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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양이 떠올린 영광의 송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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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사나이
댓글 0건 조회 1,180회 작성일 22-09-08 16: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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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양이 떠올린 영광의 송가​

 

맑고 푸른 9월의 하늘가로 우리의 국가 《애국가》가 장엄하게 울려퍼진다.

솟구치는 격정으로 심장이 높뛰고 눈굽이 쩌릿이 젖어들게 하는 이 숭엄한 노래를 들을수록 할아버지에 대한 추억은 깊어만진다.

그럴수록 《애국가》시인으로 조국과 인민의 사랑을 받아온 할아버지의 한생이 새겨주는 력사의 진리가 나의 심금을 더욱 뜨겁게 울려준다.


* *


나의 할아버지의 이름은 박세영이다.

경기도 고양군의 가난한 가정에서 20세기의 두번째해에 태여난 할아버지의 유년시절은 빼앗긴 나라, 짓밟힌 강토에 대한 울분속에 흘러갔다.

할아버지에게는 어린시절부터 하나의 꿈이 있었는데 그것은 시인이 되는것이였다.

애국심이 남달리 뜨거웠던 증조할아버지는 막내인 할아버지가 일제에게 항거하여 아름다운 삼천리강산을 노래하는 시인이 되기를 바라며 하루한끼 풀죽도 제대로 먹지 못하는 어려운 형편이였지만 어느 한 고등보통학교에로 할아버지의 등을 떠밀어주었다고 한다.

1922년에 학교를 졸업한 할아버지는 그후 진보적문학예술단체인 염군사를 거쳐 카프의 핵심성원으로 되였다.

지금도 문학사교재들과 해방전 문학작품집들에는 할아버지의 이름과 함께 시 《산제비》가 오르군 한다.

혹시 박세영이란 이름은 몰라도 시 《산제비》라고 하면 동심에 새겨진 인상깊은 시구절과 함께 모르는 사람이 없을것이다.

이런것으로 하여 당시 뭇사람들은 할아버지를 가리켜 《산제비》시인이라고 불렀다.

가난한 인민을 위해, 짓밟힌 조국을 위해 재생의 생명수를 속시원히 뿌려줄 변혁의 구름을 꼬리에 달고오는 산제비를 그리여 목메인 웨침을 터뜨렸던 할아버지는 자신이 《산제비》가 되여 《구름을 헤치고 안개를 헤쳐》 시련많은 창작과 투쟁의 길을 걸어오면서 희망의 나래펼칠 행복의 새 사회를 갈망해왔다.

허나 그 시절 《산제비》가 그리도 날아보고싶어하던 하늘은 번개치고 우뢰울며 망국의 비운속에 꺼져가던 하늘이였다.

민족의 태양이 삼천리를 비친 해방의 날은 《산제비》에게 있어서 인생의 새 출발을 약속해준 아침이였고 위대한 수령님의 품에 안긴 그날은 이 세상에 두번다시 태여난 운명전환의 출생일이였다.

지금도 미제가 강점한 땅에서 참다운 조국을 그려 몸부림치던 자기에게 친히 보내주신 위촉장을 운명의 징표마냥 가슴에 품고 평양으로, 위대한 수령님의 품으로 달려오던 때를 감격속에 이야기하던 할아버지의 모습을 잊을수 없다.

주체35(1946)년 6월 27일 위대한 수령님을 처음으로 만나뵈온 할아버지는 뜨거운 눈물을 흘리며 이렇게 말씀올렸다고 한다.

《장군님, 자나깨나 장군님을 뵈옵고싶던 시인 박세영이 삼가 문안인사를 올립니다. 산에서 왜놈들과 싸우시느라고 얼마나 고생하셨습니까. 장군님께서 나라를 찾아주시여 이제는 온 겨레가 내 조국, 내 땅에서 자자손손 복락을 누리며 살게 되였습니다.》

이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자애깊으신 시선으로 할아버지를 바라보시며 작가, 예술인들은 해방된 조국땅우에 하루빨리 민족문화를 건설해야 한다고 하시면서 가족들을 데려오는 문제를 비롯하여 생활의 구석구석에 이르기까지 친어버이심정으로 헤아려주시였다.

