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 조선사람의 표상은 이렇게 태여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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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조선사람의 표상은 이렇게 태여났다
20세기초 망국의 비운이 드리운 조선을 돌아본 유럽의 한 작가는 지게를 진 조선소년의 구슬픈 모습을 담은 조각상을 만들어 내놓았다. 세월이 흘러 영웅조선의 기상이 만방에 과시되던 때에 다시 우리 나라에 온 그는 천리마동상을 보고는 이것이 진짜 조선사람의 표상이라고 말하였다.
공화국의 수도 평양의 중심부인 만수대언덕에 창공높이 솟아 조선인민의 영웅적기개를 시위하고있는 천리마동상은 오늘도 잊지 못할 이야기를 전하고있다.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지난 시기 우리 인민이 벌려온 영웅적투쟁은 다 위대한 수령님의 직접적인 령도와 결부되여있습니다.》
예로부터 만년장수 또는 만세의 뜻으로 불리워온 만수대는 우리 민족의 력사가 깃들어있고 자연지세와 주변경치가 뛰여난것으로 하여 천하명당으로 일러왔다.
바로 그래서 전후 설계가들과 건축가들은 유서깊고 수려한 이 언덕에 강도 일제를 때려부시고 빼앗겼던 조국을 찾아주시고 미제의 무력침공으로부터 조국과 인민의 운명을 굳건히 수호하여주신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의 업적을 전하는 기념비나 박물관을 세우려고 하였다.
하지만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당장 급한것은 쇠물을 뽑아야 할 제철소와 아이들이 공부할 학교, 인민들의 살림집이라고 하시면서 설계가들의 제안을 보류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그 언덕을 몹시도 아끼신다고 생각하던 일군들과 설계가들의 의혹은 주체48(1959)년 4월 1일에 드디여 풀리게 되였다.
그날 모란봉기슭의 청년공원건설장에 나오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만수대언덕에 천리마시대를 상징하는 기념탑같은것을 하나 세우는것이 좋겠다고 하시면서 동상은 말같은것이 좋겠다고 구체적으로 가르쳐주시였다.
이렇게 천리마동상의 터를 잡아주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나라일로 분망하신 속에서도 전국각지의 수십명 조각가들로 조각창작단을 무어주시고 천리마동상건립을 위한 사업을 이끌어주시였다.
그해 11월 17일 완성된 형성안들을 보아주시던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천리마는 상징적인 동물로서 비상히 빠른것을 상징하는것이니 날개를 다는것이 좋겠다고, 천리마에 날개를 달고 한필로 하여 각계각층을 대표하는 남녀가 타되 남자는 붉은 편지를 들고 녀자는 무슨 기구를 들게 하는것이 좋을것 같다고 구체적인 형상방도를 밝혀주시였다.
그러시면서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자신께서는 1949년에 레닌그라드에 가서 뾰뜨르대제의 기마상을 보았는데 그는 1703년에 그곳 진펄에다 도시를 세우라고 명령하고 건설을 직접 지휘한 황제였다고, 사람들은 청동말을 탄 거인의 조각상을 보면서 옛날의 그 유명한 짜리로구나 하고 생각할것이라고 하시였다.
계속하여 우리가 오늘 이 천리마에 한사람을 앉혀놓으면 먼 후대들은 말우에 앉은 사람이 당대를 대표하는 어떤 개별적인 영웅이라고 생각할거라고, 그들은 아마 그때 김일성이란 사람이 수상을 했으니 이건 그 사람의 동상이 아닌가고 생각할수도 있다고, 우리 나라에 처음으로 세우는 기마상은 시대의 주인인 인민의 모습을 형상해야 한다시며 이 도시를 일떠세운 사람들, 천리마의 주인들이 어떤 개별영웅이 아니라 인민이라는것을 똑똑히 알리게 하여야 한다고 간곡히 가르쳐주시였다.
전설속의 천리마를 내 조국의 현실로 불러오시고도 오히려 자신보다 인민을 내세워주시는 위대한 수령님의 세심한 지도속에 다음해 2월 천리마동상형성안이 훌륭히 완성되였다.
그리고 3월에는 천리마동상의 축소모형을 보아주시면서 천리마동상은 천리마시대를 상징하는 기념비인데 원형과 꼭같은 크기로 모형을 만들어세워놓고 다시한번 보자고, 인민들의 의견도 들어보아야 한다고 하시였다.
조각가들은 한달도 못되는 사이에 실물과 꼭같은 크기의 모형을 만들어 현지에 세우고 두권의 의견기록부를 그밑에 걸어놓았는데 각계층 인민들은 앞을 다투어 만수대언덕으로 달려와 자기들의 의견을 기탄없이 적었다. 공통적인 의견은 동상이 좀 작다는것이였다.
바로 이러한 때인 주체49(1960)년 6월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천리마동상의 모형을 보아주시면서 며칠전에 지방에 나가면서 올려다보니 좀 작은것 같더라고 자신의 생각같아서는 지금보다 2배로 확장하는것이 좋을것 같다고, 천리마시대를 상징하는것인데 올해 8. 15가 아니라 다음해까지 하더라도 좀 크게 하여야겠다고 가르쳐주시였다.
위대한 수령님의 세심한 지도속에 100여명의 조각창작단 성원들은 높이가 14m에 달하는 동상을 제작하면서 때로는 목공도 되고 연공도 되고 또 용접공도 되여 제작사업에 심혈을 바쳤다. 천리마동상의 건설자들도 대중적영웅주의와 창조적지혜를 발휘하여 다른 나라 사람들이 현대적인 기계가 없이는 세울수 없다고 하던 22t짜리 천리마동상의 철심을 자기 위치에 정확히 세우고 천리마의 속도로 시공작업을 다그쳐 주체50(1961)년 4월 15일에는 위대한 수령님을 모시고 력사적인 동상제막식을 가지게 되였다.
그때로부터 어언 61년이란 세월이 흘렀다.
돌이켜보면 우리 민족의 유구한 반만년력사에서 61년은 너무도 짧은 순간이다. 그러나 우리 인민은 그 짧은 기간 위대한 당의 령도아래 력사의 온갖 도전속에서도 번개같이 내달려 세기적인 기적과 위훈을 년대마다에 수놓아왔다.
천리마동상은 그 기적과 위훈을 안고 오늘도 래일도 영원히 조선인민의 상징으로 하늘높이 솟아있을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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