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행되지 못한 당결정이 전하는 사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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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행되지 못한 당결정이 전하는 사연
경애하는 김정은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였다.
《김일성동지의 한생은 이민위천을 좌우명으로 삼고 사상과 령도에 구현하여 현실로 꽃피우신 인민적수령의 숭고한 한생이였다.》
장장 70여성상 승리와 영광만을 아로새겨온 조선로동당력사의 갈피에는 여러차례나 채택된 당중앙위원회 정치위원회 결정들이 한번도 집행되지 못한 사실들도 기록되여있다.
세기가 바뀐 오늘도 공화국인민들의 가슴에 응어리로 맺혀있는 집행되지 못한 당결정들,
그가운데서 한해도 다 저물어가던 주체52(1963)년 말에 있었던 하나의 사실을 다시금 돌이켜본다.
그때 당중앙위원회 정치위원회는 전체 인민들의 념원을 담아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 다문 며칠간이라도 휴식하실것을 결정하였다.
사실 인민의 행복과 사회주의건설을 위해 낮과 밤이 따로 없이 헌신하고계시는 어버이수령님의 건강이 걱정되여 오래전부터 일군들이 휴식하실것을 거듭 간절히 말씀드렸으나 그럴 때마다 수령님께서는 바쁜 일이나 끝내고 보자고 하시며 매번 사양하군 하시였다.
그러시던 어버이수령님께서는 그때만은 일군들과 인민들의 절절한 념원을 차마 거절하실수 없으시여 반승낙을 하시고 황해북도로 떠나시였다.
어버이수령님께서 타신 차가 어느 산간마을을 지날 때였다.
어버이수령님께서는 한 중학교(당시)앞을 지나시다가 외투도 입지 못하고 길가에서 놀고있는 어린 학생들을 보시고 차를 멈추게 하시였다.
차에서 내리시여 그들의 잔등을 한동안 쓸어주시며 어느 학교에 다니는가, 학교에 오갈 때 춥지 않은가고 다심히 물으신 어버이수령님께서는 그들의 겨울옷입은 정형을 일일이 알아보시였다.
1963년이라고 하면 아직은 나라사정이 어려웠던 때여서 친부모들조차도 자기 자식들이 외투를 못 입은데 대하여 별로 마음을 쓰지 않던 그런 때였다.
그러나 아이들의 모습을 바라보시며 좀처럼 자리를 뜨지 못하시던 어버이수령님께서는 지금 내가 너희들에게 줄것이란 사과 몇알뿐이니 이 사과라도 받으라고 하시면서 학생들의 손에 사과를 쥐여주시고서야 차에 오르시였다.
학생들과 헤여지신 후 농민들에게 어떻게 페를 끼치겠는가고 하시며 눈보라 날리는 멸악산기슭의 이름없는 바위우에서 늦게야 점심식사를 하신 어버이수령님께서는 겨울해가 서산을 넘어가던 저녁무렵 어느 한 마을의 작업반장을 만나시여 그의 가정과 마을사람들의 생활형편을 세세히 알아보시였다.
그날 밤늦게 숙소에 돌아오신 어버이수령님께서는 날씨가 찬데 우리 아이들이 외투도 없이 밖에서 논다고 낮에 있었던 일을 거듭 외우시였다.
일군들이 휴식을 간청드렸으나 어버이수령님께서는 농민들의 생활이 펴이지 못했는데 백날을 휴식한들 자신의 마음이 편안하겠는가고 하시며 휴식은 못해도 좋으니 농민들의 생활문제를 풀 방도를 생각해보자고 하시였다.
그토록 사랑하시는 우리 인민들과 아이들에게 더 좋고 훌륭한것을 안겨주지 못하는것이 그리도 마음에 걸리시여 어버이수령님께서는 종내 쉬지 못하시고 한밤을 꼬박 새우시였다.
어버이수령님께서는 다음날에 소집하신 도안의 해당부문 일군협의회에서 이번에 당중앙위원회 정치위원회의 결정에 의하여 한 10일동안 휴식하러 황해북도에 내려왔다가 몇개 군을 돌아보았는데 아이들이 겨울옷을 제대로 입지 못하고있기때문에 마음이 무거워 쉴수 없었다고 교시하시였다.
너무도 크나큰 자책에 참가자들은 머리를 들수 없었다.
어버이수령님께 어쩌다 한번 마련된 휴식마저 자신들의 잘못으로 또다시 뒤로 미루어지게 되였으니 이보다 더 죄송스럽고 가슴아픈 일이 또 어데 있으랴.
그길로 평양에 돌아오신 어버이수령님께서는 당중앙위원회 정치위원회에서 농촌어린이, 학생들의 옷문제를 풀기 위한 방도를 일일이 가르쳐주시고 아이들에게 겨울옷을 무상으로 공급할데 대한 은정어린 조치를 취해주시였다. 그리고 며칠후에 진행된 당중앙위원회 부장전원회의에서는 농민들의 생활을 획기적으로 높이기 위한 혁명적인 조치를 취해주시였다.
어버이수령님의 은혜로운 사랑속에 전국의 모든 농촌어린이들에게 겨울솜옷이 무상으로 안겨지게 되였으며 이듬해 2월에는 사회주의농촌건설의 위대한 강령인 《우리 나라 사회주의농촌문제에 관한 테제》가 발표되고 뒤이어 농촌에 마지막으로 남아있던 낡은 사회의 유물을 철페할데 대한 력사적인 법령들과 전국이 농촌을 지원할데 대한 결정들이 채택되게 되였다.
이렇게 되여 어버이수령님께서 잠시라도 편히 휴식하시기를 바라는 인민의 념원이 담긴 당결정은 끝내 집행되지 못하였으며 집행되지 못한 그 당결정들은 우리 어린이들과 인민들을 위한 사랑의 조치들로 이어지게 되였다.
참으로 우리 수령님은 한평생을 조국과 인민을 위해, 후대들을 위해 끝없는 헌신의 길을 이어가시며 거기에서 더없는 보람과 락을 찾으신 인민의 자애로운 어버이이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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