그날의 환희와 감동을 할아버지는 김일성장군께 드리는 시 《해볕에서 살리라》에 담아 이렇게 격조높이 구가하였다.

그 빛 해살같이 우리를 비치여

우리를 행복에로 이끌어주나니

무엇을 서슴오리까

우리 다 그 해빛에서 살리라

하여 밝으신 그 령도따라 나가리라

빛나는 민주의 새 나라로


태양이 찬란히 빛나는 진정한 조국을 보았다고, 태양이 빛나는 땅이 자기의 삶을 꽃피울 어머니조국이라고 눈물을 흘리며 읊은 이 시에는 그토록 모대기던 태양의 품, 사랑의 바다에 안긴 행복과 긍지가 뜨겁게 맥박치고있었다.

그해 9월,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할아버지에게 문수봉기슭에 아담한 집을 마련해주시고 서울에 남겨두었던 가족들도 모두 데려오도록 해주시였다.

사선을 헤치고 불원천리 달려와 안긴 품, 인생도 문학도 다 맡긴 그 품이 너무도 넓고 따사로워 할아버지는 행복의 눈물속에 불우했던 지난날을 돌이켜보았다.

해방전 저주로운 그 세월에 병마와 기아로 숨진 어린 세 아들과 딸 하나를 이름없는 산기슭에 자그마한 봉분으로 련달아 남겨놓고 피눈물을 뿌리며 땅을 치던 할아버지였고 황토먼지이는 이국의 방랑길에서 단칸집 하나 마련할수 없어 눈보라치는 겨울날 다리밑에 거적때기를 두르고 살아야 했던 할아버지였다.

그 굴욕의 나날에 가슴속에 응혈로 박히고 쌓인 피방울을 씻어내듯 할아버지는 감사의 눈물, 행복의 눈물을 맘껏 쏟으며 몸과 맘 다 바쳐 위대한 태양의 이 나라를 길이 받들리라 맹세를 다지고 또 다지였다.

주체35(1946)년 9월 27일 또다시 할아버지를 비롯한 문필가들과 자리를 같이하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오랜 지기를 만나신듯 반가워하시며 하루빨리 애국가를 창작하여야 하겠다고 하시며 두시간나마 그 창작방향에 대하여 구체적으로 가르쳐주시였다.

그날 어버이수령님께서는 우리 나라는 참으로 아름다운 나라이라고, 세면이 바다로 둘러쌓여있고 산들은 기세차고 장엄하며 전원에는 오곡백과가 무르익는다고, 우리 나라에는 지하자원, 금은보화도 무진장하다고, 우리 인민은 반만년의 오랜 력사를 가진 인민이며 찬란한 문화를 가진 슬기로운 인민이라고 하시며 이렇게 아름다운 조국과 슬기로운 투쟁전통을 가진 조선인민의 민족적긍지와 자부심을 노래에 담아야 인민들이 이런 노래를 부르면서 자기 조국에 대한 애국심이 더욱더 솟아날것이라고 하시였다.

후날 할아버지는 수령님의 교시를 받아안던 때를 추억하며 태양의 인력에 끌리듯이 수령님의 열화같은 애국의 세계에 끌려들며 그 심원한 애국의 불길속에 활활 타오르는것을 느꼈다고 이야기하였다.

수령님의 뜻을 받들어 애국가를 창작하기 위한 사업은 전인민적인 사업으로 진행되였으며 창작된 1 000편중 심의에 통과된 100여편의 가사들속에는 할아버지가 창작한 2편도 있었다.

주체36(1947)년 6월 27일 《애국가》의 시청회에 친히 나오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창작가들을 대견하게 바라보시며 흥분된 어조로 오늘에야 《애국가》가 나왔다고 하시며 할아버지가 창작한 다른 한편은 《빛나는 조국》의 제명으로 부르자고 크나큰 영광을 안겨주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저의 할아버지와 《애국가》를 작곡한 김원균선생을 치하하시면서 할아버지를 자신의 옆에 앉게 하신 다음 가사 한구절한구절을 짚어가시며 세심한 지도를 주시였다.

