식에 대하여 그리고 백두산의 장수별로, 전설적위인으로 온 민족이 우러르는 김일성장군님에 대하여, 그분의 독창적인 사상과 뜨거운 인품에 대하여 최일근선생에게 하나하나 이야기해주었다.

그는 취조실에 오갈 때에도 쇠고랑을 채운 두손을 높이 쳐들면서 감방에 갇힌 사람들에게 힘을 주었고 최일근선생과 눈길이 마주칠 때면 깊은 뜻과 믿음이 어린 눈인사를 보내주군 하였다.

몇달 안되는 감옥생활이였지만 당시 18살이였던 최일근선생에게 그 나날은 참된 혁명가란 어떤 사람인가를 알게 되고 김일성장군님을 따르는 길이 조국해방을 안아오는 길이라는 혁명의 진리를 뼈에 새겨안은 인생의 귀중한 수업이였다.

여러번의 공판을 거쳐 사형판결을 받았으나 조금도 비관하지 않고 적들과 맞서 싸웠으며 혁명적절개를 꿋꿋이 지킴으로써 최일근선생에게 혁명의 진리를 신념의 기둥, 마음의 기둥으로 심어주고 실천으로 그것을 보여준 30대의 그 사람은 바로 《혜산사건》으로 하여 적들에게 체포되여서도 옥중투쟁을 계속 벌린 항일혁명투사 박달동지였다.

뼈가 부서지는 고통속에서도 해방된 조국의 모습을 그려보며 밝은 미소로 원쑤들을 전률케 하던 항일혁명투사 박달동지, 그에게 혁명의 진리를 깨우쳐주시고 죽음도 이겨내는 불굴의 혁명적신념을 안겨주신 스승은 위대한 수령님이시였다.

혁명의 옳바른 지도사상을 찾아 모대기던 박달동지는 백두산에서 위대한 수령님을 만나뵈온 때부터 그이의 위대한 사상에 매혹되여 수령님을 혁명의 수령으로, 한생의 스승으로 모시고 투쟁의 한길을 변함없이 걸어올수 있었으며 참된 인간, 참된 애국자, 참된 혁명가로 한생을 빛내일수 있었다.

리수복영웅과 그의 스승 최일근선생, 항일혁명투사 박달동지…

아름드리나무에 잎새와 줄기가 아무리 무성하여도 그 뿌리는 오직 하나이듯이 우리 혁명의 로정에 새겨진 수많은 영웅들이 지녔던 불굴의 신념과 의지, 조국과 인민에 대한 뜨거운 사랑과 헌신은 바로 위대한 수령님께서 심어주시고 키워주신것이였다.(계속)

본사기자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서비스이용약관 모바일 버전으로 보기 상단으로


Copyright © 2010 - 2023 www.hanseattle1.com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