수령님께서는 《애국가》에서 《찬란한 문화로 자라난》시행부터 그 아래는 반복하여 부르는것이 좋겠다고 하시면서 그러면 선률로 보아서도 효과적이고 음악상조화도 잘될뿐아니라 노래도 한결 장중해지고 부르는 사람들로 하여금 민족적긍지와 자부심을 가지게 할수 있다고 하시였다.

우리의 《애국가》는 이렇게 탄생하였고 태양의 손길아래 《산제비》시인은 이렇게 높이도 솟구쳐올랐다.

《애국가》, 그것은 태양조선의 위대한 찬가였으며 할아버지의 운명개척에서 근본적전환을 보여주는 인생행로의 대표작이였다.

과연 태양의 품에 안기지 못했더라면 《애국가》시인으로서의 할아버지의 복된 삶, 후대들의 추억속에 오늘도 살아있는 시인으로 남아있을수 있었겠는가.

아마 남조선에서 《산제비》의 꿈을 안고 모대기다가 그대로 이름모를 초야에 묻혀버릴 한갖 방랑시인에 지니지 않았을것이다.

허나 위대한 수령님의 대하같은 넒은 품에 안겼기에 할아버지는 인민의 해방을 념원하던, 인류의 리상을 갈망하던 《산제비》시인으로부터 해방된 새 조국땅에서 세계에 대고 민족적긍지와 자부심을 가슴터쳐 처음으로 노래한 《애국가》시인으로 자라날수 있은것 아니겠는가.

하기에 생전에 늘 할아버지는 《애국가》시인이라는 사람들의 찬사의 말을 들을 때마다 이렇게 말하군 하였다.

《〈애국가〉의 작가가 저라고 하지만 그것은 잘 모르고 하는 말입니다. 사실 〈애국가〉는 어느 개별적시인이나 작곡가가 창작한 노래가 아닙니다. 항일의 불비속을 뚫고 조국을 찾아주시고 민족을 구원하여주신 어버이수령님께서 우리 인민들에게 안겨주신 조국찬가이며 조국송가입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저에게 〈애국가〉를 쓸데 대한 구체적인 상을 안겨주시고 시어 한마디, 시구 하나에 이르기까지 세심히 다듬어 완성시켜주시였습니다.》

진정 위대한 수령님의 품이 있어 지난날 자유와 해방을 그토록 갈망하며 할아버지가 소중히 간직했던 《산제비》의 리상이 현실로 꽃펴날수 있었고 작가로서의 할아버지의 한생도 빛나게 장식될수 있었던것이다.

《애국가》는 위대한 김일성시대에 이어 우리 아버지세대에는 승리와 영광의 상징으로 고난과 시련을 이겨내며 위대한 김정일시대를 빛내이게 하였다.

나라마다 국가가 있고 국가는 나라를 대표하는 송가이다.

하지만 국가라고 하여 다 나라를 찬양하는 노래로 되거나 전인민적송가로 애창되는것은 아니다.

국가들가운데는 시대적제한성으로 하여 해당 나라 인민들속에서 널리 불리우지 못하고 외교의식이나 행사를 위한것으로만 리용되는 경우도 있다. 그런가 하면 힘이 약해 침략자들에게 국권을 빼앗기고 자기의 국가마저 잃은 인민들도 적지 않다.

허나 우리 인민은 대대로 탁월한 수령을 높이 모시여 《애국가》를 가장 아름다운 조국의 노래로 심장속에 간직하고있으며 령도자의 두리에 굳게 뭉쳐 인류가 리상향으로 그려보던 사회주의강국의 길로 승리와 영광을 떨치며 줄달음쳐가고있다.

《애국가》, 우리의 국가가 장중하게 울려퍼질 때마다 온넋과 심장으로 조용히 따라부르시던 경애하는 김정은원수님의 위대한 영상이 어려온다.

조국앞에 가장 경건하고 가장 성실하신 경애하는 그이께서 《애국가》를 마음속으로 부르시며 그려보신것은 과연 무엇이던가.

그것은 한평생 《애국가》의 선률에 심장의 박동을 맞추시며 자신을 깡그리 불태워오신 위대한 수령님들에 대한 한없는 그리움과 위대한 수령님들께서 남기신 최대의 애국유산인 사랑하는 내 조국을 만방에 빛내이실 철석의 의지이다.

우리 어찌 다 헤아릴수 있으랴.

돌이켜보면 피눈물의 12월에서 시작된 력사의 생눈길은 경애하는 원수님 《애국가》의 선률속에 우리 국가의 존엄을 걸고 사생결단으로 헤쳐오신 험준한 길이였다.

일찌기 우리 나라는 대국들을 움직이는 전략적요충지에 있다는 유명한 정의로 오랜 세월 굳어져있던 지정학적숙명론을 깨뜨리신 경애하는 그이께서는 희생적인 헌신과 결사의 투쟁으로 그 누구도 감히 건드릴수 없는 세계적인 전략국가의 지위에 우리 공화국을 우뚝 올려세워주시였다.

우리 원수님 《애국가》를 마음속에 안고 가고가신 그 위민헌신의 길우에는 인민의 행복이 별천지처럼 펼쳐질 래일을 그려보시며 걷고걸으신 삼복철강행군길도 있었고 심야강행군길도 있었다.

오로지 인민의 존엄과 행복을 위하여 깊은 밤, 이른 새벽 끝없이 이어가신 우리 원수님의 강행군 자욱자욱에 얼마나 비장한 각오가 새겨져있었던가.

지난 5월 우리 공화국에 조성되였던 건국이래 대동란의 나날들이 되새겨진다.

2년 3개월나마 굳건히 지켜오던 우리의 방역장벽에 파공이 생긴 너무도 돌발적인 사태앞에서 누구나 당황하여 어찌할바를 몰라하였건만 경애하는 우리 원수님께서는 사랑하는 인민의 생명과 건강을 위해, 위대한 내 조국의 존엄과 존립을 위해 주저없이 방역대전의 선두에 나서시였다.

고열로 그처럼 고생하시는 속에서도 앓고있는 천만자식들을 걱정하시며 가정에서 준비한 상비약품들을 고스란히 인민들에게 안겨주시고 정치국회의들을 련이어 지도하시는 바쁘신 속에서도 위험천만한 수도의 약국들도 몸소 돌아보시며 전설같은 사랑과 정의 서사시를 수놓으시였다.

그 나날 우리 원수님의 심장속에 고패친것은 바로 《애국가》였으리라.

몸과 맘 다 바쳐 이 조선 길이 빛내이려는 애국에 불타는, 그처럼 소중한 인민의 생명과 건강이 자신의 어깨우에 지워져있다는 숭고한 사명감은 91일만에 이 땅에 그처럼 고대하던 평온과 안정을 안겨주었고 세계방역사상 최장의 신기록을 세운 우리 공화국이 다시금 가장 빠른 시일안에 악성비루스를 격퇴하는 기적의 나라로 존엄떨치게 하였다.

하기에 우리 인민들은 경애하는 원수님의 무한한 애국의 세계에 떠받들려 흐른 이 땅의 10년간을 보면서 원수님처럼 조국을 사랑하며 《애국가》의 선률을 더 높이 울려갈 결의를 굳게 가다듬는것이다.

나라없던 그 세월 도이췰란드의 비스마르크언덕을 넘어 올림픽우승컵을 안아올렸건만 침략국가의 저주로운 곡조가 울리는 속에 자기의 국가마저 빼앗긴 설음을 묵묵히 씹어삼키며 시상대에 올라야만 했던 우리 인민이 한세기가 지난 오늘날에는 가슴뿌듯한 긍지에 넘쳐 세상을 향해 위대한 국가를 긍지높이 부르며 존엄높은 주체조선의 인민임을 자부하고있다.

지금도 들리여온다.

뜻깊은 조선인민혁명군창건 90돐경축 열병식장에서 주체강국의 존엄과 기상을 안고 세차게 나붓기던 우리의 성스러운 국기의 펄럭임소리며 김일성광장에 울려퍼지던 만세의 환호성이.

위대한 강국의 공민들과 조국수호의 전초선을 지켜선 천만장병들이 《아침은 빛나라 이 강산…》 하고 《애국가》를 목메여 부르던 그때 마음속에 끓어넘치던 격정은 무엇이였던가.

우리 국가가 이렇게도 높이 올라섰다는 긍지와 자부심, 위대한 강국의 인민답게 순결한 량심과 고결한 애국의 마음을 깡그리 다 바쳐가려는 열망이였다.

그렇다.

우리는 이렇게 솟구쳤고 이렇게 강대해졌으며 우리의 《애국가》는 이렇게 날과 달을 이으며 더욱더 장중하게 울려퍼지고있는것이다.

그 나날속에 《애국가》시인의 손녀인 나도 자랑스러운 우리의 체육인들과 함께 《애국가》의 선률에 민족의 존엄을 담아싣고 피타게 노력하여 제16차 국제수영련맹 세계선수권대회에서 세계의 하늘가에 우리의 《애국가》를 긍지높게 울펴퍼지게 하는데 적은 힘이나마 이바지할수 있었다.

진정 《애국가》의 가사가 그대로 존엄높은 강국의 화폭이 되고 《애국가》의 선률이 명실공히 인민의 행복상으로 물결쳐흐르고있는것이 바로 위대한 김정은시대, 내 조국의 벅찬 현실인것이다.

우리 공화국의 현실을 목격한 국제사회는 이렇게 토로하고있다.

《나라마다 국가가 있지만 조선의 국가 〈애국가〉처럼 자기 인민의 마음속에 친근하게 자리잡은 국가는 아마 없을것이다.

이는 대대로 애국열로 심장을 끓이신 탁월한 수령들을 높이 모시여 이룩된 전인민적인 사상감정이다. 정말 애국으로 불타는 조선인민들의 열도는 그 무엇으로도 잴수 없다.》

《〈애국가〉는 위대한 김일성주석의 손길아래 창작되고 김정일국방위원장의 령도아래 나날이 높이 울려퍼졌으며 오늘은 경애하는 김정은국무위원장의 사랑속에 조선의 상징으로 더욱 우뚝 올라섰다.》

정녕 걸출한 수령을 모실 때 《애국가》는 세기와 세대를 이어 끝없이 거세차게 울리고 인민의 긍지와 영예, 자부심을 천만배로 불러일으켜주게 된다는것을 우리 공화국의 70여년의 자랑스러운 력사가 뚜렷이 보여주고있다.

그래서 우리 인민은 애국가를 절세위인들의 존함으로 빛나는 위대한 태양조국의 찬가, 태양이 떠올린 인민의 송가로 소중히 간직하고 경건히 부르는것이다.

예나 지금이나 아침은 동쪽에서 밝는다.

《아침은 빛나라 이 강산…》이라는 《애국가》의 노래처럼 위대한 수령님들과 경애하는 원수님의 태양의 모습과 더불어 우리 조국은 무궁토록 빛을 뿌릴것이니,

사회주의의 휘황한 미래를 향하여, 새로운 승리를 쟁취하기 위하여 우리 인민은 《애국가》를 심장으로 부르며 솟는 힘 노도도 내밀어 영원토록 경애하는 원수님의 령도를 충성으로 받들어나갈것이다.


* *


할아버지가 《애국가》를 창작한지도 어언 75년이라는 세월이 흘렀다.

시간의 흐름은 모든것을 삭막하게 한다고 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할아버지의 생애는 나에게 잊을수 없는 추억으로만이 아닌 하나의 진리로 깊게 자리잡고있다.

그것은 태양을 높이 모시여 인민의 운명도, 민족의 존엄도, 나라의 국가도 영원히 빛을 뿌린다는것을.

박 정 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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